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센의 밤”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미국에서는 A24가 토킹헤즈의 공연 필름을 복원하여 상영하고 이를 계기로 멤버들이 화해하고 넷 모두가 무대인사 등에 몰려다니는 기적이 있었지만, 밴드의 인지도 바닥인 국내에서 이 필름이 상영되는 상황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각종 독립영화를 무모하게(!) 수입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찬란에서 다시 한번 무모한 일을 저질러 버렸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그 용기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도 찬란 측에서 나도 시사회에 초대해 주어 시사회장에 가게 되었다. 상영은 7월 22일 저녁 용산CGV 15관에서 진행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IMAX가 적당한 상영관이 아닐지 생각했지만, 스크린의 크기는 그 정도면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배정받은 자리가 왼쪽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영화가 개봉되면 다시 가서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추가됐다.

영화는 7시 30분 정각에 시작했다. 평소 익숙했던 그들의 공연 장면과 노래도 몇십 배는 커진 스크린과 훌륭한 음향 기기를 통해 들으니 당연히 감동은 배가 되었다. 이 필름 안에서는 공연 중 멤버들의 사소한 행동을 – 당연히 특히 Byrne의 – 즐기며 볼거리가 많은데 더 큰 영상으로 보니 이런 모습이 더 눈에 띄며 즐거움도 더 컸다.

무료표를 받고 온 시사회인 탓인지 다른 바쁜 일이 있으신 탓인지 – 아마도 이런저런 동호회에서 오신 분들도 있는 듯 – 상영 도중 몇몇은 자리를 뜨기도 했다. 음악이 귀에 익지 않아서인 듯? 하지만 아내 좌석 옆 좌석의 관객은 상영 후 ‘당시 어떻게 이런 음악을 했지’라고 감탄했다는 말을 전했다. 취향은 그렇게 가감이 생기는 법이다.

부디 이번 영화도 최소한 손익분기점을 넘었으면 한다. 그래서 찬란 영화사의 용기 또는 만용(!)이 보상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욱 좋은 음악 관련 필름을 소개해 줬으면 한다. 아내는 그런 의미에서 어서 알란 파커 감독의 The Commitments도 수입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럴 일 없겠지만, 그럴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개봉은 오는 8월 13일이다.

녹색광선(Le Rayon 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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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NING 스포일러 만땅

지난주 토요일 아침 다섯 시에 – 혹은 새벽 – 쿠팡 플레이에 있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1986년작 ‘녹색광선(Le Rayon Vert)’을 봤다.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작품이었고, 영화를 보기 전 ‘이 영화 보지 않았나’라고 잠깐 생각했던 영화다. 그런데 봤던 영화는 아니었었다. 얼핏 비슷한 이름의 다른 프랑스 영화랑 헷갈렸던 것 같다. 문득 궁금해서 지금 검색해보니 장 자크 베넥스 감독의 1980년작 디바(Diva)랑 혼동했었다. 제목도 전혀 비슷하지 않은데 왜 헷갈렸는지 모르겠다. 내 열등한 회색 뇌세포 탓이겠지.

영화의 전체적인 느낌은 토요일 아침에 보기 좋은 영화였다. 플롯의 엄밀성이나 연출의 치밀함에 대해 바짝 신경 쓰지 않아도 감상에 큰 무리가 없는 스낵 같은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어떤 영화 스타일이 생각났고 검색을 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에릭 로메르를 지극히 존경하는 한국 영화인이 있었으니 홍상수였다. ‘녹색광선’은 프랑스판 홍상수 영화였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변방의 홍상수라는 영화인이 그 스타일을 베낀 에릭 로메로 스타일의 프랑스 누벨바그’였다. 이런 스타일에 익숙하게 해준 홍 감독에게 감사.

