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게 만드는 노래 : OMD의 앤디 맥클러스키

McCluskey performing live with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 (OMD) in Cologne, Germany, 2018
By © Markus Felix | PushingPixels (contact me) – Own work, CC BY-SA 4.0, Link

해리 닐슨 – ‘Without You’

“이 노래는 제가 처음으로 샀던 싱글이기도 해요. 머라이어 캐리가 망쳐 놓은 그 노래 말고 말이죠. 그의 목소리에 울려 퍼지는 애절하고 애처로운 피아노 코드, 그리고 첫 소절 중간쯤에 옥타브가 올라가는 부분까지. 그리고 두 번째 후렴구가 나오면서 화음도 함께 어우러지죠.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애처롭고, 갈라지고, 눈물겨워서 정말 감동적이에요. 이 노래를 쓴 배드핑거는 돈이 없어서 저작권을 매니저에게 팔았는데, 닐슨이 커버해서 전 세계적으로 1위를 했을 때 그들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했어요.”[전체 기사 읽기]

배드핑거의 비극적인 그룹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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オフコース – さよなら

기억하기로 ‘사요나라(さよなら)’라는 노래는 처음 만난 것은 어린 시절 소위 “구루마 테이프”로 알려진 노점상에게서 구매한 불법 복사 카세트테이프에서였다. 당시 일본 대중가요는 국내에서 판매가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노래를 접하는 방법은 직접 일본에서 사 오지 않는 이상 이런 불법 복사 매체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이런 유의 카세트테이프에는 당시 유행하던 일본 대중가요가 담겨 있었는데 기억나는 인기 있던 곡은 ‘리바사이도호테루(リバーサイドホテル)‘, ‘긴기라기니(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 ‘블루라이트요코하마(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등이었다. 그리고 ‘사요나라’ 역시 구루마 테이프의 인기 레퍼토리중 하나였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 노래가 여성 가수가 부른 노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오다 카즈마사(小田 和正)라는 남성 가수가 부르는 오프코스(オフコース)라는 락밴드의 노래였다. 자못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그만큼 그의 목소리는 여성적인, 혹은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목소리였다. 즉, 이 노래는 1979년 12월 1일에 발매된 오프코스의 통산 17번째 싱글이었다. 오다와 그룹의 멤버인 스즈키 야스히로가 함께 만든 곡으로 스튜디오 앨범에는 수록된 적이 없고 베스트 앨범 SELECTION 1978-81에 수록되었다. 그리고 라이브 버전은 별도의 라이브 앨범에 수록되었다고 한다. 싱글은 오리콘 싱글 차트 2위, 1980년 연말 차트 9위에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1

곡의 내용은 12월에 발매된 것이니만큼 겨울이 다가오는 어느 날 헤어지는 연인의 사연을 노래하고 있다. 가사는 다소 평범하게 둘만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는데 “가까이 붙어 걸어갈 수 있는 추운 날을 너는 좋아했었지”와 같이 둘의 사랑과 계절을 연결하는 대목 등이 듣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사연을 공감케 만드는 것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오다의 보컬이다. 고이비토요(恋人よ)와 같이 늦가을을 배경으로 하는 노래는 이츠와 마유미(五輪真弓)와 같이 두텁고 애절한 보컬이 제격이듯이, 그 계절보다 한 보름쯤 후에 다가올 겨울에 헤어지는 연인의 노래는 오다 카즈마사와 같은 청량감 있는 보컬이 잘 어울린다.

  1. 당시 연말 차트 1위 곡은 Monta & Brothers “Dancing All Night” ↩

시얼샤 로넌이 등장하는 Psycho Killer 뮤직비디오

Talking Heads의 첫 라이브 공연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Psycho Killer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이 비디오는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의 감독이었던 마이크 밀스(Mike Mills)가 감독하고, ‘레이디버드’나 ‘작은 아씨들’과 같은 수작에 연이어 출연했던 배우 시얼샤 로넌(Saoirse Ronan)이 주연을 맡았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은 한 평범한 여성이 일상생활 속에서 무관심,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이 차례대로 밀려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마치 영화 ‘그라운드혹데이(Groundhog Day)’처럼 반복적이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일상을 절묘한 무대 세팅을 통해 재치 있게 묘사하고 있다.

