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킹헤즈가 그들의 새 앨범을 파리에서 나와 함께 작업하자고 제안하였다. [중략] 그들은 우리 세대에서 너무나 중요한 밴드였고, 예술적 독창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 최고의 밴드 중 하나라는 희귀한 업적을 이루었다. 난 그들의 음악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그들의 앨범에 기여해달라고 요청받은 것에 대해 기뻤고 흥분했다. [중략] 앨범을 프로듀싱한 스티브 릴리화이트(Steve Lillywhite)가 작업실에 있었는데, 내가 알던 이여서 반가웠다. [중략] 나는 간헐적인 퍼커션과 드럼 그루브를 한동안 들었다. 그리고 기타 코드 두어 개가 흐른 후 티나 웨이머스의 베이스라인이 흘렀다. [중략] 나는 내 손가락에서 노니는 트랙에로의 접근을 개념화하기 위해 뇌를 비워냈다. [중략]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중략] 난 겁에 질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으로 스튜디오를 빠져나와 머리를 식혔다. 파리 거리를 걸었다. [중략] 난 너무 아끼고 있었다. 그냥 내 것을 던져 넣으면 된다. [중략]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깁슨-335 12현 일렉트릭을 꼽고 스티브에게 테잎을 다시 틀어달라고 했다. 인트로가 시작되고 생각 없이 내 머리에 떠오르는 처음 것을 연주했다. 스티브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중략] 데이빗이 그의 영리한 가사와 보컬을 더했고 그 곡은 (Nothing But) Flowers가 되었다. [Set The Boy Free, 273-275pp]
창작의 어려운 과정이 짧게 서술되어 있는 재밌는 일화라 소개한다. Talking Heads와 The Smiths라는 희소한 조합을 만들어낸 계기는 자니마가 밴드를 떠나고 난 이후의 토킹헤즈가 그를 세션 연주자로 초대했던 덕분이었다. 토킹헤즈의 드러머 크리스 프란츠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를 초대하자는 생각은 자니마의 친구였던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자니는 연주를 쉽고 아름답게 해냈고 함께 와인을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1 한편, 자니마의 회고록에서 후술하는 부분을 읽어보면 자니마는 이런 활동 때문에 오히려 The Smiths 해체의 주범으로 욕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어쨌든 두 밴드 모두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조합의 곡이 탄생해주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물론 The Smiths가 존속했더라면 어떠한 앨범이 더 나왔을지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Sting만큼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에서 모두 엄청난 음악적/상업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도 그리 많지 않다. 레게에 기초한 펑크락 밴드 The Police로 다섯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면서 내놓은 음반 하나하나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호응을 얻었고 1983년 Synchronicity를 내놓으며 그룹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 그는 슬슬 솔로 활동을 예열하더니 1985년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를 내놓으며 밴드 리더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부드럽게 넘어가 버렸다.
그뒤 2025년 현재까지 열다섯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는 등 – 분량이 밴드 활동 시기의 세배! –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다작 활동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솔로곡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단연 그의 솔로 2집 Nothing Like the Sun의 세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뉴올리언스 출신의 째즈 뮤지션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의 쓸쓸한 소프라노색서폰 연주가 곡 전면에 깔리는 ‘뉴욕에서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 을 꼽을 것이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되는 – BTS가 주체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미 스팅이 강조하고 있었다 – 이 노래가 만들어진 스토리는 곡의 매력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일전에 트위터에서 누군가 같은 영어권에서 살면서 “I’m an alien, I’m a legal alien”이라고 푸념하는 스팅이 오만하다는 투의 트윗을 해서 다른 이들의 어그로를 끈 적이 있는데 – 지금은 그 트윗을 지웠는지 안보임 – 트위터에서 몇몇이 지적했다시피 이 노래는 스팅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 부분적으로는 자기 이야기기도 하지만 – 그가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영국인 이야기다.
