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년 만에 가라데키드를 다시 보고 있다. 일단 영화를 제작한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작품이고 서양 영화를 추종하던 우리나라에서도 나름 인기를 얻었다. 다만 당시는 가라데가 일본 무술이었고 이를 추종하는 영화는 일본 영화가 아닐지라도 배척받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차마 개봉을 금지하지 못했지만, ‘가라데키드’라는 원래의 이름 대신 ‘베스트키드(Best Kid)’라는 매우 애매하고 어색한 이름으로(심지어 문법도 틀렸다) 국내에서 개봉했다.
그런데 오늘 몇백 년 만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영화의 원작자들은 이 영화를 일뽕 영화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남주 다니엘에게 가라데를 가르쳐주는 미야기 상. 너무나 유명한 캐릭터다. 그런데 사실 미야기 상은 본인을 일본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스스로를 오키나와인이라고 생각했다. 다니엘과 미야기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때 미야기는 오키나와의 위치를 알려준다. “차이나 히어, 저팬 히어, 오키나와 히어.”
더 나아가서 가라데에 대한 미야기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영화에서 미야기는 다니엘에게 가라데는 중국의 무술이라고 가르친다. karate에서의 te는 손을 의미하고 kara는 ‘빈(empty)’이라는 의미인데 이 모든 것은 중국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한다. 다시 말해 다니엘에게 미야기가 가르치는 무술은 중국의 무술이고 그의 출신지는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다.1 다니엘이 영화 내내 욱일기 문양의 헤어밴드를 하고 있지만, 그건 일본 군국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80년대, 이 영화를 배급한 미국 영화사나 이를 수입한 한국 영화사나 당연히 그렇게 인식했겠고, 오늘날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는 사실은 일뽕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 미야기 상은 다니엘에게도 이야기하지만, 미국 이민 2세로서 참전용사다. 그 와중에 아내와 아이를 잃은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딱히 일본을 좋아했을 이유도 없다.2 그러니 미야기 선생이 다니엘에게 가르친 것은 군국주의가 아닌 자립정신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주 다니엘의 역할을 맡은 랄프 마치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는 1961년생 배우로 영화에서의 고딩의 역할을 맡았을 당시 그의 나이는 22~23세였다. 서양인들이 급격하게 노화되는 것을 감안할 때 그의 동안은 역대급이다. 그 후 이 영화의 스핀오프인 코브라카이에 등장하는 그의 모습을 봐도 그의 동안은 역대급이다. 복 받은 얼굴이다. 코난쇼에서 그의 이름의 정확한 발음 등을 두고 코난과 그의 베프가 다툰 에피소드도 너무 재밌다.
New Order가 아직 Joy Division이라는 너무나 두꺼운 껍질을 벗고 뉴오더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품이다. 1983년 내놓은 그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이 앨범의 노래를 통해 뉴오더는 이언 커티스의 안타까운 운명을 뒤로 하고 살아 남은 자들의 삶은 지속된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점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트랙인 Age of Consent는 다소 생뚱맞게 연인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못 하는 어린 누군가를 노래하는데 아마도 이언 커티스 및 조이디비전과의 결별을 선언하지 못하는 나머지 멤버들의 심정을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트랙에서는 We All Stand에서는 계속해서 “Life goes on and on”이라고 자조하듯 뇌까린다. 그런데 세 번째 트랙에서는 드디어 뉴오더 표 그루브가 등장한다. 가사도 “When a new life turns towards you And the night becomes the day”라고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다.
네 번째 트렉 5 8 6 에서는 일단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래 제목에서부터 일렉트로닉팝으로의 지향점을 밝힌 후 한참 이어지는 전주를 통해 80년대 신스팝, 더 나아가 하우스뮤직의 프론티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한다. “Yes, I heard you calling”이라는 가사에서 “너”는 아마도 새로 도래할 신스팝의 80년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노래 후반부에서는 “Can you hear me deep inside?”이라는 가사가 등장하는데 여기에서 “너”는 이제 새로운 음악을 선보일 뉴오더의 음악을 수용할 팬들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뉴오더의 새로운 음악을 들어달라고, 들을 자세가 되었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는 낯익은 베이스 신디사이저음이 들린다.
