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N Roll

록의 역사는 50년대부터다. 종래 서구의 팝은 음악형식면에서 서투른 마디 2부형식에 ‘달빛’ ‘별자리’ ‘장미’ ‘입맞춤’ 운운의 상투적 구절이 노랫말에 자주 등장했고, 전기악기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섹스, 사회문제, 종교 같은 주제는 멀리하는 게 보통이었다. 우울함과 비참함으로부터 도피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저항하는, 즉 웃음과 슬픔이라는 양면성을 가진 블루스는 흑인들만의 음악이었고,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방랑과 이혼, 삼각관계, 음주 등을 노랫말에서 과감하게 다루었고, 전기기타, 드럼, 스틸기타를 사용했던 컨트리 앤 웨스턴은 촌스런 시골뜨기 음악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전후해 태어나 자본주의의 풍요를 누리면서 자란 50년대의 서구 젊은이들은 음악적 취향에 있어 기성질서에 저항했다. 이들은 멜로디 위주의 스탠더드 팝 대신 강한 비트의 음악에 몰두했다. 55년 빌 헤일리가 나타나 컨트리 앤 웨스턴밴드에서 리듬 앤 블루스를 커버한 레코드 ‘Shake Rattle & Roll’, ‘Rock around the Clock’을 발표했다. 듣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치거나 춤을 추게 할 수 있는 노래들이었고 그 동안 젊은이들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던 폭발음이었다. 특히 ‘Rock around the Clock’은 영화 ‘폭력교실(Blackboard Jungle)’의 주제가로 사용되어 그 해 여름 8주 연속 차트 1위를 독주하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영화가 교내폭력을 그린 것이었으므로 이때 록큰롤음악 역시 틴에이저의 반항과 비행, 그리고 폭력과 관계된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확고부동하게 심어졌다.

뒤이어 56년에는 남부 가난한 촌뜨기 트럭운전수 출신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타나 로큰롤 광풍을 주도했다. 니그로의 사운드와 니그로의 감각으로 노래할 수 있었던 최초의 백인이었던 그의 음악 속에서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은 역동적인 결합을 이루었다. 그의 육감적인 목소리와 관능적인 허리율동은 기성세대에겐 지탄, 젊은이에겐 환호의 대상이었다. 그 외에도 50년대 중엽에는 척 베리, 리틀 리차드 등의 록큰롤음악이 쏟아져나왔는데, 이러한 음악은 모두 간단한 멜로디에 단순한 코드, 전기기타의 연주, 요동치는 듯한 리듬감, 터져나오는 듯한 에너지, 거칠게 절규하듯 부르는 격렬한 보컬과 다이나믹하게 몸을 움직이는 율동 등을 특징으로 했다.

그러나 엘비스는 60년대 이후 연예인이 돼갔고 음악도 부드러운 팝발라드로 바뀌었다. 엘비스 팬들은 그를 쫓아갔지만, 그는 더 이상 로큰롤의 황제가 아니었다. 60년대초 미국과 영국에서 엘비스와 클리프 리처드가 로큰롤에 등을 돌리고 트위스트가 창궐하면서 로큰롤은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비틀즈를 위한 혁명전야였다. 음악산업의 변방이라 할 리버풀과 함부르크의 욕설이 난무하는 뒷골목에서 자신들 음악을 가꿔온 영국노동자계급출신의 더벅머리청년그룹 비틀즈는 무작정 질러대는 고함소리 하나로(?) 64년 미국공략을 단숨에 끝냈다. 록의 모든 장르를 실험한 이 신화적인 그룹은 70년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며 훌쩍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후 비틀즈를 필두로 수십여개의 영국 그룹들이 물밀 듯이 미국으로 몰려들었다. 더 후, 롤링 스톤즈, 야드버즈, 크림, 핑크 플로이드 등 비틀즈 이후 록 흐름의 주도권을 최근에 이르기까지 영국이 쥐게 된 근원이다.

64년 비틀즈의 상륙에 즈음해 미국에서는 버클리대학을 시작으로 성 정치 등에 관한 터부를 타파할 것을 주장한 Free Speech Movement을 비롯, 수년동안에 걸쳐 미국사회를 뒤흔든 학원투쟁과 도시흑인폭동, 무장봉기, 베트남반전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자유정신의 최정점은 산타나, 더 후, 제퍼슨 에어플레인, 지미 헨드릭스, 존 바에즈 등이 참가한 69년 8월 우드스탁이었는데, 40만명이 구름처럼 몰려든 이 페스티벌은 폭우로 진흙탕이 되었지만 팬들은 열광했다. ‘fuck’을 계속 외치며 ‘베트남에서 죽음을’이라는 노래를 처절하게 선창한 컨트리 조에 이어 지미 헨드릭스는 미국 국가를 늘어지게 변주하며 저 위대한 미국의 이상에 야유를 보냈다. 정치적 저항과 낭만적 쾌락주의가 뒤섞인 히피즘적 반문화운동이 록과 결합한 최고의 자리였다.

