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e Young Cannibals – The Raw And The Cooked

The Raw and the Cooked.jpg
“The Raw and the Cooked” by amazon.com. Licensed under Wikipedia.

1989년 6월 3일 Fine Young Cannibals의 두 번째 앨범 “The Raw And The Cooked”가 빌보드 탑200 차트 1위에 올라 7주간 머문다. Fine Young Cannibals, Jerry Harrison, 그리고 David Z가 프로듀서를 맡은 이 앨범은 런던에 있는 Sarm West 스튜디오와 Power Plant 스튜디오 등지에서 1986년 중반에서 1988년 말까지 녹음작업을 진행했다. 버밍햄 출신의 Fine Young Cannibals는 그들의 데뷔앨범이 발매되자마자 바로 두 번째 앨범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들은 이 때 Jonathan Demme 감독의 새 영화 “Something Wild” 에 쓰기 위해 The Buzzcocks의 “Ever Fallen In Love”를 리메이크했다. 또한 1987년에는 Barry Levinson의 코미디 “Tin Men”을 위해 세 곡을 더  — “Good Thing”, “Tell Me What”, “As Hard As It Is” — 녹음하고 이 영화에 나잇클럽 밴드로 까메오 출연을 하기도 한다. Prince와 작업하고 싶었던 밴드가 MCA레코드사에 Prince가 앨범을 완성해줄 것을 요청했고, Prince가 시간을 내줄 수 없어서 Prince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엔지니어/프로듀서 David Z.와 함께 Paisley Park 스튜디오에서 “She Drives Me Crazy”를 포함한 세 곡을 더 녹음하여 앨범을 완성한다. 2집의 타이틀은 프랑스의 인류학자 Claude Lévi-Strauss의 저서 “날 것과 익힌 것(Le Cru et le Cuit)”에서 따왔다. 발매 후 앨범은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호응을 얻었다. “She Drives Me Crazy”를 비롯하여 여섯 개의 싱글이 잇달아 발매되고 인기를 얻었다. 반응이 워낙 뜨거워서 곧 이 앨범의 리믹스 앨범 “The Raw And The Remix” 가 후속으로 발매되었다.

Side one – Raw
“She Drives Me Crazy” – 3:36
“Good Thing” – 3:22
“I’m Not the Man I Used to Be” – 4:19
“I’m Not Satisfied” – 3:51
“Tell Me What” – 2:47
Side two – Cooked
“Don’t Look Back” – 3:40
“It’s OK (It’s Alright)” – 3:32 (Cox/Gift/Steele)
“Don’t Let It Get You Down” – 3:23
“As Hard as It Is” – 3:14
“Ever Fallen in Love” (Pete Shelley) – 3:54

When Doves Cry

Prince doves.jpg
“Prince doves”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5월 16일 Prince의 싱글 “When Doves Cry”가 출시되었다. Prince가 작곡하고 프로듀스한 이 곡은 “Purple Rain”이란 이름의 영화와 사운드트랙 앨범에서 처음으로 싱글로 나온 곡이다. 정작 곡을 만든 시기는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늦은 시기였는데, 영화의 감독 Albert Magnoli 가 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추억에 관한 회상 씬을 위한 노래가 필요하다고 요청하여 Prince가 하루 만에 만든 곡이다. Prince는 헐리웃에 있는 선셋사운드 레코드사에 가서 36시간 동안 이 노래를 녹음한다. 보컬과 모든 악기는 Prince 혼자서 해냈다. 믹싱 과정에서 Prince는 여유분의 트랙에 이미 담겨 있던 베이스 연주를 제거할 생각을 하게 된다. 워너브러더스는 처음에 이렇게 만든 곡을 발매하기를 꺼려했지만 Prince는 있는 그대로 발매할 것을 주장했다. 싱글이 발매되자마자 이 곡은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싱글은 그때까지 그 레이블에서 발매된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서 5일 만에 백만 장이 팔렸다. “When Doves Cry”는 1984년 6월 30일 빌보드 R&B 차트 1위를 기록한다. 같은 해 7월 7일에는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5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Prince에게는 최초의 핫100 차트 1위곡이었고 싱글은 이백만 장이 팔려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싱글 앨범이 되었다. 롤링스톤지는 이 곡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 중에서 52위에 선정했다.

뮤직비디오

Kiss

Prince kiss.jpg
“Prince kiss”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Licensed under Wikipedia.

1986년 4월 5일 Prince And The Revolution의 “Kiss”가 빌보드 R&B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4월 19일에는 핫100 차트 1위에 올라 2주간 머물렀다. Prince가 작곡한 이 곡은 애초에 Mazarati라는 밴드가 자신들의 데비 앨범에 쓸 곡을 만들어 달라고 Prince에게 요청해서 만들어진 곡이었다. Prince는 어쿠스틱 기타로 재빨리 작곡을 해서 역시 단시간에 1분짜리 데모도 만들어냈다. 프로듀서 David Z. 와 일하면서 Mazarati는 뼈대만 있는 데모를 틀이 갖춰진 트랙으로 만들어갔다. Prince는 그들이 한 작업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들의 보컬을 백그라운드 보컬로 남겨둔 채 자신의 노래와 기타를 추가해서 자신이 발표하기로 결정했다. 프린스의 두 번째 영화 “Under The Cherry Moon”의 사운드트랙이라 할 수 있는 앨범 “Parade”에 이 노래가 추가되었지만 워너브라더스는 이 노래의 미니멀리스트적인 구성 때문에 인기를 얻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앨범의 첫 싱글로 이 곡이 발표되자 반응은 뜨거웠다. 이 곡은 “When Doves Cry”, “Let’s Go Crazy”에 이어 Prince의 세 번째 1위곡이 되었다. 또한 “Kiss”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듀오 또는 그룹에 의한 베스트 R&B 보컬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1986년에는 영국의 팝밴드 Age Of Chance, 1988년에는 The Art Of Noise가 리메이크하는 등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롤링스톤은 이 노래는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서 464위로 선정했다.

뮤직비디오

Prince의 활동 재개?


이미지 출처

The New Yorker가 David Bowie의 신곡 소식을 전하면서 Prince에 관한 소식도 전했다. 전문을 보려면 여기로.

카리스마를 지닌 또 하나의 록스타가 더 흐릿한 상황에서 이번 주 온라인에 다시 등장했다. 앨범 20Ten을 내놓은 이후 특징 없이 레코딩 아티스트로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Prince가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기원이 확실치 않은 트위터 계정 @3rdeyegirl이 프린스의 공연 연습, 미발표 리믹스, 그리고 전혀 새로운 노래 한 곡 등을 링크 걸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Same Page Different Book”이란 제목의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은 즉시 프린스가 여태 발표했던 그 어떤 곡보다도 빠르고 시사적인 곡이 되었다. 다음 앨범에 – 또는 그에 관한 다른 것들에 – 대한 소식은 없다. 그러나 노래는 한 곡 있고, 현재까지는 그걸로 족하다.

