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ral / Lu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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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Eno 할아버지가 신보를 내셨다. 워낙에 다작이신 분인지라 디스코그래피를 쭉 훑어보려는 시도는 이제 일종의 만용이 된 듯한데 어쨌든 올해 6월 6일에 나온 따끈한 신보라서 들어봤다. 이노는 Beatie Wolfe라는 컨셉트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Luminal과 Lateral을 내놓았다. 첫 번째 작품은 아직 안 들어봤고, Lateral만 오늘 들었다. 곡은 사실상 Big Empty Country라는 곡 단 한 곡. 바이닐에서는 앞면과 뒷면을 Day 버전과 Night 버전으로 나눠놓긴 했다. 말 그대로 그냥 단순한 멜로디가 64분 동안 약간의 변주와 함께 반복된다. 마크 로스코나 또는 더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작가 전시회의 배경음악으로 깔면 딱 어울릴 작품. 비평가들의 평가는 매우 좋다. Luminal까지 들어봐야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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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1], Fair use, Link

앞 문단은 어제 쓴 글이고 오늘은 출근길에 같이 발매한 – 올해 6월 6일 동시 발매했으니, 사실상의 더블앨범? – Luminal을 감상했다. 1시간이 넘게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는 Lateral과 달리 이 작품은 보다 대중 친화적이다. 즉, 멜로디가 각각의 트랙마다 다른 3~4분 길이의 드림팝 장르의 앨범이다. “앨범은 다양한 문화권의 언어에서 유래한 감정 단어들을 모티브로 삼아 구성되었다“라고 하는데 일단은 가사를 주의 깊게 살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고 보다 마음 편한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음색과 연주가 특징적인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느 앨범을 먼저 듣느냐에 따라 두 작품이 주는 감정이 조금은 다를 듯한데, 이노와 비티도 그런 점을 의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비평가들의 평가는 아주 호의적이다.

트레버 혼의 생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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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rnard Gotfryd – Trevor Horn, pop record producer, NYC, Public Domain, Link

어제(2025년 7월 15일)가 1949년 7월 15일 생인 The Buggles의 프론트맨 트레버 혼(Trevor Horn)의 생일이었다. Video Killed The Radio Star 라는 불멸의 명곡을 창조했고 MTV라는 희대의 미디어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트레버 혼은 그가 이끌던 밴드 The Buggles의 생애는 짧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유산은 결코 무시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 밴드 해체 이후 프로듀서 등 음악 산업의 막후 실력자로서의 명성을 쌓아갔는데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에 그의 최대 치적 중 하나가 바로 그가 프로듀서로 참가했던 ABC의 The Lexicon Of Love다.

지금도 신쓰팝의 최고의 명반 – 더 나아가 80년대 최고의 명반 – 으로 꼽히는 The Lexicon Of Love는 두 명의 천재가 만났을 때 어떤 희대의 걸작이 탄생하는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최고의 작곡자이자 보컬리스트 Martin Fry와 그런 천재가 만든 결과물을 어떻게 오물쪼물하면 최고의 작품이 되는지를 잘하는 Trevor Horn이 협업하여 만든 작품이 바로 여태 다른 신쓰팝 밴드가 시도하지 않은 오케스트라적인 웅장함을 작품의 특색으로 삼은 The Lexicon Of Love 이다. 앨범 커버에서부터 음악까지 빈틈없이 채워진 하드보일드 신쓰팝 앨범이다.

Gentlemen Take Polaroi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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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the record label., Fair use, Link

Gentlemen Take Polaroids는 타이틀곡도 앨범명과 같은 앨범이다. 그리고 그 곡이 가장 유명하다. 전체적으로는 이후에 발표된, 밴드의 명반으로 남게 될 Tin Drum과는 많이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 앨범을 들으면 2010년대 유행한 Vaporwave의 분위기도 느껴진다. 일례로 세 번째 트랙 Burning Bridges는 전주가 상당히 긴 곡인데 흥미로운 점이 사뭇 2010년대 유행했던 Vaporwave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곡이다. 앨범 이름 자체도 그런 분위기에 한몫 하는데 당시에는 혁신적인 전자기기로 여겨졌으나 이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진 폴라로이드라는 사진기가 언급된 점이 그러하다.

