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Tom Club / Tom Tom Club

Tom Tom Club - Tom Tom Club CD album cover.jpg
“Tom Tom Club – Tom Tom Club CD album cover” by scanned by Ian Dunster from original UK CD album..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본인들이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거장 Brian Eno이 진두지휘 아래 명반 Remain in Light을 끝낸 Talking Heads에게는 항상 “지적(知的)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이에 대한 중압감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Talking Heads의 리듬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Chris Frantz와 Tina Weymouth 부부의 다음 작업은 보다 덜 “지적인” 작업이었다. 그들이 선택한 프로젝트는 그들이 들렀던 휴양지 저메이카에서 들었던 레게/트로피카 사운드가 결합한 발랄한 뉴웨이브 댄스팝이었다. 다소 진지하고 음습한 분위기가 없잖아 있던 Remain in Light과는 천차만별인 그러한 시도였다. 엽기발랄한 앨범커버와 딱 들어맞는 타이틀곡인 “Wordy Rappinghood”에서부터 시작되는 훵키하고 댄써블한 분위기는 앨범 전체를 감싸고 있다. 특징적으로 Tina의 자매들이 앨범작업에 참여하여 코믹한 보컬로 ‘한번 재밌게 놀아보자’라는 분위기에 흥을 더하였고 더불어 일본의 전통음악에서 영감받았음직한 코믹한 추임새의 연주도 돋보인다. 이러한 시도는 Talking Heads의 전작들을 – 심지어 이후의 작품들보다도 – 뛰어넘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졌는데 그룹의 대표적 싱글인 “Genius Of Love”는 여전히 TH의 그 어떠한 싱글보다도 성공한 싱글로 남아있다. 이 싱글은 80년대와 90년대 내내 댄쓰플로어의 애청곡으로 남게 되었고 Mariah Carey의 Daydream의 샘플링에 사용되기도 했다(사실 Genius Of Love의 흥겨운 리프이외에는 들을게 없는 곡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앨범의 첫 두곡을 제외한 나머지 싱글들이 그 훵키함은 유지하되 특유의 감칠 맛나는 끈기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작곡의 귀재이자 음악적 카리스마의 소유자인 David Byrne의 부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여하튼 이러한 Side Project의 성공에 고무되어 Chris와 Tina는 TH가 사라진 현재까지도 Tom Tom Club만은 꾸준히 유지시키고 있다.(sticky)

1. Wordy Rappinghood (Tom Tom Club) – 6:27
2. Genius of Love (Tom Tom Club) – 5:34
3. Tom Tom Theme (Tom Tom Club) – 1:25
4. L’ Elephant (Tom Tom Club) – 4:50
5. As Above, So Below (Tom Tom Club) – 5:23
6. Lorelei (Tom Tom Club) – 5:05
7. On, on, on, on… (Tom Tom Club) – 3:33
8. Booming and Zooming (Tom Tom Club) – 4:32
9. Under the Boardwalk [*] (Resnick/Young) – 5:44
10. Lorelei [*] (Tom Tom Club) – 6:20
11. Wordy Rappinghood [*] (Tom Tom Club) – 6:39
12. Genius of Love [*] (Tom Tom Club) – 7:24

Hall & Oates / Private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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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 Oates Private Eyes” by May be found at the following website: http://www.hallandoates.com. Licensed under Wikipedia.

학생시절 휴학기간동안 고향에 내려가서 소위 음악다방 DJ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한적이 있다. 그 중에 키가 크고 장난스럽게 생긴 얼굴의 한 여자 DJ와 우연히 시비가 붙었는데 발단은 Hall & Oates에서 누가 Daryl Hall이고 누가 John Oates냐 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키큰 백인이 Daryl Hall이고 키작은 라틴계가 John Oates였지만 그 아가씨는 반대로 알고 있었다.(명색이 DJ가 말이야~) 결국 Hall & Oates 레코드 한장을 내기로 걸었고 그래서 필자가 얻게 된 앨범이 바로 이 Private Eyes이다.타이틀곡과 똑같은 이름의 앨범명 Private Eyes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탐정”이라는 뜻의 관용적 표현이다. 타이틀곡 Private Eyes는 바람기많은 애인을 둔 남자가 여자에게 보내는 경고를 주제로 한 미드템포의 댄쓰곡이다.(예전에 나산백화점 맞은 편에 있는 한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른 기억이 나네요.) 이어지는 Looking for a Good Sign에서 마지막 곡인 Some Men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은 왜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음악이 Blue Eyed Soul이라는 다소 폭이 좁은 음악스타일에 한정시킬 수 없는 뛰어난 음악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지에 대한 실증을 보여주고 있다.그들은 이 앨범에서 시대의 조류에 걸맞게 이전에 다소 오쏘독쓰하게 표현해내던 Soul대신에 씬써싸이저와 기계적인 비트, 그리고 팝적인 감각이 적절히 융화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Private Eyes”,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Did It in a Minute” 가 연속적으로 히트하는 성공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챠트에 오르지 못한 여러 곡들 역시 동일한 수준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으므로 굳이 건너뛰면서 골라들을 필요는 없다. 추천곡 Looking for a Good Sign(sticky)

