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ild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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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Records., Fair use, Link

며칠 전인 9월 16일은 토킹헤즈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True Stories가 발매된 지 40주년 되는 날이었다. 이날을 맞이해 토킹헤즈 공식 사이트에서 뉴스레터를 보내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링크를 공유하는가 하면 앨범의 수록곡 Wild Wild Life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재밌는 사실을 공유했다.

명곡 ‘Wild Wild Life’ 뮤직비디오에서 밴드 멤버들은 자신들의 의상을 직접 페르소나를 연기했습니다.
✓ 데이빗 번: 영화 속 정장과 카우보이모자를 쓴 해설자 역을 맡았으며, 텍사스 지역 술집 손님으로 변장하기도 합니다.
✓ 제리 해리슨: Billy Idol, Prince, Kid Creole, 그리고 이소룡 스타일의 무술가로 변신합니다.
✓ 티나 웨이모스: 프린스의 제자 Apollonia(해리슨과 함께)와 Madonna로 변신합니다.
✓ 크리스 프란츠: Ozzy Osbourne 스타일의 헤비메탈 가수, Hank Williams, 그리고 열렬한 스포츠 팬으로 변신합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엊저녁에 넷플릭스에서 감상하다가 말다가 했던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다.  바로 바오 능옌(Bao Nguyen)이라는 감독의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원제 : The Greatest Night in Pop)』이라는 제목의 2024년 다큐멘터리다. 대체 어떤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일까? 팝 평론가나 팝 애호가에 따라 다양한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다큐멘터리가 가리키고 있는 밤은 1985년 1월 28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날 밤 어떤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밤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라는 것일까? 세상에 수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일단 팝 역사에서 바라보자면 그날은 팝 음악 산업계의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제12회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erican Music Awards)』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슈라인 오디토리엄(Shrine Auditorium)이라는 곳에서 열린 날이란 것이 첫 번째 단서다. 매우 유력한 단서다.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시상식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M 스튜디오에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We Are The World라는 곡은 80년대 팝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곡이다. 이 곡은 이미 1년 전에 붐타운래츠의 프론트맨 밥 겔도프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인민의 굶주림 등 비참한 삶을 보도한 BBC 프로그램에서 감화받아 팝 뮤지션을 모아 녹음한 Do They Know It’s Christmas?에1 영감받은 해리 벨라폰테(Harry Belafonte)가 팝계의 거물 매니 켄 크라켄(Ken Kraken)에게 제안한 프로젝트에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영국에서의 기획을 보고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 크라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초기에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레코드사의 기획자들이 달라붙어 뮤지션들을 어렵게 섭외하는 등,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당시 팝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당시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훗날의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었다.4

이 기획에 대한 사견을 말하자면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5

그럼에도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으로 – 조금 더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 한계를 비춰보면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의미는 절대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한 2023년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당수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그 뒤 연예계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위대한 밤”의 당사자 해리 벨라폰테,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 설리번의 “의식적인” 도움으로 애드의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 관련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 업계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6 그중 가장 적극적인 선각자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그의 도움을 통해 연예계에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이제 유색인종인 본인들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1.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
  2. 쉴라 이는 아메리칸뮤직어워즈에서 생애 최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
  3.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
  4.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
  5.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행된 중 가장 급진적인 프로젝트는 인종차별 정권에 저항하는 남아공의 진보 세력과 연대한다는 의미를 지닌 Artists United Against Apartheid의 Suncity였다 ↩
  6. 예를 들면 방탄소년단이 지미 팰런 등과 같은 미국 주류 토크쇼의 백인 진행자의 도움 없이 미국 주류 음악에 편입할 수 있었을까? ↩

얼터너티브 80년대를 위한 20개의 필청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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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Man Alive!, kcarpenter_, 9999x – {{Cc-by-2.0}} by Man Alive!{{Cc-by-2.0}} by Man Alive!{{Cc-by-2.0}} by Man Alive!{{Cc-by-2.0}} by kcarpenter_{{Cc-by-2.0}} by 9999x, CC BY 2.0, 링크

That Eric Alper라는 사이트에서1 선정한 ‘얼터너티브 80년대를 위한 20개의 필청 음반’이다. 자세한 설명은 해당 사이트에서 보시면 될 것 같고, 이 사이트에 앨범 리스트만 옮겨왔다. 그런데 20개 앨범이라는데 세어보니 21개다.

