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ry Harrison / Walk On Water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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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Records., Fair use, Link

Walk On Water는 Talking Heads에서 기타와 키보드를 맡곤 했 Jerry Harrison이 1990년 내놓은 그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앨범은 1990년 미국에서는 Sire Records, 영국과 유럽에서는 Fontana Records를 통해 발매되었다. 앨범의 녹음은 제네바, 파리, 런던, 뉴욕 등 다양한 도시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프로듀서 역시 Jerry Harrison, Ernie Brooks, Dan Hartman, Alex Weir, Bernie Worrell, Tom Bailey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세션맨으로는 모던러버스 및 토킹헤즈 시절부터 우정을 나눠오던 이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Ernie Brooks는 모던러버스의 베이스 주자였다. Bernie Worrell은 토킹헤즈의 다수 앨범에 참여한 키보드 주자다.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이들은 Thompson Twins의 Alannah Currie와 Tom Bailey다. Alannah Currie는 I Don’t Mind라는 트랙의 작곡에 기여했다. 톰 베일리는 앞서 말했듯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키보드 연주 및 믹싱에도 기여했다. 또 눈에 들어오는 이는 Dan Hartman이다. 단은 I Can Dream About You라는 유명한 히트싱글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다. 비록 원히트원더이긴 했어도 80년대를 대표하는 강렬한 댄스락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제리는 이 앨범을 위해 직접 곡을 쓰고 – 다른 친구들도 함께 참여하긴 했다 – 노래를 불렀다. 토킹헤즈의 전기에 따르면 제리는 특별히 이 앨범을 위해 보컬레슨까지 받았다고 한다.1 그럴 정도로 이 앨범의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물론 제리는 번과 같은 천재적인 작곡 솜씨나 카리스마 있는 보컬 실력을 갖추진 못했다. 그럼에도 몇몇 곡에서는 번뜩이는 재기가 엿보인다. 예를 들면 네 번째 트랙 Confess는 인트로가 난데없이 Information Society를 연상케 해서 마음에 든다.

제리는 이 앨범의 홍보를 위해 그의 이전 스튜디오앨범의 이름에서 착안한 Casual Gods라 이름 지어진 백업 세션맨들과 함께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은 크리스와 티나가 조직한 또 하나의 토킹헤즈의 사이드프로젝트 탐탐클럽과 함께였다.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의 Universal Amphitheatre 등에서 무려 Bonnie Raitt, K.D. Lang 등을 백보컬로 쓰면서 공연을 가졌다. 당시 이들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쪼그라든 머리들(The Shrunken Heads)”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티나는 그때쯤 새로운 토킹헤즈 앨범이 나왔으면 하고 바랬다고 한다.

요컨대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앨범의 전체적인 노래의 톤은 토킹헤즈의 마지막 세 개의 앨범 Little Creatures, True Stories, Naked 등의 톤과 닮았다는 느낌이다. 다만, 아쉽게도 그 날카로움에 있어서는 토킹헤즈의 언급한 앨범보다 딸린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느슨하고 나른한 느낌의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트랙들로 이루어져 큰 기대도 없지만 큰 실망도 없이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토킹헤즈의 일원의 작품으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Talking Heads / Speaking in Tongues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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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Remain In Light을 내놓은 뒤 Talking Heads는 한동안 꿀맛같은 휴지기를 가졌다. 이 시기에 데이빗번은 브라이언이노와 함께 1981년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놓았다. 데이빗 개인적으로는 The Catherine Wheel이라는 앨범 작업도 했다. 우연히도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해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냈다. 즉, 크리스프란츠는 티나웨이머스와 함께 Tom Tom Club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셀프타이틀 앨범과 Under the Boardwalk를(1982년) 내놓았는데, 첫 번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Genius Of Love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리해리 역시 The Red and the Black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밴드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1982년 밴드의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앨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은 그 나름대로의 그간의 밴드의 음악적 성과가 차곡차곡 담겨진 뛰어난 라이브앨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밴드는 “확장한 토킹헤즈”와 함께 일본 및 유럽을 포함한 순회공연도 – 라이브 앨범을 홍보하는 라이브! – 가졌다.1 이렇듯 밴드 멤버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이후의 활동에 있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이 점점 더 흑인음악의 다양한 면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는 목표를 추구하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리듬 섹션끼리 모여 만든 탐탐클럽의 펑키(funky) 댄스팝 사운드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점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이러한 사실은 바로 1983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Speaking in Tongues가 백인 락과 흑인 댄스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악상의 작업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크리스의 아파트 등에서 진행되었고, 몇몇 기본 트랙은 뉴욕의 Blank Tapes에서 녹음했다. 본격적인 앨범의 녹음은 바하마에서 이루어졌다. 이노는 이제 프로듀싱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4 그렇게 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은 Talking Heads가 되었다. “확장한 토킹헤즈” 멤버중 상당수는 이번에는 앨범 작업에서부터 참여했다. Bernie Worrell은 Girlfriend is Better에서 신디사이저를 맡았고, Nona Hendryx과 Dolette McDonald는 유사(類似) 가스펠곡과도 같은 Slippery People에서 쏘울풀한 보컬을 맡아주었다. Steve Scales는 Burning Down the House 등에서 퍼커션을 연주했다.

