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pbuilding”은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가 작사하고 클라이브 랭거(Clive Langer)가 작곡한 노래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중에 쓰인 이 노래의 가사는 전쟁으로 인해 클라이드사이드(Clydeside), 머지사이드(Merseyside), 벨파스트(Belfast) 등 전통적인 조선업 지역에 번영이 돌아올 수 있지만, 이 지역의 아들들을 전쟁터로 보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클라이브 랭거에 따르면, 그는 로버트 와이어트(Robert Wyatt)를 위해 곡을 썼지만 자신이 쓴 가사에는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랭거는 한 파티에서 엘비스 코스텔로에게 이 곡을 들려주었고 , 며칠 만에 코스텔로는 자신이 “지금까지 쓴 최고의 가사”라고 묘사한 가사를 완성했다. 엘비스도 직접 불렀던 이 곡의 로버트 와이어트(Robert Wyatt) 버전은 원래 1982년 8월 20일 Rough Trade에서 싱글로 발매되었지만 차트에 진입하지 못했다. 1983년 4월 22일에 재발매되었고 영국 싱글 차트에서 35위를 기록했으며 Rough Trade가1 영국 Top 40에 처음으로 진입한 사례가 되었다.
It’s just a rumour that was spread around town
A telegram for a picture postcard
Within weeks they’ll be reopening the shipyard
And notifying the next of kin once again
It’s all we’re skilled in
We will be shipbuilding
그저 마을에 퍼진 소문일 뿐이야
마치 그림엽서에 적힌 전보 같은 이야기지
몇 주 안에 조선소가 다시 문을 열고
유가족들에게 또다시 소식을 전하게 될 거야
우리가 가진 기술이라곤 그게 전부니까
우린 배를 만들게 될 거야
모리세이는 그의 전기에서(153쪽) 러프트레이드가 스미쓰와 계약하기 전까지는 로버트 와이엇이 그들이 보유한 전형적인 팝스타의 이미지였다고 다소 냉소적으로 회상했다 ↩
내 청춘의 한 페이지에 진한 흔적을 남긴 명곡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와 “Promises, Promises” 등으로 인기를 누렸던 밴드 Naked Eyes의 멤버 피터 번(Peter Byrne)이 9월 1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사망했다. 향년 74세. 그룹의 대변인은 번의 사망을 확인하며, “짧은 투병 끝에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배스 출신의 대학 친구인 번과 롭 피셔는 훗날 Tears For Fears의 멤버가 되는 롤랜드 오자발과 커트 스미스가 속해 있던 밴드 Neon의 초기 멤버였다. 번과 피셔는 이후 듀오를 결성하여 1982년 Naked Eyes를 시작했고, 같은 해 EMI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다. 피터의 최대 히트곡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는 버트 바카라(Burt Bacharach)가 작곡하고 디온 워익(Dionne Warwick)과 루 존슨(Lou Johnson) 등이 불러 인기를 얻었던 곡을 신쓰팝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곡이다. 영면하시길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Records., Fair use, Link
며칠 전인 9월 16일은 토킹헤즈의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True Stories가 발매된 지 40주년 되는 날이었다. 이날을 맞이해 토킹헤즈 공식 사이트에서 뉴스레터를 보내 관련 굿즈를 판매하는 링크를 공유하는가 하면 앨범의 수록곡 Wild Wild Life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재밌는 사실을 공유했다.
명곡 ‘Wild Wild Life’ 뮤직비디오에서 밴드 멤버들은 자신들의 의상을 직접 페르소나를 연기했습니다.
✓ 데이빗 번: 영화 속 정장과 카우보이모자를 쓴 해설자 역을 맡았으며, 텍사스 지역 술집 손님으로 변장하기도 합니다.
✓ 제리 해리슨: Billy Idol, Prince, Kid Creole, 그리고 이소룡 스타일의 무술가로 변신합니다.
✓ 티나 웨이모스: 프린스의 제자 Apollonia(해리슨과 함께)와 Madonna로 변신합니다.
✓ 크리스 프란츠: Ozzy Osbourne 스타일의 헤비메탈 가수, Hank Williams, 그리고 열렬한 스포츠 팬으로 변신합니다.
