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의 반항에서 테크노까지, 소비사회에 대항하는 문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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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문화’라는 문구는 언뜻 모순되어 보인다. ‘대항’한다는 것은 거부한다는 뜻인데 문화적이라는 것은 삶으로부터 의미와 가치를 뽑아내고 그것을 해석하고 감상하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항하여 사랑한다는 것이 성립하는가? 어떻게 개방적이고 창조적이며 의미 있는 문화적 실천행위가 전술적인 대항을 의미하는 용어와 나란히 쓰일 수 있는가?


아마도 19세기의 정치철학가 칼 마르크스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떠올랐을 것이다.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자본주의에 대한 어떠한 의미 있는 대항이라도 노동자와 경영진,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들 사이의 대항과 같은 경제문제로 얽힌 관계에서만 생길 수 있으며, 그 형태는 정치영역에서 과격한 노동운동이나 혁명적인 선동에 의해서만 드러난다.


한마디로 이러한 사고는 문화의 영역을 빼고 오직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만을 제시하였다. 실제로 이러한 관점에 의하면 문화는 대항의 대항으로만 드러날 수 있다. 즉, 문화는 자본주의 내의 지배논리가 모두에게 명확히 보여질 수 있도록 파괴되어야 하고 폭력적인 저항을 통해 거부되어야 하는 이데올로기의 베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가 죽은 지 수세기가 지난 지금 ‘대항문화’라는 용어는 누구에게도 수수께끼를 던지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인류 역사의 궁극적인 주체라고 칭송했던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이 전복시켜야 했던 체제의 편안함에 이미 오래 전에 넘어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롤레타리아들은 여가시간에 그들이 일터에서 생산한 물건을 소비하기 시작하였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생산한 상품과 그 상징들에 깊이 둘러싸이게 되었다.


오늘날 소비주의와 소비문화는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깊이 들어와 있으며 우리의 언어, 사회관계, 집단의식, 가치관 그리고 우리 자신들과의 관계에까지 완전히 용해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 중에서 자본주의가 그 기반이 된 문화의 넓은 영역으로부터 생겨나지 않은 대항을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대항문화는 때로는 자본주의와 관련된 모든 사회적, 개인적, 정치적, 성적, 그리고 경제적인 논리에 일반적인 반대입장을 취하면서 이와 동시에 문화의 영역 안에 남는 것을 뜻한다. 즉, 사람들이 세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미의 어떤 기준을 확인하기 위해 취하는 실천적 행위 및 태도로 남는다.


그러나 대항문화 활동가는 어떤 사람인가? 이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이것이 현재의 대항문화를 분석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학술적으로 대항문화연구를 살펴보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뿌리가 있다. 하나는 미국 시카고학파의 실용주의 사회학자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다양한 비주류 그룹들이 ‘대항문화’라는 용어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사회적 규범 속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하며, 또 어떻게 주류문화가 이러한 과정에 비슷하게 기여를 하는지에 주로 관심을 보였다.


대항문화를 다룬 또 다른 중요한 학파는 버밍엄 대학의 현대문화연구센터에 근거를 둔 영국학파의 사회학자들로서 이들은 ‘문화연구’라는 학문분야를 개척하여 널리 알려졌다. 이들에 의하면 젊은이들은 대항문화를 통해 도전을 추구하며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자본주의적인 논리를 거부한다. 비록 대항문화의 관심이 경제적인 것이며 궁극적인 목표가 정치적인 것일지라도 이들이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대항문화 활동가는 자신을 둘러싼 소비문화를 형성하는 기호의 숲 속에서 경제에 뿌리를 둔 억압에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분석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롭게 부상한 노동계급의 다양한 문화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비록 이제 노동계급이 소유했던 정치력을 거의 잃었지만 이들은 대항적 입장을 취하는 소비와 기호의 표현을 통해 문화의 차원에서 정치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최근의 대항문화는 대항문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토양이 고갈되었다는 문제를 둘러싸고 위기를 맞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문화를 통한 대항이 너무나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제도화되어서 스스로를 대항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문화를 상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청년문화의 모티프는 중년의 소비자를 위한 제품까지 확대되었으며 더 나아가 사회적 규범에 대한 대항, 과격한 미학과 개인주의적이고 반항적인 태도의 추구는 주류 소비문화에 널리 받아들여져서 대항의 진정한 의미가 이제는 시대착오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최근의 대항문화적 노력은 대안적 전략을 탐구해야만 했다. 1980년대에 펑크가 서서히 뉴웨이브, 팝, 얼터너티브, 그리고 더욱 더 상업적인 음악 장르로 전환하기 시작했을 때 전복과 문화적 반항을 꿈꾸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기운이 생겨나고 있었다. 펑크가 디스코 음악에 내세웠던 전통적인 금기는 격렬함과 대항을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클럽의 젊은이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깨어지고 있었다.


이에 부합하여 간헐적인 레이브 파티(클럽 파티)를 좇아 다니는 젊은이들의 관심을 끈 테크노 음악이 19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댄스 문화를 구성하였다. 이것은 대항문화 역사상 근본적으로 새로운 발전이었으며 오늘날 대항문화를 고려함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 소비문화, 인공적 안락함, 대용적 쾌락, 그리고 만들어진 행복은 전통적으로 아방가르드와 청년문화그룹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격렬함과 불편함, 그리고 극단의 감정적 경험에 호소함으로써 펑크와 헤비메탈, 다다, 추상표현주의, 그리고 여타 과격한 문화 형태들은 소비주의가 선호하는 가장된 쾌락의 꿈 뒤에 숨겨진 냉혹한 현실을 찾기를 원했다.



[월간 디자인 2000년 5월호]글/샘 빙클리(뉴욕 뉴스쿨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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