영화를 보는 동안 여주 델핀(Delphine)이 계속 영화 제목 녹색광선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암시를 던진다. 녹색이 최근 자신의 운세에 좋다는 둥의 대화를 통해서 말이다. 극 중간쯤 가서 델핀이 들른 한 해변에서 마침내 델핀의 옆에 있던 한 노인들의 대화를 통해 녹색광선이 무슨 의미인지 밝혀진다. 극에서 말하는 녹색광선은 일몰시 태양의 윗부분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광학 현상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한 그 표현은 그러한 현상을 소재로 사용한 쥘 베른의 ‘녹색광선’이라는 소설을 의미한다. 무척 다층적인 이미지인 셈이다.


저물녘 드물게 볼 수 있다는 녹색광선의 한 사례(이미지 출처)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쥘 베른의 ‘녹색광선’은 평소 그가 주로 쓰던 공상과학 장르가 아닌 로맨스적 요소가 많이 담긴 소설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이에 대해 논하는 노인들의 관점이 흥미로웠는데 그들은 쥘 베른의 대표작인 ‘해저2만리’는 재미가 없었고 ‘녹색광선’이 좋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나도 현재 읽고 있는 여러 책 중에 예의 ‘해저2만리’가 있어서 흥미로운 분석이었다. 사견으로 재미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다소 신파조로 보일만 할 만큼 장광설적인 요소가 있다. 지루한 편이긴 하다.

어쨌든 이 대화를 엿들은 (삶이 무료했던) 델핀은 녹색광선을 보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영화 줄거리에 ‘녹색광선을 찾아 떠났다’는 식의 소개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그가 의도적으로 녹색광선을 쫓았다기보다는 남친도 무의미하고 휴가도 무의미한 무력한 파리쟁이 여행지에서 마주친 훈남과 석양을 보러갔다가 운 좋게 녹색광선이 보이는 일몰을 보게 된 쪽에 가깝다. 이러한 애매모호함도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다. 사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도 않고 어쩌다 생각지도 않게 원하는 것이 걸려드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토요일 아침에 보기에 부담 없는 영화라고는 했으나, 사실 보는 내내 여주의 ‘까칠함’에 적잖이 짜증이 났었다. 어쩌다 휴가 계획을 망쳐버린 그를 위해 친구들이나 주변의 다른 이들이 이런저런 식으로 많이 배려해주는데 델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까칠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등의 개인주의적으로 행동한다. 녹색광선을 여행지에서 마주친 훈남과 같이 보는 장면에서조차 그의 이런 기행은 멈추지 않는다. 델핀의 이런 행동은 어쩌면 감독의 의도된 연출인 것 같다. 감독 스스로가 이런 식으로 누벨바그의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에서.

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

어제 Talking Heads의 스탑메이킹센스(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을 66인치 TV로 감상했다. 고백하거니와, 나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나는 여태 한 번도 이 필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이 없었다. 어제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 마치 이 필름을 봤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왜 착각 속에 살아왔는지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그 공연과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은 지겹도록 들었었고, 파편적인 공연 영상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계속 감상했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무의식적으로 필름 전체를 봤다고 착각하거나 볼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1 뭐 이제라도 봤으니 됐다.

한편 이 공연 필름에서 밴드의 프론트맨 데이빗번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영매(靈媒, psychic) 혹은 무당과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는 굿을 하다 신들린 무당이나 되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기괴한 춤을 추고 몸을 떨어댄다.2 번은 공연 시작과 함께 붐박스와 통키타로 버스킹을 하는 고독한 방랑자이다. 이후 스탭들이 장비를 옮기며 점차 무대가 만들어지고 멤버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제 그들은 그 동안의 발표곡들을 부르면서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안무와 – 특히 번, 백보컬, 티나 등이 선보이는 개다리춤 – 편집증적인 몸떨림 등을 통해 통상 마초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락공연과는 다른 토킹헤즈 표 공연을 선보인다.

