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itresses, The

 The Waitresses는 위트있고 여성의 주체적인 역할을 주창하는 노래를 주로 발표하였다. 이 그룹은 기타리스트 Chris Butler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그는 전에 클리블랜드의 Tin Huey, 15-60-75 등 여러 뉴웨이브 밴드를 전전하였다. 1977년 그는 “I Know What Boys Like”를 연주곡으로 만들었다. 그의 친구 Patty Donahue는 이 연주에 아주 냉소적인 가사를 붙여 불렀다. 이것이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룹 The Waitresses의 시작이었다. 근거지를 뉴욕으로 옮긴 Butler는 한 프로듀서에게 거의 잊혀진 노래였던 “I Know What Boys Like”의 녹음테잎을 건네주었고 이것이 레코드사와의 계약으로 이어졌다. Butler는 상상속의 밴드 The Waitresses를 급조하기 위해 Donahue에게 뉴욕행 버스값을 부치고 뉴욕 거리의 일없이 빈둥거리는 아티스트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 중에는 Television의 드러머였던 Billy Ficca도 포함되어 있었다. 1982년 데뷔앨범 Wasn’t Tommorrow Wonderful와 EP I Could Rule the World If I Could Only Get the Parts를 발매했고 꽤 판매량이 괜찮았다. Butler의 재밌고 스마트한 가사와 Donahue의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보컬 스타일 – 그녀의 보컬 스타일은 마치 건방진 십대 소녀가 전화받으면서 껌씹고, 동시에 발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 역시 평론가의 호평을 받았다. 짧은 순회공연후 그룹은 두번째 앨범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연때부터 시작된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만 갔고 결국 Donahue와 Butler가 그룹을 떠났다. 나머지 멤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룹은 해산을 피할 수 없었다. Butler는 이후 the dB’s, Scruffy the Cat, Freedy Johnston 등의 앨범제작에 나서는 등 솔로활동을 펼쳤다. Donahue는 1996년 암으로 사망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2 Wasn’t Tomorrow Wonderful? [Polydor]
1983 Bruiseology [Polydor]
1997 King Biscuit Flower Hour [live] [King Biscuit]

링크
Fan Page

Wa Wa Nee

Wa Wa Nee 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정확하게는 Paul Gray(Vo, Key), Mark Gray(B) 형제의 오스트레일리아조와 영국인 Steve Williams(G), 그리고 미국인 Chris Sweeney(Dr)이 주축이 되어 오스트레일리아를 활동의 거점으로 하고 있던 다국적 밴드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음악적 배경, 경력 등이 무척 다양한데 Paul는 원래 클래식 피아노를 습득 후 재즈에 심취해, 프로로 활동하고 있던 경력를 가지고 있다. 남동생 Mark는 Sting의 영향으로부터 역시 재즈에 심취하기도 하였고, Steve는 Jeff Beck나 T-Rex를 존경하는 키타리스트면서, 한편 클래식 기타도 연주하였다. Chris는 음악 전문학교로 드럼을 배우면서도 금융 관계의 직업 경력을 가지는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985년 CBS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1986년 멤버를 보강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1986년 4월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첫싱글 “Stimulation”(미국에서는 “Sugar Free”에 이은 두번째 싱글)을 내놓았다. 동양적인 냄새를 풍기는 깔끔한 키보드 싸운드가 특징인 이 곡은 국내 차트에서 2위까지 올랐다. 뒤이은 세개의 싱글 역시 탑20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셀프타이틀 데뷔앨범 역시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어서 전국 투어에 들어간 그들은 미국에서도 프로모션 투어를 가졌고, 강렬한 인트로가 인상적인 “Sugar Free”가 미국에서 탑30안에 올랐다.

