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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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Mitchell, CC BY-SA 4.0, Link

출처는 모릅니다 http://myhome.naver.com/ouimoi/favorite/80년대사건.htm 라는 링크가 남아 있긴 한데, 지금 열어보니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 페이지라는군요. 누군가 예전에 “음악세계”란 잡지에서 본 것 같다는 코멘트를 달아놓기도 했네요. 여하튼 저작권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고요. 이 중 몇 개나 동의하시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Pop Events Of The Decade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1. 1980-핑크 플로이드의 화제작 「벽」

1980년 최대의 화제작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이었다. 67년 데뷔작 「여명의 문 앞에 선 풍적수」(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표한 이래 핑크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으로 팬들은 물론이고 아티스들에게도 음악적인 영향을 미쳤다. 73년 「달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Moon) 이래 최대의 앨범이라는「벽」은 15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 82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또 다시 핑크 플로이드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앨런 파커 감독의 이 영화는 당시로선 최장시간의 록영화였다. 라이브 에이드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봅 겔도프가 주연한 이 영화는 록 스타의 정신적인 붕괴를 다룬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정치만화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제럴드 스카프의 작품.

2. 1980-존 레논 흉탄에 쓰러지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80년 12월 8일 뉴욕에 있는 다코타 아파트에서 마크 채프먼이라는 사내의 총탄에 쓰러졌다.  80년 11월, 5년 동안의 침묵을 깨며 그는 앨범 「이중 환상」(Double Fantasy)을 발표하여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싱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Just Like> Starting Over)은 그의 죽음 이후 차트 1위에 올라 사람들을 더욱 애석하게 했다. 비틀즈 시절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존은 60년대 팝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만함 속에 번득이는 예지등으로 그의 개성은 더욱 팬들에게 어필되었고, 65년 비틀즈 멤버로서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3. 1981-MTV의 영향

1981년 8월 미국의 어느 케이블 방송국은 24시간 동안 음악만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MTV(Music Televison)이다. 75년 일본의 소니사에 의해 비디오가 대중화될 때부터 MTV의 출현은 이미 예상되었는데, 디스크의 소리에 TV의 화면을 접목시킨 것이었다. 노래를 듣고, 거기에다 보기까지 하니 음악의 내용도 상당히 변하게 되었다.  MTV는 뉴 웨이브 가수들의 출현을 앞당기기도 했다. 듀란 듀란, 컬처 클럽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70년대 통신기기의 대변혁인 비디오가 음악에 미친 영향은 바로 MTV의 출현이었다.

첫 시작을 알린 비디오는 그 유명한 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4. 1981-뉴웨이브의 기수들

뉴웨이브라는 말처럼 뜻이 다양하고 복잡한 용어도 드물 것이다. 70년대 말 펑크와 디스코, 그리고 기존 록의 혼합물을 뉴웨이브라고 부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기계적으로는 MTV의 등장이 뉴 웨이브의 출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70년대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80년대의 요구에 맞춘 것이 뉴 웨이브라고 보는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기반은 1981년 블론디였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멘 앳 워크. 폴리스. 유리쓰믹스. 컬처 클럽. 듀란 듀란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감각적인 사운드, 현대적인 감각의 화장 및 분장 그리고 환상적인 패션 등이 그들의 개성이기도 했다. 70년대 말의 파괴적인 펑크 시대 이후 찾아온 대중 음악, 그것이 뉴 웨이브였다.

5. 1982-CD 및 LPD의 개발

디스크와 TV의 만남이 MTV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각과 청각의 동시 해결이라는 요구는 풀렸지만 그 질(質)이 문제였다. 먼저 원음(原音)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것이 CD(Compact Disk)이다. 일본의 소니사와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82년 CD발매를 개시했다. 광통신(光通信)의 발전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화면도 실물에 가까운 생생한 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이  LDP(Laservision Disk Player)이다. 83년 일본의 파이오니어사는 LDP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MTV가 제공하는 음악의 발전 단계가 LDP인 것이다. 이제 팬들은 생생한 소리와 화면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비디오의 등장처럼 LDP가 음악계의 흐름을 뒤집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초기 단계다. LDP의 대중화는 비디오에 못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결국 LDP는 단명하고 말았고 현재는 DVD가 대세죠 : 옮긴 이 주)

6. 1982-80년대의 음악 뉴 에이지

80년대 들어 태동한 두 가지 음악 장르라면 뉴 에이지와 랩이다. 80년대 초부터 ‘뉴 에이지’ 또는 ‘환경음악'(주로 일본) 등으로 불린 이 음악은 동양적인 명상음악이라는데 특징이 있었다. 굳이 뉴 에이지를 82년의 사건으로 잡는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뉴 에이지라는 음악을 대중화시킨 조지 윈스턴의 활동을 기초로 했다. 80년 조지는 「가을」(Autumn),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12월」(December)등을 발표했다. 위의 앨범이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아 83년 초 빌보드 재즈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반젤리스는 82년 <불의 마차 ‘(Chariots Of Fire)라는 영화음악으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반젤리스가 뉴에이지? : 옮긴 이의 의문) 이때부터 뉴 에이지는 그
독립성을 인정받아 87년 최초의 뉴 에이지 그래미 수상자 안드레아스 플렌바이더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CD의 보급은 뉴 에이지를 전파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되겠다.

7. 1983-80년대의 대표적인 뮤지션 마이클 잭슨

지금도 팬들에겐 <빌리 진>(Billie Jean)의 전주 부분이 귀에 생생할 것이다. 83년 팝계를 휩쓸어 버린 수퍼스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 가수의 방영을 꺼리던 MTV에 그는 백인에 가까운 성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영화감독 존 랜디스 (“블루스 브러더스”<Blues Brother>의 감독)를 영입하여 만든 비디오 <비트 잇>(Beat It)은 마이클을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타운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보여준 그의 춤 솜씨와 퀸시 존스에 의해 프로듀스된 앨범 「스릴러」(Thriller)의 펑키한 사운드, 그리고 백인에 가까운 분장 등은 MTV의 장점을 가장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앨범에선 싱글 톱10이 7곡이었는데, 덕분에 마이클 잭슨은 그 해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8. 1983-온 거리를 뒤흔든 브레이크 댄스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 뒤로 걷는 댄스 스텝은 팝계의 또 다른 화제거리였다. 길거리에서도 그를 흉내내는 청소년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관절을 비틀어 대는 춤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기사들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이름하여 브레이크 댄스 열기였다. 이 좋은 소재를 영화계에서 놓칠리가 없었다. 83년 애드리언 라인 감독의 “플래시댄스”(Flashdance)가 바로 그것이다.  제니퍼 빌스 주연의 이 영화는 황당한 스토리를 지닌 것이었지만 디스코 작곡가로 유명한 조르지오 모로더의 음악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특히 아이린카라가 부른 <플래시댄스>와 <신나는 기분> (Flashdance What A Feeling)(이 노래가 언제부터 두곡이었을까나… : 옮긴 이의 의문)은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영화 이후 댄스 음악은 영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갖기 시작했다.

