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콕하문(旺角下問, 1987, 한국 개봉명 열혈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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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Tears Go By” by scanned from the DVD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기억력이 나쁘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나쁜 점은 뻔한 거고그것이 내가 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이유다). 예전에 본 영화를 또 봐도 신선하다는 점이다. 몽콕하문이 바로 그 경우인데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기억이 나지 않아 내 머리를 탓하면서도 재밌게 보았다. 이제는 스타일리스트 감독으로 국제적 명성을 쌓고 있는 왕가위(또는 왕자웨이)의 1987년 데뷔작으로 몽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양아치들의 삶과 의리(?)를 다룬 영화다. 중경삼림에서 많은 이들을 매혹시켰던 스타일리쉬한 화면이 약간은 조악한 형태로 선보이는데 특히 유덕화가 날계란을 까먹던 깡패를 난도질하는 장면이유명했다. 어쨌든 이 영화는 홍콩에서 유행하던 독특한 형태인 홍콩 느와르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는데 나름대로 독특한 표현방법을 통해 홍콩 반환을 눈앞에 둔 홍콩시민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였다는 평을 얻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홍콩시민들은 장만옥을 포기하고라도 장학우를 끝까지 감싸던 유덕화의 모습에서 자신들을 책임지고 보호해줄(또는 줬으면 하는)중국 본토의 모습을 투영시켰을까?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무튼 80년대 말 홍콩 느와르의 직선적이고 약간은 유치한 스토리, 나름 신선한 신디사이저를 주조로 하는 배경음악(The Berlin 의 Take My Breath Away의 번안곡이 꽤 길게 나옴), 주인공들의 80년대 패션(순백 셔츠를 입고 다녀도 부끄럽지 않던 시절) 등오랜만에 홍콩영화 레트로의 매력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Against All Odds(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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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에 이만큼 파묻힌 영화가 있을까?80년대대중의 감성을날카롭게 자극했던 유명감독 Taylor Hackford에(사관과 신사의 그 감독)Jeff Bridges, Rachel Ward, James Woods 등 유명배우들이 멕시코 환상적인 경치의 휴양지며유적지 돌아가며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Against All Odds 라는 표현은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오로지 Phill Collins 의 애절한 발라드로만 기억될 뿐이다.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첫째, 노래가 너무 명곡이었다(갑자기 “따봉”을 외치던 그 광고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따봉”은 기억하는데 그 쥬스의 브랜드는 기억 못하는 그런 철저히 실패한 광고). 둘째, 느와르란 장르는 80년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당대의 스타 Jeff Bridges, Rachel Ward가 전라의 연기를 펼치는가 하면 걸출한 느와르 배우 Richard Widmark가 측면지원을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80년대의 왠지 들뜬 분위기는 안티히어로와 팜므파탈이 매력을 발산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관객들은 차라리 같은 해 나온 코믹한 형사물 Beverly Hills Cop의 손을 들어주었다. 셋째, 결정적으로 영화가 수렴되는 맛이 없고 산만하다. 남미의 환상적인 피난처에서의 두 연인의 뼈를 불사르는 사랑에서 느닷없이 LA로 건너뛰더니 주인공 Terry는 악당들을 한방에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쥐고 있음에도 별 이유도 없이 악당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만다.

그럼 영화가 재미없었냐 하면 ‘정말’ 재미있다. 적당한 긴장감, 멋지게 펼쳐지는 경치, 유치하지만 그래서 볼만한 로맨스(또는 육욕), 적당히 건드려지는 물질문명의 야욕 등 느와르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추었고 나름 잘 믹스도 시켰다. 문제는 이러한 통속성이 잘 어우러져 화학적으로 융합이 되어야 하는데 조금씩 삐끗 하다는 느낌이 이질감을 준다는 사실이다.

아무려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Rachel Ward의 뒤로 흐르는 주제가가 이 모든 것을 보상해준다. 몇 안 되는 80년대 느와르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으신 분에게 추천. 물론 ‘제대로’ 된 80년대 느와르를 원하시면 Body Heat 를 추천.

Mystery Train(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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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stery Train” by http://www.impawards.com/1989/posters/mystery_train_ver2.jpg. Licensed under Wikipedia.