1988년 11월 새로운 싱글 “Can’t Control Myself”가 발매되어 본국 차트 17위까지 올랐다. “So Good”, “I Want You” 등 두개의 싱글이 더 발매되었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결국 ’89년 그들의 마지막 앨범이 되어버린 두번째 앨범 Blush가 발매된 그해 Wa Wa Nee는 해산하였다. Paul Gray는 타음악가의 노래 라이팅이나 디렉터로서 지금도 활동하면서 Molly Production이라는 단체에서 주최하는 2001 Molly Awards에서 최악의 프로듀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Mark는 Propaganda Klann에서 베이스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Members : Mark Gray (b), Paul Gray (v,k), Paul Greenwood (b,trump), Elizabeth Lord (bv) , Geoff Lungren (b), Barton Price (d), Chris Sweeney (d,perc), Phil Whitcher (k), Steve Williams (g,bv)

디스코그래피

Albums
Wa Wa Nee (AUS: 1986/USA: 1987 – AUS#29/US #123)
01. “One And One (Ain’t I Good Enough)”
02. “Teacher”
03. “Stimulation”
04. “Jelly Baby”
05. “Gone”
06. “Sugar Free”
07. “When The World Is A Home”
08. “Man Child”
09. “Love Reaction”
10. “I Could Make You Love Me”

Ulta Mixes (EP/Remixes) (1987)
01. “Gone” (12″ Mix)
02. “Stimulation” (12″ Mix)
03. “Sugar Free” (New York Mix)
04. “Never Been So In Love”
05. “One And One” (12″ Mix)
06. “I Could Make You Love Me” (12″ Mix)
07. “Sugar Free” (12″ Oz Mix)

Blush (1989: AUS#29)
01. “Can’t Control Myself”
02. “So Good”
03. “Giving Everything”
04. “One Day”
05. “Never Been So In Love”
06. “I Want You”
07. “Bright Lites”
08. “Do It To Me”
09. “Moral Inspiration”
10. “Blush”
11. “Tossing And Turning”

Singles
1986 “Stimulation” (AUS #2/US #86 [released as followup to Sugar Free])
1986 “I Could Make You Love Me” (AUS #5)
1986 “Sugar Free” (AUS #10/US #35)
1987 “One And One (Ain’t I Good Enough)” (AUS #19)
1988 “Can’t Control Myself” (AUS #31)
1989 “So Good” (AUS #36)
1989 “I Want You” (no chart placing)

링크

Fan Site
Wa Wa Nee on Pinterest

‘Til Tuesday

‘Til Tuesday는 1985년 “Voices Carry”란 곡 하나로 MTV와 팝챠트를 강타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드라마틱한 데뷔는 결국 용두사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발매된 두개의 싱글은 주목을 끄는데 실패했고 그들 역시 팬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그룹의 간판스타였던 Aimee Mann은 보스턴에 있는 버클리 스쿨에서 수학한후 그 도시의 펑크씬에 뛰어 들었다. 그녀는 Young Snakes나 초기 시절의 Ministry와 함께 활동하였다.

1983년 그녀는 남자친구인 Michael Hausman (드럼)과 그의 친구들인 Joey Pesce (키보드), and Robert Holmes (키타)와 함께 ‘Til Tuesday를 조직하여 보스턴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후 한 지방 래디오 방송국의 밴드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여 Epic 레코드사와 계약하는 행운을 거머쥐게 되었다. 그리고 1985년 데뷔싱글 Voices Carry를 녹음하였다. 이와중에 Mann과 Huasman은 연인 관계를 청산하였고 이후 쏭라이터 Jules Shear가 Mann의 새로운 연인이 되었다.

1986년 가을 그룹은 두번째 앨범 Welcome Home을 녹음하였다. 그러나 앨범은 히트곡을 내지 못하였고 Pesce가 그룹을 떠났다(그의 빈자리는 Michael Montes가 메꿨다). 그룹은 또한 키타리스트 Jon Brion과 Clayton Scobel을 보강하였다. Welcome Home이 발매된 즈음 Mann은 다시 Shear와의 연인관계를 끝냈다. 1988년 발매된 그룹의 세번째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Everything’s Different Now에서는 Elvis Costello가 작곡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판매량은 Welcome Home에도 못미쳤다. 그러나 비평은 호의적이었는데 주로 Mann의 일취월장한 작곡솜씨에 초점이 맞춰졌다.

Aimee Mann은 80년대의 부시시한 헤어스타일로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였고 그 결과로 현재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솔로경력을 쌓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보컬과 쏭라이터 능력이 겸비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솔로 작업은 P.J. Harvey, Tori Amos 또는 Liz Phair와 동등한 레벨로 인정받고 있다.

