“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엊저녁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다가 말다가 했던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바로 바오 능옌(Bao Nguyen)이라는 감독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원제 : The Greatest Night in Pop)』이라는 제목의 2024년 다큐멘터리다. 대체 어떤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일까? 팝 평론가나 팝 애호가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가리키고 있는 밤은 1985년 1월 28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날 밤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라는 것일까? 세상에 수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일단 팝 역사에서 바라보자면 그날은 팝 음악 산업계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제12회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이라는 곳에서 열린 날이란 것이 첫 번째 단서다. 매우 유력한 단서다.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시상식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M 스튜디오에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We Are The World라는 곡은 80년대 팝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곡이다. 이 곡은 이미 1년 전에 붐타운래츠의 프론트맨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인민의 굶주림 등 비참한 삶을 보도한 BBC 프로그램에서 감화받아 팝 뮤지션을 모아 녹음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에1 영감받은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팝계의 거물 매니 켄 크라켄(Ken Kraken)에게 제안한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영국에서의 기획을 보고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 크라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초기에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레코드사의 기획자들이 달라붙어 뮤지션들을 어렵게 섭외하는 등,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당시 팝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당시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훗날의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었다.4

이 기획에 대한 사견을 말하자면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5

그럼에도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으로 – 조금 더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 한계를 비춰보면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의미는 절대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한 2023년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당수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그 뒤 연예계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위대한 밤”의 당사자 해리 벨라폰테,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 설리번의 “의식적인” 도움으로 애드의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 관련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 업계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6 그중 가장 적극적인 선각자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그의 도움을 통해 연예계에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이제 유색인종인 본인들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1.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
  2. 쉴라 이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에서 생애 최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3.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
  4.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
  5.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된 중 가장 급진적인 프로젝트는 인종차별 정권에 저항하는 남아공의 진보 세력과 연대한다는 의미를 지닌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의 Suncity였다 ↩
  6. 예를 들면 방탄소년단이 지미 팰런 등과 같은 미국 주류 토크쇼의 백인 진행자의 도움 없이 미국 주류 음악에 편입할 수 있었을까? ↩

Brothers in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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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Vertigo, Warner Bros.., Fair use, Link

Dire Straits의 Brothers in Arms 앨범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한다. 솔직히 그 앨범을 사지도 않았다. 아마 기억하기로 그 앨범을 처음 본 것은 나랑 같은 나이였던, 일본에서 살다 와서 나보다 엘피가 더 많았던 사촌의 방에서였을 것 같다. 그는 아마도 일본에서 그 앨범을 사서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뭐 대단한 앨범 커버는 아닌데 특이한 디자인의 기타가 커버에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마크 노플러가 워낙 출중한 기타 연주자였기 때문에 커버에도 기타 사진을 썼을 것 같다. 앨범은 잘 모른다고 하는데 수록곡은 제법 안다. So Far Away, Money for Nothing, Walk of Life, Why Worry는 잘 알고 있는 노래다. Why Worry는 특히 우리나라 라디오에서 인기가 좋았던 곡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Money for Nothing은 노래 자체도 명곡이지만, 뮤직비디오도1 컴퓨터그래픽을 혁신적인 기법으로 사용하여2 그쪽 분야에서 획기적인 금자탑을 세운 위대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대개 비슷한 기타락인데 Why Worry는 거기에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락발라드풍이니까 더욱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롤링스톤이 이 앨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에서 418위에 올렸다.

  1. 개인적으로는 마크 노플러의 헤드밴드를 형광색으로 굳이 표현한 것이 웃기기는 했다 ↩
  2. 당시 또는 이후에 유행했던 3D의 권투 게임이 이 비디오의 캐릭터와 비슷했다. ↩

Double / Blue [1985]