a few days later

뮤비를 심심할 때마다 봤는데 자꾸 보다보니까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The Office라는 미드다. 직장인의 일상을 가짜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찍으면서 그 속에서 웃음 포인트를 찾았던 드라마. 다만, 이 드라마는 원래 영국의 괴짜 셀럽 리키저베이스가 창조한 영드 The Office가 원본이다. 그런데 각설하고 이 뮤비는 영드보다는 미드가 연상되는 질감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색감하며 주연배우가 드나드는 집도 전형적인 미국풍 – 내 기준에서는 – 이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이 뮤비에서의 주연은 미드 오피스에서 조연으로 등장하는 어느 누군가가 매일 출퇴근 할 때에 겪었을 법한 – 물론 거기에 조금 더(?) 아니 훨씬 더(?) 과장된 – 인간적 갈등이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직장에 출근하는 행위는 견고하게 조립된 톱니바퀴 가득한 기계장치에 우리 몸을 끼워 맞추는 행위다. 나태하고 리버럴한 인간의 품성에 걸맞은 행위가 아님은 분명하다.

이 비디오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의 소식

Philip Oakey & Giorgio Moro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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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 Records 1982, Fair use, Link

저는 록앤롤을 참을 수 없어요. 저는 팝을 좋아해서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를 좋아해요. 모로더는 독일에서 온갖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계를 만든 미친 교수를 만났고, 조르지오는 “이걸로 히트곡을 낼 수 있어!”라고 말했어요. 그는 그 직후 “I Feel Love”를 만들었어요. 저는 상업적인 음악을 좋아하고, 우리는 휴먼리그가 상업적이기를 바랐어요. 사람들이 음반 가게에 가서 “머리가 한쪽에 있는 그 녀석의 음반을 원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어요. 초콜릿 한 개를 사는 것만큼 쉬워야 했어요.<필립 오케이>

I can’t stand rock’n’roll. I like Giorgio Moroder because 1 like pop. Moroder met a mad professor in Germany who had built a machine that could make all kinds of sounds, and Giorgio said, “With this, I have hits!” He made “I Feel Love” soon after that. I like commercial music, and we certainly wanted the Human League to be commercial. The idea was that people could go into a record shop and Say, “I want the record by that bloke with the hair on one side.” It had to be as easy as buying a bar of chocolate. [Sweet Dreams: The Story of the New Romantics, Dylan Jones, 311p]

필립 오케이의 조르지오 모르더에 대한 애정은 1984년 영화 일렉트릭드림스의 사운드트랙에서 둘이 함께 작업한 주제곡을 통해 꽃을 피운다. 제목도 의미심장하게 Together in Electric Dreams라는 곡인데 컴퓨터가 사람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겪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영화의 스토리에 걸맞는 로맨틱한 멜로디의 신스팝 명곡이 되었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 3위에까지 오르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이후 1985년에 발매된 공동 앨범 Philip Oakey & Giorgio Moroder로 이들의 협업은 앨범으로까지 결실을 맺게 된다.

일요일에 감상한 멋진 곡

Nazia Hassan in an interview with Dhanak TV, c. 1990s
By DhanakTV USA – YouTube, CC BY 3.0, Link

HAZAN: Dreamer Devane (EMI)
Nazia와 Zoheb은 인도에서1 매우 유명하며, 이 노래는 무려 13개월 동안 1위를 차지했고,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도 디스코 음악을 혼자서 만들어냈습니다. 영국에서 발매된 이 노래는 Sal Solo가 다소 까다롭게 재녹음했고, 현재로서는 Hazan이 잠재적인 차트 경쟁자라기보다는 현상으로서 더 흥미로운 듯합니다.