9. 1984-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열기

84년은 유난히 뛰어난 앨범이 많이 발표된 해였다. 한 앨범이 계속해서 1위에 머무는 바람에 1년(약52주) 동안 4개의 앨범만이 넘버원을 차지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프린스의 해라고 해도 좋을 시기였다. ‘보스'(브루스)는 7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였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앨범으로 대중적인 기반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끝없는 질주」(Born To Run)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한 그는 그 해 타임, 뉴스위크 양 잡지의 표지인물로 선정되기도했다. 80년 「강」(The River)으로 앨범 1위를 기록한 그는 수작 「네브라스카」 Nebraska) 이후 84년 「미국에서 태어나」를 발표했다. 재킷에 노동자 복장 차림의 사람이 성조기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듯한 자세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기도 한 문제의 앨범이었다.

10. 1984-미네아폴리스 사단의 리더 프린스

TV 드라마 “배트맨”(Batman)의 주제곡을 열심히 피아노로 연주하던 소년이 바로 영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맡았던 프린스이다. 1984년은 한 마디로 보스와 프린스의 해였다. 특히 프린스는 작곡, 작사, 프로듀서, 싱어를 겸하는 만능 재주꾼으로 83년의 마이클 잭슨 열기를 뒤엎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70년대에 데이비드 보위가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위해 노력했다면 80년대는 단연 프린스였다. 그는 「심홍색 비」(Purple Rain) 한 장의 앨범으로 표현된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스타 제조기이기도 하다. 배내티와 아폴로니아가 프린스 사단 출신이며, 실라E. 차카 칸. 마돈나. 시나 이스턴 등 그가 후원한 가수는 수도 없이 많다.

11. 1985-만능 엔터테이너 마돈나

80년대 최고의 여성 가수로 마돈나를 지목하기에 주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85년 마돈나는 「처녀처럼」(Like A Virgin)으로 전 세계 팝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듀란 듀란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나일 로저스. 미모와 섹시함 그리고 가수로서의 가창력과 춤 등이 그녀를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MTV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MTV 등장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88년에는 브로드웨이 연극에도 출연하여 화제를 몰고 온 그녀는 영화배우 숀 펜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는 등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지만, 올해 「기도처럼」(Like A Prayer)을 발표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였다.

12. 1985-이디오피아 난민구호 ‘라이브 에이드‘

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구장에서 동시에 대규모 콘서트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개최되었다. 이디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장장 16시간의 공연, 200여명의 아티스트 출연, 430억의 자선 기금, 세계 140개국에의 15억 시청자 등등 종래의 모든 기록을 깨버린 행사였다. 영국의 록 그룹 붐 타운 래츠의 리더 봅 겔도프는 이 행사를 개최한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브 에이드’는 우드스톡 이후 최대의 공연이었으며, 이 행사에 자극받아 해리 벨라폰테는 ‘우리는 곧 세계'(We Are The World) 라는 앨범(We are the world는 라이브에이드 이전에 나오지 않았나요? : 옮긴 이의 의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퀸시 존스. 빌보드 차트 1위 및 그래미상 수상의 영광도 안은 앨범이었다.

13. 1981-뉴 웨이브의 기수들

뉴 웨이브의 열기, MTV의 등장 그리고 아티스트의 개성 등이 그 시대와 딱 들어맞은 뮤지션이 왬이었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이 영국 듀오는 1984년 <떠나기 전에 깨워주오>(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놓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1985년 중국 공연까지 벌였던 그들은 특히 여성 팬들의 우상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로맨틱한 노래로 국내에서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85년 <경솔한 속삭임>(Careless Whisper)은 아마 팝 팬들에게 많은 추억을 준 곡으로 짐작된다. 흑인의 소울을 팝 감각으로 소화시켜 자신들의 개성을 구축했던 이들은 2집 「크게 해봐」(Make It Big)의 성공 이후, 끝없이 해체설이 돌다 결국 86년 헤어지고 말았다.

14. 1986-앰네스티 로큰롤 순회공연 개시

86년 ‘앰네스티’라는 단체가 뉴스에 종종 오르내렸다.’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라는 이 단체는 각국의 탄압받는 양심수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61년에 조직되었다. 온 세계에 이 단체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리는 데는 록 스타들의 역할이 컸다. 앰네스티 미국 지부의 잭 힐리라는 사람은 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의 위력을 실감한 뒤 대규모 록 행사를 계획했다. 8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이 행사에서 U2와 스팅 등은 자신들의 개성을 팝 팬들에게 강력히 심어 주기도 했다. U2는 이 행사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는 1987년 ‘여호수아 나무'(The Joshua Tree)로 나타났다. 1988년 ‘지금 인권을'(Human Rights, Now!)공연으로 이 행사는 맥을 잇고 있다.

15. 1987-미래의 검은 로큰롤 랩

50년대 로큰롤이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의 호응은 열광적이었지만 기성세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춤, 가사, 창법 등으로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던 로큰롤은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천박한 잡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로큰롤은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랩에서 로큰롤이 가졌던 의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80년대 중반 흑인들 사이에서 랩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구 지껄이는 폭력적인 가사, 반복되는 리듬 등으로 일반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던 음악이 랩이었다. 86년 런-DMC에 의해 랩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하더니 87년 드디어 백인 래퍼 3인조 비스티 보이스의 「살인 허가」(Licenced To Kill)가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뉴 에이지와 함께 80년대에 탄생한 장르로 새로이 위치를 굳힌 랩은 올해 톤 록이라는 또 다른 스타를 내기도 했다.

16. 1987-로큰롤은 U2를 통해 재탄생되었다.

85년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86년의 앰네스티 순회공연을 통해 등장한 스타 중 U2의 부상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 특히 앰네스티 공연에서 U2의 리드 싱어 보노가 보여준 개성은 60년대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보여 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4인조 U2는 87년 팬들에 보답하는 앨범 「여호수아 나무」(Joshua Tree)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차트 1위에 랭크된 것은 물론이고, 78년 팀결성 이후 발표한 앨범들도 덩달아 차트에 무더기로 진입하여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정통 로큰롤에 실린 의미있는 가사와 진지한 매너로 한몫 보기도한 U2는 그 해 그래미상을 휩쓸기도 했다. 오랜만에 로큰롤이 U2를 통해 기지개를 켠 87년이었다.

17. 1988-일년내내 톱10에 랭크된 조지 마이클의 「믿음」

1988년은 오직 한 명의 스타가 독주한 해였다. 그 주인공은 조지 마이클. 86년 왬이 해산될 때부터 그의 솔로 등장은 시간 문제였다. 섹스 어필하는 용모와 흑인 가수를 방불케하는 소울 창법 등 스타가 될 만한 재능이 넘치는 영국 가수였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은 「믿음」(Faith)이었는데, 이 앨범은 88년 한해 단 1주만 11위를 기록하였고 나머지 기간에는 톱10안에 랭크되었었다. 정상에 머무른 기간도 12주였다. 싱글 1위곡도 5개나 터져 나왔다(I Want Your Sex, Faith,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마이클 잭슨도 마돈나도 이런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포크와 스티브 윈우드의 컴백도 조지 마이클의 열기를 따라 잡진 못한 한 해였다.