OTT를 최근 넷플릭스와 와챠로 옮겼다. 옮긴 김에 어떤 영상이 있는지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나중에 볼 영상 찜하느라 시간을 좀 보냈는데, 오랜만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가게 구석구석을 뒤져서 ‘희귀한’ 비디오를 발견하는 듯한 재미를 느꼈다. 넷플릭스에는 없었던 – 또는 내가 그동안 찾지 못한 – 영상이 몇 개 있었는데, 예를 들면 동경러브스토리, 리포맨, 4차원의 난장이 E.T., 아푸 3부작 등을 발견했다. 아무튼 그 와중에 이번 달 압축적으로 꽤 많은 영화를 몰아서 본 것 같다. 그래서 여기 단평을 남긴다.
코드명 J (1995)
윌리엄 깁슨의 단편 소설 《메모리 배달부 조니》를 원작으로 하는 사이버펑크 계열의 영화다. 마침, 영화를 보기 몇 주 전에 오랜만에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다시 읽었기에 그 기분의 연장선상에서 넷플릭스를 끊기 며칠 전에 감상했다. 영화의 원제는 소설의 원제와 같은 《Johnny Mnemonic》인데 우리나라 출시 명은 뜬금없이《코드명 J》로 바뀐다. 좀 어이없는데 암튼, 호불호가 있는 영화인데 결국 윌리엄 깁슨 팬이라면 나름 즐기며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는 너무 어색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2023)
아내가 왓챠에 재밌는 영화가 있다고 추천해 줘서 왓챠에서 처음 본 영화다. 아무 정보 없이 본 이탈리아 영화인데 2023년 만든 영화인데도 2차 대전 직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흑백 필름에 주인공인 여성이 남편에게 수시로 폭력을 당해 《자전거 도둑》 유의 좀 짜증 나는 리얼리즘 영화인가 했더니 의외로 코믹한 연출도 있어 그리 많이 짜증 나지 않으면서 보았다. 결국 신파조로 흘러가는 듯한 고통받는 여성의 삶이 막판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통해 희망을 찾게 되는데 그 부분이 가장 큰 이 영화의 매력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2025)
트위터에서 다들 재밌다고 하는데 사실 디카프리오의 청승맞은 모습이 포스터여서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화장실에 갈 때는 제외하고는 거의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은 채 정주행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 영화가 괜찮으면서도 어딘가 현학적인 냄새가 났는데, 이 영화는 그런 느낌 없이 직관적으로 캐릭터들에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영화였다. 《허공에의 질주》에 대한 21세기 변주라는 느낌도 들었고, 희망 없는 사회에서 어떻게 희미하게라도 미소를 지을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노예 12년 (2013)
이 영화는 쿠팡플레이에서 봤다. 솔로몬 노섭이라는 실존 인물이 북부에서 자유인으로 살고 있다가 사기꾼의 꼬임에 빠져 남부로 갔다가 노예로 팔리며 12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한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보는 것도 고통스러워 한 며칠간 안 보다가 다시 보기도 했다. 극 중간에 노섭이 백인 관리의 린치로 나무에 목이 묶인 채로, 발끝으로 서서 며칠을 버티는 장면이 압권인데 거기서 며칠 감상을 쉬었다. 이 영화를 흑인에서 백인으로 인종을 바꾸고 SF적 요소를 가미하면 찰턴 헤스턴 주연의 《혹성탈출》이 된다.
국제첩보국 (1965)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첩보물 3부작인 렌 데이턴 원작의 해리팔머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데 얼마 전에 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하게 되어 처음 스크린으로 감상하였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스파이 세계의 환상을 그대로 소설과 영상에 옮긴 작품이라면 이 해리팔머 시리즈는 ‘노동계급 스파이’라는 설정의 안티히어로물이다. 당시 영국 영화계의 대세 배우인 마이클 케인이 해리 팔머 역을 맡아 삐딱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지닌 스파이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존 배리의 서늘한 멜로디의 사운드트랙도 극의 분위기에 크게 기여했다.
