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놓기는 벌써 몇 달된 것 같은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시작은 New Romantics의 탄생지라고 할 수 있는 The Blitz에서부터 시작한다. 몇 장 읽지 않았는데 거론되는 인물은 Steve Strange, Boy George, Spandau Ballet, Midge Ure 등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한다. 찾아보니 이런 사이트도 있다. 당시 클럽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웹사이트다.

밴드는 10월 13일 더블린을 시작으로 하여 아일랜드와 영국을 가로지르는 첫 8일 간의 공연을 시작으로 하는 세계 투어를 발표하였다. Gold, True와 같은 히트곡을 보유한 이들은 1989년 해체 이후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밴드의 오리지널 다섯 멤버가 모두 모였다. 작곡 로열티를 둘러싼 다툼은 1999년 대법원에서 끝을 맺었다. 싱어 토니 하들리는 지난 몇 년동안 동생 개리 켐프, 마틴 켐프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차이를 제켜두기로 했다.[Spandau reform for a world tour 중에서]
Flock of Seagulls
Flock of Seagulls은 익조틱한 헤어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룹의 리드싱어는 그룹 조직하기 전에 헤어드레서였다.
Sting
스팅은 Dire Stratits의 Money For Nothing에서 “I want my Mtv” 부분을 불렀다.
Bow Wow Wow
그들은 멤버 한명을 그룹에서 떠나줄것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 직설적이었고 그룹의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Boy George이다.
Johnny Hates Jazz
리드싱어 Phil Thomalley는 The Cure의 초기멤버였다.
Icehouse
그들의 히트곡 Electric Blue는 John Oates가 공동작곡했다.
Wham
그들의 히트곡 The Edge Of Heaven의 피아노는 Elton John이 담당했다.
U2
그들의 최고 히트앨범 The Joshua Tree는 원래 The Two Americas로 이름지으려 했다. 그러나 멤버들이 내쇼날파크에서 여호수아 나무의 사진을 찍은 후 그들의 맘을 바꿨다.
Chaka Kahn
그녀의 최고의 히트싱글 I Feel For You는 Prince가 작곡하였다. 또한 이 곡의 하모니카 솔로는 Stevie Wonder가 소화해냈다.
Madonna
그녀는 1982년 The Breakfast Club이란 밴드의 리드싱어였다.
Robert Palmer
그의 히트싱글 Addicted to Love는 원래 Chaka Kahn과의 듀엣곡이었다.
New Order
그들의 싱글 Don’t Do It의 끝부분에 영화 엑소시스트의 대사 일부분을 백워드하여 삽입하였다.
The Cure
큐어의 키보디스트인 Roger는 한때 Thompson Twins에 몸담았다.
The Police
교사에서 가수로 전업한 스팅이 처음 몸담은 그룹 이름은 Last Exite였다.
Janet Jackson
무명시절 그녀는 “페임” TV 씨리즈에서 댄써였다.
Siouxie and the Banshees
큐어의 로버트스미쓰는 때때로 이 밴드의 드럼을 맡았다.
Depeche Mode
프랑스어로 Depeche Mode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패션잡지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그 뜻은 ‘빠른 패션(?)(fast fashion)’이다.
Art of Noise
1989년에 Tom Jones와 팀을 이룬 Art Of Noise는 Prince의 Kiss를 리메이크했다. 역시 1990년에는 Nothing Compares To You를 리메이크했고 커버버젼이 오리지날보다 더 팔렸다.
Heaven 17
Heaven 17은 1980년 결성되었는데 처음 그들의 이름은 A Clockwork Orange였다.
B52’s
그들의 이름은 B52라 불리우는 벌집 모양의 헤어스타일에서 따왔다.
Frankie goes to Hollywood
원래 밴드 이름은 Hollycaust였는데 곧 Frank Sinatra의 영화 인생에 대한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Spandau Ballet
Spandau Ballet가 1990년 해산한 뒤, Gary Kemp는 배우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는데 The Bodyguard, The Larry Sanders Show, Embrace of the Vampire 등에 출연하였다.
