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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yrne and Brian Eno to tour with “electric gospel” album

David Byrne and Brian Eno have completed a new album (of “electric gospel”) for released before 2009 and have booked a North American tour on which they’re planning to play at least 40 percent old Talking Heads material. Holy moly, this is as good as life gets!

Byrne told us he’s collaborating with their mutual friend Brian Eno “for the first time in 20 years. Brian had written a lot of music, but needed some words, which I know how to do. What’s it sound like? Electronic gospel. That’s all I’m saying.”

Link, Link to NY Daily News piece
See also:
Byrne/Eno “Bush of Ghosts” tracks re-released under CC
Missing Byrne/Eno track “Qu’ran” appears on blogs
Byrne/Eno’s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 — remix it yourself!
David Byrne’s guide to being a musician in the 21st century

from boingboing.net

거물가수가 말하는 신참음악가가 돈 버는 방법

최근 Wired.com 에서는 미국의 어느 고참 가수의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의 이름은 David Byrne 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영미권의 펑크, 뉴웨이브 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전설적인 펑크락 클럽 CBGB를 통해 데뷔한 이래 펑크/뉴웨이브의 전형이 되어버린 그룹 Talking Heads의 리더이자 프론트맨이었기 때문이다.(한국어 팬페이지 가기)

그런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기술혁신과 불법다운로드 등으로 망해간다고 아우성치는 음악 산업계에 일침을 놓는 글을 Wired.com에 올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이미 기득권인 그이지만 ‘총체적 폭로(total disclosure)’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이 글을 통해 음악 산업계의 감춰진 기득권의 일면을 보여주면서 현재의 기술혁신 등의 상황이 음악가들에게는 오히려 기회임을 말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 그동안 관련 산업계에서 회자되어온 내용이 많지만 그 산업에 직접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거물급의 인사가 한 말이기에 무게감이 한층 크다. 불법 다운로드, 음악의 거대산업화, 신인의 등용문 등 여러 주제가 많지만 글이 무척 길기에 편집자 마음대로 요약 발췌하였다. 원문의 의도와 다른 내용이 있다면 가차 없이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원문보기 http://www.wired.com/entertainment/music/magazine/16-01/ff_byrne?currentPage=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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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head가 최신앨범을 온라인을 통해서 발표했고 Madonna는 워너브로스에서 콘서트홍보 회사인 라이브네이션으로 망명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음악산업의 형태가 종말을 맡고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오늘날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 독보적인 방법은 없다. 적어도 내 계산으로만도 여섯 가지의 방법이 있고 음악가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과거에는 음악은 우리가 듣고 경험하는 무엇이었다. 그것은 순수한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행사였다. 녹음기술이 존재하기 전에는 음악과 사회적 콘텍스트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교회, 술집, 군대 등에서 불리는 음악들은 각기 그 사회적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것을 집으로 가져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상품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음악은 그저 경험이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기술이 이러한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녹음을 통해 음악은 생산물이 되고 팔리고 거래되고 재생되었다. 이로서 음악은 경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레코드회사가 음악을 경제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자.

  • 자금조달
  • 상품제조
  • 상품유통
  • 상품홍보
  • 음악가들의 경력과 녹음의 조언 및 가이드
  • 회계정리

이것이 오늘날 상품을 내놓기 위해 시스템이 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레코드, 테잎, 디스크 등이 음악을 실어 날랐다. 그런데 오늘날 이와 똑같은 것들을 실어 나르는 데에 그 서비스의 가치가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면

녹음비용은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음악가들은 녹음을 위해 레이블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음악가는 직업적인 스튜디오, 엔지니어, 프로듀서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최소자금인 1만5천불을 지불할 돈이 없다. 그러나 이제 앨범은 이메일을 확인하는 노트북으로도 만들 수 있다.1

제조와 유통비용도 제로 수준으로 접근하고 있다. LP나 CD는 기본적으로 드는 제조단가, 수송단가가 있다.(사실 우리는 음악에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플라스틱에 지불하는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을 통한 유통은 거의 공짜다. 이 방법을 통하면 100카피건 100만 카피건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레이블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몇몇 레이블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하던 역할이 보다 혁신적인 방법으로 대체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Brian Eno[footnote]또 하나의 거물음악가로 Roxy Music의 멤버이기도 하였으며 프로듀서로서 수많은 명반을 제작하였다.[/footnote] 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I Think Music 이라는 인디밴드들의 온라인 네트웍에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제작방식에 회의감을 표시했다.

“구조적으로 그들은 너무 크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전적으로 수세적인 위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라고는 음악가에게 큰 금액의 선금 –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밴드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 을 줄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러나 그게 다다.”라고 Eno는 이야기했다.

여섯 가지 음악유통 모델
현재 음악유통 모델은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모든 것이 기획사에 의해 기획되는 방식이다. Pussycat Dolls, Korn, Robbie Williams 등이 이러한 방식인데 이들은 일종의 브랜드가 된다. 회사는 이들을 이용해 음악, 티셔츠, 팬시상품 등 수많은 관련 상품으로 돈을 번다. 때로는 음악가들도 많은 돈을 벌지만 대부분의 돈은 자본투자가들에게 흘러간다.

