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 Division

Joy Division promo photo.jpg
“Joy Division promo photo” by Source (WP:NFCC#4). Licensed under Wikipedia.

리드싱어 Ian Curtis가 죽기전 밴드의 이름으로 발매된 앨범이 오직 하나밖에 없었던 Joy Division은 팝뮤직씬에 믿기지 않을 만큼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7년 어느날 키타리스트 Bernard Albrecht(Bernard Sumner)는 베이시스트 Peter Hook과 함께 Stiff Kittens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그들은 보컬에 Ian Curtis와 드러머 Steve Brotherdale을 영입하여 Warsaw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들은 Buzzcocks 등의 써포트밴드로 라이브 활동을 시작하였다. 몇개의 데모를 만든 후에 Brotherdale이 그룹을 떠났다. Stephen Morris가 빈 자리를 메꿨다.

그해 말경 그들은 Warsaw Pakt라는 펑크밴드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이름을 Joy Division이라고 바꿨다. – Karol Cetinsky의 2차대전에 관한 소설 The House of Dolls에서 영감을 얻은 이 이름은 나찌 병사들에게 매춘을 하도록 강요받았던 여자 부대원들을 일컫는 슬랭이다. – 주로 북부지방에서 공연을 했던 1978년 그들은 그룹의 매니저가 된 Rob Gretton, Factory 레코드사의 오너이자 TV저널리스트였던 Tony Wilson 등의 지지자를 얻게 된다. 그 해 이들은 셀프타이틀 앨범을 녹음했다. 펑크의 클래식으로 남을 뻔했던 이 앨범은 몇몇 곡에 씬써싸이저를 덧씌운 스튜디오 엔지니어의 행동에 화가 난 멤버들이 LP를 전부 폐기시켜버림으로써 전설속으로 사라졌다.(Warsaw라 이름붙여진 이 앨범의 브트렉이 떠돌기도 했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첫발매된 앨범은 밴드의 자체 라벨인 Enigma를 통해 발매된 EP An Ideal for Living이다.

그룹은 Martin Hannett과 함께 레코딩을 시작하여 1979년 7월 그들의 오랜 친구인 Tony Wilson의 Factory 레이블을 통해 Unknown Pleasures를 발매했다. 이 앨범은 평론가의 찬사를 얻었고 꽤 오랜 기간 영국의 인디챠트에 머물렀다. 영국의 펑크붐에 자극받은 미국의 Warner Bros가 계약을 제의했으나 밴드는 이를 무시했다. 그해 그들의 라이브쇼는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인기의 이면에는 아이러니칼하게도 Curtis의 심약한 건강도 한몫했는데 그는 공연중에 종종 발작증세를 일으키곤 했다. 점점 더 그의 정상적인 스테이지에서의 제스쳐와 진짜 발작간에 구분이 모호해졌다. 공연이 지속됨에 따라 Curtis는 점점 더 약해져갔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그룹은 유럽 공연에 돌입했다. 그러나 몇몇 공연은 Curtis 때문에 취소되었다.

그룹은 공연을 마친 후 두번째 LP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4월에 Love Will Tear US Aprart를 내놓았다. 5월초 한차례 공연후에 그룹은 미국 공연전에 2주일간의 휴식에 들어갔다. 그러나 출발 이틀전인 1980년 5월 18일 Curtis는 그의 집에서 스스로 목을 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Curtis가 죽기전 그룹은 멤버중 한명만 그룹을 떠나더라도 밴드를 해체하기로 약속했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1980년 여름 바야흐로 그룹의 인기가 막 치솟하 오르기 시작했다. 재발매된 Love Will Tear Us Apart는 영국 싱글 챠트 13위까지 오르는 등 그룹의 최대 히트곡으로 부상했다. 8월에 발매된 Closer는 매출이 급상승하여 챠트 6위까지 오르게 된다. 여름이 가기 전에 Unknown Pleasures까지 챠트에 등장했다.

