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Corruption & Lies

New Order - Power, Corruption & Lies.png
By Peter Saville – Power, Corruption & Lies (1983).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30 July 2021. Retrieved on 6 July 2022., Public Domain, Link

New Order가 아직 Joy Division이라는 너무나 두꺼운 껍질을 벗고 뉴오더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품이다. 1983년 내놓은 그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앨범의 노래를 통해 뉴오더는 이언 커티스의 안타까운 운명을 뒤로 하고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은 지속된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점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트랙인 Age of Consent는 다소 생뚱맞게 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하는 어린 누군가를 노래하는데 아마도 이언 커티스 및 조이디비전과의 결별을 선언하지 못하는 나머지 멤버들의 심정을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트랙에서는 We All Stand에서는 계속해서 “Life goes on and on”이라고 자조하듯 뇌까린다. 그런데 세 번째 트랙에서는 드디어 뉴오더 표 그루브가 등장한다. 가사도 “When a new life turns towards you And the night becomes the day”라고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다.

네 번째 트렉 5 8 6 에서는 일단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래 제목에서부터 일렉트로닉팝으로의 지향점을 밝힌 후 한참 이어지는 전주를 통해 80년대 신스팝, 더 나아가 하우스뮤직의 프론티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Yes, I heard you calling”이라는 가사에서 “너”는 아마도 새로 도래할 신스팝의 80년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노래 후반부에서는 “Can you hear me deep inside?”이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너”는 이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뉴오더의 음악을 수용할 팬들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뉴오더의 새로운 음악을 들어달라고, 들을 자세가 되었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낯익은 베이스 신디사이저음이 들린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변화가 두려웠는지 B면 첫 트랙, 즉 다섯 번째 트랙 Your Silent Face에서는 다시 예의 조이디비전 풍의 우울뽕짝의 포스트펑크로 회귀한다. 가사도 다시 수세적으로 바뀌었다. 이어 등장하는 여섯 번째 트랙 Ultraviolence. 제목부터 그렇거니와 다시 본격적으로 일렉트로닉팝 분위기다. 거기에 인더스트리얼 냄새까지 풍긴다. 종을 잡을 수 없는 트랙 순서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종잡을 수 없음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질서로 거듭나기 위한 정반합의 몸부림인 것이다.

일곱 번째 트랙 Ecstacy는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시피 밴드 멤버들의 마약 경험에 대한 음악이다. 들어봐도 딱 알겠다. 지니어스에서는 그들이 1980~1981 기간 동안 뉴욕 클럽에서 경험했던 마약의 추억을 노래로 담은 것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경험했어도 분명히 경험했을 뽕맞은 음악이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향후 80년대 하우스 뮤직의 원형적인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인스트루멘탈이다.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트랙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Leave Me Alone이다. 80년대를 꿰뚫을, 그리고 90년대까지 이어질 사회적 맥락이랄지 그런 것에 무관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세대의 심정을 적절하게 반영한 제목이 아닐까? 가사도 그렇고 연주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조이디비전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마지막 트랙에서 다시 조이디비전의 음습한 히키코모리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뭐 그런대로 좋다. 그게 또 이 ‘조이디비전+뉴오더’의 매력이니까.

앨범 커버의 꽃그림도 너무 예쁘다.

Happy Families

Blancmange - Happy Families.jpg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CD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regardless., Fair use, Link

1979년 영국 런던에서 닐 아서(Neil Arthur, 보컬), 스티븐 루스콤비(Stephen Luscombe, 키보드),1 로렌스 스티븐스(Laurence Stevens, 드럼) 3명에 의해 결성된 신스팝 밴드 블랑망주(Blancmange)의 1982년 앨범이다. 원래 블랑망주는 녹말가루, 우유, 설탕과 바닐라향, 아몬드를 첨가한 희고 부드러운 푸딩을 의미한다. 영국의 앨범 차트 30위에 오르면서 상업적으로는 그런대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어 이후에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스타일 적으로는 다소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오리지널리티는 있게 마련인데 블랑망주는 그런 부분이 조금은 약했던 것 같다.

일례로 이 앨범의 두 번째 트랙 Feel Me는 Talking Heads의 데이빗 번(David Byrne)의 느낌이 강하다. 또 다른 곡에서는 Joy Division의 분위기가(I’ve Seen the Word), 또 다른 곡에서는 Simple Minds의 분위기가(Wasted)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는 비슷한 체급으로 느껴지는 밴드 중에서도 하나의 스타일을 일관되게 밀고 나간 Secession이나 Camouflage와는 조금은 다른 경로의 지향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본인들은 본인들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이들이 그렇게 평가하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예술가의 스타일은 가지려 노력해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묘한 뉘앙스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앨범에서는 네 번째 트랙이자 세 번째로 내놓은 싱글인 Living on the Ceiling이 영국 싱글 차트 7위까지 오르면서 앨범의 상업적 성공을 견인한다. 톡톡 튀는 멜로디와 편곡이 이미 듣고 있는 순간에도 가장 상업적인 곡이라는 느낌이 드는 곡이다. 조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상업적 요소를 곳곳에 때려 박은 느낌의 곡이라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곡은 또 Men At Work의 곡이라 속이고 들려줘도 믿을 것 같다. 다양한 스타일의 조합, 그게 블랑망주의 생존 방식이자 대박을 못 낸 원인이었을까? 한편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에서는 우울한 멜로디가 매력적인 Waves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곡은 또 비록 후배 밴드이긴 하지만 When In Rome을 생각나게 한다.

마지막으로 앨범 커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신스팝 밴드의 앨범 중 이렇게 감각 없는 커버가 또 있을까 싶다. 그림 자체는 재미있다. 하지만 앨범 커버도 앨범이라는 매체를 내놓는 뮤지션에 있어 매우 중요한 스타일 중 하나다. 그렇기에 어떤 뮤지션들은 – Talking Heads나 The Smiths 등 – 본인들이 직접 커버 작업을 해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창조했다. New Order는 Peter Saville이라는 걸출한 아티스트에게 작업을 맡기기는 했지만, 이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확립했다. 그런데 이 앨범 커버는 선대의 포크음악이나 후대의 로우파이 음악이 연상되는 장르와는 동떨어진 커버다.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신스팝의 앨범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는 의미다.

1982 UK LP and cassette

Side one

  1. “I Can’t Explain” – 4:00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11

Side two

  1. “Waves” – 4:07 (original version on early pressings of the album is 4:25 long)
  2. “Kind” – 3:56
  3. “Sad Day” – 4:05
  4. “Cruel” – 4:52
  5. “God’s Kitchen” – 2:54

1982 Canadian version

Side one

  1. “Waves” – 4:07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11

Side two

  1. “Blind Vision” – 4:20
  2. “I Can’t Explain” – 4:00
  3. “Kind” – 3:56
  4. “Sad Day” – 4:05
  5. “Cruel” – 4:52
  6. “God’s Kitchen” – 2:54

2008 Happy Families… Plus CD

  1. “I Can’t Explain” – 4:03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02
  6. “Waves” – 4:09
  7. “Kind” – 3:58
  8. “Sad Day” – 4:04
  9. “Cruel” – 4:52
  10. “God’s Kitchen” – 2:57
  11. “Living on the Ceiling” (Extended Version) – 5:40
  12. “God’s Kitchen” (12″ Mix) – 4:29
  13. “Feel Me” (Extended 12″ Version) – 7:01
  14. “Feel Me” (7″ and 12″ Instrumental) – 5:10
  15. “Business Steps” – 4:28
  16. “Feel Me” (US 12″ Instrumental) – 5:22

2017 Edsel 3 CD Media Book Edition

Disc one

  1. “I Can’t Explain” – 4:00
  2. “Feel Me” – 5:07
  3. “I’ve Seen the Word” – 3:00
  4. “Wasted” – 4:17
  5. “Living on the Ceiling” – 4:11
  6. “Waves” – 4:07
  7. “Kind” – 3:56
  8. “Sad Day” – 4:05
  9. “Cruel” – 4:52
  10. “God’s Kitchen” – 2:56
  11. “Living On The Ceiling (Extended Version)” – 5:39
  12. “God’s Kitchen (12″ Mix)” – 4:28
  13. “Feel Me (12″ Instrumental)” – 5:08
  14. “Waves (Original Version – No Strings)” – 4:22

Disc two

  1. “Sad Day (Original Version)” – 3:10
  2. “Feel Me (Extended 12″ Version)” – 6:59
  3. “Business Steps” – 4:28
  4. “Black Bell (Demo)” – 4:22
  5. “Melodic Piece (Demo)” – 2:31
  6. “Your Hills (Rehearsal)” – 2:46
  7. “I Can’t Explain (Demo)” – 3:20
  8. “Waves (Demo)” – 4:45
  9. “I’ve Seen the Word (1979 Demo)” – 3:06
  10. “Holland (Demo)” – 2:47
  11. “I’ve Seen the Word (Demo)” – 2:25
  12. “Feel Me (Mike Howlett Dub Version)” – 6:48