1. Private Eyes – 3:29
2. Looking for a Good Sign – 3:55
3. I Can’t Go for That (No Can Do) – 5:07
4. Mano a Mano – 3:53
5. Did It in a Minute (Hall/Oates) – 3:37
6. Head Above Water – 3:34
7. Tell Me What You Want – 3:50
8. Friday Let Me Down – 3:33
9. Unguarded Minute – 4:08
10. Your Imagination – 3:32
11. Some Men – 4:15

Talking Heads / Remain In Light

토킹 헤즈의 네 번째 앨범 「Remain In Light」의 위대함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리더 데이빗 번의 호기심과 창의력에 있다. 항상 지적인 밴드로 불리우는데 싫증난 번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앨범은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과 여러 부족들의 전설에 바탕을 둔 아프리카적 정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또 하나의 인물은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며 토킹 헤즈의 초창기부터 번과 호흡을 맞춰 온 브라이언 이노이다. 그는 작곡과 편곡, 기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 연주에서 특유의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Remain In Light」의 전체적 사운드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에 근거해 멜로디에 의한 코드 체인지에 의존치 않고 대담한 반복 리듬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된 사운드는 대단히 펑키(Funky)하고 댄스적이다. 대부분의 실험적 음반이 상업적 성공과 연결되지 않는데 반해 이 앨범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 19위까지 진입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히트곡 을 비롯, 수록곡 대부분의 가사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한 마디로 「Remain In Light」은 ‘제3세계 음악’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워준 기념비적 앨범이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나 스팅의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등이 모두 이 앨범에 큰빚을 지고 있다.(이무영)

Talking Heads / Talking Heads : 77 (1977)

Talking Heads 77.jpg
“Talking Heads 77” by Sire Records – Original album.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Rolling Stone Magazine, 1977년 11월 3일 리뷰

Talking Heads의 놀랄만한 데뷔앨범

Talking Heads는 Patti Smith, the Ramones, 그리고 Television과 함께 CBGB를 이끄는 빅4 중 가장 신출내기이다. 그들의 데뷔는 절대적인 승리다. 공손하고도 낮게 깔린 음성의 음악과 공무원, 부모, 그리고 학교를 칭송하는 가사는 마치 세 명의 젊은 공화당원들 같아 보인다. Talking Heads는 펑크가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은 팝뮤직의 위대한 아이비리그적인 희망이다. 난 이처럼 생명력있고 상상력이 가득찬 앨범을 들어본 적이 없다. David Byrne의 음악은 세련미 넘치며, 매우 다양하고, 듣기에 재밌다.

그는 충동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 없는 것처럼 도전적인,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옆길로 새면서 활발하고 팔팔했던 60년대의 후기 비틀즈적인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Jonathan Richman 등의 초기 비평에서 미니멀리즘으로 분류된 밴드이다. Talking Heads는 정말로 그들 사운드의 경제성에 있어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순진한 Richman이 위험스러울만큼 까다롭게 굴었던 그 곳에 Talking Heads의 음악은 논센쓰가 없다는 점이다. Byrne의 키타 패턴, Jerry의 겸손한 키보드, Matina의 억제된 베이스, 그리고 Chris의 효과적이고 엄격한 드럼은 에너지를 터뜨리는 팽팽한 진지함을 전달하고 있다.

