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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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dish House Mafia and Benny Benassi” by Peter Salanki – Flickr: Swedish House Mafia and Benny Benassi.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하우스는 80년대초 디스코의 번성으로 활성화된 클럽 문화의 산물에 의해 디스코 리듬은 점차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여 ‘하우스(house)’를 형성한다. ‘웨어하우스(warehouse)’라는 댄스 클럽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디스코가 팝 친화적인 양상이었던 것에 반해 하우스는 보다 기계적인 비트와 심도 있는 베이스 그루브 도입과 신스-팝(synth-pop), 라틴 소울(latin soul), 덥 레게(dub regge), 랩(rap), 재즈(jazz) 등의 다양한 요소와의 접목이 시도되고 보이스(voice)채널 역시 유명 가수의 싱어송(singer song)아닌 주로 무명 싱어의 의미 없는 멜로디가 단순 반복된다. 80년대말 하우스는 시카고, 뉴욕, 런던 등지에서 언더 그라운드클럽을 탈피하여 차트에 진입하기 시작하고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팝 차트를 공략함과 동시에 변종화가 진행되어 hip-house, ambient house, acid house와 같은 다양한 서브장르를 탄생시켰다. 90년대에 하우스는 몇몇 멋진 음악들을 생산해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 음악은 주로 클럽에서 인기를 얻었다. 세기말에 Daft Punk, Basement Jaxx, 그리고 House of 909와 같은 진보적인 뉴웨이브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하우스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주요 앨범들

Mr. Fingers: Introduction [1992]
Farley Jackmaster Funk: House Music Movement [1998]
LFO: Frequencies [1991]
808 State: Utd. State 90 [1990]
Moby: Everything Is Wrong: The DJ Mix Album [1996]
Adonis: No Way Back [1986]
Larry Heard: Parrains de la House [1998]

AllMusic 참조

훵크/훵키 (Funk/Fun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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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Brown 1973” by Heinrich Klaffs – http://www.flickr.com/photos/heiner1947/4430588088/in/set-72157623613839496/.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최근 팝 뮤직이나 가요계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용어로 펑크, 펑키란 말이 있다. 그런데 매스컴에서 Funk도 펑크, Punk도 펑크로 표기하는 바람에 웬만한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어떨 때 Funk를 쓰고 어떨 때 Punk를 사용하는지 혼란을 초래한다. 그 이면에는 교육부에서 시달돈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P는 물론 ㅍ(피읖)으로 발음하게 돼있기 때문에 Funk나 Punk가 모두 펑크로 표기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는 폐단이 발생한 것이다.

우선 Punk는 철저히 백인들에 의해 1970년대 생성된 록의 한 분파로서 중산층 및 상류층에 대한 반항과 기존 록 음악에 대한 반항적인 이념의 소산으로 생긴 장르인 반면 Funk는 순전히 흑인 소울 가수들에 의해서 표현되기 시작한 음악으로 원래 발음대로 훵크 또는 훵키라고 해야 타당하다고 간주된다. 그래야만 장르에서 오는 음악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훵크(Funk)란 흑인들의 속어로 성(性)적인 흥분이 고조에 달했을 때 풍기는 냄새를 말한다. 명사로 ‘악취’라는 뜻의 이 말의 형용사가 훵키(Funky)로서 블루스, 재즈 또는 록의 감각적인 성질에 관해서 말할 때 사용된다.

즉 50년대 초반 이후 재즈 피아니스트 호레이스 실버와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가 하드 밥 계열의 음악을 블루스나 거스펄과 결합시키면서 현대적인 하모니가 가미되고 후에 소울(Soul)분위기가 적당히 조화를 이뤄 더욱 강렬하고 흥겨운 리듬 감각으로 표출한 흑인 음악이다. 이 음악은 특히 60년대 소울 뮤직이 사양길에 들어서고 70년대 디스코 음악이 고개를 쳐들던 시기에 생겨난 새로운 R&B 음악의 형태라고 풀이 할수 있다. 록에서 훵크의 시작은 60년대에 제임스 브라운이 개척자로 활약했다. 훵크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이 음악을 구체화 시킨 조지 클린턴은 ‘훵크 음악의 대부’로 불릴만큼 그는 가사의 표현이 너무 퇴폐적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훵크 음악을 가장 훵키하게 만들 때 대중들에게 보

급시킨 인물이다. 한편 제임스 브라운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70년대 초반, 9인조 그룹 쿨 앤 더 갱은 뛰어난 기량으로 펼치는 풍성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을 구사하였다. 이어서 보다 훵키한 감각을 가진 훵크 뮤직과 록이 결합된 훵크 록 (Funk Rock)이 훵커델릭, 부치즈, 러버밴드, 파러멘트 등에 의해 소개 됐고 재즈계에서도 훵키 재즈(Funk Jazz)가 등장했다. 훵크의 특징은 약동적인 일렉트릭 베이스와 고음을 추구하는 리듬 기타, 신나는 브라스 사운드와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돋보인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기선을 제압하는 딱딱 끊어지는 스타카토 리듬에 라틴 퍼커션의 요소가 첨가된 댄스용 음악이라는 것이다. 최근 가요계에서도 특히 댄스뮤직과 재즈에서 훵크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데, 대표적인 곡으로 김건모의 <스피드>가 있다.

출처불명

펑크 Dictionary

Sex Pistols in Paradiso - Johnny Rotten & Steve Jones.jpg
“Sex Pistols in Paradiso – Johnny Rotten & Steve Jones” by Nationaal Archief, Den Haag, Rijksfotoarchief: Fotocollectie Algemeen Nederlands Fotopersbureau (ANEFO), 1945-1989 – negatiefstroken zwart/wit, nummer toegang 2.24.01.05, bestanddeelnummer 928-9663 – Nationaal Archief. Licensed under CC-BY-SA-3.0-nl via Wikimedia Commons.

100 Club
영국 런던에 위치한 전설적 펑크 클럽.’76년 런던 펑크의 태동기에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클래시(The Clash), 댐드(The Damned),바이브레이터즈(The Vibrators),수시 앤 더 밴시즈(Siouxie & The Banshees)등이 출연한 수일간의 걸 친 펑크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으로 유명해짐.

77 Style/77 Spirit
라몬즈(Ramones),섹스 피스톨즈,클래시 등 펑크 초창기의 가장 단순한 3코드 원론주의 펑크 사운드, 혹은 그러한 원론주의 자체를 지칭(see also Punk Proletariat)

Anarchism
무정부주의. 니힐리즘과 더불어 초기 펑크의 사상적 근간 이 되었으며 섹스 피스톨즈에 의해 빛을 보게 되었으나 스스로 지닌 한계성 때문에 소멸하게 되었고, 현재는 춤바왐바(Chumbawamba),토털 케이스(Total Chaos)정도가 그 명백을 유지하고 있는 밴드들.(see also Nihilism)

Art School Punks / Art School Trendies
아트스쿨 출신의 예술학도들이 결성했던 펑크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 런던에서는 섹스 피스톨즈의 해산 이후, 뉴욕에서는 그보다 1~2년 먼저 붐을 이룸. ‘Art School Trendies’ 한 명칭은 펑크 인민주의자들이 이들을 격하해 불렀던 표현. (see also Punk Vanguard)

Attitude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태도’ 혹은 ‘자세’. 관습과 권위를 부정하는 펑크의 기본 이념을 대변하는 단어

Aussie Punks
호주에 기반을 둔 펑크 밴드를 일컫는 말. 애드버츠(The Adverts),라디오 버드맨(Radio Birdman)등이 유명.