디스코그래피
1985 Voices Carry [Epic]
1986 Welcome Home [Epic]
1988 Everything’s Different Now [Epic]

링크
RollingStone.com의 ‘Til Tuesday관련 페이지
Aimee Mann Official Site

Thompson Twins

Thompson Twins Feb84.JPG
“Thompson Twins Feb84” by Ohconfucius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 3.0 via Wikimedia Commons.

Thompson Twins가 처음 탄생한 것은 지난 1977년 전직 음악교사였던 Tom Biley가 당시 영국에서 새롭게 붐을 이룬 펑크 스타일에 레게와 아프리카 리듬을 섞은 사운드를 연주하는 7인조 그룹을 결성하면서, 이들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이들은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틴틴의 대모험’의 등장인물인 탐슨 쌍동히 형제의 이름을 따서 밴드의 이름을 지었다.

이들은 주로 댄스클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기대화는 달리 일부 댄스클럽에서만 인기가 있을 뿐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못하고 있을 때,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흑인 아티스트 조 리웨이(Joe Leeway)와 뉴질랜드에서 온 방송 기자 출신의 앨러나 커리(Allena Currie)가 가입하면서 그룹은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이들은 1981년 데뷔 앨범 AProduction To Participation을 발표하였고 뒤 이어 82년에는 2집 Set을 발매했다. 이 때 멤버는 초창기와 달리 탐, 엘레나 그리고 조 리웨이의 트리오로 단축되어 있었다. 2집 Set에서 싱글로 발표한 In The Name Of Love가 미국과 영국의 댄스클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3집 Sidekicks에서는 토속적인 타악기에 신서사이저를 조화시킨 Lies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일약 세계적인 뉴웨이브 그룹으로 부각되었다.

이어서 84년의 4집 Into The Gap에서는 더욱 많은 히트곡을 내놓았는데 특히 Hold Me Now, Doctor Doctor는 전세계의 방송가와 디스코텍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펑크 스타일의 독특한 의상을 입은 이들의 콘서트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4장의 앨범 발표로 단단한 기반을 구축한 이들은 다섯 번째 앨범 제작 중 톰 베일리가 과로로 병원에 입원하는 불상사가 있었으나 Live Aid에서 훌륭하게 재기, 1985년에 5집 Here’s To Future Days를 발표했다. 비록 4집에 비해서는 그 열기가 조금 사라지긴 했지만 Lay Your Hands On Me가 히트하였다. 이를 기회삼하 그들은 다시 한번 세계 순회 공연에 나섰는데, 이 순회 공연 중에 조 리웨이가 탈퇴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엘레나 커리가 병원에 입원, 그룹의 공백기를 가지게 되었다.

이 후 루퍼트 파인이라는 프로듀서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6집 Close To The Bone을 발표하였으나 이전만한 인기를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디스코그래피
A Product Of…(1981)
Set (1982)
Quick Step And Side Kick (1983)
Into The Gap (1984)
Here’s To Future Days (1985)
Close To The Bone (1987)
Big Trash (1989)
Queer (1991)

링크
팬페이지

The The

  • Formed 1979
  • Group Members Matt Johnson Keith Laws
  • Styles College Rock, Post-Punk, Alternative Pop/Rock

The The는 댄쓰팝에서 컨트리까지 다양한 음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싱어 쏭라이터 Matt Johnson은 분신이라 할 수 있다. 1961년 8월 15일(오~ 광복절이네요) 런던에서 출생한 Johnson은 나잇클럽과 그의 삼촌이 소유한 펍에서 음악활동을 처음 시작하였다. Johnson이 처음 조직한 밴드는 그의 나이 11살에 조직한 Roadstar였다. 15살에 그는 DeWolfe라는 음악관련 출판사에 취직하였다. 차심부름이나 하는 사급에서 출발한 그는 3년후 레코딩스튜디오의 보조엔지니어로 승진하였다.

1979년 그는 신디싸이저 플레이어인 Keith Laws와 함께 The The의 구체화 작업에 들어갔다. 1980년 Scritti Politti의 오프닝 공연으로 데뷔한 그들은 1년후 계약상의 문제때문에 자신의 이름으로 LP Burning Blue Soul을 발매하였다. 그 해, 그는 The Gadgets란 밴드에서 키타를 맡았다. 그리고 The The는 Some Bizzare라는 컴필레이션에 한 트랙을 담당하였다.