The Blue Nile / Peace At Last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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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Fair use, Link

Peace At Last는 80년대 말 감칠맛 나는 소피스티팝의 정수를 선사했던 스코틀랜드 3인조 밴드 The Blue Nile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1996년 6월 10일 Warner Bros를 통해 발매되었다. 데뷔앨범이 1984년, 두 번째 앨범이 1989년, 세 번째 앨범이 1996년에 발매되었으니 각각 5년과 7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의 산고 끝에 탄생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신디사이저를 주로 사용한 이전 두 앨범과는 달리, Peace at Last 는 주로 폴 뷰캐넌의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했다. 리드 싱글 Happiness 에서는 가스펠 합창단이 잠깐 등장한다.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 프론트맨 폴 뷰캐건을 비롯한 멤버들이 블루나일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는 작업이 너무나 어려웠고 그마저도 상업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나타났기에 겪어야 했던 그 고통을 이 앨범에서 일종의 한풀이 차원에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러다보니 앨범 제목은 ‘마침내 평화(Peace At Last)’이고 첫 번째 트랙의 제목도 ‘행복(Happiness)’. 나머지 트랙들도 종교적 혹은 성찰적인 제목이라 범상치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은 팬들에게도 그렇겠거니와 밴드 스스로에게도 일종의 마음의 치유 작용을 하는 앨범이 아니었을까?

Jerry Harrison / Walk On Water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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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Records., Fair use, Link

Walk On Water는 Talking Heads에서 기타와 키보드를 맡곤 했 Jerry Harrison이 1990년 내놓은 그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앨범은 1990년 미국에서는 Sire Records, 영국과 유럽에서는 Fontana Records를 통해 발매되었다. 앨범의 녹음은 제네바, 파리, 런던, 뉴욕 등 다양한 도시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프로듀서 역시 Jerry Harrison, Ernie Brooks, Dan Hartman, Alex Weir, Bernie Worrell, Tom Bailey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세션맨으로는 모던러버스 및 토킹헤즈 시절부터 우정을 나눠오던 이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Ernie Brooks는 모던러버스의 베이스 주자였다. Bernie Worrell은 토킹헤즈의 다수 앨범에 참여한 키보드 주자다.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이들은 Thompson Twins의 Alannah Currie와 Tom Bailey다. Alannah Currie는 I Don’t Mind라는 트랙의 작곡에 기여했다. 톰 베일리는 앞서 말했듯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키보드 연주 및 믹싱에도 기여했다. 또 눈에 들어오는 이는 Dan Hartman이다. 단은 I Can Dream About You라는 유명한 히트싱글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다. 비록 원히트원더이긴 했어도 80년대를 대표하는 강렬한 댄스락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제리는 이 앨범을 위해 직접 곡을 쓰고 – 다른 친구들도 함께 참여하긴 했다 – 노래를 불렀다. 토킹헤즈의 전기에 따르면 제리는 특별히 이 앨범을 위해 보컬레슨까지 받았다고 한다.1 그럴 정도로 이 앨범의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물론 제리는 번과 같은 천재적인 작곡 솜씨나 카리스마 있는 보컬 실력을 갖추진 못했다. 그럼에도 몇몇 곡에서는 번뜩이는 재기가 엿보인다. 예를 들면 네 번째 트랙 Confess는 인트로가 난데없이 Information Society를 연상케 해서 마음에 든다.

제리는 이 앨범의 홍보를 위해 그의 이전 스튜디오앨범의 이름에서 착안한 Casual Gods라 이름 지어진 백업 세션맨들과 함께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은 크리스와 티나가 조직한 또 하나의 토킹헤즈의 사이드프로젝트 탐탐클럽과 함께였다.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의 Universal Amphitheatre 등에서 무려 Bonnie Raitt, K.D. Lang 등을 백보컬로 쓰면서 공연을 가졌다. 당시 이들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쪼그라든 머리들(The Shrunken Heads)”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티나는 그때쯤 새로운 토킹헤즈 앨범이 나왔으면 하고 바랬다고 한다.