Nazia and Zoheb are Very Famous Indeed in India where this song was Number One for a staggering 13 months and singlehandedly created a kind of Indian disco music which hadn’t existed before. For UK release the song has been rather fussily rerecorded by Sal Solo and, for the moment, Hazan seem to be more interesting as a phenomenon than as potential chart conte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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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키피디어를 보니 사실 이들은 파키스탄 뮤지션이다. 그렇지만 영국인에게 인도와 파키스탄의 구분은 무의미했겠지 ↩

Heart Of Glass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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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ie1977” by Private Stock Records – eBa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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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nt.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78년까지 Blondie는 컬트팬들에 둘러 쌓인 펑크밴드였을 뿐이다. 히트 앨범에 목마른 밴드의 레이블 Chrysalis는 Suzi Quatro와 Sweet과 같은 다운타운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녹음하여 성공한 창조적인 프로듀서 Michael Chapman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가 Blondie의 세 번째 앨범 “Parallel Lines”와 싱글 “Heart of Glass”였다. 1979년 초 발매된 이후 이 곡은 Blondie의 첫 빌보드 히트곡으로써 1979년 4월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이 곡은 신쓰팝과 일렉트로닉 댄쓰뮤직의 길을 닦았다.

Mike Chapman: 처음 Chris와 Debbie를 뉴욕에 있는 그래머시파크 호텔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앨범에 담을 새 노래들을 들려줬어요. 음악은 대단했죠. 그러나 난 그 노래를 진정한 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난 그들에게 다른 곡은 없는지 물었죠. 그들은 “음. 우리가 ‘그 디스코 곡’이라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래를 틀었는데 정말 근사했죠. 하지만 아직 100%에 다다르지는 않았어요.

Mr. Stein: 애초 그 노래의 Debbie의 두 번째 줄 가사는 “Soon turned out, he was a pain in the ass.”였어요. Mike는 이게 라디오 친화적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한 구절을 생각해냈죠. “heart of glass”. 다들 좋아했어요. Debbie는 작업을 해서 “Soon turned out, had a heart of glass.”로 고쳤죠. 그게 바로 우리가 타이틀로 쓴 것이고요.

Mr. Chapman: Debbie에게 음악 비즈니스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죠. 그녀는 “Donna Summer”를 좋아하고 특히 “I Feel Love”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전혀 예상 못했던 대답이었죠. 난 그녀와 Chris에게 말했어요. “이 노래를 Giorgio Moroder 느낌으로 가져가면 어떨까요?” Giorgio는 Donna의 명반들을 프로듀스 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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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Surv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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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ia Gaynor (1976)” by Rob Mieremet / Anefo – Derived from Nationaal Archief.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79년 3월 10일 Gloria Gaynor가 부른 “I Will Survive”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총 3주간 1위에 머물렀다. R&B 차트에는 5위까지 올랐다. Freddie Perren과 Dino Fekaris가 만든 이 곡은 뉴저지 출신의 이 가수의 경력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곡이 되었다. Gloria Gaynor의 이전 히트곡은 Jackson 5의 클래식 “Never Can Say Goodbye”의 커버 버전(#9 Pop, #1 Club Play)과 The Four Tops의 커버 버전 “Reach Out, I’ll Be There”였다. 디스코가 인기를 끌던 시대적 흐름을 잘 읽은 Gloria는 그녀의 다섯 번째 앨범 “Love Tracks”를 위해 모타운의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였던 Freddie Perren, 그리고 Dino Fekaris와 함께 일하기로 한다. 앨범을 위해 이들이 만든 곡 중 하나가 바로 “I Will Survive”였다. Gloria는 이 노래를 몹시 좋아해서 이 곡을 녹음하는 것에 즉시 동의했다. 실은 이 녹음은 힘든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Gloria는 앨범 작업 도중 어머니를 잃었고 등의 고통 때문에 척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보컬을 녹음할 때에 그녀는 등 교정기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당시 디스코의 프로듀싱 경향은 많은 편집을 거치곤 했다. 피치를 더 빠르게 올리는가 하면 오버더빙, 멀티보이스 등도 횡행했다. 하지만 이 곡은 백그라운드 싱어를 쓰지 않은 채 속도의 조절도 없이 Gloria의 보컬 하나만으로 곡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이 노래는 다른 디스코 곡에 비해서 더 비어있고 투명한 사운드를 창조해냈다. 이 곡은 처음에는 1978년 발표된 “Substitute”의 B면 곡으로 출시되었다. “I Will Survive”가 분명히 히트할 것이라는 Gloria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그의 레이블인 폴라이도 레코드사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이 곡의 레코드를 뉴욕의 유명한 디코스인 스튜디오54의 DJ Richie Kaczor에게 직접 가져갔다. Richie가 이 레코드를 틀기 시작하자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상황이 이쯤 되자 폴라이도는 그 곡을 A면으로 하는 싱글을 발매했다. 1978년 12월 16일 핫100 차트에 87위에 등장한 이 곡은 12주 후 정상에 등극한다. 급기야 역경에 굴하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가겠다는 긍정적인 메시지 덕분에 이 곡은 여성이나 동성애자 그룹의 찬가가 되는 등 디스코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가 되었다. Gloria는 이 곡으로 1980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디스코 레코딩’ 부문을 수상하였다. 롤링스톤은 이 곡은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492위에 등재했다.