특징적인 세션 뮤지션은 Wally Badarou와 Alex Weir다. Level 42와 함께 활동했던 왈리는 이 앨범에서 세 곡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맡아서 앨범의 그루브를 책임졌다.5 R&B 밴드 The Brothers Johnson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Adrian Belew 대신에6 기타를 연주했다. 알렉스는 어이없게도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의 홍보를 위한 라이브 투어에서부터 참여했는데,7 더 많은 흑인 뮤지션의 참여는 더 많은 흑인 음악이 가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결과로 Rolling Stone의 David Fricke은 “예술적인 백인 팝음악과 딥 블랙 펑크(funk)를 구분하는 얇은 선을 마침내 무너뜨린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이미 그 얇은 선은 탐탐클럽이 부순 상황이었고 이 앨범은 그 후속작이다.

A yellow plastic case with clear vinyl albums inside that have red and blue photographs stamped onto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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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앨범 아트

앨범 아트는 데비잇의 작품이다. 이전 작품의 커버 아트에 비해 많이 밝은 톤이라는 느낌인데 당시 밴드는 (토킹헤즈의 팬이기도 했던) 장미쉘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와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동석했던 파티에 가는 등 당대의 화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도 이런 작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이 앨범의 한정판의 디자인도 못지않게 밝은 톤인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창작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라우첸버그의 디자인이 정식 버전이 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복잡한 작품 구성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한정판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빗이 임시로 로스엔젤레스의 선셋마퀴스(Sunset Marquis) 호텔에 있던 의자를 넘어뜨려 찍은 사진을 조합한 커버를 만들게 된 것이다.8

이 앨범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리뷰를 써줄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얻었다. 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백만장 이상의 카피가 팔리며 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특히 카셋테잎의 판매가 두드러졌는데 십대 사이에서의 소니의 워크맨 열풍이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였다. 레코드사는 테잎에는 오리지널보다 더 긴 리믹스 곡을 수록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Moon Rocks를 포함한 다섯 곡이 테잎 버전이 LP 버전보다 길다. 이런 변주를 통해 회사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9

