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感想文

예술, 그 중에서도 미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재능이 미술을 미술답게 하고 우리에게 예술적 쾌감을 안겨주는가? 이러한 질문은, 예를 들면 마르셀 뒤쌍의 작품 ‘샘(Fountain)’을 대할 때 더욱 대답하기 난감해진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를 볼 때에는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이던 것이 ‘샘’과 같은 현대의 추상예술에 접어들면 흐릿해지는 것이다.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는 이런 현대미술의 모호함을 고발한 책이기도 하다.

한편 언젠가부터 이러한 제도권의 위선을 비웃으며 미술계의 ‘힙합전사’가 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친 거리의 청년들이 극장의 호화스러운 무대에서 우아한 춤을 추는 대신에 거리에서 골판지를 깔아놓고 힙합댄스(또는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것처럼, 일군의 예술가들은 거리의 벽이나 광고판에 불법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놓기 시작한다. 그런 예술가들 중에서 내가 알게 된 최초의 거리예술가는 아마도 장 미쉘 바스키아였던 것 같다.

바스키아의 현란한 색채감과 절제되지 않은 형태의 자유분방한 작품을 접한 제도권은 그에게 ‘검은 피카소’란 별명을 지어줬고, 이윤극대화를 위해 그의 재능을 빠른 속도로 확대재생산한다. 결국 그는 그러한 고통스러운 작품‘공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착취당하며 괴로워하다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만, 거리 예술가는 그 이후에도 꾸준히 명맥을 이어간다. 그리고 한 프랑스인이 이러한 거리의 삶을 아무 생각 없이 필름에 담기 시작한다.

스스로가 거리 예술가인 뱅시(Banksy)가 감독했다는 다큐멘터리(2010년)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Exit Through The Gift Shop)’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티에리 구에타(Thierry Guetta)가 바로 그 사람이다. 영화는 어릴 적 경험한 엄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모든 것을 비디오로 기록해야만 성이 풀리는 집착증을 가지게 된 티에리가 어떻게 거리 예술가의 모습을 찍게 되었고, 뱅시를 만나게 되었고, 뱅시의 권유에 따라 스스로 거리 예술가가 되어 “상업적으로” 성공하는지를 경쾌하지만 냉소적인 유머감각으로 조명하고 있다.

다큐에 따르면 원래 뱅시는 그가 기획한 미국에서의 전시회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고, 또 다시 거리예술이 제도권의 상업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을 보면서, 거리예술의 진정한 모습을 티에리의 기록물을 통해 알리기 위해 티에리에게 기록물을 편집해 작품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티에리의 재앙 수준의 작품에 넋을 잃은 뱅시가 작품의도를 완전히 바꾸고 티에리의 자료를 기초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면서 이 영화가 탄생하게 된다.

즉, 뱅시의 권유에 따라 티에리 스스로가 전시회를 기획하고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이 과정이 제도권 미술계의 허영심에 찌든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을 간파한 뱅시가 작품을 거리예술에 대한 소개 다큐가 아닌 거리예술을 기록하고 다니던 티에리의 인생역전 드라마로 바꿔 버린다. 이를 통해 그는 다다이즘, 바스키아, 그리고 뱅시 그 자신 등, 미술계의 연속되는 사기극이 티에리에 이르러서도 반복재생되고 있음을 고발한다.

특히 티에리가 존경하는 뱅시의 권유에 따라 기획한 전시회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하여 어이없는 대규모의 전시회로 만들고, 구인모집을 통해 작품을 제작할 기술자들을 모집하고 – 마치 다큐에 언급된 데미안 허스트처럼 – , 전시장을 기존의 팝아트를 포토샵으로 변형시킨 작품으로 메워가는 과정이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재생산 도식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사기극의 극적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예술의 자판기 수준이랄까?

예술적 재능과 관련 없는 티에리의 성공에 대해 뱅시 등 거리예술가들은 씁쓸한 미소를 짓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티에리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이룬 성공에 흡족해 한다. 작품구입자들은 티에리의 작품이 어떤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건 간에 다음 거래에서 만족할만한 투자수익을 거두기만 하면 되니까, 어쨌든 이 예술계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채권은 시장이 폭발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보관되거나 유통될 것이다.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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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Mitchell, CC BY-SA 4.0, Link

출처는 모릅니다 http://myhome.naver.com/ouimoi/favorite/80년대사건.htm 라는 링크가 남아 있긴 한데, 지금 열어보니 더 이상 서비스를 하지 않는 페이지라는군요. 누군가 예전에 “음악세계”란 잡지에서 본 것 같다는 코멘트를 달아놓기도 했네요. 여하튼 저작권이 있으신 분이 있으시면 연락주시고요. 이 중 몇 개나 동의하시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도 재밌겠네요.

Pop Events Of The Decade (80년대 팝계의 20대 사건)

1. 1980-핑크 플로이드의 화제작 「벽」

1980년 최대의 화제작은 핑크 플로이드의 「벽」(The Wall)이었다. 67년 데뷔작 「여명의 문 앞에 선 풍적수」(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를 발표한 이래 핑크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으로 팬들은 물론이고 아티스들에게도 음악적인 영향을 미쳤다. 73년 「달의 어두운 면」(Dark Side Of The Moon) 이래 최대의 앨범이라는「벽」은 15주간 차트 정상을 차지했는데, 82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또 다시 핑크 플로이드 열풍을 몰고 오기도 했다. 앨런 파커 감독의 이 영화는 당시로선 최장시간의 록영화였다. 라이브 에이드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봅 겔도프가 주연한 이 영화는 록 스타의 정신적인 붕괴를 다룬 것이다. 영화 속에 나오는 애니메이션은 정치만화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제럴드 스카프의 작품.

2. 1980-존 레논 흉탄에 쓰러지다

비틀즈의 존 레논이 80년 12월 8일 뉴욕에 있는 다코타 아파트에서 마크 채프먼이라는 사내의 총탄에 쓰러졌다.  80년 11월, 5년 동안의 침묵을 깨며 그는 앨범 「이중 환상」(Double Fantasy)을 발표하여 팬들을 설레게 했었다. 싱글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Just Like> Starting Over)은 그의 죽음 이후 차트 1위에 올라 사람들을 더욱 애석하게 했다. 비틀즈 시절 “우리는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말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존은 60년대 팝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만함 속에 번득이는 예지등으로 그의 개성은 더욱 팬들에게 어필되었고, 65년 비틀즈 멤버로서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3. 1981-MTV의 영향

1981년 8월 미국의 어느 케이블 방송국은 24시간 동안 음악만을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MTV(Music Televison)이다. 75년 일본의 소니사에 의해 비디오가 대중화될 때부터 MTV의 출현은 이미 예상되었는데, 디스크의 소리에 TV의 화면을 접목시킨 것이었다. 노래를 듣고, 거기에다 보기까지 하니 음악의 내용도 상당히 변하게 되었다.  MTV는 뉴 웨이브 가수들의 출현을 앞당기기도 했다. 듀란 듀란, 컬처 클럽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70년대 통신기기의 대변혁인 비디오가 음악에 미친 영향은 바로 MTV의 출현이었다.

첫 시작을 알린 비디오는 그 유명한 The Buggles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

4. 1981-뉴웨이브의 기수들

뉴웨이브라는 말처럼 뜻이 다양하고 복잡한 용어도 드물 것이다. 70년대 말 펑크와 디스코, 그리고 기존 록의 혼합물을 뉴웨이브라고 부르는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기계적으로는 MTV의 등장이 뉴 웨이브의 출현을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70년대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80년대의 요구에 맞춘 것이 뉴 웨이브라고 보는데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대중적인 기반은 1981년 블론디였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고 멘 앳 워크. 폴리스. 유리쓰믹스. 컬처 클럽. 듀란 듀란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감각적인 사운드, 현대적인 감각의 화장 및 분장 그리고 환상적인 패션 등이 그들의 개성이기도 했다. 70년대 말의 파괴적인 펑크 시대 이후 찾아온 대중 음악, 그것이 뉴 웨이브였다.

5. 1982-CD 및 LPD의 개발

디스크와 TV의 만남이 MTV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각과 청각의 동시 해결이라는 요구는 풀렸지만 그 질(質)이 문제였다. 먼저 원음(原音)에 가까운 소리를 듣고자 했다. 그것이 CD(Compact Disk)이다. 일본의 소니사와 네덜란드 필립스사는 82년 CD발매를 개시했다. 광통신(光通信)의 발전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았다. 화면도 실물에 가까운 생생한 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이  LDP(Laservision Disk Player)이다. 83년 일본의 파이오니어사는 LDP를 시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MTV가 제공하는 음악의 발전 단계가 LDP인 것이다. 이제 팬들은 생생한 소리와 화면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비디오의 등장처럼 LDP가 음악계의 흐름을 뒤집진 못하고 있다. 지금은 초기 단계다. LDP의 대중화는 비디오에 못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결국 LDP는 단명하고 말았고 현재는 DVD가 대세죠 : 옮긴 이 주)

6. 1982-80년대의 음악 뉴 에이지

80년대 들어 태동한 두 가지 음악 장르라면 뉴 에이지와 랩이다. 80년대 초부터 ‘뉴 에이지’ 또는 ‘환경음악'(주로 일본) 등으로 불린 이 음악은 동양적인 명상음악이라는데 특징이 있었다. 굳이 뉴 에이지를 82년의 사건으로 잡는데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만, 뉴 에이지라는 음악을 대중화시킨 조지 윈스턴의 활동을 기초로 했다. 80년 조지는 「가을」(Autumn), 「겨울에서 봄으로」(Winter Into Spring),「12월」(December)등을 발표했다. 위의 앨범이 꾸준히 팬들의 사랑을 받아 83년 초 빌보드 재즈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한편 반젤리스는 82년 <불의 마차 ‘(Chariots Of Fire)라는 영화음악으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반젤리스가 뉴에이지? : 옮긴 이의 의문) 이때부터 뉴 에이지는 그
독립성을 인정받아 87년 최초의 뉴 에이지 그래미 수상자 안드레아스 플렌바이더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CD의 보급은 뉴 에이지를 전파하는 데 큰 몫을 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되겠다.