Duran Duran
Duran Duran이 공연을 하기 시작한 클럽 이름은 Barbarella였다. 클럽의 이름은 Duran Duran 이 그룹의 이름을 따온 바로 그 영화의 이름과 똑같다.
Freddie Mercury 와 Thriller
Freddie Mercury가 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위해 한 트랙을 녹음했다는 설이 많았지만 결코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Beat It 의 키타리스트
Michael Jackson의 Beat It 의 키타를 담당했던 사람은 Eddy Van Halen이다.
Kim Wilde
Kim Wilde의 본명은 Kim Smith이다.
Johnny Cougar
John Mellencamp는 예명을 ‘Johnny Cougar’로 바꾼데 대해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이름을 본명으로 바꾼 뒤 이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John Cougar Mellencamp라고 바꿨다.
Bananarama/Shakespear’s Sister
1987년에 Bananarama의 전멤버였던 Siobhan Fahey는 Dave Stewart (Eurythmics)와 결혼했다. 뒤에 그녀는Marcella Detroit와 함께 Shakespear’s Sister를 결성했다

“Spandau Ballet – Parade Coverart” by From Amazon..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우아하고 표준적인 락 앨범이다. 그들의 작품 중에서도 R&B와 재즈의 엣센스를 가장 강하게 도입한 퓨전적 작품이다. 별로 무거운 타악기가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신디사이저의 사용 비율이 높은 것도 아니다. 드럼, 퍼커션, 피아노, 그리고 베이스를 내추럴하게 잘 다루면서, 설득력 있는 Tony Hadley 의 보컬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물론 요소요소에는 동성애자 Gary Kemp 의 기타와 Steve Norman 에 의한 강력한 플레이가 배치되고 있어 얄밉게 멋 부린 연출의 넘버. 레코딩만을 위해 스튜디오에 2개월간 두문불출해 완성되었다는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진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물론, 8곡 모두가 동성애자 Gary Kemp 의 펜에 의한 넘버. 전작“True” 에서부터 표현하기 시작한 스트레이트하고 한편으로 선율적인 멜로디 라인의 구성은 결국은 Gary Kemp 가 목표로 한 미국적 라이브 감각의 어프로치를 본 작으로 원숙하게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멜로디 지향은 발라드 넘버에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어“I'LL FLY FOR YOU”, “WITH THE PRIDE”, 그리고 앨범을 매듭짓는 “ROUND AND ROUND”의 3곡은 그“TRUE” 이상의 완숙도를 느끼고 다른 5곡에도 곡마다 멜로디를 존중하는 세심한 궁리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도 본 작을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하고 있듯이 적어도 팬의 10인중 5명은 지금도 애청 반으로서 들 것임에 틀림없다. 그만큼의 자신 있는 작품이기도 해 걸작으로서의 평가가 높은 본 작이 미국 시장을 포함 세계적인 히트에 연결되지 않았다고 하는 멤버의 분노가 당시 계약하고 있던 Chrysalis 레코드로 향해졌다. 프로모션 불충분으로서 소송까지 이어져 수렁화한 것은 아시는 분도 많을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소니에 이적해 이 실패로부터 회복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인기도 하강선을 더듬어 90년에는 해산에 이르러 버렸다. 긴 것 같고 짧았던 10년이라고 하는 활동 기간 중 5년째라고 하는 가장 빛을 발하고 있었던 시기에 만들어진 본 작 “PARADE”. 찬반양론 있겠지만 그들이 남긴 최고 걸작이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여담이지만, LP반은 반접기의 좌우 양면형 사양이 되어 있고 좌우 양면의 센터부에 게재된 멤버의 쇼트가 함부로 칵코와.