이 필름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카메라의 독특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는 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통상의 각도와 다른 각도에서 공연자들과 객석을 찍고 있다. 또 강렬한 조명을 통해 무대를 빛과 그림자로 분할하는 등 극적 효과가 시도된다. 공연자들의 클로즈업을 통해 그들이 마치 연극배우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스티브스케일스나 백보컬 등의 조연의 움직임도 충실히 담아내서 공연의 현장감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객석은 많이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상 막바지에 관객들의 즐거운 표정으로 춤을 추어대는 모습을 짧게 짧게 보여주며 공연의 양방향성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편 이 공연 필름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불편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건 “확장한 토킹헤즈”가 되면서 생길 수밖에 없었을3 “오리지널 토킹헤즈”의 위치 설정에 대한 갈등이 영상을 통해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 내몰린 최우선 순위로 여겨지는 멤버는 개인적으로는 제리, 그는 오리지널 멤버 등장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기타를 치며 공연을 시작하지만, 세션뮤지션 알렉스 위어에 밀려 곧 키보드를 맡게 된다. 하지만 건반악기는 버니워렐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4 이렇듯 스탑메이킹센스 필름은 공연 필름의 걸작임과 동시에 토킹헤즈 팬이라면 맥락을 알 수 있을 컨텍스트가 내포되어있는 영상이기도 하다.

이 공연의 감독 조나단드미는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다른 필르모그래피를 통해 접하면서 ‘멋진 감독이구나’라고 늘 생각하고 있던 감독이다. 특히 ‘썸씽 와일드(Something Wild)’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5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감독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이토록 천재적인 영화인이 음악계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고 있던 밴드의 공연을 필름에 담겠다고 생각했을, 그리고 함께 작업하기로 합의했을 그 상황은 상상만 해도 흥겨운 상황이었을 것 같다. 각자의 분야에서의 천재들이 만나서 협업을 논의하고 마침내 그 결과물이 걸작으로 인정받는 순간. 그런 상황이 스탑메이킹센스에서 실현된 것이다.

  1. 그런데 사실 이런 어이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기억력은 꽤 오랫동안의 고질병이다 ↩
  2. 이러한 안무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rosseyed and Painless의 뮤비를 찍으면서 접한 댄스팀의 안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3.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확장된 토킹헤즈와는 멤버가 달라서 또 다른 “확장한 토킹헤즈”이기도 하다 ↩
  4. 그런데 제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지 지금도 토킹헤즈의 유산에 대한 적자 노릇을 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한 멘탈이다. ↩
  5.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보다 잘 만들어진 흔치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 렉터의 첫 등장을 잊을 수가 있을까? ↩

Music Is the Weapon

Talking Heads와 Brian Eno가 많은 영향을 받았던1 나이지리아 뮤지션 펠라 쿠티(Fela Kuti)의 삶에 관한 1982년 다큐멘터리다. 작품의 제목에서 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작품은 펠라 쿠티의 음악, 특히 투쟁을 위한 무리로서의 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1982년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 그의 전성기 시절 촬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펠라 쿠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 범아프리카주의, 음악,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자세히 담고 있다.

쿠티는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맑시즘도, 레닌이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아프리카주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 그는 등과 엉덩이에 남은 채찍 고문 자국을 보여줘 아프리카에서는 아무리 명망있는 뮤지션이라 할지라도 일상이 고통임을 알려주고 있다. 음악 다큐멘터리인 만큼 그의 공연도 알차게 담겨져 있다. 작품에서는 그의 각종 공연 영상, 공연 중 진행되는 종교적 의식, 공연을 위해 댄서들이 분장하는 모습 등도 담고 있다. 또한 ‘ITT’, ‘Army Arrangement’, ‘Power Show’ 등 당시까지의 미발표곡도 수록되어 있다.