드라이브마이카 (2021)
개저씨 없는 – 오히려 심히 심약한 성격의 일남 – 홍상수 영화 보는 느낌. 그 와중에도 물론 원작자 하루키 스타일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타르코프스키가 《솔라리스》에서 미래주의적 분위기 연출을 위해 도쿄의 고가도로 드라이브 장면을 찍었다던데 그 장면이 연상되는 드라이브 장면이 자주 나오는 것이 눈이 시원해지면서 인상적이다. 차는 현대인에게 이동의 수단이면서 대사 연습의 공간이자 진실한 대화의 장소다. 여담으로 히로시마에서 홋카이도까지 차로 가면 그 비싼 민자도로 통행료랑 뱃삯이 얼마였을지 궁금하다.
플란다스의 개 (2000)
봉준호의 장편 영화 연출 데뷔작. 오랫동안 그 영화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 마치 그 영화를 진작 봤다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는데 어렴풋이 이 영화도 그런 영화. 백수 생활이 짜증 나는 와중에 아파트 내에서 짖어대는 개 때문에 짜증이 증폭되는 남주의 좌충우돌과 이 남주와 희한하게 동선이 겹쳐 같이 어울리는 여주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단편 정도로 그칠 소재를 멱살 잡고 장편으로 만들어 극장 개봉에까지 성공했다는 것이 봉준호 감독의 실력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든다. 연기는 어설펐고 남주 아내 역의 배우가 가장 연기가 좋았다.
알제리 전투 (1966)
폴 토마스 앤더슨《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만들며 레퍼런스로 중요한 영감을 얻었던 작품으로 언급한 영화다. 제국주의 일타강사 프랑스에서는 금기시되는 치욕의 역사인,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 과정을 다큐멘터리 찍듯이 만들어서 당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작품이다. 지금 다시 봐도 형식이나 연출 기법이 고루하지 않다. 이 의사(擬似) 다큐 형식의 연출은 그 뒤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오늘날 유럽이 왜 제삼세계 인민의 집단이민으로 고통받고 있는지에 대해 역사적 링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메트로폴리스 (1927)
개인적으로는《플란다스의 개》처럼 보지는 않았으나 여태 봤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영화였다. (아니면 봤어도 까먹었을 수도 있고) 암튼 최초의 SF영화라 할 수도 있고, 최초의 계급투쟁 영화라 할 수도 있고, 여러모로 엄청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도시 풍경에 대한 묘사 하나만 놓고도 할 말이 너무 많은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는 마리아. 배우가 너무나 극명한 두 명의 캐릭터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서 깜놀. 연기력, 춤솜씨, 그리고 특히 어떻게 양쪽 눈을 그렇게 차이 나게 뜰 수 있는지 감탄하였다.
난징! 난징! (2009)
조금 전에 막 감상을 끝낸 이 글의 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다. 일본의 난징 대학살을 소재로 하고 있는 중국 영화다. 요즘 만들어진 중국 영화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연출이 예상보다 차분해서 좀 의외였다. 대학살이라는 잔혹한 역사에 비해 오히려 톤이 좀 낮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흑백으로 만든 것도 그런 의도의 일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제리 전투의 존재를 부정하는 프랑스처럼 일본도 난징 대학살의 존재를 외면한다. 제국주의 전통(!)을 지닌 국가가 이 모양이니 세계평화가 요원한 것이다.
그가 한국에 오기까지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1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렇듯이 그 역시도 옆 나라 일본에는 토킹헤즈 활동 초창기부터 공연을 위해 수시로 드나들었고,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었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었고, 솔로 활동 시절에도 공연을 했었음에도 우리나라는 오지 않았었다. 그나마 한국에 방문한 흔적을 남긴 것은 오래전에 그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음악 활동과는 관계없는 방문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 드디어 한국에서 공연을 가졌다. 그런 만큼 개인적으로는 감개무량한 첫 공연이었다.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그의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제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데이빗 번 개인과 토킹헤즈에 대한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공연 기획사의 계산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토킹헤즈의 현역 시절에는 한국에는 그러한 시장이 없었다.2 어제 공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관객층의 나이는 토킹헤즈 시절에 음악을 즐겼을 만한 중장년층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락페스티벌 및 스탑메이킹센스의 극장 상영으로 신규 유입된 듯한 젊은 팬들이 많았다.3
공연장은 경희대학교에 있는 ‘평화의 전당‘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건물(외관도 거창하다4)이었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트위터에서 공연장이 걸어가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위치였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안젠치타이 공연을 감상했던 추억의 장소였지만, 당연하게도 많은 이들에게는 불만이 나올만한 나쁜 접근성의 공연장이었다. 사실은 그만큼 우리나라 공연 문화가 척박한 것이다. 전문 공연장도 아니고 접근성이 후진 대학교 부속건물을 쓰는 공연 인프라. 그게 2026년 K-컬처의 현재다.