Bat Cave
런던의 유명한 고스(goth)클럽.

Blank Generation
뉴욕의 전설적 펑크 밴드 보이도이즈(Richard Hell & The Voidoids)의 앨범 타이틀이자 그들의 대표곡. 명실상부한 뉴욕 펑크의 송가(anthem).

Bored Generation
X 세대라는 표현이 유행하던 당시 캘리포니아 부근의 펑크 밴드/팬들을 일컬어 저널리스트들이 붙인 명칭. 동명의 컴필레이션도 발표됨.

CBGB’s
뉴욕의 유서 깊은 펑크락 클럽. ’76년 무렵의 오리지널 뉴욕 펑크 밴드들로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하드코어 밴드들에게 까지 중요한 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Cockney
원래는 노동자 계층 출신 부랑아들을 얕잡아 일컫는 표현이었으나 점차 이 계층의 소년들 스스로 자랑스럽게 자신을 일컫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억양의 영어를 코크니 라이밍 슬랭(Cockney Rhymin’Slang)이라 부른다.

Crustcore
디스차지(Discharge)로부터 연유된 명칭.’8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영국 하드코어 세력중 특히 스트레이트/헤비하고 스피디한 성격을 강조한 일군의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일컬음. 검은 가죽 의상과 금속 장식,스파이크 헤어 등의 패션을 애용하는 것도 특징의 하나. 이후 영국에서보다는 북유럽권의 하드코어 신과 미국의 스래시/데스 메탈 밴드들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

D.I.Y
‘네 스스로 하라(Do It Yourself)’의 약자. 펑크의 주된 애티튜드의 하나. 자주 레이블(Independent
Lable)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Facist Core / Nazi Core
’80년대 중후반 영국에서 노동계급 펑크가 인기를 끌게 되자 극우정당이던 국가 전선(National Front)에서 만들어낸 일련의 극우 펑크/하드코어 밴드들 혹은 그 무브먼트를 지칭. 네오나치즘/네오 파시즘에 충실하며 주로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등 유럽을 세력권으로 하였음. ’90년대 들어와 거의 사라진 듯 보였으나 얼마 전부터 동구권 및 나미,일본을 중심으로 다시 창궐하는 분위기임.

Fanzine / Zine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기존의 음악 매체와는 달리 순수한 팬의 입장에서 제작되는 비영리성 잡지. 인디레이블,클럽과 합께 펑크 신을 받쳐주는 3대 하부 요소로 불리움.

Glam Punk
짙은 화장과 블라우스,과장된 헤어 스타일 등 패션에 상 당히 신경을 썼던 펑크 밴드들을 일컬음. 단지 외양적인  측면에서의 표현일 뿐 사운드 자체는 팀마다 모두 제각각이었음에 유의할 것. 그다지 많은 팀들이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그중에서도 하노이 록스(Hanoi Rocks)나 아담 앤 디앤츠(Adam & The Ants)의 밴드들은 유명함. 댄스 그룹으로 명성을 달렸던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역시 무명시절에는 글램 펑크 밴드였다고.

Goth / Gothic Punk
포스트 펑크의 많은 세력들중 가장 빛을 보지 못한 일파중 하나. 말 그대로 고딕적인 펑크를 추구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인더스트리얼 계열로 흡수되어가게 됨. 밴쉬즈,바우하우스(Bauhaus),에이리언 섹스 핀트(Alien Sex Flend),크리스천 데스(Christian Death),시스터즈 오브 머시 (Stisters Of Marcy)등이 대표적. ’90년대 들어 인더스트리얼 / 다크 웨이브(Dark Wave)계열의 밴드들이 창궐하게 되는 원동력을 제공.

Hardcore
사전적 의미로는 ‘극단’ 혹은 ‘과격’ 정도의 의미. 문화적으로는 장르르 막론하고 그 분야에서 가장 과격하고 거친 형태의 스타일을 일컬음.(예:Hardcore Porno,Hardcore Rap…)펑크에서 하드코어라 함은 스피드와 가사에 있어서의 극단을 추구했던 무리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이야기함. 일반적으로 하드코어 펑크는 영국,캘리포니아,뉴욕(및 동부지역)의 세 지역을 중심으로 부흥을 맞이했다고 보고 있음.하드코어는 이후 스래시 메탈과 얼터너티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음.스스로의 음악을 일컬어 최초로 하드코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캐나다 출신의 밴드 D.O.A.였다고.

Hardcore Thrash
하드코어 펑크가 ’8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창궐하였던 스래시 메탈 무브먼트와 만나 생긴 새로운 조류.대체로 초창기 스래시 밴드들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듯. 크립틱 슬로터(C- ryptic Slaughter),크루시픽스(Crucifix),크로-맥스(Cro-Mags) 등의 밴드들이 대표적이며 스래시 메탈 밴드로 널리 알려진 앤스랙스(Anthrax)나 뉴클리어 어설트(Nuclear Assult)같은 밴드들.심지어는 슬레이어(Slayer)같은 밴드들 역시 하드코어 스래시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밴드였다고 볼 수 있음.

Horror Punk
’50년대 B급 호러 무비를 연상케하는 분장과 무대장치,가사 등 을 전격적으로 차용해 스스로를 특화했던 일군의 펑크 밴드들, 혹은 그들의 음악을 일컫는 표현. 댐드(The Damned)를 원조격 밴드라 부를 만 하며 미스피츠(Misfits),로킷 프롬 더 크립트(Rockets From The Cypt),일본의 발작(Balzac)과 애브노멀즈(The Abnormals)등이 활동중.

Indie Label / Independent Label
대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자본으로 자신들의 음반을 제작하기 위해 생겨난 레코드 레이블. 자주 레이블,혹은 독립레이블이라고도 불리움. 인디 레이블의 시작은 펑크 밴드들과 함게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임. 이언 멕케이(Ian McKaye:Minor Religion)의 에피타브(Epitaph)등이 유명. 현재까지도 수많은 인디 레이블이 존재하지만, 예전의 건전한 의미는 많이 퇴색한 상태.

Kraut Punks
독일의 펑크 밴드들. 디 토텐 호젠(Die Toten Hosen),욥스(The Yobs)등이 유명.

Krishnacore
힌두교,특히 크리시나 사상에 입각한 펑크/하드코어를 추구하는 일련의 세력을 일컫는 표현. 육식과 음주를 금하며 ‘지고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애티튜드를 지님. 유스 오브 투데이(Youth Of Today)를 전신으로 하는 셸터(Shelter)가 대표적.

