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

어제 Talking Heads의 스탑메이킹센스(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을 66인치 TV로 감상했다. 고백하거니와, 나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나는 여태 한 번도 이 필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이 없었다. 어제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 마치 이 필름을 봤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왜 착각 속에 살아왔는지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그 공연과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은 지겹도록 들었었고, 파편적인 공연 영상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계속 감상했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무의식적으로 필름 전체를 봤다고 착각하거나 볼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1 뭐 이제라도 봤으니 됐다.

한편 이 공연 필름에서 밴드의 프론트맨 데이빗번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영매(靈媒, psychic) 혹은 무당과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는 굿을 하다 신들린 무당이나 되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기괴한 춤을 추고 몸을 떨어댄다.2 번은 공연 시작과 함께 붐박스와 통키타로 버스킹을 하는 고독한 방랑자이다. 이후 스탭들이 장비를 옮기며 점차 무대가 만들어지고 멤버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제 그들은 그 동안의 발표곡들을 부르면서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안무와 – 특히 번, 백보컬, 티나 등이 선보이는 개다리춤 – 편집증적인 몸떨림 등을 통해 통상 마초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락공연과는 다른 토킹헤즈 표 공연을 선보인다.

이 필름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카메라의 독특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는 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통상의 각도와 다른 각도에서 공연자들과 객석을 찍고 있다. 또 강렬한 조명을 통해 무대를 빛과 그림자로 분할하는 등 극적 효과가 시도된다. 공연자들의 클로즈업을 통해 그들이 마치 연극배우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스티브스케일스나 백보컬 등의 조연의 움직임도 충실히 담아내서 공연의 현장감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객석은 많이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상 막바지에 관객들의 즐거운 표정으로 춤을 추어대는 모습을 짧게 짧게 보여주며 공연의 양방향성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편 이 공연 필름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불편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건 “확장한 토킹헤즈”가 되면서 생길 수밖에 없었을3 “오리지널 토킹헤즈”의 위치 설정에 대한 갈등이 영상을 통해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 내몰린 최우선 순위로 여겨지는 멤버는 개인적으로는 제리, 그는 오리지널 멤버 등장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기타를 치며 공연을 시작하지만, 세션뮤지션 알렉스 위어에 밀려 곧 키보드를 맡게 된다. 하지만 건반악기는 버니워렐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4 이렇듯 스탑메이킹센스 필름은 공연 필름의 걸작임과 동시에 토킹헤즈 팬이라면 맥락을 알 수 있을 컨텍스트가 내포되어있는 영상이기도 하다.

이 공연의 감독 조나단드미는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다른 필르모그래피를 통해 접하면서 ‘멋진 감독이구나’라고 늘 생각하고 있던 감독이다. 특히 ‘썸씽 와일드(Something Wild)’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5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감독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이토록 천재적인 영화인이 음악계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고 있던 밴드의 공연을 필름에 담겠다고 생각했을, 그리고 함께 작업하기로 합의했을 그 상황은 상상만 해도 흥겨운 상황이었을 것 같다. 각자의 분야에서의 천재들이 만나서 협업을 논의하고 마침내 그 결과물이 걸작으로 인정받는 순간. 그런 상황이 스탑메이킹센스에서 실현된 것이다.

  1. 그런데 사실 이런 어이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기억력은 꽤 오랫동안의 고질병이다 ↩
  2. 이러한 안무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rosseyed and Painless의 뮤비를 찍으면서 접한 댄스팀의 안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3.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확장된 토킹헤즈와는 멤버가 달라서 또 다른 “확장한 토킹헤즈”이기도 하다 ↩
  4. 그런데 제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지 지금도 토킹헤즈의 유산에 대한 적자 노릇을 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한 멘탈이다. ↩
  5.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보다 잘 만들어진 흔치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 렉터의 첫 등장을 잊을 수가 있을까? ↩

Talking Heads / Speaking in Tongues [1983]

Talking heads burning down the house standard cover art.jpg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discogs.com/viewimages?release=2188727, Fair use, Link

걸작 Remain In Light을 내놓은 뒤 Talking Heads는 한동안 꿀맛같은 휴지기를 가졌다. 이 시기에 데이빗번은 브라이언이노와 함께 1981년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놓았다. 데이빗 개인적으로는 The Catherine Wheel이라는 앨범 작업도 했다. 우연히도 나머지 멤버들도 같은 해 자신들만의 창작물을 냈다. 즉, 크리스프란츠는 티나웨이머스와 함께 Tom Tom Club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여 셀프타이틀 앨범과 Under the Boardwalk를(1982년) 내놓았는데, 첫 번째 앨범에서 발매된 싱글 Genius Of Love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제리해리 역시 The Red and the Black이라는 솔로 앨범을 내놓았다.

