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ue Nile / Peace At Last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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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At Last는 80년대 말 감칠맛 나는 소피스티팝의 정수를 선사했던 스코틀랜드 3인조 밴드 The Blue Nile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1996년 6월 10일 Warner Bros를 통해 발매되었다. 데뷔앨범이 1984년, 두 번째 앨범이 1989년, 세 번째 앨범이 1996년에 발매되었으니 각각 5년과 7년이라는 제법 긴 시간의 산고 끝에 탄생한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신디사이저를 주로 사용한 이전 두 앨범과는 달리, Peace at Last 는 주로 폴 뷰캐넌의 어쿠스틱 기타가 주도했다. 리드 싱글 Happiness 에서는 가스펠 합창단이 잠깐 등장한다.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 프론트맨 폴 뷰캐건을 비롯한 멤버들이 블루나일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는 작업이 너무나 어려웠고 그마저도 상업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나타났기에 겪어야 했던 그 고통을 이 앨범에서 일종의 한풀이 차원에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러다보니 앨범 제목은 ‘마침내 평화(Peace At Last)’이고 첫 번째 트랙의 제목도 ‘행복(Happiness)’. 나머지 트랙들도 종교적 혹은 성찰적인 제목이라 범상치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은 팬들에게도 그렇겠거니와 밴드 스스로에게도 일종의 마음의 치유 작용을 하는 앨범이 아니었을까?

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

어제 Talking Heads의 스탑메이킹센스(Stop Making Sense) 공연 필름을 66인치 TV로 감상했다. 고백하거니와, 나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나는 여태 한 번도 이 필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적이 없었다. 어제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여태 마치 이 필름을 봤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 왜 착각 속에 살아왔는지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아마도 그 공연과 같은 이름의 라이브 앨범은 지겹도록 들었었고, 파편적인 공연 영상도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계속 감상했었기 때문에 나 스스로는 무의식적으로 필름 전체를 봤다고 착각하거나 볼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1 뭐 이제라도 봤으니 됐다.

한편 이 공연 필름에서 밴드의 프론트맨 데이빗번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영매(靈媒, psychic) 혹은 무당과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는 굿을 하다 신들린 무당이나 되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기괴한 춤을 추고 몸을 떨어댄다.2 번은 공연 시작과 함께 붐박스와 통키타로 버스킹을 하는 고독한 방랑자이다. 이후 스탭들이 장비를 옮기며 점차 무대가 만들어지고 멤버들이 속속 등장한다. 이제 그들은 그 동안의 발표곡들을 부르면서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안무와 – 특히 번, 백보컬, 티나 등이 선보이는 개다리춤 – 편집증적인 몸떨림 등을 통해 통상 마초적이고 섹시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락공연과는 다른 토킹헤즈 표 공연을 선보인다.

이 필름이 찬사를 받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카메라의 독특한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카메라는 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통상의 각도와 다른 각도에서 공연자들과 객석을 찍고 있다. 또 강렬한 조명을 통해 무대를 빛과 그림자로 분할하는 등 극적 효과가 시도된다. 공연자들의 클로즈업을 통해 그들이 마치 연극배우인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스티브스케일스나 백보컬 등의 조연의 움직임도 충실히 담아내서 공연의 현장감을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객석은 많이 보여주지는 않지만, 영상 막바지에 관객들의 즐거운 표정으로 춤을 추어대는 모습을 짧게 짧게 보여주며 공연의 양방향성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편 이 공연 필름을 보면서 조금은 마음이 불편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건 “확장한 토킹헤즈”가 되면서 생길 수밖에 없었을3 “오리지널 토킹헤즈”의 위치 설정에 대한 갈등이 영상을 통해 느껴졌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 내몰린 최우선 순위로 여겨지는 멤버는 개인적으로는 제리, 그는 오리지널 멤버 등장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기타를 치며 공연을 시작하지만, 세션뮤지션 알렉스 위어에 밀려 곧 키보드를 맡게 된다. 하지만 건반악기는 버니워렐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4 이렇듯 스탑메이킹센스 필름은 공연 필름의 걸작임과 동시에 토킹헤즈 팬이라면 맥락을 알 수 있을 컨텍스트가 내포되어있는 영상이기도 하다.