18. 1988-헤비 메틀의 전성기를 다시 연 밴드들

88년 후반부의 주인공은 데프 레퍼드와 건스 & 로지스였다. 이들이 벌인 차트 경쟁은 헤비 메틀 만큼이나 치열한 것이었다. 88년 메틀계에 불을 당긴 팀은 반 헤일런의 「오! 자네도 하나 먹었군」(OU 812) 앨범으로 시작해서 데프 레퍼드의 「히스테리아」(Hysteria), 건스 & 로지스의 「파괴 망」(Appetite For Destruction) 그리고 본 조비의 「뉴 저지」(New Jersey)까지 그 열기는 이어졌다. 데프 레퍼드는 83년 「방화광」(Pyromania)에 이어 「히스테리아」도 7백만 장 이상 판매하여 앨범 2장을 연속으로 7백만장 이상 판매한 최초의 밴드가 되었다. 이들을 이어 건스 & 로지스 그리고 본 조비가 메틀의 열기를 이었다. 「뉴 저지」가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2위는 「파괴 욕망」, 3위는 「히스테리아」였다. 빌보드 차트 사상 메틀 밴드의 앨범이 1,2,3위를 휩쓴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19. 1989-팝계의 새로운 주인공 10대 가수들

89년은 유난히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인 해였다. ’10대현상’은 88년 티파니부터 시작되었다. 데뷔 앨범 ‘티파니'(Tiffany)를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그녀는 10대 선풍을 몰고 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데비 깁슨이라는 천재 소녀가 출현했다.  데뷔 앨범 「뜻밖에」(Out Of Blue)에 이어 「짜릿한 청춘」(Electric Youth)을 내놓으며 티파니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다. 전반기는 보비 브라운의 독무대였다. 앨범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Don’t Be Cruel)에서 연속으로싱글 히트곡을 내놓았다(Don’t Be Cruel, My Prerogative, Roni, Every Little Step 등). 후반부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앨범「끈질기게 버텨」(Hangin’ Tough)를 차트 1위에 올리며 동명 싱글곡 외에 <커버 걸>(Cover Girl), <내가 (당신을 황홀하게 하지 않았어요>(Didn’t I<Blow Your Mind>)등을 연속 히트시켰다.

20. 1989-돌아온 공룡들

전반부엔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후반부는 60년대 로커들의 재등장이 활발한 시기였다. 토론토 공연으로 시작된 더 후의 컴백,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재등장. 봅 딜런. 반 모리슨. 비지스. 링고 스타 등의 새로운 모습이 인상적인 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1989년의 사건은 롤링 스톤즈의 재결합 공연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8월 31일 시작된 그들의 순회공연은 미국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뉴욕에선 공연이 예정되자마자 6시간만에 약 30만장의 입장권이 동나버리기도 했다. 새 앨범 「강철 바퀴」(Steel Wheels)와 싱글 <복잡한 감정> (Mixed Emotion)은 차트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커버버전

http://en.wikipedia.org/wiki/Cover_version

어떤 노래의 커버버전은 다른 아티스트에 의해 다시 녹음되는 것을 말한다(리메이크와 ‘개선된 리메이크’와 비교하라).

비록 커버버전이 때로 아티스트적인 이유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슈퍼마켓의 바겐세일 통을 채우기 위해, 심지어는 음반가게에서 특화시켜 발매된다. 그래서 잘 모르는 소비자는 오리지날 레코딩과 쉽게 혼동한다. 특히 그 포장이 의도적으로 혼란을 주는 경우 그렇다. 그것은 오리지날 아티스트의 이름을 큰 활자로 쓰고 작은 글씨로 originally sung by 또는 as made popular by 라고 에두른 표현을 작은 글씨로 써넣는다. 때로는 다소 비상식적인 ‘커버’라는 단어가 녹음의 진실을 알려줄 뿐이다. 특정한 출반 업체는 ‘오리지날'(강조 역자주) 커버버전이라는 이름으로 왜곡을 극대화시킨다. 커버버전은 가끔 장르로 취합된 모음집의 형태로 팔린다. 슈퍼마켓이 커버버전 세일을 할 때 DJ를 배치해서 특별한 콜렉션에서 독점적으로 뽑아낸 아이템을 연주하게 하기도 한다.

20세기 초반부터 어떤 회사가 엄청나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레코드를 가지고 있고 다른 회사들이 그 레코드의 성공에 기대어 돈을 벌 요량으로 레이블을 위해 새로운 버전을 녹음함으로써 그 곡을 ‘커버’할 뮤지션이나 가수를 가지고 있는 경우 축음기 레코드 레이블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락앤롤의 초기 시절 흑인 락뮤지션이 부른 많은 오리지날이 팻분과 같은 백인 아티스트에 의해 다시 녹음되었고 톤은 보다 락앤롤의 날카로운 면을 제거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도 있었다. 이러한 커버버전은 몇몇 이들에게는 보다 부모들의 구미에 맞는 것이었고 백인들의 래디오 방송국의 편성자들의 구미에도 더욱 맞는 것들이었다. 또한 남자 아티스트들의 곡을 여성 아티스트들이 커버하기도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몇 십 년 동안 많은 인기곡들의 커버버전이 녹음되었다. 때로는 인종적으로 다른 스타일로, 때로는 커버버전이 사실상 오리지날과 구분할 수 없는 케이스도 있었다. 예를 들어 ‘Light My Fire’의 호세펠리치아노 Jose Feliciano 버전은 도어스 The Doors 의 오리지날버전과 확실히 구분된다. 그러나 칼칼톤 Carl Carlton 이 1974년에 로버트나잇 Robert Knight 의 1967년의 히트곡 ‘Everlasting Love’를 커버한 곡은 오리지날과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 커버버전은 종종 다른 언어로 녹음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팔코 Falco 가 1982년 독일어로 부른 “Der Kommissar”는 10년 후 애프터더파이어 After the Fire 에 의해 영어로 녹음되었다. 비록 독일어 제목은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말이다. 팔코의 오리지날 가사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은 영어곡은 그러나 오리지날의 정신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고 미국 차트에서 탑5에 들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루이지애나에서 존재했던 특정 타입의 커버버전을 스왐프팝 swamp pop 이라고 한다. 컨템포러리, 클래식 락, 알앤비, 그리고 컨츄리 음악이 Cajun(아카디아(Acadia) 출신 프랑스인의 자손인 루이지애나주의 주민, 앨라배마주미시시피주 남부의 백인과 인디언[흑인]의 혼혈아 : 역자주) 주민들을 염두에 두고 녹음되었다. 몇몇 가사는 프랑스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Cajun 악기로 녹음되기도 했다. 몇몇 스왐프팝은 전국적인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지역의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었다.