유투브에 올라 있는 Same Page Different Book 비디오는 현재 “저작권 이슈” 때문에 비공개로 전환됐다.(짲응 지대로!)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Lennons by Jack Mitchell.jpg
By Jack Mitchell, CC BY-SA 4.0, Link

출처는 모릅니다 http://myhome.naver.com/ouimoi/favorite/80년대사건.htm 라는 링크가 남아 있긴 한데, 지금 열어보니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 페이지라는군요. 누군가 예전에 “음악세계”란 잡지에서 본 것 같다는 코멘트를 달아놓기도 했네요. 여하튼 저작권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고요. 이 중 몇 개나 동의하시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Pop Events Of The Decade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1. 1980-핑크 플로이드의 화제작 「벽」

1980년 최대의 화제작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이었다. 67년 데뷔작 「여명의 문 앞에 선 풍적수」(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표한 이래 핑크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으로 팬들은 물론이고 아티스들에게도 음악적인 영향을 미쳤다. 73년 「달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Moon) 이래 최대의 앨범이라는「벽」은 15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 82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또 다시 핑크 플로이드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앨런 파커 감독의 이 영화는 당시로선 최장시간의 록영화였다. 라이브 에이드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봅 겔도프가 주연한 이 영화는 록 스타의 정신적인 붕괴를 다룬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정치만화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제럴드 스카프의 작품.

2. 1980-존 레논 흉탄에 쓰러지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80년 12월 8일 뉴욕에 있는 다코타 아파트에서 마크 채프먼이라는 사내의 총탄에 쓰러졌다.  80년 11월, 5년 동안의 침묵을 깨며 그는 앨범 「이중 환상」(Double Fantasy)을 발표하여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싱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Just Like> Starting Over)은 그의 죽음 이후 차트 1위에 올라 사람들을 더욱 애석하게 했다. 비틀즈 시절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존은 60년대 팝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만함 속에 번득이는 예지등으로 그의 개성은 더욱 팬들에게 어필되었고, 65년 비틀즈 멤버로서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3. 1981-MTV의 영향

1981년 8월 미국의 어느 케이블 방송국은 24시간 동안 음악만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MTV(Music Televison)이다. 75년 일본의 소니사에 의해 비디오가 대중화될 때부터 MTV의 출현은 이미 예상되었는데, 디스크의 소리에 TV의 화면을 접목시킨 것이었다. 노래를 듣고, 거기에다 보기까지 하니 음악의 내용도 상당히 변하게 되었다.  MTV는 뉴 웨이브 가수들의 출현을 앞당기기도 했다. 듀란 듀란, 컬처 클럽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70년대 통신기기의 대변혁인 비디오가 음악에 미친 영향은 바로 MTV의 출현이었다.

첫 시작을 알린 비디오는 그 유명한 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4. 1981-뉴웨이브의 기수들

뉴웨이브라는 말처럼 뜻이 다양하고 복잡한 용어도 드물 것이다. 70년대 말 펑크와 디스코, 그리고 기존 록의 혼합물을 뉴웨이브라고 부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기계적으로는 MTV의 등장이 뉴 웨이브의 출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70년대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80년대의 요구에 맞춘 것이 뉴 웨이브라고 보는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기반은 1981년 블론디였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멘 앳 워크. 폴리스. 유리쓰믹스. 컬처 클럽. 듀란 듀란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감각적인 사운드, 현대적인 감각의 화장 및 분장 그리고 환상적인 패션 등이 그들의 개성이기도 했다. 70년대 말의 파괴적인 펑크 시대 이후 찾아온 대중 음악, 그것이 뉴 웨이브였다.

5. 1982-CD 및 LPD의 개발

디스크와 TV의 만남이 MTV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각과 청각의 동시 해결이라는 요구는 풀렸지만 그 질(質)이 문제였다. 먼저 원음(原音)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것이 CD(Compact Disk)이다. 일본의 소니사와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82년 CD발매를 개시했다. 광통신(光通信)의 발전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화면도 실물에 가까운 생생한 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이  LDP(Laservision Disk Player)이다. 83년 일본의 파이오니어사는 LDP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MTV가 제공하는 음악의 발전 단계가 LDP인 것이다. 이제 팬들은 생생한 소리와 화면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비디오의 등장처럼 LDP가 음악계의 흐름을 뒤집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초기 단계다. LDP의 대중화는 비디오에 못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결국 LDP는 단명하고 말았고 현재는 DVD가 대세죠 : 옮긴 이 주)

6. 1982-80년대의 음악 뉴 에이지

80년대 들어 태동한 두 가지 음악 장르라면 뉴 에이지와 랩이다. 80년대 초부터 ‘뉴 에이지’ 또는 ‘환경음악'(주로 일본) 등으로 불린 이 음악은 동양적인 명상음악이라는데 특징이 있었다. 굳이 뉴 에이지를 82년의 사건으로 잡는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뉴 에이지라는 음악을 대중화시킨 조지 윈스턴의 활동을 기초로 했다. 80년 조지는 「가을」(Autumn),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12월」(December)등을 발표했다. 위의 앨범이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아 83년 초 빌보드 재즈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반젤리스는 82년 <불의 마차 ‘(Chariots Of Fire)라는 영화음악으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반젤리스가 뉴에이지? : 옮긴 이의 의문) 이때부터 뉴 에이지는 그
독립성을 인정받아 87년 최초의 뉴 에이지 그래미 수상자 안드레아스 플렌바이더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CD의 보급은 뉴 에이지를 전파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되겠다.

7. 1983-80년대의 대표적인 뮤지션 마이클 잭슨

지금도 팬들에겐 <빌리 진>(Billie Jean)의 전주 부분이 귀에 생생할 것이다. 83년 팝계를 휩쓸어 버린 수퍼스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 가수의 방영을 꺼리던 MTV에 그는 백인에 가까운 성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영화감독 존 랜디스 (“블루스 브러더스”<Blues Brother>의 감독)를 영입하여 만든 비디오 <비트 잇>(Beat It)은 마이클을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타운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보여준 그의 춤 솜씨와 퀸시 존스에 의해 프로듀스된 앨범 「스릴러」(Thriller)의 펑키한 사운드, 그리고 백인에 가까운 분장 등은 MTV의 장점을 가장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앨범에선 싱글 톱10이 7곡이었는데, 덕분에 마이클 잭슨은 그 해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8. 1983-온 거리를 뒤흔든 브레이크 댄스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 뒤로 걷는 댄스 스텝은 팝계의 또 다른 화제거리였다. 길거리에서도 그를 흉내내는 청소년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관절을 비틀어 대는 춤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기사들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이름하여 브레이크 댄스 열기였다. 이 좋은 소재를 영화계에서 놓칠리가 없었다. 83년 애드리언 라인 감독의 “플래시댄스”(Flashdance)가 바로 그것이다.  제니퍼 빌스 주연의 이 영화는 황당한 스토리를 지닌 것이었지만 디스코 작곡가로 유명한 조르지오 모로더의 음악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특히 아이린카라가 부른 <플래시댄스>와 <신나는 기분> (Flashdance What A Feeling)(이 노래가 언제부터 두곡이었을까나… : 옮긴 이의 의문)은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영화 이후 댄스 음악은 영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갖기 시작했다.