7. 1983-80년대의 대표적인 뮤지션 마이클 잭슨

지금도 팬들에겐 <빌리 진>(Billie Jean)의 전주 부분이 귀에 생생할 것이다. 83년 팝계를 휩쓸어 버린 수퍼스타가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당시만 해도 흑인 가수의 방영을 꺼리던 MTV에 그는 백인에 가까운 성형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영화감독 존 랜디스 (“블루스 브러더스”<Blues Brother>의 감독)를 영입하여 만든 비디오 <비트 잇>(Beat It)은 마이클을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모타운 설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보여준 그의 춤 솜씨와 퀸시 존스에 의해 프로듀스된 앨범 「스릴러」(Thriller)의 펑키한 사운드, 그리고 백인에 가까운 분장 등은 MTV의 장점을 가장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앨범에선 싱글 톱10이 7곡이었는데, 덕분에 마이클 잭슨은 그 해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8. 1983-온 거리를 뒤흔든 브레이크 댄스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 뒤로 걷는 댄스 스텝은 팝계의 또 다른 화제거리였다. 길거리에서도 그를 흉내내는 청소년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았다. 관절을 비틀어 대는 춤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는 기사들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이름하여 브레이크 댄스 열기였다. 이 좋은 소재를 영화계에서 놓칠리가 없었다. 83년 애드리언 라인 감독의 “플래시댄스”(Flashdance)가 바로 그것이다.  제니퍼 빌스 주연의 이 영화는 황당한 스토리를 지닌 것이었지만 디스코 작곡가로 유명한 조르지오 모로더의 음악 덕분에 흥행에 성공한 영화였다. 특히 아이린카라가 부른 <플래시댄스>와 <신나는 기분> (Flashdance What A Feeling)(이 노래가 언제부터 두곡이었을까나… : 옮긴 이의 의문)은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았다. 이 영화 이후 댄스 음악은 영화에서 주요한 위치를 갖기 시작했다.

9. 1984-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열기

84년은 유난히 뛰어난 앨범이 많이 발표된 해였다. 한 앨범이 계속해서 1위에 머무는 바람에 1년(약52주) 동안 4개의 앨범만이 넘버원을 차지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프린스의 해라고 해도 좋을 시기였다. ‘보스'(브루스)는 70년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였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Born In The U.S.A) 앨범으로 대중적인 기반도 확실히 다지게 되었다. 「끝없는 질주」(Born To Run)로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한 그는 그 해 타임, 뉴스위크 양 잡지의 표지인물로 선정되기도했다. 80년 「강」(The River)으로 앨범 1위를 기록한 그는 수작 「네브라스카」 Nebraska) 이후 84년 「미국에서 태어나」를 발표했다. 재킷에 노동자 복장 차림의 사람이 성조기를 향해 오줌을 누고 있는 듯한 자세 때문에 말도 많았지만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기도 한 문제의 앨범이었다.

10. 1984-미네아폴리스 사단의 리더 프린스

TV 드라마 “배트맨”(Batman)의 주제곡을 열심히 피아노로 연주하던 소년이 바로 영화 “배트맨”의 사운드트랙을 맡았던 프린스이다. 1984년은 한 마디로 보스와 프린스의 해였다. 특히 프린스는 작곡, 작사, 프로듀서, 싱어를 겸하는 만능 재주꾼으로 83년의 마이클 잭슨 열기를 뒤엎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70년대에 데이비드 보위가 새로운 음악의 창조를 위해 노력했다면 80년대는 단연 프린스였다. 그는 「심홍색 비」(Purple Rain) 한 장의 앨범으로 표현된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스타 제조기이기도 하다. 배내티와 아폴로니아가 프린스 사단 출신이며, 실라E. 차카 칸. 마돈나. 시나 이스턴 등 그가 후원한 가수는 수도 없이 많다.

11. 1985-만능 엔터테이너 마돈나

80년대 최고의 여성 가수로 마돈나를 지목하기에 주저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1985년 마돈나는 「처녀처럼」(Like A Virgin)으로 전 세계 팝 팬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듀란 듀란의 프로듀서로도 유명한 나일 로저스. 미모와 섹시함 그리고 가수로서의 가창력과 춤 등이 그녀를 수퍼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MTV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녀는 MTV 등장 이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88년에는 브로드웨이 연극에도 출연하여 화제를 몰고 온 그녀는 영화배우 숀 펜과의 결혼 생활을 끝내는 등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지만, 올해 「기도처럼」(Like A Prayer)을 발표하며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였다.

12. 1985-이디오피아 난민구호 ‘라이브 에이드‘

85년 7월 13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구장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존 F. 케네디 구장에서 동시에 대규모 콘서트인 ‘라이브 에이드'(Live Aid)가 개최되었다. 이디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자선공연이었다. 장장 16시간의 공연, 200여명의 아티스트 출연, 430억의 자선 기금, 세계 140개국에의 15억 시청자 등등 종래의 모든 기록을 깨버린 행사였다. 영국의 록 그룹 붐 타운 래츠의 리더 봅 겔도프는 이 행사를 개최한 공로로 그 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라이브 에이드’는 우드스톡 이후 최대의 공연이었으며, 이 행사에 자극받아 해리 벨라폰테는 ‘우리는 곧 세계'(We Are The World) 라는 앨범(We are the world는 라이브에이드 이전에 나오지 않았나요? : 옮긴 이의 의문)을 제작하기도 했다. 프로듀서는 퀸시 존스. 빌보드 차트 1위 및 그래미상 수상의 영광도 안은 앨범이었다.

13. 1981-뉴 웨이브의 기수들

뉴 웨이브의 열기, MTV의 등장 그리고 아티스트의 개성 등이 그 시대와 딱 들어맞은 뮤지션이 왬이었다.  조지 마이클과 앤드류 리즐리로 구성된 이 영국 듀오는 1984년 <떠나기 전에 깨워주오>(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싱글 차트 1위에 올려 놓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1985년 중국 공연까지 벌였던 그들은 특히 여성 팬들의 우상이었다.  준수한 외모와 로맨틱한 노래로 국내에서의 인기도 대단했는데 85년 <경솔한 속삭임>(Careless Whisper)은 아마 팝 팬들에게 많은 추억을 준 곡으로 짐작된다. 흑인의 소울을 팝 감각으로 소화시켜 자신들의 개성을 구축했던 이들은 2집 「크게 해봐」(Make It Big)의 성공 이후, 끝없이 해체설이 돌다 결국 86년 헤어지고 말았다.

14. 1986-앰네스티 로큰롤 순회공연 개시

86년 ‘앰네스티’라는 단체가 뉴스에 종종 오르내렸다.’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라는 이 단체는 각국의 탄압받는 양심수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61년에 조직되었다. 온 세계에 이 단체의 존재를 명확하게 알리는 데는 록 스타들의 역할이 컸다. 앰네스티 미국 지부의 잭 힐리라는 사람은 85년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의 위력을 실감한 뒤 대규모 록 행사를 계획했다. 86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개최되었던 이 행사에서 U2와 스팅 등은 자신들의 개성을 팝 팬들에게 강력히 심어 주기도 했다. U2는 이 행사로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는 1987년 ‘여호수아 나무'(The Joshua Tree)로 나타났다. 1988년 ‘지금 인권을'(Human Rights, Now!)공연으로 이 행사는 맥을 잇고 있다.

15. 1987-미래의 검은 로큰롤 랩

50년대 로큰롤이 등장했을 때 젊은이들의 호응은 열광적이었지만 기성세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춤, 가사, 창법 등으로 젊은이들을 흥분시켰던 로큰롤은 기성세대들이 보기엔 천박한 잡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후 로큰롤은 대중음악의 주류가 되었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랩에서 로큰롤이 가졌던 의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80년대 중반 흑인들 사이에서 랩이 퍼지기 시작했다. 마구 지껄이는 폭력적인 가사, 반복되는 리듬 등으로 일반 팬들을 어리둥절하게 하던 음악이 랩이었다. 86년 런-DMC에 의해 랩의 저변이 확대되기 시작하더니 87년 드디어 백인 래퍼 3인조 비스티 보이스의 「살인 허가」(Licenced To Kill)가 앨범 차트 1위에 올라섰다. 뉴 에이지와 함께 80년대에 탄생한 장르로 새로이 위치를 굳힌 랩은 올해 톤 록이라는 또 다른 스타를 내기도 했다.

16. 1987-로큰롤은 U2를 통해 재탄생되었다.

85년의 ‘라이브 에이드'(Live Aid)와 86년의 앰네스티 순회공연을 통해 등장한 스타 중 U2의 부상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 있었다. 특히 앰네스티 공연에서 U2의 리드 싱어 보노가 보여준 개성은 60년대 도어스의 짐 모리슨이 보여 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일랜드 출신 4인조 U2는 87년 팬들에 보답하는 앨범 「여호수아 나무」(Joshua Tree)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차트 1위에 랭크된 것은 물론이고, 78년 팀결성 이후 발표한 앨범들도 덩달아 차트에 무더기로 진입하여 그들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정통 로큰롤에 실린 의미있는 가사와 진지한 매너로 한몫 보기도한 U2는 그 해 그래미상을 휩쓸기도 했다. 오랜만에 로큰롤이 U2를 통해 기지개를 켠 87년이었다.