1978년 당시 만담가로 활동하던 그는 뉴욕으로 공연을 위해 떠났다가 아예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뉴욕에서도 저예산으로 제작된 햄릿(1976년)의 배우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5년 The Bride라는 이름의 고딕로맨스 영화에 잴허스(Zalhus) 박사 역으로 출연하는데2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찰스 프랑켄슈타인 남작 역을 맡은 스팅이었다. 쿠엔틴의 재치있는 입담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스팅은 1987년 쿠엔틴에 관한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을 발표한다.
노래 가사를 보면 곡의 주인공은 뉴욕에 와서도 영국식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영국식 액센트도 그대로이고, 신사는 절대 뛰지 않고 걷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그의 정체성에 대한 뉘앙스만 약간 풍길 뿐이다. 쿠엔틴은 생전에도 게이 해방운동을 냉소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동성애 자체가 범죄인 영국에서 그가 일종의 생존의 수단으로 냉소주의를 택한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하기에 노래는 이방인(지역 혹은 성적정체성)으로서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한 독특한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Quentin’s a friend of mine and someone I admire greatly because I think he’s one of the most courageous people I’ve ever met. He has lived his life in an individual way in a society that is vicious and malevolent. But he is a hero in a feminine way. So that’s a song about the feminine qualities than can exist in man without being negative.” “쿠엔틴은 제 친구이고 제가 매우 존경하는 사람인데,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악하고 악의적인 사회에서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적인 방식으로 영웅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부정적이지 않고도 남성에게 존재할 수 있는 여성적인 특성에 대한 노래입니다.” ~ Timeout, 1987년 10월
스팅의 타임아웃과의 인터뷰 중 쿠엔틴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인터뷰에서 스팅은 “게이인 것이 신체적으로 위험한 시기에 그는 화려한(flamboyantly) 게이였고 가장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혼란과 위험성에 대한 극복 수단은 유머(혹은 냉소)였다. 일종의 생존하기 위한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스팅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구분짓지 않기 또한 중요한 태도인데, 이러한 자세가 필요함은 전에 소개한, (역시) 뉴욕에서의 한 게이바의 군무를 묘사한 조잭슨의 Real Men이란 곡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See the nice boys dancing in pairs
Golden earring, golden tan, and blow wave in their hair
Sure, they’re all straight, straight as a line3
All the gays are macho, can’t you see the leather shine?
멋진 남자들이 짝을 지어 춤추는 걸 보세요
금빛 귀걸이, 황금빛 태닝, 그리고 머리카락에 불어오는 웨이브
물론, 그들은 모두 스트레이트합니다. 일직선 춤라인처럼요
게이들은 모두 마초예요, 가죽이 빛나는 걸 못 보나요?
뮤직비디오는 완연한 째즈 풍의 곡에 맞게 뉴욕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흑백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4 지금 봐도 멋진 스타일의 스팅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주인공 쿠엔틴 크리스프가 등장하고, 브랜포드 등 연주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교차하지는 않는다. 다들 뉴욕을 배회하는 이방인들일 뿐이다.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브랜포드는 쓸쓸히 홀로 길을 걸어간다.5 이러한 흑백화면의 비디오가 80년대말 여러 인기 뮤지션들의 영상의 트렌드로 쓰였는데 언뜻 생각나는 것은 펫숍보이스와 마돈나다. 이 비디오도 모두 화려하다(flamboyant).
“누가 뭐라든 내 자신이 되라”…….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다.
