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음악과 가수에 대한 사소한 사실들

Flock of Seagulls
Flock of Seagulls은 익조틱한 헤어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룹의 리드싱어는 그룹 조직하기 전에 헤어드레서였다.

Sting
스팅은 Dire Stratits의 Money For Nothing에서 “I want my Mtv” 부분을 불렀다.

Bow Wow Wow
그들은 멤버 한명을 그룹에서 떠나줄것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 직설적이었고 그룹의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Boy George이다.

Johnny Hates Jazz
리드싱어 Phil Thomalley는 The Cure의 초기멤버였다.

Icehouse
그들의 히트곡 Electric Blue는 John Oates가 공동작곡했다.

Wham
그들의 히트곡 The Edge Of Heaven의 피아노는 Elton John이 담당했다.

U2
그들의 최고 히트앨범 The Joshua Tree는 원래 The Two Americas로 이름지으려 했다. 그러나 멤버들이 내쇼날파크에서 여호수아 나무의 사진을 찍은 후 그들의 맘을 바꿨다.

Chaka Kahn
그녀의 최고의 히트싱글 I Feel For You는 Prince가 작곡하였다. 또한 이 곡의 하모니카 솔로는 Stevie Wonder가 소화해냈다.

Madonna
그녀는 1982년 The Breakfast Club이란 밴드의 리드싱어였다.

Robert Palmer
그의 히트싱글 Addicted to Love는 원래 Chaka Kahn과의 듀엣곡이었다.

New Order
그들의 싱글 Don’t Do It의 끝부분에 영화 엑소시스트의 대사 일부분을 백워드하여 삽입하였다.

The Cure
큐어의 키보디스트인 Roger는 한때 Thompson Twins에 몸담았다.

The Police
교사에서 가수로 전업한 스팅이 처음 몸담은 그룹 이름은 Last Exite였다.

Janet Jackson
무명시절 그녀는 “페임” TV 씨리즈에서 댄써였다.

Siouxie and the Banshees
큐어의 로버트스미쓰는 때때로 이 밴드의 드럼을 맡았다.

Depeche Mode
프랑스어로 Depeche Mode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패션잡지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그 뜻은 ‘빠른 패션(?)(fast fashion)’이다.

Art of Noise
1989년에 Tom Jones와 팀을 이룬 Art Of Noise는 Prince의 Kiss를 리메이크했다. 역시 1990년에는 Nothing Compares To You를 리메이크했고 커버버젼이 오리지날보다 더 팔렸다.

Heaven 17
Heaven 17은 1980년 결성되었는데 처음 그들의 이름은 A Clockwork Orange였다.

B52’s
그들의 이름은 B52라 불리우는 벌집 모양의 헤어스타일에서 따왔다.

Frankie goes to Hollywood
원래 밴드 이름은 Hollycaust였는데 곧 Frank Sinatra의 영화 인생에 대한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Spandau Ballet
Spandau Ballet가 1990년 해산한 뒤, Gary Kemp는 배우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는데 The Bodyguard, The Larry Sanders Show, Embrace of the Vampire 등에 출연하였다.

Duran Duran
Duran Duran이 공연을 하기 시작한 클럽 이름은 Barbarella였다. 클럽의 이름은 Duran Duran 이 그룹의 이름을 따온 바로 그 영화의 이름과 똑같다.

Freddie Mercury 와 Thriller
Freddie Mercury가 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위해 한 트랙을 녹음했다는 설이 많았지만 결코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Beat It 의 키타리스트
Michael Jackson의 Beat It 의 키타를 담당했던 사람은 Eddy Van Halen이다.

Kim Wilde
Kim Wilde의 본명은 Kim Smith이다.

Johnny Cougar
John Mellencamp는 예명을 ‘Johnny Cougar’로 바꾼데 대해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이름을 본명으로 바꾼 뒤 이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John Cougar Mellencamp라고 바꿨다.