9. 1984-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열기

84년은 유난히 뛰어난 앨범이 많이 발표된 해였다. 한 앨범이 계속해서 1위에 머무는 바람에 1년(약52주) 동안 4개의 앨범만이 넘버원을 차지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프린스의 해라고 해도 좋을 시기였다. ‘보스'(브루스)는 7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였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앨범으로 대중적인 기반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끝없는 질주」(Born To Run)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한 그는 그 해 타임, 뉴스위크 양 잡지의 표지인물로 선정되기도했다. 80년 「강」(The River)으로 앨범 1위를 기록한 그는 수작 「네브라스카」 Nebraska) 이후 84년 「미국에서 태어나」를 발표했다. 재킷에 노동자 복장 차림의 사람이 성조기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듯한 자세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기도 한 문제의 앨범이었다.

10. 1984-미네아폴리스 사단의 리더 프린스

TV 드라마 “배트맨”(Batman)의 주제곡을 열심히 피아노로 연주하던 소년이 바로 영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맡았던 프린스이다. 1984년은 한 마디로 보스와 프린스의 해였다. 특히 프린스는 작곡, 작사, 프로듀서, 싱어를 겸하는 만능 재주꾼으로 83년의 마이클 잭슨 열기를 뒤엎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70년대에 데이비드 보위가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위해 노력했다면 80년대는 단연 프린스였다. 그는 「심홍색 비」(Purple Rain) 한 장의 앨범으로 표현된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스타 제조기이기도 하다. 배내티와 아폴로니아가 프린스 사단 출신이며, 실라E. 차카 칸. 마돈나. 시나 이스턴 등 그가 후원한 가수는 수도 없이 많다.

11. 1985-만능 엔터테이너 마돈나

80년대 최고의 여성 가수로 마돈나를 지목하기에 주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85년 마돈나는 「처녀처럼」(Like A Virgin)으로 전 세계 팝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듀란 듀란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나일 로저스. 미모와 섹시함 그리고 가수로서의 가창력과 춤 등이 그녀를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MTV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MTV 등장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88년에는 브로드웨이 연극에도 출연하여 화제를 몰고 온 그녀는 영화배우 숀 펜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는 등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지만, 올해 「기도처럼」(Like A Prayer)을 발표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였다.

12. 1985-이디오피아 난민구호 ‘라이브 에이드‘

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구장에서 동시에 대규모 콘서트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개최되었다. 이디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장장 16시간의 공연, 200여명의 아티스트 출연, 430억의 자선 기금, 세계 140개국에의 15억 시청자 등등 종래의 모든 기록을 깨버린 행사였다. 영국의 록 그룹 붐 타운 래츠의 리더 봅 겔도프는 이 행사를 개최한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브 에이드’는 우드스톡 이후 최대의 공연이었으며, 이 행사에 자극받아 해리 벨라폰테는 ‘우리는 곧 세계'(We Are The World) 라는 앨범(We are the world는 라이브에이드 이전에 나오지 않았나요? : 옮긴 이의 의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퀸시 존스. 빌보드 차트 1위 및 그래미상 수상의 영광도 안은 앨범이었다.

13. 1981-뉴 웨이브의 기수들

뉴 웨이브의 열기, MTV의 등장 그리고 아티스트의 개성 등이 그 시대와 딱 들어맞은 뮤지션이 왬이었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이 영국 듀오는 1984년 <떠나기 전에 깨워주오>(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놓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1985년 중국 공연까지 벌였던 그들은 특히 여성 팬들의 우상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로맨틱한 노래로 국내에서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85년 <경솔한 속삭임>(Careless Whisper)은 아마 팝 팬들에게 많은 추억을 준 곡으로 짐작된다. 흑인의 소울을 팝 감각으로 소화시켜 자신들의 개성을 구축했던 이들은 2집 「크게 해봐」(Make It Big)의 성공 이후, 끝없이 해체설이 돌다 결국 86년 헤어지고 말았다.

14. 1986-앰네스티 로큰롤 순회공연 개시

86년 ‘앰네스티’라는 단체가 뉴스에 종종 오르내렸다.’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라는 이 단체는 각국의 탄압받는 양심수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61년에 조직되었다. 온 세계에 이 단체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리는 데는 록 스타들의 역할이 컸다. 앰네스티 미국 지부의 잭 힐리라는 사람은 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의 위력을 실감한 뒤 대규모 록 행사를 계획했다. 8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이 행사에서 U2와 스팅 등은 자신들의 개성을 팝 팬들에게 강력히 심어 주기도 했다. U2는 이 행사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는 1987년 ‘여호수아 나무'(The Joshua Tree)로 나타났다. 1988년 ‘지금 인권을'(Human Rights, Now!)공연으로 이 행사는 맥을 잇고 있다.

15. 1987-미래의 검은 로큰롤 랩

50년대 로큰롤이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의 호응은 열광적이었지만 기성세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춤, 가사, 창법 등으로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던 로큰롤은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천박한 잡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로큰롤은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랩에서 로큰롤이 가졌던 의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80년대 중반 흑인들 사이에서 랩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구 지껄이는 폭력적인 가사, 반복되는 리듬 등으로 일반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던 음악이 랩이었다. 86년 런-DMC에 의해 랩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하더니 87년 드디어 백인 래퍼 3인조 비스티 보이스의 「살인 허가」(Licenced To Kill)가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뉴 에이지와 함께 80년대에 탄생한 장르로 새로이 위치를 굳힌 랩은 올해 톤 록이라는 또 다른 스타를 내기도 했다.

16. 1987-로큰롤은 U2를 통해 재탄생되었다.

85년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86년의 앰네스티 순회공연을 통해 등장한 스타 중 U2의 부상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 특히 앰네스티 공연에서 U2의 리드 싱어 보노가 보여준 개성은 60년대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보여 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4인조 U2는 87년 팬들에 보답하는 앨범 「여호수아 나무」(Joshua Tree)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차트 1위에 랭크된 것은 물론이고, 78년 팀결성 이후 발표한 앨범들도 덩달아 차트에 무더기로 진입하여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정통 로큰롤에 실린 의미있는 가사와 진지한 매너로 한몫 보기도한 U2는 그 해 그래미상을 휩쓸기도 했다. 오랜만에 로큰롤이 U2를 통해 기지개를 켠 87년이었다.