이 공연의 감독 조나단드미는 “엄청”까지는 아니지만, 그의 다른 필르모그래피를 통해 접하면서 ‘멋진 감독이구나’라고 늘 생각하고 있던 감독이다. 특히 ‘썸씽 와일드(Something Wild)’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5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감독인가를 잘 알 수 있다. 이토록 천재적인 영화인이 음악계에서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고 있던 밴드의 공연을 필름에 담겠다고 생각했을, 그리고 함께 작업하기로 합의했을 그 상황은 상상만 해도 흥겨운 상황이었을 것 같다. 각자의 분야에서의 천재들이 만나서 협업을 논의하고 마침내 그 결과물이 걸작으로 인정받는 순간. 그런 상황이 스탑메이킹센스에서 실현된 것이다.

  1. 그런데 사실 이런 어이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기억력은 꽤 오랫동안의 고질병이다 ↩
  2. 이러한 안무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Crosseyed and Painless의 뮤비를 찍으면서 접한 댄스팀의 안무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3.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확장된 토킹헤즈와는 멤버가 달라서 또 다른 “확장한 토킹헤즈”이기도 하다 ↩
  4. 그런데 제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지 지금도 토킹헤즈의 유산에 대한 적자 노릇을 하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한 멘탈이다. ↩
  5. 개인적으로는 원작 소설보다 잘 만들어진 흔치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안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한니발 렉터의 첫 등장을 잊을 수가 있을까? ↩

Jerry Harrison / Walk On Water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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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Records., Fair use, Link

Walk On Water는 Talking Heads에서 기타와 키보드를 맡곤 했 Jerry Harrison이 1990년 내놓은 그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앨범은 1990년 미국에서는 Sire Records, 영국과 유럽에서는 Fontana Records를 통해 발매되었다. 앨범의 녹음은 제네바, 파리, 런던, 뉴욕 등 다양한 도시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프로듀서 역시 Jerry Harrison, Ernie Brooks, Dan Hartman, Alex Weir, Bernie Worrell, Tom Bailey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세션맨으로는 모던러버스 및 토킹헤즈 시절부터 우정을 나눠오던 이들이 다수 참여하였다. 프로듀서로도 참여한 Ernie Brooks는 모던러버스의 베이스 주자였다. Bernie Worrell은 토킹헤즈의 다수 앨범에 참여한 키보드 주자다.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이들은 Thompson Twins의 Alannah Currie와 Tom Bailey다. Alannah Currie는 I Don’t Mind라는 트랙의 작곡에 기여했다. 톰 베일리는 앞서 말했듯이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키보드 연주 및 믹싱에도 기여했다. 또 눈에 들어오는 이는 Dan Hartman이다. 단은 I Can Dream About You라는 유명한 히트싱글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이다. 비록 원히트원더이긴 했어도 80년대를 대표하는 강렬한 댄스락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제리는 이 앨범을 위해 직접 곡을 쓰고 – 다른 친구들도 함께 참여하긴 했다 – 노래를 불렀다. 토킹헤즈의 전기에 따르면 제리는 특별히 이 앨범을 위해 보컬레슨까지 받았다고 한다.1 그럴 정도로 이 앨범의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물론 제리는 번과 같은 천재적인 작곡 솜씨나 카리스마 있는 보컬 실력을 갖추진 못했다. 그럼에도 몇몇 곡에서는 번뜩이는 재기가 엿보인다. 예를 들면 네 번째 트랙 Confess는 인트로가 난데없이 Information Society를 연상케 해서 마음에 든다.