그런데 이들은 아직도 변화가 두려웠는지 B면 첫 트랙, 즉 다섯 번째 트랙 Your Silent Face에서는 다시 예의 조이디비전 풍의 우울뽕짝의 포스트펑크로 회귀한다. 가사도 다시 수세적으로 바뀌었다. 이어 등장하는 여섯 번째 트랙 Ultraviolence. 제목부터 그렇거니와 다시 본격적으로 일렉트로닉팝 분위기다. 거기에 인더스트리얼 냄새까지 풍긴다. 종을 잡을 수 없는 트랙 순서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 종잡을 수 없음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이 새로운 질서로 거듭나기 위한 정반합의 몸부림인 것이다.
일곱 번째 트랙 Ecstacy는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시피 밴드 멤버들의 마약 경험에 대한 음악이다. 들어봐도 딱 알겠다. 지니어스에서는 그들이 1980~1981 기간 동안 뉴욕 클럽에서 경험했던 마약의 추억을 노래로 담은 것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경험했어도 분명히 경험했을 뽕맞은 음악이다. 그리고 이 분위기가 향후 80년대 하우스 뮤직의 원형적인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인스트루멘탈이다.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트랙의 제목은 흥미롭게도 Leave Me Alone이다. 80년대를 꿰뚫을, 그리고 90년대까지 이어질 사회적 맥락이랄지 그런 것에 무관한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세대의 심정을 적절하게 반영한 제목이 아닐까? 가사도 그렇고 연주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조이디비전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마지막 트랙에서 다시 조이디비전의 음습한 히키코모리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뭐 그런대로 좋다. 그게 또 이 ‘조이디비전+뉴오더’의 매력이니까.
형사물의 전형을 제시한 걸작인 1971년작 프렌치커넥션(The French Connection)의 감독 윌리엄 프레드킨(William Friedkin)이 1985년 내놓은 형사물이다. 그런 면에서 프렌치커넥션은 매우 1970년대스럽고 이 영화는 또한 매우 1980년대스럽다. 두 작품 모두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비정한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의 본질에 여전히 충실하고, 특유의 스릴 넘치는 자동차 레이스도 빼놓지 않았고,1 형사인 남자 주인공이 무모하리만치 수사에 집착한다는 설정은 유사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영화의 스타일과 사운드트랙 등이 많이 바뀌었다. 주인공인 리차드 챈스(Richard Chance)는 더 야비해졌고, 음악은 프렌치커넥션의 째즈 음악에서 80년대 뉴웨이브로 바뀌었다.
우선 캐스팅을 칭찬해 줄 만하다. 일단 챈스 역에는 훗날 히트 드라마 CSI의 “길반장“으로 인기를 얻게 될 윌리엄 패터슨(William Petersen)이 호연을 펼친다. 길반장의 후덕함이 아닌 젊은 시절의 샤프한 미모와 기럭지로 열혈 형사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 악역에는 이미 그 한해 전에 ‘불의 거리(Streets of Fire)’에서 신선한 악당 캐릭터를 선보인 윌리엄 데포(Willem Dafoe)가 맡았다. 챈스의 파트너 존 부코비치(John Vukovich) 역에는 왜소하고 소심하게 생긴 존 팬코우(John Pankow)가 맡았다. 처음에는 약간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의 캐릭터 변화를 고려할 때 훌륭한 캐스팅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외에 각종 조연급도 훌륭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잘 포진되어 있다.
