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센의 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미국에서는 A24가 토킹헤즈의 공연 필름을 복원하여 상영하고 이를 계기로 멤버들이 화해하고 넷 모두가 무대인사 등에 몰려다니는 기적이 있었지만, 밴드의 인지도 바닥인 국내에서 이 필름이 상영되는 상황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각종 독립영화를 무모하게(!) 수입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찬란에서 다시 한번 무모한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그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찬란 측에서 나도 시사회에 초대해 주어 시사회장에 가게 되었다. 상영은 7월 22일 저녁 용산CGV 15관에서 진행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IMAX가 적당한 상영관이 아닐지 생각했지만, 스크린의 크기는 그 정도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배정받은 자리가 왼쪽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영화가 개봉되면 다시 가서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됐다.

영화는 7시 30분 정각에 시작했다. 평소 익숙했던 그들의 공연 장면과 노래도 몇십 배는 커진 스크린과 훌륭한 음향 기기를 통해 들으니 당연히 감동은 배가 되었다. 이 필름 안에서는 공연 중 멤버들의 사소한 행동을 – 당연히 특히 Byrne의 – 즐기며 볼거리가 많은데 더 큰 영상으로 보니 이런 모습이 더 눈에 띄며 즐거움도 더 컸다.

무료표를 받고 온 시사회인 탓인지 다른 바쁜 일이 있으신 탓인지 – 아마도 이런저런 동호회에서 오신 분들도 있는 듯 – 상영 도중 몇몇은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음악이 귀에 익지 않아서인 듯? 하지만 아내 좌석 옆 좌석의 관객은 상영 후 ‘당시 어떻게 이런 음악을 했지’라고 감탄했다는 말을 전했다. 취향은 그렇게 가감이 생기는 법이다.

부디 이번 영화도 최소한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면 한다. 그래서 찬란 영화사의 용기 또는 만용(!)이 보상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욱 좋은 음악 관련 필름을 소개해 줬으면 한다. 아내는 그런 의미에서 어서 알란 파커 감독의 The Commitments도 수입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럴 일 없겠지만, 그럴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개봉은 오는 8월 13일이다.

Music Is the Weapon

Talking Heads와 Brian Eno가 많은 영향을 받았던1 나이지리아 뮤지션 펠라 쿠티(Fela Kuti)의 삶에 관한 1982년 다큐멘터리다. 작품의 제목에서 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작품은 펠라 쿠티의 음악, 특히 투쟁을 위한 무리로서의 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1982년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 그의 전성기 시절 촬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펠라 쿠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 범아프리카주의, 음악,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자세히 담고 있다.

쿠티는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맑시즘도, 레닌이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아프리카주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 그는 등과 엉덩이에 남은 채찍 고문 자국을 보여줘 아프리카에서는 아무리 명망있는 뮤지션이라 할지라도 일상이 고통임을 알려주고 있다. 음악 다큐멘터리인 만큼 그의 공연도 알차게 담겨져 있다. 작품에서는 그의 각종 공연 영상, 공연 중 진행되는 종교적 의식, 공연을 위해 댄서들이 분장하는 모습 등도 담고 있다. 또한 ‘ITT’, ‘Army Arrangement’, ‘Power Show’ 등 당시까지의 미발표곡도 수록되어 있다.

  • 감독 : Jean Jacques Flori / Stephen Tchal-Gadjieff
  • 발표연도 : 1982
  • 러닝타임 : 53분
  • 제작국가 : 프랑스
  • 언어 : 영어
  1. 특히 Remain in Light을 만들면서 밴드는 펠라 쿠티 특유의 아프로비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