[written by ERIRIN 200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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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dau Ballet in Concert, Liverpool Echo Arena” by Andrew Hurley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Spandau Ballet in Concert, Liverpool Echo Arena.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스팬다우 발레(Spandau Ballet)는 1979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뉴 로맨틱(New Romantic) 그룹으로 80년대에 불어닥친 뉴 웨이브(New Wave) 사조 안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였다. 록시 뮤직(Roxy Music)의 영향을 받은 소울, 팝, 댄스가 어우러진 사운드를 구사하는 이들은 신디사이저 위주의 댄스 팝으로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기타리스트 개리 켐프(Gary Kemp)와 베이시스트 마틴 켐프(Martin Kemp) 형제를 주축으로 보컬인 토니 해들리(Tony Hadley), 리듬 기타와 색소폰, 퍼커션을 두루 담당한 스티브 노먼(Steve Norman), 드럼의 존 키블(John Keeble)의 5인조로 출발, 학교 친구인 스티브 대거(Steve Dagger)를 매니저로 두고 오랜 기간 팀웍을 자랑했다.
초창기에는 언론매체로부터 뉴 로맨틱스(New Romantics)로 일컬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인 과장되고 패셔너블한 의상과 분장을 한 채 런던의 나이트 클럽에서부터 활동을 시작되었다. 이들은 아일랜드 레코드(Island Records)의 계약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들이 직접 리포메이션(Reformation)이라는 레이블을 설립, 크리살리스(Chrysalis)와 배급 계약을 체결하는 수완을 보여주기도 했다.80년 말 발표한 첫 싱글 ‘To Cut a Long Story Short’와 81년 초 ‘The Freeze, Musclebound’ 등의 싱글이 인기를 끌기 시작한 가운데 이들은 81년 데뷔 앨범인 [Journey to Glory]를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와 브라이언 페리(Bryan Ferry)로부터 받은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양한 리듬과 멜로디, 하모니를 주도하는 신디사이저 사운드에 보컬이 어우러진 사운드를 들려주었다.그 해 여름 펑키(Funky)하고 소울풀한 싱글 ‘Chant No.1(I Dont Need This Pressure on)’이 발표되었으며, 연이어 ‘Instinction’, ‘Lifetime’과 같은 히트곡들이 탄생되었다.
2집인 [Diamond](82)는 리듬 위주의 흑인음악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는 펑키(Funky)하면서도 동양적인 멜로디 위주의 사운드를 들려주었으나 1집과 비슷한 스타일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3집 [True](83)는 70년대 후반 록시 뮤직의 앨범과 같이 정교하고 복잡하면서도 미묘한 백인 소울(Soul) 계열이었다. 스티브 노먼의 다재다능함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으로, 그의 색소폰 연주도 감상할 수 있다. 타이틀 곡인 ‘True’는 당시 데이빗 보위의 ‘Lets Dance’를 누르고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미국 시장 진출의 교두보가 되었는데, 몇 개월 뒤 미국 차트에서 싱글 4위, 앨범은 19위에 오르는 히트를 기록했다. 마치 영화 [007]의 주제가를 연상시키는 곡 ‘Gold’는 당시 L.A 올림픽의 찬가처럼 사용되면서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으로 이들의 음악적 방향이 설정되기는 하였으나, 3번째 싱글인 ‘Communication’이 미국에서 실패하면서 이들의 상업적 성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4집 [Parade](84)에는 가사 면에서 게리 켐프의 성숙함과 강한 사회의식을 엿볼 수 있는 ‘Only When You Leave’가 수록되어 있긴 하였으나, 앨범 자체는 미국 시장에서 실패하였으며 영국에서의 성공도 전작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85년 미국에서의 미비한 홍보를 이유로 크리살리스에 소송을 제기, 승소 후 소속사 교체라는 결과는 얻었으나 결국 이들의 경력에 오점을 남긴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다음 해에 현 소니뮤직(Sony Music)을 통해 5집인 [Through the Barricades](86)를 발표하는데,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의 비발매를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회·정치적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타이틀 곡은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10위권 내에 진입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다음 곡인 ‘How Many Lies’는 최후의 미국 차트 진입곡이 되고 말았다.89년 6집인 [Heart Like a Sky]를 발표하고 이듬해인 90년에는 결국 해체하고 말았다.