Bananarama/Shakespear’s Sister
1987년에 Bananarama의 전멤버였던 Siobhan Fahey는 Dave Stewart (Eurythmics)와 결혼했다. 뒤에 그녀는Marcella Detroit와 함께 Shakespear’s Sister를 결성했다

신스팝(synth pop)의 역사

□ 신디사이저(synthesizer)

이미 1870년대에 몇몇 사람들은 전기적으로 생산되는 음악에 대한 실험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50년이 되어서야 보다 진지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독일 퀼른에 오직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만 세워진 스튜디오가 있었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1955년 미국 RCA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초기의 신디사이저는 매우 비싸고 다루기 어려웠다. 1960년대에 진정으로 유용한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Don Buchla 와 Bob Moog 가 만든 것들이 그 예이다. Bog Moog 는 신스팝 뮤지션들에 의해 많이 사용된 미니무그(MiniMoog)나 그 밖의 작품과 같은 신디사이저 제작자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이다. 1970년대에 신디사이저의 생산은 대규모로 성장하였다.

최초의 신디사이저는 아날로그였다. 모든 사운드는 신디사이저의 버튼이나 바(bar)와 같은 움직이는 컨트롤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서로, 그리고 컴퓨터와 연결되는 디지털 신디사이저가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MIDI 라고 불리는 인터페이스를 이용했다. MIDI 는 음질이나 박자 등에 관한 정보를 보낸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의 사운드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사운드를 표현하는 숫자들을 보낸다. MIDI 는 이제 대부분의 퍼스널컴퓨터에 있다. 현대 신디사이저를 위한 가장 일상적인 사운드 소스는 샘플링이다. 예로 진짜 사운드의 디지털 녹음. 대부분 그것은 평범한 음악 악기나 아날로그 신디사이저에서 추출된다. 때로는 상이한 기술이 섞이기도 한다.

□ 신스팝(synthpop)

1960년대 말 이미 유명한 뮤지션들은 신디사이저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Beach Boys 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음악을 많이 바꾸지는 않았다. 1968년 최초의 신디사이저로만 연주된 레코드가 발매되었는데 Wendy Carlos 의 “Switched On Bach” 가 그것이다. 그것은 Moog 신디사이저로 바흐를 연주한 음악이었다. 독일에서는 Organisation 과 같은 실험적인 밴드가 1968년 조직되었다. 그들은 1970년 Kraftwerk 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이 당시 그들은 불협화음이지만 혁신적인 신디사이저 음악을 연주했다. 그들은 1970년대 초반 독일에서 세 개의 앨범을 내놓았다. 그들의 음악은 좀 더 리드미컬해지고 보다 이해하기 쉽게 변해갔다. 1974년 그들은 국제무대의 데뷔작인 “Autobahn”을 내놓았는데 이것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앨범은 신디사이저와 음향효과가 결합된 20분 길이의 카드라이브였다. 그들은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음악을 만들었고 이후 일곱 개의 앨범을 내놓는다. 그들은 신스팝의 스타일을 정형화시켰다.

Jean-Michel Jarre 1986.jpg
By Polygram Records – Auction Front Back No WatermarkArchives: Front, Back, (No Watermark), Public Domain, Link

1968년 프랑스의 Jean-Michel Jarre 가 역시 일렉트로닉 음악을 시작했다. 예로 그는 오페라를 신디사이저와 결합하였고 이것이 1972년 주목을 받았다. 그의 첫 앨범 “Oxygene”은 1976년 발매되었다. 그는 클래식과 실험음악에 영향 받아 연주음악을 만들었다. 그의 대부분의 앨범은 통상적인 신스팝과 같은 튠을 사용하지 않는다. 1981년 그는 중국에서 공연을 가진 최초의 서방 음악가가 되었다. 1984년 앨범 ”Zoolook”을 녹음했다. 이 앨범에서는 전 세계 30가지 언어가 샘플링으로 사용되었다. 1986년 그는 우주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최초로 녹음하려고 시도한다. 우주비행사이자 색스폰 연주자인 Ron McNair 가 우주선 챌린저를 타고가 우주에서 그와 함께 연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했다. 챌린저가 출발 후에 바로 폭발해버렸고 그의 녹음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Jarre 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백만의 관중 앞에서 장대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열 장 이상의 앨범을 녹음했다. 이밖에 신디사이저를 초기에 많이 다룬 뮤지션으로 Brian Eno, Mike Oldfield, Pink Floyd, Tangerine Dream, Vangelis 등이 있다.