Disc three

  1. “I Would” – 4:06 [Radio 1 Session (13.2.82)]
  2. “Living on the Ceiling” – 3:13 [Radio 1 Session (13.2.82)]
  3. “Waves” – 4:01 [Radio 1 Session (13.2.82)]
  4. “Running Thin” – 2:20 [Radio 1 Session (13.2.82)]
  5. “God’s Kitchen” – 2:54 [Radio 1 Session (5.6.82)]
  6. “Feel Me” – 5:19 [Radio 1 Session (5.6.82)]
  7. “Kind” – 3:48 [Radio 1 Session (5.6.82)]
  8. “Cruel” – 3:49 [Radio 1 Session (5.6.82)]
  9. “God’s Kitchen” – 3:33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0. “Living on the Ceiling” – 4:33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1. “I’ve Seen the Word” – 3:36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2. “I Can’t Explain” – 4:23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3. “Waves” – 4:38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4. “Feel Me” – 5:40 [In Concert, Paris Theatre (13.11.82)]

  1. 이분은 최근 유명을 달리하셨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Talking Heads / Remain in Light [1980]

Album cover containing four portraits covered by red blocks of colour, captioned "TALKING HEADS" (with inverted "A"s) at the top and (much smaller) "REMAIN IN LIGHT" at the bottom.
By scan, Fair use, Link

1980년 1월, Talking Heads 멤버들은 1979년 앨범 Fear of Music을 홍보하기 위한 투어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개인적인 관심사를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Byrne은 Brian Eno와 함께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를 작업했다. Jerry Harrison은 뉴욕에 있는 Sigma Sound Studios에서 나중에 본인의 초청으로 토킹헤즈의 다음 앨범에서 백보컬을 담당할 소울 가수 Nona Hendryx의 앨범을 제작했다. Chris Frantz와 Tina Weymouth는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냈다.

1980년 초에 멤버는 재회했다. Chris의 회고록 260쪽에 따르면 이렇게 다시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티나가 제안한 잼 연주 덕분이라고 한다. 어쨌든  밴드 멤버들은 지금까지 작곡이 대체로 Byrne의 책임이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백킹 밴드라는 개념에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Byrne에 따르면, 그들이 목표로 삼은 이상은 “상호 협력을 위해 자존심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Byrne은 또한 뉴욕에서 느끼고 있던 “심리적 편집증과 개인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Chris의 회고록 261쪽에 따르면 바하마로 가기 전 미리 작업한 곡은 없었으며 즉흥 연주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이 크레딧에 오르는 것으로 구두합의했다고 한다. 그룹은 Byrne의 가사에 맞춰 음악을 쓰는 대신 Fear of Music 트랙 “I Zimbra”를 기반으로 확장된 악기의 잼연주를 시도했다. 그렇게 밴드는 바하마1에서 즉흥 연주를 녹음하고, 가장 좋은 부분을 분리하고, 반복적으로 연주하고, 그것을 (라자냐처럼) 겹쳐 녹음하는 법을 익히면서 Remain in Light를 발전시켜나갔다.

Eno는 Byrne보다 3주 후에 바하마에 도착했다. 이전 두 앨범에서 협업한 후 밴드와 다시 작업하는 것을 꺼렸지만 악기 데모 테이프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2 밴드와 Eno는 개별 부분이 폴리리듬으로 맞물리는 공동의 아프리카 음악 제작 방식을 실험했다. Afrobeat의 창시자로 알려진 나이지리아 음악가 Fela Kuti의 1973년 앨범 Afrodisiac이 밴드와 Eno의 앨범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Weymouth에 따르면 힙합의 등장으로 밴드는 음악적 풍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3

Eno는 Cale과 Byrne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했고, 그들은 앉아서 레코드를 들었다. 그가 내놓은 앨범 중에는 Fela Kuti의 Afrodisiac이 있었는데, 이는 Remain in Light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Eno는 “당시 저는 이 음악에 매우 흥분했고 그들도 매우 흥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스릴이 있었습니다.”[출처]

녹음은 1980년 7월과 8월에 바하마의 Compass Point Studios와 뉴욕의 Sigma Sound Studios에서 진행되었다. 가사는 밴드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었다. 세션 음악가로는 기타리스트 Adrian Belew,4 가수 Nona Hendryx, 트럼펫 연주자 Jon Hassell이 참여했다.5 (결국 앨범 뒷면으로 넘어갈) 커버의 아트워크는6 Tina와 Chris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연구원 Walter Bender와 그의 ArcMac 팀(MIT 미디어 랩의 전신)의 도움을 받아 작업했다. 부부는 히말라야 위로 편대를 이루며 날고 있는 붉은 전투기의 콜라주를 만들었는데, 미국 해군 제독이었던 Tina의 아버지 Ralph Weymouth를 기리기 위해 Grumman Avenger 비행기를 예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Album cover containing a drawing of a mountain range and four mostly red warplanes flying in formation. There is green text on the left hand side and a barcode in the top right corner.
By Scanned by uploader., Fair use, Link

Talking Heads와 Eno는 모든 노래를 알파벳순으로 “David Byrne, Brian Eno, Chris Frantz, Jerry Harrison 및 Tina Weymouth”에게 크레딧하는 데 합의했지만, 최종 발매된 앨범에는 “모든 노래는 David Byrne & Brian Eno가 씀(David Byrne, Brian Eno & Jerry Harrison이 쓴 “Houses In Motion”과 “The Overload” 제외)”라고 되어 있었다.7 Frantz, Harrison 및 Weymouth는 크레딧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에디션에서는 모든 밴드 멤버들로 크레딧이 바뀌었다. Frantz는 2009년에 그와 웨이머스는 “크레딧 분쟁으로 인해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8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앨범 Remain in Light9 은 1980년 10월 8일 Sire Records에서 발매되었다. 앨범은 음향 실험, 리듬 혁신, 서로 다른 장르를 응집하여 전체로 통합한 시도였기에 비평가들로부터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이 앨범은 미국 Billboard 200 앨범 차트에서 19위, 영국 앨범 차트에서 21위를 차지했으며, 싱글 “Once in a Lifetime”과 “Houses in Motion”이 발매됐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2017년 의회도서관은 이 앨범을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중요한” 앨범으로 간주하여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비평가 Stephen Thomas Erlewine은 이 앨범을 “아프리카 타악기, 펑크 베이스 및 키보드, 팝송 및 전자 음악의 밀집된 혼합물”이라고 불렀다. 2008년 리뷰에서 Vibe의 숀 페네시(Sean Fennessey)는 “Talking Heads는 아프리카 폴리리듬을 NYC로 가져와서 우아하고 색다른 포스트펑크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정신 분석가 Michael A. Brog는 이 앨범이 록앨범의 형식의 잠재력을 이용하여 “정신병 및 분열증적 경험에 강력하고 당혹스러운 음악적 표현을 공급“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Byrne은 앨범 보도 자료에 참고 문헌과 함께 앨범이 아프리카 신화와 리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성명을 포함했다. 이 발표에서는 가사의 주요 영감이 John Miller Chernoff의 African Rhythm and African Sensibility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농촌 아프리카 지역 사회의 삶의 음악적 향상을 조사한 서적이다. Chernoff는 1970년 가나로 여행을 가서 토착 타악기를 연구했고 아프리카인들이 드럼 패턴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썼다.10

Eno는 Talking Heads에게 Remain in Light의 음악이 4인조가 라이브 공연하기에는 너무 밀도가 높다고 조언했다. 밴드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투어 인원을 9명의 뮤지션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Adrian Belew, Parliament-Funkadelic 키보디스트 Bernie Worrell, 베이시스트 Busta “Cherry” Jones, Ashford & Simpson 타악기 연주자 Steven Scales, 백킹 보컬리스트 Dolette MacDonald를 영입했다. 확대된 밴드는 최초로 1980년 8월 23일 온타리오의 Heatwave 페스티벌에서 70,0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했다. 8월 27일, 또한 Wollman Rink에서 8,000명의 관객을 모아 트랙 쇼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11 12

Radiohead는 Remain in Light가 그들의 2000년 앨범 Kid A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Radiohead 기타리스트 Jonny Greenwood는 루프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Harrison에게 Talking Heads가 대신 반복해서 연주하는 부분을 녹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Greenwood는 “그래서 듣기에 지치지 않는 이유는 같은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번 약간씩 다르게 들리죠. 거기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2018년 베냉 가수 Angélique Kidjo는 Jeff Bhasker가 프로듀싱하고 Kravenworks 레이블에서 발매한 Remain in Light의 1:1 곡 커버를 발표했다 밴드가 아프리카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앨범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했다.