1982년 The The – 이제 실질적으로 Johnson의 솔로프로젝트가 되어버린 – 는 The Pornography of Despair를 녹음하였다. 하지만 Johnson은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았고 발매를 포기하였다. 1983년 This Is the Day라는 싱글을 Orange Juice의 Zeke Mayika와 함께 녹음하였다. 이 노래는 The The의 실질적인 데뷔 앨범이라 할 수 있는 1984년 Soul Mining에서 핵심적인 음악적 특색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The The 는 1986년 Infected라는 앨범으로 팝계에 복귀하였는데 이 작품은 현대 영국 사회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주제로 한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는 Neneh Cherry, Art of Noise의 Anne Dudley, 그리고 Swans의 Roli Mosimann과 같은 다양한 이들이 참여하였다.

1989년 앨범 Mind Bomb을 발표하였는데 Johnson는 The Smiths의 키타리스트였던 Johnny Marr, 베이시스트 James Eller, 그리고 ABC의 드러머였던 Dave Palmer과 함께 앨범작업을 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때서야 밴드라고 불릴만한 진용을 갖췄다. 이 라인업은 1993년 Dusk까지 이어졌으나, 1995년 Hanky Panky의 작업에서는 키타리스트로 Eric Schermerhorn, 키보디스트 D.C. Collard, 하모니카에 Jim Fitting, 그리고 드러머 Brian MacLeod 등 진용을 전면 교체하였다. 이 앨범은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 Hank Williams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디스코그래피
1981 Burning Blue Soul 4AD
1982 Uncertain Smile Maxi
1983 Soul Mining Epic
1986 Infected Epic
1989 Mind Bomb Some
1993 Dusk Epic
1993 Dusk & Live in New York (Yeah It’s a Bootleg) Sony
1993 Solitude Epic
1994 Dis-Infected Alex
1995 Hanky Panky 550 Music/Epic
2000 NakedSelf Inter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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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al Site

Tears For Fears

Tears for Fears 2008.jpg
KWa – 자작의 “Tears for Fears 2008“. 위키미디어 공용에 의해 CC BY-SA 3.0으로 라이선스됨.

Roland Orzabal과 Curt Smith는 Tears For Fears라는 그들 밴드의 이름을 아서 자노브(Arthur Janov)의 “primal scream therapy”이라는 치료 요법에서 따올 만큼 지적인 분위기의 씬쓰팝 듀오였다. 더나아가 그들은 자노브의 이론을 데뷔앨범 The Hurting에 도입하는 대범성을 보였다. 이 앨범은 본토 영국에서 빅히트를 기록하였다. 2집 Songs from the Big Chair를 통해 그들은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Shout”, “Head Over Heals” 등이 엄청난 히트를 하였고 이로 인해 그들은 MTV 세대를 이끄는 확실한 선두주자가 되었다. 엄청난 성공에 부담을 느낀 탓인지 이들의 3집은 4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싸이키델릭한 타이틀 The Seeds of Love가 히트하긴 하였고 앨범도 많이 팔렸지만 밴드의 종말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스미쓰가 90년대 초반 그룹을 떠나면서 Tears For Fears는 오자발의 솔로프로젝트가 되었다. 2000년 다시 재회한 이들은 다시 Tears For Fears의 이름으로 앨범을 내기로 합의한다.

디스코그래피
1983 The Hurting (Mercury)
1985 Songs from the Big Chair (Mercury)
1989 The Seeds of Love (Fontana)
1993 Elemental (Mercury)
1995 Raoul and the Kings of Spain (Epic)
2004 Everybody Loves a Happy Ending
2022 The Tipping 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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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n Site

Talking Heads

Talking Heads band1.jpg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Talking Heads, CC BY-SA 2.0, Link