Los Punkeros
라틴 문화권의 펑크 밴드들을 일컫는 말. 순수 펑크 밴드들보다는 Oi!크러스트 코어,하드코어 등의 과격파 밴드들이 많음. Oi!밴드로는 이탈리아의 클라스 크리미날(Klasse Kriminale)가 대표적이며 브라질의 하드코어 밴드인 R.D.P와 티타스(Titas)는 세풀투라(Sepultura)에 의해 전세계로 알려지게 되었음.

Mahawks / Mohicans / Spike
마치 아파치 인디언을 연상시키는 뾰족하게 세운 헤어 스타일,혹은 그러한 헤어 스타일을 애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 주로 영국의 노동계급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에게 사랑받았음.

Max’s Kansas City
CBGB’s와 함께 뉴욕 펑크 클럽의 대명사였던 업소.

Melocore / Melodic Punk
미국 캘리포니아,특히 LA지역을 중심으로 ’90년대 초반부터 활발히 전개된 펑크 사운드를 일컬어 일본 저널리즘에서 붙인 별명. 말 그대로 하드코어의 스피드에 좋은 멜로디를 접목시킨 사운드가 특징으로 배드 릴리전을 대부로 하 는 애피타프 레이블 출신의 밴드들(Pennywise,NOFX,Offspring..) 과 <룩아웃! 레코즈(Lookout! Records)>를 기반으로 한 밴드들(Operation Ivy,Green Day,Queers…)의 양대 세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음. 그린데이와 오프스프링의 성공으로 인해 잠시 메인스크림으로 진입하는가 싶었으나 현재는 다시 언더그라운드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

Neo Punk
멜로코어라는 명치이 주로 ’9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의 펑크사운드를 지칭하는 좁은 표현인 것에 비해 네오펑크라는 표현은 ’90년대 초중반의 팝화된 펑크 사운드를 넓게 지칭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보임. 팝 펑크라는 표현과도 일맥상통.

N.Y.C.H.C
‘New York City Hardcore’의 약자. 마찬가지로 B.C.H.C는 ‘Boston City Hardcore’,D.C.H.C는 Washington D.C. Hardcore’의 의미.

Nihilism
19세기 러시아 문학계에서부터 기원한 허무주의 사조를 일컫는 말. 초창기 펑크의 사상적 근원이 되었음. 넓은 의미로는 무정부주의를 일컫기도 함.

Oi!
영국 노동계층 청소년들이 ‘Hi!’나 ‘Hello’대신에 사용하던 인사말로부터 기원한 표현. ’80년대 초반 시작된 영국 노동계층 청소년들의 스트리트 펑크,혹은 그러한 밴드들을 일컫는 표현이다.

Pogo
’77년 무렵 런던 펑크 클럽에서 유행하던 춤. 특별한 스타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미친 듯이 온몸을 뒤흔들어대면 된다. 섹스 피스톨즈의 자니 로튼(Johnny Rotten)이 대유행시켰다.

Psychobilly / Punkabilly
펑크의 열풍이 가실 무렵 유럽을 중심으로 탄생한 새로운 형식의 펑크. 주로 펑크와 로커빌리,컨트리 & 웨스턴,서프뮤직 등을 혼합한 형태의 사운드를 띈다. 독일 출신의 매드신(Mad Sin)이 유명하며 우리에게는 뉴웨이브 그룹으로 알려진 스트레이 캐츠(Stray Cats)도 한때는 사이코빌리 밴드로 불리웠다.

Pub Rock
펑크라는 표현이 유행하기 이전 런던의 노동계급 술집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일군의 밴드들이 행하던 음악을 일컬음. 일반적으로 초기 펑크 사운드라고 인식되고 있음. 101ers,에디 엔 더 핫 로즈(Eddie & The Hot Rods),붐타운 래츠(Boomtown Rats)등이 대표적.

Punk Proletariat / Punk Populist
펑크 인민주의자. 이름 그대로 런던 노동계급 출신의 스트리트 밴드들로서 라몬즈-섹스 피스톨즈를 원형으로 하는 펑크의 ’77년 정신과 사운드에 충실하려는 펑크의 순수성/원초성을 강조. 샴 69(Sham 69)를 대부로 하여 이후 생겨난 Oi!무브먼트로 폭발하였고,이후 브리티시 하드코어 신을 형성하게 됨. 일부는 스카 신으로 흡수되기도. 대표적 밴드는 익스플로이티드(The Exploited).

Punk Vanguard
섹스 피스톨즈의 해산 이후 아트스쿨 뮤지션들이 결성한 펑크 밴드들을 일컬어 사회학자들이 붙인 명칭. 펑크의 신화성을 깨뜨리고자 했으며 이에 따라 기존 펑크 스타일,특히 사운드적 측면에서의 해체/재창조를 실험하였음. 갱 오브 포(Gang Of Four)가 대표적. 이후 영국보다는 주로 LA의 초기 얼터너티브 신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됨. 펑크 인민주의자들에게 사상적으로 공격당하는 일이 잦았음.

Rustic
펑크에 스카,마리아치,컨트리 & 웨스턴,러시아 민요 등의 이질적인 사운드를 대폭 첨가하여 독특한 사운드를 내는 새로운 조류. 악기 편성도 기존의 기타/베이스/드럼 진용에서 탈피하여 밴조,어크디언,우드 베이스,트라이앵글,카주 등을 전격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함. ’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는 일본 세력이 상당히 강한 편으로 도쿄 스컹크스(Tokyo Skunx),바나나 세이크스(Banana Shakes)등이 맹활약중.

Ska Punk / Ska Core
말 그대로 스카와 펑크,혹은 스카와 하드코어를 결합한 형태의 음악. 스카 펑크는 주로 캘리포니아 지역의 멜로코어 밴드들과 연계되는 경향이 강하고 스카 코어는 캘리포니아 보다는 미국 동부 지역을 기반으로 해왔음. 대표 밴드로는 오퍼레이션 아이비(Operation Ivy),랜시드(Rancid),레스 댄 제이크(Less Than Jake),릴 빅 피시(reel Big Fish),골드핑거(Goldfinger), 마이티 마이티 보스톤즈(Nighty Mighty Bosstones),부두 글로 스컬즈(Voodoo Glow Skulls)등이 있음.

Skanking
‘스카를 연주하는’,혹은 ‘스카를 들으며 춤을 추는’이라는 뜻을 지닌 형용사.

Skinheads / Skins
서구의 노동계층 청소년들중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니던 무리를 일컫는 표현. 일반적으로 영국의 스킨헤드들은 Oi!를, 미국의 스킨헤드들은 하드코어를 자신들의 음악적 취향으로 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 종종 우익 단체들에게 이용되어 네오 나치즘과 연계되기도 하였지만 사실 정치색은 없는 집단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듯.

Skoi!
스카와 Oi!가 만나 형성된 새로운 펑크 무브먼트. ’90년대 들어 <래디컬(Radical)>및 <문 스카(Moon Ska)>레이블을 중심으로 한 뉴욕 스카 신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으며 스캘로윈(Skalloween)이라 불리는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으로도 유명. 스코이대츠(Skoidats)가 대표 밴드.