The Stone Roses: Made of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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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Roses-17-07-2012 Milan” by Alfio66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The Stone Roses의 데뷔 앨범이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거의 시차 없이 발매되었다는 사실은 참 흥미롭다. Madchester 운동은 고사하고 펑크락에 대한 인지도조차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의 음악청취 풍토에서 좀 느닷없는 면이 있었다. 당시에 어떤 광팬의 입김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여하튼 이러한 사소한 에피소드는 당시 돌장미가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던가를 잘 보여주는 한 사례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음악을 펑크적으로 풀어내고 싶지만 ‘60년대 밴드도 아니고 펑크밴드도 아닌 80년대 밴드’일 뿐이라는 이언 브라운의 자평에 딱 들어맞게 그들의 음악은 80년대 풍이면서도 당시 어느 밴드와도 견줄 수 없는 그들만의 개성이 담겨 있었다. 사이먼앤가펑클을 연상시키지만 명백히 그들은 포크밴드가 아니었고 매드체스터의 그루브를 담고 있었지만 동시대 매드체스터 밴드와는 또 다른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겨우 겨우 1994년 2집 Second Coming을 내놓았지만 매니지먼트를 비롯한 온갖 문제 등 때문에 해체의 길을 걸어야 했던 이 밴드는 그 후 팬들에게 일종의 전설로 남았다. 그리고 팬들은 그들의 음악을 육성으로 듣는 순간은 해체 이후 거의 16년이 되어가는 시점까지 기다려야 했다. 2011년 10월 14일 The Sun은 돌장미가 일련의 라이브 공연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전했고 이 소문은 그 해 사실이 되었다.

2013년 6월 발표된 The Stone Roses: Made of Stone은 밴드의 재결합을 기념하여 만든 다큐멘터리다. This is England라는 영국 사회의 속살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영화를 감독한 바 있는 Shane Meadows가 이 다큐의 감독을 맡았다. 다큐는 밴드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여 보여주며 밴드가 어떤 음악을 추구했고 팬들은 그들의 어떤 모습을 사랑하는지를 조명한다. 재결합 공연의 팬들의 설렘, 감동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큐는 일본 공연 즈음에서 막을 내리지만 밴드는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밴드가 스스로를 향수어린 7080밴드로 남을지 아니면 21세기에도 여전히 흥행력을 가지고 있는 밴드임을 증명할지를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음악은 21세기에 그리 많은 발전이 없어 음악계는 여전히 U2나 Prince와 같은 뮤지션 들로부터 수혈을 받아야 할 상황이니 만큼 후자를 택해야 하지 않을까?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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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sey Live at SXSW Austin in March 2006” by mrmatt @ flickr – http://www.flickr.com/photos/mrmatt/ – http://www.flickr.com/photos/mrmatt/116581062/.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영국의 TV방송국인 Channel 4가 2002년 찍어서 2003년 방영한 Morrissey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The Importance of Being Morrissey라는 제목은 아마도 Oscar Wilde의 희곡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에서 따왔을 것이다.1 이 다큐멘터리는 스스로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면서도 The Smiths의 열렬한 팬인 J. K. Rowling의 인터뷰를 비롯하여, 음악사의 또 다른 거물들인 Bono와 Chrissie Hynde, 그의 친구들, 심지어 그의 어릴 적 이웃 아저씨까지 동원하여 Morrissey에 대한 입체적인 인물조명을 시도한다. Morrissey가 New York Dolls의 팬이었다는 잘 알려진 사실에서부터 Nationcal Front Disco라는 곡으로 촉발된 “모리씨 국수주의자설”에 대한 본인의 해명, 그의 모호한, 그렇지만 레코드 회사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주장되는 성적(性的) 이미지, 그리고 그의 저택의 소개까지, 그의 팬이라면 궁금해 할 다양한 사실들이 나열된다. 하지만 이 필름에 대한 imdb 페이지에서 한 독자가 썼듯이 여전히 그의 정치적 입장은 모호하거나, 더 나아가서 그 독자의 표현에 따르면 모순적인 뉘앙스를 띠고 있다. 모든 유명인들에게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할 수는 없으나 사실 The Smiths 정도의 비중을 가진 밴드의 리드 싱어였고 The Queen Is Dead라는 도발적인 음반으로 정치적 논쟁을 촉발한 인물이라면 조금 더 정치적 입장을 밝힐 책임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큐멘터리 보기