한편, 챈스의 그의 파트너 존 부코비치의 파트너십 스타일은 좀 독특하다. 프렌치 커넥션에서는 지미 도일과 소니 그로소의 파트너십 다소 고지식할 정도로 끈끈한 파트너십 스타일이었다. 더티해리에서의 해리의 파트너 치코 곤잘레즈는 그를 도우려다 살벌한 형사의 세계를 알게 되자 형사를 그만 둘 정도로 나약한 스타일이었다. 리셀웨폰의 마틴 릭스와 로저 머터프는 인종적으로나 성격이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오히려 케미가 되어버리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존은 챈스보다는 더 정공법을 선호하는 강직한 스타일이지만, 결국 집착하고 있는 범죄의 해결을 위해서는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서슴지 않는, 그리고는 종국에는 챈스와 악독하게 닮아가는 진화형(!)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마지막으로 음악 이야기를 해보자. Wang Chung이 전체적인 음악을 맡았기에 사실상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듀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1985년 9월 30일 게펜(Geffen)에서 발매되었다. 타이틀곡인 To Live and Die in LA는 앨범의 첫 번째 싱글로 발매되었고, 미국 빌보드 핫 100 에서 41위까지 올랐다. 썩 훌륭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LA라는 하드보일드한 범죄의 도시의 이글거리는 야자수 풍경과 매우 잘 어울린다. 그들을 선택한 이는 그룹의 노래 중 Wait와 Dance Hall Days를 특히 마음에 들어 한 프리드킨 감독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캐치한 뉴웨이브 사운드 덕분에 이 영화는 또 하나의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역시 80년대의 인기 범죄물이었던 마이애미바이스를 생각나게 한다.
감독이 말하길 프렌치 커넥션을 만들 당시 누군가 조언하길, 뭘 하든 반드시 자동차 레이스는 집어넣으라고 조언했고 그 조언에 따라 만든 장면이 영화 역사상 가장 훌륭한 레이스로 남게 되었다. ↩
By Picture scanned by Ian Dunster from original UK Cassette album and converted to LP size., Fair use, Link
아침에 Naked Eyes의 Burning Bridges를 듣고 있다.1 단 두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내고 팝의 역사에 작은 흔적만을 남긴 밴드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아티스트다. 특히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버트 배커랙(Burt Bacharach)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Always Something There to Remind Me는 내 청춘의 한 시절, 사랑에 가슴 아파하던 시절에 큰 위안이 되었던 곡이었다. 곡을 처음 접한 것은 당시 나름대로 인지도가 있었던 팝 평론가가 녹음해 준 컴필레이션 카세트테이프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절절한 가사와 버트 배커랙 곡 특유의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잘 조합된 노래 자체도 훌륭하지만, 이 곡을 신스팝으로 리메이크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Naked Eyes 만의 천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이 곡 이외에도 Voices in My Head, When the Lights Go Out, Promises, Promises와 같이 캐치하고 댄서블한 멋진 신스팝 곡들이 많다. 단명하기에는 너무나 멋진 밴드였다.
아서 코난 도일의 명작 셜록 홈즈 시리즈 중에서 ‘빨강머리 연맹’을 읽으며 감상하고 있다 ↩
이레이줘가 1987년에 내놓은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당장 귀에 착 감기는 곡은 없으나 Erasure가 지향하는 음악 스타일은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어 반가운 앨범이다. 앤디 벨(Andy Bell)의 후련한 느낌의 보컬과 일렉트로닉팝의 결합, 빈스 클락(Vince Clarke)이 염두에 두고 있던 Yazoo의 남성 버전(실은 게이 버전)이랄 수 있다. 잠깐 옆으로 새자면 빈스 클락은 앤디 벨과 앨리슨 모예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를 발굴한 것만으로도 팝음악 역사에 끼친 선한 영향력을 인정해줄만 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앨범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귀를 확 잡아끄는 매력적인 곡은 없지만 – 이레이저 곡으로 예를 들자면 Love To Hate You와 같은1 – 전체적으로 평균 이상의 캐치한 멜로디를 유지하면서 앤디 벨은 마치 뮤지컬의 주연인 마냥 본인의 보컬 실력을 한껏 뽕이 들어간 화려하고 요염한 자태로 뽐내고 있다.