17. 1988-일년내내 톱10에 랭크된 조지 마이클의 「믿음」

1988년은 오직 한 명의 스타가 독주한 해였다. 그 주인공은 조지 마이클. 86년 왬이 해산될 때부터 그의 솔로 등장은 시간 문제였다. 섹스 어필하는 용모와 흑인 가수를 방불케하는 소울 창법 등 스타가 될 만한 재능이 넘치는 영국 가수였다.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은 「믿음」(Faith)이었는데, 이 앨범은 88년 한해 단 1주만 11위를 기록하였고 나머지 기간에는 톱10안에 랭크되었었다. 정상에 머무른 기간도 12주였다. 싱글 1위곡도 5개나 터져 나왔다(I Want Your Sex, Faith, Father Figure, One More Try, Monkey). 마이클 잭슨도 마돈나도 이런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트레이시 채프먼의 포크와 스티브 윈우드의 컴백도 조지 마이클의 열기를 따라 잡진 못한 한 해였다.

18. 1988-헤비 메틀의 전성기를 다시 연 밴드들

88년 후반부의 주인공은 데프 레퍼드와 건스 & 로지스였다. 이들이 벌인 차트 경쟁은 헤비 메틀 만큼이나 치열한 것이었다. 88년 메틀계에 불을 당긴 팀은 반 헤일런의 「오! 자네도 하나 먹었군」(OU 812) 앨범으로 시작해서 데프 레퍼드의 「히스테리아」(Hysteria), 건스 & 로지스의 「파괴 망」(Appetite For Destruction) 그리고 본 조비의 「뉴 저지」(New Jersey)까지 그 열기는 이어졌다. 데프 레퍼드는 83년 「방화광」(Pyromania)에 이어 「히스테리아」도 7백만 장 이상 판매하여 앨범 2장을 연속으로 7백만장 이상 판매한 최초의 밴드가 되었다. 이들을 이어 건스 & 로지스 그리고 본 조비가 메틀의 열기를 이었다. 「뉴 저지」가 차트 1위에 올랐을 때 2위는 「파괴 욕망」, 3위는 「히스테리아」였다. 빌보드 차트 사상 메틀 밴드의 앨범이 1,2,3위를 휩쓴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19. 1989-팝계의 새로운 주인공 10대 가수들

89년은 유난히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돋보인 해였다. ’10대현상’은 88년 티파니부터 시작되었다. 데뷔 앨범 ‘티파니'(Tiffany)를 차트 정상에 올려놓으며 그녀는 10대 선풍을 몰고 왔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곧이어 데비 깁슨이라는 천재 소녀가 출현했다.  데뷔 앨범 「뜻밖에」(Out Of Blue)에 이어 「짜릿한 청춘」(Electric Youth)을 내놓으며 티파니의 인기를 능가하고 있다. 전반기는 보비 브라운의 독무대였다. 앨범 「잔인하게 굴지 마세요」(Don’t Be Cruel)에서 연속으로싱글 히트곡을 내놓았다(Don’t Be Cruel, My Prerogative, Roni, Every Little Step 등). 후반부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이었다. 앨범「끈질기게 버텨」(Hangin’ Tough)를 차트 1위에 올리며 동명 싱글곡 외에 <커버 걸>(Cover Girl), <내가 (당신을 황홀하게 하지 않았어요>(Didn’t I<Blow Your Mind>)등을 연속 히트시켰다.

20. 1989-돌아온 공룡들

전반부엔 10대 가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면 후반부는 60년대 로커들의 재등장이 활발한 시기였다. 토론토 공연으로 시작된 더 후의 컴백,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재등장. 봅 딜런. 반 모리슨. 비지스. 링고 스타 등의 새로운 모습이 인상적인 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1989년의 사건은 롤링 스톤즈의 재결합 공연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8월 31일 시작된 그들의 순회공연은 미국을 온통 뒤집어 놓았다. 뉴욕에선 공연이 예정되자마자 6시간만에 약 30만장의 입장권이 동나버리기도 했다. 새 앨범 「강철 바퀴」(Steel Wheels)와 싱글 <복잡한 감정> (Mixed Emotion)은 차트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페르낭 레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

큐비즘, 기계, 건축, 공산당, 서민적 레크리에이션 등등.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큐비즘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인 페르낭 레제(Jules Fernand Henre Léger)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나열해보았다.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작품 중 하나로는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국립 퐁피두 센터가 소장하고 있는 이 작품은 2008년 한국에서 열린 ‘퐁피두 센터 특별전 <화가들의 천국>’이 열릴 때에 국내에 전시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작품이 앞서 나열한 페르낭 레제의 그림에 관한 키워드가 포괄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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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생인 페르낭 레제는 건축을 공부하다 1910년경부터 큐비즘 운동에 참가, 피카소, 로베르 들로네 등과 함께 적극적인 추진자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그는 기계문명, 건축, 추상회화의 접점을 모색하는 그림을 즐겨 그렸다. 1919년 그린 ‘도시’ 라는 작품을 보면 이러한 경향을 잘 목격할 수 있다. 공산주의자였던 그는 기계문명에 대해 낙관적이었고 이를 즐겨 표현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기계문명과 기술진보에 대해 낙관적이란 점에서 목가적인 反기계문명론자와는 다른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장이 유별날 것은 없다.

그의 작품만의 특징을 하나 들자면 유난히 원통형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기계 플랜트에 들어가는 각종 배관을 염두에 두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그의 경향에 대해 한 평론가는 큐비즘이란 단어를 재밌게 비틀어 튜비즘(Tubism)이 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여하튼 이런 레제의 원통형에 대한 집착은 구상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그가 그린 사람들은 원통형의 체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사람들은 뚱뚱해 보인다기보다는 튼튼해 보이는 골격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유난히 뚱뚱한 사람을 즐겨 그렸던 콜롬비아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다시 ‘여가 –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이 작품을 맥락 없이 전시장에서 만난다면 그저 평범한 남녀가 여가를 즐기는 모습쯤으로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기술진보로 노동자들에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담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작품이다. 예의 원통형 몸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서 유입된 자유분방한 옷차림을 하고 하이킹을 즐기고 있는데, 기술진보로 직장에서 잘리는 대신 여가를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가 그린 사회는 이미 이상적인 노동자 중심의 사회가 전제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레제가 이런 낙관적인 이상향을 묘사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좌익들이 확실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의 정치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프랑스 좌익은 1930년대 파시즘의 위협 하에 사회당, 공산당 등이 결합한 인민전선을 결성한 후 선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또한 1936년 6월 총파업 이후 전국적 규모의 중앙노사협정인 마티뇽 협정(Accords de Matignon)이 이루어졌는데, 이로 인해 대표적 노동조합의 개념과 단체협약의 효력확장규정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 협정에는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2주간 유급휴가제’가 도입되어 노동자는 비로소 유급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퐁피두 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레제의 의도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를 위한 유급휴가를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휴가는 이전까지 귀족이나 부르주아지의 전유물이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에서 잘 느낄 수 있다. 프랑스 노동자는 마티뇽 협정 이전까지는 유급휴가를 즐길 수 없었다. 그런데 계급투쟁을 통한 자본가와의 타협, 기술진보로 인한 사회잉여의 증가 등이 노동자의 여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이 시기부터 만들어졌다. 그래서 자연히 이 작품에는 혁명까지는 아니어도 사회개혁을 통한 노동자 세상에 대한 낙관이 담기게 되었다.

이렇듯 우리가 오늘날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노동자의 유급휴가는 – 사실 잘 알다시피 그마저도 여전히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이 그렇듯이 이렇게 지난한 계급간의 갈등과 투쟁, 그리고 레제와 같은 예술가들의 선전선동에 의해 기틀을 다져온 것이다. 일단 무엇이든지 가지게 된 자들은 웬만해선 기득권을 잘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평론가는 그의 작풍을 “사회주의 이론의 결과이되, 전투적인 맑시스트라기보다는 열정적인 휴머니스트”적인 것이라 평했는데, ‘여가’는 이러한 평가에 잘 어울리는 작품일 것이다.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 (프린스 작품선)

J. Hyun이라는 필명의 사용자분이 예전에 올려주셨던 팝칼럼을 다시 퍼올림.

오늘 프린스의 CD 3장짜리 히트곡집을 큰맘먹고 구입하려고 했더니 역시나… 동네 레코드점엔 프린스의 앨범이 한 장도 없더라구요. 제법 큰 레코드점이었는데도… 나온지 좀 지난 탓도 있겠지만 아마도 프린스가 우리 나라에서 그다지 지명도 높은 가수가 아니라는 점도 오프라인상에선 프린스 앨범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 한몫 한 듯 싶습니다. 역시 우송료 무료인(가격이 가격이다보니…) 인터넷 주문이 최고군요. 프린스의 이름을 처음 접한 때가 ’84년쯤이지 싶은데 당시 제가 막 팝에 관심을 갖던 시기라 그 시기에 잘나가던 가수들은 유난히 기억이 생생해요. 그 시기에 대형 히트 앨범들이 참 많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서도 프린스의 보라색 비 열풍은 독보적이었습니다. 앨범 차트 24주간 1위, 5개의 Top 40 히트곡 및 “Darling Nikki”로 인한 파문 등등… 지금 와서 프린스라는 가수를 돌이켜보면… 그는 확실히 개성이 넘치는 가수이긴 하지만, 그 개성이 지나치다보니 어떨 땐 ‘프린스’하면 무조건 독특한 음악 내지는 묘한 음악만 기대하게 되더군요. 음악적 개성이 워낙 강하게 인식되다보니 오히려 무난한 음악을 시도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구요. 편견을 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니 어느새 또 하나의 편견을 낳은 셈…
프린스가 미네아폴리스 사단을 시작으로 Revolution이니 New Power Generation과 같은 많은 타 가수들에게 곡을 써주고 적극적으로 프로듀싱을 한 것도 어쩌면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 굳어진 자신의 이미지를 깰 수 있는 신선한 목소리를 발굴하는 과정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신선한 연인을 향한 ‘작업’으로 연결되곤 했습니다…) 그럼 왕자님의 발자국 좀 추적해보죠… 다들 훤하실 테지만… (전 ‘왕자’란 이름이 예명이 아닌 본명이란 걸 오늘에서야 인터넷 검색하다 알았답니다…-.-)