David Byrne, Chris Frantz 와 Tina Weymouth는 70년대 중반 Rhode Island 디자인 스쿨에 다녔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카나다와 발티모어에서 자란 Byrne은 Revelateion이라는 이름의 스쿨밴드에서 그의 음악경력을 시작하였다. Byrne의 다음 모험은 좀더 진지한 것이었는데 아코디언 연주자인 Marc Kehoe와 함께 그는 발티모어와 샌프랜시스코의 아트스쿨과 레스토랑에서 Bizadi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Byrne은 Rhodes Island에서 Chris Frantz라는 드러머를 만나서 Artistics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그들은 커버버젼을 주력했으나 Byrne은 그 와중에서 ‘Psycho Killer’, ‘I’m Not In Love’, ‘Warning Sign’ 같은 나중에 Talking Heads 시절 써먹은 노래를 만들었다. 그룹의 열렬한 팬 중에 한명은 바로 Tina Weymouth 였는데 후에 Frantz와 결혼하였다.

Artistics가 1974년 중반 해체된 이후 셋은 그들 스스로 밴드를 조직할 것을 고려하였다. Weymouth 는 베이스를 배웠고 이 세명의 졸업생은 New York 의 Lower East Side로 본거지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른 예술학교 졸업생들처럼 창고에서 기숙하는 길을 걸었다. 트리오는 1975년 초반 진지하게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주요 연습곡은 Byrne의 오리지날곡들과 버블검 사운드, 그리고 60년대 펑크락의 커버버젼이었다. 그 해 5월 그들이 연주하곤 했던 음악에 관한 선입견이 없을 만한 그런 이름, Talking Heads란 이름을 찾아냈다.

6월에 그들은 CBGB에서 Ramones 공연의 전 공연으로 데뷔공연을 가졌다. New York 은 그 당시 한 시절의 음악적인 폭발력의 한 중앙에 있었다. Patti Smith, Tom Velaine, Richard Hell이 이끄는 Television, 그리고 Ramones와 같은 아티스트들은 Brill Building의 사망 이후 미국락계의 메인스트림으로 나서고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Talking Heads에게는 매우 유익한 토양이 되었다. 트리오는 1976년 Beserkeley 레코드사를 위해 ‘Psycho Killer’, ‘First Week, Last Week/Carefree’, 그리고 ‘Artists Only’가 담긴 최초의 데모테잎을 만들었다. 이 데모테잎은 ‘1,2,3 red light’의 라이브 버전과 함께 80년 브트랙 EP에 실려있다. 이 테잎은 그들이 그들의 첫 앨범을 만든 시기에는 사라진 단순하고 일렉트릭한 매력이 살아있는 음악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중에 1976년 여름 데모 세션이 이어진다.

그리고 11월에는 Ramones와 Flamin’ Groovies같은 이들의 고향인 Sire와 계약을 체결했다. 12월에 그들은 New York에서 처음 발매된 그들의 첫싱글 ‘Love Goes To Building On Fire’/’New Feeling’을 녹음했다. 이 두 트랙은 ‘New Feeling’의 경우 그들의 데뷔앨범에 다시 삽입되었고 A면의 경우 Sire의 히트작 ‘New Wave’에 포함되긴 했지만 Talking Heads의 정식앨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첫 싱글의 앨범재킷은 영국판의 경우 흔하지만 미국판의 경우 수집품목이 될만큼 귀하다. 그 싱글이 발매될 때 Talking Heads는 Jonathan Richman 이 빠졌던 오리지날 Modern Lovers 의 키타리스트였던 Jerry Harrison을 영입 4인조가 되어 있었다. 1976년 몇 번의 공연 후 그는 밴드에 합류하기로 동의했다. 이들은 유럽에서의 일련의 공연 이후 그들의 첫 LP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룹은 4월에 바하마에서 그들의 두번째 LP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를 녹음하기 위해 1978년 초반 유럽에서 돌아왔다.

디스코그래피
1977 Talking Heads : 77
1978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1979 Fear Of Music
1980 Remain In Light
1983 Speaking In Tongues
1985 Little Creatures
1986 True Stories
1988 Naked
2006 Talking Heads : 77 [Remastered Version]
2024 Talking Heads : 77 [Super Deluxe Edition]
2025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 [Super Deluxe Edition]

링크
Talking Heads Korea : New Feeling
The Name Of This Site is Talking-Heads

Talk Talk

Talk Talk in 1988.jpg
“Talk Talk in 1988” by http://www.talktalk.hu/eng/spiritus.html, Copyright : EMI Records, Ltd., 1988.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It’s My Life로 유명한 Talk Talk는 그들의 전성기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씬쓰팝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Jazz, 클래식, 그리고 앰비언트뮤직의 다양한 음악적 결실을 받아들인 범주를 지을 수 없는 싸운드를 선보였던 유니크한 밴드이다.

