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다큐멘타리

Hoop Dreams

Onibus 174가 제3세계의 가난한 아이들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그린 다큐멘타리라면 Hoop Dreams 는 제1세계,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에서 가난한 흑인가정의 자녀들이 어떻게 자라는가에 대한 관찰기라 할 수 있다. 감독 Steve James 는 결코 순탄하다고 할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농구선수의 꿈을 키워가는 두 소년 William Gates와 Arthur Agee의 성장기를 오랜 기간 필름에 담는다. 둘 모두 재능을 인정받아 사립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그들의 농구인생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성장한다. 결국 그들은 꿈에도 그리던 NBA로 입성하게 되는가? 가족들의 나머지 인생들까지 걸린 도박에서 성공할 것인가? 1994년에 제작되어 선댄스 페스티발, 뉴욕비평가 협회, 아카데미 등에서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다큐멘타리다. 이후 유사한 스타일의 다큐멘타리가 다른 감독들에 의해 선보여지기도 했다.

Onibus 174

2000년 6월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에서는 충격적인 인질극이 벌어진다. 대낮에 다운타운을 지나가던 시내버스에 약에 취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젊은이가 승객들을 대상으로 인질극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수많은 사람들과 방송카메라가 몰려들었고 인질극은 전국에 생중계되는 초유의 사태로 발전했다. 바로 이 인질극의 시작부터 비극적인 종말까지 감독은 인질범 산드로의 개인사적인 비극에서부터 사회구조적인 모순 등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다. 인질, 당시 경찰, 산드로의 가족, 거리의 친구들 등 관련인물들의 심층취재를 통해서 주관적 연민이나 편견을 배제한 채 인질극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결국 그는 사회로부터 폭력을 배웠고 사회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휘두른 주먹에 맞은 이는 정작 맞아야 할 그 누군가가 아니라 함께 주먹을 휘둘렀어야 할 또다른 희생자였을 뿐이다. 인질극 생중계라는 흔치 않은 소재의 다큐멘타리

‘로저와 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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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and me” by The poster art can or could be obtained from Warner Bros... Licensed under Wikipedia.

원제 : Roger & Me
제작년도 : 1989년
감독 : Michael Moore

미시간주의 플린트는 디트로이트 못지 않은 자동차의 도시다. 그곳은 또한 영화감독이자 지독한 독설가인 마이클무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 플린트에서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시의 경제의 가장 큰 축이던 GM사가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해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결정을 주도한 이가 바로 GM의 CEO(요즘은 사장이나 회장이 아니라 이렇게 불러줘야 한다) 로저 스미스였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그 바람에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을 바라보던 마이클 무어는 로저 스미스에게 그에게 단 하루만이라도 플린트에 들러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의 처지를 보기를 권하기 위해 그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그를 만나기 위해 3년이 훌쩍 넘은 후에야 GM직원을 위한 크리스마스 파티 석상에서 간신히 그와 조우한다. 하지만 마이클의 날선 질문에 로저가 무시하면서 사태는 종결.

그 와중에 실직한 노동자들은 타코벨에서 점원노릇을 하고, 매혈을 하고, 토끼를 팔고(왜완용으로 팔다가 남은 놈은 식용으로 판다), 집세 체납자들을 쫓아내는 부보안관이 되고, 감옥의 간수가 된다(GM 사태 이후 범죄율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해 시는 새 감옥을 지었고 감옥 준공파티를 열어 일반인들에게 돈을 받고 감옥에서 하룻밤 잘 수 있게도 했다). 그리고 이도 저도 안되는 이들은 범죄를 저질러 예전의 직장동료가 간수로 있는 감옥신세를 진다. 전국 자동차 노조 위원장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내젓는다(에라이~).

시당국은 플린트를 관광도시로 만들겠다며 시예산을 들여 하이얏트 호텔과 오토월드(무너져 내린 자동차 왕국의 씁쓸한 유물로 가득한)를 만들지만 호텔은 파산하고 오토월드는 문을 닫는다. 가진 이들은 ‘위대한 개츠비’ 파티(미국인들이 좋아하는 1920년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그 당시의 의상을 입고 즐기는)를 열어 세상풍파와 무관함을 뽐낸다. 그러면서 반드시 나쁜 면만을 보지 말라고 주문한다. 좋은 면이 무어냐는 마이클의 질문에 한 여인은 대답한다.

“뭐 예를 들면 발레랄지…”

1980년대 말에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는 시대와 장소를 훌쩍 뛰어넘어서 2004년 남한 땅의 상황과 근사하게 중첩된다. 오늘 자 신문을 보면 한국은행의 철없는 총재 박승씨마저 ‘고용 없는 성장’을 인정하였다. 또한 산업이 공동화되고 있다 한다. 수출은 사상최대의 흑자인데 내수는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어디선가 성장은 분명히 하고 있는데 그게 노동자들에게까지 전파가 되고 있지 않다는 소리다.

또다시 해묵은 논쟁을 들추어 내보자. 기업이 벌어들인 돈은 누구의 돈인가? 그리고 성장한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나는 누가 뭐래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노동자와 자본가(많이 양보해서) 공동의 소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재벌의 아들은 불과 몇 년만에 엄청난 부를 움켜쥐고 노동귀족은 곰팡이 슨 집에 살고 있을까? 왜 플린트의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이 일구어낸 자동차 왕국에서 어느날 갑자기 쫓겨나는 것일까? 자신들이 일구어낸 자신들의 공장에서….

원래 아무리 혁신적인 영화라도 만들어진지 한 4∼5년만 지나도 촌스러워지는 법인데 –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 그리고 최신영화들을 비교해보자 –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한 시대의 흐름에 따른 촌티가 흐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그 시대의 상황이 오늘날 이 땅의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아 한가지 틀린 구석이 있긴 하다. 그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미남 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은 노동자를 위로한답시고 플린트를 방문해 실직 노동자 12명과 한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적당한 대안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결국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식당만 돈벌어준 꼴이 되었지만). 21세기 우리의 대통령은 귀족노조의 전투적이고 이기적인 노동운동 때문에 나라꼴이 엉망 된다는 어이없는 소리만 하고 있다. 그 대신 그는 자본가들과 삼계탕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