2022년 해리슨과 벨루는 앨범 40주년을 기념하는 3개의 콘서트 일정을 위해 뭉쳤고, 앨범 전체와 Talking Heads의 여러 곡을 연주했다. 2023년, 그들은 프로젝트를 북미 전체 투어로 확대했고, 벨루가 Talking Heads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King Crimson의 시기에 활동했던 시절의 자료를 포함했다.

1.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의 샤우팅 창법은 일상에서의 “설교, 소리치기, 횡설수설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이 노래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의 대중의 편집증을 다루고 있다. 번은 존 딘(John Dean)의 워터게이트 증언에서 나온 직설적인 말을 연구하여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려고 했다. 제목에 사용되고 코러스에서 반복되는 “And the Heat Goes On”이라는 표현은 1980년 여름에 이노가 읽은 New York Post 헤드라인에서 힌트를 얻었고, 번은 데뷔 앨범의 트랙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라는 노래 제목을 “Look at the hands of a government man”이라는 가사로 다시 사용했다.

Don’t you miss it? Don’t you miss it?
Some ‘a you people just about missed it!
Last time to make plans
Well, I’m a tumbler
I’m a government man

이 가사에서 “Last time to make plans”은 리처드 닉슨이 탄핵 직전에 갑자기 사임함으로써 그를 정당하게 처벌하려는 행위를 무력화시킨 계획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지금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진 사퇴할 수도 있다’라는 설이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이 연상되어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다.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곡은 앨범의 실험적인 시도가 가장 잘 응축되어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리뷰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브라이언이노도 이곡에서 밴드와 본인이 했던 실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가 만족했던 다른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악기를 서로 연결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몇 개의 악기가 복잡한 부분을 연주하는 대신, 많은 악기가 매우 간단한 부분을 연주하고 이 부분들이 서로 어우러져 복잡한 트랙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Born Under Punches 에는 5~6개의 베이스가 있었는데 , 각각이 서로 어울리는 간단한 부분을 연주했습니다.(출처)

2. Crosseyed and Painless

이곡의 작업 당시 번은 곡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작가적 난관(impasse)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는 “너도 알겠지만 랩이라 부르는 새로운 것이 있는데, 넌 꼭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 그냥 가사를 랩하면 돼. 이거 들어봐”하며 Byrne에게 Kurtis Blow의 “The Breaks“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서 번은 한번의 시도만에 성공했다.(회고록 264-265쪽) 아래 가사는 “사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받지만 이에 대해 계속 회의(懷疑)하는 화자의 완고함이 느껴진다.

I push the facts in front of me
Facts lost
Fa-Facts are never what they seem to be
No-no-thing there
No information left of any kind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Toni Basil이 댄싱팀 The Electric Boogaloos와 함께 만들었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토킹헤즈의 음악은 다시 한번, 지적인 갈증을 해소해주는 난해한 음악이기 이전에 앞서 댄스음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13

3. The Great Curve

Byrne이 Robert Farris Thompson의 책 African Art in Motion을 읽은 후 사용한 “The world moves on a woman’s hips”라는 가사로 아프리카 테마를 잘 보여준다.

Sometimes the world has a load of questions
Seems like the world knows nothing at all

또한 도입부의 이 가사가 흥미로운데 언젠가 한 유튜브 영상에서 ‘모두가 비정상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것은 정상적인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본 적이 있다. ‘번이 자폐 스펙트럼장애라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서 토킹헤즈의 음악이 편집증적이 아니었을까’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비정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재밌게도 번은 데뷔 앨범의 “No Compassion”에서도 같은 질문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So many people…have their problems
I’m not interested in their problems

요컨대 이러한 상황은 앞서의 트랙 Crosseyed and Painless에서 “사실”을 계속 강요받는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음악적으로 볼 때 Crosseyed and Painless와 함께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듣는 곡이다. 타악기로 봉고(Bongo)가 쓰였다. 그리고 애드리안 벨루의 기타 간주가 돋보이는 곡. 빠른 속도의 기타 연주와 관악기 연주가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4. Once in a Lifetime

어떻게 보면 이렇게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앨범 속에서 그나마 다소 느긋하게 들을 수 있는 곡. 상업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가사 속의 스토리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Nicolas Cage 주연의 The Family Man은 이 곡을 모티브로 해서 시나리오를 썼음에 틀림없다.

And you may ask yourself
“How do I work this?”
And you may ask yourself
“Where is that large automobil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hous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wife!”

그야말로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인가?’ 하는 상황이다. 이 가사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재밌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밈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Byrne이 NPR에서 이곡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로 무의식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반쯤 깨어 있거나 자동 조종 장치로 작동하고 결국 집과 가족과 직장과 다른 모든 것을 가지게 되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킹헤즈의 곡 가사 중에 가장 유명한 가사가 등장한다.

Same as it ever was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번과 토니베실이 같이 감독한 것으로 크레딧에 올라있다.

5. Houses in Motion

이곡은 세션으로 참가한 Jon Hassell의 으스스한 트럼펫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I’m walking a line
I’m visiting houses-in-motion
I’m walking a line

번은 유난히 건축물이나 도시에 대해 곡을 많이 썼는데

  • Love → Building on Fire
  •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 The Big Country
  • Cities
  •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 Burning Down the House
  • (Nothing But) Flowers

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을 알다시피 – 비록 웨이머스의 아이디어로 채택된 제목이기는 하지만 –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이다. 그리고 솔로 커리어 시절에는 건물을 악기로 사용하여 “Playing the Building”이라는 인터랙티브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6. Seen and Not Seen

Byrne은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이 만든 악기 연주에 낭송 스타일의 시를 낭송한다. 이 시는 은유를 통해 대중 문화에서 보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재형성할 만큼 불안한 한 남자와, 이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럽다는 의견을 묘사하고 있다. “Gradually his face would change its shape”이라는 가사에서 보듯 앨범의 등장인물들은 계속 모습을 잃어간다(Crosseyed and Painless는 Lost my shape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7. Listening Wind

이 노래는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을 폭격하는 외국 테러리스트 Mojique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해 Byrn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라이브로 공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미국이 ​​보편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저는 수년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많은 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고, 그저 질투할 뿐이야. 그들은 그저 맥도날드를 원할 뿐이야.’”

8. The Overload

이곡은 Talking Heads가 노래를 Joy Division의 스타일로 만들려 했던 시도다 . 문제는 멤버중 중 누구도 Joy Division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그냥 그들에 대해 읽은 바에 따라 그 분위기대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한 것이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Sci-fi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14 가사는 마치 불교의 영겁을 노래하는 듯한 분위기다.

A frequent returning
And leaving unnoticed
A condition of mercy
A change in the weather
A view to remember
The center is missing
They question how the future lies
In someone’s eyes

  1. 밴드가 도착했을 때에는 옆 스튜디오에서 AC/DC가 Back in Black을 녹음 중이었다고 ↩
  2. 이노는 “난 너희들이 가려고 하는 방향이 무척 맘에 들어.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너희 앨범을 프로듀서할 거야.”라고 말하며 엔지니어로 Rhett Davies를 데려왔다.(David Bowman의 책 167쪽) ↩
  3. 맨해튼의 북쪽 할렘에서 등장한 힙합은 서서히 남쪽의 백인 음악의 공간으로 침투하며 협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작업의 선두주자로는 토킹헤즈와 블론디 등이 있다. ↩
  4. Belew는 “Crosseyed and Painless”, “The Great Curve”, “Listening Wind” 및 “The Overload”가 될 트랙에서 연주했다 ↩
  5. Eno는 그에게서 “제4세계 음악”의 비전을 보았다. 하셀은 “커피 색깔의” 미래의 고전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지구의 반은 15세기를 살고 있고 나머지 반은 순수한 블레이드러너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David Bowman의 책 166쪽) ↩
  6. 앨범의 앞면 커버는 네 멤버의 사진에 컴퓨터그래픽 효과를 통해 멤버들의 얼굴에 빨간 칠을 한 Scptt Fisher라는 프로그래머의 작품이다.(David Bowman의 책 177쪽) ↩
  7. 크리스의 회고록 266쪽 ↩
  8. 한편으로 Chris의 회고록 263쪽에 따르면 크리스 부부는 레코드사에 청구하지 않은 금액 십만 달러 이상을 이 음반에 썼다고 한다. 그는 특히 이노의 냉대와 이에 대한 번의 침묵에 분노가 컸다. ↩
  9. 작업 초기에 정해진 이름은 Melody Attack이었다. 이노가 후에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 영감을 받아 이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
  10. 이 책은 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여정에 읽은 책인데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8년 이상을 보내며 어떻게 아프리카의 타악기 연주자가 연주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지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드럼 연주의 어휘는 언어의 그것 만큼이나 복잡하였다.(David Bowman의 책 173쪽) ↩
  11. Chris의 회고록 272쪽에 따르면 이 공연의 오프닝은 일본의 일렉트로닉팝 밴드 Plastics가 담당했다고 한다 ↩
  12. 확장된 토킹헤즈 ↩
  13. 우키팝이라는 유튜버가 2024년에 올린 피치포크의 사세 축소에 관한 이 영상을 보면 피치포크의 리뷰를 보고 어떻게 그 유튜버가 토킹헤즈의 음악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는 지를 여담으로 설명하고 있다. ↩
  14. David Bowman의 책 178쪽 ↩

