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le Fountains의 1985년 2집인데 불과 1년인데 스타일의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1집이 – 후배이긴 하지만 – Belle & Sebastian의 스타일이 연상된다면 2집은 좀더 하드한 초기의 Simple Minds가 연상된다. 두번째 트랙 Stole The Love는 심플마인즈의 곡이라고 말해도 깜빡 속을 것 같다. 세번째 트랙 Jean’s Not Happening은 언뜻 또 다른 후배 뮤지션이 생각나는데 The Lightning Seeds. 우연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 이 앨범의 프로듀서가 바로 LS의 Ian Broudie. 한편 네번째 트랙은 느닷없이 샤우팅 창법의 쏘울 넘버인 Bicycle Thieves. 마지막 곡 September Sting은 컨트리곡!
각각의 곡으로 보면 즐기며 듣기에 손색이 없지만, 무언가 앨범의 통일성은 – 굳이 컨셉트 앨범이 아닐지라도 – 느껴지지 않는다. 1집에서는 밴드가 프로덕션과 앨범 커버 디자인 등에 대해 전권을 가진 것 같았는데 이 앨범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 1집의 신통찮은 판매고든 다른 이유든 – 많이 통제권을 뺏긴 느낌이고 음악도 그렇고 앨범 커버도 산만하기 그지없다. 커버 가운데 딱 박힌 밴드의 로고 디자인은 너무 촌스럽다.
다른 수록곡을 한참 뛰어넘어 앨범 타이틀과 동명인 수록곡 ..From Across The Kitchen Table 에 이르러서야 The Pale Fountains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졌던 트럼펫 연주가 다시 전주에 등장한다. 이러한 챔버팝적인 분위기를 조금 더 발전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느껴진다. 그랬더라면 수많은 인디락 밴드가 명멸(明滅)했을 80년대의 치열하고 냉혹한 영국 락음악씬에서 좀 더 긴 수명을 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밴드는 이 앨범을 끝으로 해체했고 프론트맨 Mick Head는 또 다른 컬트 밴드인 Shack을 결성한다.
Miami Vice는 뛰어난 외모와 수려한 패션감각을 지닌 흑인과 백인 두 민완형사가 스포츠카를 타며 마이애미의 악당들을 일망타진한다는 다분히 비현실적인1 남성들의 로망을 드라마로 만들어 인기를 끌었던 미드 시리즈다. 수많은 화제를 낳았던 시즌 1을 1985년 5월 끝낸 후 제작진은 곧바로 같은해 9월 시작한 시즌 2를 시작했다. ‘The Prodigal Son’이라는 제목의 시즌 2의 첫 에피소드는 시청자들이 마이애미바이스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는지 남미에서, 마이애미, 그리고 뉴욕에 이르는 다양한 장소에서 게릴라와의 갈등, 비키니 선상파티, 뉴욕 거리에서의 원나잇스탠드 등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에피소드 길이도 2시간짜리로 편성하여 폭넓은 스토리라인을 엮어낸다.
소개하는 영상은 이러한 긴 상영시간 덕분에 적잖은 시간을 할애해 주인공 소니 크로켓(Sonny Crockett)이 뉴욕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을 연출한 영상이다. 배경음악으로 쓰인 곡은 글렌프레이(Glenn Frey)의 You Belong To The City. 인상적인 색서폰 연주로 시작해서 도시의 고독한 삶들을 노래하는 이 곡은2 바로 마이애미바이스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곡이다. 녹음은 1984년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워낙 곡도 뛰어났고 마이애미바이스도 인기있는 시리즈였기에 이 곡은 빌보드핫100 차트 2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었다.
싱글 B면 수록곡은 Smuggler’s Blues인데 마이애미바이스 팀은 아예 시즌 1에 이 곡을 소재로 한 같은 이름의 에피소드를 제작했고 글렌프레이가 직접 마약거래상을 위해 미국에서 남미로 넘나드는 비행기의 조종사 역으로 출연하여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야말로 마이애미바이스가 사랑한 뮤지션인 셈. 어쨌든 영상에서 쏘니는 동료 리코와 옛애인과의 만남을 뒤로 한채 뉴욕 거리에 홀로 나와 방황하는 중이다. 여기에는 80년대 뉴욕의 각종 이미지가 쏘니를 스쳐 지나간다. 곡은 에피소드의 길이가 충분한지라 거의 1절을 다 소화할 길이였다. 당시 시청자들은 이 에피소드를 보고 다음날 레코드가게에 달려갔을 것이다.3
이러한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세팅과 80년대 뉴웨이브 음악의 전면적인 배치 덕분에 2000년대 Synthwave 뮤지션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
언젠가 보유한 시디를 대거 당근에 방출할 때 Scarlett & Black의 앨범도 같이 팔았는데, 그 후에 음원을 떠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다시 시디를 사야 하나 고민중(결국 discogs에서 구입). SoundCloud에 그들의 히트곡 You Don’t Know의 Extended Mix 버전이 올라와서 공유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Tears For Fears의 곡으로 착각한 곡.