물론 밴드 활동도 이어지고 있었다. 1982년 밴드의 라이브 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가 발매되었다. 스튜디오앨범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진 감도 없지 않지만, 이 앨범은 그 나름대로의 그간의 밴드의 음악적 성과가 차곡차곡 담겨진 뛰어난 라이브앨범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밴드는 “확장한 토킹헤즈”와 함께 일본 및 유럽을 포함한 순회공연도 – 라이브 앨범을 홍보하는 라이브! – 가졌다.1 이렇듯 밴드 멤버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만족스러운 기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기간이 이후의 활동에 있어 가지는 특별한 의미는 각자의 사이드프로젝트를 통해 멤버들이 점점 더 흑인음악의 다양한 면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는 목표를 추구하였고 많은 성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밴드의 리듬 섹션끼리 모여 만든 탐탐클럽의 펑키(funky) 댄스팝 사운드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점이 나머지 멤버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2 이러한 사실은 바로 1983년 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한 Speaking in Tongues가 백인 락과 흑인 댄스팝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3

악상의 작업은 롱아일랜드에 있는 크리스의 아파트 등에서 진행되었고, 몇몇 기본 트랙은 뉴욕의 Blank Tapes에서 녹음했다. 본격적인 앨범의 녹음은 바하마에서 이루어졌다. 이노는 이제 프로듀싱에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다.4 그렇게 되면서 프로듀서의 이름은 Talking Heads가 되었다. “확장한 토킹헤즈” 멤버중 상당수는 이번에는 앨범 작업에서부터 참여했다. Bernie Worrell은 Girlfriend is Better에서 신디사이저를 맡았고, Nona Hendryx과 Dolette McDonald는 유사(類似) 가스펠곡과도 같은 Slippery People에서 쏘울풀한 보컬을 맡아주었다. Steve Scales는 Burning Down the House 등에서 퍼커션을 연주했다.

특징적인 세션 뮤지션은 Wally Badarou와 Alex Weir다. Level 42와 함께 활동했던 왈리는 이 앨범에서 세 곡의 신디사이저 연주를 맡아서 앨범의 그루브를 책임졌다.5 R&B 밴드 The Brothers Johnson의 멤버였던 알렉스는 Adrian Belew 대신에6 기타를 연주했다. 알렉스는 어이없게도 라이브앨범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의 홍보를 위한 라이브 투어에서부터 참여했는데,7 더 많은 흑인 뮤지션의 참여는 더 많은 흑인 음악이 가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결과로 Rolling Stone의 David Fricke은 “예술적인 백인 팝음악과 딥 블랙 펑크(funk)를 구분하는 얇은 선을 마침내 무너뜨린 앨범”이라고 극찬했다. 물론 이미 그 얇은 선은 탐탐클럽이 부순 상황이었고 이 앨범은 그 후속작이다.

A yellow plastic case with clear vinyl albums inside that have red and blue photographs stamped onto them
By Derived from a scan of the cover (creator of this digital version is irrelevant as the copyright in all equivalent images is still held by the same party). Copyright held by the record company or the artist. Claimed as fair use in either case., Fair use, Link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앨범 아트

앨범 아트는 데비잇의 작품이다. 이전 작품의 커버 아트에 비해 많이 밝은 톤이라는 느낌인데 당시 밴드는 (토킹헤즈의 팬이기도 했던) 장미쉘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나 데이빗 호크니( David Hockney)와 같은 팝아트 예술가들이 주최하고 동석했던 파티에 가는 등 당대의 화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도 이런 작풍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한 로버트 라우첸버그(Robert Rauschenberg)가 디자인한 이 앨범의 한정판의 디자인도 못지않게 밝은 톤인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이 창작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라우첸버그의 디자인이 정식 버전이 될 예정이었으나 너무 복잡한 작품 구성 때문에 대량생산이 어려워서 한정판이 되었다. 그래서 데이빗이 임시로 로스엔젤레스의 선셋마퀴스(Sunset Marquis) 호텔에 있던 의자를 넘어뜨려 찍은 사진을 조합한 커버를 만들게 된 것이다.8

이 앨범은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리뷰를 써줄 정도로 상업적인 인기를 얻었다. 밴드의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만 백만장 이상의 카피가 팔리며 RIAA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특히 카셋테잎의 판매가 두드러졌는데 십대 사이에서의 소니의 워크맨 열풍이 이러한 트렌드를 가속화하였다. 레코드사는 테잎에는 오리지널보다 더 긴 리믹스 곡을 수록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에서도 Moon Rocks를 포함한 다섯 곡이 테잎 버전이 LP 버전보다 길다. 이런 변주를 통해 회사는 소비자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더 많은 수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9

대세가 된 MTV의 존재도 앨범과 싱글의 인기에 한몫했다. 도시 외곽의 평범한 이층집의 벽과 도로에 데이빗의 얼굴이 줌인된 영상이 비춰지고, 전부 하얀 색의 의상을 입은 밴드 멤버들이10 아이, 뚱뚱한 남자, 늙은 여자 등으로 교체가 되는, 토킹헤즈 특유의 수수께끼 같은 Burning Down the House11의 뮤직비디오가 MTV에서도 인기를 얻으면서 밴드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요컨대 스피킹인텅은 워크맨과 MTV라는 시대적 조류에 잘 적응한 한 아트락 밴드의 성공담이라고 할 만하다.