Unknown Pleasures

UnknownPleasuresVinyl.jpg
By https://www.discogs.com/master/4805-Joy-Division-Unknown-Pleasures?image=1762304.SW1hZ2U6ODE2Njc1Mw==, Fair use, Link

Unknown Pleasures는 Joy Division의 스튜디오 데뷔앨범이다. 이 앨범은 스트로베리 스튜디오에서 1979년 4월 1일에서 17일에 걸친 짧은 기간 동안 녹음을 마치고 그 해 6월 15일 팩토리 레코드사를 통해 영국에서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앨범 수록곡 중에서 싱글도 발매되지 않았고 – 홍보를 위해 “Transmission” 싱글이 발매되긴 했다 – 차트에 진입하지도 못했다. 1976년 결성되어 Warsaw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 포스트펑크 밴드의 경력이 1980년대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날 것 같은 불안한 출발이었다. 물론 정규 앨범을 두 개밖에 내지 못할 정도로 활동기간이 길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은 걸작으로 남게 되었고 Joy Division 역시 시대를 대표하는 펑크 밴드로 평가받게 되었다.

이 앨범 이전에 밴드가 내놓은 앨범은 자신들이 프로듀스하여 1978년 내놓은 EP An Ideal for Living이었다. 이 앨범 덕분에 그들은 Tony Wilson의 지방 뉴스쇼 Granada Reports에 1978년 9월 출연하였다. 그것을 계기로 밴드의 매니저 Rob Gretton은 Wilson에게 Factory Records 레이블에서 Joy Division의 앨범을 내자고 제안하였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영국 스톡포트에 있는 스트로베리 스튜디오에서 작업에 착수한다. 프로듀서는 Martin Hannett이었다. Hannett은 Peter Hook의 표현처럼 “최고의 요리사”로서 Joy Division의 뛰어난 재료를 가지고 솜씨 좋게 요리를 만들었다. 그는 유리병을 깨부수는 소리, 스낵을 먹는 소리 등 평범하지 않은 음향효과를 첨가하여 곡에 세련미를 가미했다.

Hannett이 창조해낸 “공간감이 넓은 광활한 사운드”에 대한 밴드 멤버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Sumner는 “우리는 흑백의 그림을 원했는데 마틴이 색깔을 집어넣었다.”고 비판했다. Hook은 “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음악이 마치 Pink Floyd같았다”라고 말했다. Morris는 이와는 다른 의견이었다. “Unknown Pleasures를 듣고 행복했다. 당시의 내 논지는 두 가지는 – 레코드를 듣는 것과 공연에 가는 것 –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Curtis도 프로덕션에 만족해했다. 2006년 인터뷰에서 Hook은 회고했다. “분명 당시에는 내가 원하는 사운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마틴이 일을 잘 했던 것은 이제 알겠다. 이에 관한 다른 대안은 없었다. 마틴 해넷이 조이디비전의 사운드를 창조하였다.”라고 인정하였다.

작가 Chris Ott는 앨범의 이름이 Marcel Proust의 Remembrance of Things Past에서 따온 것 같다고 말하였다. 앨범 커버는 Peter Saville이 맡았는데, 유명한 펄서 CP 1919의 전자파동의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Saville은 흑백의 이미지를 뒤집어 검은 배경에 하얀 선의 파동 그래프가 그려진 유명한 커버를 완성하였다. 앨범은 1쇄로 1만 장을 프린트하였다. 판매량은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LP에 수록되지 않은 홍보용 싱글 “Transmission” 이 발매되자 앨범은 전량 팔렸다. 당시 총 판매량은 1만5천 장 정도였고 차트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1980년 5월 Curtis가 자살하고 두 번째 정규앨범 Closer가 발매되는 등의 과정을 거쳐 재발매된 앨범은 그해 8월에 차트 71위에 진입하여 한참을 머물렀다.

평론가들의 이 앨범에 대한 평이 “불투명한 선언(opaque manifesto)”이나 “황량한 악몽의 사운드트랙(bleak nightmare soundtrack)”이라 평할 만큼 이 앨범은 황량한 상실감으로 메워져 있다. 앨범 발매 이후 1년이 되지 않아 자살을 선택한 이언 커티스의 심신에 걸친 극도의 불안감이 앨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Joy라는 단어를 밴드 명에 쓰고 Pleasures란 단어가 앨범 명에 쓰인 것 치고는 너무나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스터리하고 음습한 보컬이 조급증이 느껴지는 연주나 특수효과와 함께 공감감이 넓은 음악 안에서 메아리칠 때, 그 공간에서 느껴지는 것은 이언 커티스의 거대한 공허감이라는 점이 이 앨범의 매력이자 – 결말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 가슴 아픈 부분이다.

Closer

Joy Division Closer.jpg
“Joy Division Closer”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Closer는 영국의 포스트펑크 밴드 Joy Division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발매된 스튜디오 앨범이다. 1980년 7월 18일 레코드 레이블 Factory를 통해 발매된 이 앨범은 리드 싱어 Ian Curtis가 자살로 생을 마친 두 달 후에 발매되어 그의 유작이 되었다.(그의 삶과 죽음은 Anton Corbijn의 영화 Control을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유명한 앨범 재킷은 Martyn Atkins와 Peter Saville이 맡았다. 사진은 Bernard Pierre Wolff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제노아에 있는 한 가족 묘지를 찍은 사진이다. 묘지 사진을 쓰자는 아이디어는 Peter Saville의 아이디어로 Ian의 죽음을 전해들은 Peter가 그의 죽음을 기리고자 낸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Martin Hannett이 프로듀스한 이 앨범은 오프닝 트랙의 제목이기도 한 J.G. Ballard의 소설 The Atrocity Exhibition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Ian은 사실 그 소설을 읽기 전에 이미 대부분 곡의 가사를 다 썼다고 한다. 어쨌든 이 앨범은 그룹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지워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준 걸작 앨범이 되었다. 한 평론가가 “고딕락의 어둠의 일격(dark strokes of gothic rock)”이라고 표현한 이 앨범은 이후 고딕락, 이모(emo), 인디 뮤지션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는 앨범으로 남게 되었다. 12인치 LP로 발매된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6위까지 올랐고 호주에서는 4주간 1위에 머물렀다.

Chuck Berry의 펑크밴드들에 관한 생각

Chuck Berry이 1980년 펑크 잡지 Jet Lag과 인터뷰를 가졌다. 베리는 “요즘 아이들이 듣는 것”에 관한 그의 생각을 말했다.

Chuck Berry 1957.jpg
By Universal Attractions (management) – eBay itemphoto frontphoto back, Public Domain, Link

The Sex Pistols’ “God Save the Queen”:

그 녀석들은 대체 무엇에 화가 나있는 것인가? 기타 연주나 진행은 내 것과 같다. 백비트도 좋다. 보컬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니가 화가 나 있으면, 최소한 사람들이 네가 뭐에 화가 나있는지 알게 해야 할 것이다.

The Clash’s “Complete Control”:

처음 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리듬과 코드 진행은 잘 어울린다. 이 친구 노래 부를 때 인후염에 걸린 거냐?

The Ramones’ “Sheena is a Punk Rocker”:

괜찮은 곡이다. 이 친구들 덕분에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나 역시도 코드 세 개밖에 몰랐다.