1970년대 말 특히 영국에서 신디사이저를 주된 악기로 쓰는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Gary Numan, Ultravox, OMD, Human League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Kraftwerk 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1980년대 초반 Depeche Mode 가 결성되었다. 그들은 Vince Clarke 이 밴드를 떠나 Yazoo(미국에서는 Yaz라 불림)를 결성하고 후에 Erasure 를 결성한기 전까지는 1981년의 그들의 힛싱글 “Just Can’t Get Enough” 과 같은 행복하고 천진난만한 신스팝을 선보였다. 이후에는 보다 멜랑콜릭해지고 어두워졌다. 다른 영국 밴드가 1981년 레코드를 내놓았는데 Duran Duran, Eurythmics, Tears For Fears, Thompson Twins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신스팝의 일종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악기도 사용했다. 캐나다에서 Rational Youth 나 스웨덴의 Adolphson-Falk 가 이와 같은 밴드들이었다. 1984년 Howard Jones, Nik Kershaw, 그리고 독일 밴드 Alphaville 과 같은 신스팝 아티스트들이 나타났다. 1980년대의 다른 신스팝 밴드로는 A-ha, Bronski Beat, New Order, Soft Cell, Visage, Yello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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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talking” by CHR!S – Own work.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984년 유로디스코라 불리는 팝음악이 새로운 형태로 등장한다. 특히 Scotch와 같은 이탈리아 밴드와 Modern Talking 과 같은 독일 밴드가 많았다. 유로디스코는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두었기에 신스팝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Pet Shop Boys 의 음악도 유로디스코로 불렸다. 1986년 신스팝의 기반이 약화되었고 이후 오직 신디사이저에 상당 정도 의지하여 만들어진 음악만 신스팝이라 불렸다. 신디사이저는 계속해서 팝음악의 주요한 악기로 자리잡았다. 유로디스코가 영국에 와서 Stock/Aitken/Waterman라는 팀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Kylie Minogue, Rick Astley, Bananarama, Dead Or Alive 와 같은 많은 아티스트를 위해 레코드를 프로듀스했다.  1987년 하우스 뮤직이 영국에 선을 보였다. 이 음악은 본래 시카고에서 출생하였다.(예로 Frankie Knuckles) 하우스는 신디사이저에 기반하여 모노톤과 음향효과가 가미된 댄스음악이었다.

1991년 테크노 음악이 벨지움과 네델란드에 선을 보였다. 이 장르는 본래 1980년대 중반 이후 연주되기 시작한(예로 Derrick May) 디트로이트가 출생지이다. 테크노 역시 신디사이저에 기반을 둔 댄스음악이지만 하우스보다 무겁고 어둡다. 독일에는 U96과 같은 아티스트가 있었다. 1992년 유로디스코가 독일로 돌아온다. 스타일은 좀 더 터프하게 변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프로듀서가 생산한 전형적인 유로디스코 밴드는 흑인 래퍼와 여성 싱어였다. 음악은 신디사이저 멜로디와 래핑, 그리고 심플한 코러스로 구성되었다. 유로디스코는 이제 가끔 ‘댄스’로만 불리울 뿐이었다.

Page, S.P.O.C.K, Sista Mannen Pa Jorden, This Fish Needs A Bike 가 유명한 스웨덴 신스팝 밴드다. Elegant Machinery, Daily Planet, Daybehavior, Encounter, Saft 등이 기타 신스팝 밴드이다. 보다 새로운 스타일의 신스팝 밴드는 미국의 Anything Box, 영국의 Mesh, 독일의 And One 등이 있다. Electronic, Saint Etienne, Kim Wilde 가 신스팝에 가까운 영국 아티스트이다. Melody Club, Kamera, Bobby 등은 신스팝에 가까운 신세대 스웨덴 아티스트이다.

