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Station

요즘 이들의 음악이 좋다. Robert Palmer의 기름진 목소리, 락적 요소가 많이 가미된 연주, 리드미컬한 드러밍. 공연을 보거나 합주를 하면 정말 재밌을 것 같은 곡들을 만들었던 그룹이다. 다시 재결합해서 한국에 공연을 올 수 있을까? 설마~

The Power Station in 1985. L–R: Tony Thompson, John Taylor, Robert Palmer, Andy Taylor
By Brian Aris; Distributed by Capitol Records – ebay, Archive, eil.com, No Watermark, Public Domain, Link

수퍼그룹 Power Station은 Duran Duran의 John Taylor와 Andy Taylor, Chic의 드러머였던 Tony Thompson, 그리고 싱어 Robert Palmer로 구성되었다. 처음에 그것은 John의 아이디어였다. John은 그룹을 조직하기 전부터 Robert Palmer의 친구였고 그의 음악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당초 Power Station에 대한 오리지날 컨셉은 한 앨범에 여러 명의 싱어들이 노래하는 일종의 객원싱어 개념이었지만 단기간내 그런 프로젝트가 성사될지는 미지수였다.

한편 그 당시 John은 연인인 Bebe Buel이 T. Rex의 Bang a Gong (Get It On)을 리메이크했으면 하고 바랬다. 그래서 그들은 그 곡을 훵키버전으로 만들기 위해 Tony Thompson과 합류하였다. 그러나 John과 Bebe가 연인관계가 깨져버려 이는 무산되었다. 한편 John과 Andy는 이미 Some Like It Hot과 Murderess의 데모작업을 진행하였는데 일부 곡의 싱어로 Robert Palmer가 초대되었다. 마침내 Bernie Edwards는 전앨범에 Robert Palmer가 싱어로 참여할것을 제의했다.

1985년 2월 Power Station은 Saturday Night Live에서 데뷔무대를 가졌다. 3월말 Some Like It Hot이 영국챠트에 등장해 14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미국에선 6위까지 올랐다. 앨범은 4월에 영미 챠트에 첫등장하였다. 그리고 이어 6월에는 Bang a Gong (Get It On)을 히트시켰다. 흥미롭게도 미드 마이애미바이스 시즌 2의 두번째 에피소드 Whatever Works에서는 Michael Des Barres가 보컬로 나오는 밴드가 클럽에서 이 곡으로 깜짝 공연을 펼친다. 세번째 싱글은 Murderess였다.

Michael Des Barres의 보컬이 정말 파워풀하다

애초 Power Station은 공연을 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연이은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공연에 대한 유혹은 너무 커져갔다. 그러나 Palmer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연 10일째 되던 날 공연단을 떠났다. 공연투어의 싱어는 Silverhead란 그룹의 싱어였던 Michael Des Barres로 대체되었다. 그 당시 John은 이 프로젝트가 그리 맘에 들지 않았다. 당초 Duran Duran 의 Alter Ego의 개념으로 출발한 그룹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가을에 그룹의 마지막 싱글인 Communication이 발매되었다. 미국에서는 Top 40에 들었지만 영국에서는 75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전작의 성공에 비해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공연도 차츰 시들어졌고 마침내 그룹은 그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John Taylor는 Duran Duran으로 돌아갔지만 Andy Taylor는 솔로 활동을 위해 Duran Duran에 합류하지 않고 Sex Pistols의 기타리스트였던 Steve Jones와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디스코그래피
1985 The Power Station [Capitol]
1996 Living in Fear [Chrysalis]

링크
Fan Page

Nick Rhodes(Duran Duran) 인터뷰 중에서

Do you think DDs music will catch up with the new generations the same way it did back in the 80s?