이제 공연 이야기를 해보자. 개인적인 감회가 있어 공연 수준의 뛰어남을 논할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공연이 아니었다.5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밴드 둘을 꼽자면 The Smiths와 함께 탑으로 꼽을 밴드인 토킹헤즈, 그 밴드의 프론트맨이었던 번옹이 생애 처음으로 공연을 펼치는 것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경험은 냉정함으로 분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 처음 그들의 음악을 접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 어떤 아련함과 벅참의 감정이 솟아오르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6
인터넷에 올라온 셋리스트 숫자를7 세어보니 번옹이 공연에서 들려준 노래는 총 21곡이었다. 공연시간은 대략 1시간 40분 정도 되었던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번옹이 토킹헤즈 곡들 사이사이에 솔로 곡들을 빼곡하게 배치했다는 점이다. 솔로 앨범의 곡들은 총 10곡이다. 거의 비중이 50대 50인 셈이다. 본인의 솔로 활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번옹의 솔로 활동 곡보다는 모리씨의 솔로 활동 곡을 좋아하는데 이번 공연을 보며 선입견이 좀 바뀌었다.8
조금 냉정을 유지하고 그의 공연을 평하자면 그의 컨셉트는 확실하게 동적(動的)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는, 락 공연이라기보다는 뮤지컬 혹은 댄스 퍼포먼스에 가까운 공연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트위터에서의 각종 감상 트윗) 그간 영상으로 느꼈던 그 역동성이 육안으로 다가오자, 확실히 그 공연의 다이나믹함이 피부로 느껴졌다. 기술의 발전과 본인의 천재성으로 만든 13인조 오케스트라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기계적인 건물 안에 우리 관중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게 번옹의 의도였다.
번옹은 사견으로 본인을 뮤지션이 아닌 퍼포먼서 내지는 종합 예술인이라고 자처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캐릭터는 그가 음악이 아닌 미술 전공의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에 다녔던 이력에서부터 형성되었을 것이다.9 그리고 이후 뮤지션으로서의 활동한 이후에도 공연계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면서 그는 무대를 하나의 종합적인 경험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왔고, 토킹헤즈 초기 활동에서의 그 컨셉트의 정수는 바로 스탑메이킹센스 홍보 공연과 조나단 드미의 영화화에서 꽃을 피우게 됐다.
즉, 번은 로버트 윌슨, 트와일라 타프, 토니 실 등 종합예술인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찌감치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뮤지션이 단순한 소리의 전달이 아닌 다양한 감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번 내한 공연을 포함한 그의 공연 포맷은 그러한 신념이 반영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그간 그의 작업은 뮤지컬로 확장되기도 했었고, 때로는 건물 자체를 악기로 사용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요컨대 번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기에 이번과 같은 마술 같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나를 포함한 관객들을 마법적인 황홀감에 빠지게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치트키는 사실 그런 독특한 공연 컨셉트나 고령을 무색하게 하는 그의 노익장 뭐 그런 것도 아니고 – 그런 것도 있겠지만 – 토킹헤즈 및 그의 솔로 곡들이 가지고 있는 독자성에10 있었다. 누가 – 다른 곡들보다 호응은 덜 했던 듯하지만 – 그 시절에 어떻게 Air와 같은 곡을 만들고 공연할 수 있었을까?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멜로디부터 가사까지 지금 들어도 ‘뭐야 이건?’ 할만한 독창성을 뽐냈던 뮤지션, 그들이 토킹헤즈다.