Joy Division의 또다른 위대한 면은 살아남은 멤버들의 후속작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Bernard Summer가 주축이 된 멤버들은 1980년 1월 New Order를 조직했다. Curtis의 유작 컴필레이션 성경의 Still이 Joy Division의 이름으로 발매되어 영국챠트 5위까지 올랐다. New Order는 80년대 중반 그들만의 싸운드로 만개하기까지 Curtis와 Joy Division의 그늘을 벗어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초기 앨범에서 Joy Division의 때를 벗기지 못한 그들은 더이상 음습함과 Isolation을 그룹의 음악적 방향으로 삼기를 거부하고 Groove로 전향하여 일렉트로닉 뮤직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이 후에도 Sumner는 Pet Shop Boys의 Neil Tenant, The Smiths의 Johny Marr 등과 함께 Electronic이란 프로젝트밴드를 통해, 다른 멤버들은 Monaco, Revenge, The Other Two 등 사이드프로젝트를 조직하여 정력적인 음악활동을 펼쳤다.

Joy Division의 어둡고 음습한 싸운드는 The Cure, Tears For Fears, Echo and the Bunnymen, 그리고 보다 최근의 아티스트로는 Nine Inch Nails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독특한 드러밍과 꿈꾸는 듯한 키타싸운드, Curtis의 카리스마적인 보컬스타일, 자학적인 가사 등이 Gothic 밴드들에게 미친 영향또한 심대했다. 또한 Joy Division의 존재로 말미암아 Manchester의 인디라벨이었던 Factory 레코드사는 영국 음악씬에 주요한 위치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들은 Big in Japan, Echo and the Bunnymen, Cabaret Voltaire 등을 발굴해내는 등 New Wave 싸운드의 확산에 큰 역할을 했다.

디스코그래피
1979 Unknown Pleasures [Qwest]
1980 Closer [Qwest]
1999 Preston Warehouse 28 February 1980 [live] [Factory]
2001 Les Bains Douches [live] [Factory]

링크
Joy Division Central

Japan

Japan band.jpg
“Japan band” by Jean-Luc – originally posted to Flickr as Japan.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약간은 어설픈 glam-rock 밴드에서 스타일리쉬한 synth-pop 밴드로 변모한 Japan은 그들 시대에서 그런대로 성공적이고 매력적인 밴드이다. 1974년 런던에서 결성된 이들은 처음에 싱어쏭라이터인 David Sylvian, 베이시스트 Mick Karn, 키보디스트 Richard Barbieri, 드러머 Steve Jansen(David Sylvian의 동생), 그리고 키타리스트 Rob Dean, 이렇게 5인조로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Daivid Bowie나 New York Dolls 스타일의 glam-rock을 흉내냈다. Sylvian의 보컬은 Bryan Ferry를 연상시켰으며 Japan은 자주 Roxy Music과 비교되곤 했다.

레이블이 후원하는 한 콘테스트에서 우승한뒤 그들은 독일의 Ariola-Hansa 레코드사와 1977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듬해 Adolscent Sex와 Obscure Alternatives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영국과 미국에서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 청중들로부터는 어느 정도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그룹명 잘 지어야겠죠?) 1979년 Quiet Life로 그들은 보다 세련된 스타일과 그들만의 영역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이 앨범에서는 Smokey Robinson의 오리지널인 I Second That Emotion(예전에 영어강사에게 이 뜻을 물어봤는데 “동의합니다” 정도의 뜻이라 함)이 히트하였다.

1980년 Gentlemen Take Polaroids에서는 그들의 음악적 범위가 좀더 확대되었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만의 운치있는 싸운드에 이국적인 색채가 좀더 더해졌다. 1981년 Tin Drum이 그룹의 절정기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Funk, 중국풍의 연주, 중동 지역의 리듬과 같은 다양한 쏘스들을 덧칠하여 팝에서 보다 실험적인 톤과 텍스춰로 승부하였다. 영국에서는 싱글 Ghosts가 크게 성공하였다.

그러나 결국 Tin Drum이 그룹의 이별곡이 되고 말았다. 오랜동안 지속되어오던 그룹의 불화와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 차이로 인해 그룹은 결국 1982년 일본 나고야의 콘써트를 마지막으로 해체하고 말았다. 개개인은 신속하게 그들만의 프로젝트 작업에 착수하였다. Sylvian은 솔로커리어를 시작하였고 Ryuichi Sakamoto, Holger Czukay, Robert Fripp와 같은 이들과 작업하기도 하였다. Karn은 1982년 솔로앨범을 발매하였다. 이어 Bauhaus출신의 Peter Murphy와 짧은 기간 듀오를 하기도 하였다. Jansen과 Barbieri는 Dolphin Brothers라는 이름으로 1986년 Worlds in a Small Room을 발표하였다.