1. Chaka Khan – I Feel For You
(From The Album I FEEL FOR YOU, 1984)
▶ 노장 R&B 여가수 샤카 칸의 최대 히트곡으로 1984년 동명앨범 수록곡입니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최고순위는 3위에 그쳤지만 그 해 연말결산 차트에서 유수한 1위곡들을 제치고 Top 10에 랭크될 정도로 꾸준히 차트에서 인기를 얻었던 곡. 도입부의 샤카샤카 차카차카 어쩌구 하는 부분은 장난스럽기도…^^
▷ For를 4로 표기하지 않은 건 좀 의외…

2. Sheena Easton – Sugar Walls
(From The Album A PRIVATE HEAVEN, 1984)
▶ 시나 이스턴은 프린스의 수많은 연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약발이 오래갔죠. 이 곡을 시작으로 이후 발표하는 앨범마다 프린스와 조우하며 “U Got The Look”, “The Arms Of Orion” 등의 듀엣곡을 낳기도… 앨범에는 이 곡의 작곡자가 Alexander Nevermind라는 요상한 이름으로 되어있는데 이건 프린스의 일회용 이름이랍니다. 프린스 특유의 느끼한 창법이 시나 이스턴에게도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곡… 1984년 싱글차트 9위 기록.
▷ “Sugar Walls”의 숨은 의미는 다들 아실 듯… 후반부의 ‘Come insi~de~’하는 부분을 듣고 있노라면 심의 통과한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3. The Bangles – Manic Monday
(From The Album DIFFERENT LIGHT, 1986)
▶ 이 곡의 작곡가 역시 발표 당시엔 Christopher라고만 알려졌는데 나중에 그게 Prince임이 밝혀졌죠. 역시나 미녀에 약한 프린스는 뱅글스의 보컬리스트 수재너 홉스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뱅글스를 몹시 싫어하던 중학생은 이렇게 말했지요 – 어디가 이쁘다고…)
▷ 지금도 월요일날 기분이 찌뿌둥할 때면 생각나서 흥얼대곤 하는 곡이에요. ‘I wish it was~ sunday~ 흑흑흑…’ 내일 아침 일찍 서울 올라가야 하는데 눈꼽 떼고 운전하면서 이 노래나 불러야 하겠네요.

4. Vanity 6 – Nasty Girls
(From The Album VANITY 6, 1982)
▶ 이 이름이 낯선 분들이 계실지도… 저는 최근에야 알게 된 곡입니다. 프린스가 야심차게 선보인 최초의 프로젝트 그룹으로 별히트는 못했지만 미네아폴리스 사단 최초의 그룹이라는 데 의의가 있을 듯 합니다. 이 곡은 펑키한 리듬의 다소 단조로운 댄스곡입니다. 보컬들이 어쩐지 숨차게 들리네요…^^
▷ 이 독특한 그룹명은 이 3인조 여성그룹의 리더 Vanity의 이름을 딴 듯 합니다. 사진을 봤는데 뭐랄까… 뇌쇄적으로 생겼더군요. 마돈나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아마도 프린스의 여성편력은 이 때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5. Martika – Love… Thy Will Be Done
(From The Album MARTIKA’S KITCHEN, 1990)
▶ 마티카가 “Toy Soldiers”의 성공 이후 발표했던 또 하나의 발라드곡으로 잔잔하면서도 야릇한 분위기가 역시 프린스다운 곡입니다. 마티카의 보컬 또한 차분하면서도 감정이 잘 살아 있구요… 이 곡 참 좋아했었는데 이 앨범이 생각만큼 히트를 못해 아쉬워했던 기억도 납니다. 나중에 인터넷을 통해 마티카의 2집 앨범 수록곡을 몇 곡 구해서 들어볼 수 있었는데 생각 외로 괜찮은 곡들이 많더라구요. 타이틀곡 “Martika’s Kitchen”도 추천곡.
▷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까지 우후죽순격으로 등장한 여성 댄스 가수들은 단 한 명도 오래가지 못했는데 마티카도 그 중 하나. 제 생각에 미모를 내세운 여가수들의 주무기는 ‘신선함’인데 아무래도 2집을 낼 때면 노래가 좋든 안 좋든 그런 매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인 듯… 어느 분야든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건 절대진리죠. 얼마 전 팝아이 뉴스란을 보니 듀오를 결성해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고 하지만… 글쎄요.

6. Sheila E. – The Glamorous Life
(From The Album THE GLAMOROUS LIFE, 1985)
▶ 쉴라 이는 프린스 사단의 가수들 가운데서도 특히 실력있는 가수로 인정받았는데 생각만큼 지속적인 인기를 얻진 못했습니다. 뛰어난 드러머이자 퍼커션 연주자이기도 한데요, 이 곡 역시 들어보면 단번에 프린스의 곡임을 알 수 있는 특유의 리듬감이 넘쳐나는 곡입니다.
▷ 글래머한 인생이라… 제목이 심상치 않네요. 혹시 이 곡도 금지곡?

7. Cyndi Lauper – When You Were Mine
(From The Album SHE’S SO UNUSUAL, 1983)
▶ 이 곡은 프린스가 정식으로 사사한 곡은 아니고 프린스가 먼저 발표했던 곡을 신디 로퍼가 리메이크한 곡입니다. 원곡에 등장하는 프린스의 독특한 가성창법을 신디 로퍼도 멋지게 소화하고 있습니다. ^^ 빵빵한 사운드 덕분에 원곡보다 훨씬 신나는 리메이크곡이 되었네요.
▷ 프린스의 곡들은 하나같이 특이해서 그의 수많은 히트곡들 가운데서도 쉽사리 리메이크할 만한 곡이 없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또다른 프린스 리메이크곡은 LeAnn Rimes가 부른 “Purple Rain”… 컨트리 가수가 부르는 프린스라니 좀 웃기죠? 근데 생각보다 들을 만 해요.

8. Sinead O’Connor – Nothing Compares 2 U
(From The Album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 1989)
▶ 시네이드 오코너의 생애 최대 히트곡으로 1990년 4주간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을 사수한 곡입니다. 본래는 프린스 사단의 프로젝트 그룹 The Family가 먼저 발표한 곡이었는데 그닥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시네이드 오코너가 리메이크하여 대형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시네이드의 구슬픈 목소리가 정제된 듯 하면서도 은근히 사람 우울하게 만드는 노래… 뮤직비디오에서처럼 흐린 날씨의 가을날에 조용한 길가를 걸으며 듣고 싶은 곡입니다. (꼴에 센치한 척은…-.-)
▷ 이 곡에 얽힌 시네이드와 프린스의 에피소드는 하도 유명해서 다들 아실 듯 합니다. 자신의 최대 히트곡을 두고 ‘가장 부르기 싫은 노래’라고 밝힌 그녀의 심정이 어땠을지 생각하며 이 곡을 들으면 더 착잡해지죠… 아무튼 이런 경험도 한몫하긴 했겠지만 시네이드는 이 곡 이후 그녀 특유의 냉소적인 발언과 과감한(?) 행동들로 하는 말이며 행동 하나하나마다 화제를 모으고 다녔습니다. (그녀의 언행들 역시 하도 유명해서 생략) 몇 년 전에 그녀의 새 앨범 리뷰를 보았을 때 머리를 기른 모습과 ‘앞으로는 정치적인 발언도 자제하고 음악에만 전념하겠다’는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 또 얼마전엔 난데없이 전격 은퇴한다고 해서 다시 화제를 모으기도…-_- 역시 음악계의 ‘양치기 소녀’답습니다.

9. Tevin Campbell – The Halls Of Desire
(From The Album T.E.V.I.N., 19)
▶ 프린스 사단 가운데서는 찾아보기 힘든 남성 가수네요… ^^ 테빈 캠벨이 13살의 나이로 처음 데뷔할 당시에 그의 나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네요.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노래 솜씨가 원숙했던 탓… 그의 데뷔앨범에는 Babyface 사단과 프린스 사단이 대거 출동하여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좋은 곡들을 많이 써주었는데 프린스가 워낙 한 개성 하는 인물이다 보니 그의 곡들은 얼핏 듣기만 해도 Babyface의 곡들과는 구별이 됩니다. 일부 곡들에서는 프린스의 느끼한 창법을 테빈 캠벨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기도…
▷ 테빈 캠벨은 데뷔 당시 역시 비슷한 나이 또래였던 Tracie Spencer와 함께 차세대 흑인 남녀가수로 주목받았는데 두 사람 다 빨리 주목받은 만큼 빨리 식어버린 듯 합니다. 아직 둘 다 서른도 안된 나이인데 재기했으면 하는 바람…