어떤 사용자는 티나가 오지 않는 공연이어서 공연에 올지 망설였다는 트윗을 올렸던데, –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 어떻게 보면 이러한 고민은 과거 실시간으로 유명 해외 뮤지션의 공연을 즐길 수 없었던 환경의 나라에서는 다소 배부른 고민일 수밖에 없다. 한창 그들의 음악을 듣던 시대가 아닌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이제야 가까스로 시장이 형성된 때에 찾아오는 뮤지션들. 그런데 맘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다고 공연에 안 간다고? 당연히 가야지! 인생은 그런 것이다. ㅎㅎㅎ
뮤지션들이 순회공연을 하면서 전성기 시절의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이 이에 호응할 수 있는 환경, 이건 문외한인 내가 생각해도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추억팔이”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그런 추억팔이도 시장이 있고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마저도 쉽지 않은 수많은 뮤지션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우리 번옹은, 슬기롭게 그런 추억팔이와 본인의 솔로 커리어를 조화롭게 팬들에게 선보여서 팬으로써 너무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감사합니다 번옹.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위시리스트가 몇 개 있다. 이제 나 역시도 이미 장년을 바라보는 비루한 처지라서 신진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이 꿈은 아니고, 어린 시절 감히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그런 뮤지션들을 그나마 K-컬처의 유행 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아마도 … ㅎㅎ 어렵겠지. Joe Jackson, Paul Weller, Depeche Mode, ABC 등등의 뮤지션 공연을 보고 싶었는데, 그런 한 축으로 번옹의 공연을 이번에 본 것이다. 그래서 감사해야겠지. 건강하세요 번옹. ㅋㅋㅋ
잘 알다시피 크리스와 티나 역시 그 학교에 다녔고 번은 이후 중퇴하지만, 그 둘은 끝까지 남아 학교를 졸업했다. ↩
이러한 독자성은 어떤 뮤지션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넘사벽의 독창성으로 규정할 수 있고 이러한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을 극히 희귀하다. 개인적으로 꼽자면 일단 토킹헤즈, 스미쓰, 스트랭글러스, 엑스티씨, 조이디비전 정도가 생각난다. 지금 Bros를 듣고 있는데 그들도 독자성이 있을까? 좋아하는 밴드여서 선입견이 생기기도 한다. ㅎㅎ ↩
얼마 전에 마이애미바이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장면과 마주쳤다. The Rising Sun of Death라는 제목의 이 에피소드는 네 번째 시즌 아홉 번째 에피소드로 일본 야쿠자 세력이 마이애미에서 암약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야쿠자 출신의 일본 형사가 활약한다는 줄거리의 작품이다. 야쿠자는 마이애미에 성매매를 포함한 스트립 클럽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나와 트루디가 직업을 구하는 여성인 것처럼 변장하고 클럽에 잠입한다. 그리고 이들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 장면에서 흥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바로 The Smiths의 Last Night I Dreamt That Somebody Loved Me. 스미쓰 음악이 마이애미바이스에서, 그것도 스트립쇼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리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아서 – 분명 80년대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 약간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노래는 꽤 길게 흐르며 부패한 정치인이 춤을 추던 트루디의 진짜 정체를 알아보는 장면까지 이어진다. 사실 솔직히 나른한 멜로디여서 나름 스트립쇼의 배경음악으로 어울린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 노래는 영국 써머셋의 한 스튜디오에서 1987년 봄에 녹음되고 그해 12월 7일에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마이애미바이스 에피소드는 미국 현지에서 1987년 12월 4일 방영됐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제작진이 미국은 물론 영국에서조차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노래를1 상당히 이른 시기에 접하고 바로 배경음악에 사용한 것이다.
여하튼 이 작품은 이후 비슷한 주제로 만들어진 1993년 작품 Rising Sun2 이전에 야쿠자와의 갈등을 다룬 선구적인 작품이랄 수 있다. 특히 라이징썬에도 출연했던 케리히로유키 다가와가 이 작품에서 주요 캐릭터인 후지쓰 형사로 출연하기도 했다.