  • 감독 : Jean Jacques Flori / Stephen Tchal-Gadjieff
  • 발표연도 : 1982
  • 러닝타임 : 53분
  • 제작국가 : 프랑스
  • 언어 : 영어
  1. 특히 Remain in Light을 만들면서 밴드는 펠라 쿠티 특유의 아프로비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

Down by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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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the distributor., Fair use, Link

짐 자무쉬(Jim Jarmusch)의 1986년 작이다. 사실 짐자무쉬 영화에서 엄청나게 정교한 설정과 시나리오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조금 심하다. 디스크자키, 포주, 이탈리아인이 한 감방에 갇혔다가 탈옥해서 각자의 길을 간다는 버디/로드 무비 장르의 이 영화는 예의 짐자무쉬의 다른 영화처럼 뉴올리언스와 고독함과 톰웨이츠의 음악을 찬양하는데, 다 좋은데, 개연성 등에서 어색한 부분이 많다. 결정적으로 세 죄수가 운동을 하러 나가는 그 씬 이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지하도로 탈출하는 씬이 등장한다. ‘뭐지?’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맥락 없는 그 상황에, 대체 탈옥 계획을 꾸민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다른 설득력 있는 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그냥 셋이 탈옥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관객에게 ‘그냥 이러저러 여차저차 설명은 조금 귀찮고 일단 탈옥했다 치고’가 짐자무쉬의 화법이다. 그렇게 해서 ‘천국보다 낯선’의 죄수 버전이, 리믹스 버전?, 완성된다. 다 보고나서 ‘전에 봤던가?’라는 미시감(jamais vu)이 들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든 안 들든 크게 중요한 느낌은 아닌 그런 영화였다.

Videod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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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가 감독한 1983년작 호러 필름 비디오드롬(Videodrome)은 어릴적 소위 아는 사람들만 찾아본다는 “컬트영화” 장르의 걸작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한번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늘 거의 한 30여년 만에 다시 보는 것 같다. 줄거리는 거의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뇌리에 남았던 장면은 비디오테잎을 주인공 Max Renn의(James Woods) 갈라진 뱃속으로 집어넣는 장면이다. 비디오드롬의 정치적 목적의 실행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비디오테잎을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방영하는 방송국의 사장 Max의 배에 집어넣는다는 설정이었는데 여태 내 뇌리에 비디오드롬이라는 영화를 각인시켜준 장면이 되어왔던 것이다. 다시 보니 정치비판적 메시지가 상당히 담겨져있었다.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스너프 필름을 방송 채널을 통해 상영하겠다’는 음모는 어찌 보면 극단적 사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포되고 이것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예언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은 여주인공 니키 브랜드 역을 Blondie의 리드 보컬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가 맡았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노래를 한달지 하는 가수로서의 맛뵈기로 출연한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연기를 도전했고 썩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요즘 보는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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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쿠팡플레이에서 석세션(Succession)을 보고 있다. 어제 시즌 2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봤다. 로간 로이(Logan Roy)라는 독재적인 성향의 인물이 일군 미디어제국의 권력이 그의 자식들로부터 도전을 받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작품인데, 유명한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일가의 실제 모습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루퍼트 머독 일가는 석세션처럼 지금도 치열하게 권력 투쟁 중이다) 공간적 배경인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뉴욕 맨해튼을 묘사하는 차가운 톤의 역동적 촬영이 극에서의 냉정한 인간관계와 잘 어울려 재밌게 보고 있다.

어쨌든 자본은 지금은 각종 엄밀한 법률적 장치와 절차에 의해서 그 지분(equity)이 합리적으로 통제받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 작품을 보면 사실은 그 자본 안에서는 여전히 봉건적이고 매우 인간적인 (도덕적이거나 합리적 우열을 가리려는 호불호에 상관없이)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듄과 같은 초미래의 시대를 설정한 작품에서조차 그러하듯이 여전히 권력 내에서의 작동 기제는 중세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는 권력에서의 그것이 그러하듯이 협잡과 윽박지름과 합종연횡의 줄타기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 한마디로 기싸움이다.