커버버전은 때로 익숙한 곡을 최신 취향에 맞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Singin’ In The Rain” 은 원래 1929년 헐리우드의 익살극 영화에 쓰였던 곡이다. 유명한 진켈리 Gene Kelly 버전은 1950년의 헐리우드 뮤지컬을 위해 최신 스타일로 도입되었고 1952년 같은 제목으로 녹음되었다. 1978년 프랑스 가수 쉴라 Sheila 가 비디보션그룹 B. Devotion group 과의 협연으로 한때 뮤지컬 세대의 취향에 맞게 재편된 그 곡을 디스코 풍으로 커버했다. 디스코 전성 시대에 유명한 곡들이 디스코 스타일로 바뀌는 경향이 있었다. 영화 감독 바즈루맨 Baz Luhrmann 은 그의 영화들에 사용하기 위해 옛날 노래들을 현대화시키고 스타일화 시켰다. Strictly Ballroom에서의 존폴영 John Paul Young 의 “Love Is In The Air”, Romeo and Juliet에서의 캔디스테이튼 Candi Staton의 “Young Hearts Run Free”, 그리고 냇킹콜 Nat King Cole, 니르바나 Nirvana, 키쓰 Kiss, 델마휴스턴 Thelma Houston, 마릴린먼로우 Marilyn Monroe, 마돈나 Madonna, 물랭루즈 Moulin Rouge에서의 티렉쓰 T Rex 등의 새로운 커버버전은 각각의 영화의 구조에 맞게 디자인된 것들이다. 그리고 현세의 청중들의 취향에 맞게 재편된 것들이다.

신진 아티스트들은 때로 미국의 아이돌과 국제적인 대응하는 이들에 의해 증명된 유명하고 ‘안전한’ 곡들을 연주하면서 대중에 소개되기도 한다. 기존 아티스트들은 종종 커버버전을 녹음함으로써, 또는 다양한 라이브 공연에서 녹음되지 않는 커버버전을 연주함으로써 그들이 음악경력을 시작하기 전에 그들에게 영감을 미쳤던 아티스트나 노래들에게 경의를 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U2는 아바 ABBA의 Dancing Queen을 라이브로 불렀고 카일리미노그 Kylie Minogue는 클래쉬 The Clash의 “Should I Stay Or Should I Go”를 연주하였다. 이들 곡들은 그들(U2와 카일리 미노그 : 역자주)의 캐릭터와 전혀 맞지 않아서 녹음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라이브를 할때에는 그들은 아티스트적인 자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종종 공인된 ‘라이브 레코딩’으로 발매되어 합법적인 커버버전이 되기도 한다.

펑크 뮤직은 클래식 락을 펑크적 형식으로 재해석하여 기존 곡을 파괴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Me First & the Gimme Gimmes, The Mighty Mighty Bosstones, NOFX, Goldfinger 와 같은 밴드는 그 방면으로 유명하다. 최근 몇 년간 몇몇 잼밴드들과 관련 그룹들이 힙합 음악들을 커버하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연주되고 있다. 아마도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어 상업적으로 발매된 중에 제일 유명한 커버는 스눕더기독 Snoop Doggy Dogg 의 “Gin and Juice”를 the Gourds가 소화해낸 블루글래스 bluegrass 버전일 것이다. 피쉬 Phish, 켈러윌리엄스 Keller Williams 와 같은 아티스트들은 “Rappers Delight” (The Sugarhill Gang), “Baby Got Back” (Sir Mix-A-Lot), 그리고 다른 힙합 곡들을 커버했다.

비틀즈 The Beatles 는 그 어떤 밴드들보다도 많은 커버버전을 가지고 있다. “Yesterday”는 1965년 오리지날이 나온 이래 약 3천 번 커버되었다. 많이 커버버전된 다른 곡들은 리차드베리 Richard Berry 의 악명높은 “Louie Louie”, “Free Bird” (Lynyrd Skynyrd), “No Woman No Cry” (Bob Marley & the Wailers), 밥딜런 Bob Dylan 과 레오나드코헨 Leonard Cohen 의 예전 곡들 많은 부분들이 있다(2002년 12월 31일 현재 레오나드코헨의 곡 중 공식적으로 커버된 곡의 수는 759곡이다).

많은 유명밴드들이 전적으로 다양한 다른 밴드들에 의해 자신들의 곡이 다시 불려진 – 때로 오리지날과 전혀 다른 – 트리뷰트 앨범을 가지고 있다. 영화 I Am Sam 의 사운드트랙은 이와 관련 특히 유명한 사례이다. 이 앨범은 다양한 모던락 아티스트들에 의해 커버된 비틀즈 트랙을 싣고 있다. 또다른 유명한 사례는 Conception – 스티비원더  Stevie Wonder 와 그의 mentee India. Arie에 의해 불려진 오리지날 곡들을 커버한 곡들로 구성된 – 스티비 원더의 곡을 재해석한 – Conception 이다.

피시나 그레이트풀데드 The Grateful Dead 와 같은 잼밴드는 스튜디오가 아닌 콘서트에서 커버하기로 유명하다.

몇몇 상업적으로 성공하거나 유명한 커버버전은 노래 제목, 오리지날 아티스트, 오리지날 버전의 발매년도가 커버한 아티스트와 발매연도에 따라오기도 한다.

80년대 음악과 가수에 대한 사소한 사실들

Flock of Seagulls
Flock of Seagulls은 익조틱한 헤어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룹의 리드싱어는 그룹 조직하기 전에 헤어드레서였다.

Sting
스팅은 Dire Stratits의 Money For Nothing에서 “I want my Mtv” 부분을 불렀다.

Bow Wow Wow
그들은 멤버 한명을 그룹에서 떠나줄것을 요청했다. 왜냐하면 그는 너무 직설적이었고 그룹의 이미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Boy George이다.

Johnny Hates Jazz
리드싱어 Phil Thomalley는 The Cure의 초기멤버였다.

Icehouse
그들의 히트곡 Electric Blue는 John Oates가 공동작곡했다.

Wham
그들의 히트곡 The Edge Of Heaven의 피아노는 Elton John이 담당했다.

U2
그들의 최고 히트앨범 The Joshua Tree는 원래 The Two Americas로 이름지으려 했다. 그러나 멤버들이 내쇼날파크에서 여호수아 나무의 사진을 찍은 후 그들의 맘을 바꿨다.

Chaka Kahn
그녀의 최고의 히트싱글 I Feel For You는 Prince가 작곡하였다. 또한 이 곡의 하모니카 솔로는 Stevie Wonder가 소화해냈다.

Madonna
그녀는 1982년 The Breakfast Club이란 밴드의 리드싱어였다.

Robert Palmer
그의 히트싱글 Addicted to Love는 원래 Chaka Kahn과의 듀엣곡이었다.

New Order
그들의 싱글 Don’t Do It의 끝부분에 영화 엑소시스트의 대사 일부분을 백워드하여 삽입하였다.

The Cure
큐어의 키보디스트인 Roger는 한때 Thompson Twins에 몸담았다.

The Police
교사에서 가수로 전업한 스팅이 처음 몸담은 그룹 이름은 Last Exite였다.

Janet Jackson
무명시절 그녀는 “페임” TV 씨리즈에서 댄써였다.

Siouxie and the Banshees
큐어의 로버트스미쓰는 때때로 이 밴드의 드럼을 맡았다.

Depeche Mode
프랑스어로 Depeche Mode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패션잡지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그 뜻은 ‘빠른 패션(?)(fast fashion)’이다.

Art of Noise
1989년에 Tom Jones와 팀을 이룬 Art Of Noise는 Prince의 Kiss를 리메이크했다. 역시 1990년에는 Nothing Compares To You를 리메이크했고 커버버젼이 오리지날보다 더 팔렸다.

Heaven 17
Heaven 17은 1980년 결성되었는데 처음 그들의 이름은 A Clockwork Orange였다.

