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eral

각종 소품의 활용에 있어 천재적인 솜씨를 지닌 Buster Keaton 이 기차를 가지고 화려한 마법을 펼친 1927년 산 작품이다. 1924년 또 하나의 걸작 The Navigator에서 배를 활용하여 극적효과를 극대화시킨 경험을 가지고 있는 Buster Keaton 은 남북전쟁 당시 실제로 있었던 한 사건을 소재로 하여 이 초유의 액션 영화를 창조하였다.

기관차 General 의 기관사인 Johnny Gray(Buster Keaton)는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지원하려 하지만 기관사로서의 역할이 더욱 쓸모 있다는 징병기관의 판단에 따라 지원을 거부당한다. 거부사유를 모르는 Johnny 는 이 사실로 인해 애인 Annabelle Lee 에게 조차 겁쟁이로 비난받는다. 어느 날 Johnny는 Annabelle까지 탄 기차를 몰고 가는데 북군 첩자들이 이 기차를 Annabelle 을 인질로 삼은 채 탈취한다. Johnny 는 홀로 그들을 추격하고 여러 아찔한 상황을 맞으며 마침내 남군 지역으로 기차를 가져오고 북군의 습격계획까지 알리는 등 공을 세운다. 당연히 오해가 풀린 애인과의 입맞춤으로 해피엔딩.

Buster Keaton 은 Charlie Chaplin 과 비교할 때 정치적 올바름이랄지 페이소스랄지 하는 보다 심오한 부분에서는 뒤쳐질지 몰라도 그것이 그의 천재성을 폄하시키지는 못한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기가 막힌스턴트 – 모든 스턴트는 그가 직접 하였다 – 와스펙터클한 장면의과감한 도입 등- 열차가 다리로 떨어지는 장면은 실제 열차로 찍었는데 무성영화 시절 최고의 제작비가 들었다 한다 –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낸 그의 노력과 이를 뒷받침한영화적 상상력은 이후 수많은 영화인들의 교과서가 되었기 때문이다(그의 절대 팬인 성룡을 비롯하여).

Music And Lyrics

이런 저런 코드들이 혼합되고 재탕되어 하나의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난 모자이크 같은 영화다. 타이틀곡 Pop Goes My Heart 는 제목이 Men Without Hats 가 부른 80년대의 히트곡 Pop Goes The World 가 생각나게 하고, 퇴물스타가 다시 빛을 발한다는 설정은 방화 ‘라디오스타’를 연상시키고, 80년대 노스탤지어와 드류 배리모어의 결합은 Wedding Singer 를 떠오르게 한다.

로맨틱코미디에서 소재의 재탕은 그리 욕먹을만한 꺼리가 아니다. 요는 로맨틱코미디의 성공 포인트는 어떻게 관객들을 가슴 졸이게 하고 마침내는 새로운 연인의 탄생에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게끔 만드는 것인가 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할 수 있다. 어느새 로맨틱코미디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휴 그랜트와 드류 배리모어의 결합만으로도 이야기꺼리가 충분한 마당에 80년대 퇴물스타의 화려한 복귀라는 설정은 극적긴장감을 더욱 극대화시켜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심심풀이로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극중에서 80년대 가수들끼리 권투시합을 벌이게 해 팝계로의 복귀를 도와준다는 발상은 실제로 영국에서 80년대 가수들의 앨범발매를 상품으로 걸고 방영했다는 리얼리티쇼를 연상시키지만 그 경쟁에 참여한 이들이 새 앨범을 내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ABC를 비롯하여 많은 80년대 밴드들이 여전히 Here N Now 라는 타이틀을 걸고 영국 순회공연을 갖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80년대 노스탤지어의 자극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노래를 계속 부를 수 있고 그 노래에 흥겨워하는 관객이 있다면 커다란 상업적 성공은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광경을 1년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목격했다. Obsession 이라는 히트곡으로 한때 차트를 점령했던 Animotion 이라는 밴드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멤버들이 직접 악기들을 나르면서도 소수의 관객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그들의 모습에서는 충분히 음악인으로서의 충만감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상업적 성공이 따라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당시의 Animotion 의 멤버들에게는 그 장소와 그 시간 이상으로 소중한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고 말았지만 같은 이치로 휴 그랜트라는 배우를 바라본다면 그는 그 나름대로의 현재의 연기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Maurice 라는 야릇하면서도 지적인 영화를 통해 팬들의 인지도를 얻었지만 이후 로맨틱코미디로 노선을 선회한 이 명문대 출신 영국 배우는 좀 더 진지한 작가영화의 배역을 맡기지 않더라도, 또는 극단적으로 차기 007이 되지 않더라도 한번 씩 웃고 말 것 같다. 관객들이 좋아하면 그만이야 하면서 말이다.