Side A
1. “It Doesn’t Have to Be”
2. “Hideaway”
3. “Don’t Dance”
4. “If I Could”
5. “Sexuality” Side B
6. “Victim of Love”
7. “Leave Me to Bleed”
8. “Sometimes”
9. “The Circus”
10. “Spiralling” CD Bonus Tracks
11.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New Version)
12. “Sometimes” (12″ mix)
13. “It Doesn’t Have to Be” (Boop Oopa Doo Mix)
By Distributed by Relativity Records – U.S. Press Kit for The Pink Opaque at Worthpoint, Public Domain, Link
Cocteau Twins는 1979년부터 1997년까지 활동한 스코틀랜드 록밴드다. 기타와 드럼 머신을 담당한 로빈 거스리(Robin Guthrie)와 베이스 윌 헤기(Will Heggie)가 스코틀랜드 중부에 위치한 그레인지머스(Grangemouth)에서 결성하였다. 1981년에 The Hotel International라는 디스코텍에서 디제이를 하고 있던 거스리는 나중에 그룹의 보컬을 맡게 될, 당시 17세의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를 만나 그를 팀에 영입했다. 이로써 밴드의 구성이 본격적으로 갖추어졌고 4AD와도 레코드 계약을 하고 앨범을 내놓으며 그들의 미래는 좀 더 밝아지게 되었다.
1983년 Orchestral Manoeuvres in the Dark의 유럽 순회공연의 보조 밴드로 참여했다가 함부르크에서 밴드는 공연에서 빠졌다. 그 와중에 베이스를 맡았던 헤기가 그룹을 떠났다. 이 공백은 이후 다중 악기 연주자 사이몬 레이몬드(Simon Raymonde)로 채워졌다. 1990년에 Heaven or Las Vegas이라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앨범을 내놓은 이들은 그때부터 하락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거스리의 약물남용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그들의 앨범을 쭉 내어주던 4AD의 창업자 이보 왓츠 러셀(Ivo Watts-Russell)과의 갈등도 심해졌다.
결국 밴드는 밴드 해체라는 파국의 길로 접어든다. 20년째 해체한 그들은 드림팝과 에테리얼웨이브(Ethereal wave)의 선구자적인 역할은 한 밴드였다. 그리고 이후 이들의 음악은 슈게이즈 음악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한편 개인적으로는 이들을 탐슨트윈스와 종종 헷갈리곤 한다.1 여성 한 명 남성 두 명이라는 특이한 밴드 구성도 닮았고 밴드명에 ‘쌍둥이’가 들어간 것도 똑같다. 한쪽은 장 콕토를 의미하고 다른 쪽은 에르제의 작품 ‘땡땡의 모험’의 형사 캐릭터를 의미하지만,2 어쨌든 재밌게도 둘 다 ‘쌍둥이’라고 작명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3인조 드림팝 밴드 Cocteau Twins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4AD를 통해 1988년 9월 처음 공개되었다. 미국에서는 캐피톨 레코드사를 통해 유통되었다. 영국 차트에서는 나름 인기를 얻었고 미국 차트에서는 109위 정도까지의 기록을 남겼다. 4AD는 Bauhaus, Modern English, Dead Can Dance 등과 같은 고딕록, 드림팝 계열의 아티스트들을 주로 다룬 독립 레이블이다. 콕토트윈스도 이 앨범을 포함 총 일곱 장의 앨범을 4AD의 도움을 받아 발표했다.