게리와 마틴 형제는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보디가드] 등 몇몇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토니 해들리는 솔로 활동을 하며 93년 [State of Play]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토니, 존, 스티브 세 사람이 재결합하여 새 앨범을 구상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들과 견줄 만큼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는 듀란 듀란(Duran Duran)이 유일하며, 스팬도 발레는 최초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밴드로서 비평가들로부터 낙천주의 감각과 스타일을 잘 결합시켜 유쾌한 댄스 음악을 창조한 밴드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changgo.com
스튜디오앨범
1981 Journeys to Glory Chrysalis
1982 Diamond Chrysalis
1983 True Chrysalis
1984 Parade Chrysalis
1986 Through the Barricades Epic
1989 Heart Like a Sky Reformation
2000 Musclebound Disky
2009 Once More

By bobgeldof.info, Fair use, LinkEthiopia
10월 마지막 목요일 밤 9시 BBC는 일상적 뉴스를 진행 하던 중, 갑자기 아프리카 특파원 마이클 버크의 현지 리포트를 내보냈다. 그의 기사와 필름은 식량과 식수 부족으로 매일 수천 명이 죽어 가는 이디오피아 북부의 황폐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퀑하니 패인 눈이 클로즈 업되면서 수많은 사람들 의 끔찍스레 부플어 오른 복부와 살이 없는 앙상한 뼈들 이 나타났다. 버크의 리포트가 채 끝나기 전에 많은 시청자들이 전화 를 걸어, 눈물 젖은 목소리로 “이 고통을 중지시키기 위해 대채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라고 물었다. 이어서 도처에서 성금이 쇄도했으며 데일리 미러의 봅 맥스웰은 아사 직전의 수백만 이디오피아인들에게 식 량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기금을 설립했다. 버크의 리포트가 12년 전 방글라데시의 공포 이래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세계의 신경을 자극 했음이 명백했다.
한편 70년대 후반 영국 최정상 팝 그룹 중 하나인 붐타운래츠의 싱어이자 간판이며, 더블린 출신인 봅 겔도프 는 BBC 뉴스를 보면서 가픔이 아팠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고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과 부인 폴라 예이츠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 끝에 그들의 돈을 송금하길 결심했다. 봅은 옛 친구들과 무엇인가를 해서 돈을 마련하여 그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TV에서 방금 지나간 끔찍한 장면에 아직 얼떨떨했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요. 간호원이 나타났고, 이 간호원이 천명의 아기들 중에서 3백명을 추려 내서, 그들에게만 마실 것이 주어지고 나머지 아기들에게는 그저 죽음이 주어지는 장면으로 생각했거든요. 이것은 그야말로 제 멋대로의 생사 결정입니다. 그래서 무척 마음이 상했고 따라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 을 알고 있었는데 ,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지(ULTRAVOX)에게 전화를 했지요.”
세상이 떠들썩한 기라성 같은 팝 스타들을 모은 것은 바로 전화 통화였다. “미지도 뭔가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라고 말하더군요. 정말 기꺼이 승낙했어요. 그날 골동품점을 지나는데 그안에 서있는 사람은 일본 공연차 떠나려고 하는 게리 켐프가 아니겠어요? 그도 역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이만하면 됐어. 듀런 듀런, 스팬도 발레, 스팅, 울트라복스 등 팝사상 일류들만 모였구나’ 이렇게 생각이 되더군요. 출범 준비가 되었던 거죠.” “거절한 사람도 몇 명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3명입니다 . 그들이 참가하지 않은 건 유감입니다. 특히 토쿄의 스테이지를 마치고 레코딩에 늦기 않기 위해 특별기를 전세낸 스팬도 발레는 놀란 만했습니다. U2는 세계 순회 공연 일정에서 하루를 빼어 런던으로 날아왔고, 왬의 4 번째 넘버원, 그리고 크리스마스 빅 히트를 노린다고 호언하던 조지 마이클조차 우리가 대신 그것을 차지하는 것을 원한다고 말했어요. 정말 엄청난 반응이었습니다. ”
영국 거물급 아티스트들 적극 참여 레코팅 세션을 위해 대부대를 트레버 혼 스튜디오에서 집합시킨 겔도프는 불러야 할 노래를 만들어야 하는 급박한 문제에 부딪쳤다. “다행이었어요. 이미 곡을 만들어서 임의로 ‘나의 세상 ‘(It’s My World)이라는 제목을 붙였었는데, 단지 가사를 약간 바꾸어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그들은 아 는가?'(Do They Know It’s Christmas?)라는 제목을 붙이니까 멋지더군요. 곡에 관해서는 미지에게 일임했는 데, 그가 아니었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 예요.”