제리는 이 앨범의 홍보를 위해 그의 이전 스튜디오앨범의 이름에서 착안한 Casual Gods라 이름 지어진 백업 세션맨들과 함께 공연을 진행했다. 이 공연은 크리스와 티나가 조직한 또 하나의 토킹헤즈의 사이드프로젝트 탐탐클럽과 함께였다. 이들은 로스앤젤레스의 Universal Amphitheatre 등에서 무려 Bonnie Raitt, K.D. Lang 등을 백보컬로 쓰면서 공연을 가졌다. 당시 이들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쪼그라든 머리들(The Shrunken Heads)”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티나는 그때쯤 새로운 토킹헤즈 앨범이 나왔으면 하고 바랬다고 한다.

요컨대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앨범의 전체적인 노래의 톤은 토킹헤즈의 마지막 세 개의 앨범 Little Creatures, True Stories, Naked 등의 톤과 닮았다는 느낌이다. 다만, 아쉽게도 그 날카로움에 있어서는 토킹헤즈의 언급한 앨범보다 딸린다. 요컨대 전체적으로 느슨하고 나른한 느낌의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트랙들로 이루어져 큰 기대도 없지만 큰 실망도 없이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앨범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토킹헤즈의 일원의 작품으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The Smiths / The Smiths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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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miths는 데뷔앨범 The Smiths의 녹음작업을 처음에 런던의 왜핑(Wapping) 지역에 위치한 엘레펀트스튜디오에서 시작했다. 당시의 프로듀서는 소속사 러프트레이드가 선택한, The Teardrop Explodes의 기타리스트였던 트로이 테이트(Troy Tate)였다. 밴드 멤버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가 프로듀싱을 맡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녹음은 뜻대로 잘 진행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는 낙후한 지역인 왜핑에 위치한 열악한 스튜디오의 작업 여건이 한몫했다.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스튜디오는 지하에 있었고 에어컨도 없는 그 곳에서 찌는 듯한 더위에 기타 튜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자니마는 그럭저럭 작업을 해나갔지만, 모리시는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1

그래서 러프트레이드와 밴드는 대안으로 Roxy Music의 2집 For Your Pleasure에서 베이스기타를 담당했었던 존 포터(John Porter)를 선택했다. 모시시가 회고하길 존은 매우 친절하고 이해심이 깊었고 녹음이 어떻게 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좋은 지침이 되는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존이 만든 앨범 The Smiths는 The Smiths답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리시의 사견으로 마이크의 드럼 연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벼락과도 같은 음색이었고 앤디의 베이스 연주 역시 “울려 퍼지는 듯이 자신감 있는(pealing swagger) 연주”였는데, 존의 프로듀싱의 결과물은 창백하고(pasty) 얇았기(thin) 때문이었다고 한다.2 프로듀서가 밴드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편, 자니마의 회고에 따르면 모리시와는 다른 의견과 좀 더 깊은 내막이 있었는데 애초에 러프트레이드와 존 포터는 마이크 존스를 다른 드러머로 교체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니와 모리시는 이를 거절했다.3 어쨌든 자니의 의견으로는 존은 풍부한 경험이 있는 실력 있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에 금방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앨범 제작 과정의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밴드 전체의 실력을 함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4 특히 This Charming Man의 녹음 당시의 결과물에 대해 자니는 존의 실력을 극찬했는데5 모리시의 냉소적인 의견과는 완연하게 다른 의견이었다.