Elvis Presley promoting Jailhouse Rock.jpg
Elvis Presley promoting Jailhouse Rock” by Metro-Goldwyn-Mayer, Inc.
Reproduction Number: LC-USZ6-2067
Location: NYWTS — BIOG – The Library of Congress retrieved 3d02067r.jpg from Jailhouse Rock.. Licensed und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이 즈음 로스앤젤레스에서는 UCLA의 영화학과 학생들이 도어즈를 결성해 키보드 중심의 사운드, 양친살해를 암시하는 노랫말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앤디 워홀(미국 팝아트의 기수로 록뮤지션들의 많은 재킷을 디자인함) 밑에서 헤로인중독에 관한 노래를 기타의 금속성 소음에 맞춰 노래했다. 디트로이트에서는 급진적 정치운동에 관계한 매니저가 이끌던 그룹 엠시파이브가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부터 록은 전자악기의 비중이 더 커졌고, 앰프로 증폭되고 일렉트릭 장치에 의해 변형된 음은 폭력적이라 할 정도로 크고 자극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지금까지의 록음악을 록큰롤이라 한다면 이후의 록음악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록이라 부른다.

그러나 70년대로 넘어가면서 미국은 혼란스러웠던 사회변동에서 벗어나 서서히 평정을 되찾았고, 록에 대한 상업적 침탈, 마약, 지미 핸드릭스와 짐 모리슨과 제니스 조플린 등의 잇따른 죽음 등으로 록은 다시 쇠잔해지는 듯했다. 이때 비틀즈와 바톤터치하듯 나타난 영국의 레드 제플린, 제프 백, 크림 이상 세 그룹(이들은 모두 야드버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전기기타의 금속음을 강조하고 공격적인 비트의 연주를 굉음과도 같이 증폭시켜 들려주는 하드록을 연주했다. 이 밖에 블랙 사바스,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 퀸 등 메탈밴드들은 음악적 완결성이 뛰어난 메탈을 연주했으며, 특히 딥 퍼플은 클래식 요소를 하드록 속에 끼워넣는 노력으로 상당한 호응을 얻었고 퀸은 치밀하게 계산된 듯한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기타의 파괴적이고 기교적인 연주, 그리고 악마적이고 남성적인 면모의 과시와 함께 완벽에 가까운 최고 수준의 연주를 자랑했으며 노래는 허무의 색채를 풍겼다.

또한 69년 킹크림슨을 필두로, 키보드를 많이 사용하고 클래식, 재즈, 현대음악의 요소를 자유자재로 섭취하며, 기존의 단순한 록리듬에 풍요로운 변박자를 도입하고, 신디사이저 등 새로운 악기를 사용한 ‘프로그레시브록’이 탄생했다. 특히 에머슨 레이크 앤 팔머는 능란한 키보드 테크닉을 과시했고, 핑크 플로이드는 현대사회의 소외와 신경증을 소재로 하여, 사이키델릭 사운드와 공상과학적 음악, 웅장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아방가르드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독창적 세계를 보여주어 지성인들에게 인기를 누렸다.

이들에 반발, 76년 영국에서 섹스 피스톨즈가 등장한다. 펑크의 도래, 록 안에서 또 한 번의 반항이었다. 상업화한 메탈스타들을, 정교한 록음악을 비웃으며, 그리고 영국 자본주의 위기를 반증하듯, 섹스 피스톨즈는 냉소적이고 반상업적인 노래로 일관했다. 제멋대로 불러젖히고 노래에 전혀 소질이 없을뿐더러 배우는 데도 도무지 흥미가 없었던 이들은 찢어지는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청중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곧 펑크밴드의 힘은 고갈되고 겉멋만이 덜렁 남게 되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을 정점으로 한 하드록 열기가 점차 식어갈 즈음, 하드록이 답답하다고 느낀 젊은이들은 80년대초 스트레이트한 요소를 더욱 높이고 강도에서도 날카로운 금속성 톤을 전개하는 헤비메탈 음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하드록에 대한 더 강한 반란이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 메탈리카가 등장하면서 메탈은 드디어 주류의 위치로 부상했으며 슬레시 메탈, 데스 메탈 등으로 점차 분화해 나갔다.

메탈이 천하통일한 그 시점인 90년대 시애틀에서 출현한 너바나는 전통적인 사운드를 복고풍이나 짬뽕스타일로 표현한 얼터너티브록을 들고 나오면서 록 지평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너바나의 얼터너티브를 계기로 탈장르시대가 열렸고 하나의 곡을 한 장르로 구분짓는 것이 어렵고 의미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너바나의 얼터너티브는 음악장르의 구분을 뛰어넘어 하나의 문화운동으로까지 퍼져나갔다.

록은 그러나 너바나 이후에도 계속 발전, 70년대 영국에서 탄생된 펑크가 90년대 들어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네오펑크시대를 열었고, 최근엔 얼터너티브 이후 전자, 기계음으로 가득찬 테크노가 점차 힘을 얻고 있는 형국이다.

http://www.fortunecity.com/tinpan/morrissey/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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