  1. Morrissey가 Oscar Wilde의 팬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

Joe Strummer: The Future Is Unwrit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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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Strummer” by Masao Nakagami – http://www.flickr.com/photos/goro_memo/776514749/.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Punk를 정확히 언제 누가 발명(!)하였는지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The Clash가 그 많고 많은 펑크밴드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밴드들 중 하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펑크밴드의 중심에는 Joe Strummer가 있었다. 영국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터키, 멕시코 등을 돌아다며 컸던 Joe는 영국으로 돌아와 부모와 떨어져 그의 형과 함께 기숙학교에 다니며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Joe가 불의의 심장마비 사고로 운명을 달리 한 2002년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06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The Future is Unwritten은 이 독재적이고, 한편으로 인간적이고, 한편으로 급진적이었던, 그리고 스스로는 뮤직씬에서 한 번도 섹시심볼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이 잘 생기고 매력적인 인간의 다양한 인간적 모습, 그의 음악, 그리고 그가 꿈꾸던 세상을 그 주변인들과 팬들의 인터뷰를 통해 재생시켰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가 The Clash로 옮겨가기 전에 만들었던 The 101’ers에서 함께 음악을 한 이들, 이 시절 버려진 주택을 점거하여 같이 살던 이들, Mick Jones를 포함한 The Clash의 멤버들, 그를 영화에 출연시킨 Jim Jarmusch, 함께 영화에 출연한 Steve Buscemi, 그의 팬이었던 John Cusack, Matt Dillon, Bono 등등. 이들은 The Clash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억하기도 한다.

The Clash는 “무정부주의적”이라 불리던 – 사실은 무정부주의적이라기보다는 “주의”에 얽매이지조차 않은 철저한 체제부정에 가까웠지만 – Sex Pistols에 비해 확실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행동을 요구했고 가사는 직선적이었다. 이러한 분명한 정치적 태도는 후에 밴드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됨에 따라 그들을 옥죄는 모순의 씨앗이 되었고, Joe는 그런 이유 등을 포함한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게 된다.

Joe의 이런 모습에서 전에 다른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또 하나의 위대한 아티스트 George Harrison의 방황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비록 정치적 입장은 다소 차이가 있었고, 그 방황의 대안 역시 달랐지만 무절제한 쇼비즈니스에서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황폐하기 만들기보다는 보다 진실한 삶을 추구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둘의 태도는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죽었단 사실도 닮았다.

둘의 유사점이 또 있다면 바로 음악적인 면에서 서구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음악을 들여와 밴드의 음악적 지향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점이다. Joe는 자메이카에서 레게를, George는 인도의 전통음악을 도입하여 각각의 음악세계와 접목하였고 이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Joe의 레게와 펑크의 결합은 反인종주의를 지향하는 밴드의 정치적 태도가 음악적 형식으로도 성공적으로 구현됐다는 특징이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아쉬운 점은 이 점이다. 어떻게 The Clash가 다른 펑크밴드와 달리 정치적 지향과 음악적 형식을 유기적으로 통합시키는 계기인 레게를 접했고, 그것을 그들의 음악에 도입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다.1960~70년대 영국이라는 나라가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지리적, 인종적 위치와 그런 격변이 The Clash의 음악과 어떻게 상호작용하였는지를 좀 더 조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DVD는 다큐멘터리 본 작품이외에 별도로 다큐멘터리에 싣지 않은 인터뷰들을 담고 있다. 이 인터뷰의 내용이 또 상당해서 별도의 콘텐츠로 여겨질 만하다. 내용도 별도로 챙겨볼 필요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는데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Martin Scorsese가 우연히 The Clash의 음악을 듣고 푹 빠졌고, 이들의 음악에서 그의 걸작 Raging Bull을 만드는데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에피소드였다. The Clash와 Raging Bull 이라니.

Chelovek S Kinoapparatom(카메라를 든 사나이, The Man With a Movie Camera)

Man with a movie camera 1929 2.png
By Dziga Vertov – http://anthologyfilmarchives.org/collections/reference-library/stills/683, Public Domain, Link

이거 참 괴물같은 영화다.

훨씬 후대에 만들어진 Koyaanisqatsi 를 연상시키는 작품이긴 한데 오히려 그보다 훨씬 혁신적이다. 촬영팀이 찍은 20년대 소비에트의 이런 저런 모습들을 모자이크식으로 엮어놓았는데 이를 통해 영화, 다시 말해 활동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즐거움, 즉 사진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뤼미에르가 주고자 했던)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화면의 연결이 어떻게 이른바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은유, 비유, 치환, 상징 등 모든 영화문법의 알레고리로 옮겨가는지에 대한 단초도 제공하고 있어 즐거움이 더하다.