We are always catching up new people along the way, losing some and adding more. That is the way it goes… The way the music is consumed today in internet and on mobile phones the age of written songs is too old for kids, but young audiences have joined our sounds…. We collaborated with Justin Timberlake by producing Timberland, and these kind of collaborations always enrich each other’s understanding of music, sounds and aud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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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an Duran 블로그에 올라온 Roxy Music DVD 리뷰

One of the most influential bands of all time, Roxy Music gets a well-deserved and expertly produced career retrospective in this new DVD. Originally broadcast by the BBC in late 2008, the documentary covers the entire active recording career of the band as well as their recent reunions. The DVD expands on the original broadcast with nearly a half hour of additional interviews, as well as three previously unreleased live tracks from a 2006 London concert. 전문보기

트위터와 80년대 팝스타들

트위터(twitter)라는 마이크로블로그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당연히 나도 가입하여 재밌게 놀고 있다. 140바이트 이내의 짧은 글을 적으면서 서로 소통하는 이 간단한 이치의 서비스가 현재와 같은 인기를 얻은 데에는 애스톤 커셔,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스타들의 입소문이 단단히 한몫했다. 사람들은 그토록 먼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별들이 자기 옆으로 내가 따르고(following), 재수가 좋으면 그들이 날 따라주기도 하고(followers), 같이 이야기를 나누니 마치 내가 스타의 친구라도 된 것인 양 으쓱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쾌감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트위터의 한 측면일 뿐이다. 물론 그러한 계기로 트위터에 가입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내 트위터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가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면서, 이전의 다른 서비스들(예를 들면 블로그, 메타블로그, 기타 커뮤니티 등)에서 알고 있던 이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의 관계가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기 시작하면서 느끼는 일체감이 서비스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게 된 측면도 매우 크다고 본다. 또한 트위터의 개방성은 여타 관련 서비스들이(예를 들면 사진 올리는 사이트나 인기 트위터러 랭킹을 보여주는 사이트랄지) 같이 인기를 얻게 되었다. 마침내는 트위터의 정치적 프로패건더 기능, 비즈니스 기능의 가능성까지 제시되어 그야말로 지구적 커뮤니티로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스타의 트위터 가입에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과연 이 블로그의 주제인 ‘80년대 팝음악’의 관점에서 볼 때 트위터는 얼마나 80년대 팝음악 친화적(?)일까? 과연 얼마나 많은 80년대 팝스타들이 이 서비스에 가입하여 팬들과 소통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내가 열심히 찾아본 결과로 트위터에 가입한 80년대 팝스타들은 그리 많지는 않다. 가끔 가짜도 있지만 진짜 원조 80년대 팝스타라 확인할 수 있는 이들은 Pet Shop Boys, Depeche Mode, Duran Duran, Beastie Boys 정도다. 이외에 얼마전 Michael Jackson 죽음에 크게 슬퍼한 Lenny Kravitz, 레트로 일렉트로닉을 추구하는 Ladytron, Royksopp 정도가 트위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는 Pet Shop Boys다. 이들은 그들의 공연지에 대한 정보나 그들의 주변일, 심지어 이란 사태에 대한 정치적 입장 등을 트위터 뿐만 아니라 각종 사진정보까지 활용하여 세세하게 팬들과 교류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Duran Duran도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고 있으나 왠지 그들 스스로 올린다기보다는 매니저 혹은 홍보 담당이 글을 올리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머지 스타들도 간간히 글을 올린다.

80년대 팝음악 팬으로서 당연히 더 많은 80년대 팝스타들의 얼굴을 트위터에서 보고 싶은 욕심이다. 개인적으로는 ABC의 Martin Fry, Devo, Talking Heads의 David Byrne(이 이름도 다른 이가 쓰고 있으며 아예 Bio에 not a talking head라고 써있다), Morrissey(이 이름은 수염난 엉뚱한 아저씨가 쓰고 있다. 물론 지 이름도 Morrissey라고 우기겠지만) 등을 트위터에서 보고 싶다. 이들의 과거 이야기, 현재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함께 소통하면 더더욱 트위터의 재미가 배가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p.s. 이 블로그 오른 쪽 하단의 Stars on Twitter 메뉴에서 그들의 트위터 활동이 업데이트되므로 참고하시도록~

WHY SHOULD WE RETIRE?