The Romantics’ “What I Like About You”:

마침내 춤출 수 있는 것이네. 추가로 주어진 내 리프 몇 개가 섞인 육십 년대 음악처럼 들린다. 이게 신곡이라 그랬었나? 난 이 곡을 많이 들었다. 이런 야단법석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Talking Heads’ “Psycho Killer”:

펑키(funky)한 곡이다. 확실히. 베이스가 아주 맘에 든다. 좋은 조합에 흐름도 아주 좋다. 싱어는 아주 안 좋은 무대공포증의 경험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Wire’s “I Am the Fly”, Joy Division’s Unknown Pleasures:

그래 이것들이 소위 새로운 것들이다. 전에 들은 적이 없는 곡이다. 이 곡은 BB와 Muddy가 시카고의 오래된 원형경기장의 백스테이지에서 연주했을 것 같은 오래된 블루스 잼처럼 들린다. 악기는 틀릴지 모르지만 실험정신은 같다.

원문보기

Nicky Wire가 뽑은 명반 10선

주) 지금은 문을 닫은 음악사이트 changgo.com에 올라왔던 글을 전재합니다.

Nicky Wire : Manic Street Preachers의 베이시스트

THE BEATLES
Revoler(Parlophone, 1966)

♬ 내가 비틀즈를 알게된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의 곡들은 멜로딕하고 꽤 괜찮다. 당신이 더 극단적인 사운드를
원하더라도, 그들의 다양성과 거침없는 가사에 대해 점차적으로 깨닫게 된다. 나는 이 앨범이 이러한 장점을 완벽하게 모아놓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The White Album]도 사랑하지만 그것은 다소 과대평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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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ASH
London Calling(CBS, 1979)

♬ 본 작품은 전생을 통틀어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의 사운드 색은 이 앨범의 영향을 받고 있다.
클래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그렇게 다양한 음악이 있고, 그렇게 잘 프로듀싱되었으며 환상적인 가사가
있다. 아트워크 또한 놀랍다. 그것은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Exile On Main Street]
만큼이나 좋다. 하지만 우리가 [London Calling]을 들으며 자라왔기 때문에 이 앨범이 더 우위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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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DIVISION
Unknown Pleasures(Factory, 1979)

♬ 웨일즈에서 사는 것은 가장 끔찍한 일일 것이다. 많은 비가 내리는 꽤 고립된 곳. 그들의 전작을 살펴보면 꽤 파워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언 커티스(Ian Curtis)는 놀라운 뮤지션이다. 앨범의 가사는 내가 결코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꽤 불안정하였다. 한계를 깨뜨리는 데 있어서 이언 커티스는 대부분의 락 싱어보다 훨씬 뛰어났다. 아트워크 또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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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
Fables Of The Reconstruction(IRS, 1985)

♬ 이것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앨범이다. 잊혀진 R.E.M의 시대. 인터뷰에서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정말로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것을 싫어했지만 나는 ‘Driver 8’, ‘Maps And Legend’, ‘Green Grow The
Rushes’를 사랑한다. 다만 내가 자주 연주하는 것들. 사랑스런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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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S N’ ROSES
Appetite For Destruction(Geffen, 1987)

♬ 퍼블릭 에너미, 건즈 앤 로지스는 모두 약 1988, 89년 정도에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음악색을 띠고
있었지만 모두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었다. 나는 마력적인 락큰롤을 하였던 건즈 앤 로지스를 사랑하였다. ‘Sweet Child
O’ Mine’, ‘Welcome To The Jungle’, ‘Paradise City’, ‘Rockeet Queen’….
그것들은 모두 나의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워런트(Warrent), 포이즌(Poison), 머틀리 크루(Motley Crue)와
같은 소프트메틀 밴드들이 있던 미국에서 그들은 실제적인 락큰롤 밴드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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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NE ROSES
The Stone Roses(Silvertone, 1989)

♬ 이 앨범은 나의 지난 대학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이 밴드는 몇몇 공연을 가졌고 레코드 계약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앨범이 나왔을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있었다! 이때에 놀라운 1960년대 사이키델릭 팝 앨범을 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미친 듯한 펑크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항상 그것을 연주하였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정말로 그것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를 더 노력하게 만들고 목적의식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적인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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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ENEMY
Fear Of A Black Planet(Def Jam, 1990)

♬ 제임스는 항상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을 사랑하였고 끊임없이
연주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Fear Of A Black Planet’, ‘Who Stole The Soul’, 그리고 특별히
놀라운 곡들이라고 생각하는 [Burn Hollywood Burn] 만큼이나 그것에 빠져들진 않았다. 나는 이 두개의 앨범들이
NWA의 [Straight Outta Compton]과 함께 랩 역사상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어떤 밴드의 곡을
카피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밴드가 아주 훌륭한 밴드라는 증거일 수 있다. 그리고 누구도 퍼블릭 에너미를 카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음악은 랩뮤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빠르고 환상적인 가사를 갖고 있다. 랩은 현재 꽤 엉성한 R&B로 변형되기도 하였고
매우 퇴폐적이 되었다. 70년대 락뮤직과 비슷하게 그것은 여자, 마약 돈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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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RVANA
In Utero(Geffen, 1993)

♬ [Nevermind]가 나의 베스트로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In Utero]는 우리가 꽤 불안정한 어떤 것을 필요로
했던 때 우리의 삶의 한 때를 요약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바나의 사운드가 얼마나 놀라웠던가를 잊고 있다. 이 앨범에는 존
보남(John Bonham)이나 낼 수 있음직한 최고의 드럼사운드가 있다. ‘All Apologies’는 전생을 통틀은 나의
베스트 곡들 중 하나가 되었다. 커트는 락의 신이고 너바나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최고의 밴드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를 만나본
적이 있냐구? 아니다. 솔직히 나는 실망하는 경우가 생길까봐 존경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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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 FURRY ANIMALS
Fuzzy Logic(Creation, 1996)

♬ 나는 다만 이 앨범을 사랑한다. 내가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환상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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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IVE ATTACK
Mezzanine(Vergin, 1998)

♬ 매시브 어택은 댄스라는 장르로 다루기에는 꽤 다른 모습이다. 대신 그들은 모든 종류의 음악과 모든 종류의 스타일을 섞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Risingsun’은 가장 희귀한 곡이다. 많은 방면에서 1990년대의 대표급 밴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곡은 영국에서 진행되는 음악들을 절충하는 듯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곡들을 믹스하기도 하였고
블러(Blur)의 데이먼(Damon)도 그들과 이와 같은 일을 하였다. 나는 그들이 다양한 영국문화의 환상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펑크의 자기부정에 대한 단상

역시 블로깅은 재밌다. 아래 글들은 이른바 Punk Spirit 에 관한 일련의 커뮤니케이션을 시간 순으로 나열해본 링크들이다. ‘웅크린 감자’님이 펑크적이지도 않은 빅뱅은 펑크 흉내 내지 말라고 화두를 꺼내셨고, ‘민노씨’가 ‘웅크린 감자’님의 훈계가 모순되게도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대안을 찾고 있다고 비판하셨고, ‘히치하이커’님이 “다만 실제로 국내 음악신에서 아이돌이란 위치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자율적으로 음악을 하고 있는진 궁금하긴” 하다며 민노씨의 글을 첨언하셨다.(비판은 아닌 것 같고) 그리고 이에 대해 민노씨가 또 “펑크는 궁극적으론 자신을 부정하고, 극복하고, 역먹이려는 정신이라고 나는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첨언하셨다.

펑크 음악을 즐겨듣는 나에게는 참 흥겨운 주제다. “펑크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엿 먹이려는 정신”이라는 민노씨의 멘트도 왠지 공감이 간다. 그것 아마 아래와 같은 이유때문 일 것이다.(너무 냉소적일지 몰라도…)

시장 지배를 위한 음악 산업의 전략은 정밀하게 발전되어 왔다. 시장은 그들이 장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주기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레코드 회사들은 인디펜던트들의 활동으로 드러난 시장 수요에 가끔 부응하기도 하지만 보통 그들은 시장을 교묘히 조작하고 가능한 선택을 제한한다. 이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대중적 취향이다. 한편으로 대중은 항상 혁신에 응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중적 취향은 항상 장사꾼들에 의해 현혹되기도 한다. 불만스러운 요구들이 쌓여 마침내 터져 나올 때까지 기업은 대중적 취향 위에 군림하다가 인디펜던트들에 의해 이 욕구는 상업화하고 다시 이는 기업의 의해 매수된다. 그러나 의문점은 어디에서 그러한 새로운 요구들이 생겨나는 것인가? 왜 시장 통제는 대부분 효율적이지만 가끔씩은 그렇지 않은가? 대중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가? 항상? 가끔씩? 이 장에서 얘기하고 싶은 요점은 록이 제작되는 상업적 프로세스는 본질적으로 상호 모순적이라는 것이다.[록음악의 사회학 사운드의 힘, 사이먼 프리스, 권영성/김공수 옮김, 한나래(1995), pp 128~129]

어쨌든 모든 예술행위는, 급기야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 행위는 다른 이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전달되지 않는 한에는 지가 무슨 랭보였든, 피카소였든, 커트 코베인이었든, 트로츠키였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않게 된다. 그 점이 체제순화적인 행위에서야 갈등을 빚을 일이 없겠으나 체제모순적인 행위에서는 그 자체가 모순이 된다. ‘이거 시발 체제는 좆같은데 그걸 알리려면 체제 안으로 들어가야 되다니’라는 독백을 바로 윗 글에서 사이먼 프리스가 시장과 인디펜던트의 관계를 비유로 들며 어렵게 설명해주었다.