Slam / Slam Dancing
하드코어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격한 형태의 집단무용(?). 서로 어깨와 등을 강하게 맞부딛히며 관중들 사이의 일체감을 획득하는 의미를 지닌다. 모싱(Moshing)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Stage Diving
하드코어 공연장에서부터 기원한 독특한 무대 매너. 예전의 공연장이 밴드/관중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나뉘어 있던 것과는 달리 연주 도중 밴드 멤버가 관중들에게 다이빙해 들어감을 통해 둘 사이의 거리감을 없앨 수 있는 장점을 지니지만,종종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하여 많은 공연장에서 이를 금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펑크/하드코어 뿐만 아니라 얼터너티브,헤비메탈 공연장에서가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었다.

Straight Edge
워싱턴 DC의 마이너 스레트(Minor Threat),뉴욕의 유스 오브 투데이와 고릴라 비스키츠(Gorilla Biscuits)를 중심으로 ’80년대 중후반 미국 동부지역에서 일어난 새로운 하드코어 무브먼트. 동시대의 펑크/하드코어 밴드들의 니힐리즘과 폭력성에 반대하며 방탕한 생활을 배격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PC)’노선을 추구하였음. 현재는 거의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

Two Tone Movement
’70년대 말~’80년대 초 영국의 <투 톤(Two Tone)>레이블을 중심으로 일어난 스카-펑크 믹스추어 무브먼트. ‘스카 제 2 의 물결’이라고도 불리움.셀렉터(Selector),스페셜즈(Specials),베드 매너즈(Bad Manners),잉글리시 비트(English Beat) 등이 대표적이며 클래시 같은 밴드도 이러한 영향권 내에 존재했다고 볼 수 있음.

(발췌:’98년 월간 GMV 6월호)

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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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ecials” by Robman94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스카가 처음 출현한 것은 59년 또는 60년 자마이카에서였다. Derrick Morgen 이라는 가수가 59년에 처음으로 스카 음반을 녹음했다고 알려져 있다. 스카에 관해 논할때는 Prince Buster -Cecil Campbell이라 알려져 있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수 없다. 그는 당시로선 새로운 것이라 보여지는 리듬비트 방식을 선보였다. 어떻게 본다면 원초적인 흑인 게토 사운드와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밴드에 있던 기타리스트에게 리듬을 바꾸어 달라는 주문을 여러 차례에 걸쳐서 했고그 기타리스트는 애프터 비트에 액센트를 두는 싱코페이션을 리듬 비트에 자주 배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주방식은 얼마안가 ‘스카부비’라는 슬랭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스카의 기원도 이 스카부비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버스터의 음악을 특징짓는 대표적인 것이 되었고 얼마후엔 자메이카를 대표하는 음악 스타일로 자리했다. 스카의 스타였던 Jimmy Cliff는 Leslie Kong 이 이끈 Beverley라는 레이블에서 음악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의 진정한 왕은 데릭 모건 이었다. 64년 세션 뮤지션이었던 색스폰 주자 Tommy MeCook은 몇몇 연주인들을 받아들여 The Skatalites라는 밴드를 출범 시켰다. 이들은 65년에 해산하고 수십여년이나 지난 83년 재결성 되었다. 이들은 재즈와 스카의 형식이 교묘히 결합된 스카 이스트루멘틀의 고전 “Gun Of Navarone”을 제작해 주목을 끌었고 이 곡은 이후의 스카 음악인들에게 ‘스카란 이렇게 연주해야 한다.”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스카라는 것이 본국인 자메이카에서만 즐기기에는 너무 벅찼다. 국민의 생활수준이나 오락산업 등에서 낙후된 이 곳에서는 스카가 상업 주의로 포장되기에는 머나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음악이 먹힐수 있는 가장 큰시장은 영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메이카 사람들 다수가 리즈, 버밍험, 런던 등으로 이주해버려 영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자메이카적인 경향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프린스 버스터의 음악도 이즈음에 영국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일련의 영국 모드족들이 이것에 흥미를 갖고 자신들의 음악에 반영해 갔다. 이렇게 해서 스카는 영국 고유의 브리티시 사운드와 만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의 스카는 2-Tone 레이블에서 시작되었다. 뮤지션들로는 The Specials, Selecter, Madness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스카는 아메리칸 뮤직 고유의 R&B와 만나며 그루브를 더 한층 잘살리는 사운드를 만들어 내었다. 90년대로 들어와 스카는 또한번 변화를 겪게된다. 원래의 오리지널리티가 많이 상실된채로 댄스나 그외의 영역들과 어울리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갔던 것이다. 물론 자메이카적인 정통 스카를 연주하는 밴드들이 클럽에 산재해 있었으나 이들 정통 스카의 얄범들은 전혀 팔리질 않았다. 결국, 스카는 상업화, 팔리는 쪽의 대세로 기울며 변질 또 변질 되어갔다. 원래 스카 연주자들은 재즈적인 기반이 있었음에도 미국음악계에서는 스카 음악인들이 결코 재즈쪽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말았다. 엉뚱하게도 팝이나 댄스의 영역으로 진출해 Rock Ska 또는 Pop Ska 를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이제 스카는 그 자체의 스타일을 거의 상실하다시피 했다. 스카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은 생계도 벅찰 정도이다. 반면 이것을 상업주의에 적절히 이용하는 밴드들은 거대한 성공을 맛 보았다. 우리가 듯는 스카록 또는 스카팝은 진정한 스카가 아닌 ‘변질된’ 스카인 것이다.  

http://my.dreamwiz.com/jachunhi/rock6.html

펑크와 레게

국제적 명성을 얻은 자메이카 출신 뮤지션은 봅 말리 앤 웨일러즈이다. 1945년 영국 육군 퇴역 소령과 자메이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봅 말리는, 스카 1대 때부터 킹스턴의 슬럼가인 트렌치 타운Trenchtown에서 웨일러즈를 결성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봅 말리가 서구에 알려진 것은 1973년 영국의 아일랜드Ireland 레벨과 계약을 맺고 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이는 레게가 영미 록의 최신 테크놀로지와 미디어를 처음 만나게 된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1980년 괌에서 뇌종양으로 요절하기까지 봅 말리는 아름다운 러브송에서 정치적인 메세지가 담긴 노래에 이르기까지 숱한 작품을 남겼다.

그는 서인도권의 정치에 대한 직간접 관여와 진보적인 정치 발언으로 두 번이나 암살 기도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1978년 제3세계 평화 메달을 수상하면서 그의 실천적인 행동은 그 빛을 발한다. 질질 끌리면서도 뛰어오를 듯한 레게의 반복 리듬을 깔고 들려 오는 봅 말리의 음울한 자메이카 사투리와 그 날카로운 메세지. 이는 영미의 성인 취향 록에 권태를 느끼던 음악 팬들에게 강한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자메이카에선 웨일러즈에 뒤이어 버닝Burning, 스피어 새드 월드Sphere Sad World, 블랙 파워Black Power들의 레게 뮤지션이 연이어 등장했다. 1980년 봅 말리가 목숨을 거둔 후-봅 말리의 장례는 자메이카 국장으로 치뤄졌다-레게는 피터 토시Peter Tosh의 손으로 넘어간다.