17. 1988-일년내내 톱10에 랭크된 조지 마이클의 「믿음」

1988년은 오직 한 명의 스타가 독주한 해였다. 그 주인공은 조지 마이클. 86년 왬이 해산될 때부터 그의 솔로 등장은 시간 문제였다. 섹스 어필하는 용모와 흑인 가수를 방불케하는 소울 창법 등 스타가 될 만한 재능이 넘치는 영국 가수였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은 「믿음」(Faith)이었는데, 이 앨범은 88년 한해 단 1주만 11위를 기록하였고 나머지 기간에는 톱10안에 랭크되었었다. 정상에 머무른 기간도 12주였다. 싱글 1위곡도 5개나 터져 나왔다(I Want Your Sex, Faith,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마이클 잭슨도 마돈나도 이런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포크와 스티브 윈우드의 컴백도 조지 마이클의 열기를 따라 잡진 못한 한 해였다.

18. 1988-헤비 메틀의 전성기를 다시 연 밴드들

88년 후반부의 주인공은 데프 레퍼드와 건스 & 로지스였다. 이들이 벌인 차트 경쟁은 헤비 메틀 만큼이나 치열한 것이었다. 88년 메틀계에 불을 당긴 팀은 반 헤일런의 「오! 자네도 하나 먹었군」(OU 812) 앨범으로 시작해서 데프 레퍼드의 「히스테리아」(Hysteria), 건스 & 로지스의 「파괴 망」(Appetite For Destruction) 그리고 본 조비의 「뉴 저지」(New Jersey)까지 그 열기는 이어졌다. 데프 레퍼드는 83년 「방화광」(Pyromania)에 이어 「히스테리아」도 7백만 장 이상 판매하여 앨범 2장을 연속으로 7백만장 이상 판매한 최초의 밴드가 되었다. 이들을 이어 건스 & 로지스 그리고 본 조비가 메틀의 열기를 이었다. 「뉴 저지」가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2위는 「파괴 욕망」, 3위는 「히스테리아」였다. 빌보드 차트 사상 메틀 밴드의 앨범이 1,2,3위를 휩쓴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19. 1989-팝계의 새로운 주인공 10대 가수들

89년은 유난히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인 해였다. ’10대현상’은 88년 티파니부터 시작되었다. 데뷔 앨범 ‘티파니'(Tiffany)를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그녀는 10대 선풍을 몰고 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데비 깁슨이라는 천재 소녀가 출현했다.  데뷔 앨범 「뜻밖에」(Out Of Blue)에 이어 「짜릿한 청춘」(Electric Youth)을 내놓으며 티파니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다. 전반기는 보비 브라운의 독무대였다. 앨범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Don’t Be Cruel)에서 연속으로싱글 히트곡을 내놓았다(Don’t Be Cruel, My Prerogative, Roni, Every Little Step 등). 후반부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앨범「끈질기게 버텨」(Hangin’ Tough)를 차트 1위에 올리며 동명 싱글곡 외에 <커버 걸>(Cover Girl), <내가 (당신을 황홀하게 하지 않았어요>(Didn’t I<Blow Your Mind>)등을 연속 히트시켰다.

20. 1989-돌아온 공룡들

전반부엔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후반부는 60년대 로커들의 재등장이 활발한 시기였다. 토론토 공연으로 시작된 더 후의 컴백,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재등장. 봅 딜런. 반 모리슨. 비지스. 링고 스타 등의 새로운 모습이 인상적인 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1989년의 사건은 롤링 스톤즈의 재결합 공연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8월 31일 시작된 그들의 순회공연은 미국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뉴욕에선 공연이 예정되자마자 6시간만에 약 30만장의 입장권이 동나버리기도 했다. 새 앨범 「강철 바퀴」(Steel Wheels)와 싱글 <복잡한 감정> (Mixed Emotion)은 차트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 (프린스 작품선)

J. Hyun이라는 필명의 사용자분이 예전에 올려주셨던 팝칼럼을 다시 퍼올림.

오늘 프린스의 CD 3장짜리 히트곡집을 큰맘먹고 구입하려고 했더니 역시나… 동네 레코드점엔 프린스의 앨범이 한 장도 없더라구요. 제법 큰 레코드점이었는데도… 나온지 좀 지난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프린스가 우리 나라에서 그다지 지명도 높은 가수가 아니라는 점도 오프라인상에선 프린스 앨범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 한몫 한 듯 싶습니다. 역시 우송료 무료인(가격이 가격이다보니…) 인터넷 주문이 최고군요. 프린스의 이름을 처음 접한 때가 ’84년쯤이지 싶은데 당시 제가 막 팝에 관심을 갖던 시기라 그 시기에 잘나가던 가수들은 유난히 기억이 생생해요. 그 시기에 대형 히트 앨범들이 참 많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서도 프린스의 보라색 비 열풍은 독보적이었습니다. 앨범 차트 24주간 1위, 5개의 Top 40 히트곡 및 “Darling Nikki”로 인한 파문 등등… 지금 와서 프린스라는 가수를 돌이켜보면… 그는 확실히 개성이 넘치는 가수이긴 하지만, 그 개성이 지나치다보니 어떨 땐 ‘프린스’하면 무조건 독특한 음악 내지는 묘한 음악만 기대하게 되더군요. 음악적 개성이 워낙 강하게 인식되다보니 오히려 무난한 음악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구요.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어느새 또 하나의 편견을 낳은 셈…
프린스가 미네아폴리스 사단을 시작으로 Revolution이니 New Power Generation과 같은 많은 타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고 적극적으로 프로듀싱을 한 것도 어쩌면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깰 수 있는 신선한 목소리를 발굴하는 과정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신선한 연인을 향한 ‘작업’으로 연결되곤 했습니다…) 그럼 왕자님의 발자국 좀 추적해보죠… 다들 훤하실 테지만… (전 ‘왕자’란 이름이 예명이 아닌 본명이란 걸 오늘에서야 인터넷 검색하다 알았답니다…-.-)

1. Chaka Khan – I Feel For You
(From The Album I FEEL FOR YOU, 1984)
▶ 노장 R&B 여가수 샤카 칸의 최대 히트곡으로 1984년 동명앨범 수록곡입니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최고순위는 3위에 그쳤지만 그 해 연말결산 차트에서 유수한 1위곡들을 제치고 Top 10에 랭크될 정도로 꾸준히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던 곡. 도입부의 샤카샤카 차카차카 어쩌구 하는 부분은 장난스럽기도…^^
▷ For를 4로 표기하지 않은 건 좀 의외…