The Pale Fountains의 음악이 여타의 쟁글팝(jangle pop) 뮤지션의 음악과 달리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들의 트럼펫, 플룻 등의 관악기 사용이라 생각한다. 이 악기 구성은 보컬 Mick Head의 허공에 읊조리는 듯한 하이톤 보컬과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이러한 어쿠스틱 사운드는 Burt Bacharach, Love, Bossa nova 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적고 있다.
음반의 수록곡을 감상하고 있다보면 묘하게 겹치는 뮤지션이 있는데 후배 뮤지션인 Belle and Sebastian이다. 아마도 이들 음악의 교집합으로 앞서 언급한 Burt Bacharach가 발전시킨 영국에서의 챔버팝(chamber pop) 스타일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Mick의 보컬과 Belle의 Stuart Murdoch의 보컬이 가녀린 하이톤이라는 점도 비슷하다.(굳이 따지자면 Mick의 보컬이 좀더 파워풀하다)
1985년에 스미쓰가 발표한 ‘육식은 살인이다‘ 커버. (1) 같은 모노톤 (2) 타이틀을 세로로 배치한 점 (3) 등장인물이 군인이라는 점이 닮았다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Rough Trade., Fair use, Link
앨범 커버는 당시 영국에서 같은 시기 활동한 The Smiths의 모노톤 커버 아트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제3세계의 저항군과 같은 느낌이 드는 이 청년의 표정은 사뭇 비장해 그 사연이 궁금했다. 영화의 한 장면인지 아니면 실제 상황의 한 장면인지? 뒤에 서있는 두 남자의 표정도 뭔가에 놀랐거나 불안한 표정이어서 한층 사진에 긴박감이 더 느껴진다. 그래서 인공지능 성능도 테스트할겸 커버의 사연에 대해 챗지피티와 요즘 잘 나가는 DeepSeek에게 물어보았다.
“이 이미지는 The Pale Fountains의 앨범 Pacific Street 커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미지 자체는 종종 예술적이거나 상징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실제 상황을 찍은 사진인지 아니면 영화 장면인지 확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앨범 커버에 사용된 사진은 역사적인 자료나 영화의 한 장면일 가능성이 있으니, 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미지를 제공한 사람의 설명이나 공식 출처를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ChatGPT]
The Pale Fountains의 1984년 앨범 Pacific Street의 커버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실제 상황을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밴드의 리더인 Michael Head와 그의 형 John Head가 어린 시절에 찍은 사진으로, 리버풀의 한 거리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밴드의 리버풀 뿌리와 그들이 자라난 환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로, 앨범의 음악적 정서와도 잘 어울립니다. 앨범 커버는 밴드의 멤버들이 아닌, 어린 시절의 형제 사진을 사용함으로써 독특한 감성과 향수를 자아내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The Pale Fountains의 음악이 지니는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성격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DeepSeek]
질의 결과 챗지피티는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딴데가서 알아보라고 하고 딥식은 마이크 형제의 어린 시절의 사진이라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 진실은 결국 고전적인(?!)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서 알아냈다. 이 커버의 원본은 스탈린주의의 소비에트에 반대하여 봉기한 1956년 헝가리 혁명을 찍은 사진들 중 마리오드비아시(Mario De Biasi)라는 작가가 찍은 한 소년병의 모습이다. 제국주의를 반대했던 사회주의 종주국이 사회주의 형제국(!?)을 침략한 그 비극이 불안한 눈동자에서 느껴진다.
어쨌든 다시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앨범의 베스트트랙은 아무래도 앨범의 두번째 트랙 Something on My Mind다. 누군가가 이 노래를 유튜브에 장폴벨몽도(Jean-Paul Belmondo)와 진서버그(Jean Seberg)가 주연을 맡은 Breathless의 영상에 덧힙여 올려놓았다.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 공유한다. 영상의 댓글에는 그들의 음악이 얼마나 뛰어났는가에 대한 추종자들의 회고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라이브공연을 1984년에 목격한 한 사용자의 댓글이 흥미로워 여기 소개한다.
