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헤비메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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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as Priest Retribution 2005 Tour“.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뉴 웨이브 열기 비집고 헤비메틀 재등장

  70년대 신디사이져의 등장으로 잠시 전성기를 뉴뮤직에게 넘겨줬지만, 메틀 밴드들이 기피해 오던 신디사이져를 도입해 과감한 시도를 한 밴드도 적지 않았다. 바로 프로그래시브 메틀이라는 장르를 만들었던 것이다.

  1980년 레드 제플린은 존 본햄을 잃고 추락하였고, 리치 블랙모어는 여전히 변덕스럽게 레인보우의 멤버를 갈아대고 있었다. 오지 오스본이 떠난 블랙 사바스는 레인보우를 나온 보컬리스트 로니 제임스 디오를 받아들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보려고 했지만 팬들은 새로운 블랙 사바스의 사운드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키스의 요란한 화장도 더 이상 얘깃거리가 되지 못했고, 유라이어 힙은 아직 활동하고 있지만 팬들은 이미 그들을 과거 시제로 얘기하고 있다.

  AC/DC, 반 헤일런, 주다스 프리스트, 트라이 엄프 등이 공연과 앨범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헤비메탈의 명맥을 잇는 정도로 여겨졌고 핑크 플로이드의 《Wall》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Guilty》는 이들의 활약을 그늘에 묻어버렸다.

  70년대를 뜨겁게 했던 디스코의 열기 속에서도 끈질기게 맥을 이어온 헤비메틀은 이제 팝 음악의 변두리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으로 보였다. 디스코가 지난다음 다시 락의 황금기가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비웃는 듯 팝 뮤직의 대세는 뉴 웨이브 쪽으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헤비메틀의 새로운 역사는 그때 막 시작의 움직임을 보였다.

  헤비메틀사의 대부분이 영국에서 시작 되었듯이 새로운 역사도 영국에서 시작 되었다. 펑크나 뉴 웨이브 밴드들에게 빼앗겼던 클럽의 무대에 다시 헤비메틀 밴드들이 나타난 것이다. 신진세력인 데프 레퍼드와 아이언 메이든의 등장은 헤비메틀 매니아의 주 연령층인 10대들과 비슷한 나이여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신진밴드의 등장으로 활력을 얻은 헤비메틀은 이제 화려한 영광을 되찾을 결정적인 찬스를 노리고 있었다.

  1983년 데프 레퍼드는 앨범 《Pyromania》을 가지고 미국 시장의 공략에 나섰다. 영국 팬들의 넋을 빼놓은 그들은 세계 최대의 음악시장인 미국을 정복함으로써 세계를 손아귀에 쥐려는 야망을 실현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때 마침 휘몰아친 마이클 잭슨의 열풍에 그만 그 야망은 실패를 하고 말았지만 《Pyromania》라는 제목처럼 미국에서 새로운 헤비메틀의 붐에 불을 붙이는 데는 충분한 것이었다.

  뒤를 이어 등장한 콰이어트 라이어트의 앨범 《Metal Health》는 마이클 잭슨의 열풍을 비집고 올라서서 정상을 정복함으로써 본격적인 헤비메틀의 시대를 다시 열어놓았다. 콰이어트 라이어트의 성공은 팝스계를 다시 헤비메틀 쪽으로 돌려 놓았으며 바야흐로 헤비메틀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락은 하나의 음악이며 또 하나의 사회현상

  헤비메틀 붐으로 60년대부터 활동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많은 밴드들이 다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 붐의 주역은 역시 데프 레퍼드나 콰이어트 라이어트, 아이언 메이든, 머틀리 크루 같은 신진세력이다. 아이언 메이든이 7년의 경력을 갖고 있을 뿐, 그들은 거의가 밴드를 결성한지 3~4년에 불과한 그야말로 풋나기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60년대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 온 헤비메틀의 정신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고 그 위에 신선한 감각을 불어넣고 있다.

  60년대에 락이 탄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 새로운 음악을 두고 여러가지로 말을 했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그것도 우연히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 전쟁에 대한 격렬한 증오, 기존 도덕에 대한 도전, 정체된 사회에 대한 좌절감 등이 뭉쳐서 히피가 생겨나기도 하고 스튜던트 라워가 전 세계를 휩쓸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음악은 모던 포크와 락이었다. 모던 포크는 반항적이고 심각한 내용의 가사로, 락은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로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다. 통기타의 반주로 노래를 하던 모던 포크는 70년대를 고비로 락의 급류에 휘말리게 되었고 락은 팝 음악의 한부문에서 팝 음악의 대명사처럼 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녀간의 사랑얘기나 부르던 비틀즈도 70년대에 가까워지면서는 반항적인 내용, 정치적인 가사, 나중에는 신비주의적인 경향의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변화를 보였다. 그 중에서도 일렉트릭 기타를 내세워 힘에 넘치는 사운드를 들려 주던 하드 락은 젊은이들의 넘치는 혈기에 꼭 맞는 것이었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 같은 이름은 젊은이들에겐 바로 우상이었고 기타를 잡은 젊은이라면 누구나 어떻게 하면 더 큰소리로 더 거칠게 연주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하드 락은 어느 시기엔가 그 금속성의 기타소리에 걸맞게 헤비메틀로 이름이 바뀌었고 이제는 헤비메틀 밴드로 불리는 새로운 밴드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유행도 시대가 변하면 낡은 것이 되듯이 70년대 초반을 지나며 사회의 혼돈이 가라앉자 그와 함께 락도 서서히 그 힘을 잃어 가기 시작하였다. 락은 하나의 음악이기도 했지만 하나의 사회현상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거치고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인기를 얻었던 락이 조용해진 세상에서 계속인기를 얻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80년대의 헤비메틀은 무엇이 다른가?