80년대 음악의 보고(寶庫) 마이애미바이스를 보다가 인상적인 음악을 하나 발견했다. 얼핏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시절 음악을 연상시키는 곡으로 80년대 후반의 전형적인 뉴웨이브 스타일의 락음악이었다. The Edge Of Town(가사)이라는 제목의 이 곡은 주인공인 쏘니가 현행 법체계하에서 처벌할 수 없는, 살인자로 의심되는 한 영화감독을 홀로 찾아가는 드라이브 장면에서 쓰였는데, 스산한 밤거리와 쏘니의 씁쓸한 표정과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노래를 부른 이들은 The Truth라는 이름의 밴드였다. 이 그룹은 1982년 초, 나인 빌로우 제로(Nine Below Zero) 출신의 데니스 그레이브스(Dennis Greaves)와 믹 리스터(Mick Lister)를 중심으로 결성된 영국의 록밴드다.
미국의 전설적인 뉴웨이브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 겸 배우·작가인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데뷔 약 50년 만에 첫 내한공연한다. 20일 공연기획사 프라이빗 커브에 따르면, 번은 오는 8월21일 오후 8시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첫 단독 내한공연 ‘데이비드 번 후 이즈 더 스카이?(David Byrne Who Is The Sky?)’를 펼친다.[전설 ‘토킹 헤즈’ 데이비드 번, 데뷔 50년 만에 첫 내한공연]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인데 절대 내한공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던 아티스트 중 하나가 데이빗 번인데 그런 그가 드디어 한국에 온다.1 아마도 지난번 스탑메이킹센스 재상영에서의 의외의 흥행 성공(?!)과 썸머소닉에 오는 길에 같이 공연하는 여타 해외 뮤지션의 공연 루틴2 덕분에 그가 한국에 올 수 있는 동력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어떻게든 썸머소닉에 가고 싶었는데 – 데비잇 번과 수에이드 때문 – 일단 내한공연을 티케팅할 생각이다. 여담으로 기억하기로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은 예전에 안전지대가 공연했던 공연장이다.
번이 전에 한국에 온 적은 있는데 지인이 완도에서 결혼해서 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온 적이 있다. ↩
J-Pop의 레전드 마쓰다 세이코(松田聖子)가 데뷔 45주년을 맞아 생애 처음으로 지난 2월 22일 인스파이어 무대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잘 알고 있다시피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일본의 대중문화 유입을 막아오고 있어서 범 아시아권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던 일본의 대중음악은 한국에서만큼은 큰 인지도를 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대중음악의 큰 별이라 할 수 있는 마쓰다 세이코도 내한 공연을 갖기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정황이 있다.
나는 아내와 함께 인스파이어 리조트에 셔틀버스를 타고 일찌감치 도착했다. 처음 와보는 인스파이어 리조트는 인천국제공항 근처에 있는 복합 위락시설로 세이코짱이 공연할 공연장과 함께 호텔, 카지노, 위락시설, 쇼핑몰을 갖춘 시설이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이 시설의 개발과 관련하기도 하여서 이름은 꽤 들었었지만, 많이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라 방문은 처음이었다. 전체적인 시설 규모는 국제공항 근처의 위락시설치고는 인상적인 기능의 시설은 아니었다. 아무려나~
시간이 되어서 입장했는데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공연의 관람자는 8천 명에 달한다고 하였는데 눈에 보이는 공연장의 규모는 대략 그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시설이었다. 우리는 S석의 1열을 예약했기에 공연장 제일 첫 줄에 앉았다. – 다만 오른쪽 끝 언저리 좌석이어서 아내가 불만이 많았다 – 거기에서 공연장을 바라보니 2층에 듬성듬성 빈 자리가 있었지만, 관객들이 나름 차곡차곡 들어차서 티켓 파워가 어느 정도는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일본 팬이 상당수 그 자리를 채워줬겠지만.
공연 예정 시간인 다섯 시가 되었지만, 공연은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의 팬들이 – 내 뒷자리 중년 남성 팬이 주도했다 – 갑자기 ‘세이코’를 외치면서 박자를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관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에 호응해서 – 아마도 대부분이 일본인 팬이었을 듯 – 세이코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대략 5분에서 10분 동안 쉬지 않고 세이코를 연호하여서 나는 슬슬 ‘이분들 초장부터 너무 힘을 빼시는 것 아닌가’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10분이 지난 즈음에 드디어 불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했다.