10. Madonna – Love Song
(From The Album LIKE A PRAYER, 1989)
▶ 마돈나의 앨범들 가운데 특히 예술성이 높은 앨범으로 꼽히고 있는 4집 앨범의 수록곡으로 프린스가 작곡과 백그라운드 보컬로 참여하고 있는 곡입니다. 역시나 프린스 특유의 ‘어딘지 어벙벙하고 묘한’ 느낌이 살아있는 곡이긴 합니다만… 어쩐지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두 사람이 노래만 같이 했을 뿐,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I Feel For You”와 비교해 볼 때 리듬감도 약하고, “Sugar Walls”에서의 독특한 선정성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렇다고 “Manic Monday”처럼 멜로디컬한 것도 아니고… 느낌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에겐 좀 실망스러웠던 곡입니다. 아무튼 Love Song이라는 제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군요. (가사에서도 This is not a Love So..Ong~ ^0^)
▷싱글로는 발매되지 않았지만 스캔들에 있어서 둘째가면 서러워할 두 톱스타가 뭉쳤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화제가 되었던 곡.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다는 뉴스가 나오기가 무섭게 당시 팝계가 떠들석해졌는데 의외로 그들은 사고(?) 날 틈도 없이 달랑 이 노래 한 곡만 함께 작업하고 말아 기사거리에 굶주린 언론들에게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나 어쨌다나 머다나…

11. Celine Dion – With This Tear
(From The Album CELINE DION, 1991)
▶ 프린스와 셀린 디온의 만남! 어쩐지 밸런스가 안 맞지 않습니까…ㅋㅋㅋ 이 곡은 셀린 디온이 막 미국 시장에서 이름을 알리던 시기에 발표된 곡으로 Mariah Carey의 성공에 고무된 Sony가 제 2의 디바형 가수를 육성하고자 그녀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물입니다. 시종일관 아련한 분위기 가운데 곡이 진행되다가 후반부 코러스에서부터 셀린 디온의 열창이 마치 폭풍처럼 이어집니다. 스케일도 큰데다가 그녀의 화려한 가창력도 곡의 호소력을 살리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프린스의 숨어있는 명곡…
▷ 프린스의 곡답게 역시 2, 4, thee 등의 단어가 부지기수로 등장… 다시님께 추천해드리고 싶은 곡…^^

12. Prince – Dark
(From The Album COME, 1994)
▶ 끝으로 오늘의 주인공 ‘왕자’의 그닥 알려지지 않은 곡 하나 추천해볼께요. 프린스가 ‘자기는 노예’네 ‘이름 없이 기호로 불러달라’네 어쩌네 하면서 화제를 모으던 90년대 중반에 Warner Bros.와의 관계를 청산하며 발표했던 앨범의 수록곡으로 느릿하고 호젓한 분위기가 묘한 곡… 오늘 프린스 CD값도 비교해볼 겸 그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다 발견한 곡인데 제법 괜찮네요. 역시나 프린스다운 ‘묘한’ 곡인데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반주를 가급적 절제하고 보컬의 흐름과 관악기를 강조한 점…
▷ 프린스는 MP3 공유에 찬성하는 가수라고 들은 바 있는데 지금도 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그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는데도 별 소식도 없이 지나갔고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 검색을 했더니 인터넷상에서 신작 MP3 파일 구하기도 힘들고… 프린스가 정말 인기가 식긴 식었나 봅니다. 가정에 충실하고 있다는 말도 들은 바 있는데… 날이 갈수록 개성 강한 가수를 찾아보기 힘든 지금, 20년 전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보라색 비의 반란을 다시 기대하는 건 무리일지…

오늘은 글이 좀 두서가 없죠? 집안 분위기가 “Nothing Compares 2 U” 뺨치게 음산하걸랑요.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냉전중인데 저 혼자 신나서 음악 듣고 있습니다. 비는 왜 이리 척척 오는지… 외롭당…

To Be Continued…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 (비오는 날 듣는 음악)

추석기간 동안 팝아이가 예쁘게 새단장했네요. (stickey님이 공을 많이 들이신 듯… 대화방도 생기구요…^^) 개인 칼럼란이라니 무지하게 쑥스럽습니다. (사실 별로 쑥스럽진 않고, 그냥 예의상의 멘트…) 오늘 www.yahoo.com에 들어가니까 ‘Typhoon Maemi Hits South Korea, at Least 74 Dead’ 이런 기사가 첫창에 뜨는군요. 매미의 위력이 예상보다 엄청났던 것 같습니다. (매년 태풍으로 진통을 앓더니 어째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나 했지…)
엄청난 태풍을 예고라도 하듯이 올 여름엔 진짜 징그럽게 비가 많이 왔었죠.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사방이 어두컴컴하면 사람 기분도 그에 따라 우중충하게 변하곤 합니다.
어릴 땐 비오는 걸 참 좋아했는데… 어쩐지 시원하게 느껴졌거든요. 괜시리 낭만적인 기분도 들고… (지가 무슨 “소나기”의 주인공이라고…) 헌데 머리가 크면서부터 슬슬 비를 안 좋아하게 되더군요. 특히 서울이랑 대전이랑 왔다갔다하는 요새는 비오면 딱 질색입니다. 첫째는 차 끌고 다니기 힘들어서고, 둘째는 차가 더러워져서 그렇고, 셋째는 비 안오는 데 골라서 주차하려고 하다 보니 주차 공간이 없어서 그렇고… 으아…-_-
비가 오면 확실히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가끔씩 집안에서 혼자 분위기 잡고 있을 때 밖에 비가 내리면… 특히 여름에 말이죠. 뭐랄까, 어릴 때 생각도 나고, 괜시리 커피도 마시고 싶고… 센티멘탈해집니다. 다른 지역이야 비 때문에 발칵 뒤집어지건 말건… 확실히 사람은 이기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나만 그런가…

1. Eurythmics – Here Comes The Rain Again
(From The Album TOUCH, 1983)
▶ 유리스믹스의 80년대 초반 히트곡 중 하나… 유리스믹스의 매력은 역시 Annie Lennox의 보컬맛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곡을 듣게 되면 애니의 보컬이나 다른 연주 부분보다는 중간중간 깔리는 현악 연주 부분에 더 귀가 끌리더군요. 어딘지 차갑고 음울하게 느껴지면서 적당히 청승맞은 것이… 아주 좋습니다. 이런 곡은 벼락치면서 폭우 쏟아지는 날 들으면 딱일 것 같군요.
▷ 애니 레녹스의 솔로곡 가운데 비오는 날 분위기 잡기 좋은 곡이 또 하나 있죠. 바로 “A Whiter Shade Of Pale”…

2. Bruce Hornsby & The Range – Mandolin Rain
(From The Album THE WAY IT IS, 1986)
▶ 어떤 곡을 듣고나서 그 곡이 너무 마음에 들어 단번에 그 가수의 팬이 되는 경우가 있죠. 제겐 브루스 혼즈비가 그랬답니다. 이 곡은 그들의 데뷔앨범 수록곡으로 “The Way It Is”라는 명곡 못지않게 훌륭한 곡입니다. 애잔한 멜로디와 브루스 혼즈비의 따뜻한 보컬, 제목과 잘 매치되는 만돌린 연주도 아주 멋집니다만 역시 최대의 매력포인트는 피아노 연주입니다. 제목으로는 오히려 “Piano Rain”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라나…
▷ 이 곡 뮤직비디오에서도 비가 줄줄 내리는 저녁에 브루스 혼즈비가 집에서 피아노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죠. 피아노 잘 다루는 사람들 보면   부럽습니다… 난 언제 배워볼까…ㅠㅠ

3. Phil Collins – I Wish It Would Rain Down
(From The Album …BUT SERIOUSLY, 1989)
▶ 대곡 스타일의 발라드곡으로 음울한 멜로디와 필 콜린스의 열창, 그리고 빵빵한 백코러스가 사람 가슴을 후벼파는 노래입니다. 이 곡의 클라이막스는 역시 후반부에 필 콜린스가 숨가쁘게 악쓰다시피 하는 부분… 노래만 들어도 벌써 비맞는 기분이 듭니다. 노래가 끝날 때쯤엔 정말로 비내리는 효과음도 나오지요. 처절한 노래에 하늘도 감동했나…
▷ 이 곡도 뮤직비디오가 인상깊은 곡이었는데… 그야말로 ‘달걀장수 구구’가 뭔지 보여주는 뮤직비디오였죠. 이 멋진 곡을 온 힘을 다해 – 한 손은 배에 대고 – 열창하는 대머리 아저씨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군요. 곡과 뮤직비디오가 안 어울리는 작품 1순위가 아닐라나…

4. John Cougar Mellencamp – Rain On The Scarecrow
(From The Album SCARECROW, 1985)
▶ 우중충한 겨울비를 연상케 하는 곡… 듣는 이의 기운을 쭉 빼다못해 아주 마비를 시키는 곡… 시체놀이에 어울릴 듯 합니다.
▷ 멜렌캠프 아저씨 노래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아저씨는 무슨 노래를 하든 정말 아무생각 없이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냥 힘 쭉 빼고… 아주 가볍게… 무슨 클럽 공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근데 그런 꾸미지 않는 모습이 더 매력적이랍니다.

5. Olivia Newton-John – Silvery Rain
(From The Album PHYSICAL, 1981)
▶ 팝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얻는 곡들이 있습니다.
Rockwell의 “Knife”가 그렇고, Kenny Loggins의 “The More We Try”도 그런 케이스지요. 이 곡 또한 큰 히트곡은 아니었지만 우리 나라 방송에서는 지금도 간간히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애조띤 멜로디와는 대조적인 올리비아의 방정맞은 보컬이 인상적…
▷ 이 곡 제목을 듣고는 은색 비라니 낭만적인 제목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Silvery rain’이란 다름아닌 산성비…-_- 필 콜린스 아자씨가 싫어하겠군요.