어쨌든 모리시의 불만과 별개로 앨범은 상업적으로는 무척 성공적이었다. 앨범은 당시 영국 차트에서 2위까지 올랐는데, 당시 1위는 Thompson Twins의 Into The Gap이었다. 이 앨범은 Hold Me Now와 Doctor! Doctor! 등이 인기를 얻은, Thompson Twins의 매력적인 뉴웨이브 사운드의 정점을 찍은 앨범이었다. 한편 밴드의 앨범이 1위까지 오르지 못한 이유에 대한 좀더 가슴 아픈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다. 모리시의 회고에 따르면 러프트레이드의 Richard Boon이 모리시에게 “우리가 1위를 할 수도 있었는데 카셋테잎을 때맞춰 찍어낼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6 결국 소속사가 차트 진입의 요령은 아는데 그렇게 할 의지가 없었다는 업계의 비밀을 소속사 뮤지션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Side one
No. Title Length
1. “Reel Around the Fountain” 5:58
2. “You’ve Got Everything Now” 3:59
3. “Miserable Lie” 4:29
4. “Pretty Girls Make Graves” 3:44
5. “The Hand That Rocks the Cradle” 4:38
Side two
No. Title Length
6. “Still Ill” 3:23
7. “Hand in Glove” 3:25
8.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3:51
9. “I Don’t Owe You Anything” 4:05
10. “Suffer Little Children” 5:28
Total length: 42:55
US LP/cassette and UK cassette
No. Title Length
6. “This Charming Man“ 2:41
Total length: 45:36
  1. Set The Boy Free, 174p ↩
  2. 모리시 회고록, 159쪽 ↩
  3. 물론 모리시와 자니는 마이크와 앤디를 신뢰했지만, 그들을 밴드의 창작 활동에 동일한 기여를 하는 동료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모리시와 자니는 이 즈음에 이미 밴드 멤버들 사이의 이익 분배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주장에 따르면 마이크와 앤디에게도 이에 대해 협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인된 문서가 없었고 후에 이는 멤버들 간의 법적 논쟁의 씨앗이 된다. ↩
  4. Set The Boy Free, 174p ↩
  5. Set The Boy Free, 182p ↩
  6. 모리시 회고록 160쪽 ↩

Music Is the Weapon

Talking Heads와 Brian Eno가 많은 영향을 받았던1 나이지리아 뮤지션 펠라 쿠티(Fela Kuti)의 삶에 관한 1982년 다큐멘터리다. 작품의 제목에서 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이 작품은 펠라 쿠티의 음악, 특히 투쟁을 위한 무리로서의 음악에 대해 다루고 있다. 1982년 나이지리아의 수도 라고스에서 그의 전성기 시절 촬영된 이 다큐멘터리는 펠라 쿠티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 범아프리카주의, 음악,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자세히 담고 있다.

쿠티는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맑시즘도, 레닌이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고, 아프리카주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 그는 등과 엉덩이에 남은 채찍 고문 자국을 보여줘 아프리카에서는 아무리 명망있는 뮤지션이라 할지라도 일상이 고통임을 알려주고 있다. 음악 다큐멘터리인 만큼 그의 공연도 알차게 담겨져 있다. 작품에서는 그의 각종 공연 영상, 공연 중 진행되는 종교적 의식, 공연을 위해 댄서들이 분장하는 모습 등도 담고 있다. 또한 ‘ITT’, ‘Army Arrangement’, ‘Power Show’ 등 당시까지의 미발표곡도 수록되어 있다.

  • 감독 : Jean Jacques Flori / Stephen Tchal-Gadjieff
  • 발표연도 : 1982
  • 러닝타임 : 53분
  • 제작국가 : 프랑스
  • 언어 : 영어
  1. 특히 Remain in Light을 만들면서 밴드는 펠라 쿠티 특유의 아프로비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

Down by L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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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Jim Jarmusch)의 1986년 작이다. 사실 짐자무쉬 영화에서 엄청나게 정교한 설정과 시나리오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조금 심하다. 디스크자키, 포주, 이탈리아인이 한 감방에 갇혔다가 탈옥해서 각자의 길을 간다는 버디/로드 무비 장르의 이 영화는 예의 짐자무쉬의 다른 영화처럼 뉴올리언스와 고독함과 톰웨이츠의 음악을 찬양하는데, 다 좋은데, 개연성 등에서 어색한 부분이 많다. 결정적으로 세 죄수가 운동을 하러 나가는 그 씬 이후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갑자기 지하도로 탈출하는 씬이 등장한다. ‘뭐지?’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로 맥락 없는 그 상황에, 대체 탈옥 계획을 꾸민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다른 설득력 있는 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그냥 셋이 탈옥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관객에게 ‘그냥 이러저러 여차저차 설명은 조금 귀찮고 일단 탈옥했다 치고’가 짐자무쉬의 화법이다. 그렇게 해서 ‘천국보다 낯선’의 죄수 버전이, 리믹스 버전?, 완성된다. 다 보고나서 ‘전에 봤던가?’라는 미시감(jamais vu)이 들었지만, 그런 느낌이 들든 안 들든 크게 중요한 느낌은 아닌 그런 영화였다.