각주 :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 중 하나가 일본의 관객들은 상당히 조용히 공연을 감상하는 편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게 이날 다 깨졌다. 세이코를 연호하는 팬들도 그렇고 내 옆자리의 중년 일본 여성은 일찌감치 ‘세이코(聖子)’라고 크게 쓰여 있는 하트 모양의 조형물을 만들어와서는 공연이 시작되자, 바로 일어나서 세이코짱의 안무를 따라 하면서 그의 노래를 조용히 따라 부르기도 했다. 이미 한두 번 그의 공연을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는 추측이 가능한 팬질이었다. 스고이~!
첫 곡은 예상을 다소 벗어나는 곡이었다. 아마 공연이 한창 달아오를 즈음에 부르지 않을까 예상했던, 한국에서 그의 인지도를 10~20%쯤 상승시켜 주지 않았을까 짐작되는, 뉴진스의 하니가 불러서 유명해진 바로 그 곡 ‘푸른 산호초(靑い珊瑚礁)’가 공연의 첫 곡이었다. 무대 디자인은 추억을 되새길 팬들을 위한 고려였는지 레트로풍의 디자인이었다. 이후 백업 보컬 등을 겸할 무용수들도 발레복을 입고 나와 춤을 춰서 다소 이색적이기도 했다. 세션들은 층이 진 무대 아래편에서 연주해 주었다.
공연은 대략 세이코짱이 대략 3곡 정도를 소화하고 이후 무용수들이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면서 세이코짱이 새로운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고 무대도 바꾸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락밴드의 거칠게 몰아치는 열정적인 콘서트의 분위기라기보다는 추억을 소환하게 만드는 아이돌의 무대라는 느낌이 다분한 것이 사실이었다. 바뀌는 무대에 따라 세이코짱은 공주 컨셉트로 노래하기도 하고 드럼이나 기타를 직접 연주하는 락걸로 변신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열심히 하는구나!’의 느낌을 주는 공연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연주자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세이코짱과 함께 꾸민 어쿠스틱 무대가 마음에 들었다. 세이코짱의 발라드곡들을 위주로 차분하게 이어진 무대에서는 세이코짱이 (연습해 온) 한국어와 일본어로 설명을 이어가면서 무대를 가졌다. 물론 프롬프트로 읽었겠지만, 그의 한국어 솜씨는 인상적일 정도로 뛰어났다. ‘한국 공연에 대단히 정성을 들였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실한 모습이어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이 어쿠스틱 공연에서 내 최애곡인 SWEET MEMORIES를 불러주었던 장면이었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이 어쿠스틱 공연을 포함하여 2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앞서 언급한 세션 및 무용수 등 다수의 인원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 개인적으로 봤던 해외 아티스트 공연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 일단 티켓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공연이었다. 게다가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일본 팝의 레전드가 내 눈앞에서 손하트를 날려주는 공연이었기에 – 제일 앞자리에 앉은 특혜 – 비록 추억을 쌓아 온 일본 팬만큼 아니겠지만 충분히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재소환할 수 있는 멋진 공연이었다.
돌장미의 경우를 보자면, 우리가 그룹을 시작하게 된 이유야. 음…우리는 그 전에 The Jam과 The Smiths에 푹 빠져 있었지. 그러나 모리씨가 있는 스미쓰와 곱슬머리(quiff)와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그 당시에 밴드를 하려면 우리가 대학에 가거나 아트스쿨 학생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했어. 나는 Paul Weller가 될 거야. 음… 그리고 우리가… 내가 처음 The Roses를 보러 갔을 때 그들은 우리랑 똑같은 옷차림이었어. 이때는 모든 난리가 나기 전이었지. 당시에는 누구도 쿨하지 않았어. 우리는 모두 통이 좁은 바지(drainpipe trousers)를 입고 다녔지.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똑같아 보였어. 음… 그리고 88년이나 89년에 모든 것이 칼라풀해졌고, 내가 처음 Sally Cinnamon을 듣고서는 우리가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됐어. 내 운명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