6. Madonna – Rain
(From The Album EROTICA, 1992)
▶ 마돈나는 “Erotica” 앨범을 발매하면서 본격적인 육탄공세에 돌입했는데 이 앨범에서 나온 뮤직비디오들이 하나같이 포르노 테입 뺨치는 것들이라 많은 논란을 일으켰죠. ‘인기 떨어질 만 하니까 몸으로 승부하는군’ 소리를 들어야 했던 마돈나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선보인 오랜만의 발라드곡입니다. 봄비의 시원함을 이 곡만큼 잘 살려낸 곡도 드물 듯 합니다. 브릿지 부분에 양쪽 스피커에서 서로 다른 나레이션이 나오는 부분이 압권…
▷ “Erotica” 앨범 지금 들어보면 참 괜찮지 않나요? 감각도 세련되고,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착착 달라붙는 맛이 있는데… 성적인 부분을 조금 제거했더라면 더 괜찮은 앨범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지만 말입니다. 이 앨범 수입반 찾느라 고생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요새는 이 앨범 라이센스반이 더 희귀하답니다. -.-

7. Eddie Rabbitt – I Love A Rainy Night
(From The Album HORIZON, 1980)
▶ 80년대 미국의 인기 컨트리 싱어 중 하나였던 에디 래빗의 싱글차트 1위곡입니다. 비를 노래한 곡들 대부분이 우울하고 슬픈 곡이 많은데 이 곡은 아주 발랄하고 경쾌한 곡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한 장면이 생각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 에디 래빗은 ’98년도에 암으로 사망했죠… 가수는 떠나도 노래는 남습니다…

8. Prince & The Revolution – Purple Rain
(From The Motion Picture OST PURPLE RAIN, 1985)
▶ 이 곡은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선정적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가사를 읽어보면 에로틱한 면도 꽤 있구요…

▷ 지난 주 일요일에 주문했던 프린스 세 장짜리 히트곡집이 추석 연휴 때문에 아직도 도착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내일은 또 서울 가야 되는데… 우씨 -_-;

9. Jennifer Warnes – Famous Blue Raincoat
(From The Album FAMOUS BLUE RAINCOAT, 1987)
▶ 도입부의 고즈넉한 색소폰 소리와 제니퍼 원스의 슬픔을 가득 담은 목소리… 비오는 날 이 곡만큼 좋은 곡도 없을 것 같아요. 특히 가을비에 잘 어울리구요… 이 곡을 들을 때면 마치 분위기 있는 재즈 카페에 혼자 앉아있는 기분이 듭니다. Leonard Cohen의 오리지널도 좋지만 전 제니퍼 원스의 곡이 훨씬 마음에 들어요.
▷ 이 곡이 실린 동명앨범 자켓을 보고 제가 제일 처음 한 말 – 이게 레인코트야? 포대기지…

10. Milli Vanilli – Blame It On The Rain
(From The Album GIRL YOU KNOW IT’S TRUE, 1989)
▶ 희대의 사기극으로 유명한 밀리 바닐리의 싱글차트 1위곡으로 Diane Warren이 작곡 솜씨를 발휘한 곡입니다. 다이안 워렌 정도의 이름값이면 아무한테나 곡을 주지 않을 텐데도 감쪽같이 속인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뿐… 밀리 바닐리 이후 Black Box니 Seduction이니 모조리 정체가 들통났죠. 하나같이 제가 좋아했던 가수들…-.-
▷ 밀리 바닐리 멤버 한 명이 몇 년 전에 사망했다고 들었는데 그 소식을 들으니까 문득 가엾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괘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쇼 비즈니스계의 상술에 놀아난 희생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우리 나라에도 얼마 전에 있었죠. 걸프렌드라고…

11. Ryuichi Sakamoto – Rain
(From The Motion Picture OST THE LAST EMPEROR, 1987)
▶ 영화 “마지막 황제” 사운드트랙에서 메인 테마곡과 함께 우리 나라에서 인기가 있었던 곡입니다. 현악 연주만으로 진행되는 이 곡은 시종일관 긴장감이 감돌면서도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 이 곡을 듣고 선뜻 ‘비’의 느낌을 떠올리긴 어렵구요, 전 비오기 전의 찌푸린 하늘이 더 연상되는군요.

12. A-Ha – Crying In The Rain
(From The Album EAST OF THE SUN, WEST OF THE MOON, 1990)
▶ 비오는 소리로 시작해 비오는 소리로 끝나는 곡… 비오는 날 특유의 축축 처지는 분위기가 이 곡에서도 느껴집니다. 모튼 하켓 목소리가 은근히 멜랑꼴리하다는 생각이…
▷ 현 고3인 제 친척 동생 한 명이 (맨날 보아나 휘성만 듣는 녀석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 곡을 들었는지는 미스테리지만) 저한테 아하가 누구냐고 묻더군요. 이 노래가 참 좋더라면서… “Take On Me”의 뮤직비디오 얘기부터 시작해 바이오그래피를 쫙 읊어주니까 다 듣고 마지막에 한다는 소리가… “뭐야… 그럼 구닥다리잖아.”

지금은 비가 그쳐서 날씨가 맑습니다. 얼마만에 맑은 날씨의 주말을 맞는 건지… 이런 날 집에만 계시지 말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해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태풍으로 피해입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말입니다. 어릴 땐 비오고 난 뒤 흙밖으로 기어나온 지렁이 잡아다가 누나 머리위에 올려놓는 게 취미였답니다.

To Be Continued….

writtern by J. Hyun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 (허스키 보이스)

예전에 80snet.com이 popi.com이란 이름으로 제로보드 형식으로 운영되던 시절, J. Hyun님이라는 걸출한 글쟁이가 “테마가 있는 80년대 팝 이야기”란 이름으로 칼럼을 남겨주시곤 했었습니다. 언젠가 한번 게시판이 삭제되는 바람에 다시 복구하는 등의 소란을 피우고 이 사이트가 블로그 형태로 바뀌는 과정에서 몇몇 글이 없어지기도 했었고요. 몇 개 살아남은 글들은 옮겨 놓았습니다만 아직 옮겨 놓지 않은 글이 있어 반가운 맘에 다시 퍼 올립니다. 잘 지내시죠? J. Hyun님? 🙂

그의 다른 글들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제가 처음 팝을 접할 때(’83~84년쯤이라고 기억)는 Olivia Newton-John이나 Madonna와 같은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매력적인 목소리에 반해서 팝송을 즐겨듣게 되었습니다. 뭔 말인지는 하나도 몰랐지만 그냥 목소리가 좋아서 좋아하는 곡들도 많았었죠. 어느 정도 팝에 눈을 뜨게 되면서(그 당시 이미 가요는 통달한 수준이었음. 어릴 때 공부는 안하고 음악만 들어서리…-_-;;;) 세상에 참 다양한 목소리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자인데도 Christopher Cross 같은 미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자인데도 Tina Turner와 같은 호쾌하고 걸걸한 보컬의 소유자도 있더군요.

이처럼 여러 가수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듣게 되면서 제가 아주 싫어하는 목소리가 생겼으니 바로 허스키 보이스… 어쩐지 쉰 듯한 소리가 듣기 싫어서(정도가 심한 보컬을 듣고 있노라면 제 목이 다 이상할 정도-_-) 어릴 때는 허스키 보이스 가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릴 때는 안 듣던 그 가수들의 곡을 다시 들어보니 의외로 괜찮은 곡들이 많았고, 허스키 보이스에도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역시 편견 없이 듣는 게 중요하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되더군요. 오늘 그런 곡들 좀 모아봤습니다.

Bonnie Tyler ESC - United Kingdom 01 crop.JPG
“Bonnie Tyler ESC – United Kingdom 01 crop” by Albin Ols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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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file has been extracted from another image: File:ESC – United Kingdom 01.JPG..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1. Bonnie Tyler – Holding Out For A Hero (1984년)
▶ 까놓고 말해 제가 허스키 보이스에 대한 심한 편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보니 타일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제가 처음으로 접한 허스키 보이스였거든요), TV에서 보니 타일러의 어떤 뮤직비디오(하도 오래전이라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데, 별로 히트하지 못한 곡이라고 생각됨)를 보고 나서 그 천갈래 만갈래 갈라지는 목소리에 소름이 쫙 돋더라구요… 아니 뭐 저런 여자가 가수를 다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 보니 타일러의 곡은 제 안티대상 1호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Footloose” 사운드트랙에 실린 이 곡은 정말 괜찮은 곡이에요. 보니 타일러의 매력(?)을 비교적 잘 살린 곡으로 짐 스타인먼의 곡답게 드라마틱하고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 때문에 그녀의 쉰 목소리가 그리 심하게 드러나지도 않고, 또 워낙에 빠른 곡이다 보니 듣고 있노라면 그저 흥겨워서…^^ 우리 나라에서는 민해경의 애창곡이었죠.

▷ 보니 타일러를 보고 있노라면 왠지 이미지가 우리 나라 탤런트 권은아와 흡사하다는 생각… 그러나 둘의 목소리는 정반대죠.

2. Mike Leno & Ann Wilson – Almost Paradise (1984년)
▶ “Footloose” 사운드트랙에서 한 곡 더… Loverboy와 Heart의 간판 멤버 두 사람이 부른 멋진 듀엣곡으로 이 곡에서는 오히려 두 사람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곡의 분위기를 더 잘 살려낸 것 같습니다. 멜로디도 애절하구요. 특히 앤 윌슨의 보컬이 일품…
▷ 앤 윌슨은 나중에 Cheap Trick의 Robin Zander와 함께 “Surrender To Me”란 곡을 부르기도 하죠. 둘 다 제가 좋아하는 보컬리스트인데 이상하게도 이 곡은 싫더라구요.