Talk Talk의 스토리는 싱어이자 쏭라이터인 Mark Hollis에서부터 시작한다. Eddie and the Hot Rods와 같은 펑크밴드의 매니저, DJ, 프로듀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Ed Hollis의 동생이었던 그는 당초에는 아동 심리학자가 꿈이었다. 그러나 1975년 그는 학교를 떠나 런던으로 향했고 이 곳에서 The Reaction이라는 밴드를 조직하였다. 1977년 밴드는 Island 레코드사를 위해 데모테잎을 녹음하였다. 이 곡들 중 한 곡의 제목이 Talk Talk였으며 1978년 I Can’t Resist라는 싱글을 내놓은 후 밴드는 해산하였다. 그의 형 Ed는 Mark에게 베이스 Paul Webb, 드러머 Lee Harris, 키보드 Simon Bernner를 소개하였고 Mark는 이들과 함께 1981년 Talk Talk 를 조직하였다.

프로듀서 Jimmy Miller와 여러개의 데모를 녹음한 후 Talk Talk는 EMI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곳에서 그들은 Duran Duran의 프로듀서였던 Colin Thurston과 함께 두개의 싱글을 제작하였다.(Mirror Man과 Talk Talk) EMI의 의도는 이들을 New Romantic의 대열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1982년 이들은 Duran Duran의 영국공연 오프닝을 담당하였다. 그들의 데뷔 LP인 The Party’s Over는 씬쓰팝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당시 이 부류의 음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정직성과 가사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Talk Talk에게 있어 1983년의 최대의 유산은 It’s My Life를 쓰고 녹음한 일이었다. 터닝포인트는 프로듀서이자 멀티인스투루멘탈리스트인 Tim Friese-Green의 가세였다. 그는 밴드의 비공식 멤버로 활동하면서 Hollis의 이상적인 음악적 파트너로 남아있었다. It’s My Life는 전작 The Party’s Over에 비해 보다 풍부하고 자연적인 텍스춰를 가미함으로써 데뷔 앨범에 전착하곤 하는 뉴웨이브 계열 음악의 고질적인 악습을 따르지 않았다. 타이틀트랙은 영미 양국에서 크게 히트하였다.

1986년의 The Colour of Spring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 앨범에서는 Life Is What You Make of It이나 Give It Up과 같은 곡들이 히트하였고 Talk Talk는 당시 밴드들 중 가장 앨범 판매고가 좋은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대규모의 공연이 이어졌고 EMI는 이들의 다음 작업에 많은 예산을 책정하게 되었다.

1987년 그들은 네번째 앨범을 위해 Suffolk 의 한 버려진 교회에 머물렀다. EMI는 결과물이 빨리 나오길 기대했으나 쉽게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예산이 상당부분 초과하였고 데드라인은 진작에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Hollis는 EMI에 작업중인 작품을 공개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앨범에서 싱글 발매와 공연은 없을 것이라고까지 공언하였다. 이러한 산고끝에 발매된 Spirit of Eden은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상업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이 난해하고 사색적인 작품은 스탠다드팝뮤직과는 거리가 너무도 멀었다. 길이가 길고 여백인 많은 곡들은 째즈의 텍스춰에서 따온 복잡한 악기 구성 등으로 채색되어 있었다.