앨범의 이름은 미국 유타주에 있는 볼더(Boulder)산의 별명이 Bluebell Knoll인데 이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수록곡마다 보컬 엘리자베스 프레이저(Elizabeth Fraser)의 청아한 음색이 돋보이는 이 앨범에서는 애써 가사를 이해하려 할 필요가 없다. 가사는 없다. 정확히는 프레이저가 창조한 새로운 언어로 노래한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가사도 찾을 수 없다. 그저 우리는 트랙의 제목과 앨범 제작 당시의 분위기에 근거하여 무엇을 노래하려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당시 밴드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고 한다. 멤버 중 부부였던 거스리와 프레이저는 아이를 가질 예정이었고,1 레이몬드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모두 행복했고2 그러한 경쾌한 분위기는 앨범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가 있다. 아티스트가 창작을 하는 시점에서의 감정을 창작물에 반영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 이 감정을 굳이 자국어 가사가 아닌 새로운 창작어로 표현하는 것도 멋진 시도였다는 생각이 든다. 소위 에테리얼웨이브(Ethereal wave)의 정점에서 탄생한 80년대 걸작이다.
양친을 잃은 여고생 호시 이즈미가 난데없이 야쿠자의 보스가 된다는, 다소 어이없는 설정의 B급 감성의 1981년 작. 극의 전개 중에도 계속 어이없는 전개의 연속이지만, 사이사이 뭔가 색다른 화면 연출 등이 가미되어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감독이 『태풍클럽』의 소마이 신지(相米 慎二)라는데 역시 두 영화의 분위기가 닮았다. 폭주족 오토바이 레이스랄지 이즈미의 부하들과 동급생들이 어울려 불상 아래서 술을 마시는 장면들이 『태풍클럽』에서의 일과 후 학교에서의 군무를 연상케 한다. 주연을 맡은 야쿠시마루 히로코(薬師丸 ひろ子)의 매력이 영화의 흥행에 오할은 한 것 같고 주제가도 좋다. 예전 영화를 볼 때 특히 당시의 도시 풍경을 보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인데, 이 작품은 1980년대 초의 도쿄의 풍경이 잘 담겨 있어 매력적이다.
그런데 ‘아메리칸뮤직어워즈 중요한 행사인 것은 알겠는데 특별히 1985년에 열린 그 행사가 그렇게나 중요해서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인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정답은 ‘아메리칸뮤직어워즈 말고 그다음에 있었던 이벤트’다. 그것은 바로 시상식이 열렸던 슈라인 오디토리엄에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A&M 스튜디오에 미국의 아티스트들이 함께 모여 We Are The World라는 곡을 녹음한 바로 그 밤을 말하는 것이다.
위대한 흑인 음악 뮤지션인 동시에 시민운동가였던 해리 벨라폰테는 영국에서의 기획을 보고 아프리카에서의 비극을 아프리카 계열의 뮤지션이 많은 미국의 팝 음악계가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프리카를 돕기 위한 유사한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 결과 켄 크라켄의 인맥이 작용하면서 초기에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퀸시 존스와 같은 팝계의 거물이 합류하여 프로젝트에 살을 붙여 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레코드사의 기획자들이 달라붙어 뮤지션들을 어렵게 섭외하는 등, 다큐멘터리에서 묘사하는 수많은 난관을 거치면서 마침내 “위대한 밤” 동안에 탄생한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다. 특별히 그 밤이 아메리칸뮤직어워즈가 열린 밤이었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나마 그날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활동하는 미국의 거물급 뮤지션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최적의 날이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날 밤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곡의 녹음을 완성할 수 있었는지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화면으로만 봐도 가슴이 벅찰, 당시 팝계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그 좁은 스튜디오에 모여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이 당시 촬영한 필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그날에 관한 훗날의 인터뷰 중에도 쉴라 이(Sheila E.)2의 인터뷰가 마음 아팠는데3 아무튼 나머지 가수들의 고생도 나름 다 의미가 있었다.4
이 기획에 대한 사견을 말하자면 해리 벨라폰테가 위대한 인물이고 – 심지어 맑스주의자라는 설도 강하고 – 이 기획이 결코 만만한 기획이 아니었음은 분명함에도 그 한계는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밴드에이드 자체도 그렇지만 이 기획 역시 이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일세계의 셀럽들이 제삼세계 인민의 곤궁에 대한 일시적인 시혜적 시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5
그럼에도 1985년 1월 28일이 “가장 위대한 밤” 중 ‘하루’일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를 돕겠다는 명분으로 영국의 백인 뮤지션 위주로 – 의도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 시작한 프로젝트가 미국의 흑인 뮤지션 위주의 프로젝트으로 – 조금 더 연대의 의미가 강화된 – 진화했다는 의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그 한계를 비춰보면 그게 그것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다큐멘터리를 상기해 볼 때 의미는 절대 만만치 않다.