  우선 곡의 길이가 짧은 것을 들 수 있다. 예전의 헤비메틀 밴드들은 거의 8~10분, 심지어는 13~15분이나 되는 긴 곡을 앨범에 수록하곤 했다. 더군다나 공연무대에서는 더 길어지기 일쑤여서 기타솔로가 한없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곡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헤비메틀 앨범들은 거의 10곡정도를 수록하고 있다. 그 만큼 곡의 길이가 짧아져서 5분이 넘는 곡이 드물다. 공연에서도 연주의 변화를 주기는 하지만 기타솔로라든지 키보드 솔로를 넣는 짓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리고 60, 70년대 헤비메틀 밴드들은 대부분 걸출한 스타를 중심으로 모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딥 퍼플은 존 로드와 리치 블랙모어, 레드 제플린에는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 블랙 사바스에는 오지 오스본, 유라이어 힙에는 데이빗 바이런과 켄 헨슬리가 있었다. 그들은 스타를 중심으로 밴드를 이끌어 나갔고 스타들이 빠진 밴드는 인기의 대열에서 낙오되었다.
  그러나 80년대 헤비메틀 밴드는 거의 스타를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스타를 키워 낼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겠지만 팬들도 밴드의 사운드를 더 좋아하는 부류로 바뀐 것 같다.

  80년대 헤비메틀의 또 다른점은 기교적으로 단순해졌다는 점이다. 데프 레퍼드 같은 밴드의 음악에는 레드 제플린의 음악에서 들을 수 있었던 복잡한 코드의 진행이나 딥 퍼플의 클래식한 선율 따위는 애시당초 없었다. 어떤 면으로는 그들이 1960~70년대 헤비메틀 밴드보다는 혹시 락큰롤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이다. 그러나 거칠고 강력하게 터져 나오는 기타, 두드려 부수는 드럼, 쇠사슬 처럼 철커덕 거리는 베이스, 목이 터져라 질러대는 샤우트 창법을 들어보면 그들의 음악도 분명 헤비메틀이다.

  밴드마다 거의 한결같이 키보드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다른 점이다. 60, 70년대 밴드도 기타의 사운드를 정면에 내세운다는 것은 요즘의 밴드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밴드에 키보드를 제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딥 퍼플의 존 로드라는 불세출의 키보디스트가 있었고 유라이어 힙에서 켄 헨슬리의 역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따로 키보디스트가 없었던 레드 제플린에서도 베이시스트 졸 폴 존스의 키보드 실력은 전문 키보디스트를 뺨칠 정도였다. 그들은 하몬드 오르간과 당시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신디사이져의 연주로 헤비메틀의 사운드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요즘 활동하는 헤비메틀 밴드에서는 키보디스트를 찾기가 힘들다. 있다면 마이클 쉥커 그룹이나 레인보우, 화이트 스네이크 정도일까. 이 중 레인보우와 화이트 스네이크가 딥 퍼플에서 갈라져 나온 밴드이고 더우기 화이트 스네이크의 키보드 주자가 전 딥 퍼플의 존 로드라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바꾸어 말하면 신진 헤비메틀 밴드는 거의 키보디스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1960~70년대 헤비메틀과 80년대 헤비메틀의 방향을 더욱 극명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1960~70년대만 해도 헤비메틀이 만들어져 나가는 과정에 있던 시대였다. 그 당시의 락 밴드들은 블루스, 락큰롤, 클래식, 컨트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향을 받았던 경험이 있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는데 몰두했었기 때문에 한마디로 락이라고 해도 무척이나 여러 향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 유라이어 힙 같은 밴드의 음악이라도 전형적인 헤비메틀의 곡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는 어커스틱 기타의 반주로 노래하는 발라드풍의 곡도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가운데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 키보드는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 헤비메틀은 이런 가운데 탄생한 한 부류에 불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메틀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그 중에서 전형적인 헤비메틀 사운드였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화려하고 깊이있는 소리를 내는 키보드가 오히려 헤비메틀 특유의 직설적인 표현을 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인식되었는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밴드가 5인조이면 의례 기타, 보컬, 키보드, 베이스, 드럼의 편성이었지만, 요즘의 헤비메틀 밴드는 오히려 트윈 기타를 채용하고 있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있다.

  기타의 연주에서도 꽤 변화를 보이고 있다. 블루스나 락큰롤의 영향이 짙게 베어 있었던 초기 헤비메틀 기타리스트들의 연주에 비해 요즘의 기타리스트들은 헤비메틀 기타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독자적인 스타일을 확립해 놓고 있다. 솔로 연주에서 멜로디의 전개와 리듬 감각을 중요시 했던 선배들에 비해 빠른 속도의 손가락 놀림과 깊게 디스토션이 걸린 사운드, 전체적으로 힘과 스릴에 넘치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80년대 헤비메틀 기타리스트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곡이 짧아서 듣기에 부담이 줄었고 한두 사람보다는 밴드자체가 인기를 끄는 경향이 있으며 곡의 구성이나 기교가 단순해져 있고 키보드가 배제된 상태에서 기타가 사운드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기타의 연주 스타일도 헤비메틀 특유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것을 80년대 헤비메틀의 특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http://tai88.hihome.com/80yea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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