요컨대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앨범의 전체적인 노래의 톤은 토킹헤즈의 마지막 세 개의 앨범 Little Creatures, True Stories, Naked 등의 톤과 닮았다는 느낌이다. 다만, 아쉽게도 그 날카로움에 있어서는 토킹헤즈의 언급한 앨범보다 딸린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느슨하고 나른한 느낌의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트랙들로 이루어져 큰 기대도 없지만 큰 실망도 없이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토킹헤즈의 일원의 작품으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The Smiths / The Smith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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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는 데뷔앨범 The Smiths의 녹음작업을 처음에 런던의 왜핑(Wapping) 지역에 위치한 엘레펀트스튜디오에서 시작했다. 당시의 프로듀서는 소속사 러프트레이드가 선택한, The Teardrop Explodes의 기타리스트였던 트로이 테이트(Troy Tate)였다. 밴드 멤버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프로듀싱을 맡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녹음은 뜻대로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는 낙후한 지역인 왜핑에 위치한 열악한 스튜디오의 작업 여건이 한몫했다.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스튜디오는 지하에 있었고 에어컨도 없는 그 곳에서 찌는 듯한 더위에 기타 튜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자니마는 그럭저럭 작업을 해나갔지만, 모리시는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1

그래서 러프트레이드와 밴드는 대안으로 Roxy Music의 2집 For Your Pleasure에서 베이스기타를 담당했었던 존 포터(John Porter)를 선택했다. 모시시가 회고하길 존은 매우 친절하고 이해심이 깊었고 녹음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좋은 지침이 되는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존이 만든 앨범 The Smiths는 The Smiths답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리시의 사견으로 마이크의 드럼 연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벼락과도 같은 음색이었고 앤디의 베이스 연주 역시 “울려 퍼지는 듯이 자신감 있는(pealing swagger) 연주”였는데, 존의 프로듀싱의 결과물은 창백하고(pasty) 얇았기(thin) 때문이었다고 한다.2 프로듀서가 밴드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모리시와는 다른 의견과 좀 더 깊은 내막이 있었는데 애초에 러프트레이드와 존 포터는 마이크 존스를 다른 드러머로 교체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니와 모리시는 이를 거절했다.3 어쨌든 자니의 의견으로는 존은 풍부한 경험이 있는 실력 있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금방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앨범 제작 과정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밴드 전체의 실력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4 특히 This Charming Man의 녹음 당시의 결과물에 대해 자니는 존의 실력을 극찬했는데5 모리시의 냉소적인 의견과는 완연하게 다른 의견이었다.

어쨌든 모리시의 불만과 별개로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앨범은 당시 영국 차트에서 2위까지 올랐는데, 당시 1위는 Thompson Twins의 Into The Gap이었다. 이 앨범은 Hold Me Now와 Doctor! Doctor! 등이 인기를 얻은, Thompson Twins의 매력적인 뉴웨이브 사운드의 정점을 찍은 앨범이었다. 한편 밴드의 앨범이 1위까지 오르지 못한 이유에 대한 좀더 가슴 아픈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모리시의 회고에 따르면 러프트레이드의 Richard Boon이 모리시에게 “우리가 1위를 할 수도 있었는데 카셋테잎을 때맞춰 찍어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6 결국 소속사가 차트 진입의 요령은 아는데 그렇게 할 의지가 없었다는 업계의 비밀을 소속사 뮤지션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Side one
No. Title Length
1. “Reel Around the Fountain” 5:58
2. “You’ve Got Everything Now” 3:59
3. “Miserable Lie” 4:29
4. “Pretty Girls Make Graves” 3:44
5.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4:38
Side two
No. Title Length
6. “Still Ill” 3:23
7. “Hand in Glove” 3:25
8.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3:51
9. “I Don’t Owe You Anything” 4:05
10. “Suffer Little Children” 5:28
Total length: 42:55
US LP/cassette and UK cassette
No. Title Length
6. “This Charming Man“ 2:41
Total length: 45:36
  1. Set The Boy Free, 174p ↩
  2. 모리시 회고록, 159쪽 ↩
  3. 물론 모리시와 자니는 마이크와 앤디를 신뢰했지만, 그들을 밴드의 창작 활동에 동일한 기여를 하는 동료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리시와 자니는 이 즈음에 이미 밴드 멤버들 사이의 이익 분배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주장에 따르면 마이크와 앤디에게도 이에 대해 협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인된 문서가 없었고 후에 이는 멤버들 간의 법적 논쟁의 씨앗이 된다. ↩
  4. Set The Boy Free, 174p ↩
  5. Set The Boy Free, 182p ↩
  6. 모리시 회고록 160쪽 ↩