  1. Cocteau Twins – ‘Heaven or Las Vegas’ (1990)
  2. Depeche Mode – ‘Music for the Masses’ (1987)
  3. Dinosaur Jr. – ‘You’re Living All Over Me’ (1987)
  4. Hüsker Dü – ‘Zen Arcade’ (1984)
  5. Jane’s Addiction – ‘Nothing’s Shocking’ (1988)
  6. Meat Puppets – ‘Meat Puppets II’ (1984)
  7. Pet Shop Boys – ‘Please’ (1986)
  8. Pixies – ‘Doolittle’ (1989)
  9. Prince – ‘Sign o’ the Times’ (1987)
  10. R.E.M. – ‘Life’s Rich Pageant’ (1986)
  11. Sugarcubes – ‘Life’s Too Good’ (1988)
  12. Sonic Youth – ‘Daydream Nation’ (1988)
  13. Talk Talk – ‘The Colour of Spring’ (1986)
  14. Tears for Fears – ‘Songs from the Big Chair’ (1985)
  15. The Cult – ‘Love’ (1985)
  16. The Cure – ‘The Head on the Door’ (1985)
  17. The Replacements – ‘Let It Be’ (1984)
  18. The Replacements – ‘Tim’ (1985)
  19. The Smiths – ‘The Queen Is Dead’ (1986)
  20. The Stone Roses – ‘The Stone Roses’ (1989)
  21. U2 – ‘The Joshua Tree’ (1987)
  1. Eric Alper라는 음악 저널리스트가 만든 사이트 같다 ↩

Hurry Up Tomorrow

The Weeknd's sweaty face is on the right, tilted down and left, while screaming with eyes closed. The words "Hurry Up Tomorrow" are placed at the bottom-left of the cover, with the letters in "Tomorrow" being progressively blurred at the end. The album's tracklist, consisting of 22 tracks, sits vertically to the left of the cover.
By RIFF Magazine, Fair use, Link

The Weeknd의 Hurry Up Tomorrow1를 듣고 있다. 늘 그렇듯이 매끈하게 잘 빠진 신스웨이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태 몰랐는데 이번 앨범은 그의 전작 After Hours 그리고 Dawn FM과 느슨하게 이어지는 트릴로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앨범의 길이가 길다. 86분 14초다. 어제 소개한 Ramones의 앨범 길이가 29분 4초이니 2.93배 길다. 본명이 Abel Makkonen Tesfaye인 그는 The Weeknd라는 무대명도 이번 앨범을 끝으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한다. 그런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 앨범이 이렇게 길어진 것이 아닌가싶다.

그래서 그런지 비평가들의 평도 대체로 호의적이지만, 평점을 깎은 비평가들의 불만의 1번은 ‘앨범이 너무 길다’는 점이다.2 비평가조차도 이제는 이 정도의 시간을 한 앨범의 감상에 쏟을 만큼의 인내력은 없는가보다.(“대서사시적”이라고 좋아하는 평자도 있다고 한다) 혹평 중에는 ‘지나치게 자기 연민이 심하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3 그래서 The Weeknd라는 페르소나를 끝내는 것도 마케팅 전략일 것이라고 한다. 두고 볼일이지만, 내 생각에는 팬들이 편하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프린스도 아주 요상한 기호로 자기 무대명을 바꿨지만 결국 이름은 대중이 프린스로 택했으니 말이다.

여하튼 80년대 신스팝의 키드 위켄드인지라 이번 앨범에도 예의 80년대 팝의 짙은 그림자가 앨범 곳곳에 녹아있다. 일단 Big Sleep(험프리 보가트의 동명의 영화가 생각이 난다.) 등의 트랙에서 대표적인 70~80 댄스팝의 아버지 조르지오모르더(Giorgio Moroder)를 초빙하여 함께 음악을 만들었다. 비평가들은 여러 곡에서 마이클잭슨과 프린스4 의 여운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다. 누가 뭐래도 80년대 팝과 신스웨이브의 적자(嫡子)인 셈이다. 아무튼 몰랐는데 삼부작이라고 하니 한번 각 잡고 After Hours에서부터 이 앨범까지를 연속으로 들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쭉 다 들어봤는데 첫 트랙 Wake Me Up, São Paulo, Niagara Falls 등이 맘에 든다.