2. Sheena Easton – Sugar Walls
(From The Album A PRIVATE HEAVEN, 1984)
▶ 시나 이스턴은 프린스의 수많은 연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발이 오래갔죠. 이 곡을 시작으로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프린스와 조우하며 “U Got The Look”, “The Arms Of Orion” 등의 듀엣곡을 낳기도… 앨범에는 이 곡의 작곡자가 Alexander Nevermind라는 요상한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이건 프린스의 일회용 이름이랍니다. 프린스 특유의 느끼한 창법이 시나 이스턴에게도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곡… 1984년 싱글차트 9위 기록.
▷ “Sugar Walls”의 숨은 의미는 다들 아실 듯… 후반부의 ‘Come insi~de~’하는 부분을 듣고 있노라면 심의 통과한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3. The Bangles – Manic Monday
(From The Album DIFFERENT LIGHT, 1986)
▶ 이 곡의 작곡가 역시 발표 당시엔 Christopher라고만 알려졌는데 나중에 그게 Prince임이 밝혀졌죠. 역시나 미녀에 약한 프린스는 뱅글스의 보컬리스트 수재너 홉스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뱅글스를 몹시 싫어하던 중학생은 이렇게 말했지요 – 어디가 이쁘다고…)
▷ 지금도 월요일날 기분이 찌뿌둥할 때면 생각나서 흥얼대곤 하는 곡이에요. ‘I wish it was~ sunday~ 흑흑흑…’ 내일 아침 일찍 서울 올라가야 하는데 눈꼽 떼고 운전하면서 이 노래나 불러야 하겠네요.

4. Vanity 6 – Nasty Girls
(From The Album VANITY 6, 1982)
▶ 이 이름이 낯선 분들이 계실지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된 곡입니다. 프린스가 야심차게 선보인 최초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별히트는 못했지만 미네아폴리스 사단 최초의 그룹이라는 데 의의가 있을 듯 합니다. 이 곡은 펑키한 리듬의 다소 단조로운 댄스곡입니다. 보컬들이 어쩐지 숨차게 들리네요…^^
▷ 이 독특한 그룹명은 이 3인조 여성그룹의 리더 Vanity의 이름을 딴 듯 합니다. 사진을 봤는데 뭐랄까… 뇌쇄적으로 생겼더군요. 마돈나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아마도 프린스의 여성편력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5. Martika – Love… Thy Will Be Done
(From The Album MARTIKA’S KITCHEN, 1990)
▶ 마티카가 “Toy Soldiers”의 성공 이후 발표했던 또 하나의 발라드곡으로 잔잔하면서도 야릇한 분위기가 역시 프린스다운 곡입니다. 마티카의 보컬 또한 차분하면서도 감정이 잘 살아 있구요… 이 곡 참 좋아했었는데 이 앨범이 생각만큼 히트를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마티카의 2집 앨범 수록곡을 몇 곡 구해서 들어볼 수 있었는데 생각 외로 괜찮은 곡들이 많더라구요. 타이틀곡 “Martika’s Kitchen”도 추천곡.
▷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여성 댄스 가수들은 단 한 명도 오래가지 못했는데 마티카도 그 중 하나. 제 생각에 미모를 내세운 여가수들의 주무기는 ‘신선함’인데 아무래도 2집을 낼 때면 노래가 좋든 안 좋든 그런 매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인 듯… 어느 분야든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건 절대진리죠. 얼마 전 팝아이 뉴스란을 보니 듀오를 결성해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지만… 글쎄요.

6. Sheila E. – The Glamorous Life
(From The Album THE GLAMOROUS LIFE, 1985)
▶ 쉴라 이는 프린스 사단의 가수들 가운데서도 특히 실력있는 가수로 인정받았는데 생각만큼 지속적인 인기를 얻진 못했습니다. 뛰어난 드러머이자 퍼커션 연주자이기도 한데요, 이 곡 역시 들어보면 단번에 프린스의 곡임을 알 수 있는 특유의 리듬감이 넘쳐나는 곡입니다.
▷ 글래머한 인생이라… 제목이 심상치 않네요. 혹시 이 곡도 금지곡?

7. Cyndi Lauper – When You Were Mine
(From The Album SHE’S SO UNUSUAL, 1983)
▶ 이 곡은 프린스가 정식으로 사사한 곡은 아니고 프린스가 먼저 발표했던 곡을 신디 로퍼가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원곡에 등장하는 프린스의 독특한 가성창법을 신디 로퍼도 멋지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 빵빵한 사운드 덕분에 원곡보다 훨씬 신나는 리메이크곡이 되었네요.
▷ 프린스의 곡들은 하나같이 특이해서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 가운데서도 쉽사리 리메이크할 만한 곡이 없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또다른 프린스 리메이크곡은 LeAnn Rimes가 부른 “Purple Rain”… 컨트리 가수가 부르는 프린스라니 좀 웃기죠? 근데 생각보다 들을 만 해요.

8. Sinead O’Connor – Nothing Compares 2 U
(From The Album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 1989)
▶ 시네이드 오코너의 생애 최대 히트곡으로 1990년 4주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사수한 곡입니다. 본래는 프린스 사단의 프로젝트 그룹 The Family가 먼저 발표한 곡이었는데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시네이드 오코너가 리메이크하여 대형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시네이드의 구슬픈 목소리가 정제된 듯 하면서도 은근히 사람 우울하게 만드는 노래… 뮤직비디오에서처럼 흐린 날씨의 가을날에 조용한 길가를 걸으며 듣고 싶은 곡입니다. (꼴에 센치한 척은…-.-)
▷ 이 곡에 얽힌 시네이드와 프린스의 에피소드는 하도 유명해서 다들 아실 듯 합니다. 자신의 최대 히트곡을 두고 ‘가장 부르기 싫은 노래’라고 밝힌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며 이 곡을 들으면 더 착잡해지죠… 아무튼 이런 경험도 한몫하긴 했겠지만 시네이드는 이 곡 이후 그녀 특유의 냉소적인 발언과 과감한(?) 행동들로 하는 말이며 행동 하나하나마다 화제를 모으고 다녔습니다. (그녀의 언행들 역시 하도 유명해서 생략) 몇 년 전에 그녀의 새 앨범 리뷰를 보았을 때 머리를 기른 모습과 ‘앞으로는 정치적인 발언도 자제하고 음악에만 전념하겠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 또 얼마전엔 난데없이 전격 은퇴한다고 해서 다시 화제를 모으기도…-_- 역시 음악계의 ‘양치기 소녀’답습니다.