I remember seeing them live at the Lyceum theatre around 1984 supporting Orange Juice, the show was opened by Black also from Liverpool. The pf were unique, the LP was quite orchestrated, the songs were stripped down to the basics with live trumpet 🎺 and still sounded golden. OJ were cool and funky and this was the best gig to witness in London in 1984.
1984년경에 오렌지 주스를 지원하는 라이시엄 극장에서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공연은 리버풀 출신의 블랙이 오프닝을 맡았습니다. pf는 독특했고, LP는 꽤 오케스트라가 잘 짜여 있었고, 노래는 라이브 트럼펫으로 기본으로 축소되었지만 여전히 황금빛으로 들렸습니다. OJ는 멋지고 펑키했고 이것은 1984년 런던에서 목격할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이었습니다.
Sting만큼 그룹 활동과 솔로 활동에서 모두 엄청난 음악적/상업적 성공을 거둔 뮤지션도 그리 많지 않다. 레게에 기초한 펑크락 밴드 The Police로 다섯 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으면서 내놓은 음반 하나하나 비평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큰 호응을 얻었고 1983년 Synchronicity를 내놓으며 그룹 활동의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 그는 슬슬 솔로 활동을 예열하더니 1985년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를 내놓으며 밴드 리더에서 솔로 뮤지션으로 부드럽게 넘어가 버렸다.
그뒤 2025년 현재까지 열다섯장의 스튜디오앨범을 내놓는 등 – 분량이 밴드 활동 시기의 세배! –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다작 활동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그의 솔로곡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단연 그의 솔로 2집 Nothing Like the Sun의 세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뉴올리언스 출신의 째즈 뮤지션 브랜포드 마살리스(Branford Marsalis)의 쓸쓸한 소프라노색서폰 연주가 곡 전면에 깔리는 ‘뉴욕에서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 을 꼽을 것이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계속 반복되는 – BTS가 주체성을 강조하기 이전에 이미 스팅이 강조하고 있었다 – 이 노래가 만들어진 스토리는 곡의 매력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일전에 트위터에서 누군가 같은 영어권에서 살면서 “I’m an alien, I’m a legal alien”이라고 푸념하는 스팅이 오만하다는 투의 트윗을 해서 다른 이들의 어그로를 끈 적이 있는데 – 지금은 그 트윗을 지웠는지 안보임 – 트위터에서 몇몇이 지적했다시피 이 노래는 스팅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 부분적으로는 자기 이야기기도 하지만 – 그가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영국인 이야기다.
1978년 당시 만담가로 활동하던 그는 뉴욕으로 공연을 위해 떠났다가 아예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뉴욕에서도 저예산으로 제작된 햄릿(1976년)의 배우로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5년 The Bride라는 이름의 고딕로맨스 영화에 잴허스(Zalhus) 박사 역으로 출연하는데2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찰스 프랑켄슈타인 남작 역을 맡은 스팅이었다. 쿠엔틴의 재치있는 입담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스팅은 1987년 쿠엔틴에 관한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을 발표한다.
노래 가사를 보면 곡의 주인공은 뉴욕에 와서도 영국식 습관을 버리지 않는다.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영국식 액센트도 그대로이고, 신사는 절대 뛰지 않고 걷는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이 노래에는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라는 가사가 그의 정체성에 대한 뉘앙스만 약간 풍길 뿐이다. 쿠엔틴은 생전에도 게이 해방운동을 냉소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동성애 자체가 범죄인 영국에서 그가 일종의 생존의 수단으로 냉소주의를 택한 영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하기에 노래는 이방인(지역 혹은 성적정체성)으로서의 주체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냥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한 독특한 이주민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Quentin’s a friend of mine and someone I admire greatly because I think he’s one of the most courageous people I’ve ever met. He has lived his life in an individual way in a society that is vicious and malevolent. But he is a hero in a feminine way. So that’s a song about the feminine qualities than can exist in man without being negative.” “쿠엔틴은 제 친구이고 제가 매우 존경하는 사람인데, 제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악하고 악의적인 사회에서 개인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성적인 방식으로 영웅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부정적이지 않고도 남성에게 존재할 수 있는 여성적인 특성에 대한 노래입니다.” ~ Timeout, 1987년 10월
스팅의 타임아웃과의 인터뷰 중 쿠엔틴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인터뷰에서 스팅은 “게이인 것이 신체적으로 위험한 시기에 그는 화려한(flamboyantly) 게이였고 가장 위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쿠엔틴의 동성애자로서의 혼란과 위험성에 대한 극복 수단은 유머(혹은 냉소)였다. 일종의 생존하기 위한 생계수단이었다. 또한 스팅이 언급하는 바와 같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구분짓지 않기 또한 중요한 태도인데, 이러한 자세가 필요함은 전에 소개한, (역시) 뉴욕에서의 한 게이바의 군무를 묘사한 조잭슨의 Real Men이란 곡에서도 강조하고 있다.