여전히 극적 구성을 띠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일종의 에피소드라 할만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중에서 필름을 편집하는 한 여인의 모습은 영화는 한편으로 ‘편집의 예술’임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또한 영사기가 마치 로봇이라도 되는 양 움직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나중에 클레이애니메이션에서 쓰이는 방식을 통해 제작된 장면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음악 또한 날도깨비 같다. 그 당시의 헐리웃 영화에서 들을 수 있던 유의 음악이 아니다. 훗날 존케이지나 필립글래스, 그리고 반젤리스 등에서 들을 수 있던 혁신적인 전자음악을 연상시키는 배경음악은 너무나 미래주의적이면서도 어색하지 않아 – 프로그레시브라는 레벨을 달고 있는 음악 중에 오늘날 들으면 촌스러운 음악들도 많다 – 귀가 딱 벌어질 정도다. 특히 첫 트랙은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마음에 든다. 음악은 영상과 완전히 매치가 되어 살아있는 유기체마냥 꿈틀거린다.

한마디로 이질적인 경외감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것 같다.

Pumping Iron

동명의 책의 저자이기도 한 George Butler가 Robert Fiore 와 함께 공동으로 감독한 1976년산 다큐멘터리다. 바디빌딩의 이면에 대한 관찰기이면서 인간의 끊임없는 경쟁심에 대한 관찰기이기도 하다. 1975년 바디빌더 아놀드슈왈제네거는 이미 바디빌딩 계에서 신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혈혈단신으로 건너온 그는 프로 바디빌딩의 최고를 가리는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벌써 5년 동안이나 1등을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승리를 위한 그의 집착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작품 곳곳에 배치된 인터뷰에서 설명되고 있는데 그는 대회를 위하여 경쟁자에게 잘못된 조언을 하는가 하면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는 냉혹함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어느 리뷰에는 몇몇 장면이 조심스럽게 연출되기도 했다니 사실여부는 모르겠다). 여하튼 이런 그에게는 수많은 도전자가 있었고 그 중 하나는 떠오르는 바디빌더 루 페리그노도 있었다. 극성스러운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으로 몸을 다져가는 이 어린 바디빌더는 신화에 도전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마침내 아놀드는 6번째 미스터 올림피아의 자리를 차지하고는 은퇴를 선언하여 루의 재도전은 물거품이 되고만다. 스포츠를 소재로 하고 있는 등 여러 면에서 1994년 작 Hoop Dreams 와 비교될 수 있다. Hoop Dreams 는 흑인주거지역에서 NBA 의 꿈을 키우고 살아가는 두 소년의 관찰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Hoop Dreams 가 좀 더 사회모순을 입체적으로 조명한 반면에 Pumping Iron 은 바디빌딩에 대한 일반의 선입견을 없애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신화가 된 아놀드의 심층적 취재보다는 그의 아름다운 근육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그 후 그들의 행보다. 아놀드는 ‘코난’과 같은 몇 개의 바보 같은 영화에 출연한 이후 액션 영화의 단골주인공에서 마침내 캘리포니아 주지사라는 거물이 되었다. 루는 헐크로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었으나 이후의 작품출연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Hearts And Minds

영화는 태생부터 꿈의 공장인 동시에 일종의 프로파간다였다. 아무리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주장하여도 그것은 그 주장 자체가 또 하나의 프로파간다가 되고 마는 순환 고리에 걸려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레닌을 비롯한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영화를 신생 경제/정치체제의 선전매체로 적극 활용하였다. 나찌나 자본주의자들 역시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특히 2차 대전이나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사안에 대한 국가이데올로기의 선전은 때로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집단최면극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라는 매체는 칼이다. 화려한 칼춤으로 대중을 현혹시키기도 하고 서투른 칼부림으로 대중을 협박하기도 한다. 칼을 쥐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또는 요리사든 살인자든 솜씨 좋게 만들어진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실력이 차이가 나게 된다. 이 작품은 분명히 좋은 칼을 가진 요리사에 속하는 작품이다. 미국 전체가 광기에 휩싸여 명분 없는 베트남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1970년대 감독과 시나리오를 담당한 Peter Davis 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사이공 거리에서부터 백악관의 참전군인 파티, 심지어 군인들과 베트남 여인들의 매매춘 장면에 이르기까지 베트남 전쟁으로부터 파생되는 갖가지 풍경들을 소상히 담아낸다. 미시적인 개인사에서부터 거시적인 국가정책에 이르기까지 베트남전을 둘러싼 서로의 입장들, 모순된 이데올로기, 뒤늦은 후회의 모습 등을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적절하게 편집된 미식축구 장면과 미당국의 선전필름 들은 전쟁의 발발원인과 전개과정을 잘 설명해주는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공산주의의 바다로 둘러싸일 것이라고 주장하던 미행정부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탄생한 미국이 왜 우리의 독립을 저지하느냐고 항변하는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펼쳐지는 각종 군상들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들이 30여년이 흐른 지금 이라크전을 둘러싸고 재탕되고 있다는 사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Rock School Vs School Of Rock