9. Tevin Campbell – The Halls Of Desire
(From The Album T.E.V.I.N., 19)
▶ 프린스 사단 가운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남성 가수네요… ^^ 테빈 캠벨이 13살의 나이로 처음 데뷔할 당시에 그의 나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네요.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래 솜씨가 원숙했던 탓… 그의 데뷔앨범에는 Babyface 사단과 프린스 사단이 대거 출동하여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좋은 곡들을 많이 써주었는데 프린스가 워낙 한 개성 하는 인물이다 보니 그의 곡들은 얼핏 듣기만 해도 Babyface의 곡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일부 곡들에서는 프린스의 느끼한 창법을 테빈 캠벨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기도…
▷ 테빈 캠벨은 데뷔 당시 역시 비슷한 나이 또래였던 Tracie Spencer와 함께 차세대 흑인 남녀가수로 주목받았는데 두 사람 다 빨리 주목받은 만큼 빨리 식어버린 듯 합니다. 아직 둘 다 서른도 안된 나이인데 재기했으면 하는 바람…

10. Madonna – Love Song
(From The Album LIKE A PRAYER, 1989)
▶ 마돈나의 앨범들 가운데 특히 예술성이 높은 앨범으로 꼽히고 있는 4집 앨범의 수록곡으로 프린스가 작곡과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고 있는 곡입니다. 역시나 프린스 특유의 ‘어딘지 어벙벙하고 묘한’ 느낌이 살아있는 곡이긴 합니다만… 어쩐지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두 사람이 노래만 같이 했을 뿐,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I Feel For You”와 비교해 볼 때 리듬감도 약하고, “Sugar Walls”에서의 독특한 선정성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렇다고 “Manic Monday”처럼 멜로디컬한 것도 아니고… 느낌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겐 좀 실망스러웠던 곡입니다. 아무튼 Love Song이라는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군요. (가사에서도 This is not a Love So..Ong~ ^0^)
▷싱글로는 발매되지 않았지만 스캔들에 있어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두 톱스타가 뭉쳤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곡.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다는 뉴스가 나오기가 무섭게 당시 팝계가 떠들석해졌는데 의외로 그들은 사고(?) 날 틈도 없이 달랑 이 노래 한 곡만 함께 작업하고 말아 기사거리에 굶주린 언론들에게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나 어쨌다나 머다나…

11. Celine Dion – With This Tear
(From The Album CELINE DION, 1991)
▶ 프린스와 셀린 디온의 만남! 어쩐지 밸런스가 안 맞지 않습니까…ㅋㅋㅋ 이 곡은 셀린 디온이 막 미국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던 시기에 발표된 곡으로 Mariah Carey의 성공에 고무된 Sony가 제 2의 디바형 가수를 육성하고자 그녀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물입니다. 시종일관 아련한 분위기 가운데 곡이 진행되다가 후반부 코러스에서부터 셀린 디온의 열창이 마치 폭풍처럼 이어집니다. 스케일도 큰데다가 그녀의 화려한 가창력도 곡의 호소력을 살리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프린스의 숨어있는 명곡…
▷ 프린스의 곡답게 역시 2, 4, thee 등의 단어가 부지기수로 등장… 다시님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곡…^^

12. Prince – Dark
(From The Album COME, 1994)
▶ 끝으로 오늘의 주인공 ‘왕자’의 그닥 알려지지 않은 곡 하나 추천해볼께요. 프린스가 ‘자기는 노예’네 ‘이름 없이 기호로 불러달라’네 어쩌네 하면서 화제를 모으던 90년대 중반에 Warner Bros.와의 관계를 청산하며 발표했던 앨범의 수록곡으로 느릿하고 호젓한 분위기가 묘한 곡… 오늘 프린스 CD값도 비교해볼 겸 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 발견한 곡인데 제법 괜찮네요. 역시나 프린스다운 ‘묘한’ 곡인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반주를 가급적 절제하고 보컬의 흐름과 관악기를 강조한 점…
▷ 프린스는 MP3 공유에 찬성하는 가수라고 들은 바 있는데 지금도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는데도 별 소식도 없이 지나갔고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 검색을 했더니 인터넷상에서 신작 MP3 파일 구하기도 힘들고… 프린스가 정말 인기가 식긴 식었나 봅니다. 가정에 충실하고 있다는 말도 들은 바 있는데… 날이 갈수록 개성 강한 가수를 찾아보기 힘든 지금, 20년 전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보라색 비의 반란을 다시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

오늘은 글이 좀 두서가 없죠? 집안 분위기가 “Nothing Compares 2 U” 뺨치게 음산하걸랑요.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냉전중인데 저 혼자 신나서 음악 듣고 있습니다. 비는 왜 이리 척척 오는지… 외롭당…

To Be Continued…

Prince의 신곡

며칠 전에 Prince가 The Daily Mirror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은 완전히 끝났다”면서 자기 음악을 인터넷에서 들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발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이 또 그런 개드립 쯤이야 가소롭게 여기는 곳이니 그의 신곡 Laydown이 곧 바로 인터넷에 떠돌고 있다. 이곳에 가셔서 감상하시길.(개인적으로는 별로)

Purple Rain Free Download

Purple Rain은 80년대 팝음악의 가장 빛나는 아이콘 중 하나다. 리비도가 충만한 노래들도 외설적이라는 악평을 달고 다녔던 Prince는 이 앨범을 통해 ‘음란한 흑인가수’에서 대중가수로 변신한다. 앨범 다섯 곡들이 차트에 진입하는 등 흑인 아티스트의 앨범 중에서는 Michael Jackson의 Thriller 다음가는 성공을 거두었다. Prince는 또한 같은 해 동명의 영화를 선보였다. 영화라기보다는 거의 수록 곡들의 장편 뮤직비디오에 가까운 연출인지라 앨범만큼의 평가는 받지 못했지만 그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봐둘만한 영화다. 최근 SPIN이 이 걸작앨범의 트리뷰트앨범을 제작하여 온라인에서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다만 퀴즈를 맞힌 사람만 다운로드가 가능해서 날로 먹게 하진 않고 있다. 질문은 “What’s Paul Peterson’s role in the Time? The answer is on page 56.”인데 앞서 말한 영화에도 등장했던 흑인 팝그룹 The Time에 관한 퀴즈다. 어렵다고 투덜대지 마시고 정답은 keyboardist 니까 많이들 다운로드받아서 즐기시길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 (프린스 작품선)

이 글은 과거 popi.com 시절 JH라는 이름의 사용자가 친히 써주신 컬럼이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리는 바이다.

오늘 프린스의 CD 3장짜리 히트곡집을 큰맘먹고 구입하려고 했더니 역시나… 동네 레코드점엔 프린스의 앨범이 한 장도 없더라구요. 제법 큰 레코드점이었는데도… 나온지 좀 지난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프린스가 우리 나라에서 그다지 지명도 높은 가수가 아니라는 점도 오프라인상에선 프린스 앨범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 한몫 한 듯 싶습니다. 역시 우송료 무료인(가격이 가격이다보니…) 인터넷 주문이 최고군요.