대세가 된 MTV의 존재도 앨범과 싱글의 인기에 한몫했다. 도시 외곽의 평범한 이층집의 벽과 도로에 데이빗의 얼굴이 줌인된 영상이 비춰지고, 전부 하얀 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10 아이, 뚱뚱한 남자, 늙은 여자 등으로 교체가 되는, 토킹헤즈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Burning Down the House11의 뮤직비디오가 MTV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밴드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컨대 스피킹인텅은 워크맨과 MTV라는 시대적 조류에 잘 적응한 한 아트락 밴드의 성공담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앨범이 개인적으로 보다 각별한 이유 하나는 내게 토킹헤즈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Burning Down the House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노래가 좋아서 시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사들고 온 앨범은 알고 보니 밴드의 후속작 Little Creatures였다. 토킹헤즈의 앨범중 국내에 유일하게 라이센스로 나온 앨범은 그 앨범뿐이었고 가게 점원은 그 앨범을 내게 안겨준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토킹헤즈의 파리지옥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 그게 바로 음악적 “방언(Speaking in Tongues)”이 터져 나오는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특히 맘에 드는 점은 흑인 음악으로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전작 Remain In Light을 의식하여 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를 한층 가미하여 본인들도 의식하지 않았을 상업성과 음악성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앨범의 홍보를 위한 공연은 1984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가 감독하여 만든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연 기록물로 간주되는 Stop Making Sense로 이어졌으며,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이 탄생하는 등 이어지는 토킹헤즈의 창작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밌는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킹헤즈와 The Smiths가 스튜디오 앨범 수에서 2배의 차이(각각 8개와 4개)가 나는데, 딱 이 앨범이 토킹헤즈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는 점이다. 즉, 스미쓰는 이 마수걸이를 넘지 못했고 토킹헤즈는 어렵사리 그 작업을 했기에 스미쓰의 2배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1. 일본에서 데비잇과 제리는 아델르 루츠(Adelle Lutz)라는 시세이도 모델과의 염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삼각관계의 승자는 데이빗에 가깝다.(This Must Be The Place, 234-236쪽) ↩
  2. 제리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탐탐클럽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킹헤즈의 경쟁적인 정신을 다시 촉발할 수 있고 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396쪽) ↩
  3. 펑키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다. 한 예로 데이빗은 Making Flippy Floppy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flippy floppy가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 발음이 펑키(funky)했기 때문에 가사로 채택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41쪽) ↩
  4. 크리스에 따르면 이노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예를 들면 그는 미국까지 콩코드를 타고 올 텐데 그 비용을 밴드가 부담하라고 했다고 한다.(Remain In Love, 290p) ↩
  5.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왈리 역시 보렐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였고 Level 42 이외에도 그레이스존스의 Warm Leatherette에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등의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
  6. 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의 서술(234쪽)에 의하면 블루가 더 이상 밴드와 일하지 않게 된 계기는 그가 탐탐클럽과 같이 작업했는데 크리스와 티나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애드리안은 크리스와 티나를 만나면 언제나처럼 즐겁게 인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같은 책 239쪽) 한편 크리스는 애드리안이 Robert Fripp 과 작업하기 위해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main In Love, 291p) ↩
  7. This Must Be The Place, 233p ↩
  8. This Must Be The Place, 248p ↩
  9. This Must Be The Place, 249-250p ↩
  10. 흥미롭게도 일본의 락그룹 안전지대(安全地帯)도 이 영상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하얀 색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 ↩
  11. 크리스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의 제목은 크리스가 관람했던 P-Funk 공연에서 관객들이 “Burn down the house”라고 외쳤던 상황을 밴드 멤버들 간의 잼에서 흉내 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Remain In Love, 289p) ↩

Talking Heads / Remain in Light [1980]

Album cover containing four portraits covered by red blocks of colour, captioned "TALKING HEADS" (with inverted "A"s) at the top and (much smaller) "REMAIN IN LIGHT" at the bot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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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월, Talking Heads 멤버들은 1979년 앨범 Fear of Music을 홍보하기 위한 투어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와 개인적인 관심사를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보냈다. Byrne은 Brian Eno와 함께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를 작업했다. Jerry Harrison은 뉴욕에 있는 Sigma Sound Studios에서 나중에 본인의 초청으로 토킹헤즈의 다음 앨범에서 백보컬을 담당할 소울 가수 Nona Hendryx의 앨범을 제작했다. Chris Frantz와 Tina Weymouth는 카리브 해에서 휴가를 보냈다.

1980년 초에 멤버는 재회했다. Chris의 회고록 260쪽에 따르면 이렇게 다시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티나가 제안한 잼 연주 덕분이라고 한다. 어쨌든  밴드 멤버들은 지금까지 작곡이 대체로 Byrne의 책임이었고, 나머지 멤버들은 백킹 밴드라는 개념에 지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Byrne에 따르면, 그들이 목표로 삼은 이상은 “상호 협력을 위해 자존심을 희생하는 것”이었다. Byrne은 또한 뉴욕에서 느끼고 있던 “심리적 편집증과 개인적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Chris의 회고록 261쪽에 따르면 바하마로 가기 전 미리 작업한 곡은 없었으며 즉흥 연주로 만들 계획이었다고 한다. 또한 멤버들이 크레딧에 오르는 것으로 구두합의했다고 한다. 그룹은 Byrne의 가사에 맞춰 음악을 쓰는 대신 Fear of Music 트랙 “I Zimbra”를 기반으로 확장된 악기의 잼연주를 시도했다. 그렇게 밴드는 바하마1에서 즉흥 연주를 녹음하고, 가장 좋은 부분을 분리하고, 반복적으로 연주하고, 그것을 (라자냐처럼) 겹쳐 녹음하는 법을 익히면서 Remain in Light를 발전시켜나갔다.