B52’s
그들의 이름은 B52라 불리우는 벌집 모양의 헤어스타일에서 따왔다.

Frankie goes to Hollywood
원래 밴드 이름은 Hollycaust였는데 곧 Frank Sinatra의 영화 인생에 대한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Spandau Ballet
Spandau Ballet가 1990년 해산한 뒤, Gary Kemp는 배우경력을 쌓아나가기 시작했는데 The Bodyguard, The Larry Sanders Show, Embrace of the Vampire 등에 출연하였다.

Duran Duran
Duran Duran이 공연을 하기 시작한 클럽 이름은 Barbarella였다. 클럽의 이름은 Duran Duran 이 그룹의 이름을 따온 바로 그 영화의 이름과 똑같다.

Freddie Mercury 와 Thriller
Freddie Mercury가 Michael Jackson의 Thriller를 위해 한 트랙을 녹음했다는 설이 많았지만 결코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Beat It 의 키타리스트
Michael Jackson의 Beat It 의 키타를 담당했던 사람은 Eddy Van Halen이다.

Kim Wilde
Kim Wilde의 본명은 Kim Smith이다.

Johnny Cougar
John Mellencamp는 예명을 ‘Johnny Cougar’로 바꾼데 대해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그러나 이름을 본명으로 바꾼 뒤 이전만큼의 인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John Cougar Mellencamp라고 바꿨다.

Bananarama/Shakespear’s Sister
1987년에 Bananarama의 전멤버였던 Siobhan Fahey는 Dave Stewart (Eurythmics)와 결혼했다. 뒤에 그녀는Marcella Detroit와 함께 Shakespear’s Sister를 결성했다

Madonna / Like A Virg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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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AVirgin1984” by The cover art can be obtained from Sire Records, Warner Bros. Records..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1985년은 마돈나의 해였다. 그녀는 신나는 댄스음악으로, 성인잡지 “플레이 보이”, “팬트 하우스” 동시 누느사진 폭로와 같은 장외 핫뉴스로 점잖은 팝계를 철저히 굴복시켰다.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보이 토이’라 쓰인 벨트, 배꼽을 드러낸 레이스 의상, 헝클어뜨린 머리 등은 ‘마돈나처럼 되고자 하는 10대 소녀들, 이른바 워너비(wanna-be) 족을 양산했다. 그들뿐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오랜만에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빌린 ‘섹스 여신’의 육탄 공세에 기거이 시선을 집중했다 여가수로서 그녀가 소지한 무기는 가창력이 아니라 발레수업으로 가꾼 몸매와 마치 창녀같은 행위가 선사한 ‘시각적인’ 것들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듣는 음악이 아닌 ‘보는 음악의 시대임으로 그녀는 간파했다.

마돈나를 스타로 키워준 매체는 당시 마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뉴미디어 M-TV였다. 음악 전문 유선방송사 M-TV는 누구보다 비디오적 조건이 우수한 그녀의 섹스 이미지를 빠르게 팬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대담하게 자신의 육체를 내세우는 것이 그렇다고 스타덤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었다. 마돈나는 그러한 ‘인력 활용’을 통해 성적 자유를 주장하는 수준으로까지 그 정당성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많은 여성들에게 성의 자유를 만끽하고 성적 암시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려는 메세지를 설파했다.

” 그대는 날 강하고 대담하게 만드네, 그대의 사랑은 공포와 추위를 녹여주지요. 마치 내가 처녀인 것처럼. 생전 처음 내몸에 손길이 닿는듯….”<처녀처럼>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 의미하는 바는 명료하다. 이 노래에 따르면 아무리 많은 남자관계를 가졌어도 마음만 처녀면 곧 처녀인 것이며 따라서 처녀처럼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얘기가 된다. <처녀처럼>의 빅히트는, 마돈나로 하여금 흥행수표처럼 보증된 ‘섹스’만을 10년 넘게 물고 늘어지게끔 그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마돈나의 성공은 80년대의 시대적 특성도 크게 작용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어떤 남자는 내게 키스하고, 어떤 남자는 날 껴안지. O.K.야. 그런데 그들이 적당한 신용을 주지 않는다면 난 가버리지. 그들은 사정하고 간청하지만 기쁨을 얻을 자격이 없어. 빳빳한 현찰을 가진 사내라야 항상 ‘되는 남자’지. 왜냐하면 우린 물질적 세계에 살기 때문이야. 난 물질적인 여자야.” <물질적인 여자>(Material girl)

이 앨범의 A면 첫곡에 배치하여 작품의 성격을 대변하기도 하는 이 노래는 실로 레이건과 대처의 보수정책이 낳은 금전만능 및 기회주의의 철학을 압축한다. 마이클 잭슨처럼 마돈나 역시 당시의 보수이념에 의해 위력을 발휘한 스타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명프로듀서인 나일 로저스의 역량이 돋보인 음반이기도 하다. 그는 첨단의 스튜디오 기술력을 동원하여 현대적이면서 매우 상업적 색채가 강한 댄스음악을 만들어냈다. ‘상업성의 부여’가 이같은 음반의 핵심이므로 일단 그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일 로저스는 70년대 말 디스코 그룹 쉭의 리더였던 사람. 그가 프로듀스한 작품인 만큼 수록곡 <처녀처럼>, <물질적인 여자> 등에 디스코 리듬이 깔리는 것은 당연했다. 마돈나는 ‘음악적으로도’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임진모)

Tracks

1. Material Girl (Brown/Rans) – 3:56
2. Angel (Bray/Madonna) – 3:53
3. Like a Virgin 루노라쿠스의 뒷이야기 (Kelly/Steinberg) – 3:35
4. Over and Over (Bray/Madonna) – 4:09
5. Love Don’t Live Here Anymore (Gregory) – 4:45
6. Dress You Up (LaRusso/Stanziale) – 3:58
7. Shoo-Bee-Doo (Madonna) – 5:14
8. Pretender (Bray/Madonna) – 4:28
9. Stay (Bray/Madonna) – 4:04

Madonna

A blond woman onstage with curly hair holding a microphone, wearing a black dress
By Tom Lynn – ebay: https://www.ebay.ca/itm/194319052176 Archive: https://archive.ph/TQO4a, Public Domain, Link

마돈나를 한마디로 표현을 하자면 자신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첫 앨범을 발표한 84년부터 지금까지 연예계를 한번에 휘어잡는위력을 발휘하는 몇 안 되는 엔터테이너로서 자신만의 노래와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여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진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80년대 초부터 마이클 잭슨과 함께 뮤직비디오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한 그녀는 자존심,독립성,그리고 솔직함을 무기로 마돈나,자신만의 표현을 하고 있다.

DJ Mark Kamin에 의해 픽업

1958년 8월 16일,미국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로체스터에서 태어난 마돈나 (본명:마돈나 루이즈 베로니카 치치오네)는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계모인 어머니밑에서 8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그녀는 어려서부터 치어리더,피아노 레슨,발레등 춤과 노래에 특출난 재능과 끼를 발휘하여 미시간 주립대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는등 그녀의 실력을 인정받게 된다.