프린스의 이름을 처음 접한 때가 ’84년쯤이지 싶은데 당시 제가 막 팝에 관심을 갖던 시기라 그 시기에 잘나가던 가수들은 유난히 기억이 생생해요. 그 시기에 대형 히트 앨범들이 참 많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서도 프린스의 보라색 비 열풍은 독보적이었습니다. 앨범 차트 24주간 1위, 5개의 Top 40 히트곡 및 “Darling Nikki”로 인한 파문 등등…

지금 와서 프린스라는 가수를 돌이켜보면… 그는 확실히 개성이 넘치는 가수이긴 하지만, 그 개성이 지나치다보니 어떨 땐 ‘프린스’하면 무조건 독특한 음악 내지는 묘한 음악만 기대하게 되더군요. 음악적 개성이 워낙 강하게 인식되다보니 오히려 무난한 음악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구요.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어느새 또 하나의 편견을 낳은 셈…

프린스가 미네아폴리스 사단을 시작으로 Revolution이니 New Power Generation과 같은 많은 타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고 적극적으로 프로듀싱을 한 것도 어쩌면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깰 수 있는 신선한 목소리를 발굴하는 과정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신선한 연인을 향한 ‘작업’으로 연결되곤 했습니다…)

그럼 왕자님의 발자국 좀 추적해보죠… 다들 훤하실 테지만… (전 ‘왕자’란 이름이 예명이 아닌 본명이란 걸 오늘에서야 인터넷 검색하다 알았답니다…-.-)

Chaka Khan.jpg
“Chaka Khan” by Original uploader was Dwightmccann at en.wikipedia – Originally from en.wikipedia; description page is/was here.. Licensed under CC BY-SA 2.5 via Wikimedia Commons.

1. Chaka Khan – I Feel For You
(From The Album I FEEL FOR YOU, 1984)
▶ 노장 R&B 여가수 샤카 칸의 최대 히트곡으로 1984년 동명앨범 수록곡입니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최고순위는 3위에 그쳤지만 그 해 연말결산 차트에서 유수한 1위곡들을 제치고 Top 10에 랭크될 정도로 꾸준히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던 곡. 도입부의 샤카샤카 차카차카 어쩌구 하는 부분은 장난스럽기도…^^
▷ For를 4로 표기하지 않은 건 좀 의외…

2. Sheena Easton – Sugar Walls
(From The Album A PRIVATE HEAVEN, 1984)
▶ 시나 이스턴은 프린스의 수많은 연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발이 오래갔죠. 이 곡을 시작으로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프린스와 조우하며 “U Got The Look”, “The Arms Of Orion” 등의 듀엣곡을 낳기도… 앨범에는 이 곡의 작곡자가 Alexander Nevermind라는 요상한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이건 프린스의 일회용 이름이랍니다. 프린스 특유의 느끼한 창법이 시나 이스턴에게도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곡… 1984년 싱글차트 9위 기록.
▷ “Sugar Walls”의 숨은 의미는 다들 아실 듯… 후반부의 ‘Come insi~de~’하는 부분을 듣고 있노라면 심의 통과한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3. The Bangles – Manic Monday
(From The Album DIFFERENT LIGHT, 1986)
▶ 이 곡의 작곡가 역시 발표 당시엔 Christopher라고만 알려졌는데 나중에 그게 Prince임이 밝혀졌죠. 역시나 미녀에 약한 프린스는 뱅글스의 보컬리스트 수재너 홉스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뱅글스를 몹시 싫어하던 중학생은 이렇게 말했지요 – 어디가 이쁘다고…)
▷ 지금도 월요일날 기분이 찌뿌둥할 때면 생각나서 흥얼대곤 하는 곡이에요. ‘I wish it was~ sunday~ 흑흑흑…’ 내일 아침 일찍 서울 올라가야 하는데 눈꼽 떼고 운전하면서 이 노래나 불러야 하겠네요.

4. Vanity 6 – Nasty Girls
(From The Album VANITY 6, 1982)
▶ 이 이름이 낯선 분들이 계실지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된 곡입니다. 프린스가 야심차게 선보인 최초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별 히트는 못했지만 미네아폴리스 사단 최초의 그룹이라는 데 의의가 있을 듯 합니다. 이 곡은 펑키한 리듬의 다소 단조로운 댄스곡입니다. 보컬들이 어쩐지 숨차게 들리네요…^^
▷ 이 독특한 그룹명은 이 3인조 여성그룹의 리더 Vanity의 이름을 딴 듯 합니다. 사진을 봤는데 뭐랄까… 뇌쇄적으로 생겼더군요. 마돈나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아마도 프린스의 여성편력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5. Martika – Love… Thy Will Be Done
(From The Album MARTIKA’S KITCHEN, 1990)
▶ 마티카가 “Toy Soldiers”의 성공 이후 발표했던 또 하나의 발라드곡으로 잔잔하면서도 야릇한 분위기가 역시 프린스다운 곡입니다. 마티카의 보컬 또한 차분하면서도 감정이 잘 살아 있구요… 이 곡 참 좋아했었는데 이 앨범이 생각만큼 히트를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마티카의 2집 앨범 수록곡을 몇 곡 구해서 들어볼 수 있었는데 생각 외로 괜찮은 곡들이 많더라구요. 타이틀곡 “Martika’s Kitchen”도 추천곡.
▷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여성 댄스 가수들은 단 한 명도 오래가지 못했는데 마티카도 그 중 하나. 제 생각에 미모를 내세운 여가수들의 주무기는 ‘신선함’인데 아무래도 2집을 낼 때면 노래가 좋든 안 좋든 그런 매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인 듯… 어느 분야든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건 절대진리죠. 얼마 전 팝아이 뉴스란을 보니 듀오를 결성해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지만… 글쎄요.

6. Sheila E. – The Glamorous Life
(From The Album THE GLAMOROUS LIFE, 1985)
▶ 쉴라 이는 프린스 사단의 가수들 가운데서도 특히 실력있는 가수로 인정받았는데 생각만큼 지속적인 인기를 얻진 못했습니다. 뛰어난 드러머이자 퍼커션 연주자이기도 한데요, 이 곡 역시 들어보면 단번에 프린스의 곡임을 알 수 있는 특유의 리듬감이 넘쳐나는 곡입니다.
▷ 글래머한 인생이라… 제목이 심상치 않네요. 혹시 이 곡도 금지곡?

7. Cyndi Lauper – When You Were Mine
(From The Album SHE’S SO UNUSUAL, 1983)
▶ 이 곡은 프린스가 정식으로 사사한 곡은 아니고 프린스가 먼저 발표했던 곡을 신디 로퍼가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원곡에 등장하는 프린스의 독특한 가성창법을 신디 로퍼도 멋지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 빵빵한 사운드 덕분에 원곡보다 훨씬 신나는 리메이크곡이 되었네요.
▷ 프린스의 곡들은 하나같이 특이해서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 가운데서도 쉽사리 리메이크할 만한 곡이 없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또다른 프린스 리메이크곡은 LeAnn Rimes가 부른 “Purple Rain”… 컨트리 가수가 부르는 프린스라니 좀 웃기죠? 근데 생각보다 들을 만 해요.