Eno는 Byrne보다 3주 후에 바하마에 도착했다. 이전 두 앨범에서 협업한 후 밴드와 다시 작업하는 것을 꺼렸지만 악기 데모 테이프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2 밴드와 Eno는 개별 부분이 폴리리듬으로 맞물리는 공동의 아프리카 음악 제작 방식을 실험했다. Afrobeat의 창시자로 알려진 나이지리아 음악가 Fela Kuti의 1973년 앨범 Afrodisiac이 밴드와 Eno의 앨범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Weymouth에 따르면 힙합의 등장으로 밴드는 음악적 풍경이 변화하고 있음을 깨달았다.3

Eno는 Cale과 Byrne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대했고, 그들은 앉아서 레코드를 들었다. 그가 내놓은 앨범 중에는 Fela Kuti의 Afrodisiac이 있었는데, 이는 Remain in Light의 원형(原形)이 되었다. Eno는 “당시 저는 이 음악에 매우 흥분했고 그들도 매우 흥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스릴이 있었습니다.”[출처]

녹음은 1980년 7월과 8월에 바하마의 Compass Point Studios와 뉴욕의 Sigma Sound Studios에서 진행되었다. 가사는 밴드가 미국으로 돌아와 뉴욕시와 캘리포니아에서 만들었다. 세션 음악가로는 기타리스트 Adrian Belew,4 가수 Nona Hendryx, 트럼펫 연주자 Jon Hassell이 참여했다.5 (결국 앨범 뒷면으로 넘어갈) 커버의 아트워크는6 Tina와 Chris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연구원 Walter Bender와 그의 ArcMac 팀(MIT 미디어 랩의 전신)의 도움을 받아 작업했다. 부부는 히말라야 위로 편대를 이루며 날고 있는 붉은 전투기의 콜라주를 만들었는데, 미국 해군 제독이었던 Tina의 아버지 Ralph Weymouth를 기리기 위해 Grumman Avenger 비행기를 예술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Album cover containing a drawing of a mountain range and four mostly red warplanes flying in formation. There is green text on the left hand side and a barcode in the top right cor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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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ing Heads와 Eno는 모든 노래를 알파벳순으로 “David Byrne, Brian Eno, Chris Frantz, Jerry Harrison 및 Tina Weymouth”에게 크레딧하는 데 합의했지만, 최종 발매된 앨범에는 “모든 노래는 David Byrne & Brian Eno가 씀(David Byrne, Brian Eno & Jerry Harrison이 쓴 “Houses In Motion”과 “The Overload” 제외)”라고 되어 있었다.7 Frantz, Harrison 및 Weymouth는 크레딧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에디션에서는 모든 밴드 멤버들로 크레딧이 바뀌었다. Frantz는 2009년에 그와 웨이머스는 “크레딧 분쟁으로 인해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8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앨범 Remain in Light9 은 1980년 10월 8일 Sire Records에서 발매되었다. 앨범은 음향 실험, 리듬 혁신, 서로 다른 장르를 응집하여 전체로 통합한 시도였기에 비평가들로부터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이 앨범은 미국 Billboard 200 앨범 차트에서 19위, 영국 앨범 차트에서 21위를 차지했으며, 싱글 “Once in a Lifetime”과 “Houses in Motion”이 발매됐다.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 2017년 의회도서관은 이 앨범을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또는 미적으로 중요한” 앨범으로 간주하여 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비평가 Stephen Thomas Erlewine은 이 앨범을 “아프리카 타악기, 펑크 베이스 및 키보드, 팝송 및 전자 음악의 밀집된 혼합물”이라고 불렀다. 2008년 리뷰에서 Vibe의 숀 페네시(Sean Fennessey)는 “Talking Heads는 아프리카 폴리리듬을 NYC로 가져와서 우아하고 색다른 포스트펑크를 만들었다”고 평했다. 정신 분석가 Michael A. Brog는 이 앨범이 록앨범의 형식의 잠재력을 이용하여 “정신병 및 분열증적 경험에 강력하고 당혹스러운 음악적 표현을 공급“하고 있다고 묘사했다.