Double의 데뷔 앨범 Blue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서핑을 하던 중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AllMusic에서 올려놓은 앨범의 이미지는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발매된 더블의 앨범 이미지라는 점이다. “유니버설 뮤직 마스터피스 시리즈 34”로 타이틀을 달고 발매된 이 앨범의 홍보 문구도 재밌다. “팝과 휴전재즈의 명쾌한 결합으로 세련되고 독창적인 라운지 뮤직의 새로운 지평을 이뤄낸 희귀작. 국내 유일 재발매반.”이 바로 이 앨범이다. 라운지 뮤직은 아마도 Lounge Music 장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문하지만 라운지에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팝계열에 여러 장르를 섞은 음악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피치카토파이브(Pizzicato Five) 등이 활약한 시부야게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스테레오랩(Stereolab) 정도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어쨌든 크게 힘 안 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통속적인(?!) 장르보다는 좀 더 있어 보이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바라보면 더블을 라운지 뮤직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위키피디어나 디스콕스에서 정의하는 이들의 음악 장르는 소피스티팝, 신스팝, 일렉트로닉, 째즈팝 정도다. 모두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들의 음악은 누가 뭐래도 도회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록곡 중에는 Urban Nomads라는 제목의 트랙도 있다.) 거기에 색소폰과 같은 통상의 팝이나 락에서 잘 안쓰는 악기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고 멜로디의 변화도 이색적이지만, 째즈라고 정의하기에는 지나치게 팝적이다. 어쨌든 팝은 팝인데 스위스와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한 밴드라 그런지 영미권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팝음악을 선보였다는 점이 매력이다.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인 곡은 가장 크게 사랑받은 The Captain of Her Heart지만, 개인적으로는 차트 진입에 성공하지 못한 앨범의 마지막 트랙 Tomorrow도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安全地帯 / 安全地帯IV [1985]

安全地帯IV를 듣고 있다. 안전지대의 인기가 최정상일 때 발매된 걸작 앨범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첫 트랙인 ‘꿈의 이어짐(夢のつづき)’. ‘아름다운 눈동자의 앨리스(碧い瞳のエリス)’나 ‘슬픔이여 안녕(悲しみにさよなら)’이라는 극강의 트랙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제목, 가사, 그리고 멜로디의 유려함의 관점에서 ‘꿈의 이어짐’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일본에서 1985년 11월에 발매되었는데, 그해 초 이미 기혼이었던 리더 다마키코지(玉置浩二)는 여배우 이시하라마리코(石原真理子)와의 스캔들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안전지대의 “전속” 작사가인 마츠이고로(松井五郎)는 둘의 마음이 진심이라 생각하고 그러한 감정으로 가사를 썼다고 한다.(헐~)

…From Across The Kitchen Table


이미지 출처 : discogs

The Pale Fountains의 1985년 2집인데 불과 1년인데 스타일의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1집이 – 후배이긴 하지만 – Belle & Sebastian의 스타일이 연상된다면 2집은 좀더 하드한 초기의 Simple Minds가 연상된다. 두번째 트랙 Stole The Love는 심플마인즈의 곡이라고 말해도 깜빡 속을 것 같다. 세번째 트랙 Jean’s Not Happening은 언뜻 또 다른 후배 뮤지션이 생각나는데 The Lightning Seeds. 우연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이 앨범의 프로듀서가 바로 LS의 Ian Broudie. 한편 네번째 트랙은 느닷없이 샤우팅 창법의 쏘울 넘버인 Bicycle Thieves. 마지막 곡 September Sting은 컨트리곡!

각각의 곡으로 보면 즐기며 듣기에 손색이 없지만, 무언가 앨범의 통일성은 – 굳이 컨셉트 앨범이 아닐지라도 – 느껴지지 않는다. 1집에서는 밴드가 프로덕션과 앨범 커버 디자인 등에 대해 전권을 가진 것 같았는데 이 앨범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 1집의 신통찮은 판매고든 다른 이유든 – 많이 통제권을 뺏긴 느낌이고 음악도 그렇고 앨범 커버도 산만하기 그지없다. 커버 가운데 딱 박힌 밴드의 로고 디자인은 너무 촌스럽다.

다른 수록곡을 한참 뛰어넘어 앨범 타이틀과 동명인 수록곡 ..From Across The Kitchen Table 에 이르러서야 The Pale Fountains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던 트럼펫 연주가 다시 전주에 등장한다. 이러한 챔버팝적인 분위기를 조금 더 발전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느껴진다. 그랬더라면 수많은 인디락 밴드가 명멸(明滅)했을 80년대의 치열하고 냉혹한 영국 락음악씬에서 좀 더 긴 수명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밴드는 이 앨범을 끝으로 해체했고 프론트맨 Mick Head는 또 다른 컬트 밴드인 Shack을 결성한다.

…From Across The Kitchen Table 유튜브 영상

※ 영상에 등장하는 영화 이야기
지난번 감상한 PF의 대표곡 Something On My Mind 유튜브 영상이 프랑스 영화 브레드레스를 활용한 것처럼 이 영상도 어떤 흑백 영화를 이용했다. 예전에 본 영화였는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 이번에도 챗지피티, 딥씩, 구글이미지검색을 사용했는데 역시나 답은 구글이미지검색을 통해 찾아냈다. 해당 작품은 1960년 개봉된 영국 영화 Saturday Night and Sunday Morning. 소위 “키친싱크 사실주의(kitchen sink realism)“라는 영국식 리얼리즘 장르의 영화로 공장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주말에 빠를 전전하며 다른 삶을 꿈꾸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다. 키친싱크 사실주의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는 A Taste Of Honey라는 작품으로 The Smiths의 컴필레이션 앨범 Louder Than Bombs의 커버에 등장인물인 극작가 쉘라 델라니(Shelagh Delaney)가 원작자이다.