다른 그들의 노래처럼 ‘The Book I Read’는 흥분감으로 부풀어져 있고 억제력을 능가하는 팽창의 느낌이 있다. ‘Pulled Up’은 청각의 본성을 난폭하게 들뜨게 하는 진정한 챔피온이다. 보컬에 있어서, Byrne의 정력적인 개성은 창살안에서 포효하는 갇힌 호랑이처럼 한치도 틀림없는 음악적 틀을 진동시킨다.(그는 즉흥적이고 날카로운 ‘나쁜’ 음성으로 물에 빠진 사람이 호흡하려 애쓰는 것처럼 고음역을 움켜잡고 있다.) 사랑, 결단, 그리고 자아에 대한 욕망의 논리학과 상실감을 탐구하면서 그는 감정을 파악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이상학자처럼 이음새를 더듬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사를 아끼고 있기 때문에 Byrne의 자라나고 있는 페르소나는 절대로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Psycho Killer’가 정력으로 고동치는 반면 ‘No Compassion’은 기분 나쁜 Lou Reed의 참을성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직설적이고, 상쾌하고, 경쾌한 Talking Heads와 추상적이고, 억눌리지 않고, 불같은 Television은 각각 쉼없이 움직이는 70년대의 Beatles와 Rolling Stones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위대한 앨범일 뿐만 아니라 이 10년을 정의하는 앨범 중 하나이다.

나의 감상기

Talking Heads:77은 사실 내가 감상한 그들의 작품 중 비교적 늦게 접한 작품이다.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 중 상당수는 불법인쇄로 만들어진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에서 이미 접했던 곡들이다. 이미 라이브 버전으로 익숙해져 있는 노래들을 스튜디오 버전으로 들었을 때의 느낌은 흥미롭게도 라이브 버전에서 느끼던 그대로의 생동감이었다. 간단한 악기 편성은 오히려 스튜디오 버전같지 않다는 느낌을 주었고 마치 음표를 무시하고 노래하는 듯한 David Byrne의 꺾기 창법이 그러한 현장감을 더해주었다. 비록 사람들이 이 앨범을 Punk장르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이미 그들은 평범한 Punk의 본류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앞서 말했던 David의 꺾기 창법,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리 저리 튀는 멜로디(특히 Pulled Up에서의 하늘로 솟아 오르는 듯한 멜로디는 기가 막히다), 훵키한 키타리프(특히 New Feeling 에서), 리듬파트의 강조 등은 Ramones나 Jam류의 스트레이트 펑크 음악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앨범 수록곡

  1. Uh-Oh, Love Comes To Town
  2. New Feeling
  3. Tentative Decisions
  4. Happy Day
  5. Who Is It ?
  6. No Compassion
  7. The Book I Read
  8. Don’t Worry About The Government
  9. First Week/Last Week…Carefree
  10. Psycho Killer
  11. Pulled Up

밴드의 첫싱글 ‘Love Goes To Building On Fire’ 은 이 데뷔앨범에 수록되지 않았다.

X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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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TC bandphoto” by Jean-Luc Ourlin – http://www.flickr.com/photos/jlacpo/5034883/.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매력적인 멜로디와 생명력이 깃든 포스트 펑크 (post punk)를 선사했던 XTC는 Talking Heads와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의 밴드”로 묶일수도 있었지만 두 그룹의 스타일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룹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영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멤버들은 대부분 영국 Swindon 지방의 노동자 계층으로 성장했는데 그곳에서는 모두들 정규교육을 팽개치고 팝 음악으로 경력을 쌓으려는 시도를 좋아했다.

Andy Patridge는 말타의 Mediterranean 섬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때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고 15살까지는 학교에 있었다. 그후 신문사에서 “Teaboy”로 일했고 그후에는 지방 기술대학에서 예술수업을 받았으며 남는 시간에는 집에서 혼자 기타를 배웠다. 거의 같은 시기에 Patridge와 같은 블럭에 살고있던 Colin Moulding은 우유배달 조합원, 일일노무자, 그리고 지방자치회에서 일하는 틈틈이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있었다. 드러머는 Terry Chambers로 정해졌는데 그는 15살때 독한 사과주를 너무 많이 마신 사건 때문에 학교를 뛰쳐 나왔다. 그 나이또래 아이들처럼 건설자재 상인이나 서판인쇄공 등의 여러가지 직업을 거쳐 일하면서도 음악적 성공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1976년 셋이 모여 XTC를 결성하기 이전에는 Star Park, The Helinum Kids, Skyscraper 그리고 Snakes 같은 다른 밴드에서 때로는 함께 때로는 떨어져서 연주를 했다. 그룹의 키보드 연주자로 Barry Andrews를 합류해 4인조로 활동했다. 1977년초, 그들은 Swindon 지역에서 지지기반 세력을 확보했다. 이러한 반응과 지방 비평가들이 쓴 호의적인 평론, 즉 열악한 10대 고용원들의 환경을 유머와 신랄한 비평을 조화시킨 밴드에 대한 칭찬에 힘입어 Patridge와 그의 친구들은 당시 펑크의 기세가 가득했던 영국으로 진출해야 될 때라고 느꼈다.