Byrne은 앨범 보도 자료에 참고 문헌과 함께 앨범이 아프리카 신화와 리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내용의 성명을 포함했다. 이 발표에서는 가사의 주요 영감이 John Miller Chernoff의 African Rhythm and African Sensibility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농촌 아프리카 지역 사회의 삶의 음악적 향상을 조사한 서적이다. Chernoff는 1970년 가나로 여행을 가서 토착 타악기를 연구했고 아프리카인들이 드럼 패턴을 통해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대해 썼다.10

Eno는 Talking Heads에게 Remain in Light의 음악이 4인조가 라이브 공연하기에는 너무 밀도가 높다고 조언했다. 밴드는 앨범을 홍보하기 위해 투어 인원을 9명의 뮤지션으로 확대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Adrian Belew, Parliament-Funkadelic 키보디스트 Bernie Worrell, 베이시스트 Busta “Cherry” Jones, Ashford & Simpson 타악기 연주자 Steven Scales, 백킹 보컬리스트 Dolette MacDonald를 영입했다. 확대된 밴드는 최초로 1980년 8월 23일 온타리오의 Heatwave 페스티벌에서 70,000명의 관객을 대상으로 공연했다. 8월 27일, 또한 Wollman Rink에서 8,000명의 관객을 모아 트랙 쇼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11 12

Radiohead는 Remain in Light가 그들의 2000년 앨범 Kid A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Radiohead 기타리스트 Jonny Greenwood는 루프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Harrison에게 Talking Heads가 대신 반복해서 연주하는 부분을 녹음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Greenwood는 “그래서 듣기에 지치지 않는 이유는 같은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번 약간씩 다르게 들리죠. 거기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2018년 베냉 가수 Angélique Kidjo는 Jeff Bhasker가 프로듀싱하고 Kravenworks 레이블에서 발매한 Remain in Light의 1:1 곡 커버를 발표했다 밴드가 아프리카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여 앨범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했다.

2022년 해리슨과 벨루는 앨범 40주년을 기념하는 3개의 콘서트 일정을 위해 뭉쳤고, 앨범 전체와 Talking Heads의 여러 곡을 연주했다. 2023년, 그들은 프로젝트를 북미 전체 투어로 확대했고, 벨루가 Talking Heads의 영향을 받은 1980년대 King Crimson의 시기에 활동했던 시절의 자료를 포함했다.

1.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의 샤우팅 창법은 일상에서의 “설교, 소리치기, 횡설수설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특히 이 노래는 워터게이트 스캔들 이후의 대중의 편집증을 다루고 있다. 번은 존 딘(John Dean)의 워터게이트 증언에서 나온 직설적인 말을 연구하여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려고 했다. 제목에 사용되고 코러스에서 반복되는 “And the Heat Goes On”이라는 표현은 1980년 여름에 이노가 읽은 New York Post 헤드라인에서 힌트를 얻었고, 번은 데뷔 앨범의 트랙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라는 노래 제목을 “Look at the hands of a government man”이라는 가사로 다시 사용했다.

Don’t you miss it? Don’t you miss it?
Some ‘a you people just about missed it!
Last time to make plans
Well, I’m a tumbler
I’m a government man

이 가사에서 “Last time to make plans”은 리처드 닉슨이 탄핵 직전에 갑자기 사임함으로써 그를 정당하게 처벌하려는 행위를 무력화시킨 계획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지금 한국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진 사퇴할 수도 있다’라는 설이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상황이 연상되어서 씁쓸함을 느끼게 하는 구절이다.