C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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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ttp://www.discogs.com/image/R-766249-1173539286.jpeg, Fair use, Link

Crush를 감상하면서 위키피디어를 읽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그룹 멤버들은 앨범 작업을 레이블이 강요한 한정된 일정 안에 마쳐야 했는데 이로 인해 밴드의 의욕이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프로듀서를 맡은 Stephen Hague1의 “매끈한 프로덕션(sleek production)”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 이유는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 앨범에 대한 느낌을 바로 그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끈함’. 그것이 이 앨범의 최고의 미덕이자 최악의 단점일 것 같다.2

OMD는 일렉트로닉 계열에서도 나름대로 실험적인 음악으로 정평이 나있었다.(그중에서도 백미는 1981년 내놓은 Architecture & Morality) 그런데 이 앨범은 첫 트랙 So in Love는 슈가팝 스타일의 감미롭고 “매끈한” 도입부에서부터 그들의 기존의 음악노선에 결을 달리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그들의 음악은 Pretty in Pink의 삽입곡 If You Leave였기 때문에3 이러한 크루너(crooner) 스타일의 노래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실험적인 사운드에 익숙했을 그들의 오랜 팬은 조금은 실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밴드의 창설 멤버 Paul Humphreys는 이 앨범을 만들 시기에 잠시 그룹을 떠나기까지 했었다고 하니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앨범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앨범 작업을 마친 결과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비평은 호의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평에 동의한다. “실험보다는 춤추기 좋은 일렉트로팝을 강조한다. Crush는 사람을 압도하지는 않지만, 우아함과 재치로 점차 유혹할 것이다.” OMD의 앨범 중 유일하게 빌보드 200의 탑40에 오른 앨범이 되었다. So in Love는 빌보드핫100 차트에 25위까지 오르며 그룹의 첫 미국 시장 히트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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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ward Hopper – https://www.edwardhopper.net/, Public Domain, Link

한편 커버아트를 보며 자꾸 어떤 작가가 어렴풋이 연상되었는데 위키피디어의 설명을 보니 그게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OMD는 애초에 에드워드호퍼(Edward Hopper)의 작품을 커버에 쓰려고 했었다고 한다. 앤디는 호퍼의 멜랑코리함이 앨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쓰고 싶었지만, 사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대신 폴슬레이터(Paul Slater)라는 작가에게 호퍼 스타일의 그림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호퍼의 Early Sunday Morning (1930)을 흉내내어 작품을 완성했다.

  1. 이 프로듀서의 다른 작업을 보니 Pet Shop Boys의 Please, New Order의 True Faith, Communards의 Red 등이 눈에 띈다. 대충 그의 성향이 짐작이 된다 ↩
  2. 이러한 상큼한 덕분에(!?) 앨범의 두번째 트랙 Secret은 80년대 당시 국내 한 비타민 영양제의 광고 배경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
  3. 그리고 많은 뮤지션을 파고들 때에 그러했지만, 음반을 거꾸로 후기에서 초기로 찾아듣는 시기를 거쳤다 ↩

Mr. Mister – Welcome to the Real World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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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emusic.com, Fair use, Link

Welcome to the Real World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팝락 밴드 Mr. Mister의 두 번째 스튜디오앨범이다. 발매일은 1985년 11월 27일이고 RCA 레코드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1986년 4월 빌보드 200 차트 1위에까지 오른 이 앨범에는 “Broken Wings”와 “Kyrie“가 수록되어 있는데 두 곡 모두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크게 인기를 얻었다. 이밖에도 또 다른 싱글 “Is It Love”도1 빌보드 핫100차트 8위에 오르는 등 앨범과 여러 싱글들 모두 그야말로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밴드가 그들의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였다.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링은 Yes의 앨범 9012Live: The Solos의 사운드엔지니어 작업을 했던 Paul De Villers가 맡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당시 Yes 음악의 프로그레시브한 분위기가 섞여있는 박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앨범 전체적으로 ‘팝락이란 장르는 이런 것이다’라고 웅변하는 듯 깔끔함이 돋보인다. 이러한 분위기에는 분명 보컬을 맡은 Richard Page의 청량한 보컬도 한몫을 하고 있는데, 그는 이 밴드 이전에는 Pages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유명한 다큐멘터리 실크로드의 삽입곡 Caravan을 부르기도 했다.

