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Compares 2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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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compares2u”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1990년 4월 21일 Sinead O’Connor의 “Nothing Compares 2 U”가 빌보드 핫100차트 정상에 올라 4주간 머물렀다. Prince가 만든 이 곡은 빡빡 깎은 머리 스타일로 유명했던 아일랜드 출신의 이 가수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그래미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데뷔 앨범 “The Lion And The Cobra”의 성공 이후 Sinead는 1989년 2집 작업에 착수한다. 당시 매니저였던 Fachtna O’Ceallaigh는 Sinead에게 Prince가 만든 발라드 한 곡을 추천했다. 이 곡은 당초에는 The Family라는 Prince의 사이드프로젝트 밴드가 그들의 1985년 셀프타이틀 데뷔 앨범을 위해 녹음했지만 싱글로는 발매되지 않았고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곡이었다. 하지만 1989년 발매된 2집 “I Do Not Want What I Haven’t Got”의 수록곡으로 녹음되었고 1990년 2월 11일 미국에서 싱글로 발매된 “Nothing Compares 2 U”는 그 해 3월 17일 핫100 차트에 63위로 데뷔한 후 불과 5주 만에 정상을 차지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O’Connor의 본국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수많은 국가의 싱글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했다. John Maybury가 감독한 뮤직비디오에서 O’Connor는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하는데 당초 이 장면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고 가수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린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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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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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 Collins Against All Odds single cover“. Licensed under Wikipedia.

1984년 4월 21일 Phil Collins의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가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을 차지하여 3주간 머물렀다. Phil Collins가 직접 만든 이 곡은 영국 밴드 The Genesis 드러머 출신이었다가 솔로로 전향한 이 가수의 최초의 정상곡이 되었다. 1983년 11월 The Genesis의 시카고 공연을 본 Taylor Hackford는 Collins를 만나 그가 감독할 Jeff Bridges 주연의 “Against All Odds”라는 영화의 주제가를 만들어 줄 것을 의뢰했다. Collins는 그의 첫 솔로 앨범 “Face Value”의 작업 중에 만들어두었던 곡 중 사용하지 않기로 한 곡 하나를 꺼내들었는데 당시의 곡명은 “How Can You Just Sit There?”였다. Collins는 Chaka Khan, Carly Simon, Bee Gees 등과 함께 일한 프로듀서 Arif Mardin와 함께 작업하여 이 곡을 “Against All Odds (Take A Look At Me Now)”라는 이름의 세련된 노래로 변신시켰다. Collins는 The Genesis의 공연 중간에 휴가를 내어 뉴욕과 로스엔젤리스 등에서 보컬과 드럼을 녹음했다. 1984년 2월 초 싱글로 발매된 이 곡은 2월 25일 핫 100 차트 67위에 데뷔한 후 8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Against All Odds”는 1985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베스트 팝 메일 퍼포먼스’ 부문을 수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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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Of Glass는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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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ie1977” by Private Stock Records – eBay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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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front.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78년까지 Blondie는 컬트팬들에 둘러 쌓인 펑크밴드였을 뿐이다. 히트 앨범에 목마른 밴드의 레이블 Chrysalis는 Suzi Quatro와 Sweet과 같은 다운타운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녹음하여 성공한 창조적인 프로듀서 Michael Chapman을 영입하였다. 그 결과가 Blondie의 세 번째 앨범 “Parallel Lines”와 싱글 “Heart of Glass”였다. 1979년 초 발매된 이후 이 곡은 Blondie의 첫 빌보드 히트곡으로써 1979년 4월 차트 정상을 차지하였다. 이 곡은 신쓰팝과 일렉트로닉 댄쓰뮤직의 길을 닦았다.

Mike Chapman: 처음 Chris와 Debbie를 뉴욕에 있는 그래머시파크 호텔에서 만났을 때, 그들은 앨범에 담을 새 노래들을 들려줬어요. 음악은 대단했죠. 그러나 난 그 노래를 진정한 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난 그들에게 다른 곡은 없는지 물었죠. 그들은 “음. 우리가 ‘그 디스코 곡’이라 부르는 노래가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노래를 틀었는데 정말 근사했죠. 하지만 아직 100%에 다다르지는 않았어요.

Mr. Stein: 애초 그 노래의 Debbie의 두 번째 줄 가사는 “Soon turned out, he was a pain in the ass.”였어요. Mike는 이게 라디오 친화적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한 구절을 생각해냈죠. “heart of glass”. 다들 좋아했어요. Debbie는 작업을 해서 “Soon turned out, had a heart of glass.”로 고쳤죠. 그게 바로 우리가 타이틀로 쓴 것이고요.