피터는 원래 웨일러즈의 멤버였다. 하지만 그는 봅 말리와 음악에서는 물론 정치에서도 의견이 달랐다. 피터는 과격파 라스타파리즘에 기울어 있었고 음악을 통한 계몽과 정치의 지속을 꿈꾸었다. 피터는 롤링 스톤즈의 키스 리차드와 믹 재거의 후원으로 음반을 발표했지만 그다지 시원찮은 성과를 맺는데 머물렀다.

한편 영국에서도 스틸 펄즈Steel Perals등의 자메이카 주민에 의한 레게가 자라났다. 영국 하층에 속해 있던 뮤지션들은 레게가 지닌 반역적 특성에 쉽게 공감했다. 그리고 펑크와 레게 뮤지션 사이의 음악 교류는 물론 인종차별 반대운동을 지원하는 등 록음악 역사에서 보기 드문 왕성한 음악 연대가 이워졌다.

봅 말리 못지 않은 급진 성향을 가진 클래시는 데뷔 LP인 를 제작해 레게와 적극 교류하는 한편 자메이카의 프로듀서 리 스크레치 페리의 협조를 얻어 를 녹음한다. 레게의 영웅 봅 말리는 이미 (1977년)에서 펑크와 레게의 연대를 꾀한다.

뉴웨이브 시대로 들어서면서 레게가 미치는 영향은 더욱 커진다. 유비 포티UB40와 같은 흑인 출신 레게 그룹과 스카를 리바이벌한 혼성 그룹 스페셜즈Specials 들도 이 즈음 얼굴을 내민다. 마지막으로 레게 리듬과 가사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댑 기법이다. 레게 등장과 함께 중요한 음악 기법으로 록에 스며들게 된 댑은 70년대를 지나면서 원곡과 다른 독자적인 음악 형식으로 자리 잡는다. 이는 댑 기법에서 발휘되는 믹싱mixing효과의 재미(유쾌함, 우스꽝스러움)에 록 뮤지션들이 주목한 데서 비롯된다.

피아이엘PIL(Public Image Limited의 약자로 섹스 피스톨즈를 탈퇴한 자니 로튼이 자메이카 여행중 결성한 밴드)이나 팝그룹인 Flying Leaders 들은 기성 음악 구조를 해체하는 방법으로 댑에 접근했고, 폴리스Police와 컬쳐 클럽Culture Club 은 사운드적인 재미로 연주 속에 삽입하기도 했다. 서동진 씀(punk77.com에서 인용)

Ska Rev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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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lecter Berlin 1980” by Braunov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Ska는 60년대 초반에 생겨난 음악장르이다. 당시 저매이카인들은 뉴올리언즈의 R&B 스타일을 재창조해내려 노력하였고 이러한 노력으로 스카 아티스트들은 특유의 리듬과 멜로디적 감각을 개발해냈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들은 레게(Reggae)로 발전했다. 70년대 후반 일단의 영국 밴드들은 오리지날 스카 싸운드를 복구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들은 스카에 신경질적인 펑크리듬을 첨가했다. 한걸음 더나아가 이 “스카 복구주의자(Ska Revialist)”들은 그 당시로써는 획기적으로 인종적으로 혼합된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도발적인 정치적 발언이었다. 주도적인 스카 복구주의자는 The Specials, Madness 등 이다. 하지만 이들의 인기는 영국내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일종의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고 한참 후에 등장한 Rancid, Mighty Mighty Bosstones, No Doubt 와 같은 밴드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주요앨범

The Untouchables: Live & Let Dance [1984]
The Beat: What Is Beat? [1983]
Bad Manners: Klass [1983]
The English Beat: I Just Can’t Stop It [1980]
Selecter: Too Much Pressure [1999]
Members: Sound of the Suburbs: A Collection of the Members Finest Mo [1995]
The Specials: Singles Collection [1991]

AllMusic 참조

펑크(Pu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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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x – Transferred from pl.wikipedia.org to Commons., Public Domain, Link

일반적으로 펑크라고 하는 용어는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십대나 어린아이에게 적용된다. 또한 이용어는 1950년대 테디스(Teddies)의 최신 변형과 1960년대 모즈(Mod)족, 1970연대의 런던에서 볼 수 있던 특별한 의상 스타일을 묘사하는데 쓰이곤 했다.

미국에서는 비트닉스(비트족)나 히피가 어느 정도 유사한 용어로 쓰였다. 펑크는 이들과 어느 정도 달랐다. 왜냐하면 펑크는 법 외에 있음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타입의 공통된 요소는 이것들이 반인습적이며 반제도적이었다는 것이다.

펑크는 의심할 것도 없이 1970년대 중반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앨비스 프레슬리의 의상 스타일이나 특히 그의 헤어 스타일에는 펑크적인 면이 있었다. 또한 1960년대에는 롤링 스톤스, 후, 프랭크 자파 등등 많은 본보기적인 펑크 뮤지션이 있었다. 이 용어가 음악적으로 적용되기 이전에는 강한 발언과 이상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펑크의 일원으로 낙인 찍혔다. 지미 헨드릭스는 파괴적이며 때때로 무대위에서 기타를 때려 부수고는 했기 때문에 펑크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뮤지션들은 초기 펑커들이었다.즉 이들은 단순히 그들의 공연을 위한 하나의 행위로 행했을 뿐 펑크에 전적으로 몰두하지는 않았다.

펑크는 세 번째의 록 혁명이었다. 최초로 록큰롤의 형성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비틀즈가 1964년에 혁명을 단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펑크 운동은 1976년에 시작되었으며, 펑크 물결은 음악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그것은 반 정부적이었고 반 사회적이었으며 기존 질서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반대하였다. 그것은 파괴적이었고, 염세적이었으며, 인생에 대한 황량한 소망을 드러냈다. 펑크는 또한 대부분이 실직 상태에 있던 영국 젊은이들을 대변했다.

음악적으로 펑크는 록에 대한 권태, 특히 미국 록에 대한 반발이었다. 초기 펑크 밴드들은 디스코, 아트 록, 재즈 록 같은 1970년대에 록이 만들어낸 모든 것 즉, 록의 상업화에 명백히 반대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펑커들은 록큰롤을 1950년대식 스타일로 되돌리고 싶어했으며, 정확하게 현실을 전달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다. 본질적으로 펑크 철학은 허무주의나 반예술주의이다. 어떤 면에서 펑크 밴드들은 ‘일회용’에 불과한 것이었다.

펑커들은 단지 녹음하기 위해서 그룹을 결성하고는 했다.실지로 그들은 그리 많이 연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테크닉은 그들이 추구하는 요점의 일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매우 뚜렷한 메시지를 갖고 있었으며, 그들의 연주 스타일이 그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들은 정교한 레코딩을 원하지 않았다.펑크는 대중매체를 거부하고 그들 자신의 언더그라운드 매체를 창출해 내었던 것이다. 펑크 밴드들은 독자적인 레코드 레이블과 싸구려 악기를 이용했고, 자동차 차고에서 녹음하는 형식인 가리지(Garage)레코딩을 탄생시켰다.