  1. 개인적으로 이곡은 즐겨보는 영화 Stakeout에서 쓰여 반갑기도 했다 ↩

Kate Bush : Hounds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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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rce, Fair use, Link

Hounds of Love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Kate Bush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EMI에서 1985년 9월 16일 발매하였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많은 히트 싱글을 양산해낸 앨범이 되었다. “Running Up That Hill (A Deal with God)”는 케이트의 가장 큰 히트곡 중 하나가 되었고 이후 “Cloudbusting”, “Hounds of Love”, “The Big Sky” 등 연이은 싱글들도 큰 인기를 끌었다. 영국 차트에서는 두 번째로 1위에 오른 앨범이 되었고 판매량에 있어서는 제일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빌보드 차트에도 최고 30위까지 오르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케이트의 전작 The Dreaming은 그가 솔로 작업을 해나가는 여정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인데, 이는 그가 The Fairlight CMI라는 혁신적인 작업도구를 이용해 어떠한 악기라도 재연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1983년 여름 그는 자신만을 위한 24 트랙의 스튜디오를 가족들의 집 차고에 만들어서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케이트는 1984년 1월 Hounds of Love의 데모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데모를 오버더빙하거나 믹싱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해나갔다. 이 작업에서 그는 전통적인 아일랜드 악기랄지 중첩되는 보컬의 표현 등에 The Fairlight CMI를 많이 사용했다.

앨범은 두 개의 모음곡으로 이루어졌다는 개념으로 만들어졌다. 1면은 Hounds of Love로 다섯 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2면은 The Ninth Wave로 일곱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히트곡은 거의 Hounds of Love에서 나온 반면, The Ninth Wave에서는 보다 컨셉트 앨범 적인 면을 보이며 배에서 난파당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많은 텍스쳐와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내는데, 곡들은 앨프리드 테니슨 경의 시(詩) 스타일에 영향받아 일종의 영계와의 구하는 의식을 추구하기도 한다. 곡들은 듣는 이들이 탄생과 부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그 자체로도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걸작이자 남초적 성격이 강한 대중음악계에서 자존감 강하고 천재적인 음악 실력을 가진 여성 뮤지션이 최신의 기술이 결합된 음악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 완성해낸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미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음악적 재능을 갖추었으면서도 시스템과 대중의 호기심을 한껏 이용하며 성공을 쟁취한 바다 건너의 Madonna와 동시대 인물이면서도 그와는 다른 길을 영국 땅에서 쟁취해냈다는 점에서 비교가 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 그의 한 뮤직비디오에서 어떤 댓글러가 그에게서 볼 수 있는 성적(性的) 매력은 ‘sexy’라기보다는 ‘sensual’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이에 공감하는 편이다.

pitchfork의 앨범 리뷰

Side one: Hounds of Love
1. “Running Up That Hill (A Deal with God)”
2. “Hounds of Love”
3. “The Big Sky”
4. “Mother Stands for Comfort”
5. “Cloudbusting”

Side two: The Ninth Wave
6. “And Dream of Sheep”
7. “Under Ice”
8. “Waking the Witch”
9. “Watching You Without Me”
10. “Jig of Life”
11. “Hello Earth”
12. “The Morning Fog”

Meat Is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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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Murder”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Morrissey와 The Smiths 멤버들이(나머지 멤버들이 자발적인 채식주의자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락밴드임에도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은 락밴드에게 의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순다. 이러한 편견을 파괴하게 되는 밴드의 가장 공공연한 선언이 바로 1985년 발표된 밴드의 2집 Meat is Murder다. Morrissey가 내한공연을 가졌을 적에 그는 앨범 명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연주 목록에 포함시켜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커다란 눈망울의 소가 클로즈업 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스미쓰 팬들은 불편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 노래를 들어야 했다.

이러한 다소는 마이너한 주장이 노골적으로 담긴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eat is Murder는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밴드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미국에서는 차트 110위까지 올랐다. 미쿡에서는 여전히 듣보잡) 하지만 Rolling Stone은 2003년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96위에 선정하면서 그 뛰어난 음악성을 칭송하였다.(까탈스러운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C+ 등급을 매겼다)

1984년 데뷔 앨범의 프러덕션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Morrissey는 기타를 맡은 Johnny Marr와 함께 직접 앨범을 프로듀스하기로 결정하였다. 엔지니어링은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에서 처음 만났던 Stephen Street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정식 크레딧에는 프로듀싱을 “The Smiths”가 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Rourke와 Joyce는 자신들의 악기 연주의 믹싱 과정에서의 사운드레벨에 대한 조언을 하는 정도만 허락받았을 뿐이다.