3. Rod Stewart – Infatuation (1984년)
▶ 허스키 보이스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로드 스튜어트의 80년대 히트곡(1984년 싱글차트 6위 기록)으로 80년대 유행하던 뉴웨이브 사운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듀싱 덕분인지 다행히 이 곡에서는 로드 스튜어트의 허스키 보이스가 그리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 로드 스튜어트는 자기 주관없이 유행만 따라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가수라는 이유로 새 앨범 나올 때마다 욕을 좀 먹곤 했었죠… 개인적으로 특히 가증스러웠던 때는 아내한테 바친답시고 언플러그드 공연에서 “Have I Told You Lately”를 부를 때… 전과가 두둑(-_-)한 사람들은 뭘 해도 믿음이 안가더군요…-.-;

4. Bruce Springsteen – Born In The U.S.A. (1984년)
▶ 미국의 소시민층을 대표하는 가수(라고들 하던데 테러 이후 하는 짓 봐선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음)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동명의 앨범 수록곡입니다. 이 앨범은 소위 말하는 ‘명반’답게 투박한 미국록 분위기에 노동자 계층의 애환을 담아낸 가사가 인상적이죠. 이 앨범에서 나온 대표적인 히트곡으로 도입부 브루스의 쩌렁쩌렁한 보컬을 듣고 있으면 미국이고 미역국이고 다 신경끄고 그냥 시원해집니다. ^^ 허스키 보이스만의 매력이 십분 발휘된 곡.
▷ 이 곡을 두고 정치적인 곡이라는 둥 전혀 아니라는 둥 말이 많았던 걸로 기억…

5. John Parr – St. Elmo’s Fire (Man In Motion) (1986년)
▶ 데이빗 포스터가 만들어낸 최고의 명곡이라고 제가 극찬하는 곡…^^ 동시에 허스키 보이스 계열의 가수들의 곡 가운데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합니다. 이 곡을 들으면  내가 언제 허스키 보이스를 싫어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역동적이고 다이나믹한 곡 분위기에 걸맞게 존 파가 힘차게 쭉쭉뻗는 보컬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가사를 따라부르면 더욱 신나는데(영어라는 언어의 매력이 느껴지는 곡… 곡과 가사가 아주 잘 어울려요.)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코러스 후반부에 ‘Higher and higher~’… 진짜 신나죠. 1986년 싱글차트 1위곡.
▷ “St. Elmo’s Fire” OST 수록곡 가운데 잔잔한 듀엣곡인 “Love Theme”도 참 좋답니다.

6. Journey – Faithfully (1983년)
▶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가 멋진 저니의 발라드곡. “Open Arms”와 함께 저니의 노래 가운데 특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곡이죠. 제가 저니의 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 이 곡이 주는 느낌은… 어딘지 모르게 아주 솔직담백하게 느껴집니다. 사실 사랑 노래들 가운데서도 어떤 곡들은 너무 과장된 가사(특히 남자가수의 곡들. 무작정 기사도 정신… Cheap Trick의 “The Flame”이나 Donny Osmond의 “Soldier Of Love”는 그 정도가 심함)나 지나치게 닭살돋는 분위기(Atlantic Starr의 “Always”… 한마디로 왕느끼) 때문에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데 이 곡 “Faithfully”는 같은 사랑고백을 해도 분위기가 왠지 진지하고 정직하게 느껴집니다. 가사는 역시 ‘기사도 정신’인데도… 분위기의 차이인가…
▷ 요런 곡 불러주면서 프로포즈하면 성공확률 높을 듯 한데 상대가 있어야지…

7. Bryan Adams – Heat Of The Night (1987년)
▶ 개인적으로 80년대에 브라이언 아담스가 인기있을 때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역시 목소리 때문) 요새 그 때의 인기곡들을 다시 들어보면 왜 그리도 좋은건지…-_-; 이 곡은 브라이언 아담스의 곡 가운데서도 록적인 느낌이 특히 강한 곡입니다. 사실 브라이언 아담스의 보컬이 제게는 그리 듣기 좋은 편이 아니라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한데, 아마도 멜로디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아요.
▷ 브라이언 아담스 못보던 새에 엄청 늙었더군요. 얼굴에 주름이… 휴~

8. Tina Turner – Let’s Stay Together (1984년)
▶ 브라이언 아담스와 한때 연인사이로 소문나기도 했던 사자부인 티나 터너의 곡입니다. 제가 대학 합격하던 날 그 기념으로 산 앨범이 바로 티나 터너의 베스트앨범 “Simply The Best”였는데, 덕택에 그 날 최고의 기분(^^)으로 이 곡을 듣게 되었답니다. 도입부의 잔잔한 분위기가 티나 터너의 읊조리는 듯한 보컬과 함께 이어지던 도중 갑자기 이를 깨뜨리는 듯한 티나 터너의 ‘Let me! be the one…’하는 강렬한 보컬이 등장하고… 다시 잔잔하다가 또 고조되다가… 이래저래 드라마틱한 곡입니다. 티나 터너가 문자 그대로 ‘열창’을 하는 곡… 1999년도 VH1 Divas Live 공연에서도 티나 터너가 이 곡을 불렀는데 그녀의 콘서트만이 가질 수 있는 열정적인 분위기가 정말 좋더군요. 꼭 한 번 들어보세요.
▷ 우리 나라 코미디언 가운데서는 예전에 김미화가 티나 터너 분장을 곧잘 했었는데 기억나시는 분 계시려나…

9. Terence Trent D’Arby – Wishing Well (1987년)
▶ 테렌스 트렌 다비의 보컬은 허스키라기보다는 정통 소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듯… 흑인적인 느낌이 강한 보컬의 소유자로 등장 당시에 프린스를 연상케하는 외모로도 화제를 모았던 가수… 최근 빌보드 싱글차트를 보면 완전히 그 자체가 블랙싱글차트(한때 R&B 싱글차트를 이렇게 불렀었죠)라고 해도 다름없을 정도로 흑인 음악의 강세가 뚜렷한데 왜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테렌스 같은 가수들은 안 나오나 모르겠어요. (나오긴 나오는데 뜨질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참 아끼는 가수인데…

▷ 예전에 어떤 분에게서 테렌스 트렌 다비가 자기의 데뷔앨범을 두고 ’80년대 최고의 데뷔앨범’이라고 자화자찬했다는 얘길 들은 기억이 나는군요.

10. Bon Jovi – Bad Medicine (1988년)
▶ 80년대 팝씬에서 돈냄새를 강하게 풍긴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던 가수들이 있는데 Def Leppard나 본 조비가 그런 케이스. 제가 본 조비의 곡 가운데 특히 좋아하는 이 곡이 수록된 앨범 “New Jersey”가 발매될 당시에는 설문조사까지 해서 상업적인 곡들만 골라 실었네 어쩌네 해서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 솔직히 상업적이건 어떻건 듣기 좋은 건 사실… 어차피 대중가요라는 건 상업적인 성격을 아주 떨칠 수 없는 것이고, 또 음악이란 건 많은 사람들이 즐길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요. 어떤 곡을 두고 ‘이 곡은 지나치게 상업적이기 때문에 안 좋네 어쩌네…’ 한다거나, 어떤 가수가 다소 하드한 록음악을 하다가 후에 대중적인 성격으로 돌아서면(Heart가 대표적) 변절자 어쩌구 하고 비난을 하는 이런 평가들은 어찌보면 조금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 록그룹의 보컬리스트들은 열에 아홉은 다 허스키 보이스 소유자라 여기서 일일이 나열하진 않겠습니다. (물론 이것은 변명이고, 내가 뭐 락을 알아야지…–)

11. Michael Bolton – How Can We Be Lovers (1989년)
▶ 마이클 볼튼의 대표작 “Soul Provider”의 수록곡으로 Diane Warren이 작곡에 참여한 곡입니다. 역동적인 느낌이 강해서 본 조비의 곡 느낌도 나는 곡… 마이클 볼튼의 보컬은 이 곡을 히트시킬 때까지만 하더라도 뭐 고전 소울에 어울린다는 둥, 허스키 보컬답지 않게 유연하다는 둥 비교적 준수한 평가를 받았었는데 이후 “When A Man Loves A Woman”가 발표되면서부터는 최악의 리메이크곡(올인!)이라는 악평과 내놓는 노래마다 그게 그거라는 악평(여기에도 올인!)을 거듭하더니 급기야 “Love Is A Wonderful Thing”이란 곡이 100% 표절곡임이 밝혀지면서 순식간에 인기가 추락… 9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그 특유의 라면머리도 자른 채 재기를 시도하고 있으나 별다른 효과가…
▷ 무엇이 무엇이 똑같을까… 마이클 볼튼과 임재범이 똑같아요. -.-

12. Roxette – Listen To Your Heart (1989년)
▶ 록시트는 스웨덴 출신 가수로서 ABBA 이후 가장 성공한 가수라고 할 수 있죠. 이 곡은 특히 제가 좋아하는 곡으로 1989년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대형 스케일의 발라드곡입니다. 마리 프레드릭슨의 허스키 보이스가 곡의 느낌을 더욱 애절하게 해줍니다. 특히 후반부 에드립과 현악 연주로 끝나는 마지막 부분이 압권…. 거대한 성곽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는 맨발의 마리를 만날 수 있는 뮤직비디오도 근사하답니다.
▷ 이 곡은 재미있는 기록을 하나 세웠는데 LP나 카세트 싱글이 아닌 오로지 CD 싱글로만 발매되어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최초의 곡이기도 합니다. 미디어 시대의 변화를 반영했던 곡…

지금 생각해보니까 허스키 보이스의 가수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앞에서 언급한 가수들 이외에도 블루 아이드 소울을 대표하는 흑인적인 느낌의 허스키 보컬로는 Righteous Brothers의 Bill Medley나 “Up Where We Belong”으로 잘 알려진 Joe Cocker, 리메이크곡들로 인기를 얻은 Paul Young 등을 꼽을 수 있겠구요… 컨트리의 아버지 Kenny Rogers, 투박한 미국록의 분위기를 구사하는 보컬리스트 John Cougar Mellencamp나 80년대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Steve Winwood 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여성가수로서는 “Bette Davis Eyes”의 Kim Carnes가 대표적이고 ‘한어깨’하는 가수 Laura Branigan, ‘하얀 티나 터너’로 불리웠던 Taylor Dayne 등이 생각나는군요.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Mariah Carey도 한몫하고 있습니다. -_-

To Be Continued…

Duran Duran 블로그에 올라온 Roxy Music DVD 리뷰

One of the most influential bands of all time, Roxy Music gets a well-deserved and expertly produced career retrospective in this new DVD. Originally broadcast by the BBC in late 2008, the documentary covers the entire active recording career of the band as well as their recent reunions. The DVD expands on the original broadcast with nearly a half hour of additional interviews, as well as three previously unreleased live tracks from a 2006 London concert. 전문보기

09.29.09: Seattle — 성난 이의 아침식사

여기 시애틀에서 아침 신문을 읽으면서, 내게는 선전선동으로 보이는 듯한 기운을 느꼈다. 입에 거품을 물거나 내 요거트를 호텔 다이닝룸에 뿌리는 등 격노하지는 않았다.