출처 : http://popsong.netian.com/

영국 테크노의 역사

영국 테크노의 역사는 곧 테크노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국의 테크노의 태동에서 변천을 거쳐 현재의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비단 테크 노만이 영국 대중 음악의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경향을 대변해온 장르는 아니겠지만, 테크노의 변천 추이를 되짚어 보면 7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모든 영국 대중 음악의 기술적인 발자취와 거의 상통한다는 점에서 진보정신의 순수한 모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테크노의 기원과 기본적인 틀은 독일에서부터 시작됐지만 그 형식의 다양성과 실용성을 갖춰 다각적인 테크노의 붐을 일으킨 것은 영국의 몫이었다.
영국이 공업으로 일어선 나라이고 온갖 공장들이 각처에 즐비하게 흩어져 있다지만 소규모 전자 제품이나 악기를 만드는데는 그다지 신통한 재주가 없었던 관계로 영국의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 악기를 구입할 수 밖에 없었고 웬만큼 악기레 이블의 협찬을 받거나 밴드의 지명도가 있기 전까진 사구려 중고 악기에 의존하는 뮤지션들이 많은 것이 음악 강국 영국의 현실이었다.

그런 탓에 영국의 테크노는 테크노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선 중견 뮤지션들이나 비교적 생활이 윤택했던 인텔리 출신의 뮤지션들을 중심으로 시작될수 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대중 지향보다는 아트록과 결합되거나 뮤지션의 화려한 테크닉을 선보이기 위한 솔로 앨 범의 도구로 이용될 뿐이었다(독일과는 달리 젊은 뮤지션들 사이에 테크노 바람이 일기까 지는 꽤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굳이 조그마한 바(bar)나 클럽에서 공연을 할 이유가 없었던 부유한 테크노 뮤지션들의 대개는 아트 스쿨 혹은 공학도 출신이었는데 그런탓에 실존적이고 실용적인 사운드를 표출하기 보다는 자기 도취적이고 약물과 연계를 맺은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들에 근접하기 시작했다.
사이키델릭과 아트록의 붐에 편승해 등장한 전자 사운드를 표출하는 여러 실력파 밴드들은 첨단기기에 대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기계적 비트와 갖가지 다양한 효과음을 실전에 활용 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테크노 취향의 음악들로 방향을 우회하게 된다. 70년대 초 공간과 시간에 대한 묘사를 담은 호크윈드(Hawkwind)를 비롯한 스페이스 록 밴드들이 바로 영국 테크노의 시발점인 셈이다.

인간적인 풋풋한 연주보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극단적인 표현양식을 추구한 이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자 각종 전자음악을 구사하는 밴드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등장했고 그 중 74년은 테크노와 전자 사운드의 기념비적인 해로 일렉트로폰(Electrophon)의 Zygoat, 세븐스 웨이브(Seventh Wave)의 Things to come등의 명반들과 브라이언 이노의 초기 앰비 언트적인 작품들이 속출한 시기였다.

특히, 브라이언 이노는 글램적인 요소가 다분한 록시 뮤직(Roxy Music)에서의 활동을 끝 으로 각종 프로젝트 결성에 열을 올리게 되는데 로버트 프립, 로버트 와트와 펼친 일련의 작품들은 스페이스 록 차원이 아닌 그 이상의 진보성과 의미를 지닌 작업들이었다. 이후 패트릭 모라즈, 릭 웨이크만, 마이크 올드필드, 릭 라이트 등의 건반 연주자와 리퓨지, 킹덤 컴 등의 밴드들이 신서사이저/키보드로만 일관된 음반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테크노의 기법상의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로 두번째 변혁이었던 것이다. 그후 78년경 브라이 언 이노가 표방한 앰비언트에 대한 연구, 천재 뮤지션 에디 좁슨등이 발견되면서 신서사이저 와 드럼 머쉰을 통한 원맨 밴드 붐이 가열됐고 테크노는 매니어들 음악의 최상의 선택으로 끊임없는 지지를 얻게 된다.

80년대 이후 테크노는 영국 대중음악 신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다시금 인식되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댄스 음악과의 접목을 통하면서부터다. 이것은 70년대 말엽까지의 매니어 취향, 혹은 극단적인 실험 음악 형태의 테크노를 벗어나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으로 변모했다 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왜 이러한 테크노의 댄스 뮤직화의 시발점이 하필 영국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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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Big Ben Phone box” by , wiki+spam@eindruckschinderdomain.de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2.5 via Wikimedia Commons.

그것은 앵글로 색슨족의 자기 우월주의와 타인종, 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사고방식에서 이유 를 찾을 수 있다. 흑백이 공존하는 그리고 식민지 작업을 통해서 많은 인종을 거느리고 있 었던 영국이었지만 유독 백인 위주의 문화만이 토착화 되면서 영국에는 흑인의 그루브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그런 연유로 마땅한 댄스음악이 생성될 수 없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은 안팎으로 상황이 좋았다. 댄스음악 빈곤에 대한 자기 반성과 함께 세계적인 인기를 모았던 디스코가 기술적인 문제에 부딪쳐 주춤하면서 전자 음악의 힘을 빌기 시작한것이다(아울러 영국에는 많은 수의 악기들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다소간의 흑인 음악을 추구하는 가수들은 디스코로 패셔너블한 부분들에 관심을 갖던 모던 보이들은 뉴 웨이브(New Wave)로 각각 제 갈길을 찾기 시작했다. 두가지 음악은 공존하면서 기술적인 많은 부분들을 협력하기 시작했는데 이 즈음부터 테크노는 그 세력을 독일에서 영국으로 옮겨오기 시작한 것이다.

카바레 볼테어, 조이디비전으로 시작된 뉴 테크노 사운드의 움직임은 휴먼 리그(Human League), 뉴오더(New Order), ABC, 하워드 존스(Howard jones),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등 팝과 테크노 댄스를 혼합한 음악들로 변모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영국 음악의 부흥은 시작됐다. 하지만 80년대 중반까지 펼쳐진 일련의 음악들은 테크노라는 의미보다는 전자음악, 뉴 웨이브라는 의미로 통용될 뿐이고 또 확실히 기계에 의존하는 부분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못했다.
그러나 80년대 말 앰비언트라는 장르와 인디펜던트라는 의미, 매니어용 댄스라는 구분이 알려지면서 대도시 클럽과 소규모 공연장을 중심으로 분파가 갈려지기 시작했고 테크노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거듭됐다. 유투(U2)와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같은 대스타들이 새로운 조류와 브라이언 이노 같은 대 뮤지션을 섭렵하여 자랑스레 대중앞에 섰고 테크노 는 단숨에 인디펜던트 음악에서 오버그라운드, 메인스트림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믹싱 DJ나 스튜디오 맨에 불과하던 사이드 뮤지션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와 관중을 포섭 하기 시작했고 하나 둘씩 스타밴드들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거기에 모던록/얼터너티브란 모호함을 함축한 장르가 가세하면서 상승세의 테크노 뮤지션들까지 덩달에 매체에 알려지 게 되었고 그들 역시 상종가를 누리면서 모던록 스타들의 뒤안길에서 믹싱 작업을 조달하 던 테크노 보이를 청산하고 서서히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해가고 있었다. 록 음악에서 제휴 한 과격한 행동과 사운드를 선보이기 시작한 프로디지(Prodigy)나 케미컬 브러더스(Chemical Brothers)와 같은 팀들이 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빅히트를 하게 되자 테크노는 완연한 대중 가요로 정착되게 된다.