브릿팝 그룹 Pulp 의 Jarvis Cocker 가 그의 노래에서 ‘모든 사람들은 여행자들을 싫어한다(Everybody Hates Tourists)’고 독설을 내뱉긴 했지만 사실 여행자들은 불쌍한 존재다. 도시가 표방하고 있는 하나의 상징을 쫓아 불나방처럼 찾아들지만 그것은 멀리서 보았을 때나 아름다웠을 신기루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일본인 남녀가 찾은 썬 스튜디오가 대표적인 예다. 수많은 명가수들이 녹음했다는 스튜디오는 관광 가이드가 잰 걸음으로 가이드를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허름하고 좁은 공간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또 다른 여행자는 더욱 심하다. 죽은 남편의 관과 함께 로마로 향하는 한 여인 – 바로 로베르토베니니의 아내인 그 여배우 – 은 비행편의 문제로 억지로 멤피스에 머물게 된 것이다. 잡화상의 호객행위 때문에 원하지도 않던 잡지책을 잔뜩 사들고 길을 헤매는 와중에 엉뚱한 사기꾼에게 20달러까지 뜯긴 신세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토박이들의 이야기다. 이들에게 멤피스는 여행자들이 느끼는 그 어떤 상징성으로 다가오기보다는 그저 서로 아옹다옹하고 을러대는 지루한 삶의 터전일 뿐이다. 잡화점 주인을 살해하고 도망 다니다 호텔로 피신을 온 두 백인과 한 흑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밀도 깊게 만들어진 에피소드라고 생각된다. 유명한 공상과학 TV 시리즈에서 제목을 따온 이 에피소드에서 결국 이방인들은 제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데 정작 토박이들은 갈 길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 이 영화는 서부영화의 명배우 Lee Marvin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감독 Jim Jarmusch, 음악 John Lurie, 그리고 극중 라디오 DJ 로 목소리가 등장하는 Tom Waits 가 한결같이 Lee Marvin 의 아들들인 것 마냥 그를 빼다 닮았고 급기야 이를 의식한 Jim Jarmusch 가 이들을 모아 무슨 비밀단체를 결성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이 모여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고인이 된 The Clash 의 Joe Strummer 가 문제아 Johnny 로 등장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엘비스만큼이나 위대한 이 인물이 엘비스를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했고, 또 그 영화를 그가 죽은 이 시점에서 감상하자니 왠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여인이 목격한 엘비스의 유령만큼이나 묘한 이질감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My Beautiful Laundrette,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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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Beautiful Laundrette Poster” by The cov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MoviePosterShop.com.. Licensed under Wikipedia.

스티븐 퓨리어스가 파키스탄 이민 2세인 작가 하니프 쿠레이쉬(Hanif Kureishi)의 각본을 바탕으로 파키스탄 이민자 2세대인 오마르와 그 가족들이 과거의 식민제국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첨병인 영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버둥거리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영화의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비뚤어져 있다. 자신의 이상주의적 가치관과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시체처럼 살아가는 오마르의 아버지, 인종적 차별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오마르의 삼촌 나세르와 샬림, 오마르와 어릴 적 친구였으면서도 파시스트 청년들과 몰려다니는 조니, 그리고 다시 만난 조니를 고용인으로 부리면서 – 한편으로는 동성애적 관계에 빠지면서도 – 전도된 만족감을 얻으려는 오마르.

인종, 계급, 동성애, 가부장 등 이 사회의 가장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이 뒤섞여 있다. 마치 영화에서 등장하는 세탁기 안의 빨래처럼. 그것들은 때로 색깔진한 빨래가 다른 빨래에 물을 들이듯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전도된 계급관계에 희열을 느끼는 경우처럼 변태적이기도 하고 겉으로는 불륜이면서도 나름대로는 인종을 뛰어넘는 구식 로맨스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뾰족한 답은 없다. 그저 매캐한 영국의 매연과 흐린 하늘처럼 늘 우리 옆에 존재할 뿐이다.

오마르는 나름대로 세탁소 같은 ‘깨끗한’ 사업으로 성공하려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리고 인종과 성적 편견을 뛰어넘는 조니와의 사랑도 역시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영화 마지막의 애정 어린 물장구가 둘의 미래에 일말의 희망을 암시할 뿐이다.

p.s. 사무실 밖에 있는 조니가 사무실의 오마르를 창너머로 바라보는 얼굴로 오마르의 얼굴이 반사되는 장면은 둘의 서로를 향한 마음을 압축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 예리하게 표현한 참 ‘영리하게’ 연출된 장면이었다.

p.s.2 물방울이 보글거리는 듯한 음향효과의 주제음악과 세탁기가 돌아가는 듯한 시각효과의 타이틀시퀀스도 인상적이다.