음악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곡은 앨범의 실험적인 시도가 가장 잘 응축되어 있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이 리뷰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브라이언이노도 이곡에서 밴드와 본인이 했던 실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제가 만족했던 다른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악기를 서로 연결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몇 개의 악기가 복잡한 부분을 연주하는 대신, 많은 악기가 매우 간단한 부분을 연주하고 이 부분들이 서로 어우러져 복잡한 트랙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Born Under Punches 에는 5~6개의 베이스가 있었는데 , 각각이 서로 어울리는 간단한 부분을 연주했습니다.(출처)

2. Crosseyed and Painless

이곡의 작업 당시 번은 곡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작가적 난관(impasse)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래서 크리스는 “너도 알겠지만 랩이라 부르는 새로운 것이 있는데, 넌 꼭 노래를 부를 필요가 없어. 그냥 가사를 랩하면 돼. 이거 들어봐”하며 Byrne에게 Kurtis Blow의 “The Breaks“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리고서 번은 한번의 시도만에 성공했다.(회고록 264-265쪽) 아래 가사는 “사실”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받지만 이에 대해 계속 회의(懷疑)하는 화자의 완고함이 느껴진다.

I push the facts in front of me
Facts lost
Fa-Facts are never what they seem to be
No-no-thing there
No information left of any kind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Toni Basil이 댄싱팀 The Electric Boogaloos와 함께 만들었다. 이 뮤직비디오를 보면 토킹헤즈의 음악은 다시 한번, 지적인 갈증을 해소해주는 난해한 음악이기 이전에 앞서 댄스음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13

3. The Great Curve

Byrne이 Robert Farris Thompson의 책 African Art in Motion을 읽은 후 사용한 “The world moves on a woman’s hips”라는 가사로 아프리카 테마를 잘 보여준다.

Sometimes the world has a load of questions
Seems like the world knows nothing at all

또한 도입부의 이 가사가 흥미로운데 언젠가 한 유튜브 영상에서 ‘모두가 비정상인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것은 정상적인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본 적이 있다. ‘번이 자폐 스펙트럼장애라서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서 토킹헤즈의 음악이 편집증적이 아니었을까’라는 이야기도 많지만, 우리 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많은 질문을 던지는 비정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재밌게도 번은 데뷔 앨범의 “No Compassion”에서도 같은 질문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So many people…have their problems
I’m not interested in their problems

요컨대 이러한 상황은 앞서의 트랙 Crosseyed and Painless에서 “사실”을 계속 강요받는 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음악적으로 볼 때 Crosseyed and Painless와 함께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듣는 곡이다. 타악기로 봉고(Bongo)가 쓰였다. 그리고 애드리안 벨루의 기타 간주가 돋보이는 곡. 빠른 속도의 기타 연주와 관악기 연주가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4. Once in a Lifetime

어떻게 보면 이렇게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앨범 속에서 그나마 다소 느긋하게 들을 수 있는 곡. 상업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고 가사 속의 스토리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Nicolas Cage 주연의 The Family Man은 이 곡을 모티브로 해서 시나리오를 썼음에 틀림없다.

And you may ask yourself
“How do I work this?”
And you may ask yourself
“Where is that large automobil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house!”
And you may tell yourself
“This is not my beautiful wife!”

그야말로 ‘나는 누구며 여기는 어디인가?’ 하는 상황이다. 이 가사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재밌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밈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Byrne이 NPR에서 이곡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대체로 무의식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반쯤 깨어 있거나 자동 조종 장치로 작동하고 결국 집과 가족과 직장과 다른 모든 것을 가지게 되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킹헤즈의 곡 가사 중에 가장 유명한 가사가 등장한다.

Same as it ever was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번과 토니베실이 같이 감독한 것으로 크레딧에 올라있다.

5. Houses in Motion

이곡은 세션으로 참가한 Jon Hassell의 으스스한 트럼펫 연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I’m walking a line
I’m visiting houses-in-motion
I’m walking a line

번은 유난히 건축물이나 도시에 대해 곡을 많이 썼는데

  • Love → Building on Fire
  •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 The Big Country
  • Cities
  • Born Under Punches (The Heat Goes On)
  • Burning Down the House
  • (Nothing But) Flowers

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앨범의 제목을 알다시피 – 비록 웨이머스의 아이디어로 채택된 제목이기는 하지만 –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이다. 그리고 솔로 커리어 시절에는 건물을 악기로 사용하여 “Playing the Building”이라는 인터랙티브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6. Seen and Not Seen