1977년,그녀는 발레를 하기위해서 뉴욕으로 가 도너츠가게 카운터에서 일을 하면서 [Alvin Ailey & Martha Graham]이라는 무용단에 들어가 춤을 추던 중 노래로 방향을 전환.클럽의 인디 밴드에서 피아노와 기타를 연주하면서 자신만의 곡을 만들기 시작한다. 클럽에서도 마돈나의 특이한 음색과 펑키하면서도 과격한 춤실력을 주목 받아 마침내 1982년 Dj Mark Kamin에 픽업되어 ‘Everybody’라는 노래로 클럽에서부터 인기를 얻게 된다.

첫 데뷔 앨범[Madonnna] 1983년에 발표한 그녀의 첫 데뷔 앨범[Madonnna]는 대중들에게 많은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클럽에서만큼은 최고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앨범 수록곡인 ‘Hoilyday’는 방송챠트에 진입을 했고 ‘Borderline’ 은 1984년에 Top10에 들어 17주간동안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Lucky Star’는 차트에 4위로 랭크가 되었는데 그녀의 곡들과 함께 특이하면서도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의상으로 꾸며진 뮤직비디오도주목을 받게 된다.

1984년에 발표된 마돈나의 두 번째 앨범 [Like A Virgin]은 차트에서 정상을 기록하면서 6주간 차트에 머무르게 되는데 1985년 어느 아티스트보다 최고의 음반 판매율을 보이게 된다.1986년에 히트를 기록한 마릴린 먼로에게 헌사한 노래 ‘Material Girl’로 그녀는 투어를 시작했으며 ‘Crazy For You’로 그 해 5월 두 번째 히트곡을 낳게 되면서 영화 [Vison Quest]와[Desperately Seeking Susan]에 출연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해 마돈나는 영화계의 악동,숀펜과 자신의 생일날 결혼을 했으나 행복한 결혼생활도 잠시 4년 후에 숀펜과는 결별을 하게 된다.1987년 그녀의 다섯번째 앨범 ‘Open Your Heart’가 싱글로 발표되고 그녀의 세번째 영화 [Who’s That Girl]의 주제가인 ‘ La Isia Bonita’가 여섯 번째 싱글 앨범으로 정상에 오르게 된다. 파격적인 뮤직비디오 ‘Like A Prayer’와 영화 [Dick Tracy]출연 팝과 락,댄스를 포함한 그녀의 네 번째 앨범인 [Like A Prayer] 슬립 차림의 마돈나가 불 타는 십자가 앞에서 흑인성직자와 키스를 하는 파격적인 화면으로 꾸며진 뮤직비디오와 함께 또 한번 마돈나는 뜨거운 화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4집에 수록된 ‘Express Yourself’,’Cherish’,’Keep It Together’이 싱글 원을 기록하면서마돈나는 1990년 4월부터 12월까지 [Blond Ambition]이라는 타이들로 투어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그리고 90년 5월에는 [Vouge]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웨렌 비티와 영화 [Dick Tracy] 에 출연을 하게된다그녀는 ‘Immaculate Collection’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서는 ‘Justify My Love’와 ‘Rescue Me’ 두 곡이 히트를 하게 되고 ‘Rescue Me’는 미국 여자 가수중에서 차트에 15위로 첫 등장하는 신 기록을 세우게 된다.

1992년 여름,영화 [League of their Own]의 주제가로 사용되기도한 ‘This Used To Be My Playground’ 라는 히트곡을 내놓고 1993년에 발표된 [Erotica]와 1995년에 발표된 [Bedtime Stories]는 플레티넘을 기록하면서 일곱 번째 멀티 플레티넘을 기록하게 된다. 개성파 연기자 마돈나,[에비타]로 골든 글로브 최고 여자 배우상 수상 1996년! 마돈나는 영화 [에비타]에서 주인공을 맡으면서 그녀의 인생에서 잊지못할 한 해를 맞게 된다.마돈나는 에비타에 출연하면서섹시한 이미지에서 엘레강스하면서 지적인 이미지로 탈 바꿈하게 되는데 그 결과 그해 골든 그로브 [Musical or Comedy] 부문에서 최고 여자 배우상을 거머지게 되고 그녀의 트레이너인 카를로스 레온의 딸 [Lourdes]를 출산하게 된다.

마돈나는 1998년 트랜스적인 요소가 강한 [Ray Of Light]를 발표하면서 이미지를 바꾸게 되는데[Ray Of Light ]는 99년, 제41회 그레미 시상식에서 데뷔 이래 처음으로 최고 팝 앨범상,최고 댄스 레코딩상,단편 뮤직비디오상을 받으면서 그간 그래미와 인연이 없는 마돈나에게 세 개의 트로피를 선사하기도 했다.

뮤지션,가수,영화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진 마돈나! 15년동안 마돈나는 전 세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다른 뮤지션들의 대표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그녀는 위대한 가수도 아니고 위대한 배우도 아니지만 항상 새로운 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있고 파격적이면서도 독특한 방법으로 전 세계에 자신만의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tube music

A woman with short blonde hair, wearing a green bra and purple pants, singing to a microphone, held in her left hand.
By ExpressYourselfGirlieShowunderGround2.jpg: Hans Schaftderivative work: GianniG46 – This file was derived from: ExpressYourselfGirlieShowunderGround2.jpg: , CC BY-SA 3.0, Link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여자 돈키호테? 신의 명령으로 가부장제와 정면대 결하는 제2의 잔다르크?

83년 데뷔한 이래 변함없이 대중적 우상의 권좌에 머물러온 마돈나는 어 느 쪽으로 불러도 부족하지 않다. 범인의 눈에 무모하고 비정상으로 비칠 만치 자신의 성적 취향을 공공연하게 떠들어대는가 하면, 그늘에 파묻혔 던 성적 금기를 끄집어내며 고정된 성역할을 파기해나가는 등 마돈나의 행각은 언제나 좌충우돌이다. 한때는 페미니스트들이 열렬하게 찬미하고, 한때는 보수주의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는가 하면 바로 동성애자들의 동지 가 되는 등 그녀의 지지층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모한다. 그 결과 40줄에 접어든 지금에도 마돈나는 ‘성스러운 창녀’의 이미지를 고수한다. 오랜 만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뮤지컬 <에비타>에서 돋보이는 것은 알란 파커의 예리한 연출도,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육감적인 매력도 아닌 생기발랄하고 격정적인 에바 ‘마돈나’ 페론뿐이다.

마돈나의 전기를 쓴 크리스토퍼 앤더슨은 “마돈나 같은 사람은 일찍이 한명도 없었다”라고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1억장의 앨범판매고를 기록했 고, 비틀스보다 많은 28곡의 톱 텐 싱글을 가진 톱 스타라는 사실은 차라 리 평범하다. 마돈나를 유아독존으로 만든 것은 “자아, 미워해봐요!”라 는 신조처럼 세인들에게 정서적 충격을 안기고, 심리적 혼돈을 일으켜온 반사회적 태도 때문이었다. <진실 혹은 대담>에서 그녀는 “내가 최고의 가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최고의 댄서가 아니라는 것도요. 그 런 것은 아무래도 좋아요.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을 화나 게 하는 것이니까요”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마돈나는 자신의 흥밋거리를 채우기 위하여 부유한 중서부 출신의 우등생에서 남성의 노리개인 보이토 이(Boy Toy), 남성을 유혹하는 금발의 머티리얼 걸(Material Girl), 네글 리제를 입은 가톨릭 신자 등으로 변신해왔다.