Videod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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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가 감독한 1983년작 호러 필름 비디오드롬(Videodrome)은 어릴적 소위 아는 사람들만 찾아본다는 “컬트영화” 장르의 걸작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한번 찾아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늘 거의 한 30여년 만에 다시 보는 것 같다. 줄거리는 거의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직도 뇌리에 남았던 장면은 비디오테잎을 주인공 Max Renn의(James Woods) 갈라진 뱃속으로 집어넣는 장면이다. 비디오드롬의 정치적 목적의 실행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비디오테잎을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방영하는 방송국의 사장 Max의 배에 집어넣는다는 설정이었는데 여태 내 뇌리에 비디오드롬이라는 영화를 각인시켜준 장면이 되어왔던 것이다. 다시 보니 정치비판적 메시지가 상당히 담겨져있었다. ‘미국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스너프 필름을 방송 채널을 통해 상영하겠다’는 음모는 어찌 보면 극단적 사상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포되고 이것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예언한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은 여주인공 니키 브랜드 역을 Blondie의 리드 보컬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가 맡았다는 점이다. 극 중에서 노래를 한달지 하는 가수로서의 맛뵈기로 출연한 것이 아니라 본격적인 연기를 도전했고 썩 훌륭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디페쉬모드의 성장 과정과 그룹 결성

다음은 딜런존스(Dylan Jones)의 Sweet Dreams : The Story of the New Romantics에서 Depeche Mode에 관한 이야기를 발췌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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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hphoto – 자작, CC BY-SA 4.0, 링크

Stephen Dalton(저술가) : 빈스 클락(Vince Clarke)은 송라이터였고 소리 제작의 뒤에서의 추진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줍어하는 프론트맨이었어요. 하루는 데이브 간(Dave Gahan)이 보위의 “영웅들”을 학교 연습실에서 부르는 것을 듣고 그에게 자신의 그룹에서 노래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262쪽] 디페쉬모드의 창립 멤버들은 모두 노동계급의 동네에서 종교적인 가족 속에서 자랐죠. 고어와 간은 당시 계부의 슬하에서 컸어요. [중략] 그들은 글램락과 쏘울을 들으며 자랐어요. 데이빗 보위(David Bowie), 게리 글리터(Gary Clitter), 스팍스(Sparks), 크래프트베르크(Kraftwerk). 그러나 펑크가 배질던(Basildon)을 강타하자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새로운 염가의 신디사이저들 덕분에 제한적인 음악적 능력을 갖춘 노동계급의 십대들이 갑자기 예술적이고 아방가르드한 팝을 만들게 된 거죠.[262-263쪽]

Martin Gore : 우리에게 신디사이저는 펑크(punk) 악기였어요. 즉각적이고, DIY(do-it-yourself) 도구였어요. 왜냐하면 그건 여전히 새롭고 한계가 없을 것 같은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죠.[262쪽] 나는 정말 배질던이 싫었어요. 거기서 하루빨리 탈출하고 싶었죠. 밴드에 들어가는 것이 일종의 도피였어요. [263쪽]