그에 대해 다시

오늘자 뉴욕타임스 1면의 사진을 보면 이란의 핵시설이라고 소문이 난 어떤 종류의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단지 그러한 것들의 그래픽 스타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이라크 침공 전에 범람했던 다양한 종류의 사진들을 닮았다. 대량살상무기들이 저장되고, 감춰져 있고, 또는 제조되고 있는 건물들의 사진들… 이 모든 것들은 단지 우리를 우리가 현재 놓여져 있는 곤경으로 현혹시켜 이끌었던 소문들이었을 뿐임이 증명되었다. 사람들은 당시 그것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모두들의 단편적인 기억력을 감안할 때에 그들은 두 번째 그것에 몰두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난 이것이 절대 핵시설이 아니라고 말하진 않겠다. — 다만 추측성 사실관계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의 방식이 똑같다는 점은 지적한다.

전망

같은 면에서는 유럽에서 많은 나라들이 중도우익 정치가를 선출하면서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의견을 달리 해줄 것을 간청한다. 기사가 말하는 바, 중도우익은 기존의 “일반적인 복지 혜택, 국유화된 헬스케어, [그리고] 탄소배출에 관한 엄격한 제한”을 수용하였다. 이 세 가지 아이디어라면 미국에서 그들은 좌익으로 분류될 것이다. 비록 작가가 말하길 – 아마도 맞겠지만 – 유럽에서의 좌익은 전통적으로 이보다 더 나아가지만 말이다. 그러한 것들이 아직도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는 것, 그리고 현재 정치인들이 “사회주의자”이라는 (그리고 그래서 미국인이 아니라는) 고함치며 소란을 떠는 지적들은 전망의 예정된 “붕괴”에 이르게 하고 있다.

부활

다른 면의 기사에서는 경제가 바닥을 치고 다시 호조를 띄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이 놀랍지 않은 한편 (경제 붕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또는 은행가들의 오만과 탐욕을 제한하기 위한 어떠한 심각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이는 일종의 좋은 소식을 위한 좋은 소식일 뿐인 것 같다. — 일종의 기분 좋은(feel-good) 것. 경제는 하도 오랫동안 상태가 안 좋아서 필연적으로 잘못 인도하는 고장 난 시스템의 그 어떤 것의 “재림”이나 회귀를 도모하는 것은 아마도 현재로서는 최선의 아이디어가 아닐 것이다. 이 나라의 많은 것들이 지속 불가능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골드만삭스와 다른 이들이 경기침체로부터 수익을 얻는 등 갈퀴로 부를 그러모으는 동안, 다른 이들은 불평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 that isn’t the real world.

 

이글을 쓴 David Byrne은 전설적인 펑크/뉴웨이브 밴드 Talking Heads의 리더였으며 현재 솔로로 독립하여 음악가, 프로듀서, 화가, 설치 아티스트, 자전거 애호가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블로그에 올린 원문 보기 / Talking Heads 팬사이트 / 한국어 팬사이트

박재범 단상

박재범을 비롯한 한국 대중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재외교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재미교포다. 재외교포 출신의 연예인 중 1세대라 할 수 있는 이현우에서부터, 박정운, 유승준, 지누션, 다니엘 헤니 등 허다한 교포 연예인들이 모두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자란 이들이다. 몇몇 소수의 예외라면 남미음악을 선보였던 임병수나 필리핀 국민가수로 2NE1에 합류한 산다라박 정도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 대다수의 나라가 그렇듯 영미권의 문화,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를 답습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부대에 재즈가 선보인 이후에 미국의 대중문화가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는 한은, 미국의 대중문화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되어 왔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미국의 대중문화를 한국의 대중문화에 한수 가르쳐줄 감수성을 지닌 ‘황색의’ 본토인(!)들이 득세하는 것은 당연하다.

같은 랩을 해도 뭔가 본토스러운 영어랩을 해주고 미쿡의 어디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는 신비감이 결합되면서 한국의 연예기획사는 마치 겉멋들은 레스토랑이 내용도 알 수 없는 영미권의 하드커버 도서로 벽면을 장식하듯이, 교포들을 수입하여 문화 아이콘으로 키워왔다. 나중에는 한국토종이어도 미국에서 온 것인 양 미국식 이름을 붙였다. 본명이 ‘순자’거나 말거나. 영어를 할 수 있거나 말거나.

재미교포라는 지위가 우리나라에서 일단 다른 나라 출신의 교포보다 – 특히나 연변출신 등 구공산권 교포들 – 우월적 지위에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역시 한국의 내셔널리즘의 프레임에 휘말리면 –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측면도 부정할 수 없지만 –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외국인으로 분류된다. 군대 안 가려고 미국시민권 획득했다는 혐의를 받고 추방당한 유승준이 대표적이다.

서구적 대중문화 풍토와 별개로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 대한 문화적 배타성이 남다른 한국 땅에서 군대 안간 유승준이나 한국인이 싫다고 한 박재범은, 이제 시커먼 피부에 인쇄소에서 일하는 제3세계 이주노동자의 지위로 전락하였다. 연예기획사의 입장에서도 선진외국 출신이 아닌 국외자 내지는 배신자로 분류된 이주노동자를 잡아둘 이유가 없다.

그렇게 우리 대중문화계는 서구, 특히 미국의 문화 코드를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소비하면서도 그 문화노동자들은 한국의 배타적 민족성을 수용하여야 한다는 이중적인 기준을 가진 소비자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연예계 종사자들은 여타 사고방식은 굉장히 쿨하고 서구적이면서도 술잔 받을 때나 군대 갈 때쯤 되면 된장 냄새 진하게 날 정도로 한국스러운 토종으로 돌변해야 한다. 연예기획사는 춤이나 가창력 이전에 그걸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SNS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SNS 이용자들을 위한 팁 하나‘를 참고하실 것.

카셋테잎(cassette t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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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greenj – Own work, CC BY-SA 3.0, Link

얼마 전에 영국의 13세 소년이 소니 워크맨을 다룰 줄 몰라 쩔쩔 맸다는 기사가 올라 나이든 음악 팬들을 웃게 만든 적이 있다. 80~90년대 소년이었던 이들이라면 대부분 머스트해브 리스트에 올랐던 워크맨이 – 특히 소니 – 이제는 추억의 전자기기가 되어 13세 소년에게 굴욕을 당하는 그 기사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재밌어 했을 것 같다.한편 아시다시피 워크맨에는 반드시 도우미가 있어야 했다. 바로 카셋테잎(cassette tape)이다.

아이팟(ipod)으로 치면 하드디스크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용량의 제한으로 마치 플로피디스크처럼 수시로 갈아 끼워야 했던 저장매체다. 때로 기성품으로 이미 노래가 녹음이 된 카셋테잎을 팔기도 했지만 카셋테잎의 장점은 무엇보다 바로 이른바 ‘공테잎’이란 테잎을 통해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처음 카셋테잎이 등장했을 때에는 LP를 주로 제작하던 하드웨어 업체들이 복제가능성으로 인해 음반시장이 고사할 것이라며 극렬 카셋테잎의 시중유통을 막으려했다는 – 확인불가의 – 에피소드가 있다. 마치 한때 mp3시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LP를 죽인 것은 디지털 매체인 CD이지 카셋테잎은 아니었다.그러했던 가장 큰 이유는 카셋테잎이 LP와 같은 아날로그 매체인데다, 음질이 LP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LP를 살 여력이 안 되는 어린 소년 소녀들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복제해서 듣기도 했지만 개념 없는 DJ들 때문에 앞뒤 부분이 끊어지기 일쑤였고, 결국 그렇게 익숙해진 노래를 더 좋은 음질로 듣기 위해 꼬깃꼬깃 모은 돈으로 LP를 사곤 했기 때문이다.이렇게 카셋테잎은 LP나 CD의 대체재라기보다는 보완재의 역할을 하면서 80~90년대 워크맨이나 기타 테잎레코더의 붐과 함께 발전해왔다.

국산 테잎도 곧잘 팔렸지만 일제 테잎은 비싼 가격에도 좋은 음질과 예쁜 디자인 덕분에 곧잘 팔렸다. 단순한 음질의 테잎부터 크롬, 메탈 등의 서브브랜드명이 붙은 고급음질의 카셋테잎이 선보이기도 했다.2007년 현재 카셋테잎이 음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 세계적으로 0.8%에 불과하다고 한다. 가수들은 더 이상 카셋테잎으로는 자신들의 작품을 내놓지 않고 있고, 유수의 워크맨, 카셋테잎 제작업체도 생산을 중단하고 있다. 마치 필름의 길이 그러했던 것처럼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아래는 예전 카셋테잎들의 겉표지 디자인들이다. 레트로하고 깔끔한 디자인들이 당시의 멋쟁이들의 눈을 사로잡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