See the nice boys dancing in pairs
Golden earring, golden tan, and blow wave in their hair
Sure, they’re all straight, straight as a line3
All the gays are macho, can’t you see the leather shine?
멋진 남자들이 짝을 지어 춤추는 걸 보세요
금빛 귀걸이, 황금빛 태닝, 그리고 머리카락에 불어오는 웨이브
물론, 그들은 모두 스트레이트합니다. 일직선 춤라인처럼요
게이들은 모두 마초예요, 가죽이 빛나는 걸 못 보나요?
뮤직비디오는 완연한 째즈 풍의 곡에 맞게 뉴욕을 배경으로 인상적인 풍경이 펼쳐지는 흑백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4 지금 봐도 멋진 스타일의 스팅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주인공 쿠엔틴 크리스프가 등장하고, 브랜포드 등 연주자가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교차하지는 않는다. 다들 뉴욕을 배회하는 이방인들일 뿐이다.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브랜포드는 쓸쓸히 홀로 길을 걸어간다.5 이러한 흑백화면의 비디오가 80년대말 여러 인기 뮤지션들의 영상의 트렌드로 쓰였는데 언뜻 생각나는 것은 펫숍보이스와 마돈나다. 이 비디오도 모두 화려하다(flamboyant).
“누가 뭐라든 내 자신이 되라”……. 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주제다.
그는 한 예술학교에서 누드모델로 일했고 급료는 교육부가 지불하여서 결국 자신도 일종의 공무원이라고 쿠엔틴이 비꼬는 투로 표현한 것에서 책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
이 영화에는 또한 Flashdance를 통해 1980년대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러나 이후의 인상적인 필르모그래피를 이어가지 못한 제니퍼 빌즈(Jennifer Beals)가 출연한다고 한다 ↩
조잭슨은 “그래 그들은 다 똑바르지(straight). 줄만큼이나.”에서는 straight의 중의적 의미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고 있다 ↩
National Pastime이라는 이름의 영국 밴드가 1984년 내놓은 Lunacy (Extended Mix)라는 싱글을 감상하고 있다. 이 싱글 앨범은 1984년 발매되었고 이듬해 Built To Break라는 정식 앨범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팝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심지어 영어판 위키피디아에도 정보가 없다. 다행히 페이스북에 이들의 공식 홈페이지가 있어 그곳에서 – discogs와 함께 –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이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어릴 적 일본의 음악잡지에서 이들의 사진과 밴드 이름을 본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적 여가활동’이라는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에 남았던 듯하다.(비슷한 경험으로는 개인적으로는 China Crisis) 여하튼 노래는 상당히 깔끔하게 뽑힌 뉴웨이브 사운드로 앨범 한 장 내놓고 차트 진입도 못 한 채 기억에서 지워질 정도의 밴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페이스북 2년 전 글을 보니 멤버 중 한분도 유명을 달리하신 것 같고. 명복을 기원합니다.
A Lunacy (Extended Mix) 6:20
B1 It’s All A Game 3:50
B2 Built To Break (Trailer Version) 3:061
뮤직비디오를 보니 보컬의 춤사위가 사뭇 격정적이다
이곡이 맘에 들어 이곡을 소개할까 했는데 유튜브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아마 싱글 삽입곡이라 정보가 없는 것 같다 ↩
80~90년대 우리나라에 일렉트로닉 계열이나 인디락 계열의 음반이나 시디는 구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러한 면에서 808 State 의 음반은 더더군다나 눈에 띄지 않았다. 일단 지명도 면에서도 본국인 영국에서도 거물급이라기에는 부족함이 있었고 장르 역시 보컬을 배제한 연주 위주의 애시드하우스여서 메이저장르로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90년대 초반 즈음 압구정역 근처의 한 음반가게에서 이들의 시디를 발견하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그 시디를 구입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들의 음반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ex:el이다. 이걸 굳이 읽으려면 엑셀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 암튼 앨범명부터 조금은 난해한 일렉트로닉 계열의 앨범 이름답다. 앨범 커버아트도 808을 멋지게 디자인하여 배치해놓았다. 앨범은 ZTT 레이블을 통해 1991년 3월 4일 발매되었다. 올뮤직리뷰는 이 앨범이 “힙합과 인더스트리얼을 품은 좀더 강렬한 애시드하우스”라고 평하고 있다.