로간 로이 역의 브라이언 콕스(Brian Cox)는 제이슨본 시리즈의 본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에서 악역으로 출연하였을 때의 연기로 인상이 깊었던 배우인데, 막무가내 재벌 1세의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리는 배우다. 로간에 대항해서 열심히 반항하는 아들 켄달 로이 역의 제레미 스트롱(Jeremy Strong)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애사심에 아버지에 대항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억제할 수 없는 권력에로의 본능을 드러내는 뽕쟁이 재벌2세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외의 조연들의 호연도 극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매력포인트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캐릭터/배우는 권력 의지 없는 맏형 코너 로이(Connor Roy)역의 앨런 럭(Alan Ruck)이다. ‘어디서 많이 봤다’ 생각하며 보다보니 알아차린 건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80년대 코미디 ‘페리스의 해방’에서 역시 삶의 의욕이 없는 부잣집 외아들 캐머런 프라이(Cameron Frye) 역으로 – 의욕 없는 부잣집 아들 역이 종특? – 나온 배우다. 아버지의 재력에 빌붙어먹는 한량이 현재까지 본 중 딱 한번 좌파 상원의원인 길 이비스(Gil Eavis)를 만나 적대감을 드러내며 권력의지를 드러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

A Taste of Ho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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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포드(Salford)에 사는 10대 여학생 주인공 조(Jo)1의 홀어머니 헬렌(Helen)은 철없는 40대 여성이다. 미혼모로 아이를 낳아 키우기는 했지만, 딸에게 별 애정도 없이 연하의 남성과 함께 매일 클럽과 댄스홀에서 시간을 보내는가 하면 밀린 월세를 내지 않으려고 딸과 함께 야반도주를 서슴지 않는 도덕성이 결여된 여성이다.2 조는 그런 어머니와 새 피난처로 도망가는 도중 흑인 선원 – 정확하게는 화물선의 요리사 – 지미의 도움을 받게 되고 이것을 인연으로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헬렌이 남자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그를 떠날 기세고 남자친구도 항해때문에 곧 그를 떠날 예정이지만, 그는 남자친구에게 특유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키며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겠다. 그냥 지금만 내곁에 있어줘’라고 당차게 말한다. 지미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지만 3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조는 자신의 방식으로 외로움을 견디는데 익숙해있는 듯 했다. 그의 이런 마음 상태는 끝내 그의 모친이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을 떠나는 순간에 겉으로 나타난다.

Helen “Aren’t you sorry to see me go? 네가 떠나는 것이 슬프니?”
Jo “I’m not sorry and I’m not glad.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조의 모친이 떠나고난 후 그는 신발가게 점원일도 구하고 새로운 거처도 구하여 – 방은 크지만 집은 무척 낡은 –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는 언젠가 신발가게 들렀던 제프(Geoff)를 우연히 축제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고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 이 부분은 영화에서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아마도 개봉 당시에는 여전히 센세이셔널한 내용이기에 그랬던 것으로 짐작된다. – 거처가 없는 그와 동거하게 된다. 그뒤 임신을 알게된 제프는 조에게 ‘그를 사랑하냐’고 물었는데 조는 ‘나는 사랑을 싫어한다’라는 말로 다시 특유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어쨌든 조는 제프와 같이 지내며 그나마 우울한 임신, 엄마에게 버림받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우울한 사실을 잊으며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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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의 Morrissey가 디자인한 밴드의 컴필레이션 앨범 Louder Than Boms의 표지 그림에도 등장하는 영국 극작가 셸라흐 딜라니(Shelagh Delaney)가 A Taste of Honey라는 이름4 의 희곡을 19세의 나이에 써서 무대에 올렸고, 이 작품은 그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셀라흐와 감독을 맡은 토니 리차드슨(Tony Richardson)5이 함께 시나리오 작업을 하여 1961년에 영화로 내놓았다. 실제 영화를 찍은 배경도 실내 세트를 제외하고는 맨체스터(Manchester), 살포드(Salford), 블랙풀(Blackpool) 등에서 촬영해서 사실감을 더 높였다. 산업화된 벽돌 도시의 우울한 풍경, 더러운 강물, 그곳에서 아무 생각없이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면6

20세기 중반 영국에서 계급, 인종, 성관계 동의 연령, 성별, 성적지향, 사생아에 대해 논평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키친싱크 사실주의의 걸작으로 남기도 한 이 희곡과 영화는 모리시가 쓴 많은 초기 가사에 영감을 주었고, Louder Than Boms 앨범의 수록곡이기도 한 “This Night Has Opened My Eyes”는 조의 곤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솔로 시절에 발표한 “Alma Matters”에는 조의 대사를 직접 인용하기도 한다.