테크노가 완연한 인기를 얻을 즈음 영국에선 괴이한 현상이 발병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무분별한 장르의 탄생이었던 것이다. 테크노의 수직 상승이 장르 탄생의 모태가 된 셈인데 덥(Dub), 트랜스(Trance), 레이브(Rave), 트립 합(Trip Hop),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 하드코어 테크노(Hardcore Techno), 신스 팝(Synth Pop)등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수많은 장르들이 탄생했고 단명했으며 다른 장르와 연대하여 또 다시 생성했고 장르에 관한 설명서 가 있어야 할 정도로 너무나 많은 장르와 명칭에 혼란을 겪게 됐다. 90년대 말로 치닫는 현재의 테크노는 이제 브릿팝(Brit Pop)이라는 화두를 무참히 잠재우고 영국을 넘어 세계 각지에 그 세력을 확장 시키고 있는 영국 대중 음악의 최고의 장르이자 글로벌 사운드가 되어있다.

http://myhome.shinbiro.com/~www098/techno2[1].html

Acid House

애시드 하우스는 하우스에서 파생된 것임에도 주류 하우스의 안티테제로서 등장하였기 때문인지 하우스와는 유사성보다 차별성이 더 두드러진다(하우스의 흑인적인 냄새는 애시드 하우스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하우스는 미국에서, 애시드 하우스는 유럽에서 배양된다). 애시드 하우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롤랜드 TB-303 아날로그 신서사이저인데, 그 몽환적이면서 미니멀한 특유의 TB-303 모듈레이션(modulation:변조) 음원은 애시드하우스 자체를 대표한다. 애시드 하우스는 레이브가 절정에 달했던 88-92년 사이 유럽, 특히 영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지만, 레이브가 주춤해진 현재 과거 같은 명성을 얻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현재 테크노 씬을 주름잡는 뮤지션 대다수가 과거 애시드 하우스에 경배했던 ‘레이브 키드’였다는 사실은 90년대에 애시드 하우스가 얼마 만큼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가를 증명한다.

추천 앨범:
Plastikman Muzik (1994)
Plastikman Consumed (1998)
Hardfloor Respect (1995)
Lords Of Acid Lust (1991)
Drum Club Live In Iceland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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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303” by User ミシャー on de.wikipedia – Quelle: selbst fotografiert
Fotograf oder Zeichner: ミシャー.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롤랜드(Roland) TB-303:현재까지도 이 악기는 테크노 씬의 중요한 위치를 점거하고 있다. 한 때 테크노 루프의 90%는 이 악기의 패턴을 응용한 것이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뮤지션들이 장르와 상관없이 자신의 메인 악기로 사용한다. 실례로 팻보이 슬림의 싱글 “Everybody Needs A 303″은 TB-303을 오마쥬한 것이며, 그의 리믹싱 앨범 On The Floor At The Boutique에 수록된 트랙 “Elightenment”에서는 마치 록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라이브 때 긴 시간동안 솔로 애드립하듯이 303 루프의 모듈레이션이 펼쳐진다.

레이브(Rave):레이브는 단순한 의미로 다수의 사람들이 밤새도록 즐기는 ‘올 나이트 댄스 파티’이다. 하지만 레이브는 ‘밀실-클럽-거리-야외(자연)’로 공간을 확장해 가며, 단순한 파티를 넘어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평가받는다. 초기에는 ‘엑스터시’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해 정부 당국이 탄압케 하는 빌미를 제공했지만, 현재는 ‘No Drug/Alcohol’의 슬로건으로 모든 이가 즐기는 축제로서 자리매김한다.

테크노는 레이브의 주요 테마 송이며 실질적으로 테크노의 액트는 레이브에서 발현된다.즉 록이 공연장에서 호흡되듯이 테크노는 DJ의 디제잉으로 레이브에서 표현된다. 레이브의 비공식적 신조는 ‘평화, 사랑, 결속, 존중(PLUR: Peace, Love, Unity, Respect)’으로서, 음악을 통한 정신과 육체가 정신과 육체가 자유롭게 되는 단합적 상태를 지향한다(레이브는 일반 라이브 문화의 뮤지션과 팬의 일반적인 관계와는 다르다. DJ와 청중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며, 서로가 주체이며 객체가 된다. DJ와 청중은 서로 상호작용하며 청중은 보다 능동적이고 참여적이다).

출처불명

하우스와 애시드하우스의 생성과 발전에 관해서는 아래 영상을 참고하면 좋다

각종 장르 설명

다음은 음악전문 도서출판 꾼의 브리티시 모던 록과 Hot Music 1996년 6월의 내용중 일부입니다

1. Ambient

70년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가 만들어낸 장르로써 90년대 들어 다시 관심을 끌고있다. 거의 명상음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음의 변화가 적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일관 하는데 이런 사운드는 청취자의 취향에의 잠재의식 속의 어두운 일면과 청자들의 청력을 몇시간동안 차지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뮤지션으로는 Brian Eno, Aphex Twin, Orb등이 있다.

2. Arsequake

87년에서 83년의 브로드 바톰드 브레이스(Broad-Bottomed Brace)로 지칭된 그룹들, 즉 The Young Gods, Big Black 이 그 대표적인 부류이다. 극단적인 기계음과 강렬한 비트, 기괴함을 주무기로 하는 헤비 록을 추구한다.

3. Baggy

황량한 인디 현상을 내포하고 있는 음악 부류로서 이펙트 페달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노래로 구성되어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드러머의 백 비트가 어우러진다. Shoegazing이 중산층을 겨냥한 음악가라고 한다면 Baggy는 명백히 노동자 계층을 위한 음악 분야이며 동시에 침체된 분야라 할 수 있다. The Stone Roses, Happy Mondays, Charlantans, Blur 등이 이에 속한다.

4. Drip Rock

Stephen ‘Tin Tin’ Duppy, Prefab Sprout, Felt, Aztec Camera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분야로 이 장르의 음악에는 여러가지가 복합되어져 있지만 대체적으로 싱어로 꽉 채운 듯한 음악과 로맨틱스럽게 꾸민 듯한 풍이 얽혀 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5. Dub

레게 음악과 트립 합의 중간쯤 된다고 할까? 세상에서 가장 환상에 잘 빠져들게 만들어주는 장르로 살인과 같은 세상의 여러 추악함을 잊게 해준다. 이 분야의 음악이 긍정적으로 적용할 때는 듣는이의 머리 속을 재정리 할 수 있게하지만 부정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치 마약과도 같은 이 음악의 대표 밴드로는 Tortois가 있다.

6. Glam Rock

David Bowie, Marc Bolan 으로 대표되어지는 음악 장르로 기괴한 분장과 화장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며, 70년대 초반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뒤에는 Wizzard, The Sweet, Gary Glitter, The Bay City Rollers등이 활동했는데 이들이 노쇠함에 따라 점점 사그라 들어가고 있다.