80년대와 90년대의 문화산업을 관통하는 유일한 엔터테이너. 부도덕한 이성과 합리적인 육체의 합일

마돈나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명하다. 동시에 마돈나는 감정적이고 제멋 대로다. 그녀는 ‘에비타’처럼 성녀와 창녀의 이미지를 동시에 구현해왔 다. 남성과 여성을 하나의 몸속에 실어, 자웅동체의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상반된 것을 하나에 집어넣어 조화를 이루 어내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다. 섹스를 할 때 채찍을 맞거나 쇠 사슬로 침대에 묶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공언하면서도 십대 미혼모를 두둔 하고, 성스러운 의식과 성물을 노골적으로 훼손하면서도 스스로 가톨릭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등 마돈나는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면서도 10년이 넘도 록 수많은 대중을 자신의 팬으로 거느리고 다닌다. 마돈나는 언제 자신이 변해야 하는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실천해 왔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그건 서구문 명의 잘못일 뿐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세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것 이 바로 미국의 하버드, 뉴욕주립대 등 수많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대중 문화’‘여성’‘동성애’등의 주제어로 마돈나를 연구하는 이유이다.

지금이 80년대라면 마돈나는 소비문화주의에 편승한 대중스타, 대중의 호 기심과 반발심을 교묘하게 자극하여 상품을 팔아먹는 사기꾼 정도로 취급 되고 말았을런지도 모른다. 영화, 음악 등등의 대중예술이 60년대에 키워 왔던 자신의 아우라를 잃어버린 80년대에 마돈나는 대중소비문화의 화려 한 상징이었다. 83년 <럭키 스타> (Lucky Star)를 불렀을 때 마돈나가 직 접 코디한 의상의 벨트에는 보이 토이(Boy Toy)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 어느 날 보이 토이를 아무런 생각없이 머리에 떠올렸어요. 벽에 휘갈겨 썼더니 모두들 재미있어 했어요. 남자의 장난감! 그건 그냥 하는 말이고 참뜻은 거꾸로라구요”라고 마돈나는 말했지만 대중은 그녀를 ‘장난감’ 으로 인식했다. 마돈나도 그걸 이용했다. 84년 <라이크 어 버진>(Like a Virgin)에 이어진 <머티리얼 걸>(Material Girl)에서 마돈나는 먼로를 흉 내낸다. “현찰을 갖고 있는 사내는 언제나 여자의 이상형이지요”라는 말처럼 마돈나는 소비를 부추기고, 탐닉하는 여인상을 보여주었다.

늘어뜨린 십자가와 묵주, 살짝살짝 보이는 배꼽과 토이 벨트 등을 가리켜 <타임>은 “전혀 성스럽지 못한 성물들을 선전하고 있는 것 같다”며 “ 쇼핑몰 문화의 산물”이라고 비난했다. 80년대 중반 마돈나에 대한 평가 는 혹독했다. “마돈나가 풍기는 이미지는 요컨대 음탕한 여자이다. 가장 비싸게 사주는 손님에게 몸을 주는 거리의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 섹스와 종교를 기괴하게 뒤섞어놓아 인간의 정신성을 비웃고 있다”고 말하는 대 학교수가 있는가 하면 <빌보드>에서는 “마돈나는 음악계에서 6개월 안에 쫓겨날 것이다. 그녀의 인상이 노래에 십분 반영되고 있으니까”라고 노 골적으로 비꼬았다. <피플> 정도가 비교적 냉정했다. “마돈나는 창녀지 만 그 맛은 달콤하다. 그녀는 통속적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녀의 개성 자체는 하나의 팝 아트가 되어버린다.”

충격적인 사진집 <섹스>의 출판기념회. 동성애자의 벗, 마돈나?

그러나 마돈나는 80년대 후반 보통사람들의 어설픈 기대를 멋지게 뒤집어 버린다. 숀펜과 사랑에 빠져있던 86년 발표한 ‘트루 블루’(True Blue) 란 앨범은 “그녀야말로 팝음악이다. 복잡하면서도 소박하다. 팝의 표면 적인 매력은 물론 그 밑바닥에 깔린 정신과 에너지와 감정을 잘 알고 있 다”“외모와 음악이 더욱 원숙해진 마돈나는 신랄한 평론가의 마음까지 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등의 호평을 받는다. 더 나아가 마돈나는 자신의 육체를 변화시킨다. <배니티 페어>에서는 “철저한 채식과 하루에 5천m씩 달리는 운동으로 마돈나가 사춘기의 유아비만을 근육으로 변신시 켰다”고 보도했다. “뚱뚱하던 소녀가 매력적인 여왕이 되었다. 매춘부 와 같은 모습에서 세련된 은막의 요부로 눈부시게 다시 태어난 그녀의 온 몸에서는 어떤 메시지가 전해진다… 그토록 오랫동안 비어있던 금발 야심 가의 왕관을 물려받을 장본인”이 마돈나라는 것이다.

함께 발표된 뮤직 비디오 ‘파파 돈 프리치’(Papa Don’t Preach)는 새로 운 출발점이 되었다. 임신한 십대소녀가 아이를 낳는 것을 인정해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하는 이 노래는 마돈나에게 적대적이던 보수적인 중절 반 대파가 지지를 보내는 이변을 낳았다. 반면 <오픈 유어 하트>(Open Your Heart)는 낭만적이면서도 야한 성적 몽상을 보여준다. <뉴욕 타임스>의 영화평론가 제임스 캔비는 “단 4분 22초 안에 사춘기 소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달콤하고 외설적인 환상이 가득 담겨 있다. 익살맞으면서 섹시한 불멸의 소곡이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당연히 마돈나는 MTV 최고의 시청 률을 올리게 되었고 마이클 잭슨과 함께 MTV의 수호자가 되었다.

정상에 오른 마돈나는 89년 ‘라이크 어 프레이어’(Like a Prayer) 란 앨범을 발매하면서 더욱 도전적이 된다. <롤링 스톤>의 “팝음악으로서 가장 예술에 접근했다. ‘라이크 어 프레이어’는 마돈나를 아티스트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 그녀는 인간의 마음을 가장 깊이 드러내주는 목소리의 소유자이다”라는 평은 차라리 상투적이었다. 뮤직비디오 ‘라 이크 어 프레이어’는 남부의 백인처녀가 성가대원인 흑인청년과 사랑에 빠지고, 도망가는 두 사람을 KKK단이 등 뒤에서 쏜다는 이야기다. 인종적 , 종교적 문제를 암시하는 이 비디오는 내용 자체보다도 불타는 십자가 등의 상징 때문에 더욱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이건 시작이었다. <익스프 레스 유어셀프>(Express Yourself)는 평범한 가사와 별개로 <메트로폴리 스>에서 영감을 얻은 미래의 풍경에서 사디즘적인 환상을 표현한다. 그리 고 당당하게 말한다. “<익스프레스 유어셀프>의 주제는 음부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라고.