http://www.synt.nu/history/

Depeche Mode / The Singles 81 ~ 85

Depeche Mode - The Singles 81-85.png
By Source, Fair use, Link

본 앨범 “The Single 81 ~ 85″는 모두 13곡(이중 “Master & Servant”는 국내발매 당시 금지곡)의 싱글을 발매순으로 엮은, 그들의 연대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앨범이다. 다음은 “No. 1 Chronicles”란 곳과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기사로 예음에서 발매된 국내음반 내지에 실린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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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ing Of Me(1981년 2월)
Vince Clarke, Speak &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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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노래가 발표될 무렵에 우리는 18세 내지 19세였습니다. 이 음악을 만들면서 우리는 커다란 기대나 흥분은 없었습니다. 차트에 오르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았으며 다만 레코드를 만들어보겠다는 욕심뿐이었습니다. 이 곡을 만든 후 “Scamps”라는 클럽에서 틀었을때 우리 친구들은 최고의 작품이라며 즐거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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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Life(1981년 6월)
Vince Clarke, Speak &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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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곡을 만들면서 우리는 이 곡이 차트에 랭크되는 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Martin : “Dreaming Of Me”의 예상외의 성공에 저희도 놀랐으며 저희들의 작업에 자신을 가졌습니다.
Dave : 출판업자로부터 우리 모두가 계약금을 받을 땐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어요. 이 돈을 받고 우리는 우습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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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Can’t Get Enough(1981년 9월)
Vince Clarke, Speak & Sp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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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이 당시에 당신들이 뉴로맨틱(New Romantics)계열에 속했다고 봅니까?
Dave : 우리는 미래파였어요. 왜냐하면 항상 개성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 곧 미래파들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이죠. 뉴로맨틱이란 말로 표현된 모든 사람들은 같은 것을 찾고 있었어요. 뜨거운 열망으로 …. 미래파들은 모두 펑크(Punk)의 범주에 속했어요. 그 당시 우리가 추구한 바로 그것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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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 You(1981년 1월)
Martin Gore, A Broken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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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 이 곡이 내가 쓴 첫번 싱글곡입니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군요. 내가 이곡을 쓸때가 17살이었어요. 돌이켜보니 빈스(Vince Clarke : 이 팀을 떠나 Yazoo를 결성했음)가 우리 팀을 떠난 것이 우리에게 훌륭한 싱글곡 하나를 만들게 해준 것이 됐어요.
No. 1 : 이것은 슬픈 내용을 노래하고 있던데?
Dave :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내용의 노래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슬프게 전달되었어요.
No. 1 : 많은 사람들은 또 다른 댄쓰음악을 기대해 왔는데요.
Martin : 우리는 항상 그렇게 노력했는데 이 곡은 유달랐던 것 같습니다.
Dave : 이 당시 우리는 이 곡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어요.
Martin : 그러나 우리는 한가지 형태는 절대 계속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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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e In Silence(1982년 8월)
Martin Gore, A Broken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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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왜 이당시 당신들의 싱글 재킷에 당신들의 사진을 싣지 않았나요?
Andy : 우리는 얼굴을 앞세운 그룹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정말로 사람들이 우리의 이미지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음악을 찾아 주길 바랬습니다. 예를 들어 듀란듀란의 첫앨범 재킷을 예로 들어 그들은 그런 것에 반드시 후회를 할겁니다.
Dave : 그들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것은 확실히 잘못된 재킷이었어.
No. 1 : 그렇다면 왜 당신은 비디오에 얼굴을 비쳤나요?
Andy : 우리가 비디오를 제작한 것은 단지 우리의 음악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필히 비쳐야 한다는 요청때문에…
Dave : 모호한 말같지만 그것은 Duran Duran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No. 1 : “Leave In Silence”는 정말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는데?
Dave : 그것은 싱글로서는 독특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의도하는 음악중 하나일뿐입니다. “A Broken Frame”이란 앨범은 전체적으로 매우 어두운 분위기로 엮어져 있지요. 특히 “Leave In Silence”란 곡에는 멜로디, 음향, 무드 등 많은 것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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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Counts(1983년 7월)
Martin Gore, Construction Tim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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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 이 곡은 우리들에게 또다른 의도의 싱글곡입니다.
Andy : 우리가 이전에 실험적인 의도로 가능한한 다양하고 새로운 음향의 모색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와 유사한 그룹이 많아져 이 곡에서는 또 다른 사운드의 영역을 추구하려 하였습니다.
Alan : 우리는 또한 우리 모두들의 극히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보고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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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n Itself(1983년)
Martin Gore, Construction Tim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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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곡에서의 보컬은 매우 부드럽습니다. 개인적으론 불만도 많이 있는 곡이기도 하죠. 좀더 훌륭하게 만들 수 있는 곡이었는데…
Andy : 이 곡을 만들때 우리들의 장비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너무 부드러운 사운드만 담았어요. 조금 무거운 분위기도 표현되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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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 The Balance Right(1983년 1월)
Alan Wi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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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 : 알란, 이 곡은 이 팀에서 당신이 쓴 첫번째 싱글곡인데 당신은 어떤 새로운 점을 표현하려 했나요?
Alan : 예. 이 곡은 첫싱글 곡입니다만 제 생각엔 커다란 차이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최선의 작품이 못되었던 것 같습니다.
Martin : 사실 이 곡은 우리들 곡중에 가장 약한 곡일겁니다.
Andy : 우리들에겐 많은 문제점들이 있어요. 준비없이 일을 벌려 놓은 것 같은 그런 문제들이…
Alan : 나는 일년여 이 곡에 열중했지만 제가 차분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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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Are People(1984년)
Martin Gore, Some Great Re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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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 이 곡을 만들땐 매우 기대가 충만했습니다. 우리는 베를린으로 가서 그곳 스튜디오의 다이내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는 새삼스럽게 이 곡이 춤곡으로도 훌륭하다는 것을 알았고 많은 다른 춤곡과는 또다른 독특한 사운드를 연출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곡을 강한 사운드와 함께 진정한 소울을 겸비하려 애썼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작업은 우리에게 귀중한 시간이었고 또한 좋은 결과도 보았죠.
Dave : 이 곡이 미국에서의 첫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유럽에 비해 매우 늦게 미국에 소개되었지만 미국에서도 놀랄만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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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sphemous Romours(1984년)
Martin Gore, Some Great Re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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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 우리가 미국에 갔을때 이 곡의 노랫말이 좋다는 편지를 무척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유럽에선 전혀 상반된 편지를 많이 받았죠.
Alan : 유럽에선 그런 이유가 그들은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Martin : 노래 제목에 “Blasphemous(신을 모독하는)”이란 단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 연합(Christian Association)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는데 그들은 우리가 무었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한다는 응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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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 The Disease(1985년)
Martin G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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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먼저의 몇몇 히트곡들을 제작할때 우리는 그 곡에만 전념할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순회공연을 하면서 제작도 병행하였었죠. 그러나 이 곡에는 다른 일없이 우리 모두 전념할 수 있었어요.
Alan : 이 곡은 훌륭한 곡입니다. 히트가 되든 안되든 우리는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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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Called A Heart(1985년)
Martin G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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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 이 곡은 우리들의 최신곡입니다. 우리가 다른 많은 곡들을 만들 때를 되돌아보면 우리가 보충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No. 1 : 왜 싱글곡들의 모음집을 만드셨나요?
Dave : 일단 우리의 음악의 일단락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앨범 제작에 열중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sticky)