1987년 Karn이 Sylvian과 Jansen의 도움을 받아 Dreams of Reason Produce Monsters를 발매했고 이로 말미암아 그룹의 재결성에 대한 풍문이 나돌았고 결과적으로 1989년 4명의 주요멤버가 Rain Tree Crow라는 이름으로 다시 팀을 조직하였다. 1991년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앨범이 발매되었다. 그러나 또다시 멤버들은 각자의 길로 선회하였다. Sylvian은 꾸준히 솔로활동을 펼치는 반면 Karn, Jansen, Barbieri는 솔로활동을 지속하면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함께 일하는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디스코그래피

1978 Adolescent Sex
1978 Obscure Alternatives
1979 Quiet Life
1980 Live in Japan
1980 Gentlemen Take Polaroids
1981 Tin Drum
1982 Japan [Virgin]
1983 Oil on Canvas [live]

링크
David Sylvian 웹사이트

INXS

INXS (1983 ATCO publicity photo).jpg
By Distributed by ATCO Records – Worthpoint, Public Domain, Link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에씨 디씨(AC/DC),리틀 리버 밴드(Little River Band) 등 세계음악시장의 주류 권에 꾸준히 진입해온 호주 출신의 대표적인 뮤지션들의 계보를 잇는 일은 단연 인엑세스(Inxs)의 몫일 것이다. 80년대 뉴웨이브의 물결을 타고 꾸준히 성장하여 호주를 대표하는 그룹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오랜 활동에도 불구하고 멤버 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단결력이 그들의 밝은 미래를 말해 주기 때문이다.

인엑세스는 패리스(Farriss)가의 세 형제- Tim, Jon, Andrew -와 Micheal Hutchence, Lain Cove, Kirk Pengilly, Garry Beers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1976년 두개의 하이 스쿨밴드가 결합하여 결성되었으며, 2년 후 퍼스에서 시드니로 활동 범위를 넓힌 후, 아마추어 밴드 생활을 하였다.

80년에 접어들어 첫 싱글 ‘Simple Simon’/’We Are The Vegitables’를 디럭스(Deluxe) 레이블에서 발매하였으나 3년 동안 5∼6곡만이 호주 차트 40위 권에 겨우 진입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앨범 [Underneath the Color] 는 상당히 잘 팔린 편이었고, 다음 앨범 [Shabooh Shabooh] 는 차트 5위에 랭크되었다. 이 앨범은 미국과 유럽, 남아메리카까지 인엑세스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다음 앨범인[Listen Like Thieves] 가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인엑세스는 미국과 유럽으로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MTV에서도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방영하기 시작했다. [Kick] 앨범은 100만 장 이상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KicK]은 얼터너티브락을 담고있어서 시기적으로 적절한 사운드를 펼쳤다는 평과 함께 세계적인 그룹으로의 면모를 다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Need You Tonight’이 미국 차트에 넘버원을 차지하였고, ‘Devil Inside’, ‘New Sensation’, ‘Never Tear Us Apart’가 TOP10에 오르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여세를 몰아 발표한 [X]는 전작에 비해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그룹의 핵심이었던 Micheal Hutchence의 사생활이 항상 이슈로 등장하는 등 순탄했던 성공가도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 와중에도 윔블리 구장에서 가진 라이브실황을 담은[Live Baby Live] 를 발매하여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92년도에 발표한 [Welcome to Wherever You Are]는 더욱 강력해진 사운드를 담고 있으며, 음악적으로 성숙한 면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대표적인 앨범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이후에 발표한 앨범의 부진으로 그들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던 아틀란틱(Atlantic)레이블을 떠나게 되었고, 힛트곡들을 모아 놓은 베스트앨범을 마지막으로 내놓게 되었다.