Roxanne

영혼의 아름다움과 육체의 아름다움 중 어느 것이 더욱 소중한 것인가 하는 질문은 참 진부하지만 연애를 할 때 항상 곱씹곤 하는 질문이다. 영육 분리와 이 중 영혼에 더욱 높은 가치를 두는 가치관은 중세 기독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 거의 맞을 듯? – 결국 이러한 가치관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내려와 일종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유명연예인들 흔히 인터뷰에서 ‘외모보다는 마음씨를 본다’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는 나중에 의사나 재벌3세와 결혼하곤 하니 말이다.

Edmond Rostand의 Cyrano de Bergerac 을 현대화하여 만든 Roxanne 가 바로 이러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외모만 근사한 소방대원 Chris와 길쭉한 코 탓에 열등감에 시달리지만 재치 있고 사려 깊은 소방대장 C. D. Bates(Steve Martin)는 둘 다 재색을 겸비한 Roxanne Kowalski (Darryl Hannah)를 좋아한다. 그러나 Roxanne 의 눈에는 Chris 가 먼저 필이 꽂혔고 무식한 Chris 는 C.D. 의 도움으로 그녀와 데이트를 즐긴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챈 Roxanne 은 결국 둘의 음모를 알아내고 C.D. 와 크게 말다툼을 벌인다.

결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Steve Martin 의 최전성기에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여 만든 작품이 아닌가 싶다. 특히 맥주홀에서 모욕을 당한 C.D. 가 특유의 입담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장면에서의 Steve Martin 의 입담은 가히 달인의 경지가 아니었던가 싶다. 원작을 현대화하여 시나리오로 담아낸 이도 바로 그이다. 이후 그는 작가로서의 길을 걷고자 했고 그 데뷔작이 바로 얼마 전에 소개한 Shopgirl 이었다. Darryl Hannah 는 이 작품과 Splash 등을 통해 80년대 섹스심볼로 부각되었다.

비슷한 영화로 프랑스에서 1990년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진 ‘시라노’와 여성판 시라노 ‘개와 고양이에 관한 진실’이 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Memories Of Matsuko, 2006)

전편 ‘불량공주 모모코’에서 독특한 캐릭터와 묘한 스토리로 신세대 일본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신작. 2003년 발표된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작품이라 한다. 운명의 장난으로 여교사에서 천재작가의 동거녀, 창녀, 이발사, 야쿠자의 동거녀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가 고향의 강을 닮은 도쿄의 어느 강가에서 외로이 죽어간 마츠코란 한 인물의 삶을 조카의 눈을 통해 재조명한 작품. 언뜻 들으면 굉장히 비장한 분위기의 멜로드라마가 연상되지만 – 실제 원작도 그러하겠지만 – 나카시마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결합, 뮤지컬을 통한 형식적 실험, 배우들의 슬랩스틱 연기 등을 통해 희극과 비극이 짬뽕된 MTV 정서의 오락물로 만들어버렸다. 마치 화려한 껌종이로 만든 모자이크 작품을 보는 기분이다. 감독은 디즈니 영화의 주인공이 문을 잘못 열면 어떻게 될까 하는 가정을 두고 만들었다 하니 상당히 악취미다. 개인적으로 모모코와 마츠코 중에 어느 쪽이 맘에 드는지 묻는다면 모모코를 택하고 싶다. 마츠코는 전형적인 비련의 주인공인 캐릭터라 머리 조금만 굴리면 나올 것 같은 캐릭터지만 로로코 풍의 옷을 좋아하며 폭력배에게 굴하지 않는 공주 스타일의 여자라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런 캐릭터가 작품에 잘 녹아들어가 있으니 더 말할 나위없으리라.