그는 한 예술학교에서 누드모델로 일했고 급료는 교육부가 지불하여서 결국 자신도 일종의 공무원이라고 쿠엔틴이 비꼬는 투로 표현한 것에서 책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
이 영화에는 또한 Flashdance를 통해 1980년대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러나 이후의 인상적인 필르모그래피를 이어가지 못한 제니퍼 빌즈(Jennifer Beals)가 출연한다고 한다 ↩
조잭슨은 “그래 그들은 다 똑바르지(straight). 줄만큼이나.”에서는 straight의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다 ↩
“Talkin’ ‘Bout a Revolution“은 싱어송라이터 Tracy Chapman의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에서 두 번째 싱글로 발매된 곡이다. 빌보드 핫100 싱글 차트에는 75위에 머물러 전작 ”Fast Car“의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빌보드의 다른 4개의 차트에 올라가는 등의 다양한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곡이 되었다. 특히 모던락 차트와 R&B/힙합 차트에 동시에 오르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게다가 미국 밖에서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 탑40에 오르는 사랑을 받았다. 정치적 각성에 대한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이 노래는 또한 2011년 튀니지의 혁명 과정에서 라디오 방송국의 애청 레퍼토리가 되기도 했다. G, C, Em, D.의 심플한 기타 코드가 곡 내내 계속되며 ”가난한 이들이 그들의 것이었던 것을 찾기 위해 일어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반복하는 노래인지라 프로파간다 송으로 매우 적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Living Colour, Reel Big Fish와 같은 얼터너티브락 밴드들이 즐겨 리메이크하였다.
1988년 5월 28일 Wham!에서 독립한 George Michael이 부른 “One More Try”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3주간 머물렀다. 또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도 같은 날 1위에 올라 역시 3주간 머물렀고, R&B 싱글 차트에는 같은 해 6월 18일 1위에 올라 1주간 머물렀다. George Michael이 쓰고 직접 프로듀스한 이 곡은 뮤지션의 솔로 활동 중 네 번째 미국 차트 1위곡이 되었다. 1987년 10월 발매되었던 George의 첫 번째 솔로 앨범 Faith는 계속해서 히트곡을 쏟아내고 있었는데 One More Try도 그 중 하나다.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또 다시 새로운 관계를 갖기를 꺼리는 한 남자의 심정을 담은 이 노래는 1988년 4월 11일 앨범의 네 번째 싱글로 발매되었고 4월 16일 40위로 핫100 차트에 등장했다. 그리고 6주 후 정상을 차지한다. 이 노래의 성공 덕택에 Faith는 R&B 앨범 차트에서도 1988년 5월 21일 1위를 차지하여 6주간 머물렀다. 아프리칸 어메리칸이 아니면서 R&B의 앨범과 싱글 차트를 동시에 석권한 것은 사상 최초였다. 이후 2006년 Robin Thicke이 싱글 “Lost Without You”와 앨범 “The Evolution of Robin Thicke”으로 이 대기록을 다시 한 번 세웠을 뿐이다.
여운은 경성대학교 음악서클 선후배인 남자 둘(안현진, 고상우) 여자 하나(박순화)로 구성된 이 혼성 트리오로 1987년 강변가요제에 “홀로된 사랑”(안현진 작사/작곡)이란 경쾌한 노래로 은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당시 대상은 문희경의 “그리움은 빗물처럼”이 받았다. 하지만 더 인기 있었던 곡은 여운의 “홀로된 사랑”과 동상을 수상한 티삼스의 “매일매일 기다려”였다. “홀로된 사랑”은 1988년 KBS 가요탑10에서 4월 둘째 주와 5월 첫째 주에 걸쳐 1위를 기록했다. “사랑이 떠나버리고”(장경수 작사/이제우 작곡)는 “홀로된 사랑”의 인기를 등에 업고 후속곡으로 발표한 발라드곡이다. 개인적으로 “홀로된 사랑”보다 이 노래를 더 좋아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곡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활동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1988년 5월 28일 Johnny Kemp의 “Just Got Paid”가 빌보드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문다. 핫100 차트에는 1988년 8월 13일 10위에 올랐다. 노래를 부른 Johnny Kemp와 동료 Teddy Riley, Gene Griffin 등이 함께 만든 이 노래는 바하마 출신의 이 R&B 싱어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히트곡이 되었다. Kemp는 자신의 동료인 Keith Sweat가 데뷔 앨범에서 프로듀서 Teddy Riley와 함께 일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앨범에도 Riley와 함께 일한다. 원래 이 곡은 Sweat의 앨범에 수록할 예정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Sweat이 앨범에 넣을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Kemp가 자신의 앨범에 실었다. Kemp의 데뷔 앨범 “Secrets Of Flying”의 첫 싱글로 발매된 후 R&B 라디오에서 큰 인기를 누렸고 1989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그해의 R&B 싱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1 ‘N Sync 는 그들의 앨범 No Strings Attached에서 이곡을 리메이크했는데 우연히도 이 앨범의 프로듀서 역시 Teddy Riley였다.