1977년 중반, Virgin Records와 계약을 맺고 10월에 데뷰싱글 “3 DEP”를 발표했고 이어서 79년에는 영국에서 Top 20 안에 든 “Making Plans For Nogel“을 비롯해 5곡의 싱글을 더 발표했다. 78년, Virgin Records는 밴드의 첫 앨범이자 2장의 영국식 앨범 White Music과 Go2를 발매했고 둘 다 영국순위 Top 30을 기록했다.

밴드는 이 앨범들을 영국에서 시작해 일본, 호주, 뉴질랜드, 베네주엘라, 유럽대륙 드리고 종국에는 미국에까지 이어지는 거의 쉴틈없이 진행된 순회공연으로 홍보했다. 밴드가 미국에서 데뷔하게 된것은 1978년 새해전야에 Talking Heads가 참가하는 프로그램에서였다. 청중들의 반응은 79년 초에는 몇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 레코드사에서는 그해말에 게획한 훨씬 야망있는 순회공연과 때를 맞춰 밴드의 미국시장 첫 앨범인 Drums And Wires가 나왔다. 그런일들이 있기전에 밴드는 Andrews가 탈퇴를 결심하자 재결성을 위해 잠시 Swindon에 돌아가야 했다. 그의 자리는 예전에 밴드와 함께 키보드를 연주했던 적이 있는 Dave Gregory가 넘겨받았다. 그의 전력은 Dean Gabber와 그의 Gabberdines에서 기타리스트와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것을 꼽을수 있다.

새로운 결성도 여전히 영국 비평가들에게는 칭찬을 얻었다. New Musical Express에 기고한 Paul Morley는 “재치와 우아하고 다각적인 음악을 만드는… 그들의 음악은 새로운 형용사를 요구한다.” 라며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밴드를 격려했다. Melody Maker의 John Orme는 Drums & Wire를 복합성, 대조, 풍부함 그리고 유머까지 XTC는 껍질을 부수고 새로운 땅을 개척했다.”라며 일컬으며 인상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Patridge는 레코드사 약력에 이렇게 썼다. “난 환각의 시간에 대한 음악에 심취했고 그것을 마법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R&B에 마술을 섞은 종류의—이것이 진짜 우리가 하는 일이다… 난 사람들이 ‘오! 맙소사! 저게 뭐야?’라고 생각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XTC는 언제나 사람들이 ‘맙소사’ 라고 말하게 하고 그 모든것이 타당한 이유라고 본다.” 미국에서 가졌던 실황공연에 힘입어 앨범 Drums And Wires 는 밴드를 알고 있는 상당수의 미국 팬들을 확보했다. 뒤이은 걸작 Black Sea는 50위까지 올라갔다.