Cloc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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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알렌의 영화에 등장하는 흑인이 되고 싶다는 스파이크리가 바라보는 뉴욕은 우디알렌이 바라보듯 그렇게 여유롭고 지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전쟁터다. 사는 게 전쟁이니 그 삶의 터전도 전쟁이다. 흑인들은 마약을 팔고 백인들은 마약을 산다. 마약을 파는 소년 Strike는 절대 마약을 하지 않는다. 마치 포르노배우가 가장 위생적으로 청결한 것처럼 말이다. 그 대신 초콜릿무스를 수시로 마셔대는 통에 위장이 엉망이다. 그를 자식처럼 여긴다며 개뻥을 치는 마약상 Rodney는 그에게 사람을 죽여줄 것을 넌지시 암시한다. 암시였지 사주는 아니었다. 하여튼 살인은 이루어졌다. 이제부터 누가 죽였는지를 밝히기 위해 Rocco 형사가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Strike 의 형 Victor 가 자신이 정당방위로 죽였다고 나서는데 평소 행실이 발랐던 그의 말을 Rocco 형사는 믿지 않는다. 스릴러의 형식을 띤 흑인사회의 먹이사슬 보고서로 일관된 스파이크리의 정치적 행보는 마치 켄로치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흑인 우디알렌? Clocker 는 마약판매인 중에 가장 똘마니격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이들을 일컫는 은어라고 한다. 총격으로 죽은 흑인들의 생생한 사진을 관객의 코 밑까지 들이대는 타이틀시퀀스가 충격적이다.

p.s. 영화포스터가 그 유명한 ‘살인의 해부’의 포스터를 차용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Network

거장 시드니루멧의 강력한 힘과 후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테마들이 그야말로 유기적으로 팽팽하게 연결되어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TV가 현대 매스미디어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의 중심 다국적기업의 존재감,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만난 남녀의 이유 있는 불륜, 청춘을 바친 직장을 떠나는 직장인의 자아상실, 반문화의 상업화를 통한 자본주의의 놀라운 생존력, 시청률이라는 정체불명의 숫자놀음을 감싸고 벌어지는 비정한 인간관계 등 따로 떼놓아도 장편영화 한편이 너끈히 나올 소재들이 이 영화 한편에 경이롭게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산만함이 없이 떡하니 중심이 분명하다. 모든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분명한 색깔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의욕 넘치는 젊은 중역 다이애나 역의 패이더너웨이와 노련한 보도부장 맥스 역의 윌리엄홀덴의 연기는 동선 자체도 훌륭한 연기다 싶을 정도로 치밀하고 섬세하다.

UBS 의 인기 앵커였던 하워드빌은 시청률이 떨어지자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날 판이다. 오랜 직장동료이자 같은 방송국의 보도부장 맥스슈마허는 술김에 방송에서 자살한다고 말하면 시청률이 올라갈 것이라고 농을 건넨다. 다음날 뉴스에서 하워드는 정말 방송에서 자살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 방송국이 발칵 뒤집힌 가운데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는 다이애나크리스틴슨은 UBS를 합병한 CCA의 점령군 프랭크해킷을 설득해 하워드의 뉴스를 버라이어티쇼로 전환시켜버린다. 시청자에게 일종의 대리만족을 주는 효과덕분에 하워드빌쇼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저널리즘을 훼손하였다고 생각한 맥스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이애나는 더 힘을 얻어 극좌 테러리스트의 테러 장면을 시리즈로까지 제작한다. 그 와중에 둘은 연인사이가 된다.

이제 TV는 더 이상 솔직해질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치부마저 상업화시키는 ‘반문화의 상업화’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하워드빌은 방송중에 CCA가 아랍계 자본에 먹힐 것이라며 애국적 호소를 하게 되자 회사중역들은 그의 무한질주에 분노를 느낀다. CCA의 최고경영자 젠슨은 그를 불러 민족과 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며 그 자리를 다국적기업이 채우고 있음을 일갈한다. 다국적기업이라는 새로운 신 내림을 받은 하워드는 점점 더 자기 폐쇄적으로 침몰해가고 젠슨을 제외한 나머지 중역들은 그의 존재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다. 완벽한 시나리오, 완벽한 배역, 완벽한 완급조절 등 Dog Day Afternoon 등과 함께 시드니루멧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걸작이다.

Le Notti di Cabiria(Nights of Cabiria)

어린 시절 ‘길(La Strada)’이라는 이탈리아 영화에서 본 젤소미나는 너무 여리고 너무 불쌍했다. 무지막지한 차력사에게 질질 끌려 다니면서 커다란 눈으로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그 여인의 슬픈 최후는 어린 내 마음에도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슬프기는 하지만 드러내놓고 신파조였던 이 영화의 감독은 ‘로마 무방비 도시’에서 시나리오를 담당한 명감독 Federico Fellini 이고 불쌍한 젤소미나는 그가 단골로 찾던 여배우 Giulietta Masina 였다. ‘길’이 만들어진 3년 후 이 둘은 다시 한 번 뭉쳐 또 다시 하류층 여인의 밑바닥 인생을 보여주고 있다. 4만 리라 때문에 애인한테 강으로 떠밀려 죽음의 위기를 겪은 Cabiria. 대차고 성격 활발한 여인이지만 그녀의 직업은 창녀. 밤거리에는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사건이 벌어진다. 유명배우가 그녀를 집으로 초대했다가 화장실에서 잠재우는가 하면 자선사업가는 굴속에 사는 빈민들을 돕는다. 우연히 들른 극장에서 최면술에 걸렸다가 이를 계기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로버트 드 니로를 닮은 이 남자는 그녀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펼친다. 에피소드가 산만하게 펼쳐져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윤곽을 뚜렷이 유지하고 있어 보는 내내 어리둥절하거나 하진 않다. Giulietta Masina 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맘보 리듬이 흥겨운 영화다.