Nu Shooz / Poolsid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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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Atlantic Records., Fair use, Link

Nu Shooz라는 밴드가 있었다. 아마도 ‘새 신발(New Shoes)’를 폼나게 표현한 밴드명이 아닐까 싶다.1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은 원히트원더(one-hit wonder) 밴드로 기억하지만, 의외로 이들은 1982년 Can’t Turn It Off를 시작으로 2016년 Bagtown에 이르기까지 일곱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은 나름 장수 밴드다. 우리의 시야에서는 사라졌지만, 나름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한 끈기있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최고 히트 싱글은 I Can’t Wait고 그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 그들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은 지금 소개하는 1986년 작 Poolside다.

위키피디어는 이들 음악 장르를 프리스타일(Freestyle)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프리스타일 또는 라틴 프리스타일은 주로 흑인 미국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이에서 뉴욕 대도시권, 필라델피아, 마이애미 에서 등장한 일렉트로닉댄스 음악의 한 형태다. 중요한 선구자로는 Planet Rock을 내놓은 Afrika Bambaataa와 Let the Music Play를 내놓은 Shannon이 거론되는데, 대충 겹치는 이미지가 있다. 인종적으로 섞여 음악적 교류가 잦은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브레이크댄스 팬들이 춤추기에 알맞은 신디싸이저가 주조를 이루는 댄스음악이 인기를 끌었고 이를 프리스타일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Nu Shooz는 뉴욕의 반대편인 서부에 위치한 오리건주의 포틀랜드 출신이다. 주류 음악의 본거지와 거리가 멀다보니 이들의 성공 경로는 제법 험난했다. 1985년 I Can’t Wait를 발표했고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전국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노래가 네덜란드에 수출되고 거기서 리믹스 버전이 만들어졌고 “Dutch Mix”라 알려진 이 버전이 아틀랜틱레코드사의 귀에 들려 레코드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Poolside에 수록된 우리가 알고 있는 버전은 오리지널보다 도입부가 보다 더 매력적인 Dutch Mix 버전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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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screen cap from a Miami Vice episode, Fair use, Link

이들의 음악이 지역적으로 어디와 가장 잘 어울릴까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고향 포틀랜드도 아니고 프리스타일의 본고장 뉴욕도 아니고 바로 풀사이드라는 앨범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따가운 햇볕이 이글거리는 마이애미다. 80년대 미드 마이애미바이스에서 주인공 크로켓(Crockett)과 텁스(Tubbs) 형사가 풀장이 딸린 대저택에 살고 있는 악당을 찾아갔을 때에, 풀사이드에서 선탠을 즐기며 이들을 무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을 줌인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면 딱 좋을 스타일이다. 동북쪽 끝에서 탄생한 장르를 활용해 서북쪽 끝에서 만든 음악이 서남쪽 끝 스타일의 음악이 된 셈이다.