Mr. Chapman: Debbie에게 음악 비즈니스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죠. 그녀는 “Donna Summer”를 좋아하고 특히 “I Feel Love”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전혀 예상 못했던 대답이었죠. 난 그녀와 Chris에게 말했어요. “이 노래를 Giorgio Moroder 느낌으로 가져가면 어떨까요?” Giorgio는 Donna의 명반들을 프로듀스 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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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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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ndie – Call Me”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Call Me”는 음악 스타일에 있어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절묘하게 걸친 느낌의 곡이다. 이는 아마도 그 곡에서 전형적인 디스코 리듬과 뉴웨이브적인 멜로디가 함께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히트한 시기도 정확히 1980년이다. 펑크밴드에서 뉴웨이브 일렉트로닉 밴드로 거듭난 Blondie가 부른 이 곡은 1980년 4월 19일 빌보드 핫100 차트 정상에 올라 6주간 머물렀다. Heart Of Glass라는 메가히트급의 댄스넘버를 히트시킨 바 있는 Blondie의 두 번째 차트 정상곡이다. 70년대 유로피언 디스코의 대가 Giorgio Moroder와 Blondie의 여성 싱어 Deborah Harry가 만든 이 곡은 Richard Gere 주연의 “American Gigolo”1의 주제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Moroder는 이 곡의 공동작업자로 처음에는 Fleetwood Mac의 Stevie Nicks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레코드 레이블인 모던 레코드사가 이 제안을 거절하자 그 기회는 Harry에게 돌아갔다. Harry는 가사를 썼고 스튜디오에서 보컬을 녹음했다. 처음에 “Man Machine”이라는 가제로 이 곡의 데모를 받은 Harry는 가사와 곡 일부분을 작업하면서 “캘리포니아 해변을 드라이브하는 오프닝씬을 연상했다”고 술회했는데, 실제로 영화의 오프닝씬이 그렇게 연출되었다. 1980년 2월초 싱글로 발매된 후 그 달 16일 바로 차트 80위에 데뷔한 이 곡은 9주 후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게다가 1980년 빌보드 잡지의 연말 차트에서도 정상을 차지하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며 그룹의 가장 큰 히트곡이 되었다. Rolling Stone은 “역대 가장 위대한 500곡”에서 이 노래를 289위에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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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하의 바람둥이 리처드 기어의 엽색행각을 다룬 영화 자체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 ↩

Strangeways, Here We 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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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iths – Strangeways here we come”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The Smiths가 대중음악계에 – 특히 영국의 대중음악계에 –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활동한 시기는 실질적으로 80년대에 국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정규 앨범도 네 개뿐이다. Strangeways, Here We Come은 이러한 그들의 짧은 밴드 활동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다. 영국에서 1987년 9월 28일 발매된 이 앨범은 영국 앨범 차트 2위에 올라 17주간 머물렀다.

The Smiths는 이 앨범을 1987년 3월부터 앨범 출시 전까지 영국 서머셋州 버킹턴의 울홀(Wool Hall)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였다. 모든 곡의 작곡은 Johnny Marr, 가사는 Morrissey가 맡는 공동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Morrissey는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악기를 연주하는데 “Death of a Disco Dancer“에서의 피아노 연주가 그것이다. 작업이 끝날 즈음 Johnny Marr는 그룹을 떠나고 밴드는 해체된다.

음악적으로 Marr는 이전에 그들의 음악을 특징졌던 “징글쟁글(jingle jangle)” 사운드를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예를 들면 The Beatles의 White Album 등으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다. 밴드는 신디싸이저 섹서폰과 드럼머신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엔지니어 Stephen Street의 증언에 따르면 녹음작업은 늘 술파티로 끝났다고 하지만 Marr는 늘 그렇진 않았다고 변명했다.

리드 싱글은 “Girlfriend in a Coma“였다. Morrissey 특유의 냉소적 반전(反轉)이 녹아들어간 가사와 유머러스한 곡진행이 인상적이다. “Paint a Vulgar Picture“에서 Morrissey의 신랄함이 극에 달하는데 음반 산업의 상업성을 쌩얼 그대로 까고 있다. “I won’t share you with the drive and the dreams inside”라는 가사가 담긴 “I Won’t Share You”가 그룹의 마지막 앨범 마지막 트랙이라는 점도 시사적이다.