팬들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suede가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그 광팬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 왈 제발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단다. 자신을 메인스트림에 쩔어있는 국내 팝팬들과 차별화시키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그런데 그 팬은 suede 가 영국 음악씬에서 명성을 얻지 않았다면 그들의 이름을 알기나 했겠는가. 그것이 음악‘시장’에서의 팬(특히 오덕후스러운)들의 딜레마일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상호모순’이 가장 비극적으로 표출된 사례는 Joy Division의 이언 커티스나 Nirvana의 커트 코베인의 자살이 아닐까 싶다. The Clash 를 비롯한 상당수의 펑크 밴드들도 자신의 이데올로기, 상업주의, 팬들의 모순된 요구 속에서 긴장감과 자기부정 속에서 괴로워했고 말이다.(이러한 자기부정은 자본주의 정치체제로 편입한 좌파정당의 평당원들 사이에서 꽤나 심각한 고민거리다) 결국 민노씨 이야기처럼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하는 펑크 정신’이 온존하여 음악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당사자에게는 상당한 스트레스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펑크관련 블로그 하나 소개

추.

예전에 NHK에서 밴드 경연대회를 본적이 있는데 모히칸 머리를 하고 웃통을 벗은 엄청난 녀석이 보컬을 맡은 펑크밴드의 공연도 있었다. 이 보컬, 사회자의 단상까지 들고 나와서는 무대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공연이 끝나고 난 후인데 단상을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들고 가 정중히 내려놓고 ‘스미마센’하며 인사를 꾸벅 하는 것이었다. 그때 일본 애들 중엔 펑크밴드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New Order

Promotional images of New Order in 1985; clockwise from top left: Bernard Sumner, Stephen Morris, Peter Hook, Gillian Gilbert
By Trevor Key, Peter Saville; Distributed by Qwest Records – Lansure’s Music Paraphernalia, Public Domain, Link

1980년 영국 맨쳐스터에서 결성

멤버 : Peter Hook, Stephen Morris, Bernard Sumner, Gillian Gilbert

1.뉴 오더(new order)1의 전신- 조이 디비젼(joy division)2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쉬가 이루었던 영국 음악계의 펑크(punk)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원래 정치적 색채가 짙은 무브먼트의 성격으로 시작되었던 펑크는 주류 팝 씬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었고 결국 스스로 다시 언더그라운드화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아직 섹스 피스톨즈의 여파가 남아있던 1977년, 바르샤바(warsaw)라는 이름으로 처음 음악활동을 시작했던 Joy Division은 비록 그 활동 기간이 3,4년 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펑크의 새로운 대안인 뉴웨이브의 서막을 열었던 밴드였다. 조이 디비젼은 79년에 맨체스터의 팩토리 레코드(소위 맨체스터 사운드라 부르는 일단의 음악적 흐름을 조성했던 그 레코드사-뉴오더, 더 스미스,3 스톤 로지스 등이 팩 토리 레코드와의 밀월관계로 유명하다)와 계약을 맺고 첫 싱글 ‘Transmission’과 데뷔 앨범’Unknown Pleasures’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곧 비평가들로부터 대대적인 찬사와 지지를 받았고 이후에 발매된 싱글 역시 많은 지지를 받았다.그러나 1980년 5월 18일,대망의 두번째 앨범 ‘Closer‘가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기 하루전 보컬리스트이자 팀의 핵심적인 존재였던 이안 커티스가 돌연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급격한 건강 악화와 영국 팀으로서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그를 자살로 내어 몰았던 것이다. 이안 커티스의 죽음 이후, 조이 디비젼은 두장 짜리 회고앨범인 ‘Still’을 발매하고 공식적으로 해산된다.

2.새로운 대안- 뉴 오더(New Order)

너바나가 커트 코베인의 자살 이후 해산되었듯이 조이 디비젼도 이안 커티스의 죽음으로 해산되었지만,이들은 너바나처럼 뿔뿔이 흩어지지는 않았다.조이 디비젼의 잔류 멤버였던 버나드 섬너(기타)와 피터 훅(베이스),스티븐 모리스(드럼)는 새로 운 여성 키보디스트 질리언 길버트(당시 스티븐 모리스의 애인이자 현 부인)를 영 입하여 80년, 새로운 그룹인 뉴오더를 탄생시켰다.

뉴 오더는 초기에는 펑크의 기운이 많이 남아있는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나 차츰 일 렉트릭 사운드와 기타 락의 균형 잡기에 노력하였고 결국 그들 만의 독특한 뉴웨이브 사운드 구축에 성공한 그룹이다.이들은 그당시 독일 전자 음악계의 대부격이었 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와 아방가르드 전자 음악으로 유명한 아트오브노이즈(Art Of Noise)의 영향으로 신서사이저와 시퀀서 등을 적극 도입하였지만 분명히 이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뉴 오더는 다분히 비상업적이었던-학구적이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듯한-크라프트베르크나 아트 오브 노이즈와는 다르게 상업적으로도 뛰어난 음악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들의 음악이 단지 돈을 위해 양산해내는 ‘땐스’뮤직이라는 말은 아니다.4) 뉴 오더는 각종 일렉트릭 악기의 도입과 수많은 댄스 플로어 용의 리믹스 싱글 작업을 통해서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했지만,이들의 음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댄스뮤직’으로 불릴 만큼 충분히 비주류 적이다.바로 이런점이 이들의 음악이 단순한 댄스 뮤직으로 매도되지 않고 10년 이상이나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뉴 오더는 비록 국내에서는 그 이름값을 다 못하고 있지만,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일렉트릭 팝의 최대 약점인 말랑말랑 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최고의 뮤지션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이다.

조이 디비젼이 그랬던 것처럼 역시 맨체스터의 팩토리 레코드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조이 디비젼의 음악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스타일의 데뷔작인 ‘Movement’를 81년에 발표했다. 82년에 싱글 ‘Temptation'(영화 트레인 스포팅에도 삽입됨)을 공개하여 대대적인 찬 사를 받은 이들은 83년에 또다른 싱글 ‘Blue Monday’를 발표하고 두번째 앨범인 ‘ Power, Corruption And Lies’를 발표하였다.뉴 오더는 이 두 번째 앨범을 통해 다분히 펑크적 잔재가 남아있었던 조이 디비젼 시절의 음악적 모습을 청산하고 기타 락과 신서사이저 댄스 뮤직과의 균형미를 이루는데 성공한다. 85년에 세 번째 정규 앨범인 ‘Low Life’를 발표한 이들은 신서사이저 사운드를 강화하고 드럼 머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등 보다 일렉트릭 사운드에 치중한 모습을 보 여준다. 86년에 발표한 앨범 ‘Brotherhood’는 기타 파트가 강한 멜로디 위주의 사운드를 선 보여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의 공존을 시도했다.

87년,뉴오더는 그동안 자신들이 발표했었던 싱글들과 B면 수록곡,그리고 미발표곡 들을 한데 모아서 더블 컴필레이션 앨범인 ‘Substance’를 발표한다.사실상 그들의 첫 번째 베스트 앨범이자 싱글과 리믹스 작업에 치중하는 이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한 번에 꿰뚫어볼수 있는 작품으로서 미국 시장에서도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이 앨 범에는 국내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곡인 ‘Bizarre Love Triangle'(호주 출신의 뮤 지션 프렌테가 리메이크한 노래)은 물론 ‘1963’등 그들의 히트 싱글들과 조이 디비젼 시절의 미발표곡 ‘Ceremony’,’In A Lonely Place’등이 수록되어 있다. 89년 발표한 하우스 뮤직 스타일의 6번째 앨범 ‘Technique’를 통해 또다시 인기 몰이에 성공한 이들은 90년 영국 월드컵 축구팀 응원가인 ‘World In Motion’을 발표 하여 영국 싱글 차트 첫 정상을 차지했다.