  1. 앨범 커버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던 모양인데 본인이 스스로 트위터에서 재밌는 셀프디스 드립을 쳤다. ↩
  2. 아예 헤드라인이 Hurry Up Tomorrow Is The Weeknd’s Very, Very Long Goodbye 인 비평도 있다 ↩
  3. Cry For Me라는 곡에서는 “in this penthouse prison, I’m alone”라는 가사랄지 Open Hearts라는 곡에서는 All the silver and gold only made my skin cold라는 가사도 있다. ↩
  4. 위켄드 본인 스스로가 Prince의 Purple Rain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있다고도 밝혔다고 하는데, 특히 올해 5월 동명의 본인이 출연하는 공포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일단 프린스가 퍼플레인 앨범으로 본인이 출연하는 동명의 영화를 만든 것과 비슷한 흐름이다. ↩

Controversy

Prince looking towards the viewer, with front pages of "The Controversy Daily" newspaper behind him, mentioning various headlines.
By Prince / Warner Bros. Records – https://albumartexchange.com/coverart/gallery/pr/princealiasgroup3_controversy_8ug9.jpg, Fair use, Link

Controversy는 미국의 뮤지션 프린스가 1981년 10월 14일 워너브로스 레코드사를 통해 내놓은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한 트랙을 제외하고는 모든 곡을 프린스 본인이 만들고 프로듀스했다. 또한 녹음할 때 대부분의 악기를 직접 연주했다. 앨범은 빌보드 R&B 앨범 차트에 3위까지 올랐고 미국음반산업협회는 플래티넘을 인증했다. 이 앨범은 커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린스가 처음으로 보라색을 그를 상징하는 색깔로 내세운 앨범이기도 하다.

앨범 제목이기도 한 첫 번째 트랙 Controversy는 곡의 시작에서부터 앨범의 주제를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I just can’t believe all the things people say
Controversy
Am I black or white?
Am I straight or gay?

또한 곡 후반에는 운율을 가지고 장난치는 이런 재치 있는 가사도 등장한다.

People call me rude
I wish we all were nude

세 번째 트랙 Do Me, Baby는 팔세토 창법에 가까운 보컬로 부르는 전형적인 슬로우템포의 사랑 노래다. 노골적으로 가사와 창법 –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계속 나오는~ – 에서 성적(性的)인 관계를 갈구하는 노래다.

네 번째 트랙 Private Joy는 “나의 장난감(my toy)”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곡인데, 우리는 그 장난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섯 번째 트랙 Ronnie, Talk to Russia는 프린스의 곡중에서는 특이하게도 현실 정치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당시 핵전쟁의 위기가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에게 소비에트와 전쟁이 아닌 대화를 하라고 조언하는 내용이다. 사실 당시는 냉전에 대한 위기가 여느 때보다 많이 고조되어 있는 시기였기에 많은 뮤지션들이 이에 관한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곳은 여섯 번째 트랙 Let’s Work다. 소위 너풀너풀 거리면서도 연한 보라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가 연주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 프린스식 펑키(funky)함이 잘 표현된 댄스트랙인데, 마이애미바이스에서 파티의 한 장면에 연주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 Jack U Off는 데이트하는 여성에게 자위기구가 질렸다면 대신 자위행위를 해줄 수도 있다는, 끝까지 선명하게 섹스에 관한 관심을 잊지 않고 있는 라카빌리 스타일의 댄스곡이다. 이 부분이 재밌는 가사다.

If you really, really want to be a star
We gotta do it in your momma’s car

이 앨범을 내놓은 다음해에 프린스는 1999를 내놓는데 보다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로 인해 그는 단순히 R&B 차트에서 노는 섹스중독자가 아닌 전국구의 슈퍼스타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Sign o’ the Times

Sign o’ the Times는 Prince의 아홉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1987년 3월 31일 페이즐리파크 레코드사와 워너브라더스를 통해 출시된 이 앨범은 Prince가 The Revolution과 결별한 이후의 첫 ‘솔로’ 앨범이랄 수 있다. 이 앨범은 쏘울, 펑크(funk), 싸이키델릭팝, 락, 일렉트로닉, 째즈 등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가 한데 녹아 들어간 Prince의 역작이다.

가사 역시 다양한 내용인데, 가난한 이들이 죽어가는 와중에 우주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쓰는 부조리한 세상에 관한 – 왠지 Prince답지 않은(?) 사회비판적인 내용? – 타이틀트랙에서부터, 호텔 바에서 일하는 금발여인에게 욕정을 느끼는 – Prince 다운? – The Ballad of Dorothy Parker,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여인을 사랑하는 순정남을 다룬 – 왠지 Bruce Springsteen의 노래 같은? – I Could Never Take the Place of Your Man 등이 인상적이다.