Roger Taylor - Duran Duran 1983 (cropped).jpg
By Brian Aris; Distributed by Capitol Records – This photo is extracted from a public domain original.eBay, Archive, Archive #2 – listings which shows no copyright markings, on front or back of print.High Res Image, Public Domain, Link

드러머 로저 테일러는 “영감을 받고 청중이 있는 한 포기하거나 은퇴하는 것을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Drummer Roger Taylor said: “I think as long as you’re inspired, as long as you have an audience I don’t see why you should ever think about giving up or retiring.

John Taylor와의 인터뷰

Taylor performing at the O2 Arena in 2023
By Raph_PH – DuranO2_1_010523 (22 of 74), CC BY 2.0, Link

그들이 요트위를 거닐건 또는 그들의 비데오클립 Wild Boys를 위하여 로드워리어처럼 행세를 하건 Duran Duran은 뮤직비데오를 일종의 상상력의 포스트모던 놀이터로 재해석했다. 키타리스트 John Taylor가 어떻게 해서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선구자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회상한다.

VH1: Duran Duran은 처음에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를 꺼려했나요?

John Taylor: 그것은 우리가 원하기전에 이미 존재했었어요. 그러나 그건 대단한 도구였죠. 밴드는 히트곡을 선전하기 위해 전세계를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어요. 그래서 그 비디오들은 미국에서는 효과만점이었죠. 우린 우리가 하는 모든 인터뷰마다 왜 사람들이 비디오에 관해 언급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Hungry Like The Wolf”나 “Rio”같은 노래는 당신들은 비데오로 먼저 접했지요. 그 음악과 비주얼한 면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전의 양면이지요. 그들은 우리가 비디오를 만드느라 몇달을 고생하는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12시간내에 찍을 수 있었죠.

VH1: Duran Duran의 비디오에서의 모습에 영향을 준것은 무었인가?

Taylor: ’80년대 초에 나에게 최고의 비디오는 “제3의 인물” – 오손웰즈의 영화를 말하는듯(역주) – 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천재적인 영화에 경의를 표했었던 Ultravox의 “Vienna”였었어요. 우리는 그러한 방식을 “Hungry Like The Wolf”에 도입했었죠.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이 Apocalypse Now(프랜시스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에 열광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한두가지 아이디어를 따왔어요. 사실 그 노래의 콘텍스트도 거기서 따왔죠.

VH1: Duran Duran은 그런 비디오들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나요?

Taylor: 꼭 그렇진 않아요. 난 음악가이지 영화제작자는 아니니까요. 우린 Russell Mulcahy와 일했는데 그는 뮤직비데오에 관한 책을 썼었죠. 그는 언제나 우릴 깜짝 놀라게 했어요. 그러나 우린 많은 레코드를 만들고 있었어요. 우린 가만히 앉아서 창조적으로 우리 비디오를 만들고 있을 시간이 없었어요. “Wild Boys”는 비디오를 위해 곡을 쓴 최초의 케이스라고 할 수 있네요. 우린 그때문에 Russell과 William Burroughs(네이키드런치의 작가) 의 책 Wild Boys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는 그걸 full-length 의 작품으로 만들기를 원했죠. 그는 그것을 위해 노래 한곡을 쓸것을 요구했죠. 우린 곡을 썼고 그가 그 비데오를 위해 고안해낸 아이디어를 집어넣었어요. 그게 우리가 비디오에서의 모습이 어떻게 될까 생각하며 쓴 최초의 곡이었죠.