EMI와 Talk Talk간의 관계는 이미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EMI는 밴드의 동의없이 Sprit of Eden의 트랙 I Believe in You의 싱글 버전을 출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다음에 그들은 밴드를 회사의 명단에서 제외시켜 버릴 심산이었다. Talk Talk는 회사를 고소하였고 EMI는 맞고소로 대응하였다. 밴드가 법정에서 승리하였고 다음 앨범을 위해 Polydor와 계약을 체결하였다. Paul Webb이 그룹을 떠났다. 그리고 1991년 Laughing Stock이 게스트뮤지션의 도움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Talk Talk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디스코그래피
1982 The Party’s Over [EMI]
1984 It’s My Life [EMI]
1986 The Colour of Spring [EMI]
1988 Spirit of Eden [EMI]
1991 Laughing Stock [Polydor]
1999 London 1986 [live] [Blueprint]

링크
Fan Page

Taco

Taco at Oldie 95 Studio in 2012
By Foto: Udo Grimberg, Lizenz: Creative Commons by-sa-3.0 de, CC BY-SA 3.0 de, Link

Puttin’ On The Ritz라는 단 한곡의 빅히트곡으로 1983년도 팝스계를 휩쓸었던 Taco는 독일이 낳은 뉴웨이브 아티스트이다. Nena, Tangerine Dream 등의 뒤를 이어 독일록의 명예를 걸고 전세계 팝계에 데뷔한 그는 일찍부터 가꾸어 온 풍부한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뉴웨이브의 장점을 그대로 펼쳐 보였다.

타코가 태그가 자신의 밴드 Taco’s Bizz를 이끌고 함부르크 클럽가에 나타난 것은 1980년이었다. 향수에 젖게 하는 그의 감미로운 공연이 점차 인기를 얻어 갔고, 이런 클럽가의 인기가 독일 전역에 퍼져가자 드디어 취입을 결정하게 되었다.

After Eight이란 타이틀로 발매된 데뷔 앨범에는 Cheek To Cheek, Singin’ In The Rain, Puttin’ On The Ritz 등 주로 클래시컬한 명곡을 리바이벌시킨 것이 주를 이루었다. 반응ㄴ 실로 대단했는데 급기야 RCA 레코드사를 통해 1983년에 전세계 시장에 발매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Puttin’ On The Ritz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Irving Berlin의 오리지널인 이 곡은 타코의 목소리를 30년대의 스타일로 담고, 그 위에 뉴웨이브 스타일과 신서사이저 사운드로 더빙시켜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디스코그래피
AFTER EIGHT 1982
LET’S FACE THE MUSIC 1984
PUTTIN’ ON THE RITZ – BEST OF TACO 1991

링크
팬페이지

T’Pau

T'Pau 2010.jpg
“T’Pau 2010” by Thomas Riggs from London, England – T’Pau.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보컬 Carol Decker (b. Sept. 10, 1957)
기타 Ronnie Rogers (b. Mar. 13, 1959)
드럼 Tim Burgess (b. Oct. 6, 1961)
키보드 Michael Chetwood (b. Aug. 26, 1954)
베이스 Paul Jackson (b. Aug. 8, 1961)

유명한 TV 시리즈 Star Trek의 한 캐릭터의 이름에서 밴드 명을 따온 T’Pau는 1986년 결성되었다. 팀의 주축은 보컬 Decker와 기타를 맡은 Rogers였고 이 둘이 작곡라인을 맡았다. 밴드는 Virgin의 계열인 Siren과 계약을 체결하고 1987년 데뷔싱글 “Heart and Soul”을 발매했다. 발매시 거의 광고도 하지 않았지만 이 곡이 한 청바지 광고에 쓰이면서 영미 양국에서 5위안에 드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데뷔앨범 Bridge of Spies는 영국에서 금새 차트 1위에 올랐다. 연이은 네 개의 싱글들도 최소한 차트 20위안에 들었다. 그러나 미국차트에서는 그리 신통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Bryan Adams, Nik Kershaw와 함께 투어하면서 밴드는 새 기타리스트 Dean Howard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 Rage를 내놓았다. 이 앨범은 영국차트에서 4위에 랭크되었다. 이어지는 앨범 The Promises가 1991년 간신히 탑텐에 진입하였다. 고별공연 후 T’Pau는 해산했고 Decker는 솔로캐리어를 쌓아갔다. 1998년 재결합하여 Red라는 앨범을 발매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7 Bridge of Spies [Virgin]
1987 T’Pau [Alliance]
1988 Rage [EMI]
1991 The Promise [Atlantic]
1998 Red [Renaissance]

링크
Official Site
T’Pau Music and Discu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