Prince의 다른 1980년대 초기 작품처럼 Linn LM-1 드럼 머신을 자주 쓰고 있다. 더불어 Fairlight CMI과 첨단 디지털 샘플러를 이용하여 미니멀리즘적인 연주를 지향하였다. Prince의 보컬 녹음은 까다롭기로 유명했는데 그는 보컬을 녹음하기 위해 통상의 아티스트들이 사용하는 방음이 되어 있는 레코딩 부쓰가 아닌 콘트롤 룸에서 혼자 녹음을 진행했다.(가끔은 엔지니어와 함께 녹음하기도 했다 한다)

이 더블 앨범은 The Revolution 시절의 작업을 포함한 1986년부터의 세 개의 프로젝트들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즉, Dream Factory라 알려진 The Revolution의 곡들과 Camille이라 이름 붙여진 솔로 프로젝트의 작업들, 그리고 다른 몇몇 작업들이 한 앨범에 담기게 된 것이다. 결과물은 총 22개의 트랙이 담긴 Crystal Ball이란 이름의 3개의 LP였다. 워너브라더스는 3장짜리 LP의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앨범은 더블 앨범으로 줄었다.

Side 1

1.”Sign o’ the Times” – 4:57
2.”Play in the Sunshine” – 5:05
3.”Housequake” – 4:42
4.”The Ballad of Dorothy Parker” – 4:01

Side 2

5.”It” – 5:09
6.”Starfish and Coffee” (Prince, Susannah Melvoin) – 2:50
7.”Slow Love” (Prince, Carole Davis) – 4:22
8.”Hot Thing” – 5:39
9.”Forever in My Life” – 3:30

Side 3

10.”U Got the Look” (featuring Sheena Easton) – 3:47
11.”If I Was Your Girlfriend” – 5:01
12.”Strange Relationship” – 4:01
13.”I Could Never Take the Place of Your Man” – 6:29

Side 4

14.”The Cross” – 4:48
15.”It’s Gonna Be a Beautiful Night” (Prince, Doctor Fink, Eric Leeds) – 9:01
16.”Adore” – 6:30

Nothing Compares 2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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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compares2u”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90년 4월 21일 Sinead O’Connor의 “Nothing Compares 2 U”가 빌보드 핫100차트 정상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Prince가 만든 이 곡은 빡빡 깎은 머리 스타일로 유명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이 가수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그래미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데뷔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의 성공 이후 Sinead는 1989년 2집 작업에 착수한다. 당시 매니저였던 Fachtna O’Ceallaigh는 Sinead에게 Prince가 만든 발라드 한 곡을 추천했다. 이 곡은 당초에는 The Family라는 Prince의 사이드프로젝트 밴드가 그들의 1985년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을 위해 녹음했지만 싱글로는 발매되지 않았고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곡이었다. 하지만 1989년 발매된 2집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의 수록곡으로 녹음되었고 1990년 2월 11일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된 “Nothing Compares 2 U”는 그 해 3월 17일 핫100 차트에 63위로 데뷔한 후 불과 5주 만에 정상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O’Connor의 본국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수많은 국가의 싱글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John Maybury가 감독한 뮤직비디오에서 O’Connor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하는데 당초 이 장면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고 가수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 것이라고 한다.

뮤직비디오 보기

Pop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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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 PopLife”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Paisley Park..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85년 7월 10일 Prince & The Revolution의 “Pop Life”가 발매되었다. Prince가 쓰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Purple Rain”이후 내놓은 스튜디오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이다. 당초 이 곡은 “Purple Rain”이 완성되기도 전인 1984년 2월 19일 할리우드에 있는 선셋사운드에서 녹음됐다. Sheila E.가 연주한 드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악기는 Prince가 직접 연주했다.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는 성난 군중이 “저 엉터리를 밖으로 내던져(throw the bum out)”라는 외침의 샘플이 담겨 있는데, 이 장면은 실제로 1981년 Prince가 Rolling Stones의 오프닝으로 무대에 섰을 때 관중들이 질렀던 함성이다. 미국에서 발매된 싱글의 B면에는 LP에 담기지 않은 “Hello”가 담겨져 있는데, 이 곡은 Prince가 “We Are The World”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난에 대한 반응으로 쓴 곡이다.1 “Pop Life”는 1985년 9월 21일 빌보드 핫100 차트 7위까지 올랐고 R&B 싱글 차트에는 같은 해 9월 14일 8위까지 올랐다. Elvis Costello는 한때 이 곡을 가사만 바꿔서 커버하려 했었지만 Prince가 거절했다. Costello는 후에 이 곡의 코드를 빌려와 “The Bridge I Burned”란 곡을 녹음했다.