비슷한 제목의 이 두 영화는 전자가 실화에 기반을 둔 다큐멘터리라면 후자는 한바탕 웃자고 만든 코미디라는 사실을 빼놓고는 참 닮아 있다. 둘 다 십대 청소년들에게 락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또는 가짜 선생)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Rock School 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중심인물은 필라델피아에서 9살부터 17살까지의 아이들에게 락음악을 가르치는 Paul Green School of Rock Music 의 설립자 Paul Green 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인 학습법을 무시한 그의 무정부주의적인, 또는 펑크적인 가르침은 거침이 없고 격식도 없다. F**K 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이 거침없는 사내는 아이들을 쓰다듬고, 소리 지르고, 껴안아주는 부모이자 선생이자 친구의 역할을 자청한다. 마침내 실력을 갖추게 된 아이들은 Frank Zappa 의 팬들이 모여 꾸미는 Zappanale 에 출연하기 위해 독일로 향하고 공연을 성공리에 마친다. 음악을 통해 아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찾아준 한 사나이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한편 School Of Rock에서 스승을 자처한 사나이는 좀 더 비열한 목적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스테이지에서 오버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타리스트 Dewey Finn(Jack Black)이 자신이 만든 밴드에서 쫓겨나고 친구의 이름을 빌어 대리교사로 출근한 곳은 그 지역 제일의 명문 초등학교. 학생들의 연주 실력을 몰래 훔쳐본 듀이는 아이들을 끌어 모아 밴드 콘테스트에 나가서 상금을 착복할 꿈을 꾸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학교의 비밀 프로젝트라고 속인 채 말이다. 결국 그의 이중생활은 폭로되지만 아이들은 콘테스트에 나가기 위해 학교를 탈출하게 된다. 결말은 뻔하지만 여기서 말하지는 않겠다. 스포일러 천국이 되기는 싫으니까. 여하튼 잭블랙의 능청스러운 코믹연기와 실제 밴드 생활을 통해 다듬어진 탄탄한 음악 실력이 잘 조화을 이루어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는 수작 코미디이다. 두 영화 모두 락음악을 줄기에 놓고 진행되는 영화라 프랭크자파, 모던러버스 등 평소 잘 찾아듣지 않던 음악들이 선보여 청각적으로반갑고즐겁다.

Frontline : Private Warriors

프론트라인의 또 하나의 수작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군대의 민영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즉 공공서비스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있는 군대가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 민간의 효율과 창의라는 이름하에 어떻게 민영화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이들은 누구인가를 고발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부시 행정부는 말 그대로 자본가의 정부라 할 수 있다. 행정부 수반 면면이 미국의 거대기업의 임원이나 사장을 지낸 인물들이며 그들의 중심축에는 핼리버튼의 CEO를 지낸 부통령 딕체니가 있다. 전투기능을 제외한 군이 행하는 업무를 민간에게 넘기는 방침이 확정되고 나서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각국 – 특히 미국의 – 군사기업의 거대시장이 되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최대의 수혜자는 딕체니의 본거지 핼리버튼이다. 이 기업은 모회사 및 자회사 등을 통하여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주하여 사상최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한 이들을 둘러싼 부정과 부패의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어쨌든 군사기업으로서는 이라크 전의 단기간의 해결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이라크가 진흙탕이 될수록 그들의 이익은 증대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이들 군사기업에 의해 고용되어 유사전투기능을 수행하다 억울하게 숨져간 미국인들을 조명하여 전쟁의 참상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이들이 어떻게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하고 있는가를 뜻있는 이들의 증언을 통해 고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전 세계의 군사기업의 실태와 부작용에 대해서 알게끔 했고 이에 영향 받은 국내 공중파 방송들도 앞 다투어 비슷한 포맷으로 군민영화 실태를 고발하였다. 2005년 방영.

사족으로…

군사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그들을 지원한 정치가는 뒷돈을 챙길 텐데 정작 나머지 행정부 자체는 어떤 이익이 있을까? 정답은 미군의 사망자 숫자를 조작하여 국내 반전 여론을 무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군사기업의 고용인들의 죽음은 산업재해 일뿐 군인으로서의 영예로운(?)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