그 다큐멘터리는 사샤 젠킨스(Sacha Jenkins)가 감독한 2023년 『선데이 베스트 : 에드 설리번 이야기(원제 : Sunday Best)』라는 다큐다. 나 역시도 에드 설리번을 그냥 팝 역사상 초창기의 가장 유명한 버라이어티쇼의 사회자 정도로 생각했지만, 다큐를 본 다음에 알게 된 실상은 엄청났다. 그는 단순한 사회자를 넘어서 팝 음악, 특히 흑인 음악을 주류에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일랜드+유태인 계 “백인” 진보 지식인이었던 것이다.
이 다큐를 특별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어떤 면에서는 이 다큐멘터리가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의 프리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밤에 활약한 많은 아티스트들은 상당수 에드 설리번의 도움을 받아 그의 쇼에서 데뷔하고 그 뒤 연예계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 “위대한 밤”의 당사자 해리 벨라폰테, 스모키 로빈슨,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다이애나 로스 등이 애드 설리번의 “의식적인” 도움으로 애드의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
에드는 처음에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스포츠 관련 칼럼을 쓰면서 그 당시 업계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칼럼을 쓴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 행사의 사회를 보던 그는 새로운 매체인 TV쇼에서의 호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 쇼가 바로 그의 이름을 단 애드 설리번 쇼였고, 이 쇼는 앞서 언급했듯 유색 인종에게 전국구 데뷔의 기회를 마련해주면서 미국 팝 음악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쇼가 된다.
요컨대, 서구권의 팝 음악계에서 – 또는 다른 예체능계도 그렇지만 – 어쩌면 어쩔 도리 없이 선각자적인 백인의 도움을 받아 유색 인종이 업계에 진출하는 시기가 있었다.6 그중 가장 적극적인 선각자 중 하나가 바로 에드 설리번이었고, 그의 도움을 통해 연예계에서 기반을 다진 이들이 1980년대 마침내 이제 유색인종인 본인들의 기획으로 마음의 고향인 아프리카 등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행동에 나선 것이 바로 We Are The World였던 것이다.
당신은 그날이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 기획에 참여한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백인 뮤지션이었다는 점인데, 특별히 기획자들이 이러한 인종적 비율을 의식했다기보다는 그냥 영국 팝 음악계가 그렇게 이미 편성되었던 측면은 분명하다. ↩
즉, 요지는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들은 사실 쉴라 이가 아닌 프린스를 무대에 초청하고 싶은 마음에 당시 그의 연인이었던 쉴라 이를 떡밥으로 부른 것이었다.(는 것이 쉴라 이의 생각이고 이는 거의 정설일 것이다) 그런데 “Check Your Ego At The Door”라고 퀸시 존스가 스튜디오에 써 붙여 놓을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진 이들이 한 번에 모인 그날 밤에서도 특히 프린스는 너무 에고가 강한 이였고, 라이오넬 리치에 따르면 그는 “별도의 녹음실에서 별도의 기타 솔로”를 요구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그날 그 에고 강한 밥 딜런도 시큰둥한 표정을 하면서도 나머지 뮤지션들과 끝까지 한 방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날은 그냥 쉴라 이 홀로 미니애폴리스 사단의 일원으로서의 참가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획자들이 프린스의 솔로 파트로 염두에 두고 있던 파트는 잔뜩 긴장한 휴이 루이스(Huey Lewis)에게 돌아갔고, 그는 이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솔로 파트는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파트다. 다큐에서 신디 로퍼 파트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유가 허탈하면서도 재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