VH1: 당신은 MTV가 팝뮤직을 어떻게 변화시켰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MTV 정말 고마워요! MTV는 차트에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를 공급했죠. 젊음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었어요. MTV는 새로운 아젠다를 요구했어요. 왜냐하면 더이상 라디오에서 연주하는 방식으로는 노래를 연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죠. Air Supply나 Christopher Cross의 뮤직비데오에서 그들은 연주는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진 않는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음악을 접해야 했죠. Duran Duran이나 UItravox같은 이들말이죠.(우하~ 뭉게는군요. 못생겼다고…)

VH1: Duran Duran의 성공에 뮤직비디오가 얼마나 기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Taylor: 뮤직비디오는 우릴 수백만의 미국인의 가정에 전파했어요. 그러나 우리 역시 비디오에도 좋았어요 – 자신들이 뮤직비디오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말인것 같음(바보역자주) – . 우린 어떤 밴드가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을 프로모트하는가에 대한 텍스트북 케이스였죠. 그리고 우린 매우 빠르게 진화했어요.

VH1: 뮤직비디오가 그들의 경력에 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뮤직비디오를 거부하는 어떤 행동과 마주친적이 있나요?

Taylor: The Stones, Rod Stewart 또는 David Bowie같이 이미 명성있는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해야했죠. 그러나 만약 당신이 생존자라면 이 새로운 아이디어에 순응하여야 했죠. 비디오를 만들지 않는것은 매우 인디적인 자세입니다. George Michael은 그의 두번째 앨범 제작시 비디오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그걸 만들기 전까지는 누구도 그걸 – 두번째 앨범(?) – 사지않았아요. 누군가 성공을 원한다면 비디오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공을 원하지 않는다면 뭐하러 레코딩 스튜디오로 갑니까?

VH1: 당신들은 “Girls On Film” 비디오가 그렇게 야한 데에 놀라지 않았습니까?

Taylor: 우린 그 비디오의 내용을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만약 우리가 알지 못했다면 매니져라도 알고 있었겠죠. MTV가 일반화되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락클럽이었어요. 우리 비디오 “Planet Earth”와 “Careless Memories”는 잘 나갔드랬죠. 그래서 우린 Playboy와 Hustler가 조우하는 “Girls on Film”을 만든거에요. 찍는것은 끔찍했어요. 재미도 하나 없었어요. 우린 그런 녀석들이 아니랍니다. 그거 아세요? 그러나 발매되자 마자 논란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Thanks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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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뉴웨이브에 관한 Moby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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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kivar (www.alkivar.com) – Transferred from en.wikipedia to Commons. (transferred to commons by Dryke), CC BY-SA 2.5, Link

조류에 거슬러 헤엄쳐 올라가는…. 여러분들은 아마 그의 메가히트곡 Play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Moby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Acid House의 붐에 편승하여 그의 싱글을 내놓았던 전력이 오랜 아티스트이다. 음악 전문가들은 그를 하나의 아티스트로 만들어낸 New Wave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

VH1: 당신은 어떤 밴드가 뉴웨이브로 분류된다고 생각하시나요?

Moby: 그당시에 New Wave와 Punk사이에 엄격한 이분법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Black Flag, Bad Brains, Dead Kennedys는 펑크밴드였습니다. New Order, Depeche Mode, Duran Duran, Flock of Seagulls는 New Wave 밴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Flock of Seagulls, Missing Persons, 또는 the Go-Go’s 등이 생각나네요. New wave는 클래식락과 같은 사운드가 아니면서도 씬써싸이저가 개입된 음악을 추구하는 짧은 머리를 한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을 의미했었죠.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경솔한 정의지요.

VH1: 그런 아티스트들이 어떻게 광범위한 팬층을 형성할 수 있었나요?