앨범 타이틀은 맨체스터의 악명 높은 Strangeways 감옥에서 따왔다(지금은 이름을 바꿨다). “Here we come”은 영화 Billy Liar의 “Borstal, here we come”이라는 대사에서 따왔다. 앨범 커버는 Morrissey의 작품으로 ‘에덴의 동쪽’의 출연배우 Richard Davalos가 James Dean을 바라보는 장면을 잘라내어 흐리게 하여 만들었다. 후에 WEA가 밴드의 컴필레이션을 만들 때에도 다시 이 배우의 사진이 쓰인다.

다른 앨범에 비해 음악적 평가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이 앨범 역시 The Smiths의 레전드 필청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Slant 매거진은 “최고의 80년대 앨범”에서 이 앨범을 69위로 선정하였고, 나아가 뉴뮤직익스프레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개의 앨범”에서 이 앨범을 47위에 선정하였다. 그리고 Morrissey와 Marr는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이 앨범을 밴드의 최고의 앨범으로 여기고 있다.

Meat Is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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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tMurder” by Source. Licensed under Fair use via Wikipedia.

Morrissey와 The Smiths 멤버들이(나머지 멤버들이 자발적인 채식주의자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 락밴드임에도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은 락밴드에게 의례 가지고 있는 편견을 깨부순다. 이러한 편견을 파괴하게 되는 밴드의 가장 공공연한 선언이 바로 1985년 발표된 밴드의 2집 Meat is Murder다. Morrissey가 내한공연을 가졌을 적에 그는 앨범 명과 같은 제목의 노래를 연주 목록에 포함시켜 처연한 목소리로 불렀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커다란 눈망울의 소가 클로즈업 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육식을 좋아하는 스미쓰 팬들은 불편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이 노래를 들어야 했다.

이러한 다소는 마이너한 주장이 노골적으로 담긴 앨범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eat is Murder는 영국 차트 1위에 오르는 등 밴드의 작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앨범이 되었다.(미국에서는 차트 110위까지 올랐다. 미쿡에서는 여전히 듣보잡) 하지만 Rolling Stone은 2003년 이 앨범을 The 500 Greatest Albums of All Time에서 296위에 선정하면서 그 뛰어난 음악성을 칭송하였다.(까탈스러운 평론가 Robert Christgau는 이 앨범에 C+ 등급을 매겼다)

1984년 데뷔 앨범의 프러덕션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Morrissey는 기타를 맡은 Johnny Marr와 함께 직접 앨범을 프로듀스하기로 결정하였다. 엔지니어링은 “Heaven Knows I’m Miserable Now”에서 처음 만났던 Stephen Street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정식 크레딧에는 프로듀싱을 “The Smiths”가 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Rourke와 Joyce는 자신들의 악기 연주의 믹싱 과정에서의 사운드레벨에 대한 조언을 하는 정도만 허락받았을 뿐이다.

앨범 트랙의 내용은 이전 앨범보다 더욱 더 정치적이고 직선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Meat Is Murder”가 대표적인 작품이고 그 외에도 “The Headmaster Ritual”이나 “Barbarism Begins at Home”은 체벌에 대한 강한 혐오를 드러낸 작품이다. 음악적으로 밴드는 보다 실험적이 되었는데 “Barbarism Begins at Home”에서는 펑크(funk)적인 긴 후반부 연주를 시도하기도 했다.(베이스 Andy Rourke는 Level 42의 Mark King이라도 된 양 신나게 베이스를 연주한다)

Morrissey는 이즈음에서의 각종 인터뷰에서도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의 공격 대상에는 대처 정부도 있었지만 동료 뮤지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Band Aid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누구나 에티오피아인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걸 영국인에게 매일매일의 고문으로 주입시키는 것은 별개의 문제죠.”라고 대답하였다.

한편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싱글의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싱글로만 발표한 “Shakespeare’s Sister”는 차트에서 성공적이지 않았다. 앨범의 유일한 싱글 “That Joke Isn’t Funny Anymore”는 49위까지 오르는데 그쳤다. “How Soon Is Now?”는 원래 “William, It Was Really Nothing”의 B면 수록곡이었는데 북미의 댄쓰클럽과 얼터너티브 래디오에서 인기를 얻어 북미에서 발매된 앨범에 함께 수록되었다. 결국 이 노래는 영국에서도 싱글로 발매되었는데 차트 24위까지 올랐다.

앨범 커버로도 늘 이야깃거리를 주는 The Smiths의 이번 앨범 커버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군인인 Michael Wynn을 찍은 1967년 작품이다. 원래 그의 철모에 적혀 있는 글은 “Make War Not Love” 였지만 “Meat Is Murder”로 교체되었다. 오리지널 이미지는 Emile de Antonio의 1968년 다큐멘터리 In the Year of the Pig에서 빌려 온 것이다.