8. Sinead O’Connor – Nothing Compares 2 U
(From The Album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 1989)
▶ 시네이드 오코너의 생애 최대 히트곡으로 1990년 4주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사수한 곡입니다. 본래는 프린스 사단의 프로젝트 그룹 The Family가 먼저 발표한 곡이었는데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시네이드 오코너가 리메이크하여 대형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시네이드의 구슬픈 목소리가 정제된 듯 하면서도 은근히 사람 우울하게 만드는 노래… 뮤직비디오에서처럼 흐린 날씨의 가을날에 조용한 길가를 걸으며 듣고 싶은 곡입니다. (꼴에 센치한 척은…-.-)
▷ 이 곡에 얽힌 시네이드와 프린스의 에피소드는 하도 유명해서 다들 아실 듯 합니다. 자신의 최대 히트곡을 두고 ‘가장 부르기 싫은 노래’라고 밝힌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며 이 곡을 들으면 더 착잡해지죠… 아무튼 이런 경험도 한몫하긴 했겠지만 시네이드는 이 곡 이후 그녀 특유의 냉소적인 발언과 과감한(?) 행동들로 하는 말이며 행동 하나하나마다 화제를 모으고 다녔습니다. (그녀의 언행들 역시 하도 유명해서 생략) 몇 년 전에 그녀의 새 앨범 리뷰를 보았을 때 머리를 기른 모습과 ‘앞으로는 정치적인 발언도 자제하고 음악에만 전념하겠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 또 얼마전엔 난데없이 전격 은퇴한다고 해서 다시 화제를 모으기도…-_- 역시 음악계의 ‘양치기 소녀’답습니다.

9. Tevin Campbell – The Halls Of Desire
(From The Album T.E.V.I.N., 19)
▶ 프린스 사단 가운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남성 가수네요… ^^ 테빈 캠벨이 13살의 나이로 처음 데뷔할 당시에 그의 나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네요.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래 솜씨가 원숙했던 탓… 그의 데뷔앨범에는 Babyface 사단과 프린스 사단이 대거 출동하여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좋은 곡들을 많이 써주었는데 프린스가 워낙 한 개성 하는 인물이다 보니 그의 곡들은 얼핏 듣기만 해도 Babyface의 곡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일부 곡들에서는 프린스의 느끼한 창법을 테빈 캠벨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기도…
▷ 테빈 캠벨은 데뷔 당시 역시 비슷한 나이 또래였던 Tracie Spencer와 함께 차세대 흑인 남녀가수로 주목받았는데 두 사람 다 빨리 주목받은 만큼 빨리 식어버린 듯 합니다. 아직 둘 다 서른도 안된 나이인데 재기했으면 하는 바람…

10. Madonna – Love Song
(From The Album LIKE A PRAYER, 1989)
▶ 마돈나의 앨범들 가운데 특히 예술성이 높은 앨범으로 꼽히고 있는 4집 앨범의 수록곡으로 프린스가 작곡과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고 있는 곡입니다. 역시나 프린스 특유의 ‘어딘지 어벙벙하고 묘한’ 느낌이 살아있는 곡이긴 합니다만… 어쩐지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두 사람이 노래만 같이 했을 뿐,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I Feel For You”와 비교해 볼 때 리듬감도 약하고, “Sugar Walls”에서의 독특한 선정성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렇다고 “Manic Monday”처럼 멜로디컬한 것도 아니고… 느낌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겐 좀 실망스러웠던 곡입니다. 아무튼 Love Song이라는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군요. (가사에서도 This is not a Love So..Ong~ ^0^)
▷싱글로는 발매되지 않았지만 스캔들에 있어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두 톱스타가 뭉쳤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곡.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다는 뉴스가 나오기가 무섭게 당시 팝계가 떠들석해졌는데 의외로 그들은 사고(?) 날 틈도 없이 달랑 이 노래 한 곡만 함께 작업하고 말아 기사거리에 굶주린 언론들에게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나 어쨌다나 머다나…

11. Celine Dion – With This Tear
(From The Album CELINE DION, 1991)
▶ 프린스와 셀린 디온의 만남! 어쩐지 밸런스가 안 맞지 않습니까…ㅋㅋㅋ 이 곡은 셀린 디온이 막 미국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던 시기에 발표된 곡으로 Mariah Carey의 성공에 고무된 Sony가 제 2의 디바형 가수를 육성하고자 그녀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물입니다. 시종일관 아련한 분위기 가운데 곡이 진행되다가 후반부 코러스에서부터 셀린 디온의 열창이 마치 폭풍처럼 이어집니다. 스케일도 큰데다가 그녀의 화려한 가창력도 곡의 호소력을 살리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프린스의 숨어있는 명곡…
▷ 프린스의 곡답게 역시 2, 4, thee 등의 단어가 부지기수로 등장… 다시님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곡…^^

12. Prince – Dark
(From The Album COME, 1994)
▶ 끝으로 오늘의 주인공 ‘왕자’의 그닥 알려지지 않은 곡 하나 추천해볼께요. 프린스가 ‘자기는 노예’네 ‘이름 없이 기호로 불러달라’네 어쩌네 하면서 화제를 모으던 90년대 중반에 Warner Bros.와의 관계를 청산하며 발표했던 앨범의 수록곡으로 느릿하고 호젓한 분위기가 묘한 곡… 오늘 프린스 CD값도 비교해볼 겸 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 발견한 곡인데 제법 괜찮네요. 역시나 프린스다운 ‘묘한’ 곡인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반주를 가급적 절제하고 보컬의 흐름과 관악기를 강조한 점…
▷ 프린스는 MP3 공유에 찬성하는 가수라고 들은 바 있는데 지금도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는데도 별 소식도 없이 지나갔고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 검색을 했더니 인터넷상에서 신작 MP3 파일 구하기도 힘들고… 프린스가 정말 인기가 식긴 식었나 봅니다. 가정에 충실하고 있다는 말도 들은 바 있는데… 날이 갈수록 개성 강한 가수를 찾아보기 힘든 지금, 20년 전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보라색 비의 반란을 다시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

오늘은 글이 좀 두서가 없죠? 집안 분위기가 “Nothing Compares 2 U” 뺨치게 음산하걸랑요.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냉전중인데 저 혼자 신나서 음악 듣고 있습니다. 비는 왜 이리 척척 오는지… 외롭당…

Prince 트리뷰트 앨범 프로젝트

Pitchfork 에 따르면 현재 프린스의 트리뷰트 앨범이 추진중이라고 한다.

Fortunately, Berlin’s Rapster Records has given us an alternative point of entry into Mr. Rogers Nelson’s catalog. It’s a tribute compilation called Controversy, featuring songs like the title track, “Purple Rain”, “Starfish & Coffee”, and “She’s Always in My Hair”. Covering these songs: everyone from Soulwax, Hefner, Kode9 & the Spaceape, 7 Hurtz with Peaches, Susanna and the Magical Orchestra, Blues States, and Stina Nordenstam to the very Prince-like D’Angelo.

http://www.pitchforkmedia.com/article/news/48204-dangelo-soulwax-peaches-grace-prince-tribute-co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