뮤직비디오

  1. “We’re against hungry children. There’s just as much hunger here at home.” 이란 가사에서 의도는 분명히 읽힌다. ↩

Purpl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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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purplerain”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amazon.com.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6월 25일 Prince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Purple Rain”이 발매됐다. Prince가 직접 프로듀스하고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퍼스트애비뉴와 웨어하우스, 뉴욕에 있는 레코드플랜트, 그리고 헐리우드의 선셋사운드 등에서 녹음한 이 앨범은 Prince의 영화 데뷔작 Purple Rain의 사운드트랙의 성격으로 제작된 앨범이다. 또한 Prince & The Revolution이란 이름을 내걸고 낸 첫 앨범이다. 노래의 녹음은 미네아폴리스에 있는 나이트클럽 퍼스트애비뉴에서 라이브 쇼를 가진 1983년 8월 3일부터 시작됐다. 이 공연은 밴드의 기타리스트 Wendy Melvoin 의 데뷔 무대였다. 이 공연에서 “I Would Die 4 U” (#8 Pop, #11 R&B), “Baby I’m A Star”, 그리고 “Purple Rain”이 녹음됐다. 이 녹음은 약간의 사후 재녹음만을 거친 채 최종 앨범에 수록되었다. 영화와 앨범의 서두를 여는 “Let’s Go Crazy” (#1 Pop and R&B)는 Prince의 연습실인 웨어하우스(The Warehouse)에서 녹음됐다. “Take Me With U” (#25 Pop, #40 R&B)는 영화의 여주인공이자 Apollonia 6의 리드싱어 Apollonia Kotero와의 듀엣으로 부른 곡으로 당초 Apollonia 6의 앨범에 수록할 예정이었지만 Prince가 마음을 바꿔 “Purple Rain”에 수록했다. 영화 개봉 4주전에 발매된 앨범은 평론과 흥행 양면에서 성공적이었다. 백밴드 The Revolution과 함께 한 이 앨범은 이전의 원맨밴드의 형식보다 질적으로 더욱 풍부한 음악을 선보였다. 다중적인 레이어로 두터워진 기타 사운드, 얼음 같이 차가운 신디싸이저 이펙트, 드럼머쉰 등 현대적인 악기 응용이 R&B 사운드에 덧입혀졌다. 이 앨범은 빌보드 탑200 차트에서 24주 연속하여 1위에 머물렀고 R&B 앨범 차트에는 19주 연속으로 1위에 머물렀다. 그래미상 시상식에서는 ‘듀오 또는 그룹에 의한 베스트 락보컬 퍼포먼스’를 포함하여 2개의 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했다. “Purple Rain”은 2011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12년 미의회 도서관에 “현대의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중요함”의 명목으로 국립 레코딩 등기소에 등재되었다.

The Glamorou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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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ila Glam”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캘리포니아 태생의 싱어이자 퍼커션 연주자인 한 여성은 어느 날 Prince로부터 앨범을 취입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는다. 그녀의 이름은 Sheila Escovedo로 후에 Sheila E.란 별칭으로 불리게 된다. Prince와 그녀의 첫 합작품은 Erotic City였고 이 곡은 Prince의 Let’s Go Crazy 싱글 B면에 사용됐다. Prince는 이후 The Glamorous Life를 Sheila E.에게 줬다. 당초 이 곡은 3인조 걸그룹 Apollonia 6에게 주려고 만든 곡인데 리드싱어 Apollonia Kotero가 단지 Purple Rain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서 계약을 맺었을 뿐 그룹에 남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곡을 Sheila E.에게 준 것이다. 이 곡은 화려한 삶을 추구해도 사랑이 없으면 별 것 아니라는, Prince 특유의 사랑 철학이 담긴 센슈얼한 댄쓰곡이다. 1984년 6월 4일 이 곡을 앨범 타이틀로 하는 Sheila E.의 데뷔앨범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팝 차트 7위까지 오른 타이틀곡을 비롯하여 34위에 오른 The Belle Of St. Mark가 인기를 얻었다. 앨범은 빌보드 R&B 앨범 차트 7위, 빌보드 탑200차트 28위까지 오른다. 이 곡의 라이브 공연은 Sheila E.의 신들린 듯한 퍼커션 솔로로 유명한데 어둠 속에서 형광스틱을 활용한 비주얼한 연출 등 박진감 넘치는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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