Moby: 그건 접근용이성과 멜로디에 관련된 흔히들 하는 질문이지요. The Dead Kennedys는 위대한 노래들을 만들어냈어요. 그러나 펑크는 자세, 에너지, 공격성과 더 많은 관련이 있었지요. 뉴웨이브는 언제나 “귀에 쏙 들어오는(Catchy)” 특징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신이 정말 뛰어난 멜로디에 드럼머쉰과 씬써싸이저를 입히면 새로운 싸운드가 태어나죠. 그러나 결국 요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훅(Hook : Catchy, Groove 등과 함께 우리말로 표현하기 참 어려운 단어중 하나)이었지요.

VH1: 그 당시엔 정말 키타보다 씬써싸이저를 많이들 채용하였나요?

Moby: ’80년대 중반에 키타 연주자와 씬써싸이저 연주자, 그리고 드러머와 드럼머쉰을 조작하는 사람들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죠. 그 당시 음반가게에 가면 아마도 당신은 드러머의 장점과 드럼머쉰의 장점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거에요. 그렇지만 그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없었죠. 그러나 사람들은 정말 심각했어요.

VH1: 전형적인 뉴웨이브 아티스트의 패션은 어떠했죠?

Moby: 헤어젤 또는 헤어스프레이, 얇은 안경, Doc Maartens(Dr. Martens라는 브랜드를 의미하는듯함:역자주), 뽀족한 부츠, Converse(유명한 미국의 스포츠화:역자주), 달라붙는 검은 바지 또는 블랙진 정도가 뉴웨이브 아티스트들의 필수품목이었죠. 1981년 The Specials르 봤던 기억이 나네요. 사람들의 절반은 핑크와 블랙의 컴비네이션을 입고 있었어요. 그때 전 14살이나 15살이었는데 “와우~ 정말 근사하군.”하고 생각했었죠.

VH1: 그당시 팝차트에 머물던 곡들과 얼터너티브락은 어떤 차이가 있었죠?

Moby: ’80년대의 팝차트는 Prince, Michael Jackson, 헤어밴드들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죠. 나중에 얼터너티브락은 Mission of Burma, R.E.M., the Pixies, 그리고 나중에 Jane’s Addiction 등에 의해 등장했어요. ’80년대 헤비메틀은 폭발적이었죠. 드럼은 무슨 폭발음같았어요. 씬써싸이저는 모든 것을 장식적으로 만들었죠. R.E.M.을 듣고 있자면 그건 보다 절제되고 기본적인 맛이 났어요. 키타는 키타 소리가 났었고 드럼은 드럼소리가 났죠. 마치 발가벗겨 진것처럼 말이죠. 1985년에 Husker Du나 R.E.M.은 무명 셔츠와 진을 입고 있었어요. 반면 The Time은 수트를 차려입고 헤어스타일은 무척이나 화려했었죠. 그들 모두가 과도기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면에 하나의 교재였죠.

VH1: ’80년대 말 당신은 익사이팅한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했었습니까?

Moby: 난 어쩌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다는 느낌입니다. 난 코네티컷에서는 14살짜리 펑크락커였고 뉴욕에서는 25살짜리 하우스 뮤직 열광자였으니까요. 많은 것들이 변화했죠. Charles Dickens를 인용하자면 정말 최고의 시대이자 최악의 시대였습니다.

VH1: ’80년대 어떤 유산을 남겼나요?

Moby: 그 시대에 많은 장르들이 탄생했죠. 그러나 그들은 길거리에 내팽겨쳐졌습니다. New Order같은 밴드를 보면 한편으로 New Wave 밴드였고 다른 한편으로 디스코 그룹이었습니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팝그룹이죠. 사람들이 디스코텍에 가서 음악을 듣고 그 노래가 차트에 올라가는 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음악은 실험적입니다. 다행히 그 유산들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 그리고 어떤 장르인지 개의치 않고 이 음악이 맘에 드는지 안드는지 자문하는 방식 등이라 할 수 있죠.