앨범에서는 역시나 스티비 닉스의 1986년의 히트곡과 같은 이름의 I Can’t Wait가 가장 매력적인 곡이지만, 두 번째 싱글로 내놓은 Point of No Return도 나름 매력적인 곡이다. 어떤 면에서는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섞인 보컬 Valerie Day의 매력이 이곡에서 더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재밌게도 I Can’t Wait처럼 Point of No Return도 같은 제목으로 80년대 한번 더 히트를 기록하는데 1987년 Exposé가 발표한 동명의 히트곡이 있다. 또 하나 맘에 드는 점은 이 히트곡이외에도 나머지 트랙들도 꽤 준수한 수준의 곡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AllMusic은 이 앨범에 별 네 개 반을 선사했다.


I Can’t Wait 무대 공연 영상. 영상 시작 부분에 난데없이 Patsy Kensit이 등장한다. 막 인터뷰를 마치는 시점에서의 장면인 듯.

  1. 생각해보니 케이팝 걸그룹 뉴진스와 이름이 비슷하다 ↩
  2. 편곡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 하는 것은 A-ha의 Take On Me의 초기 버전과 이후의 버전을 들어보면 잘 느낄 수 있다. ↩

Double / Blue [1985]

Double의 데뷔 앨범 Blue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서핑을 하던 중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AllMusic에서 올려놓은 앨범의 이미지는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발매된 더블의 앨범 이미지라는 점이다. “유니버설 뮤직 마스터피스 시리즈 34”로 타이틀을 달고 발매된 이 앨범의 홍보 문구도 재밌다. “팝과 휴전재즈의 명쾌한 결합으로 세련되고 독창적인 라운지 뮤직의 새로운 지평을 이뤄낸 희귀작. 국내 유일 재발매반.”이 바로 이 앨범이다. 라운지 뮤직은 아마도 Lounge Music 장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문하지만 라운지에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팝계열에 여러 장르를 섞은 음악으로 이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피치카토파이브(Pizzicato Five) 등이 활약한 시부야게나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스테레오랩(Stereolab) 정도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어쨌든 크게 힘 안 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통속적인(?!) 장르보다는 좀 더 있어 보이는 장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바라보면 더블을 라운지 뮤직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위키피디어나 디스콕스에서 정의하는 이들의 음악 장르는 소피스티팝, 신스팝, 일렉트로닉, 째즈팝 정도다. 모두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들의 음악은 누가 뭐래도 도회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록곡 중에는 Urban Nomads라는 제목의 트랙도 있다.) 거기에 색소폰과 같은 통상의 팝이나 락에서 잘 안쓰는 악기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고 멜로디의 변화도 이색적이지만, 째즈라고 정의하기에는 지나치게 팝적이다. 어쨌든 팝은 팝인데 스위스와 독일을 기반으로 활동한 밴드라 그런지 영미권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팝음악을 선보였다는 점이 매력이다. 앨범에서 가장 매력적인 곡은 가장 크게 사랑받은 The Captain of Her Heart지만, 개인적으로는 차트 진입에 성공하지 못한 앨범의 마지막 트랙 Tomorrow도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Scarlett and Black / Scarlett and Black [1987]


이미지 출처 : 소피스티팝 계열 앨범인데 커버가 너무 침울하다

Scarlett and Black은 Robin Hild와 Sue West로 구성된 영국 출신의 팝 듀오다. 로빈 힐드는 이전에 the Big Supreme의 키보드 연주자였고 , 수 웨스트는 Doctor and the Medics의 전 백킹 보컬리스트였다. 그들은 1987년 버진 레코드 에서 셀프타이틀 앨범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1988년 빌보드 탑 200 에서 107위에 오르는 등 미국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다. 싱글 You Don’t Know는 같은 해에 빌보드 핫 100 에서 20위에 오르는 히트곡이 되었고, 어덜트컨템포러리(13위)와 댄스(핫 댄스/클럽 플레이 32위, 핫 댄스 싱글 41위) 차트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 제대로 된 후속 앨범을 내놓지 못하면서 Scarlett and Black은 원히트원더로 남게 되었다.