Byrne은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이 만든 악기 연주에 낭송 스타일의 시를 낭송한다. 이 시는 은유를 통해 대중 문화에서 보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재형성할 만큼 불안한 한 남자와, 이것이 완벽하게 자연스럽다는 의견을 묘사하고 있다. “Gradually his face would change its shape”이라는 가사에서 보듯 앨범의 등장인물들은 계속 모습을 잃어간다(Crosseyed and Painless는 Lost my shape이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7. Listening Wind

이 노래는 미국 식민지 개척자들을 폭격하는 외국 테러리스트 Mojique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해 Byrne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라이브로 공연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미국이 ​​보편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합니다. 저는 수년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많은 미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들은 우리를 사랑하고, 그저 질투할 뿐이야. 그들은 그저 맥도날드를 원할 뿐이야.’”

8. The Overload

이곡은 Talking Heads가 노래를 Joy Division의 스타일로 만들려 했던 시도다 . 문제는 멤버중 중 누구도 Joy Division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 그냥 그들에 대해 읽은 바에 따라 그 분위기대로 노래를 만들고 연주한 것이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Sci-fi 영화의 사운드트랙처럼.14 가사는 마치 불교의 영겁을 노래하는 듯한 분위기다.

A frequent returning
And leaving unnoticed
A condition of mercy
A change in the weather
A view to remember
The center is missing
They question how the future lies
In someone’s eyes

  1. 밴드가 도착했을 때에는 옆 스튜디오에서 AC/DC가 Back in Black을 녹음 중이었다고 ↩
  2. 이노는 “난 너희들이 가려고 하는 방향이 무척 맘에 들어.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너희 앨범을 프로듀서할 거야.”라고 말하며 엔지니어로 Rhett Davies를 데려왔다.(David Bowman의 책 167쪽) ↩
  3. 맨해튼의 북쪽 할렘에서 등장한 힙합은 서서히 남쪽의 백인 음악의 공간으로 침투하며 협업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 작업의 선두주자로는 토킹헤즈와 블론디 등이 있다. ↩
  4. Belew는 “Crosseyed and Painless”, “The Great Curve”, “Listening Wind” 및 “The Overload”가 될 트랙에서 연주했다 ↩
  5. Eno는 그에게서 “제4세계 음악”의 비전을 보았다. 하셀은 “커피 색깔의” 미래의 고전음악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지구의 반은 15세기를 살고 있고 나머지 반은 순수한 블레이드러너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David Bowman의 책 166쪽) ↩
  6. 앨범의 앞면 커버는 네 멤버의 사진에 컴퓨터그래픽 효과를 통해 멤버들의 얼굴에 빨간 칠을 한 Scptt Fisher라는 프로그래머의 작품이다.(David Bowman의 책 177쪽) ↩
  7. 크리스의 회고록 266쪽 ↩
  8. 한편으로 Chris의 회고록 263쪽에 따르면 크리스 부부는 레코드사에 청구하지 않은 금액 십만 달러 이상을 이 음반에 썼다고 한다. 그는 특히 이노의 냉대와 이에 대한 번의 침묵에 분노가 컸다. ↩
  9. 작업 초기에 정해진 이름은 Melody Attack이었다. 이노가 후에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 영감을 받아 이 이름을 제안했다고 한다. ↩
  10. 이 책은 번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오는 여정에 읽은 책인데 작가는 아프리카에서 8년 이상을 보내며 어떻게 아프리카의 타악기 연주자가 연주를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는 지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드럼 연주의 어휘는 언어의 그것 만큼이나 복잡하였다.(David Bowman의 책 173쪽) ↩
  11. Chris의 회고록 272쪽에 따르면 이 공연의 오프닝은 일본의 일렉트로닉팝 밴드 Plastics가 담당했다고 한다 ↩
  12. 확장된 토킹헤즈 ↩
  13. 우키팝이라는 유튜버가 2024년에 올린 피치포크의 사세 축소에 관한 이 영상을 보면 피치포크의 리뷰를 보고 어떻게 그 유튜버가 토킹헤즈의 음악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었는 지를 여담으로 설명하고 있다. ↩
  14. David Bowman의 책 17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