1981년 말이 되자 라이브를 계속 할 수 없는 몇가지 징조들이 밴드 멤버들 사이에 나타난다. Patridge의 경우에는 모든 종류의 군중들을 선천적으로 강하게 혐오하는 증세를 고치려고 애썼다. 밴드의 새앨범 English Settlement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발매 됐는데 고향인 영국에서는 반응이 좋았으나 Black Sea가 얻었던 호응을 얻지 못했고, 아마도 그 이유를 공연홍보의 부족으로 여기는 듯했다. 1982년말, Terry Chambers는 활도의 빈곤함에 불만을 품고 호주의 새로운 목장을 찾아 그룹을 떠났다. 나머지 멤버들은 3인조로 활동할 것을 결정했다. 83년에 그들은 또다른 스튜디오 앨범을 제작하는데 어쿠스틱 연주가 강조된 것이었다. Murmur는 미국의 새로운 레이블인 Geffen Records에서 발매됐다. 앨범은 영국과 미국차트에 오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았고 팬들 가운데에는 이전의 앨범에 비해 부드러운 톤에 당혹해 할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1984년 밴드는 새로운 스튜디오 앨범을 편집하기 위해 햇병아리 시절의 Hard-Blues를 다시 추구하기 시작했다. Patridge는 “우리의 새앨범과 더불어 저도 심기일전하고 싶었어요. 음악은 훨씬 흥겨운 기분이 들겁니다. Murmer의 가사는 저희집 뒷뜰 크기에 대한 아주 작은 목표를 담고 있어요. 새앨범 The Big Express는 우리에게 다시 세상을 둘러보게 한 더욱 Hard한 앨범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앨범은 1984년 10월 미국의 Geffen에서 발매 되었는데 이것은 흥미는 있었지만 골수팬들을 빼고는 구매자들의 구미를 다시 돋구진 못했다. (1985년 <25 O’Clock>은 영국에서만 발매되었다.) Geffen의 간부들은 밴드의 중요성을 레이블처럼 다수의 록팬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표명하고 1986년에 새로운 앨범 Skylarking을 발매했다. 영국밖에서 그룹의 문제점들이 크게 부각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Patridge는 항상 낙천주의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는 Kristine McKenna(Los Angeles Times, 1982년 4월 4일자)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팝음악은 즐거움과 대학살로 가득합니다. 마이크를 구부리고 셔츠를 잘라 블라우스로 만들어 입죠. 우린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특별히 잘 생기지 않거나 셔츠를 잘라 만든 블라우스 타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다른 목표가 잇었기 때문입니다. 음악이 문명을 바꿀수는 없지만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마 내가 고지식해서 그렇게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제가 바라는 일입니다.”

Punk 77.com

디스코그래피
White Music (1978)
Go2 (1978)
Drums And Wires (1979)
Black Sea (1980)
English Settlement (1982)
Mummer (1983)
The Big Express (1984)
Skylarking (1986)
Oranges And Lemons (1989)
Nosuch (1992)

링크
팬페이지
Weiv의 Skylarking Review
Lyrics
Italian Fan Page

Wilder, Matthew

Break My Stride 라는 경쾌한 댄스곡으로 80년대 반짝 인기를 얻었던 Matthew Wilder 는 애초에 70년대 초반 뉴욕 출신 포크 듀오 Matthew & Peter 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 LA로 근거지를 옮긴 후 TV 광고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에 Rickie Lee Jones 와 Bette Midler 의 백업 보컬을 맡기도 했다. 1983년 마침내 자신만의 앨범을 I Don’t Speak the Language를 내놓았다. 이 앨범에서 Break My Stride 가 미국 차트 탑10에 오르는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듬해 내놓은 두 번째 앨범 Bouncin’ Off the Walls 는 형편없는 인기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ilder 는 다른 이들에게 곡을 써주고 프로듀스를 하는 등 음악활동을 지속했다. 1995년 그는 No Doubt 의 멀티플래티넘 Tragic Kingdom을 프로듀스했다. 그리고 Mulan 의 사운드트랙에도 참여하여 오스카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3 I Don’t Speak the Language Private I
1984 Bouncin’ off the Walls Private I

Wild Swans,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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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WildSwans2” by www.skyray.co.uk. Licensed under Wikipedia.

Teardrop Explodes – 뉴웨이브/펑크 아티스트 Julian Cope가 주축이 된 밴드 – 의 오르간 주자 Paul Simpson은 1982년 그만의 밴드인 Wild Swans를 조직하였다. 이 밴드에서 그는 보컬을 맡으며 전면에 나섰고 Systems의 기타를 맡았던 Jerry Kelly가 기타를, Ged Quinn이 키보드, 그리고 Alan Mills가 드럼을 맡았다. 이들은 리버풀의 “Club Zoo”에서 소수의 청중만을 모아놓은채 공연을 가졌다. 한편 Kelly는 Peter Coyle을 보컬로 내세운 The Lotus Eaters를 조직하였다. 이렇듯 다양한 음악적 활동으로 인하여 이들의 활동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그 기간동안 컬트적인 호응을 얻었다. 리버풀을 근거로 한 Zoo label에서 발표된 그들의 데뷔싱글 “Revolutionary Spirit”는 1986년 Peel Sessions의 EP에 삽입되어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급기야 그룹이 재결성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88년 그들은 Bringing Home the Ashes를 내놓았고 1990년 보다 싸이키델릭한 정조를 띈 Space Flower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Wild Swans의 해체 이후 Paul Simpson은 재주많은 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인 Ian Broudie와 함께 Care를 조직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8 Bringing Home the Ashes Sire/Reprise
1988 Music and Talk from Liverpool Sire
1989 Space Flower Sire

링크
Paul Simpson에 대하여
Paul Simpson과의 인터뷰
Paul simpson과의 또다른 인터뷰

Wham!