You Don’t Know는 처음 들었을 때 ‘Tears For Fears의 곡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들만큼 TFF와 분위기가 – 표절의 의혹은 아니고 – 유사하다. 이들의 정규 앨범은 이 한곡으로도 충분히 어필을 할만 했지만, 나머지 곡들도 그렇게 허술하지 않고 상당한 퀄리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이 앨범의 장점이다. 특히 앨범의 백미는 세 번째 트랙 Dream Out Loud다. 이 곡의 분위기는 이번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또 다른 혼성 듀오 Roxette의 분위기와 – 이 역시 표절 의혹 제기가 아니고 – 유사하다. You Don’t Know에 못지않게 캐치한 멜로디의 팝발라드지만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앨범 전체적으로는 1980년대 후반 흥했던 소피스티팝 장르에 충실하게 유려한 멜로디가 차고 넘치는 작품이다. 같은 해에 Breathe의 All That Jazz가 발매되었고 Curiosity Killed the Cat의 Keep Your Distance가 발매되었고 Swing Out Sister의 It’s Better to Travel가 발매되었다. 영국 전역에서 걸작 소피스티팝 앨범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안타까운 것은 Swing Out Sister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밴드들이 수명이 그리 길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Scarlett and Black의 수명은 특히 짧았다. TFF와 견주어도 Roxette과 견주어도 그 상업적인 잠재력은 별로 뒤지지 않았던 이 듀오는 왜 후속작을 내지 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Duran Duran / Notorious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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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EMI., Fair use, Link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이 Duran Duran의 신곡이라며 Notorious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을 때의 당혹감이다. 이전의 곡들과 무척 달라진, 즉 Seven and the Ragged Tiger 시절의 통통 튀는 사운드가 아닌 보다 절제되고 락비트가 강화된 듯한 곡진행이 상당히 낯설었던 느낌이다. 앨범 커버 역시 그들의 잘생긴 외모는 여전했지만, 색도 흑백 톤으로 바뀌었고 옷차림도 수트 차림에 진중한 포즈였고 심지어 멤버도 두 명이 보이지 않았다! 드러머 로저 테일러 와 기타리스트 앤디 테일러는 앨범이 발매될 당시 둘 다 탈퇴한 것이었다. 당시 로저의 탈퇴 이유는 연이은 일정 강행으로 인한 피로 누적이었고 앤디는 헤비한 락음악을 추구하는 본인의 음악적 노선과 그룹의 생각이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앨범의 프로듀싱에는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참여했다. 이는 그룹의 음악이 이전의 백인 스타일의 신스팝에서 좀 더 펑키한(funky)한 사운드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실제로 앨범 수록곡이 전반적으로 나일 로저스의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먼 훗날 나일이 작업에 참여했던 다프트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와 비교해서 들어도 상당한 유사성이 느껴진다. 그러한 점에서는 듀란듀란은 확실히 틴팝에서 벗어나 좀 더 성숙한 음악노선을 확립하고자 하는 목표를 나일 로저스 등 새로운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원활하게 달성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여섯 번째 트랙 Vertigo (Do the Demolition)는 그룹의 이러한 달라진 음악성이 잘 응축되어 있는 곡이라 생각된다. 5인조의 분열을 암시하는 듯한 가사의 이 노래에서는 펑키함이 강화된 리듬 파트와 여성 백보컬 등이 락이라기보다는 펑크 댄스에 가까운 장르의 곡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앨범의 또 하나의 특징은 관악기의 전폭적인 채용인데 이런 특성을 잘 느낄 수 있는 곡은 일곱 번째 트랙 So Misled다. 전주에서부터 화려한 관악기 파트가 참여하여 곡 전체에서 힘 있는 연주로 곡의 바탕을 다져주고 있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세 번째 트랙 Skin Trade다. 늘 의미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가사로 되어 있는 듀란듀란의 노래에 무슨 불순한 의도를 읽었는지 앨범 발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금지곡이었던 이 곡은 그런 비밀스럽고 불순함에 어울리는 주술을 읊조리는 듯 한 보컬과 센슈얼한 멜로디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