Depeche Mode / Some Great Reward

Depeche Mode - Some Great Reward.png
“Depeche Mode – Some Great Reward”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Mute Records.. Licensed under Wikipedia.

영국 Essex 출신의 Martin Gore는 교환유학생으로 독일의 Schleswing Holstein의 농가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적이 있어서 그가 독일을 선호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Martin은 200파운드로 야마하의 신디사이저를 구입하고, Andrew Fletcher, Vince Clarke와 셋이서 신디사이저 1대, 기타 2대를 가지고 밴드를 결성했었다. Andrew는 Martin과 학교 동급생이었고(Yazoo의 Alison Moyet도 동급생이었다) 그가 최초로 참가했던 밴드는 No Romance In China라고 하는 Vince가 있던 것이었다. 또 다른 듀오 French Look 이후 Composition Of Sound란 이름으로 Martin의 야마하 신디사이저를 믿고 결성되었던 밴드는 오디션에 의해 David Gahan을 받아들여 4인조가 된다. 깡마른 펑크소년 David은 이 오디션에서 David Bowie의 Heroes를 불렀다고 한다. 이들은 Southend Art College의 학생이었던 David이 가지고 왔던 프랑스 패션잡지 Depeche Mode(Fast Fashion이라는 뜻)를 그룹명으로 쓰면서 보컬과 3인의 신디사이저라는 스타일이 확립되었다. 그들의 레코드 데뷰는 Some Bizarre 레코드에서 나왔던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된 Photographic이었다. 그리고 Fad Gadget를 서포트하며 클럽을 순회하다가 Mute 레코드의 사장과 만나게 된다. 그가 Daniel Miller로 이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이기도 하다(Depeche Mode와 Gareth Jones가 함께 한다) 첫번째 싱글에 Dreaming Of Me가 결정되었고 인디 차트의 1위를 차지하게 된다. 메이저 레이블에서 제의가 들어왔지만 Mute에 남기로 한 그들은 초기 레코드를 홍보하기 위해 투어를 많이 다녔다. 그러자 대부분의 곡을 썼고 스튜디오 작업을 좋아하던 Vince는 그룹을 떠나게 된다(그는 Yazoo와 Assembly, Erasure로 활동하게 된다) Martin Gore가 대신 곡을 쓰고 Alan Wilder가 참여하면서 비로소 정규 멤버를 구성하게 된 Depeche Mode는 몇장의 앨범을 내지만 ’84년 앨범 Some Great Reward로 미국차트 상위에도 진출하여 명실상부하게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의 하나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내용도 담은 앨범은 우리나라에 라이센스로도 나왔었지만 Master And Servant 같은 것은 금지곡으로 삭제당하기도 하였다. 전체적으로 인더스트리얼의 느낌이 강하고, 독일 베를린의 Hansa Mischraum에서 녹음과 믹스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CD에서는 모르겠지만 LP 뒷면 사진에는 작게 ‘The world we live in and life in general’이라고 쓰여 있다. 참고로 그들의 인기에 힘입어 후에 앨범 People Are People, Catching Up With Depeche Mode와 같은 것이 나오기도 했지만 만족도가 떨어지는 베스트 앨범이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