A black-and-white photograph of the members of the English pop duo Wham!, circa 1985.
By Louise Palanker – https://www.flickr.com/photos/louisepalanker/27193728338/, CC BY-SA 2.0, Link

죠지 마이클, 그리고 앤드류 리즐리. 짧은 기간 이토록 선굵은 활동을 펼쳤던 듀오는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공식적인 만 4년의 활동 동안 3장의 앨범과 10여개가 넘는 탑 탠 싱글을 남긴 웸. 이들의 전설은 수년이 지난 현재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1963년 동갑나기인 죠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는 13살 때 처음 만나 10년 이상 동고동락 해온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둘도없는 음악 파트너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앤드류의 형제들과 스카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훗날 1,2집에 수록될 수많은 곡들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여러 부분에 걸쳐 남다른 음악적 재능을 발신하고 있었다. 이렇게 저렇게 수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82년, 본격적인 프로 뮤지션이 되고자 20파운드를 투자해 데모 테입을 제작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CBS레코드와 계약, 4장의 싱글과 83년 7월 대망의 데뷔 앨범 ‘판타스틱’을 발표하게 된다.

죠지 마이클과 스티브 브라운이 공동 프로듀서한 이 앨범은 놀랍게도 발매와 동시에 1위로 직행, 웸은 영국 댄스 음악의 최강자이자 아이돌 스타로 단숨에 뛰어오른다. 84년 11월 발표된 2집 ‘ Make It Big ‘ 은 영국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은 물론 솔로 작품 ‘ Careless Whisper’ 까지 선보인 죠지 마이클은 단숨에 이 시대에 가장 잘 나가는 싱어송 라이터로 떠 오른다. 싱글과 앨범의 연이은 성공으로 85년 2월 브릿 어워드의 베스트 브리티쉬 그룹으로 선정된 웸은 여세를 몰아 빌보드 앨범과 싱글 챠트를 동시에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4월에는 서방계 팝 밴드론 최초로 죽의 장막 중국을 방문하여 공연을 갖기도 했으며 그 기록들은 ‘프리덤’의 뮤직비디오에 담은 바 있다. 같은해 12월 조지 마이클은 색다른 기록 한가지를 세우게 된다. 웸의 새로운 싱글 ‘I’m Your Man’ 크리스마스만 되면 울려퍼지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 백 보컬로 참여한 엘튼 존의 ‘니키타’ 등 그의 목소리가 담긴 네곡이 싱글 차트 상위권에 랭크된 것. 영국 팀으로는 드물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의 4개 부분을 석권하며 쾌적의 86년을 맞이한 웸이었지만 이들의 주변에선 괴이한 소문들이 하나 둘씩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팀이 해체할 것’ ‘조지 마이클이 솔로로 나서게 될것’ 등등.. 그러한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조지 마이클은 ‘Carless Whisper’ 에 이은 두 번째 솔로 싱글 ‘A Different Corner’ 를 발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의 해체를 알리는 충격의 매스컴 발표가 있게 된다.

86년 8월 웸은 3번째 정규 앨범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을 끝으로 공식적인 모든 활동을 마감한다. 학창시절 친구로 구성된 듀오였던 탓에 누구도 팀웍을 의심한바 없었지만 결국 음악적인 견해 차이와 내적 불균형이 원인이 되어 5년간의 화려했던 활동을 추억으로 접어두고, 86년 충격적인 해체 선언과 갈라서기를 시작하게 된 웸! 아주 오랜만에 새롭게 생각해보는 웸의 존재, 이들은 이제 추억이 아니라 전설에 가깝다. 왬은 없지만 조지마이클은 아직 팝계에 남아있다,, 베스트앨범이 2장이 나왔을정도로 그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도 언제 사라질진 아무도 모른다..20여년의 세월이 흐른뒤에도 지금까지 이어온 역사를 이어가기 바랄뿐이다.

디스코그래피
1983 Fantastic!
1984 Make It Big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링크
Wham Shake!