페미니스트에게 공격받은, 쇠사슬에 매여 테이블 밑을 기어다니는 장면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제 자신을 쇠사슬에 맨 거예요. 남자가 묶 은 것이 아니라구요. 내 욕망을 붙들어맨 거죠. 내 테이블 밑에서 내가 기어다닌 겁니다. 남자에게 명령받은 것이 아니라구요. 모든 것을 내 맘 대로 한 거예요.” 마돈나는 “내 노래에 하나의 메시지가 있다면 그건 당신의 꿈을 믿으라는 것이다. 너 자신을 표현하라”고 말한다. 마돈나가 페미니스트와 때로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전적으로 합치하는 모순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불쌍한 사람은 자신의 쾌락도 남의 허락을 얻어 구하는 사람”이라는 말처럼 마돈나는 스스로 쾌락을 쟁취할 것을 주장하 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을 노래하고, 춤추는 모든 것으로 표현한다. 마 돈나는 ‘블론드 앰비션’(Blonde Ambition) 세계순회공연을 앞두고 안무 가를 마이클 잭슨의 밴드 공연을 맡았던 빈스 패터슨으로 교체한다. 마돈 나가 그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모든 법칙을 깨트리는 거야. 섹스와 자위 등에 대해서 가톨릭 교회로부터 강요된 죄의식을 없애는 의 식은 물론 지금부터는 아버지든 교황이든 모든 남성권위와 싸워나가야만 해.”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계획없는 좌충우돌은 아님이 분명하다. <저스티파 이 마이 러브>(Justify My Love)는 양성연애, 복장 도착, 엿보기와 사디 즘의 집대성으로 MTV에서 방영금지처분을 받는다. 그러자 마돈나는 ABC의 뉴스 프로그램 ‘나이트 라인’에 출연해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으므로 스 스로 섹시해지는 것을 선택한다며 자신이 90년대 페미니즘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 당돌한 선언에 대하여 <뉴욕 타임스>는 “마돈나 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자기 일을 빈틈없이 통제할 수 있다. 그것이 <저스 티파이 마이 러브>에 담긴 페미니즘적인 메시지이다. 수백만명의 사람들 이 그 메시지를 알아들었다”라며 옹호한다. 마돈나에게 <저스티파이 마 이 러브>로 검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각광을 받으려는 속셈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가 마돈나를 “미국에서도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류 실업가” “부도덕에 걸맞은 머리와 사업에 걸 맞은 육체를 지닌 여자”라고 부른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포브스>는 마돈나가 수년에 걸쳐 정상을 달린 것은 그녀가 해마다 자신을 혁신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90년 ‘중상비방에 대항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연맹’(GLAAD)에서는 마돈 나에게 미디어상을 주었다. 또한 보스턴 ‘게이 공동체 뉴스’에서는 마 돈나의 ‘블론드 앰비션’순회공연을 “이성애적 언어의 옷을 입고 있지 만 남자연인을 여자 짝으로 바꾸라고 속삭이며 은연중에 레즈비언을 권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이 100>에서 폴 러셀은 마돈나는 “동성애뿐 아니라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성역할과 성 에 대한 뿌리깊은 고정관념을 타파함으로써 게이와 레즈비언에게 좀더 진 보적이고 관대한 사회풍토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마돈나는 동성애라는 정체성과 스타일로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마저도 마돈나에게 찬탄을 불러 일으키는 이유가 된다. 요즘 미국에서 ‘포스트 게이’라는 개념은 고정 적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따라 자유롭게 이성과 동성을 사랑하는 성적 태도를 일컫는다. “성의 구별에서 해방된 섹스는 구속을 없애버린다. 남 자든 여자든 지배하거나 복종하는 자유를 가져다 준다. 남자가 여자 복장 을 해도 좋고, 여자가 남자 복장을 해도 상관없다. 자신의 다른 측면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니까”라는 말처럼 마돈나는 자유로운 양성연애를 공적으로 과시하고 다닌 지 오래이다.

마돈나의 변신은 90년대에도 여전하다. 92년의 앨범‘에로티카’(Erotica )와 94년에 발표된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는 자신이 가진 양면을 표현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자가 어두운 면이라면 후자는 그 반대 라는 것. ‘베드타임 스토리’는 “비틀스보다 슈프림스에 더 열광했다” 는 고백처럼 리듬 앤 블루스에 근접하며 진솔한 감정을 깊게 드러낸다. 그리고는 95년에 발라드 베스트 모음집인 ‘섬싱 투 리멤버’(Something to Remember)란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의 첫 곡은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분노와 개인의 관능적 욕구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요절한 천재적인 솔 가 수 마빈 게이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아이 원트 유>(I Want You)이다. <테 이크 어 바우>(Take A Bow) <율 시>(You’ll See) <아이 원트 유>로 이어 지는 발라드 히트곡의 뮤직비디오연작에서 마돈나는 사랑의 아픔에 상처 받으면서도 주체적으로 자신을 지켜나가는 관능적인 여인상을 선보인다.

한때 대통령의 부인, 대법원 여판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의 가장 유력한 여성 중 하나였던 마돈나는 그러나,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자신을 추스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발라드를 노래하고, 반사회적인 태도를 함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마돈나의 타협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에서 엄청나게 섹시한 여자는 못된 암캐나 위험한 인물로 취급받게 마련이죠.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에요”라고 말하던 마돈나가 어디로 가버렸을 수는 없으니 까. 마돈나의 기이한 몸짓과 충격적인 말, 행동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우 발적인 것이 아니다. 모두가 치밀한 계산 아래 미리 짜놓은 연출의 결과 인 것이다. <진실 혹은 대담>에서 자신의 섹스까지도 공개하던 마돈나가 절대로 찍지 못하게한 만남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거느린 영화사, 음반 사, 출판사의 관계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마돈나는 절대로 대중이 자신 의 사업가적 면모를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고, 자신을 ‘충동적인 암캐’ 로 바라보기를 원했다. “사람들은 나를 욕하거나 비난하는 것만큼 나에 게 관심이 쏠려있”다는 것이다.

그 치밀한 판단이 마돈나를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만들었다. 마돈나 는 여성이 남성을 성적으로 지배하던 시대로 되돌려놓았고, 성적 쾌락을 자기 자신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8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성장 한 문화산업의 논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자리를 매김한 것이었 다. 마이클 잭슨이 아직 피터팬에 머무르며 ‘네버랜드’에 숨어있을 때, 마돈나는 여신이 되어 남성들의 사회 한복판에 ‘성의 구별에서 해방된 소돔’을 만든 것이다. 마돈나는 충실하게 우리 시대의 모순과 혼란을 드 러내는 거울을 넘어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얼굴을 직면하게 만드는 요술거 울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 점까지도, 마돈나와 진실없는 우리 시대는 너무나 닮아 있다.

김봉석 기자 
Copyright 한겨레신문사 1997년01월21일

디스코그래피
Madonna (1983)
Like a Virgin (1984)
True Blue (1986)
Like a Prayer (1989)
Erotica (1992)
Bedtime Stories (1994)
Ray of Light (1998)
Music (2000)
American Life (2003)
Confessions on a Dance Floor (2005)
Hard Candy (2008)
MDNA (2012)
Rebel Heart (2015)
Madame X (2019)

링크
Official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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