Dave Gahan : 난 그저 주목받고 싶었어요. [중략] 하루는 경찰차가 집밖에 섰어요. 엄마가 “너한테 온 거야?”라고 물었고 나는 “네.”라고 대답했죠. [263쪽] 솔직히 말해 음악이 날 구원했어요. The Clash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죠. ‘나도 할 수 있어.’ 난 언제나 늘 과시적인 사람이었어요. 아주 어릴 적에 이모들이 오면 믹 재거나 게리 글리터를 흉내내며 엄마를 즐겁게 해줬었죠. [264쪽]

Andy Fletcher : 우리는 열한 살 때부터 매년 거대한 크리스찬 락페스티발이 열리는 그린벨트에 가곤 했어요. 사실 거기서 U2를 1980년에 한 번 봤어요. 솔직히 그건 교회와 음악의 사회적 영향력보다 더 컸죠. 그건 엄청나게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었어요. 그리고 배질던은 할 게 없었어요. 차를 훔치거나 교회에 가는 것 빼고는.[264쪽]

요즘 보는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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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BO – http://www.impawards.com/tv/succession_ver2.html, Fair use, Link

요즘 쿠팡플레이에서 석세션(Succession)을 보고 있다. 어제 시즌 2의 첫 번째 에피소드를 봤다. 로간 로이(Logan Roy)라는 독재적인 성향의 인물이 일군 미디어제국의 권력이 그의 자식들로부터 도전을 받는 시점부터 시작하는 작품인데, 유명한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일가의 실제 모습을 많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루퍼트 머독 일가는 석세션처럼 지금도 치열하게 권력 투쟁 중이다) 공간적 배경인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뉴욕 맨해튼을 묘사하는 차가운 톤의 역동적 촬영이 극에서의 냉정한 인간관계와 잘 어울려 재밌게 보고 있다.

어쨌든 자본은 지금은 각종 엄밀한 법률적 장치와 절차에 의해서 그 지분(equity)이 합리적으로 통제받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이 작품을 보면 사실은 그 자본 안에서는 여전히 봉건적이고 매우 인간적인 (도덕적이거나 합리적 우열을 가리려는 호불호에 상관없이)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듄과 같은 초미래의 시대를 설정한 작품에서조차 그러하듯이 여전히 권력 내에서의 작동 기제는 중세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는 권력에서의 그것이 그러하듯이 협잡과 윽박지름과 합종연횡의 줄타기를 통해 관철되고 있다. 한마디로 기싸움이다.

로간 로이 역의 브라이언 콕스(Brian Cox)는 제이슨본 시리즈의 본아이덴티티(The Bourne Identity)에서 악역으로 출연하였을 때의 연기로 인상이 깊었던 배우인데, 막무가내 재벌 1세의 캐릭터가 너무 잘 어울리는 배우다. 로간에 대항해서 열심히 반항하는 아들 켄달 로이 역의 제레미 스트롱(Jeremy Strong)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애사심에 아버지에 대항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억제할 수 없는 권력에로의 본능을 드러내는 뽕쟁이 재벌2세의 캐릭터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이외의 조연들의 호연도 극을 재밌게 감상할 수 있는 매력포인트다.

그중 특히 흥미로운 캐릭터/배우는 권력 의지 없는 맏형 코너 로이(Connor Roy)역의 앨런 럭(Alan Ruck)이다. ‘어디서 많이 봤다’ 생각하며 보다보니 알아차린 건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80년대 코미디 ‘페리스의 해방’에서 역시 삶의 의욕이 없는 부잣집 외아들 캐머런 프라이(Cameron Frye) 역으로 – 의욕 없는 부잣집 아들 역이 종특? – 나온 배우다. 아버지의 재력에 빌붙어먹는 한량이 현재까지 본 중 딱 한번 좌파 상원의원인 길 이비스(Gil Eavis)를 만나 적대감을 드러내며 권력의지를 드러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

Nu Shooz / Poolsid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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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Atlantic Records., Fair use, Link

Nu Shooz라는 밴드가 있었다. 아마도 ‘새 신발(New Shoes)’를 폼나게 표현한 밴드명이 아닐까 싶다.1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은 원히트원더(one-hit wonder) 밴드로 기억하지만, 의외로 이들은 1982년 Can’t Turn It Off를 시작으로 2016년 Bagtown에 이르기까지 일곱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은 나름 장수 밴드다. 우리의 시야에서는 사라졌지만, 나름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한 끈기있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쨌든 그들의 최고 히트 싱글은 I Can’t Wait고 그 노래가 수록되어 있는, 그들이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은 지금 소개하는 1986년 작 Poolside다.