7. Indie Rock

펑크 록이 인디 레이블에서 발표되면서 대규모 레코드사나 거창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은 7인치 레코드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런 소규모 레코드 회사들이 인디 록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인디 록은 어떤 형태로든 메이저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인디 록이라고 할 수 없다. 요즘의 인디 라는 것은 찢어진 청바지와 가죽 옷을 몇년동안 입고 싸구려 맥주를 플라스틱 컵에 마시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표 밴드를 꼽는다는 것이 무의미하나 어떤 잡지에서는 스톤 로지스를 최고로 꼽고 있다.

8. Jungle

계속되는 음악의 발전은 특히 댄스 음악의 분야에서 그 강세가 돋보이는데 레이브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인 정글은 BPM 250 이상의 극단적인 빠름과 일정한 포인트음의 딜레이 효과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미 외국에서는 중요 장르로 자리집은 만큼 그 파급 속도가 빠른 이 장르에는 Goldie 라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이 있다.

9. Merseybeat

초기 레코드사의 횡포가 점차 심해지는 가운데, 리버풀은 비틀즈의 성공이후 즉시 여타 밴드들로 꽉 채워졌다. 그 결과 Gerry & The Pacemakers, Billy J.Kramer & The Dakotas 등이 머시비트류로 구분되어졌다. 이 장르는 로큰 롤과 재즈의 한 형태인 스키플(Skiffle), 컨트리적인 하모니가 조화된 장르로서 블루톤스(Bluetones), 라스(Lars), 캐스트(Cast) 등이 이 장르의 인물로 분류된다.

10. New Romantics

60년대 초반 처음으로 시작된 이후 상류층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이 패션으로 발달된 장르이다. 그후 Spandau Ballet 가 인기를 끄는동안 영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18세기의 댄디나 공립 학교 학생들처럼 보일 정도로 이 장르의 인기는 대단했다. 깔끔하고 귀족적인 외모와 낭만적인 멜로디, 퇴페적인 분위기로 한 시대를 풍미 했었다. 대표 밴드로는 Abc, Duran Duran, Japan 등이 있다.

11. New Wave

70년대 말 한창 득세하고 있던 펑크는 그 과격함과 무례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하였고, 세상은 펑크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달리 많이 변했다. 사람들은 좀더 살기 좋아짐에 따라 듣기 좋은 것을 찾기 시작했고 그런 취향에 편승해서 아름답고 편안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들이 등장했다. 이 장르에는 XTC, The Knack 등 우리 귀에 친숙한 밴드들이 많이 들어 있다.

12. Pub Rock

주로 퍼브 록이라는 말은 주로 펑크 록 등장 이전인 70년대 전반에 클럽의 소규모 형태인 퍼브(Pub)를 중심으로 충실한 라이브 활동을 행했던 브리즐린 슈워츠와 독스 디럭스 등을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음악 장르로서는 과거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퍼브에서 연주하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라도 퍼브록커이며, 퍼브록은 록에서 리듬 앤 블루스, 컨트리까지의 음악 장르를 불문하고 펼쳐졌다

13. Riot Grrrl

맹렬 여성 붐과 때를 같이한 페미니즘을 한단계 발전시킨 장르이다. 공격적이고 남자들을 능가하는 펑크에 기반을 둔 강력한 음악이 이들의 특징이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을 대변한 장르로써 음악잡지의 평이나 그 밖의 모든 구속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 음악의 한 사조이다. 대표적인 밴드로는 Hole, Seven Years Bitch, Babes In Toyland 등이 있다.

14. Romo

로모가 로맨틱 모더니즘을 뜻하고 있음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듯이 글램 록과 나르시즘, 뉴 웨이브 등으로 치장하고 싸구려 신서사이저와 값싼 립스틱에 대한 향수 등으로 그 속에 절대성을 내포하고 있다. 짙은 화장과 성을 종잡을 수 없는 외모등은 이들의 커다란 특징이다. 대표 밴드로는 Orlando, Hollywood 등이 있다.

15. Shoegazing

흔히 드림 팝이라고 불리우는 이 장르는 몽롱한 분위기와 퇴페적인 나른함을 특징으로 한다. 노이즈와 멜로디의 결합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이 장르는 My Blood Valentine 이라는 대표적인 밴드를 가지고 있다.

16. Synth Pop

그룹 Cars 와 Gary Numan에 의해 쉽게 유명해진 음악 장르로 신디 팝이 뜻하는 바는 즉 OMD를 의미한다고 할 정도로 OMD는 이 장르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전기타자수들처럼 쇠잔해져가고 있는 이 분야는 현재 샘플러의 활동만이 눈에 보인다. 대표적인 밴드로는 Depeche Mode, Yazoo, Human League, Erasure 등이 있다.

17. Techno

크라프트베르크의 영향하에 원래는 Detroit’s Derrick May, Kevin Saunderson과 Juan Atkins 에 의해서 만들어진 음악이다. 이 장르는 시카고의 하우스 사운드 보다도 더 최면적이며 반복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요즘 거의 모든 전자 음악에 이용되어지고 있는 음악의 분야이다.

18. Trance

엔지니어 혹은 컴퓨터 음악을 하던 이들이 클럽에서 당시 유행하던 터크노 같은 음악보더 좀더 공격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것이 시초가 되었던 이 장르는 듣는 와중에 사람의 정신을 빼놓은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대뵤적인 밴드로는 Chemical Brothers, 808 State 등이 있다.

19. Trip Pop

흔히 브리스톨 사운드로 불리우는 이 장르는 최근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장르이다. 테크노와 엠비언트, 60년대의 블루스, 재즈에 힙합 리듬이 섞인 이 장르는 퇴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로 음악 팬들을 사로 잡으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브리스톨 3총사로 불리우는 Massive Attack, Tricky, Postishead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20. Hardcore Punk

하드코어 펑크의 시초는 77년, 스토이크온 토렌트 결성을 모태로한 디스체야지의 앨범 “Why”부터 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영국의 하드코어 운동에 가세했고, 이어 익스플롭티드의 앨범 “Troops Of Tomorrow”와 버빙검 출신의 4인조 그룹 G.B.H.의 앨범이 이러한 부류에 편승하였다. 84년 카오스 UK가 앨범 “Short Sharp Shock”를 공개했고, 85년에는 Amebix가 앨범 “Arise!”를 내놓아 하드코어 펑크 흐름을 계승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형성은 점차 메틀 사운드가 가미되면서 구체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86년에는 Conflict가 앨범 “The Ungovemable Force”를 발표하면서 주류를 형성하였고, 87년에는 네이팜 데스가 앨범 “Skam”을, 89년에는 스나이프가 동명 타이틀 앨범을, 88년 Heresy가 “Voice Your Opinion”으로 91년에는 Extreme Noise Terror가 강력한 하드코어 사운드가 깃든 앨범으로 주목 받는다. 그러나 하드코어 펑크는 사운드의 극단적인 요소로 인해 더 이상 자리매김 하지 못한다.

http://community.shinbiro.com/@stage/genre/etc.htm#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