Talking Heads는 1988년 그들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Naked를 내놓는다. “(Nothing But) Flowers”는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다. David Byrne 특유의 블랙유머스러운 가사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잘 결합된 이 곡의 백보컬에는 Kirsty MacColl, 기타에는 Johnny Marr가 참여하는 등 유명인들의 협업도 인상적이었다. 가사는 현대사회의 도시 풍경이 정치적 운동 또는 기근으로 말미암아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정서는 Joni Mitchell이 “Big Yellow Taxi”에서 “그들은 천국을 도로 포장해버렸다.”란 구절과 통한다 할 수 있다. 노래 가사 중 일부는1 Bret Easton의 소설 American Psycho에 인용되기도 했다. Kevin Smith가 감독한 2008년 작 Clerks II 에서는 오픈 크레딧에 이 곡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픽 디자이너 Tibor Kalman이 시도한 혁신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사용된 뮤직비디오 또한 호평을 받았다.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79위에 올랐다.
“I Don’t Want Your Love“는 영국의 뉴웨이브 밴드 Duran Duran이 1988년 내놓은 앨범 Big Thing의 첫 싱글로 발표된 곡이다. 이 시기는 1980년대 초 인기의 정상에 올랐던 밴드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의 시기였다. 이 앨범에서는 음악적 입장이 차이가 커진 Andy Taylor와 음악생활에 염증을 느낀 Roger Taylor가 기타와 드럼에서 빠지고 Missing Persons 출신의 Warren Cuccurullo와 Sterling Campbell이 그들을 대신하여 참여한 앨범이다.1 또한 80년대 초반과 달라진 음악 조류는 보다 베이스가 강하게 들어간 그루브를 강조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그룹은 신세대의 취향에 부합하는 음악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나온 이 앨범을 사람들은 이 앨범을 그룹의 ”하우스 뮤직“ 앨범이라고 간주한다. 1988년 9월에 앨범과 함께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영국 싱글 차트 14위, 빌보드 핫100 차트 4위에 올랐다. 또한 클럽플레이 차트에서는 1위에 올랐다. 그룹이 발표한 곡 중에 거의 유일하게 ”Love“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노래는 본국인 영국이나 미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는데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1위에 6주간 머물렀고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A Little Respect”는 영국의 신쓰팝 듀오 Erasure가 불러서 히트한 댄스팝이다. 그룹의 멤버인 Vince Clarke와 Andy Bell이 쓰고 1988년 9월에 발매된 이 곡은 그들이 유럽에서 내놓은 세 번째 – 미국에서는 두 번째 – 스튜디오 앨범 The Innocents의 세 번째 싱글로 내놓은 작품이자 통산 열 번째 싱글이었다. “A Little Respect”는 영국 차트 4위까지 올라 듀오의 통산 다섯 번째 탑10 싱글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빌보드 핫100 차트 14위, 핫댄스클럽 곡 차트에는 2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었다. 곡은 듀오의 다른 곡과 마찬가지로 강한 신디싸이저의 연주가 주조를 이룬 와중에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가미했고, 이 연주를 바탕으로 Bell이 코러스에서 팔세토 창법으로 소화한 곡이다. 가사는 연인에게 동정심과 존경심을 가질 것을 애원하는 이의 사연을 노래하고 있다. Andy Bell은 제목이나 가사 등 때문에 이 곡이 Aretha Franklin의 “Respect”와 지나치게 비슷하게 들릴까봐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곡은 그들의 다른 노래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버전으로 리믹스되었고 어쿠스틱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양한 커버버전 가운데 Wheatus가 2001년 7월 내놓은 락사운드가 강화된 커버버전이 가장 유명하다. 이 곡은 영국에서 3위까지 오르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인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