라디오스타

사실 이 영화에서 독창적이라 할 만한 요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제목은 The Buggles 의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따왔음이 분명하고, 80년대 음악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떠오르게 하며, 스타와 매니저와의 관계라는 극의 기본설정은 ‘제리 맥과이어’ 또는 ‘러브액츄얼리’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기시감이 분명한, 결말이 불을 보듯 빤한 영화가 그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힘 – 그것도 강원도의 힘 –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외의 즐거움이면서도 무척이나 기특한 일이다.


한물간 80년대 스타가 자존심만 세서 매니저를 고생시키다가 강원도 영월 촌구석에서 DJ 한자리 얻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고 매니저와의 ‘진한’ 우정도 확인한다는 단 두 줄로 줄거리가 요약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욕심 부리지 않았다는 점일 것 같다. 잘만 우려내면 쓸 만한 에피소드 엄청 나올 것 같은 설정이지만 제작진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들이 애초 의도했던 기본구도, 즉 ‘마이너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주제의식에 충실하고 있다.


2000년대 대 80년대, 비디오 대 라디오, 서울 대 영월, 댄스 대 락 등등… 영화의 문화코드는 이렇게 양분되어 있었다. 비록 후자가 전자를 이기진 못했지만 어쨌든 80년대 퇴물 락가수가 영월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방송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게 되는 작은 승리로 귀결된다. 그리고 잠시 헤어졌던 스타와 매니저는 다시 재회하여 멋쩍은 웃음을 나눈다.


간간히 극적비약에 조급해하는 무리한 설정도 눈에 띄지만 박중훈, 안성기 두 관록 있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조연들의 뒷받침 – 특히 영월 지국장 역의 정규수씨는 정말 신들린 연기였다 – , 감칠맛 나는 대사, 그리고 정겨운 노래들이 어울린 자그마한 뒷동산 같은 영화였다.


p.s. 1 영화 끝난 후 자막을 읽다보면 주요배우들의 매니저들의 이름도 나온다.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배우들의 매니저들까지 챙겨줬을까?

p.s. 2 라디오프로그램이 첫 전국방송을 시작하는 날 첫 곡은 MTV의 개국 첫 시간에 튼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였다. 비디오에 대한 라디오의 복수를 상징하는 오마쥬인가?

Radio Star Strikes Back!

The Ladykillers

영국 코미디 특유의 짓궂음과 완고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교수를 자칭하는 Marcus(Alec Guinness)가 예의바르지만 고집 센 할머니 Mrs. Wilberforce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그의 클래식 연주 동료들이 떼거리로 집에 찾아오자 Wilberforce 할머니는 그 부산한 분위기가 좋아 이런 저런 참견을 한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고상한 연주동호회가 아닌 금고털이 범죄자들이었다. 이들의 우두머리격인 Marcus 는 Wilberforce 할머니를 이용한 기발한 계획을 실천에 옮겨 계획이 보기 좋게 성공하게 될 바로 그 순간, 어수룩한 One Round 의 실수로 인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 된다. 결국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알게 된 Wilberforce 할머니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그녀를 죽일 사람을 제비뽑기하게 된다. Mrs. Wilberforce 역의 Katie Johnson 할머니의 깐깐한 올드레이디 연기가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기분 좋은 작품이었다. 코헨 형제에 의해 2004년 리메이크되었다.