수록곡은 3분에서 5분 초반대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길이의 13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앨범에는 뉴오더의 버나드썸너와 뷔욕이 객원싱어로 참여해서 각각 1곡(Spanish Heart)과 2곡(Qmart, Ooops)에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즉, 나머지 10곡은 순수한 인스트루멘탈이라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Nephatiti와 In Yer Face다. 여하튼 이 앨범을 통해 808 State는 The Stone Roses, Happy Mondays 등과 함께 이른바 매드체스터(Madchester)라 불리는 90년대 맨체스터 인디댄쓰씬의 정점을 찍었다.
아침 출근길에 요즘 가장 핫한 뮤지션 중 하나인 Dua Lipa가 2020년 내놓은 그의 2집 Future Nostalgia를 감상했다. 이 앨범은 그의 섹시한 외모와 허스키한 보컬이 신쓰웨이브 풍의 레트로한 디스코 리듬과 화학적 결합에 성공하여 팬데믹 시절 공연이 여의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앨범이다. 한편 이 앨범을 감상하며 흥미로운 인물을 한 명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 앨범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Stuart Price다.
스튜어트 프라이스의 이름이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때는 Madonna와 함께 그 유명한 Hung Up을 선보였을 때다. 마돈나라는 레트로한 뮤지션을 레트로한 에어로빅복을 입혀 레트로한 ABBA의 Gimme! Gimme! Gimme!를 샘플링한 곡을 부르게 하여 – 역의 역의 역발상 – 제2의 전성기를 맞게 한다는 시나리오는 좀 과잉설정일 정도로 황당한데 실제로 이 스토리를 성공시킨 이가 바로 스튜어트 프라이스다. 이런 시도는 뮤지션의 미래 – 나아가 음악의 미래 – 를 제시하는 수단이 레트로라는 점에서 이른바 레트로퓨처리즘(Retro Futurism)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1
By Unknown (Name unten links nicht lesbar) – [1], Public Domain, Link 레트로퓨처리즘적인 그림 하나 : 예전 사람들이 상상했던 2000년대
2000년대 즈음하여 1980년대의 신쓰팝을 추종하여 새로운 장르를 실험한 신쓰웨이브(Synthwave)가 바로 이러한 레트로퓨처리즘 노선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80년대 신쓰팝, 유명한 80년대 미드 Miami Vice 등의 오리지널을 가지고 재생속도를 늦춘달지, 의도적으로 비디오 재생이 찌그러지는 화면을 만든달지, 느닷없이 그리스의 조각상이 등장한달지 하는 방식을 통해 그 시절을 추억 – 패러디, 오마쥬, 희화화, 대상화 그 어떤 표현이든 – 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서브장르로서 어느 정도 유명해졌다.
신쓰웨이브가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선데에는 The Weeknd의 공헌이 적지 않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Stuart Price 역시 공헌자로서의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80년대 키드로서 실력을 쌓아 Madonna, Pet Shop Boys, New Order 등 80년대의 적자(嫡子)의 앨범의 프로덕션을 맡으면서 그들과 본인의 커리어하이를 찍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신예 두아리파 역시 그의 손을 빌어 영국 국내용 뮤지션이 아닌 글로벌 댄싱퀸의 자격을 획득했다. 음악인으로서 더 좋을 일이 있을까? 자신이 즐겨듣던 이들의 음악을 배워 다시 자신이 그 스타일로 프로덕션해주고 이를 다시 신예에게 활용하는 경험을 갖는다는 것.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작 스튜어트 프라이스의 활동 중 좋아하는 시기는 그가 직접 뮤지션으로 무대를 뛰던 시기다. 그는 프로듀서로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Les Rythmes Digitales라는 솔로프로젝트로 음악을 만들었고 Adam Blake, Johnny Blake 와 함께 Zoot Woman이라는 3인조를 결성하여 몇장의 음반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주트우먼 시절을 좋아한다. 이들의 컨셉트 역시 레트로퓨처리즘이었다. 2000년대였음에도 일부러 촌스러운 정장 차림으로 80년대 신쓰팝을 재생하면서도 그 이후의 댄쓰팝의 트렌드와의 가교 역할을 한 밴드가 바로 주트우먼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2024년 신보를 내놓는 등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 중인 현재진행형 밴드다.