이 앨범이 개인적으로 보다 각별한 이유 하나는 내게 토킹헤즈라는 존재를 처음 알려준 노래가 앨범의 첫 번째 트랙이자 밴드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Burning Down the House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노래가 좋아서 시내 레코드 가게에 가서 그들의 앨범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사들고 온 앨범은 알고 보니 밴드의 후속작 Little Creatures였다. 토킹헤즈의 앨범중 국내에 유일하게 라이센스로 나온 앨범은 그 앨범뿐이었고 가게 점원은 그 앨범을 내게 안겨준 것이었다.

이렇게 나를 토킹헤즈의 파리지옥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 수록된 앨범, 그게 바로 음악적 “방언(Speaking in Tongues)”이 터져 나오는 이 앨범이다. 이 앨범이 특히 맘에 드는 점은 흑인 음악으로의 지향점을 보다 명확히 하면서도 전작 Remain In Light을 의식하여 보다 더 아방가르드한 방향으로 진행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팝적인 요소를 한층 가미하여 본인들도 의식하지 않았을 상업성과 음악성의 얇은 선 사이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음악을 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앨범의 홍보를 위한 공연은 1984년 조나단 드미(Jonathan Demme)가 감독하여 만든 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연 기록물로 간주되는 Stop Making Sense로 이어졌으며,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이 탄생하는 등 이어지는 토킹헤즈의 창작물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재밌는 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토킹헤즈와 The Smiths가 스튜디오 앨범 수에서 2배의 차이(각각 8개와 4개)가 나는데, 딱 이 앨범이 토킹헤즈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는 점이다. 즉, 스미쓰는 이 마수걸이를 넘지 못했고 토킹헤즈는 어렵사리 그 작업을 했기에 스미쓰의 2배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어 낸 것이다.

  1. 일본에서 데비잇과 제리는 아델르 루츠(Adelle Lutz)라는 시세이도 모델과의 염문에 휩싸이기도 한다. 삼각관계의 승자는 데이빗에 가깝다.(This Must Be The Place, 234-236쪽) ↩
  2. 제리도 이에 대해 같은 의견이었는데 그는 “탐탐클럽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킹헤즈의 경쟁적인 정신을 다시 촉발할 수 있고 우리는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발언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396쪽) ↩
  3. 펑키함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했다. 한 예로 데이빗은 Making Flippy Floppy라는 곡의 가사를 쓰면서 flippy floppy가 무슨 의미인지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만 그 발음이 펑키(funky)했기 때문에 가사로 채택했다.(This Must Be The Place, 241쪽) ↩
  4. 크리스에 따르면 이노는 이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는데 예를 들면 그는 미국까지 콩코드를 타고 올 텐데 그 비용을 밴드가 부담하라고 했다고 한다.(Remain In Love, 290p) ↩
  5.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던 왈리 역시 보렐처럼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였고 Level 42 이외에도 그레이스존스의 Warm Leatherette에서 곡을 쓰고 연주하는 등의 실력파 뮤지션이었다. ↩
  6. 토킹헤즈의 전기 This Must Be The Place의 서술(234쪽)에 의하면 블루가 더 이상 밴드와 일하지 않게 된 계기는 그가 탐탐클럽과 같이 작업했는데 크리스와 티나가 제대로 정산을 해주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훗날 애드리안은 크리스와 티나를 만나면 언제나처럼 즐겁게 인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같은 책 239쪽) 한편 크리스는 애드리안이 Robert Fripp 과 작업하기 위해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Remain In Love, 291p) ↩
  7. This Must Be The Place, 233p ↩
  8. This Must Be The Place, 248p ↩
  9. This Must Be The Place, 249-250p ↩
  10. 흥미롭게도 일본의 락그룹 안전지대(安全地帯)도 이 영상에서 비슷한 디자인의 하얀 색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다 ↩
  11. 크리스의 회고에 따르면 이 노래의 제목은 크리스가 관람했던 P-Funk 공연에서 관객들이 “Burn down the house”라고 외쳤던 상황을 밴드 멤버들 간의 잼에서 흉내 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Remain In Love, 289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