Music Video

Don’t Bring Me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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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bring me down ”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Jet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1979년 7월 20일 Electric Light Orchestra의 “Don’t Bring Me Down”이 발매됐다. 밴드의 리드 싱어이자 기타를 맡은 Jeff Lynne이 쓴 이 곡은 영국 출신의 이 락밴드의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Jeff Lynne은 앨범에서 시끄러운 곡이 너무 없어서 마지막 순간에 이 곡을 썼다고 증언했다. 이 곡의 드럼 트랙은 앨범의 다른 트랙 “On The Run”에서의 드럼 트랙을 일부 발췌하여 조금 더 느리게 반복한 트랙이다. 이 싱글의 홍보를 위한 광고에서, ELO는 이 노래를 지구 위를 맴돌다가 바로 며칠 전인 7월 11일 후주 서부에 추락하여 박살난 NASA의 스페이스 스테이션 Skylab에게 헌정한다. 밴드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 “Discovery”의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1979년 9월 8일 빌보드 핫100 차트 4위까지 올랐고 영국의 싱글 차트에는 3위까지 올랐다. 이 성적은 밴드가 발표한 싱글 중에서 미국 차트에서는 최고의 성적, 영국 차트에서는 두 번째의 성적을 기록한다.

뮤직비디오

Cars

NumanCars.JPG
“NumanCars”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beggars.co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79년 영국의 아티스트 Gary Numan은 그의 앨범 The Pleasure Principle에서 “Cars”를 싱글로 내놓았다. 이 곡은 영국과 캐나다의 싱글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했고 미국 싱글 차트에서는 9위까지 올랐다.1 이로써 이 곡은 시장에서나 뮤지션들 모두에게 신디싸이저를 이용한 뉴웨이브 음악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 계기가 된 곡이 되었다.

이 곡은 Numan이 싱글 네 개와 영국 차트에서 인기를 얻은 “Are ‘Friends’ Electric?”을 포함한 LP 두 개를 발표한 이전 밴드 Tubeway Army라는 이름을 버리고 처음 내놓은 곡이다. 음악적으로 이 곡은 이전의 곡들보다 더 밝아지고 보다 팝친화적이었다. Numan은 후에 이 곡을 만들 때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그 때가 아마도 ‘이게 히트 싱글이 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만든 첫 노래에요.”라고 말했다.

“Cars”의 제작에는 베이스와 드럼과 같은 리듬 섹션은 전통적인 악기를 사용됐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미니무그(Minimoog)와 폴리무그(Polymoog) 키보드 등의 아날로그 신디싸이저를 이용됐다. 간주 부분에는 탬보린이 쓰이기도 했다. Numan의 보컬은 대부분 무미건조하게 마치 로봇이 노래하는 듯한 톤으로 녹음되었다. Numan에 의하면 가사는 그가 직접 거리에서 겪었던 한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한번은 런던에서 트래픽에 갇혀있었어요. 그런데 앞차의 사람들과 문제가 생겼죠. 그들은 나를 차에서 끌어내 때리려 했어요. 난 문을 잠그고 마침내는 인도 위로 차를 몰아 그들에게서 도망쳤죠. 그런 경우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이는 현대에서 당신이 차안에서 얼마나 안전함을 느끼는 지를 설명하는 것이에요. 그 안에 있을 때 당신의 모든 멘탈이 달라집니다. 그건 당신만의 네 개의 바퀴가 달린 왕국과 같죠.”

뮤직비디오

  1. Numan이 비록 영국에서는 몇 개의 히트곡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이게 그의 유일한 탑40 곡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