2. 전통적이고 표준적인 유통 모델이다. 과거의 Talking Heads 가 이런 식이었는데 레코드 회사가 녹음, 제조, 유통, 홍보를 하고 음악가는 로얄티를 받는다. 이 방식은 레이블이 녹음한 것들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소유한다.

3. 라이센스계약은 표준적인 방식과 비슷하나 이 경우는 음악가가 지적재산권과 마스터레코딩의 소유권을 가진다. 재산권들을 향유할 권리가 레이블에 주어지나 일정기간이 지나면 음악가에게 귀속된다. 만약 음악가들이 기업에게 재정적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 이 방식을 살펴볼만 하다. Arcade Fire가 인디레이블인 Merge와 맺는 관계가 이런 식이다.

4. 이익분배 모델인데 내가 2003년 Lead Us Not Into Temptation를 내놓을 때 Thrill Jockey와 일하면서 사용한 방식이다. 레이블에게 최소한의 선금만 받고 이익은 분배하였다.

5. 음악가가 제조, 유통만 빼놓고 다 하는 방식이다. 기업의 역할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센티브도 적다. 이 모델에서 음악가는 창의성을 보장받지만 도박이기도 하다. Aimee Mann이 이 방식을 채택했다. 그녀는 “많은 음악가들이 그들이 벌 수 있는 많은 돈들이 소유권과 라이센싱을 포기함으로써 날아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6. 셀프유통모델이다.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생산하고, 연주하고, 판매한다. CD는 공연이나 웹사이트에서 판다. 홍보는 MySpace 를 이용한다. 음악가는 총체적으로 창의적인 권리를 부여받는다. 실제로는 거리에서 CD를 팔고 라이브를 하는 신참 음악가에게는 의지할 곳 없는 자유, 대단히 추상적인 독립이긴 하다. Radiohead 가 이 DIY 모델을 채택했다. 소비자들은 음악을 다운받고 그들이 지불하고 싶은 가격으로 지불하면 되는 방식이었다. 이들과 같은 유명밴드에게는 상대적으로 위험이 덜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는 진정한 변화의 초석이기도 하다. Radiohead의 매니저 Bryce Edge는

“이 업계는 종말이 다가온 것처럼 반응한다. 그들은 음악을 평가절하시키고 무료배포한 것처럼 말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우리 음악을 평가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전혀 다른 의미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유 VS 실용주의
어떠한 모델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위의 모델들을 혼합하고 적응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음악 산업이 종말을 고하고 있다고 읽은 적이 있는가? 실은 좀 더 많은 기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대스타들에게는 여전히 그들의 신보를 작업해주고 홍보해줄 전통적인 대규모 기획사를 필요로 하겠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소규모 회사들을 통한 작업도 진행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하한의 모델은 단일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다. : 우리가 음악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가. 어떻게 음악이 우리를 이끄는 우리 머리와 가슴 속의 대지(大地)로 이끌 것인가. 우리는 음악을 통해 그곳으로의 여행 티켓을 얻을 수 있는가.

  1.  이를 두고 어떤 누리꾼은 원 글의 댓글에 ‘어떻게 메일확인하는 노트북으로 음악을 만드느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난독증이다. 이것은 일종의 비유일 뿐이다.

Talking Heads / Remain In Light

토킹 헤즈의 네 번째 앨범 「Remain In Light」의 위대함은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리더 데이빗 번의 호기심과 창의력에 있다. 항상 지적인 밴드로 불리우는데 싫증난 번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이 앨범은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과 여러 부족들의 전설에 바탕을 둔 아프리카적 정서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다. 이처럼 독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또 하나의 인물은 이 앨범의 프로듀서이며 토킹 헤즈의 초창기부터 번과 호흡을 맞춰 온 브라이언 이노이다. 그는 작곡과 편곡, 기타를 제외한 대부분의 악기 연주에서 특유의 음악적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Remain In Light」의 전체적 사운드는 아프리카 전통 음악에 근거해 멜로디에 의한 코드 체인지에 의존치 않고 대담한 반복 리듬을 고집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된 사운드는 대단히 펑키(Funky)하고 댄스적이다. 대부분의 실험적 음반이 상업적 성공과 연결되지 않는데 반해 이 앨범은 빌보드 팝 앨범 차트 19위까지 진입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히트곡 을 비롯, 수록곡 대부분의 가사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한 마디로 「Remain In Light」은 ‘제3세계 음악’의 중요성을 크게 일깨워준 기념비적 앨범이다. 폴 사이먼의 「Graceland」나 스팅의 「The Dream Of The Blue Turtles」등이 모두 이 앨범에 큰빚을 지고 있다.(이무영)