94년도에 폴리그램으로 소속사를 옮기고 3년동안 이렇다할 활동도 갖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내다가 97년도에 [Elegantly Wasted]를 발표하여 [X]이후 두드러진 앨범 판매를 올렸지만,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감각의 퇴색으로 좋은 평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20년 가까운 활동기간동안 그들은 U2 , R.E.M 등 세계적인 그룹들과 어깨를 겨루며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사운드를 개발하여 많은 팬들을 확보하였다.

이들의 성공은 여러 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우선 처음부터 멤버들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과 보컬인 마이클의 수려한 외모, 여러 명의 작사가들, 각 앨범마다 새로운 프로듀서의 영입으로 앨범을 새롭고 신선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인엑서스의 핵이었던 보컬리스트 Micheal Hutchence의 죽음으로 현재 활동중단 상태인 이들의 거취가 주목된다.

changgo.com

디스코그래피

Inxs 1980
Underneath The Colours 1981
Shabooh Shoobah 1982
The Swing 1984
Listen Like Thieves 1985
Kick 1987 review
X 1990
Live Baby Live 1991
Welcome To Wherever You Are 1992
Full Moon, Dirty Hearts 1993
Elegantly Wasted 1997

링크

http://inxsweb.com
앤디질과 마이클허친스

Idol, Billy

빌리 아이돌은 1955년 11월 30일 영국의 스탠모에서 William Michael Albert Broad라는 본명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갖가지 악기 연주에 능한 조부모의 음악적 영향을 자연스럽게 받으면서 음악에 빠져 들었다. 10세때 할아버지가 사다 주신 키타를 익히기 시작했고, 서섹스 대학에 다니던 1976년 8월, 멜로디메이커지에 그룹 모집 광고를 내어 베이시스트 Tony James를 만났다. 토니와 함께 Chelsea라는 그룹을 결성해 두달동안 활약했으나 이내 첼시를 해체하고 보컬리스트 Gene October와 키타리스트 Bob Berwood Andrews를 가입시켜 Generation X라는 이름의 펑크그룹을 결성했다. 이들은 곧 크리살리스와 계약을 맺고 일련의 앨범을 내어 Wild Youth, Your Generation, Ready Steady Go 등의 히트곡을 생산해냈다. 1982년 2월 빌리 아이돌은 그룹의 마지막 앨범 Kiss Me Dearly가 실패하자 영국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가 솔로로 독립했다. 이어 그는 키타리스트 Steve Stevens, 베이시스트 Phil Feit, 드러머 Steve Missal을 끌어들여 자신의 백밴드를 조직하여 기반을 다지기 3년, 84년에 솔로 데뷔 앨범 Billy Idol을 발표하면서 박차를 가했다. 그의 음악스타일은 댄쓰뮤직의 속도감과 중량감을 적절히 결합하여 뉴뮤직과 헤비메틀을 접목시킨 스타일로 팬들의 호응을 얻기에 충분했다.

디스코그래피

1982 Billy Idol (Chrysalis)
1983 Rebel Yell (Chrysalis)
1986 Whiplash Smile (Chrysalis)
1986 Vital Idol (Chrysalis)
1990 Charmed Life (Chrysalis)
1993 Cyberpunk (Chrysalis)
1993 L.A. Woman (Capitol)
1993 White Wedding [live] (Chrysalis)