겔도프는 배후에서 아티스트에게 배당되는 몫의 돈, 즉 이 경우에 있어서는 이디오피아 난민 구호 식량에 직접 연결되는 자금을 늘리려고 애썼다. “대강 50만 장 팔리는 레코드에서 7만 파운드 정도 기대 한다는 것이 보통인데 모든 지출을 검토해 본 결과, 각자가 몫을 포기한다면, 각자가 몫을 포기한다면 1장당 대략 50팬스까지 확보 할 수 있음을 알았어요.” “데일리 미러의 소유주이며 영국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로버트 맥스웰도 우리의 계획을 듣고는 기사를 써주겠다고 승낙했습니다. 기사를 본 어떤 사람들은 지프와 트럭을 제공하겠다고 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레코드를 몽땅 사서 전국의 럭비 구장에서 추첨 판매하겠다고 햇습니다.” “게다가 스튜디오에는 미국의 각 뉴스 네트워크에서 파견된 기자들이 몰려들었는데 그들이 보도한 후, 아랍의 한 백만장자는 비행기를 제공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활주로까지 말예요. 정말 기가 막한 경험이었죠.”
트레버 혼의 스튜디오에서 제작 막상 당일 레코딩이 진행되는 동안 겔도프는 뒷전에서 서로의 충돌을 막는 감독 역할을 했다. “그날 나는 각자에게 주의를 기울이느라 너무 바빠서 다른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맨처음 스팅이 걸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모두들 하나씩 들이 닥쳤어요. 모두 잘들 생겼더군요. 그런데 우스꽝스런 것은 평소엔 결코 서로 말을 주고받지 않던 사람들의 기묘한 모임이라는 것이지요. 웰러와 스테이스 쿠오의 파피트, 그리고 마릴린과 컬쳐클럽의 존 모스, 모두 테이블에 빙 둘러 앉자 정말로 진지한 토론을 하는 것이었어요 .” “사실 약각 걱정도 되었어요. 이 좁은 방에 모인 거물급 아티스트들이 불평하거나 투덜거릴까 말예요. 그러나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우스웠던 것은 쿨 앤드 더 갱의 제임스 테일러가 나타나자 – 당신도 그 목소리를 알 테죠 – 돌연 아무도 그 앞에서 노래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좀은 켕기는 모양이죠. 하지만 서로 존중하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영국 팝의 대명사 혹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총집결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문제되는 것은 누가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모였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었어요.”
겔도프는 자신의 캐리어에 관하여 마지못해 대답하며, 대신 이디오피아 난민들의 생과 사의 문제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듯이 보였다. 그가 현재 인기 차트 30위에 들지 못한다는 사실, 그러나 자신이 속해 있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는 그곳에 복귀하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서 충분할 것이다. 한편 그의 마지막 말로써, 우리는 그가 전에 이 비극에 대하여 가졌던 관심의 방향이 달라졌음을 알 수가 있다. “싱글 한 장이 한 생명을 구합니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이 이디오피아를 통치한다는 이유로, 거기에 깊이 개입치 않으려는 몇몇 국가들의 태도입니다. 생후 3개월 된 아기가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는 아니라구요, 아기의 생사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신입니다. 다른 것은 오로지 신 입니다. 다른 것은 모두 범죄일 뿐이라구요.”