Duran Duran의 Girls on Film을 오마쥬한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Zoot Woman의 Living in a Magazine 비디오
Future Nostalgia라는 앨범명도 바로 이 Retro Futurism이라는 표현을 달리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Bros가 1988년에 런던에 있는 햄머스미쓰오데온(Hammersmith Odeon)에서 가졌던(지금은 스폰서쉽 때문에 이름이 Eventim Apollo로 바뀌었다고 함) 공연 실황 중에서 When Will I Be Famous? 영상이다. 1집 Push에서 I Owe You Nothing과 함께 가장 인기 있었던 곡 중 하나다. 이 영상은 처음 본 것은 어릴 적 친구가 구매한 공연 레이저디스크로 감상했을 때였는데 기억하기로 이 곡은 전체 공연의 막바지 즈음하여 연주되었었다. 이 영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둘은 (1) Luke Goss가 드럼연주에 심취하여 귀에 꽂혀있던 모니터링 용 헤드폰을 머리를 흔들어 벗겨 버리는 장면과 (2) Matt Goss가 그 장면 바로 다음에 무대 상단으로 올라가 바지를 벗고 관객들에게 자신이 입은 성조기 빤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Crush를 감상하면서 위키피디어를 읽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그룹 멤버들은 앨범 작업을 레이블이 강요한 한정된 일정 안에 마쳐야 했는데 이로 인해 밴드의 의욕이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프로듀서를 맡은 Stephen Hague1의 “매끈한 프로덕션(sleek production)”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흥미로운 이유는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이 앨범에 대한 느낌을 바로 그 단어 하나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끈함’. 그것이 이 앨범의 최고의 미덕이자 최악의 단점일 것 같다.2
OMD는 일렉트로닉 계열에서도 나름대로 실험적인 음악으로 정평이 나있었다.(그중에서도 백미는 1981년 내놓은 Architecture & Morality) 그런데 이 앨범은 첫 트랙 So in Love는 슈가팝 스타일의 감미롭고 “매끈한” 도입부에서부터 그들의 기존의 음악노선에 결을 달리하고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처음 접한 그들의 음악은 Pretty in Pink의 삽입곡 If You Leave였기 때문에3 이러한 크루너(crooner) 스타일의 노래에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실험적인 사운드에 익숙했을 그들의 오랜 팬은 조금은 실망하지 않았을까 싶다.
급기야 밴드의 창설 멤버 Paul Humphreys는 이 앨범을 만들 시기에 잠시 그룹을 떠나기까지 했었다고 하니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앨범이 된 셈이다. 하지만 앨범 작업을 마친 결과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비평은 호의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비평에 동의한다. “실험보다는 춤추기 좋은 일렉트로팝을 강조한다. Crush는 사람을 압도하지는 않지만, 우아함과 재치로 점차 유혹할 것이다.” OMD의 앨범 중 유일하게 빌보드 200의 탑40에 오른 앨범이 되었다. So in Love는 빌보드핫100 차트에 25위까지 오르며 그룹의 첫 미국 시장 히트곡이 되었다.
한편 커버아트를 보며 자꾸 어떤 작가가 어렴풋이 연상되었는데 위키피디어의 설명을 보니 그게 누구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OMD는 애초에 에드워드호퍼(Edward Hopper)의 작품을 커버에 쓰려고 했었다고 한다. 앤디는 호퍼의 멜랑코리함이 앨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쓰고 싶었지만, 사용료가 너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대신 폴슬레이터(Paul Slater)라는 작가에게 호퍼 스타일의 그림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는 호퍼의 Early Sunday Morning (1930)을 흉내내어 작품을 완성했다.
이 프로듀서의 다른 작업을 보니 Pet Shop Boys의 Please, New Order의 True Faith, Communards의 Red 등이 눈에 띈다. 대충 그의 성향이 짐작이 된다 ↩
이러한 상큼한 덕분에(!?) 앨범의 두번째 트랙 Secret은 80년대 당시 국내 한 비타민 영양제의 광고 배경 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
그리고 많은 뮤지션을 파고들 때에 그러했지만, 음반을 거꾸로 후기에서 초기로 찾아듣는 시기를 거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