From Nubeat

Yazoo

Vince Clarke and Alison Moyet of Yazoo (1982).jpg
“Vince Clarke and Alison Moyet of Yazoo (1982)” by http://www.yazooinfo.com/photos.html. Licensed under Wikipedia.

1982년 영국에서 결성된 Yazoo는 Vince Clark과 Alison Moyet으로 구성된 2인조 혼성 듀엣이다. 빈스클락은 야주를 결성하기 전에 Depeche Mode에서 리더로 활동하던 뮤지션이다. 그는 이 그룹에서 많은 히트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전공 분야가 컴퓨터였으므로 자신의 컴퓨터에 관한 지식을 활용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룹을 탈퇴하고 앨리슨모엣과 함께 야주를 만들어 그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 갔다.

Alison Moyet은 학창 시절부터 리듬앤블루스에 심취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위해 London College Of Furniture에 입학하여 자신의 음악성을 정립시켰던 맹렬 여성이었다. 이와 같이 다른 길을 걸어 온 두 사람이지만 1982년 데뷔앨범 Upstairs At Eric’s를 발표하여 유럽 최고의 일렉트로닉 팝 그룹으로 명성을 쌓았다. 개성있는 듀오로 출발하여 환호를 받은 이들은 1982년 유럽 최우수 여성 보컬리스트로 Alison Moyet이 선정되었다. 또한 데뷔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Don’t Go는 유럽 챠트에서 넘버 1을 차지했던 최고의 히트 싱글이었다.

미주 지역에서는 1982년 9월부터 이들이 소개되기 시작해서 Situation이 빌보드 챠트에 랭크되어 미국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미국에서는 이들의 이름이 Yaz로 소개되었는데 미시시피 주에 있는 리듬앤블루스 음반을 제작하는 Yazoo라는 작은 레이블과 이름이 같아 상표권 문제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83년 3월 9일자 빌보드 챠트에 Only You가 67위에 등장하여 한 장의 앨범에서 세 곡이 히트되는 쾌거를 거두었고 앨범 또한 앨범 부문에서도 30주 이상 챠트에 머무르면서 성공의 기쁨을 한 껏 누렸다. 이들은 1983년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You & Me Both를 발표한 후에 이들은 해체되었다.