BBC 칼럼에 소개된 Rio 앨범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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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anRio”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80년대에 일종의 매끄러운 외양과 음악이 등장했는데 이는 한 밴드로 요약될 수 있다. Duran Duran. 새로운 문화 스타일이 부각됐다. 비주얼은 음악만큼이나 중요해졌다. 밴드는 비디오와 MTV의 방송에 의존했다. Duran Duran의 Rio 앨범 커버는 소니 워크맨과 어깨의 패드라는 집단적인 문화적 기억 속에서 80년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디자이너 Patrick Nagel의 육감적인 여성의 일러스트레이션은 Malcolm Garrett의 트렌디하고 스타일리쉬한 그래픽과 결합하여 식별가능하게는 80년대이고 이미지에 집착하는 세대에 잘 어울리는 외양을 창조하게 되었다.[Cool, quirky and collectible: 12 extraordinary album covers 中에서]

Rio 앨범 중 Save A Prayer 뮤비 보기

Combat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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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lash – Combat Rock”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어릴 적에 이 앨범을 처음 구입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 어쩌면 당연하게도 – 밴드 멤버가 찍혀 있는 앨범 표지였다. 한적한 시골의 철도변에 앉아 있는 반항적인 펑크족들의 사진은 밴드의 음악적 방향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뮤지션과의 작업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Pennie Smith가 찍은 이 사진은 밴드가 1982년 동남아 여행을 하던 중 방콕 외곽의 한 버려진 철도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1982년 5월 14일 밴드의 다섯 번째 스튜디오앨범으로 발매된 이 작품은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7위까지 오르는 등 The Clash의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에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애초 이 작품은 “Rat Patrol from Fort Bragg”이라는 이름의 더블 앨범으로 기획되었다. 하지만 Mick Jones의 믹싱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멤버들이 이 일을 Glyn Johns에게 넘겼고 작품 길이는 싱글 LP로 줄었다.1

앨범의 첫 싱글로 발표된 작품은 A면 첫 곡이기도 한 “Know Your Rights”다. “이것은 기타로 알리는 공공의 발표다.”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권리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이 권리들은 Catch22의 모순처럼 행사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당신은 발언의 자유가 있다. 실제로 그걸 행사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다면 말이다.(The right to free speech, as long as you’re not dumb enough to actually try it)”

앨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은 세 번째 수록곡인 “Should I Stay Should I Go?”다.2 이 곡은 밴드가 영국 싱글 차트에서 유일하게 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었다. 이 노래의 제목 때문에 이 앨범으로 불화를 겪고 결국 그룹을 떠난 Mick Jones의 자조적인 내용이 아니냐는 소문이 있기도 했지만 본인은 부인했다고 한다. 롤링스톤은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이라는 차트에서 이 곡을 228위에 올려놓았다.

“Should I Stay Should I Go?”와 함께 가장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둔 또 하나의 싱글은 이어지는 곡 “Rock The Casbah”다. 이 곡은 빌보드 핫100 차트 8위까지 올랐는데 이는 밴드의 유일한 미국 차트 탑10 기록이다. 이 곡은 1979년 혁명 이후 서양음악을 금지한 이란 정권을 비꼰 내용이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로 이란계 프랑스 만화작가인 마르잔 사트라피의 자전적 작품 “Persepolis”에서 자세히 소개되기도 했다.3

요즘 들어 이 앨범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곡은 제목처럼 펑키한 리듬으로 무장한 “Overpowered by Funk”다. 80년대 The Jam, Spandau Ballet 등을 통해 일반화될 백인 펑크(funk)의 유행을 선도했던 이 노래는 영국에서 작업을 시작해서 앨범 전체를 마무리했던 뉴욕에서 완성되었다. 이 곡의 랩 부분은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밴드의 “This Is Radio Clash” 등의 싱글 앨범 표지 작업을 맡기도 했던 Futura 2000이 맡았다.

