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펑크의 출현>
펑크의 출현은 록이 지닌 양면성과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낸 록의 대사건이다. 찬사와 혐오라는 극단적 반응을 받았던 섹스 피스톨즈를 중심으로 한 런던 펑크의 출몰, 그것은 록계의 이변일 뿐 아니라 패션과미슐, 청소년 문화등 여러 분야에 두루두루 영향을 미친 사회적 사건이었다.
펑크란 말은 지금도 일부 청년문화를 말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때 펑크가 가리키는 것은 무위도식하는 깡패집단이기 일쑤다. 심지어 펑크족을 죽도록 싫어하는 극우 인종주의 폭력집 단 스킨헤드족을 펑크로 잘못 아는 이도 있다. 물론 이 민대머리 깡패들은 그 시절 펑크족과 겉모양은 슷하다.
그러나 영국 자본주의에 닥친 위기와 사회 모순 속에서 나타난 펑크록과 펑크족은 스킨헤드와 는 다른 사회 위치에 서 있다. 심리적인 불안감이란 닮은꼴에도 불구하고 70년대 펑크록엔 변태적인반자본주의성이 있다.보통 펑크록이 시작된 곳은 영국 런던이라고 본다. 하지만 펑크 록이란 말이 가장 먼저 사용된 건 60년대 후반 미국 쪽에서부터다.
이 때 등장했던 시츠Sits, 레이더즈Raiders, 바바리언즈Babarians, 카즈Cars, 서틴스 플로어 엘리베이터13th Floor Elevator(13층 엘리베이터라는 이 별난 이름엔 독특한뜻이 있다. 여기서 13층은 불길함이란 뜻도 있지만 더 큰 뜻은 영어 알파벳의 열세번째 글자 M이다.이는 마리화나의 약자다. 즉 13층 엘리베이터는 마리화나의 끽연과 그 몽환상태를 가리킨다고 보면 옳다.)등 무명에 가까운 일군의 그룹과 펑크(혹은 챔피라:불량스러운, 불건전한 등의 뜻)라고 불렀다.
이 당시 펑크는 거칠고 사이키델릭한 감각으로, 코드 세개로 된 단순한 로큰롤을 연주했다. 펑크 록 스타들은 대부분 자기집 차고에서 연습을 하는 아마추어 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아마추어들 가운데 일부가 말 그대로 일확천금을 벌면서 데뷔한 것이 예로 든 펑크 록 뮤지션들이다. 사람들은 70년대 펑크와구별하기 위해 이들을 오리지날 펑크original punk 혹은 개리지 펑크garage punk로 부른다. 뒷날 클래시가 Garage Land라는 곡을 불렀던 것은, 바로 이들 개리지 펑크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닐까.
이들 개리지 펑크 록은 록의 역사에 굵직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 계속 명맥을 유지한다. 80년대 후반 그리고 최근의 올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의 뿌리는 이들에게 닿아 있다. 70년대 펑크는 뉴욕에서 처음 고개를 내밀었다. 1972년 데뷔한 뉴욕 돌즈는 펑크 록의 선구자다. 뉴욕 돌즈를 뒤이어 1973년경 시비지비스CBGB's, 바우어리 클럽Bowery Club들의 록 클럽을 평정한 펑크그룹들이 속출한다.
마치 비틀즈가 캐번 클럽을 평정하며 새로운 록의 씨앗을 뿌렷듯. 라몬즈Ramones,텔레비젼Television, 패티 스미스 그룹Patti Smith Group, 토킹 헤즈Talking Heads, 블론디Blondie들은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그룹들이다. 이들은 후일 '뉴욕 펑크New York Punk'로 일컬어진다.
미국에서 이들은 언더그라운드 존재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감각적인 영국의 음악 저널리즘은 일찍부터 그들 활동에 주목한다. 1978년 라몬즈는 레코드 한 장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영국 순회공연을 하 였음에도 엄청난 영국 청중의 호응을 받는다.이들이 가진 거라곤 코드 세개의 간단하고도 격정적인 로큰롤이었다. 물론 라몬즈의 사운드는 런던 펑크의 기폭제가 된다.
<한편 영국에서는....>
섹스 피스톨즈가 등장할 즈음 영국은 만성적인 경제불황에 허덕이고 있었다. 70년대 중반에 실업자가 약62만명을 넘어섰던게 1년 만에 110만 명으로 급증하더니, 1977년 말에는 130만명을 돌파한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영국의 실업사태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점을 보여 왔다. 영국의 경우 성인층보다 나이 어린 층에 실업자들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1977년~80년 통계에는 18세 이하 실업률이 약 14%였던 데 비해, 성인 남자 실업률은 그 반인 7%이다). 그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주당 10파운드의 실업수당을 받으며, 빈둥빈둥 하루를 소일해야 했다. 계급차별이 뚜렸했던 영국에서 이런 노동계급 출신 젊은 청년들이 손쉽게성공할 길이란 뮤지션이나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이처럼 빈곤과 무기력에 지친 젊은층에게 불을 당겼다. 섹스 피스톨즈가 선보인 음악은 누구나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심플한 로큰롤이었다. 누구나 '밴드'를 만들어서 성공할 수 있고, 록은 절대 일부 슈퍼스타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는 꿈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하여 곳곳에서 새로운 밴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레코드 회사 사이에선 '침을 튀길 수 있는 사내면계약을 하시오."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날 정도였다.
그리고 펑크라 일컬어지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펑크 뮤지션의 노래에는 영국 사회에 대한 불만과 공격이 가득차 있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우리는 세계의 종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절망감을 토해 냈다. 스트랭글러스Stranglers는 "언젠가 당신 얼굴을 으깨 버리고 싶다."고 절규하고, 댐드Damned는 "법이 없으면 죄도 없고 경찰도 없다."고 선언한다. 클래시Clash는 "우리는 폭동을 바란다."는 다분히 선동적인 노래를 불렀다
어느 노래나 보컬은 격렬하게 파동쳤다. 사운드에서도 파괴적인 긴장미가 서려 있었다. 역시 같은 펑크 뮤지션이었으며 급진적인 정치적 행동파였던 톰 로빈슨Tom Robinson은 섹스 피스톨즈의 출현과 펑크록 등장을 이렇게 논평한다. 이제 록은 10년동인 부드럽고 화려한 음악을 지나온 끝에 로큰롤 본연인 외설적이고 조잡하며 반항적인 민중음악으로 되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들 음악이 강한 정치적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다. 이들 음악 속엔 냉정하고 묵직한 주제와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즐거움이 갈등 없이 섞여 있었다. 우리는 따분함을 달래기 위해 연주했다. 실업과 권태처럼 별반 즐겁지 않은 일들을 노래했지만, 우리는 무엇을 노래하든 그속에 즐거움이 없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믿었다. 이같은 자니 로튼의 발언이야말로 펑크가 왜 영국 젊은이들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 잘 요약해 준다.
서동진 씀(punk77.com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