듀란듀란 공연 맛있었다

명색이 80년대 팝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블로그인데도 듀란듀란의 공연 후기가 뒷북성이다. 뭐 사실 시급을 다투는 일도 아니고 꼭 이 글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이도 없을 것이고 이 블로그가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

여하튼 듀란듀란은 80년대 음악을 들었다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꼭 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속된 말로 ‘로망’이라 할 수 있다. 그날 공연장에서 10년 만에 만난 음악평론가이자 영화평론가이자.. 뭐 다양한 삶을 살고 계신 조모씨는 겉으로는 메탈키드의 행세를 하였으나 집에서 몰래 듀란듀란을 듣고 전율했다고 하셨듯이 사실 허다한 여성팬들만큼은 못하겠지만 남성팬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나는 어떤 편이었냐 하면 이 블로그 대가리에 떡하니 불법 이미지를 장식한 모양새에 알 수 있듯이 대놓고 듀란듀란 팬이었다. 그 대신 메탈을 안 들었지. 한 20년간 나름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 그 이유가 둘 다 듀란듀란을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그 녀석 홍콩으로 전근 가는 바람에 듀란듀란 공연 못 볼뻔 했는데 홍콩에서도 공연한다고 신나했다.

서론 길었는데 여하간에 이러한 배경설명이 다소는 필요한 공연이었기에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공연은 작년 런던에서 열린 Pet Shop Boys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전율과 감동을 서울로 옮겨놓은 공연이었다. 둘 모두 칭송하고 존경하고 아껴오던 팀들이고 비록 21세기부터는 다소 챙겨주지 못한 면이 있으나 그 전까지는 한때 B면의 곡까지 챙겨들었던지라 테이프, LP, CD, mp3로나 듣던 곡들을 그렇게 큰 사운드로 듣는 것도 감지덕지할 판에 육성으로 듣다니! 그것도 내 앞에서 그 보컬의 주인공들이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말이다.

스탠딩에 자리 잡고 이리저리 공연풍경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에서 보던 추억을 먹고사는 아줌마 팬들의 모습이 압도적이다.(나는 다소 생뚱맞은 아저씨 팬일 테고) 예의 외국인들도 많이 보인다. 한 백인은 그의 양복 속에 불가사의할 정도로 많은 캔 맥주를 사와서는 동료랑 몰래 나눠 마시고 있었다. 라틴계 애인이랑 같이 온듯한 흑인청년이 있었는데 공연 내내 ‘니들이 음악을 알어?’라는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서있었다. 뭥미?

듀란듀란 멤버들은 오랜만에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서인지(물론 다른 곳에서도 그런 반응을 얻었겠지만 대형 공연에 많이 목말라 있는 우리나라 청중들의 반응은 그보다는 좀 더 오버하는 것 같고 그래서 공연자들이 인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이몬르봉이나 존테일러가 ‘멋지다’는 소리를 연발해가며 공연을 했다. 이런 모양새는 좀 보기 좋은 것으로 공연자와 청중이 궁합이 맞으면 공연이 스무드하고 윤기 좔좔 흐르며 진행될 가능성이 높고 바로 그날의 공연이 그랬다.

개인적으로 뻑간 포인트는 역시 오리지널만큼이나 리믹스 버전도 유명한 The Reflex를 바로 그 리믹스 버전으로 부른 때였다. 물론 그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곡이 폭포수처럼 계속 쏟아져 공연 내내 정신이 혼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물론 조모씨가 말 한대로 오프닝 곡으로 조명 확 켜지며 ‘Please please tell me now’하고 외쳐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여하튼 최근 비욕이나 마룬파이브 등 내가 왜 이런 내한공연이 있는 것에 신경도 안쓰고 있었을까 하는 공연을 몇 개 놓쳤는데 다 못 봐도 아쉬울 것이 없는 공연이었다. 생각같아서는 그들의 공연을 ‘앨범별 공연’, ‘B면곡 공연’. ‘언플러그드 공연’ 등으로 쪼개서 듣고 싶다. 그렇게 해줄 리는 없지만..

아리가또 듀란듀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