앨범이 발표된 1982년은 영국 내부의 정치도 그러려니와 세계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The Clash는 이런 상황을 “전투 락”이라는 앨범 속에 진보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녹여냈다. 이 앨범의 미학적 가치는 또한 다양한 음악장르를 – 특히 랩이나 펑크(funk)와 같은 흑인음악을 –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이다. 밴드의 이러한 문화적 포용성은 펑크락(punk rock)이 단순한 백인 노동계급의 음악에서 머물지 않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 오리지널 믹스는 브트렉으로 팔리기도 했다고 한다 ↩
  2. 어릴 적 하숙집에서 이 노래를 내가 자주 들어 하숙집의 유행가가 되기도 했다 ↩
  3. 이란 정부의 풍속 경찰은 파티 등 서양의 문화를 단속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피하려다 지붕에 떨어져 죽기까지 하는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

Wham!의 중국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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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4월 7일 중국 본토에서는 낯선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날은 Wham!이 서방의 팝 뮤지션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서 라이브 공연을 가진 날이다. 듀오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져가던 시기에 듀오의 매니저 Simon Napier-Bell는 이 나라에서의 공연을 위해 중국 당국과 18개월간 동안 협상했다. 그는 Queen이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다. 결국 중국 당국은 락음악에 다소 현란한 이미지의 Queen 대신 단정한 이미지의 팝음악을 구사하는 Wham!을 선택했다. Napier-Bell이 후에 고백하기를 중국 당국의 이런 결정에는 그의 교묘한 협상전략이 주효한 측면도 있다. 그는 두 개의 중국 당국을 위해 두 개의 브로셔를 만들었는데, 중산층의 젊은이들인 팬과 함께 있는 Wham!의 브로셔와 전형적인 화려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Queen의 보컬리스트 Freddie Mercury의 모습이 담긴 브로셔가 그것이었다. 공연은 열흘에 걸쳐 진행되었고 베이징에 있는 노동자 체육관에서 15,000 명의 관중 앞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성공적인 중국 입성을 마무리했다. 당시 입장권 가격은 무료 카세트테잎을 포함하여 7달러 정도였다. 공연은 “Wham! In China: Foreign Skies”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는데 CBS/Fox에서 홈비디오로 1986년 출시했다.

Rain D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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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Waits – Rain Dogs” by Source. Licensed under Wikipedia.

Tom Waits와 Iggy Pop과 Jim Jarmusch는 ‘삼란성 쌍둥이’가 아닐까 생각될 만큼 서로 다르게 생겼으면서도 분위기가 닮았다. 그래서인지 Tom과 Iggy는 Jim의 영화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고 Jim은 Tom의 음악을 그의 영화에 즐겨 썼다. 또 그래서인지 Tom의 노래가 Jim의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에 등장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Tom의 대표작 Rain Dogs는 그런 면에서 음악으로 듣는 Jim의 영화와도 같은 분위기다. 1985년 9월 발매된 이 앨범은 “도시에서 퇴거당한 이들”이라는 느슨한 콘셉트를 가진 앨범이어서 더더욱 영화적이다.1 스타일적으로는 블루스와 뉴올리언즈 분위기가 물씬 나는 관악 연주가 어우러져 서커스 악극단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Tom은 이 앨범의 대부분의 곡을 1984년 가을 맨해튼에 있는 한 지하방에서 두 달 동안에 거쳐 썼다고 한다. 그리고 앨범 작업에 도시의 분위기를 가미하기 위해 거리에서의 소음이나 카세트레코더에서 나오는 모호한 소음을 녹음해 두었고, 후에 앨범 곳곳에 배치되었다. 또한 이국적 분위기를 위해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었는데 이 중에는 마림바, 아코디언, 더블베이스, 트럼본, 밴조 등이 있다. 이러한 음악적 기조는 신디싸이저와 드럼머신이 지배하던 1980년대 중반의 대중음악계에서는 매우 이채로운 일이다.

앨범 녹음작업 또한 매우 즉흥적이었다고 한다. 기타 연주를 맡았던 Marc Ribot의 회고에 따르면 밴드는 녹음에 들어가기 전에 연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Tom은 스튜디오에서 그들에게 어쿠스틱기타로 곡을 연주해줬다. Tom은 곡의 방향을 위한 제안을 하긴 했지만 처음이나 두 번째 테이크에서 어떤 곡이 나올지에 대해서는 그때의 상황에 의존했다. Tom은 이 앨범에 The Rolling Stones의 Keith Richards도 초대했다. Tom의 회상에 따르면 그는 동물과도 같은 감각으로 곡 작업에 대한 제안을 했다고 한다.

굉장히 익숙한 앨범 커버는 스웨덴의 사진작가 Anders Petersen이 함부르크에 있는 홍등가 Reeperbahn 근처에 있는 Café Lehmitz에서 1960년대에 찍은 사진 연작 중의 하나를 사용한 것이다. 사진 속의 남녀는 Rose와 Lily로 불리웠다 한다.

앨범 듣기

  1. 실제로 이 컨셉트는 Martin Bell 감독의 1984년 다큐멘터리 Streetwise에 영감 받아 생각해낸 것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