위키피디어는 이들 음악 장르를 프리스타일(Freestyle)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프리스타일 또는 라틴 프리스타일은 주로 흑인 미국인, 히스패닉계 미국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이에서 뉴욕 대도시권, 필라델피아, 마이애미 에서 등장한 일렉트로닉댄스 음악의 한 형태다. 중요한 선구자로는 Planet Rock을 내놓은 Afrika Bambaataa와 Let the Music Play를 내놓은 Shannon이 거론되는데, 대충 겹치는 이미지가 있다. 인종적으로 섞여 음악적 교류가 잦은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브레이크댄스 팬들이 춤추기에 알맞은 신디싸이저가 주조를 이루는 댄스음악이 인기를 끌었고 이를 프리스타일로 범주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Nu Shooz는 뉴욕의 반대편인 서부에 위치한 오리건주의 포틀랜드 출신이다. 주류 음악의 본거지와 거리가 멀다보니 이들의 성공 경로는 제법 험난했다. 1985년 I Can’t Wait를 발표했고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전국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노래가 네덜란드에 수출되고 거기서 리믹스 버전이 만들어졌고 “Dutch Mix”라 알려진 이 버전이 아틀랜틱레코드사의 귀에 들려 레코드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Poolside에 수록된 우리가 알고 있는 버전은 오리지널보다 도입부가 보다 더 매력적인 Dutch Mix 버전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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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 screen cap from a Miami Vice episode, Fair use, Link

이들의 음악이 지역적으로 어디와 가장 잘 어울릴까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고향 포틀랜드도 아니고 프리스타일의 본고장 뉴욕도 아니고 바로 풀사이드라는 앨범명이 가장 잘 어울리는 따가운 햇볕이 이글거리는 마이애미다. 80년대 미드 마이애미바이스에서 주인공 크로켓(Crockett)과 텁스(Tubbs) 형사가 풀장이 딸린 대저택에 살고 있는 악당을 찾아갔을 때에, 풀사이드에서 선탠을 즐기며 이들을 무심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비키니 차림의 미녀들을 줌인할 때 배경음악으로 쓰면 딱 좋을 스타일이다. 동북쪽 끝에서 탄생한 장르를 활용해 서북쪽 끝에서 만든 음악이 서남쪽 끝 스타일의 음악이 된 셈이다.

앨범에서는 역시나 스티비 닉스의 1986년의 히트곡과 같은 이름의 I Can’t Wait가 가장 매력적인 곡이지만, 두 번째 싱글로 내놓은 Point of No Return도 나름 매력적인 곡이다. 어떤 면에서는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섞인 보컬 Valerie Day의 매력이 이곡에서 더 두드러지는 느낌이다. 재밌게도 I Can’t Wait처럼 Point of No Return도 같은 제목으로 80년대 한번 더 히트를 기록하는데 1987년 Exposé가 발표한 동명의 히트곡이 있다. 또 하나 맘에 드는 점은 이 히트곡이외에도 나머지 트랙들도 꽤 준수한 수준의 곡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AllMusic은 이 앨범에 별 네 개 반을 선사했다.


I Can’t Wait 무대 공연 영상. 영상 시작 부분에 난데없이 Patsy Kensit이 등장한다. 막 인터뷰를 마치는 시점에서의 장면인 듯.

  1. 생각해보니 케이팝 걸그룹 뉴진스와 이름이 비슷하다 ↩
  2. 편곡이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가 하는 것은 A-ha의 Take On Me의 초기 버전과 이후의 버전을 들어보면 잘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