Click

클릭! 인생을 마음대로 정지시키거나 리워드, 포워딩 시킬 수 있는 리모트콘트롤이 있다는 설정에서 이야기를 가래떡 뽑듯 죽죽 뽑아낸 아담샌들러 주연의 무난한 가족 코미디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은 스크루지와 비슷한데 다만 스크루지의 고용인이 겪었을법한 스토리다.

호색한이자 못된 고용주인 Mr. Ammer –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로 ‘전격 Z작전’의 데이빗핫셀호프 – 아래서 실력은 뛰어나지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Michael Newman 은 아이들과의 캠핑 약속도 못 지킨 채 일에 몰두한다. 어지러이 널려진 온갖 리모트콘트롤에 화가 치민 Newman 은 모든 전자기기의 작동을 가능케 한다는 유니버셜 리모트콘트롤을 사기 위해 할인점에 들른다. 가게 뒤편의 이상한 방에서 만난 Morty는 – 역시 반가운 얼굴로 크리스토퍼웰켄 – 그에게 최신형 디자인의 이상한 리모트콘트롤을 주는데 이 물건은 전자기기뿐 아니라 Newman 의 인생까지 조절해주는 기막힌 물건이었다. 덕분에 Newman 은 피하고 싶은 상황은 포워딩하면서 인생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데 점점 기계가 자체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여만 간다.

앞서 언급하였다시피 이 영화역시 스크루지처럼 Newman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면서 인생의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리고 가정을 팽개친 채 일에 몰두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설교하고 있다. 아담샌들러는 늘 그렇듯이 무난한 자신만의 코미디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영화는 마치 그의 맞춤양복처럼 아담샌들러를 중심으로 편안하게 진행된다. 곳곳에 배치된 이지리스닝 계열의 80년대 팝 – 특히 The Cars 의 음악이 집중적으로 쓰이고 있다 – 이 이 ‘무난’표 영화에 한 몫 하고 있고 Newman 의 아내역을 맡은 케이트버킨세일의 아름다움은 눈부시다.

이 영화에 출연한 카메오 군단 알아보기

이 영화에 대한 또 다른 시각

The Jerk

스티브 마틴은 찰리 채플린이 아니다. 우디 알렌도 아니다. 그에게서 찰리 채플린 식의 사회비판 정신과 페이소스를 기대하면 곤란하다. 또한 우디 알렌 식의 도시우화도 기대하면 안 된다(물론 직접 시나리오 작업까지 참여한 L.A. Story에서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의 주전공은 아니다). 그는 그보다는 차라리 부조리한 상황설정을 통해 휘발성의 웃음을 선사하는 – 때로는 어이없기까지 한 – 개그맨에 가깝다. 일부 평자들은 이런 유의 웃음을 깊이가 없다며 비판하지만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코미디언의 본분이라는 정의에 비추어 본다면 그가 가장 재능 있는 코미디언중 하나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The Jerk 는 그런 스티브 마틴의 매력이 잘 배어나오는 코미디다. 가난한 흑인 소작인의 집안에서 자라나 자신이 흑인이 아니라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온(!) Navin R. Johnson (Steve Martin)은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영감을 얻어 집을 떠나 도시로 간다. 우연히 얻은 일자리는 주유소 직원. 이 주유소에서 그는 우연히 안경이 흘러내리는 것을 불평하는 손님의 안경에 작은 장치를 달아 불편을 없애준다. 이후 연쇄살인자에게 쫓기고, 새로 얻은 직장인 서커스단에서 만난 스턴트우먼에게 성적학대(?)를 받고, 마침내 아름다운 미용사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어쩔 수 없는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다. 그 와중에 네이빈이 만들어준 안경으로 특허를 내어 성공한 손님이 그를 찾아 엄청난 수익금을 안겨줌으로써 일약 백만장자가 된다.

