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

사실 이 영화에서 독창적이라 할 만한 요소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제목은 The Buggles 의 히트곡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따왔음이 분명하고, 80년대 음악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떠오르게 하며, 스타와 매니저와의 관계라는 극의 기본설정은 ‘제리 맥과이어’ 또는 ‘러브액츄얼리’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기시감이 분명한, 결말이 불을 보듯 빤한 영화가 그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힘 – 그것도 강원도의 힘 – 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의외의 즐거움이면서도 무척이나 기특한 일이다.


한물간 80년대 스타가 자존심만 세서 매니저를 고생시키다가 강원도 영월 촌구석에서 DJ 한자리 얻어서 다시 재기에 성공하고 매니저와의 ‘진한’ 우정도 확인한다는 단 두 줄로 줄거리가 요약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욕심 부리지 않았다는 점일 것 같다. 잘만 우려내면 쓸 만한 에피소드 엄청 나올 것 같은 설정이지만 제작진은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자신들이 애초 의도했던 기본구도, 즉 ‘마이너가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주제의식에 충실하고 있다.


2000년대 대 80년대, 비디오 대 라디오, 서울 대 영월, 댄스 대 락 등등… 영화의 문화코드는 이렇게 양분되어 있었다. 비록 후자가 전자를 이기진 못했지만 어쨌든 80년대 퇴물 락가수가 영월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방송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히 하게 되는 작은 승리로 귀결된다. 그리고 잠시 헤어졌던 스타와 매니저는 다시 재회하여 멋쩍은 웃음을 나눈다.


간간히 극적비약에 조급해하는 무리한 설정도 눈에 띄지만 박중훈, 안성기 두 관록 있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조연들의 뒷받침 – 특히 영월 지국장 역의 정규수씨는 정말 신들린 연기였다 – , 감칠맛 나는 대사, 그리고 정겨운 노래들이 어울린 자그마한 뒷동산 같은 영화였다.


p.s. 1 영화 끝난 후 자막을 읽다보면 주요배우들의 매니저들의 이름도 나온다.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배우들의 매니저들까지 챙겨줬을까?

p.s. 2 라디오프로그램이 첫 전국방송을 시작하는 날 첫 곡은 MTV의 개국 첫 시간에 튼 Video Killed The Radio Star 였다. 비디오에 대한 라디오의 복수를 상징하는 오마쥬인가?

Radio Star Strikes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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