  1. Rita Tushingham라는 배우가 호연을 선보이는데 이 작품이 그의 데뷔작이었다. ↩
  2. Dora Bryan이라는 배우가 매우 실감나게 연기한다. 필르모그래피를 찾아보니 꽤 관록이 있는 배우였다. ↩
  3. 영화에서 그가 타고 떠나는 배는 Manchester Liners라는 해운사의 대형 화물선이었다 ↩
  4. 사실 개인적으로 이 이름을 들을 때마다 뇌리에서는 같은 이름의 흑인 여성 듀오가 히트시킨 Sukiyaki가 연주된다. ↩
  5. Look Back in Anger (1959), The Entertainer (1960), A Taste of Honey (1961), The Loneliness of the Long Distance Runner (1962) 등 50~60년대 영국 영화의 리얼리즘 사조를 주도한 감독이다 ↩
  6. 영화에서 제프는 길에서 노는 아이들에게 조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면 아이들은 늘 그가 어디에 있는지 대답을 해준다. 신기한 노릇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의 아이들의 미래를 보여주려는 의도였을까? ↩

보리수 린덴바움

어제 보리수 린덴바움(菩提樹 リンデンバウム)이란 영화를 보았다. 1988년 작품으로 당시의 인기 여배우였던 미나미노 요코(南野陽子)와 마츠다 세이코의 남편이기도 했던 칸다 마사키(神田正輝)가 남녀 주연을 맡은 영화다. 내용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윈 아사미가 내용은 정체 모를 독지가의 도움으로 의대에 입학하여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 발생하는 사랑, 갈등, 그리고 이별 등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판 ‘키다리 아저씨’라고 할 수 있겠는데, 갈등과 그 극복 과정 등에 대한 묘사나 연기가 좀 밋밋해서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자세한 내용에 대한 소개는 여기를 참고) 주요 감상 포인트는 오히려 일본이 잘 나가던 80년대 말의 도시인의 깔끔한 패션 센스와 풍경 등 당시 일본인의 삶이었다.(물론 이것도 영화 안에서 과장된 삶일 수도 있겠지만) 흥미로운 점은 주요 조연으로 출연하는 타케모토 타카유키(竹本孝之)라는 배우가 얼핏 The Smiths의 Johnny Marr와 닮았다는 점이다. 그 역시 음악인이기도 하다. 노래 실력은 별로다.

올해의 즐거움 : 映畵편

Vertigo [1958]
오랫동안 최고의 걸작으로 군림하던 ‘시민 케인’을 최근 이 영화가 앞서고 있는 형국이다. 그런 면에서 B급 추리 영화나 만들던 감독으로 여겨지던 알프레드 히치콕이 재평가되고 그의 작품이 최고의 걸작 자리에 오르는 과정 또한 그의 영화만큼이나 극적이다. 이 영화 또한 창조자의 권위회복 과정처럼 평범한(?) 스릴러에서 복잡한 알레고리가 담겨져 있는 걸작으로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Les yeux sans visage [1960]
제목은 ‘얼굴 없는 눈’이라는 의미다. 사고로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딸을 위해 한 외과의사가 젊은 여성을 납치하여 그의 얼굴을 딸에게 이식하려 한다는 끔찍한 설정의 공포물이다. 설정에서부터 그 진행과정, 그리고 결말이 빤하게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는 정밀하고도 스산한 연출이 매력적이기에 지루하지 않다. 여배우의 얼굴마저도 극의 설정과 잘 어울린다.