섹스가 무엇인지도 몰라 첫경험을 가족들에게 자랑하기까지 하는 멍청이 네이빈이 겪는 좌충우돌 인생사는 한참 후에 로버트 제메키스에 의해 만들어진 포레스트검프를 연상케 한다(물론 각각의 작품이 함의하는 메시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또한 확실히 짐캐리 등이 주연한 덤앤더머는 스티브 마틴이 창조한 이 바보 캐릭터의 영향권 아래 있다(짐 캐리의 초기 캐릭터들은 스티브 마틴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동시대에서 그의 연기스타일과 비교될 수 있는 이는 몬티파이튼의 친구들, 특히 존 클리스를 들 수 있다.

스티브 마틴이나 그의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비록 앞서의 두 위대한 코미디언의 그것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스티브 마틴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 확실히 기대에 충족시킨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뛰어난 연기자이다. 더구나 연기인생 중반기 이후부터는 출연작의 시나리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작가로서의 능력도 증명하였다.

Young Frankenstein

패러디의 천재 멜브룩스가 1931년 제작된 공포영화의 걸작 Frankenstein 을 리메이크했다. 그리고 이 작품도 걸작이 되었다. 선조의 성을 물려받게 된 Dr. Frederick Frankenstein(Gene Wilder)은 세계적인 과학자이면서도 그의 할아버지가 시도했던 시체 되살리기 실험의 재개를 단연코 거부한다. 성에는 어딘가 괴기스러운 하녀 Inga 와 하인 Igor가 기다리고 있다.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여 결국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그의 할아버지가 시도했던 신의 영역으로 도전을 재개하기로 한다. 멍청한 하인 이고르(정말 골 때리게 웃긴다)가 뇌를 잘못 가져오는 바람에 살아난 시체는 엄청난 육체적 능력에 걸맞지 않는 멍청이로 재탄생해야만 했다(갑자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생각나). 그런 그에게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탭댄스라도 가르쳐보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멜브룩스가 만든 또 다른 작품 Blazing Saddles 와 함께 그의 감독이력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Gene Wilder 가 공동집필하였다.

絞死刑(Death By Hanging)

극은 한 사형수 R의 교수형이 처해지는 장면의 묘사로 시작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밧줄에 매달린 R은 의식은 잃었지만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었다. 당황한 참관인들(교도관, 검사, 신부, 의사 등)은 그를 죽이기 위해 다시 살리는 희극에 뛰어든다. 그러나 의식을 되찾은 R은 자신이 R임을 깨닫지 못하고 참관인들은 R의 성장배경과 그가 저지른 강간살인을 재연하며 R이 R임을 깨닫게 하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재일 한국인이었던 R의 어두웠던 가정환경, 그의 범행동기, 살인 당시의 상황이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R은 결국 자신 스스로는 사형을 받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부하지만 국가의 또 다른 범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모든 사형 받을 이들을 대신해 사형을 받겠노라고 스스로의 죽음을 순교로 정의하고 교수형으로 사라져간다. 결국 어쩌면 이 모든 사형을 둘러싼 참관인들의 해프닝은 R이 교수형을 받으며 아래로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에 꾸었던 꿈일지도 모른다. 루이스 브뉘엘 스타일의 실험적인 코미디 형식을 빌려 실제 있었던 재일 한국인에 대한 사형을 다룬 이 영화는 사회적 징벌로써의 사형의 부적절함, 재일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무지와 편견, 스스로 살인자였던 일본이 또 다른 살인자를 처벌하는 모순 등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한 편에 소화해내고 있다.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사회적 이슈를 나름의 시각으로 펼쳐내어 대가로 인정받은 오시마 나기사는 진정한 범죄자는 전쟁으로 국민들을 내몰아 수만 명을 살인한 국가임을 고발하고 있다. 재일 한국인 R의 역은 실제 한국인인 윤윤도가 열연하였다. P.S.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집행하는 미국에서는 1950년대 실제로 사형수가 형집행 후에도 살아남은 일이 있었다. 부실한 전기의자의 성능 탓이었다. 사형수는 같은 범죄로 두 번 처벌받을 수 없다며 사형을 재개하지 말 것을 청원하였으나 기각되고 두 번째 전기의자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는 미성년자인 흑인이었다.

오시마 나기사에 대해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