Talking Heads

Talking Heads band3.jpg
By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www.flickr.com/photos/52489759@N00″>Jean-Luc</a> – originally posted to <a href=”//commons.wikimedia.org/wiki/Flickr” class=”mw-redirect” title=”Flickr”>Flickr</a> as <a rel=”nofollow” class=”external text” href=”https://www.flickr.com/photos/52489759@N00/12084638″>Talking Heads</a>, CC BY-SA 2.0, Link

David Byrne, Chris Frantz 와 Tina Weymouth는 70년대 중반 Rhode Island 디자인 스쿨에 다녔다.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카나다와 발티모어에서 자란 Byrne은 Revelateion이라는 이름의 스쿨밴드에서 그의 음악경력을 시작하였다. Byrne의 다음 모험은 좀더 진지한 것이었는데 아코디언 연주자인 Marc Kehoe와 함께 그는 발티모어와 샌프랜시스코의 아트스쿨과 레스토랑에서 Bizadi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Byrne은 Rhodes Island에서 Chris Frantz라는 드러머를 만나서 Artistics라는 밴드를 조직했다. 그들은 커버버젼을 주력했으나 Byrne은 그 와중에서 ‘Psycho Killer’, ‘I’m Not In Love’, ‘Warning Sign’ 같은 나중에 Talking Heads 시절 써먹은 노래를 만들었다. 그룹의 열렬한 팬 중에 한명은 바로 Tina Weymouth 였는데 후에 Frantz와 결혼하였다.

Artistics가 1974년 중반 해체된 이후 셋은 그들 스스로 밴드를 조직할 것을 고려하였다. Weymouth 는 베이스를 배웠고 이 세명의 졸업생은 New York 의 Lower East Side로 본거지를 옮겼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른 예술학교 졸업생들처럼 창고에서 기숙하는 길을 걸었다. 트리오는 1975년 초반 진지하게 연습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주요 연습곡은 Byrne의 오리지날곡들과 버블검 사운드, 그리고 60년대 펑크락의 커버버젼이었다. 그 해 5월 그들이 연주하곤 했던 음악에 관한 선입견이 없을 만한 그런 이름, Talking Heads란 이름을 찾아냈다.

6월에 그들은 CBGB에서 Ramones 공연의 전 공연으로 데뷔공연을 가졌다. New York 은 그 당시 한 시절의 음악적인 폭발력의 한 중앙에 있었다. Patti Smith, Tom Velaine, Richard Hell이 이끄는 Television, 그리고 Ramones와 같은 아티스트들은 Brill Building의 사망 이후 미국락계의 메인스트림으로 나서고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Talking Heads에게는 매우 유익한 토양이 되었다. 트리오는 1976년 Beserkeley 레코드사를 위해 ‘Psycho Killer’, ‘First Week, Last Week/Carefree’, 그리고 ‘Artists Only’가 담긴 최초의 데모테잎을 만들었다. 이 데모테잎은 ‘1,2,3 red light’의 라이브 버전과 함께 80년 브트랙 EP에 실려있다. 이 테잎은 그들이 그들의 첫 앨범을 만든 시기에는 사라진 단순하고 일렉트릭한 매력이 살아있는 음악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중에 1976년 여름 데모 세션이 이어진다.

그리고 11월에는 Ramones와 Flamin’ Groovies같은 이들의 고향인 Sire와 계약을 체결했다. 12월에 그들은 New York에서 처음 발매된 그들의 첫싱글 ‘Love Goes To Building On Fire’/’New Feeling’을 녹음했다. 이 두 트랙은 ‘New Feeling’의 경우 그들의 데뷔앨범에 다시 삽입되었고 A면의 경우 Sire의 히트작 ‘New Wave’에 포함되긴 했지만 Talking Heads의 정식앨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첫 싱글의 앨범재킷은 영국판의 경우 흔하지만 미국판의 경우 수집품목이 될만큼 귀하다. 그 싱글이 발매될 때 Talking Heads는 Jonathan Richman 이 빠졌던 오리지날 Modern Lovers 의 키타리스트였던 Jerry Harrison을 영입 4인조가 되어 있었다. 1976년 몇 번의 공연 후 그는 밴드에 합류하기로 동의했다. 이들은 유럽에서의 일련의 공연 이후 그들의 첫 LP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룹은 4월에 바하마에서 그들의 두번째 LP More Songs About Buildings And Food를 녹음하기 위해 1978년 초반 유럽에서 돌아왔다.

디스코그래피
1977 TALKING HEADS 77 review
1978 MORE SONGS ABOUT BUILDING AND FOOD review
1979 FEAR OF MUSIC review
1979 LIVE ON TOUR 1979 review
1980 REMAIN IN LIGHT review
1982 THE NAME OF THIS BAND IS TALKING HEADS review
1983 SPEAKING IN TONGUES review
1984 STOP MAKING SENSE review
1985 LITTLE CREATURES review
1986 TRUE STORIES review
1988 NAKED review
1991 THE BEST OF: ONCE IN A LIFETIME review
1991 POPULAR FAVORITES: SAND IN THE VASELINE review
1999 12 x 12 review
1999 STOP MAKING SENSE 99 review

링크
Talking Heads Korea : New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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