Saturday Night & Sunday Morning [1960]
프랑스 영화에 ‘누벨바그’가 있었다면 영국 영화에도 ‘뉴웨이브’가 있었다. 이 시기 영화는 주로 영국 노동계급의 날것의 삶이, 그 단조로운 일상에 어울리는 흑백 톤에 담겨져 전해졌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전형적 패턴을 담고 있다. 제조업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주인공은 얼굴이 잘 생긴 덕에 동료 아내와 바람도 피우고 예쁜 아가씨도 사귄다. 뻔한 결말이지만 그게 또 우리네 진솔한 삶이기도 하다.

Lawrence Of Arabia [1962]
영화 초반, 우물의 주인인 오마샤리프가 저 멀리서 낙타를 몰아 우물을 맘대로 사용하는 피터오툴 일행을 해치는 롱테이크가 이 영화가 무척 지루할 것이며 그만큼 뛰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말해준다. 신격화가 지나치다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T. E. 로렌스만큼 현대의 모험성애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영화를 70mm로 극장에서 관람한 사람이 부럽다.

Apocalypse Now [1979]
미국인이 베트남전을 회고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애국주의적이거나 냉소적이거나 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식이든 가해자로서 취할 적당한 태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가장 근사하게 취해야할 태도는 진지하게 그 전쟁이 부조리했음을 말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당사국으로서는 이 영화처럼 반쯤 미친 상태에서 회고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큐를 보면 제작진이나 출연진 모두 다들 그런 상태였다.

Don Giovanni [2014]
작년에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가진 공연 비디오를 올여름 메가박스에서 가져와 상영하였다. 상영하는 날 객석에 나를 포함, 총 세 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든 음악적 유산 중에 가장 뛰어난 걸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흐린 토요일에 극장에 앉아 돈지오반니를 본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한다. 언젠가는 실황을 직접 볼 수 있기를.

Martian [2015]
어딘가에서 낙오될 수 있는 경우로는 가장 먼 곳에서 낙오된 인간이 바로 이 화성인 멧데이몬일 것이다.(그래비티의 산드라블록의 기록을 깸)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맷은 산드라보다 더 유쾌한 마음으로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화성의 주인이 된다. 영화는 그 긍정의 힘을 발랄한 70년대 디스코와 믹스하여 연출했다. 안전한 영화문법이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그래비티보다 중량감은 덜했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20세기 최고의 대중문화 아이콘이 21세기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문제는 유색인종 히어로 핀과 여자 제다이 레이를 시장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데 달려 있다 할 것이다. 특히 레이는 레아 공주의 전통적으로 “여성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를 바꿔야 할 임무가 있다. 일단은 그 과제는 다음 시리즈의 과제로 남겨놓은 것 같고 이번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BB8이었다.

Sicario [2015]
강간, 매춘, 마약, 납치, 살인이 일상인 미국 국경과 인접해 있는 멕시코의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즈, 그 곳에서의 범죄소탕을 위해 세 명이 의기투합하는데 이들이 꾸는 꿈은 서로 다르다. 규정에 매달리는 바른생활 FBI 케이트, 목표를 위해 惡의 힘의 균형을 허용하는 CIA 책임자 맷,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 이 삼각구도의 긴장감이 매우 탄탄하다. 시카리오는 멕시코에서 ‘암살자’란 의미로 쓰인다고.

Mad Max: Fury Road [2015]
스타워즈의 레이가 새로운 여전사로 등극하는 과제를 다음 에피소드로 미뤘다면 퓨리오사는 이번 에피소드에 그 임무를 110% 수행했다. 멜깁슨 없이는 ‘앙꼬 없는 찐빵’같았을 영화가 새로운 매드맥스 톰하디에 의해 세대교체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새 영웅 퓨리오사가 그 왕좌를 완벽하게 넘겨받아 영화 그 자체가 환골탈태를 거쳤기에 나는 이 영화를 단연 올해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함이 없다.(감상문 읽기)

  1. 지금 생각해보니 ‘금단의 혹성’의 박사 모녀는 더 멀리 낙오되긴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