Gods And Monsters

초기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등을 감독했던 James Whale 의 말년에 초점을 맞춘 일종의 전기 영화.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하였고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가 사랑하는 연인이 죽은 채 철망에 걸린 상황을 트라우마로 간직한 이 노감독은 몸이 쇠약해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색을 밝히고 15년을 함께 해온 신앙심 깊은 가정부를 이를 끔찍하게 혐오한다. 그 와중에 근육질의 정원사가 새로 고용되고 James 는 그에게 또다시 눈독을 들인다.  스스로 게이인 Ian McKellen 이 참 맛깔스럽게 James Whale 을 연기하고 있다. 엄청난 마초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 동성애자를 이해해가는 정원사 역으로 딱 어울리게 둔탁하게 생긴 Brendan Fraser 가 맡고 있다. 노년의 성, 그것도 동성애가 담겨져 있다는 점에서 흔하지 않은 소재이긴 한데 비슷한 소재로는 일본영화 ‘메종드히미코’가 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kramer vs. kramer)

기혼 여성의 자아실현, 가정 내에서의 배우자들의 가사분담, 이혼부부의 육아문제 등 경제성장에 따라 가정의 기능에 새로운 해석을 내려야만 했던 선진국의 당시 시대상이 투영된 드라마이다. 직장 일에 온 힘을 쏟는 남편 테드, 그로 인해 소외감을 느껴 떠나버린 아내 조애나, 남겨진 아들 빌리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생활이 펼쳐진다. 가사와 직장을 병행해야 하는 남자는 점차 가사에는 익숙해지지만 회사업무에는 악영향을 미쳐 결국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 와중에 헤어진 아내는 일곱 살 난 아들의 양육권을 요구한다.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가족 간의 갈등에 대해 깔끔한 연출과 수준 높은 배우들의 연기로 호평을 얻은 작품

Wonder Bo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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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boys ver4” by Impaward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작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J.D. Salinger 의 The Catcher In The Rye. 철없는 문학교수 Grady Tripp (Michael Douglas) 의 좌충우돌 행보에서는 Holder Caulfield 의 치기어린 행동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문득 문득 ‘작문에 제법 소질을 보이던 Holden 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대신 작가의 길을 걸었더라면 Grady 처럼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나 홀로 해보았다. 제법 근사했다. 비록 뛰어난 작품을 한 권 냈고 교수도 되었지만 Grady 는 – 나이 든 Holden 은 – 여전히 수시로 대마초를 펴댈 만큼 –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제자 James Leer(Tobey Maguire)에게도 권할 만큼 – 반사회적이고 냉소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극의 에피소드 들 역시 하나 하나 쪼개보면 절망적이면서도 결국 실낱같은 그 어느 희망으로 수렴해가는 구조를 지녔다는 점에서도 두 작품이 유사성을 띠고 있다. 물론 원작자 Michael Chabon 이 들으면 기분나빠하겠지만 – 그가 이글을 볼 리도 없지만 – 적어도 내게 있어 이 영화(또는 원작 소설)는 The Catcher In The Rye 에 대한 오마쥬 내지는 패러디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 이 영화는 Steve Martin 주연의 Planes, Trains and Automobiles 를 연상시킨다. Grady 는 앞서의 영화에서 Steve Martin 이 그러했던 것처럼 짧은 시간에 온갖 수난을 다 당한다. 아내는 집을 떠나고, 정부(情婦)는 임신했지만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개한테 물리고, 제자는 그 개를 죽이는가 하면 마릴린 몬로의 재킷을 훔친다. 비록 이 작품이 보다 지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일종의 ‘주인공 재난 영화’의 계보에 넣어도 큰 무리가 없지 않나 싶다.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도 행복한 가족을 얻었다는 헐리웃 공식을 추가시킨 것도 비슷한 점이다(개인적으로는 더 망가뜨렸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혹자는 21세기 최초의 걸작이라고도 평했다는데 적어도 21세기에 보기 흔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인 것만은 분명하다. 실력파 배우들의 나름 귀여운 연기를 이끌어낸 커티스 핸슨의 역량도 맘에 들고 사운드트랙도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