겔도프와 대화하기 얼마전에 그곳 특파원에 전화를 걸어 이 비극에 대하여 정확한 실상을 알아보니 현재 아사의 위험에 처한 사람은 6백만 내지 7백만 정도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시라. 그리고 올스타 밴드에이드 기금(All Star Band Aid Fund)에 참여한 명단을 살펴보시라. 이들은 레코드를 팔아서 이 비극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으려 하는 것이다. 1파운드 좀 넘는 가격이지만, 팔릴 때마다 한 생명을 구할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여기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시오
>> 음악세계 1984년 12월호중에서 <<
Band Aid 1984 참가자 (in sleeve order)
Adam Clayton (U2)
Phil Collins ~ played drums on the recording
Bob Geldof (The Boomtown Rats)
Steve Norman (Spandau Ballet)
Chris Williams (Iron Static Overdrive)
Chris Cross (Ultravox)
John Taylor (Duran Duran) ~ played bass on the recording
Paul Young
Tony Hadley (Spandau Ballet)
Glenn Gregory (Heaven 17)
Simon Le Bon (Duran Duran)
Simon Crowe (The Boomtown Rats)
Marilyn
Keren Woodward (Bananarama)
Martin Kemp (Spandau Ballet)
Jody Watley (Shalamar)
Bono (U2)
Paul Weller (The Style Council)
James ‘J.T.’ Taylor (Kool & The Gang)
George Michael (Wham!)
Midge Ure (Ultravox) ~ played keyboards on the recording
Martyn Ware (Heaven 17)
John Keeble (Spandau Ballet)
Gary Kemp (Spandau Ballet) ~ played guitar on the recording
Roger Taylor (Duran Duran)
Sara Dalin (Bananarama)
Siobhan Fahey (Bananarama)
Sting
Pete Briquette (The Boomtown Rats)
Francis Rossi (Status Quo)
Robert ‘Kool’ Bell (Kool & the Gang)
Dennis Thomas (Kool & The Gang)
Andy Taylor (Duran Duran)
Jon Moss (Culture Club)
Rick Parfitt (Status Quo)
Nick Rhodes (Duran Duran)
Johnny Fingers (The Boomtown Rats)
David Bowie ~ contributed via a recording mailed to Geldof, then dubbed on to the single
Clare Grogan (Altered Images)
Boy George (Culture Club)
Holly Johnson (Frankie Goes to Hollywood)
Sonny Garner (The Lamplighters)
Paul McCartney ~ contributed via a recording mailed to Geldof and then dubbed on to the single
Stuart Adamson (Big Country)
Bruce Watson (Big Country)
Tony Butler (Big Country)
Mark Brzezicki (Big Country)
Jools Holland (Squeeze)
에필로그
미국에서도 이에 영향을 받아 미국의 세계적 뮤지션들이 함께 참여한 USA for Africa를 결성하여 `We are the world‘를 발표하였다. 라이오넬 리치, 마이클 잭슨, 신디 로퍼, 스티비 원더, 티나 터너 등의 USA for Africa와 Band Aid 두 그룹은 세계적 pop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Bob Geldof는 이 일의 취지로 노벨 평화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그 다음해 1985년 7월 13일 두 나라는 Live Aid라는 초대형 공연을 영국Wembley Stadium과 미국의 Philadelphia에 있는 JFK Stadium에서 세계적 스타들이 같은 시각에 함께 공연하는 빅 콘서트를 열게 되었다. Billy Ocean, Ozzy Osbourne, Black Sabbath, Sade, Sting, Phil Collins, REO Speedwagon, Paul Young, Bryan Adams, U2, Beach Boys, Dire Straits, Queen, David Bowie, Mick Jagger, Santanna, Elton John, wham!, Madonna, Paul McCartney, Bob Geldof, Kenny Loggins, The Cars, Neil Young, Power Station, Erid Clapton, Robert Plant, Jimmy Page, Duran Duran, Tina Turner, Bob Dylan등 영국과 미국의 pop 스타들이 보여준 빅콘서트였다.
디스코그래피
Do They Know It’s Christmas?(1984)
관련링크
관련싸이트
밴드에이드에 대한 자세한 소개글
Performers From Band Aid’s “Do They Know It’s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