Hagen, Nina

Nina Hagen의 이력은 좀 색다르다. 1955년 동베를린에서 태어난 그녀는 그곳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락싱어로 활동하는 등 음악경력을 쌓고 있었다. 그 후 1976년 그녀는 반체제 시인이었던 계부 Wold Biermann과 함께 서독으로 이주했다. 망명한 그녀는 런던에서 펑크계열의 곡을 녹음하였고 서독으로 돌아와서 Nina Hagen Band를 조직하고 CBS 레코드사와 계약하였다. 1978년 데뷔앨범 Nina Hagen Band를 내놓은 밴드는 곧 특유의 날카롭고 기괴스러운 댄쓰뮤직으로 명성을 떨쳤다. Hagen의 미국 데뷔는 독일에서의 작업에서 골라낸 4곡으로 구성된 EP였다. 그녀는 곧 뉴욕으로 옮겨 1982년 영어로 된 첫 LP Nunsexmonkrock 를 발표하였다. 이듬해 Giorgio Moroder가 프로듀스한 Fearless를 발표하였는데 이 앨범은 챠트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New York New York”이 댄쓰클럽에서 히트하였다. 그러나 Hagen은 Nina Hagen in Ekstacy (1985)를 내놓은 후 CBS와 결별하였다. 1988년 그녀는 Punk Wedding이란 EP를 내놓아 그녀의 결혼을 자축하였다. 1989년 그녀는 독일시장으로 복귀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79 Nina Hagen Band Baktabak
1980 Unbehagen CBS
1982 Nunsexmonkrock CBS
1982 Nunsexmonkrock/Nina Hagen Band Columbia
1983 Angstlos CBS
1983 Fearless Columbia
1985 In Ekstasy Baktabak
1987 Love Baktabak
1989 X Love Columbia
1989 Nina Hagen Mercury
1991 Street Polydor
1994 Revolution Ballroom European
1995 freuD euch RCA
1996 BeeHappy RCA
2000 Return of the Mother BMG
2000 Sweet Lord Concept Album Rama

링크
Official Homepage
New York New York(300k mpeg audio file)

Grant, Eddy

Eddy Grant at Supreme Court Gardens cropped.jpg
“Eddy Grant at Supreme Court Gardens cropped” by Eddy_Grant_at_Supreme_Court_Gardens.jpg: Stuart Sevastos
derivative work: Austin512 (talk) – Eddy_Grant_at_Supreme_Court_Gardens.jpg. Licensed under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Guyana에서 태어난 싱어이자 키타리스트인 Eddy Grant는 어린 나이에 팝씬에 등장하였다. 그의 음악경력은 가족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 후인 1960년대 British R&B 밴드인 The Equals에서 시작되었다. 1977년 Grant는 그의 첫솔로 앨범 Message Man을 내놓았고 약간의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70년대 말 Reggae와 Ska 음악의 열풍속에서 그는 활동무대를 보다 넓힐 수 있게 되었다. 1982년 Grant는 캐러비언적인 음악 스타일에 일렉트로닉 싸운드를 섞은 스타일의 앨범 Killer On The Rampage를 내놓아 히트시켰다. 특히 이 앨범에는 Electric Avenue가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듬해 그는 영화 Romancing The Stone의 타이틀곡을 맡아 히트했다. Grant는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했고 80년대 후반 Jo’anna라는 히트곡을 기록하였다.

디스코그래피
1977 Message Man Ice
1979 Walking on Sunshine Ice
1979 Living in a Front Line Ice
1980 Love in Exile Ice
1980 My Turn to Love You Epic
1981 Cant Get Enough Ice
1981 Live at Notting Hill Ice
1982 Killer on the Rampage Portrait
1983 Eddy Grant Ice
1984 Born Tuff Portrait
1984 Going for Broke Portrait
1988 File Under Rock Enigma
1988 Hits Starr/Polydor
1990 Barefoot Soldier Enigma
1992 Paintings of the Soul Ice
1993 Soca Baptism RAS
1997 I Don’t Wanna Dance Ariola Express
2000 Hit Collection Ice Records
2001 Hearts & Diamonds Ice

링크
Ice Records의 Eddy
Grant 관련페이지

Go-Go’s, The

The Go-Gos - Belinda Carlisle, Kathy Valentine and Gina Schock.jpg
“The Go-Gos – Belinda Carlisle, Kathy Valentine and Gina Schock” by Ron Baker (Kingsnake) from Austin, Texas – The Go-Go’s.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결성 : 1978년 미국 로스엔젤레스
  • 해산 : 1985년
  • 멤버 : Belinda Carlisle, Jane Wiedlin, Charlotte Caffey, Gina Schock, Kathy Valentine, Margot Olaverra