90년대 들어서 이들은 공식적인 활동을 그만두고 얼마 동안 팀 멤버들의 독자적인 프로젝트 밴드 결성으로 팀이 해체된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되었다.버나드 섬너 는 영국의 국민적 락그룹 더 스미스의 기타리스트였던 자니 마와 함께 일렉트로닉이라는 하우스 뮤직 스타일의 밴드를 만들었고,피터 훅은 Revenge를,그리고 스티븐 모리스는 질리언 길버트와 함께 The Other Two라는 프로젝트 밴드를 각각 만들어 각자 활동에 전념했다.(버나드 섬너는 90년에 발표되었던 데뷔작 ‘Electronic’ 에 이어 96년에 크라프트베르크의 전 멤버였던 칼 바튼과 함께 두번째 앨범 ‘Raise The Pressure‘를 발표했고 피터 훅은 Monaco란 밴드를 결성해서 데뷔 앨범 ‘Music For Pleasure’를 발표했다.)

그렇지만 93년 이들은 그동안의 각종 루머들을 일축시키며 새로운 앨범을 내놓았고 ‘Republic’이라는 이름의 이 앨범은 뉴오더의 앨범 중 처음으로 국내에 라이센스 발매되었다.(이들은 이 앨범부터 레코드사를 이적하여 지금은 런던 레이블로 앨범을 발매하고 있다.) 94년과 95년 두장의 베스트 앨범을 발매한 이들은 올해 7월 재결성 공연과 함께 새로운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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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 관한 다른 글 : 출처

우울한 신스 팝의 대명사- 뉴 오더

뉴 오더가 제시한 ‘새로운 질서’란 기존의 펑크적 요소에다 가공할 만한 댄스 비트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독특한 신스-팝이었다. 이들은 조이 디비전에서 들려준 무겁고 암울한 고딕 사운드 대신 시퀸서와 드럼 머신, 신시사이저를 도입한다. 80년대 내내 이들이 주력했던 음악은 다름 아닌 ‘디스코!’ 하지만 이 천덕꾸러기 같은 댄스뮤직조차 뉴 오더를 통해 위트와 재치 넘치는 연주력이 십분 발휘된 독특한 신스팝으로 재창조된다.

무거운 베이스음이 곡 분위기를 주도해 가는, 음울한 분위기의 펑크 내 하위장르인 고딕을 주창하며 70년대 말 등장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은 다름 아닌 이 ‘뉴 오더’의 전신 밴드였다. 미국 공연을 앞둔 1980년 5월 그룹의 핵심인 보컬 이언 커티스의 자살은 곧바로 ‘조이 디비전’의 종언을 의미했다. 조이 디비전의 나머지 맴버들인 버나드 섬너, 피터 훅, 스테판 모리슨은 여성 멤버 이언 길버트를 영입 ‘뉴 오더’를 결성하기 이른다. 그러나 그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라며 다소간의 음악적 방황을 겪게 된다.

♬ Sound Chek Box ♪♩

  • Temptation(1982)
  • Blue Monday(1982)
  • Age of Consent
  • Confusion(1984)
  • Perfect Kiss(1985)
  • Subculture(1985)
  • Bizarre Love Triangle(1986)
  • True Faith(1987)
  • Round & Round”(1989)

그들의 첫 앨범 ‘Movement(움직임-1981)’는 기존 조이 디비전 스타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첫 싱글 “Ceremony(의식-1981)”는 조이 디비전의 짙은 그림자가 여전히 깔려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분명 과거 조이 디비전과의 단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듬해 싱글로 발표된 “Temptation(유혹-1982)”은 이들의 뚜렷한 변화를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나중에 선보일 그들의 음악에서처럼 전자음 비중이 두드러지진 않지만 비트감은 이전보다 훨씬 힘차게 뻗어나가고 곡 분위기도 예전 ‘Movement’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밝다. 버나드 섬너와 피터 훅이 만드는 기타와 베이스간의 하모니가 돋보인다.

하지만 뉴 오더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들의 대표작 “Blue Monday(우울한 월요일-1982)”였다. 뉴 오더의 본격적인 음악 이정표는 바로 이 “우울한 월요일”을 통해 확립된다. 새로 구입한 드럼 머신과 시퀸서의 작동을 시험해 보는 과정에서 탄생한 우울한 월요일은 신시사이저와 드럼 머신이 시종 일관 주요 멜로디와 리듬을 만들어 낸다. 매혹적인 인트로가 신시사이저에 실려 나오는 동안 어느새 디스코 특유의 말 달리는(?) 리듬이 넘실대며 버나드 섬너의 어눌하고 거친 보컬이 뒤를 잇는다. “오늘 당신의 기분은 어떠십니까?”하며 잠시 생각을 할때 쯤 간간이 들이는 피터 훅의 ‘둥당당당’ 하며 울리는 베이스음은 ‘조이 디비전아 안녕!’하고 작별인사를 한다.

마치 지난날 고딕과의 애증을 대변하는 듯. 영국 내에서만 300만장이 팔린 이들의 “우울한 월요일”싱글은 영국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명예로운 기록을 수립하기 이른다. 이듬해 발표된 ‘power, Corruption, & Lie(권력, 부패, 그리고 거짓말-1983)’은 “유혹”과 “우울한 월요일”에서 들려준 음악 재료가 오밀조밀 짜여있다. 버나드 섬너의 기타는 “Age of Consent”에서 보듯 그루브 감이 넘실댄다. 전자음이 그다지 화려하게 느껴지진 않지만 그들이 달성한 “변화의 증거”가 물신 풍긴다.

연이은 싱글 “Confusion(혼돈-1984)”과 “Perfect Kiss(완벽한 입맞춤-1985)”, 그리고 “Subculture(하위 문화-1985)”등에선 우울한 월요일을 능가하는 경쾌한 신스 팝을 들려준다. 전자 음의 비중은 훨씬 높아지고 리듬은 보다 치밀하고 경쾌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신스 팝은 어둡고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다. “완벽한 키스” 종반부에서 들려준 휘몰아 치는 듯한 신사사이저 음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몽환감을 느끼게 한다.

패션 쇼 배경음악으로도 자주 쓰이는 “Bizarre Love Triangle(기이한 삼각관계-1986)”에 지금까지 발표한 싱글들과 미 발표곡들, 그리고 “True Faith(진실한 믿음-1987)”라는 신곡이 수록된 우수한 컬렉션 앨범 ‘Substance’는 뉴 오더가 전형적인 싱글 밴드임을 증명한다. 미국 팝 시장에 그들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가 된 본 앨범의 신곡 “진실한 신념”은 영국 차트 1위 등극의 영광을 밴드에 선사한다. 조이 디비전에 이어 뉴 오더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남긴 것들- 매드체스터의 산파자

이들의 활동 전반기에 발표된 싱글들에서 발견되는 점은 버나드 섬너의 보컬은 결코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멤버 각자의 기량이 균등하게 조화된 신스 팝이 그들의 특징이다. 80년대 초 인기를 누리던 대부분의 신스팝 그룹들이 ‘노래’라는 부분에 비중을 뒀던 반면 이들의 음악은 철저히 ‘4인조 밴드 편성’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멤버들의 사진들로 일관된 “Low life-1985” 앨범 자킷 디자인은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음악을 들어달라는 무언의 요구’와도 같은 이들의 의도는 분명 주류 음반 시장의 관행과는 거리가 있다. 더군다나 보컬을 맡은 버나드 섬너는 지나치게 의기양양(?)하게 들려 청자로 하여금 거부감마저 준다.

뉴 오더가 남긴 음악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두 장르-펑크 록과 댄스 팝-간의 온전한 화학반응을 일궜다는 평가로 집약될 수 있다. 뉴 오더는 스미스와 더불어 향후 90년대 브릿팝으로 이어지는 영국 얼터너티브 록음악의 형세를 예견케 해준 맨체스터 출신의 밴드였다. 그들이 개척한 “우울한 신스팝”은 맨체스터 내에서 카다란 반응을 몰고 왔고, 89년부터 91년 사이에 뉴 오더의 출신지역인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형성된 “매드 체스터 군단(일명 미친 매드체스터들)”의 직접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한다.

80년대 후반 영국 인디 록계의 기억되는 한가지 사건은 댄스 클럽에 불어닥친 “에이시드” 열풍이었고 영국 내에서 몽환적인 하우스 음악의 인기는 주류 록 음악 시장과의 차별 점으로 부각된다. 인디 록계에서도 매드 체스터를 중심으로 이 “에이시드 열풍”의 동반자로 나서게 되었고 이에 뉴 오더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이 설립한 인디 레이블인 팩토리 레코드 회사와 별도로 출신 지역 맨체스터에서 ‘하시엔다’라는 클럽을 운영하면서 맨체스터 출신의 인디 밴드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 곳을 기점으로 인디록과 에이시드 하우스 비트와의 화려한 결합음모는 싹이 트고 있었다.