앨범 트랙의 내용은 이전 앨범보다 더욱 더 정치적이고 직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Meat Is Murder”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그 외에도 “The Headmaster Ritual”이나 “Barbarism Begins at Home”은 체벌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낸 작품이다. 음악적으로 밴드는 보다 실험적이 되었는데 “Barbarism Begins at Home”에서는 펑크(funk)적인 긴 후반부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베이스 Andy Rourke는 Level 42의 Mark King이라도 된 양 신나게 베이스를 연주한다)

Morrissey는 이즈음에서의 각종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공격 대상에는 대처 정부도 있었지만 동료 뮤지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Band Aid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누구나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영국인에게 매일매일의 고문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싱글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싱글로만 발표한 “Shakespeare’s Sister”는 차트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 앨범의 유일한 싱글 “That Joke Isn’t Funny Anymore”는 49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How Soon Is Now?”는 원래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의 B면 수록곡이었는데 북미의 댄쓰클럽과 얼터너티브 래디오에서 인기를 얻어 북미에서 발매된 앨범에 함께 수록되었다. 결국 이 노래는 영국에서도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차트 24위까지 올랐다.

앨범 커버로도 늘 이야깃거리를 주는 The Smiths의 이번 앨범 커버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인 Michael Wynn을 찍은 1967년 작품이다. 원래 그의 철모에 적혀 있는 글은 “Make War Not Love” 였지만 “Meat Is Murder”로 교체되었다. 오리지널 이미지는 Emile de Antonio의 1968년 다큐멘터리 In the Year of the Pig에서 빌려 온 것이다.

Rain Dogs

Tom Waits - Rain Dogs.png
“Tom Waits – Rain Dogs”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Tom Waits와 Iggy Pop과 Jim Jarmusch는 ‘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생각될 만큼 서로 다르게 생겼으면서도 분위기가 닮았다. 그래서인지 Tom과 Iggy는 Jim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고 Jim은 Tom의 음악을 그의 영화에 즐겨 썼다. 또 그래서인지 Tom의 노래가 Jim의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Tom의 대표작 Rain Dogs는 그런 면에서 음악으로 듣는 Jim의 영화와도 같은 분위기다. 1985년 9월 발매된 이 앨범은 “도시에서 퇴거당한 이들”이라는 느슨한 콘셉트를 가진 앨범이어서 더더욱 영화적이다.1 스타일적으로는 블루스와 뉴올리언즈 분위기가 물씬 나는 관악 연주가 어우러져 서커스 악극단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Tom은 이 앨범의 대부분의 곡을 1984년 가을 맨해튼에 있는 한 지하방에서 두 달 동안에 거쳐 썼다고 한다. 그리고 앨범 작업에 도시의 분위기를 가미하기 위해 거리에서의 소음이나 카세트레코더에서 나오는 모호한 소음을 녹음해 두었고, 후에 앨범 곳곳에 배치되었다. 또한 이국적 분위기를 위해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었는데 이 중에는 마림바, 아코디언, 더블베이스, 트럼본, 밴조 등이 있다. 이러한 음악적 기조는 신디싸이저와 드럼머신이 지배하던 1980년대 중반의 대중음악계에서는 매우 이채로운 일이다.

앨범 녹음작업 또한 매우 즉흥적이었다고 한다. 기타 연주를 맡았던 Marc Ribot의 회고에 따르면 밴드는 녹음에 들어가기 전에 연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Tom은 스튜디오에서 그들에게 어쿠스틱기타로 곡을 연주해줬다. Tom은 곡의 방향을 위한 제안을 하긴 했지만 처음이나 두 번째 테이크에서 어떤 곡이 나올지에 대해서는 그때의 상황에 의존했다. Tom은 이 앨범에 The Rolling Stones의 Keith Richards도 초대했다. Tom의 회상에 따르면 그는 동물과도 같은 감각으로 곡 작업에 대한 제안을 했다고 한다.

굉장히 익숙한 앨범 커버는 스웨덴의 사진작가 Anders Petersen이 함부르크에 있는 홍등가 Reeperbahn 근처에 있는 Café Lehmitz에서 1960년대에 찍은 사진 연작 중의 하나를 사용한 것이다. 사진 속의 남녀는 Rose와 Lily로 불리웠다 한다.

앨범 듣기

  1. 실제로 이 컨셉트는 Martin Bell 감독의 1984년 다큐멘터리 Streetwise에 영감 받아 생각해낸 것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