데뷔 앨범 Beauty And The Beat가 예상밖의 넘버원을 차지하면서 80년대 여성 밴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고고스는 1978년 5월 LA에서 결성되었다. 당시의 LA는 뉴웨이브가 전성기를 이루던 때로 그룹의 창단 멤버였던 샬롯과 제인 그리고 베린다 등이 악기 연주를 보충하기 위해 지나와 케이시 등의 멤버를 보강하여 그룹을 결성한 후 뉴욕의 마스크 클럽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 클럽은 당시 펑크 뮤직의 집산지였고 이 들 역시 처음에는 그러한 성향으로 인해 펑크 매니어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79년 CBS의 그래픽 아티스트인 진저 칸조네리를 매니저로 맞아들인 이들은 그의 지도 아래 미국 서해안 일대를 순회하면서 재능을 선보였고 또한 1980년 초반 매드니스, 스페션즈 등의 그룹과 함께 영영국 순회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이 때 영국의 스티프 레코드사로부터 레코딩 제의를 받고 첫 싱글 We Got The Beat를 발매했다. 그리고 얼마후 미국으로 돌아와 IRS사와 계약을 맺고 데뷔 앨범을 발표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앨범은 싱글 Our Lips Are Sealed, We Got The Beat 등이 빅히트했고 1982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1982년 중반 폴리스와 순회 공연을 가졌고 2번째 앨범인 Vacation을 성공시켰다.

디스코그래피
1981 Beauty & the Beat
1982 Vacation
1984 Talk Show
1994 Return to the Valley of the Go-Go’s

Go West

80년대 영미의 팝계는 남성듀오의 전성기였다. Wham!, Tears For Fears, Pet Shop Boys, Soft Cell 등 이 흔치 않은 조합이 유난히 많았고, 인기를 얻었던 시절이 80년대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인기 듀오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Go West 였다.

1982년 결성된 Go West 는 키타를 담당하는 Richard Drummie 와 보컬을 담당하는 Peter Cox 가 멤버였고 키보드와 프로듀서를 맡은 Peter Wolf 가 지원을 해주는 구조였다. 그들은 남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댄스팝을 주로 선보였는데 “We Close Our Eyes”, “Don’t Look Down”, “Call Me” 등이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곡들이 바탕이 된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이 1985년 선보였는데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50만장이 넘게 팔리는 성공을 거두면서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1986년 그들은 BRIT 어워드에서 ”최고의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두 번째 앨범 Dancing On The Couch 는 1987년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는 “True Colours”, “I Want To Hear It From You” 등과 같은 싱글이 발매되어 소폭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데뷔 앨범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세 번째 앨범 Indian Summer 가 1992년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에는 그들의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The King Of Wishful Thinking“이 실려있었다. 이 곡은 영화 ’귀여운 여인‘의 사운드트랙에 삽입되면서 한때 미국의 래디오 방송에서 가장 많이 튼 곡으로 선정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93년 Aces and Kings 가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에는 Smokey Robinson 의 걸작 “Tracks Of My Tears”가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1994년 Peter Cox는 솔로앨범을 내기로 결정하고 EMI 와 계약을 맺는다. 그 해 발매된 셀프타이틀 앨범에는 ”Ain’t Gonna Cry Again“이 실려 있었고 이 곡은 영국차트 30위 안에 들었다.

디스코그래피

Go West (1985)
Bangs And Crashes (1986)
Dancing On The Couch(1987)
Indian Summer (1992)
Aces And Kings (1993)
Live At The NEC(2001)
Tony Hadley vs Peter Cox & Go West (2004)

링크

Fan Page

Fra Lippo Lippi

A-Ha 라는 걸출한 밴드가 노르웨이 팝의 명성을 세계에 알리던 80년대 또 하나의 뛰어난 노르웨이 밴드가 뉴웨이브를 무기로 팝시장에 출사표를 낸다. 비록 그들은 A-Ha 처럼 틴아이돌이 되지 못했지만 음악성 측면에서 전혀 딸리지 않는 내공을 지니고 있던 이들이었다.

Per Oystein Sorensen (vocals, synthesizer, keyboards), Rune Kristoffersen (guitar, bass, keyboards, piano), Morten Sjoberg (drums, keyboards) 의 3인조로 구성된 Fra Lippo Lippi 는 1978년 결성되어 데뷔앨범 In Slience 를 내놓는다. 당시 음악은 평론가에 의하면 Joy Division 에 강하게 영향받은 Post Punk 스타일을 추구하며 난해하고 음울한 보컬과 연주가 주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앨범 Small Mercies 에서부터는 Sorensen 의 지휘 아래 멜로디가 강화된 팝스타일로 색깔을 바꾸었다.