피터 훅이 프로듀서로 참여한”스톤 로지스”나 뉴 오더의 팩토리 레이블 소속이었던 “해피 먼데이”와 같은 매드체스터를 대표하는 밴드들 역시 뉴 오더의 직간접의 영향을 받으며 등장하게 된다. 그들의 89년작 ‘Tehchnique(기량)’ 앨범은 이런 “에이시드-하우스” 뮤직의 영향을 온전히 반영한다.”Round & Round”(둥글게 둥글게-1989)는 전형적인 하우스 뮤직 구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어디에…-개인 프로젝트 활동

하지만 그들의 명성과는 달리 뉴 오더 내부에선 심심치않게 들려온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차는 활동 전반을 통해 전편에 언급한 스미스에 못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들의 모습을 보기란 여간 힘들다. 공식적인 뉴 오더의 음반은 95년에 발매된 그들의 88년-94년까지의 후반기 싱글 베스트 모음집 이후 아무런 새 음반 발매 소식이 없는 상황이다. 해체설도 없지 않아 나돌긴 했지만 아직까진 공식적인 표명이 없는 상황이다. 사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뉴 오더의 공백은 곧 개인 프로젝트 활동의 진행’을 의미했다. 90년대 들어 이들의 소위 “따로 또 같이”활동 형태는 지금까지 계속된다. 버나드 섬너는 전편에서 언급된 기타리스트 자니 마와 ‘일렉트로닉’이라는 테크노 팝 그룹을 결성하여 현재까지 3장의 앨범을 발표해놓은 상황이다. 피터 훅은 ‘Monacco’라는 프로젝트 음반을 발표하고, 스테판 모리슨과 이언 길버트(둘은 부부임)는 ‘The other two’란 그룹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자스보이-  jassboy@hanmail.net )
The ROCKER™ by InterMuz.com since, 2000.

스튜디오앨범 디스코그래피
1981 Movement
1983 Power, Corruption & Lies
1985 Low-life
1986 Brotherhood
1987 Substance
1989 Technique
1993 Republic
2001 Get Ready
2005 Waiting for the Sirens’ Call
2013 Lost Sirens
2015 Music Complete

링크
the Official site
World in Motion
Taxbox23

  1. 이름의 기원설 1) “새로운 건축 질서”에 대한 신문 기사에서 (Jenny Turner) 2) 또 다른 가볍게 가려진 나치 언급. 조이 디비전 참조 (Roderick) 3)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1993년 New Order Story 비디오에서 Barney와 Gillian은 나치 언급에 대한 농담을 던졌지만, 진지해져서 그 이름을 논리적인 것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melshgeek) ↩
  2. 카롤 체틴스키(Karol Cetinsky)의 사도마조히즘 소설 “인형의 집”에서… 조이디비전은 강제로 추방된 여성들이 휴가를 이용해 나치 장교들에게 매춘을 하도록 강요받은 오두막집이었다 ↩
  3. 남이 쓴 글이니 남겨둔다면 팩토리와 스미쓰 사이에 어떤 “밀월관계”가 있었는 지는 좀 의문이다. ↩
  4. ㅇㅇ? 클래프트베르크와 아트옵노이즈가 상업적인 땐스뮤직?? ↩

Joy Division

Joy Division promo photo.jpg
“Joy Division promo photo” by Source (WP:NFCC#4). Licensed under Wikipedia.

리드싱어 Ian Curtis가 죽기전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던 Joy Division은 팝뮤직씬에 믿기지 않을 만큼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7년 어느날 키타리스트 Bernard Albrecht(Bernard Sumner)는 베이시스트 Peter Hook과 함께 Stiff Kittens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그들은 보컬에 Ian Curtis와 드러머 Steve Brotherdale을 영입하여 Warsaw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들은 Buzzcocks 등의 써포트밴드로 라이브 활동을 시작하였다. 몇개의 데모를 만든 후에 Brotherdale이 그룹을 떠났다. Stephen Morris가 빈 자리를 메꿨다.

그해 말경 그들은 Warsaw Pakt라는 펑크밴드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Joy Division이라고 바꿨다. – Karol Cetinsky의 2차대전에 관한 소설 The House of Dolls에서 영감을 얻은 이 이름은 나찌 병사들에게 매춘을 하도록 강요받았던 여자 부대원들을 일컫는 슬랭이다. – 주로 북부지방에서 공연을 했던 1978년 그들은 그룹의 매니저가 된 Rob Gretton, Factory 레코드사의 오너이자 TV저널리스트였던 Tony Wilson 등의 지지자를 얻게 된다. 그 해 이들은 셀프타이틀 앨범을 녹음했다. 펑크의 클래식으로 남을 뻔했던 이 앨범은 몇몇 곡에 씬써싸이저를 덧씌운 스튜디오 엔지니어의 행동에 화가 난 멤버들이 LP를 전부 폐기시켜버림으로써 전설속으로 사라졌다.(Warsaw라 이름붙여진 이 앨범의 브트렉이 떠돌기도 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첫발매된 앨범은 밴드의 자체 라벨인 Enigma를 통해 발매된 EP An Ideal for Living이다.

그룹은 Martin Hannett과 함께 레코딩을 시작하여 1979년 7월 그들의 오랜 친구인 Tony Wilson의 Factory 레이블을 통해 Unknown Pleasures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평론가의 찬사를 얻었고 꽤 오랜 기간 영국의 인디챠트에 머물렀다. 영국의 펑크붐에 자극받은 미국의 Warner Bros가 계약을 제의했으나 밴드는 이를 무시했다. 그해 그들의 라이브쇼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인기의 이면에는 아이러니칼하게도 Curtis의 심약한 건강도 한몫했는데 그는 공연중에 종종 발작증세를 일으키곤 했다. 점점 더 그의 정상적인 스테이지에서의 제스쳐와 진짜 발작간에 구분이 모호해졌다. 공연이 지속됨에 따라 Curtis는 점점 더 약해져갔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그룹은 유럽 공연에 돌입했다. 그러나 몇몇 공연은 Curtis 때문에 취소되었다.

그룹은 공연을 마친 후 두번째 LP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4월에 Love Will Tear US Aprart를 내놓았다. 5월초 한차례 공연후에 그룹은 미국 공연전에 2주일간의 휴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출발 이틀전인 1980년 5월 18일 Curtis는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Curtis가 죽기전 그룹은 멤버중 한명만 그룹을 떠나더라도 밴드를 해체하기로 약속했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1980년 여름 바야흐로 그룹의 인기가 막 치솟하 오르기 시작했다. 재발매된 Love Will Tear Us Apart는 영국 싱글 챠트 13위까지 오르는 등 그룹의 최대 히트곡으로 부상했다. 8월에 발매된 Closer는 매출이 급상승하여 챠트 6위까지 오르게 된다. 여름이 가기 전에 Unknown Pleasures까지 챠트에 등장했다.

Joy Division의 또다른 위대한 면은 살아남은 멤버들의 후속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Bernard Summer가 주축이 된 멤버들은 1980년 1월 New Order를 조직했다. Curtis의 유작 컴필레이션 성경의 Still이 Joy Division의 이름으로 발매되어 영국챠트 5위까지 올랐다. New Order는 80년대 중반 그들만의 싸운드로 만개하기까지 Curtis와 Joy Division의 그늘을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 앨범에서 Joy Division의 때를 벗기지 못한 그들은 더이상 음습함과 Isolation을 그룹의 음악적 방향으로 삼기를 거부하고 Groove로 전향하여 일렉트로닉 뮤직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 후에도 Sumner는 Pet Shop Boys의 Neil Tenant, The Smiths의 Johny Marr 등과 함께 Electronic이란 프로젝트밴드를 통해, 다른 멤버들은 Monaco, Revenge, The Other Two 등 사이드프로젝트를 조직하여 정력적인 음악활동을 펼쳤다.

Joy Division의 어둡고 음습한 싸운드는 The Cure, Tears For Fears, Echo and the Bunnymen, 그리고 보다 최근의 아티스트로는 Nine Inch Nails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독특한 드러밍과 꿈꾸는 듯한 키타싸운드, Curtis의 카리스마적인 보컬스타일, 자학적인 가사 등이 Gothic 밴드들에게 미친 영향또한 심대했다. 또한 Joy Division의 존재로 말미암아 Manchester의 인디라벨이었던 Factory 레코드사는 영국 음악씬에 주요한 위치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들은 Big in Japan, Echo and the Bunnymen, Cabaret Voltaire 등을 발굴해내는 등 New Wave 싸운드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79 Unknown Pleasures [Qwest]
1980 Closer [Qwest]
1999 Preston Warehouse 28 February 1980 [live] [Factory]
2001 Les Bains Douches [live] [Factory]

링크
Joy Division Centr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