Waterboys, The

The Waterboys in Antwerp 2003 4.jpg
By Meut – http://photos.groups.yahoo.com/group/thewaterboys[dead link], CC BY-SA 3.0, Link

어렸을때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 항상 Wonder Stuff랑 헷갈리곤 했다. 보컬의 음색이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인것 같다. 그러나 그들을 소개하기 위해 다시 들어보니 오히려 보컬보다는 곡풍이 귀에 우선 들어온다. 서사적이고 이국적인(?) 노래풍이 이제 보니 상당히 켈트적이다. 과연 켈트적인 음악이 어떠한 것이냐 하는 의문은 아직도 여전히 유보적이지만 소위 켈트적인 음악이라고 주장하는 XTC, Dexy’s Midnight Runners, Big Country, 그리고 무었보다도 뭔가 애국적이고 남성적인 냄새를 풍기는 Alarm과도 상당히 유사한 싸운드이다.

그래서 웬지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밴드가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지만 뜻밖에도 이들은 영국 런던에서 결성되었다. 그러나 역시 그룹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싱어/쏭라이터 Mike Scott(1958년 12월 14일생)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출신이다. 애초 지방 펑크밴드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그의 밴드 Another Pretty Face를 이끌고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나 밴드는 이내 해체되어 버렸고 대신 The Waterboys – 밴드명은 Lou Reed의 노래 “The Kids”의 가사에서 따왔다 함 – 를 조직하였다.

The Waterboys는 1983년 셀프타이틀로 데뷔 앨범을 발매하였다. 그뒤 1984년 두번째 앨범 A Pagan Place를 내놓으면서 키보디스트 Karl Wallinger와 (그들의 음악의 특징적 요소를 이룬) 트럼펫 Roddy Lorimer을 영입하면서 더욱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싸운드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는 또한 영적인 면에 대한 Scott의 관심과도 관련되어 있다. 1985년 작품인 This Is The Sea에서 싱글 The Whole of the Moon이 크게 히트하면서 그룹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앨범 발매이후 Wallinger가 World Party를 조직하기 위해 그룹을 떠났고 그룹은 상당 기간 침묵하게 되었다. 1988년 많은 갈채를 받은 Fisherman’s Blues로 일선에 복귀했을때 싸운드는 아일랜드적인 풍취가 짙게 깔린 포크 싸운드가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취향은 1990년 Room to Roam으로까지 이어졌다.

1991년 Scott은 멤버들을 떼어 놓은 채 뉴욕으로 근거지를 옮겨버렸고 그곳에서 세션뮤지션들과 함께 Dream Harder(1993년)를 내놓았다. 곧 스코틀랜드로 돌아온 Scott은 한 영적 자치구(spiritual commune)에서 긴 은거에 들어갔다. 거기에서 그는 포크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Bring ‘Em All을 그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디스코그래피
1983 The Waterboys [Ensign/Chrysal]
1984 A Pagan Place [Ensign/Chrysal]
1985 This Is the Sea [Chrysalis]
1988 Fisherman’s Blues [Ensign/Chrysal]
1990 Room to Roam [Ensign/Chrysal]
1993 Dream Harder [Geffen]
2000 A Rock in the Weary Land [BMG International] [BMG]
2001 Rock in the Weary Land [Razor & Tie] [Razor & Tie]
2001 Too Close to Heaven [Phantom]
2003 Universal Hall
2007 Book of Lightning
2011 An Appointment with Mr Yeats
2015 Modern Blues
2017 Out of All This Blue
2019 Where the Action Is
2020 Good Luck, Seeker
2022 All Souls Hill
2025 Life, Death and Dennis Hopper

링크
Official Site

Wang Chung

Wang Chung.jpg
“Wang Chung” by http://www.geocities.com//patmil007/may823.jpg, Copyright : Geffen Records, 1986.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Nick Feldman과 Jack Hues로 1984년 구성된 왕청은 1984년 데뷔 싱글 Dance Hall Days를 들고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팝스계에 나섰던 영국의 듀오이다. 당시 이들의 출현을 두고 관계자들은 전혀 뜻밖의 인물들로 받아들였던 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댄스 취향의 데뷔 싱글로 큰 관심을 모은 이들이 1985년에 이와 정반대의 분위기 있는 발라드 To Live And Die In L.A.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감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왕청이라는 듀오의 또다른 진면목을 알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 들은 1986년 두번째 앨범 Mosaic를 발매하고 첫 싱글 Everybody Have Fun Tonight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82 Huang Chung [One Way]
1984 Points on the Curve [Geffen]
1985 To Live and Die in L.A. [Geffen]
1986 Mosaic [Geffen]
1989 The Warmer Side of Cool [Geff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