1985년 밴드는 영국의 버진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세 번째 앨범 Songs 를 내놓는다. 이 앨범에서는 그들의 최대의 히트곡 Shouldn’t Have To Be Like That 이 담겨져 있으며 그들의 앨범 중에서도 가장 호평을 들었다. 앨범은 전체적으로 신스팝이 많이 가미되었고 이에 힘입어 영국과 캐나다에서 어느 정도 상업적 성공도 거두었다. 이채로운 것은 필리핀에서의 그들의 인기였는데 The Distance Between Us, Come Summer 와 같은 곡들은 라디오 고정 신청곡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한다.

급기야 1987년 그들의 네 번째 앨범을 내놓을 즈음에 그들은 필리핀에서 수퍼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연속된 앨범의 상업적 실패에 따라 그룹은 분열하였고 멤버들은 솔로 활동에 몰두하다 2003년 새 앨범을 내놓았다.

p.s. 밴드의 이름은 Robert Browning의 동명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디스코그래피

1981 In Silence Uniton
1983 Small Mercies Uniton
1985 Songs Easter
1986 Fra Lippo Lippi Divine
1986 Songs (Remixed) Virgin
1987 Light & Shade Virgin
2003 In a Brilliant White EMI

링크

Official Site
Fan Site
UTube 뮤직비디오

Fixx, The

런던에 기반을 둔 뉴웨이브 그룹 Fixx는 80년대 중반 미국에서도 지명도를 상당히 높였던 밴드이다. 대학 친구인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Cy Curnin과 드러머 Adam Woods가 의기투합해서 광고로 멤버를 모은 그들은 이름을 The Portraits로 짓고 Ariola 레코드사에서 첫싱글 “Hazards in the Home”을 녹음했다. 그러나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이름을 The Fixx로 바꾸면서 “Lost Planes”를 녹음하였다. 이때 그들은 소속사를 MCA로 바꿨다.

1982년 데뷔앨범 the Rupert Hine-produced Shuttered Room를 발표했는데 이중에 “Stand or Fall” 와 “Red Skies ” 같은 싱글들이 영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첫앨범뒤 베이스를 치던 Barret이 그룹을 떠났고 빈 자리는 Dan K. Brown이 메꿨다. 1983년에 발표된 Reach the Beach는 챠트 4위까지 오르는 등 미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는데 “One Thing Leads to Another”가 크게 히트하였다. 이 앨범에서는 또한 “Saved by Zero”와 “Sign of Fire”가 탑40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미국에서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챠트진입조차 실패했다. 사실 그들은 영국에서 히트곡을 낸적이 없다.

Fixx는 1984년 Phantoms와 함께 돌아왔다. 그러나 전작만큼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싱글 “Are We Ourselves?”가 히트하긴 했지만 앨범은 챠트에서 빠른 속도로 낙하하였다. 팬들은 점차 그들에게서 멀어져 갔지만 그들은 여전히 씬디싸이저에 기초한 싸운드에 충실하며 1986년 Walkabout을 발표하였다. 이앨범 이후 그들은 프로듀서 Rupert Hine와 작업하지 않았는데 이로 인해 그들의 싸운드는 보다 키타에 근거한 싸운드로 변화하였다. 1988년 Calm Animals는 챠트72위까지 올랐지만 히트싱글은 없었다. 1991년 그룹의 마지막앨범은 이러한 쇠퇴기를 역전시키지 못하였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인 1998년 Elemental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그들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듯 했다.

디스코그래피
1982 Shuttered Room Fuel
1983 Reach the Beach MCA
1984 Phantoms MCA
1986 Walkabout MCA
1987 React MCA
1988 Calm Animals RCA
1991 Ink Impact
1996 King Biscuit Flower Hour: New York 1982 (In… King Biscuit
1997 Real Time Stood Still [live] Varese
1998 Elemental CMC
1999 1011 Woodland CMC

링크
Fan Page
One Thing Leads to
Another(112k mpeg audio 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