디스코그래피
Upstairs At Eric’S 1982
You & Me Both 1983

링크
팬페이지

Erasure

Erasure-andy-vince-wolfgangs-np.jpg
“Erasure-andy-vince-wolfgangs-np” by Nancy J Price, Andwhatsnext at en.wikipedia – Originally from en.wikipedia; description page is/was here..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부드럽고 경쾌하게 시작되는 이레이저의 사운드는, 그 이름에서 주는 느낌과 실제 성향과는 약간 다르다!? 우선 신서사이저를 사용했다는 자체에서(밴드가 그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는지는 나중의 문제로 남겨두자), 이미 우리에게 입력된 고정관념은,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물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신스팝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는, 이레이저라는 그룹은(물론 밴드가 아닌 듀오다) 테크노 밴드 일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에 차있었고, 신서사이저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디페시 모드의 빈스 클락이라는 선입견을 대입시켜 또 다른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레이저는 (디페시 모드와는 다른) 신스팝을 지향하고 있으며, 팝이라는 단어를 더 크게 써 넣어야 할 것 같은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듀오였다. 펫 샵 보이즈라는 듀오는 알아도, 이레이저라는 이름을 댈 경우 머리를 도리질 칠 사람은 적어도 전자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이레이저는 그만큼 대중적으로 확실하게 알려진 듀오는 아니다. 그렇다고 저 구석에서 먼지 털듯 끄집어 낼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벌써 디스코그래피를 길게 열거해야 될 정도의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1985년 그룹 야주(Yazoo)와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의 송라이터 빈스 클락(Vince Clarke)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레이저 전에 빈스가 생각한 새로운 프로젝트의 앨범은 10명의 싱어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한마디로 빈스 클락이 지휘하는 컴필레이션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10명이나 되는 싱어를 항상 거느릴 수는 없는 일이었고, 곧 오디션을 거쳐 앤디 벨(Andy Bell)을 영입했다.

물론 저 유명한 뉴 로맨스 최고의 권위자 디페시 모드의 빈스 클락에 의해 결성되어졌다는 데서 어느 정도 주위의 관심을 끌었겠지만, 이 듀오는 데뷔부터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였다. ‘Sometimes’ 같은 경우는 UK차트에 입성하자마자 2위에 오르는 쾌거를 낳았을 정도였다. ‘Drama!’, ‘Blue Savannah’, ‘Chorus’, ‘Love To Hate You’, 그리고 ‘Breath Of Life’와 같은 노래는 당시 유명한 보컬/신서사이저 듀오 펫 샵 보이즈와 나란히 라이벌 관계를 성립시키기도 했다. 소포모어 징크스에 걸려서 넘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며, 앞날은 뻥 뚫린 고속도로였다. 1992년에 정규앨범이 아닌 EP [Abba-esque]마저 굉장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이레이저라는 듀오가 내뿜는 매력은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실력이 된다고 쳐도 이들의 그칠 줄 모르는 승승장구에는 지독스런 운도 따랐던 것이 틀림없으리라….

1995년 드디어 변화는 찾아왔다. 빈스와 앤디의 실험적인 앨범 [Erasure]가 그것이었는데, 이 앨범은, 팬들은 둘째치고라도 이레이저 본인들에게도 놀라움을 가져다준 앨범이었다. 바로 70분 짜리 아트락 컨셉트 앨범으로, 어둡고 대담한 사운드 그리고 이들 듀오의 무형의 측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아트락이라니! 당혹스러운 것은 당연했으나, 이전 상황에 비해 자신들도 의외라고 생각할 만큼의 플러스로 작용할 뿐이었다. 한번쯤의 외도는 신선한 것인가. 여러 장의 앨범을 발표하고, 매번 그 방향성에 있어서 어디로 튈지 몰랐다면 이레이저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물론 앨범발매를 목전에 둔 당시 상황에서는, 항상 관심의 대상으로서, 늘 새로움의 추구/발전의 양상을 꾀한다는 평가를 받았겠지만, 본인들 스스로에게 있어 부담감은 얼마나 컸을 것이며, 중심을 이루는 잣대는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 또 얼마만큼의 생각을 했어야 될 것인가. 결국 방향성에 있어 주체적인 잣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한번쯤의 전환도 필요하고 또 신선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막 이레이저는 바람을 쐬고 돌아왔다. 이번 앨범의 타이틀만 보고서도 대충 짐작은 했었다. [Loveboat]라…. 강한 팝적 성향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선에서는 특유의 사운드를 흘릴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이번 앨범의 초점이다. 매력을 끼워 맞추자니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만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기는 하지만….

이하 하략, 핫뮤직 2000년 12월호 참조.

디스코그래피

1986 Wonderland (Sire)
1987 The Circus (Sire)
1988 The Innocents (Sire)
1989 Wild! (Sire)
1991 Chorus (Sire)
1992 Club (Mute)
1994 I Say I Say I Say (Mute/Elektra)
1995 Erasure (Elektra)
1997 Cowboy [US] (Elektra)
2000 Cowboy [Import Bonus Tracks] (EMI)
2000 Loveboat (Mute)

링크

VH.com
Fan Site
Erasure : Love Boat
Photos
다음넷의 이레이줘 카페
Erasure Li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